청와대 앞의
분수대 광장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해 경무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학생, 시민들을 향해 최초의 발포가 저질러진 곳이 지금의 청와대 분수대 광장이다. 광장 바닥에는 경찰의 발포로 100여 명이 쓰러진 자리임을 밝히는 동판이 깔려 있다. 동판은 아픈 역사의 과오를 기억해 되풀이하지 말자는 각오를 표현한다.]
청와대 앞의
분수대 광장
청와대 앞의
분수대 광장의
설계 취지에 관한
안내문
청와대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건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사랑채
통인시장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형성된 재래시장.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변모하고 있는 전통시장이다. 뷔페처럼 고객이 먹거리 상점을 찾아다니며 도시락에 담아 먹는 도시락 카페를 운영하면서 시장을 찾는 고객이 증가했다. 광화문, 경복궁 등 주변의 관광지와 결합해 이색적인 재미를 주는 먹거리 판매방식이 인기를 끌면서 단체 관광객들이나 가족단위 고객들의 방문이 늘고 있다.]
세종마을에 관한
안내문
세종마을 거주 주민들을 위한
쉼터
2022년12월09일(금요일) [청와대&백악정&칠궁&사직공원&서울역사박물관&경희궁&돈의문 박물관 마을] 탐방기
탐방지 : 청와대 & 백악정 & 칠궁 & 통인시장 & 사직공원 & 서울역사박물관 & 경희궁 & 돈의문 박물관 마을
탐방코스 : [ 경복궁역 4번 출구~해공 신익희 가옥~무궁화 동산~청와대 정문~영빈관~청와대 본관~수궁터(구 일본 총독 관사터)~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오운정~대통령 구 관저(舊 官邸)~침류각~상춘재~녹지원~여민관~경호처 건물~소정원~헬기장~춘추관~백악정~칠궁~분수대 광장~사랑채~자하문로~통인시장~사직공원~사직로~서울역사박물관~경희궁~
돈의문 박물관 마을~영천시장 버스 정류장 ]
탐방일 : 2022년 12월 09일(금요일)
날씨 : 높은 구름이 낀 날씨 [종로구 청운효자동 : 최저기온 1도C, 최고기온 9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4시간51분 소요)
07:54~08:08 연신내역에서 3호선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역으로 이동 [14분 소요]
08:08~08:25 서울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탐방 출발하여 해공 신익희 가옥으로 이동
08:25~08:30 사진촬영
[해방 후 초대 국회의장을 역임한 해공 신익희 선생(1894~1956)이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난 1954년 8월부터 1956년 5월 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호남 지역 유세를 위해 전주로 내려가던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1년 9개월 여 거주한 곳이다.
‘ㄱ'자형 안채와 사랑채 2동으로 구성된 이 집은 집 장수들이 조선시대 양반가의 집을 모방하여 1930년대에 지은 도시형 한옥으로 겹처마 팔작지붕 오량가(五樑架)집이다. 겹처마이면서도 처마를 짧게 내어 채광을 고려하고, 굴도리를 사용하였으며, 건물 규모에 비해 단면이 과대한 대들보를 사용하여 오량가(五樑架)로 가구(架構)한 점 등에서 이 시대 도시형 한옥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집의 외벽과 내벽, 창호 등은 해공 신익희 선생 거주 이후로 입주자의 편의에 따라 일부 변형되었으나 건물의 구조는 건립 당시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건물의 변형된 부분들 그 자체도 도시형 한옥의 변천사를 알 수 있게 하는 건축사적 자료가 된다.
해공 신익희 선생은 1945년 해방 이후 중국에서의 오랜 독립항쟁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와 한미호텔 → 창신동 조씨가 → 종로 6가 낙산장 → 묘동 장씨가 → 삼청동 106번지(오늘날 국무총리 공관) → 효자동 164-2 등에서 거주했다. 이 중 지번이 확실하게 밝혀진 곳은 국회의장 재직 시절 거주하던 삼청동 106번지와 문화재로 지정된 효자동 164-2번지 등 2곳뿐이다. 이 중 효자동 164-2는 해공 신익희 선생이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나 민주당을 창당하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 당시 사사오입 개헌 등을 통해 장기 집권과 독재체제 강화를 시도하던 이승만 전(前)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에 대항하는 등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요약되는 그의 정치인생이 정점에 이른 시기에 거주하며 활동하던 곳으로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이다. 이와 같이 해공 신익희 선생의 효자동 옛집은 건축적․역사적 측면 모두에서 보존가치가 인정되므로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08:30~08:35 궁정동 무궁화 동산으로 이동
08:35~08:40 무궁화 동산 탐방
[무궁화동산(無窮花동산)은 1993년 7월 기존에 존재하던 궁정동 안가를 철거한 뒤 만든 시민공원이다. 안가 5채를 헐어 조성했으며 10,560㎡ 규모다. 동산의 정원은 청와대 쪽을 향하고 있으며 후문은 창의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 동산 가운데에는 중앙광장이 있는데 이곳의 가운데에는 궁정동을 의미하는 우물 정(井) 자 모양의 우물이 있다. 또한 박정희가 최후를 맞이한 자리인 과거의 안가 나동 대연회장 자리에는 길이 30m, 높이 3m의 돌담이 위치하고 있다.]
08:40~08:47 청와대 정문으로 이동
08:47~09:00 청와대 입장 대기 [청와대 관람 예약번호 : 202212090900P00067F]
09:00~09:03 청와대(靑瓦臺) 영빈관(迎賓館)으로 이동
[영빈관(迎賓館)은 대규모 회의, 외국 국빈들 영접, 여러 공식 행사 등을 개최하는 건물로 1978년 12월에 준공됐다. 현재 청와대 경내의 현대식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층은 대접견실로 외국 국빈의 접견 행사를 치르며 2층은 대규모 오찬 및 만찬 행사를 하는 곳으로 무궁화와 월계수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하지만 용도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다고 한다. 수용 인원은 250명 정도인데 숙소가 따로 없으며 한국적인 멋을 느낄 수 있는 장식이나 시설도 부족해 오·만찬 장소로 이용되는 거대한 연회장에 가깝다.
과거에는 청와대 내에 국빈을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조선호텔, 워커힐호텔 등을 활용하거나 한국의 집을 영빈관으로 사용했다. 1958년 이승만 정부는 영빈관을 짓기 위해 장충단공원을 국유화하여 공사를 시작했다. 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으로 공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1967년 2월 신라호텔 영빈관이 완성됐다. 하지만 국빈 위주로 운영되어 경영난을 겪었고, 결국 1973년 일반에 매각되어 지금의 신라호텔이 되었다.
이후 청와대 내에서 행사를 치를 공간이 필요하고 국가 위상에도 걸맞지 않다는 주장이 계속되었고 조선 시대 때 농사를 장려하는 뜻에서 만들었던 경농재(慶農齋) 옛 터에 지금의 영빈관을 짓는 공사를 1978년 1월 시작했다. 영빈관은 그해 말에 완성되었고 1998년 10월에는 주변의 노후 건물들을 정비해 2000년 6월 새롭게 단장했다. 영빈관은 18개의 돌기둥이 건물을 떠받들고 있다. 앞쪽 돌기둥 4개는 2층까지 뻗어 있다. 높이 13m에 둘레가 3m다. 전북 익산에서 나온 화강암을 통째로 깎아 이음새가 없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취임식 만찬을 이곳이 아닌 신라호텔에서 열었다.]
09:03~09:10 사진촬영
09:10~09:13 청와대(靑瓦臺) 본관(本館)으로 이동
[본관(本館)은 대통령의 집무 등에 사용되는 본 건물로 노태우 대통령 재임기간인 1991년 9월에 신축되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으며 국무회의가 열리는 장소이다. 과거에는 수석보좌관 회의도 이곳에서 열렸다. 공간이 필요 이상으로 넓고, 업무와 소통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의전만을 위한 건축물에 더 가깝다는 비판도 존재하여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공식적인 업무만 이곳에서 보기로 하였다. 본관 출입시에 사용되는 청와대 정문은 11문이라고도 부르며, 국무회의 때 장관급 이상이 출입하는 곳이다. 출입증을 보이고 얼굴 대조를 거쳐 통과가 허용된다. 내부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당일에 일부 공개된 바 있다.
전통 목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2층 본채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단층의 별채가 배치되어 있고 팔작 지붕을 올린 뒤 한식 청기와 15만 장을 이었다. 지붕에 올린 청기와 모습을 자세히 보면 수키와와 암키와, 수막새와 암막새 등 일반 기와 이외에 잡상(雜象)·취두(鷲頭)·용두(龍頭)·토수(吐首) 등 궁궐에서 볼 수 있는 장식 기와를 사용했다. 본관 1층에는 영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인 무궁화실, 규모가 작은 오찬·만찬이나 다과 행사 때 사용하는 인왕실이 있다.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소수 인원이 참석해서 회의하는 집현실, 소규모 인원이 식사하는 백악실이 있으며 건물 앞의 잔디 마당은 국빈 환영 행사나 육·해·공군 의장대, 전통의장대 사열 등이 이루어진다. 서쪽 별채인 세종실은 국무회의와 임명장 수여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며 동쪽 별채인 충무실은 중규모 오찬·만찬이나 간담회 등이 열리는 장소였다.]
09:13~09:20 사진촬영
09:20~09:25 수궁터로 이동
[옛날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守宮)들이 있었다 하여 수궁터라고 부른다. 1939년부터 1993년까지 54년간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있던 자리다. 1993년 11월 철거했다. 1989년에 본관과 관저를 분리하면서 구청와대 본관을 역대 대통령의 기념관 및 박물관으로 보존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총독관사를 새로 지어 7·8·9대 총독이 사용했던 곳이라는 이유로, 김영삼 대통령이 민족정기를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철거를 지시했다.]
09:25~09:32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으로 이동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 제작돼 경주 남산 계곡에 있던 불상이다. 이를 일제 때인 1912년 데라우치 총독이 서울 남산 총독 관사인 왜성대로 가져갔다. 1939년 총독 관사를 현재 청와대 자리에 만들며 함께 옮겼다. 관저를 새로 지을 때 지금 위치로 이전했다. 몸체가 온전하고 연꽃문양을 새긴 대좌까지 남아있는 통일신라 석불은 많지 않다. 기독교 장로 대통령 시절에 불상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불상을 치워버렸다는 헛소문이 돌았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일부 신도들이 성모상과 예수상을 함께 들여놓으라는 요구도 했다.]
09:32~09:34 오운정(五雲亭)으로 이동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후원인 경무대 만들었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다. 일제가 훼손하기 전인 1910년대 이전까지 이곳은 창덕궁 후원처럼 수려한 계곡과 정원이 있었다. 경무대에는 32개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오운각(五雲閣)은 임금 휴식처, 융문당(隆文堂)은 과거시험을 보는 장소이고, 융무당(隆武堂)은 군사를 조련하는 장소였다. 오운정은 청와대에서 유일한 정자다.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 글씨다. 관저 자리에 있던 정자를 관저를 신축하며 현재 자리로 옮겼다.]
09:34~09:38 대통령 구 관저(舊 官邸)로 이동
[구 관저(舊 官邸)는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했던 곳으로 노태우 대통령 재임기간인 1990년에 준공되었다. 대통령 가족의 사적인 공간이기에 청와대 내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공간으로 취재진에게도 잘 공개되지 않았다. 이후 노무현이 재임 중인 2003년 3월과 11월에 관저 입구를 공개한 적이 있었으며 이명박도 재임 중에 가족 생활과 관련한 모습을 공개한 적이 있다. 문재인도 재임 중에 관저 입구에서 출근하는 모습을 몇 번 공개했었다.
박근혜가 재임 중일 당시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집사 노릇을 했던 김막업이 훗날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박근혜의 일상이 공개되었다. 이때 관저의 구조도 알려졌는데 그의 진술에 따르면 관저는 내실과 별채로 나뉘며 별채는 경호원이 상주하는 곳이었다. 당시 내실은 침실, 서재, 피트니스 룸, 소식당, 한실, 파우더 룸 등이 있었으며 대통령 침실엔 침대, 화장대, 서랍장, TV, 책상, 노트북, 인터폰 등이 비치되어 있었다. 별채에는 경호실, 조리실, 대식당, 접견실 등이 있으며 대식당은 외부 방문객이 식사하는 곳이고 접견실에는 회의용 탁자, 원형 식탁, TV 등이 있었다.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떠날 때 전두환·노태우·노무현은 임기 마지막날도 청와대에서 머무른 뒤 다음 날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청와대를 떠났으며 김영삼·김대중·이명박은 임기 마지막날에 청와대를 떠나 자택에 간 뒤 자택에서 자정까지 대통령으로서의 임무를 맡았다. 한편, 최규하와 박근혜는 후임 대통령이 정해지기 전에 물러났는데 두 사람은 모두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도 며칠 더 청와대에 머물렀다가 떠났다. 한편,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과 동시에 입주하였으나 문재인은 시설 정비 사유로 취임한 지 3일째가 되어서야 입주했다. 이는 관저 준공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노태우 때 지금의 본관과 관저를 신축하기 전에는 구 본관의 1층을 대통령 집무실로, 2층을 대통령 관저로 사용했다. 이때는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에 2개의 셔터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노태우 때 구 본관 뒤편에 지금의 관저 건물을 지었는데 주거 공간의 기능을 최대한 살리면서 전통 건축 양식을 도입했다. 생활 공간인 본채와 접견 행사 공간인 별채를 배치하고 앞마당에는 전통 양식의 뜰과 사랑채를 만들었다. 대문은 인수문(仁壽門)이라고 하는데 '이 문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질고 인덕이 많으며 장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관저 근처에는 오운정이라는 정자와 침류각(枕流閣)이라는 건물이 있다. 원래 지금의 관저 자리에 위치했지만 신축 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이동됐다. 오운정 외에도 청와대 경내에 2~3개 정도의 정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철거하고 남아있지 않다. 오운정과 침류각 모두 지어진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190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북궐도형에 두 건물이 모두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승만 시대에 지어졌을 거란 얘기도 있는데 지금 오운정 현판도 이승만의 친필 글씨다.
소위 미남석불로 불리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도 관저 주변에 위치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원래 경주시에 있었지만 일제 시대 때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이 총독 관저로 옮겼다고 한다. 1930년대 관저를 신축하면서 불상도 함께 옮겼다가 1989년 청와대 관저를 신축하면서 다시 지금의 자리로 이동했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함께, 관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구 관저로 변경되었다.]
09:38~09:43 사진촬영
09:43~09:46 침류각(枕流閣)으로 이동
[침류각은 앞면 4칸, 옆면 2칸 반인 전통 건축물이다.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枕流)는 뜻이다. 20세기 초반에 준공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다. 오운정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손석희 전 앵커와 퇴임 인터뷰를 한 장소다. 침류각은 본래 관저 자리에 있었다. 1989년에 관저를 지으며 지금 자리로 옮겼다.]
09:46~09:48 사진촬영
09:48~09:50 상춘재(常春齋)로 이동
[상춘재(常春齋)는 청와대의 정원인 녹지원 뒤에 위치한 전통 한옥으로,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되는 곳이다. 상춘재의 뜻은 '봄이 늘 계속되는 집'이다. 지금의 상춘재 자리는 일제 시대 때 일본식 목조 건물인 매화실(梅花室)이라는 별관이 있던 자리다. 약 66m2 규모의 크기였다. 정부 수립 이후 상춘실(常春室)로 바뀌었는데 다과나 만찬 행사 등 의전용 건물로 쓰였다. 이후 1978년 3월 상춘실을 헐고 73m2 규모의 천연슬레이트 지붕의 양식 목조건물인 상춘재를 신축했다. 1982년 11월 기존 상춘재를 헐어버리고 417.96m2 규모의 한옥을 반년 만에 완성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청와대 경내에 건립된 최초의 전통 한옥인데 200년이 넘은 춘양목(春陽木)을 활용했다고 한다. 내부는 대청마루로 된 거실과 온돌방 2개가 있다.
전두환은 상춘재에서 외빈을 접견하고 비공식 회의를 자주 열었다고 한다. 후임 대통령들도 비공식 간담회나 외국 정상과의 회담 장소로 사용했다. 박근혜는 임기 중 상춘재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다가 탄핵 심판이 진행중이던 2017년 1월 상춘재에서 신년기자간담회 등을 열었다. 문재인은 취임 후에 상춘재를 애용했으며 습기 등으로 곳곳이 훼손된 상춘재의 보수 공사도 이때 진행됐다.]
09:50~09:52 사진촬영
09:52~09:56 녹지원(綠地園)으로 이동
[청와대 경내 최고의 숲이다. 사계절 내내 풍경이 바뀐다. 역대 대통령 기념식수를 비롯해 120여 종의 나무가 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장애인의날 같은 갖가지 행사가 열리는 장소다. 2019년 서울에 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여기서 문재인 대통령과 산책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5년 5월 28일 인근 주민 약 3000여 명을 초청하여 KBS 열린음악회가 열었던 곳이기도 하다.]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 안팎에 식목한 나무들
정문에서 본관으로 들어가는 길 양 옆에 잘 생긴 반송이 11그루씩 서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조경을 했지만 이름표가 붙어 있지는 않다. 이승만·윤보선 두 대통령 이름이 붙은 나무는 청와대에 없다.
영빈관 동쪽에 있는 가이즈카 향나무는 박정희 대통령이 심었다. 일본 오사카 남부 가이즈카 지방이 고향이다. 1918년생 말띠이니 100살이 넘었다.
최규하 대통령이 1980년에 심은 독일가문비나무는 1944년생 원숭이띠다. 대통령 전용 헬기장 옆에 있다.
상춘재 앞에 있는 백송은 전두환 대통령이 심었다.
본관 동쪽에 있는 1960년생 쥐띠 구상나무는 1988년에 노태우 대통령이 심었다.
1993년4월5일 김영삼 대통령은 본관 동별채 앞에 무궁화를 식수했다.
수궁터에 있는 단풍나무의 한 종류인 복자기는 1980년생 원숭이띠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이 심었다.
영빈관 앞에 있는 무궁화는 2000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해 김대중 대통령이 심었다.
청와대 담장 밖에 있는 정자인 백악정 옆에 2001년 4월 12일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느티나무를 식수했다.
백악정 옆에는 2004년 5월 16일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심은 서어나무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2012년4월7일 심은 산딸나무도 백악정 아래쪽에 있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은 녹지원에 무궁화 15그루를 심었다.
대정원 동편 소정원 한가운데 있는 이팝나무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심었다.
2018년4월5일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여민1관 뜰에 소나무를 심고 기념 표석을 제막했다. 또 관저 옆에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종의 미선(尾扇)나무를 심었다.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이 심은 동백나무는 녹지원과 이어진 상춘재 동쪽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퇴임을 앞둔 2022년4월5일(식목일) 청와대 녹지원에 모감주 나무를 심었다.]
09:56~09:58 사진촬영
09:58~10:00 여민관(與民館)으로 이동
[여민관(與民館)은 청와대 참모들이 일하는 곳으로, 총 3동으로 나뉘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시에 위민관(爲民館)으로 변경되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무현 정권 시절 증축 당시의 이름이었던 여민관으로 환원되었다. 여민관은 《맹자》에 나오는 구절인 '여민동락'(與民同樂)에서 취한 것으로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뜻이다. 한편, 위민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친다'는 뜻으로 추측한다. 출범 직후의 문재인 정부는 기존의 위민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했으나 곧 번복하고 여민관으로 이름을 되돌렸는데 백성을 위한다는 뜻은 청와대가 주체고 국민이 객체라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본관과 여민관은 50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자동차로 5분,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다. 하지만 비서관들은 청와대 경내에서 사용 가능한 전용 차량이 없고 차량을 호출하는 것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보고서를 들고 뛰거나 자전거를 이용했다고 한다. 이에 노무현은 여민1관을 신축하면서 한국형 웨스트 윙을 구상하며 내부에 대통령 집무실을 두고 여기서 자주 업무를 봤다. 하지만 집권 후반기에는 본관 집무실을 더 선호했다고 하며 이명박도 서너 차례 여민관 집무실에서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박근혜는 재임 중에 여민관 집무실을 찾지 않았다가 문재인은 다시 여민관에서 업무를 봤다.
여민1관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인 2004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해 12월 완성됐다. 연건평 974평 규모이며 지하 1층·지상 3층 구조다. 2층에 비서실장실과 국정상황실이, 3층에 대통령 간이 집무실과 소회의실·대회의실이 위치한다. 여민1관이 만들어지기 전 여민2관은 별관, 여민3관은 동별관이라 불렸는데 각각 1969년과 1972년에 준공해서 오래된 건물이다. 안전진단을 해보니 D등급이 나오기도 했으며 국회에서 먼저 보수 공사를 위한 예산을 배정해준 적도 있었다. 여민2관에는 청와대 도서관이 자리잡고 있는데 장서는 2018년 1월 기준 18,662권이다. 장서는 대여만 가능하며 도서관은 매달 신청을 받아 내부 검토를 거쳐 책을 구매한다.]
10:00~10:01 경호처 건물로 이동
10:01~10:04 소정원으로 이동
10:04~10:08 헬기장을 거쳐서 춘추관(春秋館)으로 이동
[춘추관(春秋館)은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와 출입기자들의 기사송고실로 사용되는 곳으로 노태우 대통령 재임기간인 1990년 9월에 준공되었다. 연건평 1,028평 규모로 지상 3층·지하 1층 구조이며 맛배 지붕에 토기와를 얹었다. 춘추관이란 명칭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있었던 춘추관에서 유래했다.
김대중 정부까지는 기자들이 자유롭게 청와대 경내의 비서동에 가서 비서관을 취재하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부터 보안이 강화되면서 출입 기자들의 청와대 경내 출입이 전면 금지되고 춘추관에서만 취재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청와대 관계자가 브리핑을 할 때는 춘추관을 찾아와서 브리핑을 한다. 기자들은 순번에 따라 대표로서 취재한 뒤 그 내용을 공유하는 풀(Pool) 기자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어 청와대 취재에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10:08~10:10 사진촬영
10:10~10:22 백악정으로 이동
[청와대 담장 밖에 있는 정자인 백악정 옆에 2001년 4월 12일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느티나무를 식수했다.
백악정 옆에는 2004년 5월 16일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심은 서어나무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2012년4월7일 심은 산딸나무도 백악정 아래쪽에 있다.]
10:22~10:24 사진촬영
10:24~10:44 칠궁(七宮)으로 이동
[청와대 서별관 뒤쪽 궁정동에 있다. 조선시대 왕을 낳았지만 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 7인의 위패를 모셨다.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육상궁(毓祥宮)을 비롯, 저경궁(儲慶宮·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 추존왕 원종의 생모), 대빈궁( 大嬪宮·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 경종의 생모), 연호궁(延祜宮·영조의 후궁 정빈 이 씨. 추존왕 진종(효장세자)의 생모), 선희궁(宣禧宮·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 추존왕 사도세자 장조의 생모), 경우궁(景祐宮·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 순조의 생모), 덕안궁(德安宮·고종의 후궁 엄씨. 영친왕의 생모) 등 7개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1968년 이후 출입이 금지되다가 2001년 11월 24일부터 청와대 특별관람객에게 제한 공개하고, 2008년 6월부터는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10:44~10:50 사진촬영
10:50~10:53 청와대 분수대 광장으로 이동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해 경무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학생, 시민들을 향해 최초의 발포가 저질러진 곳이 지금의 청와대 분수대 광장이다. 광장 바닥에는 경찰의 발포로 100여 명이 쓰러진 자리임을 밝히는 동판이 깔려 있다. 동판은 아픈 역사의 과오를 기억해 되풀이하지 말자는 각오를 표현한다.]
10:53~10:54 사진촬영
10:54~10:55 청와대 사랑채로 이동
[청와대사랑채는 청와대 또는 청와대 근처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건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내부에는 역대 대통령에 관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고, 전시관도 조성되어 있다. 또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식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1층은 한국관광전시관과 기념품점, 쉼터 등이, 2층에는 청와대관과 국민소통체험관 등이 있다.
청와대의 역사와 옛 사진, 그리고 청와대의 비교 대상이 되는 경복궁의 옛 사진과 역사가 이곳 청와대사랑채에 모두 전시되어 있고, 기념품을 판매한다.
본래 이 자리는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이 있던 곳인데 1996년 2월 청와대 앞길을 개방하면서 국민들을 위한 편의와 볼거리 제공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이 당시에는 효자동 사랑방으로 불렸으며 건물이 노후화돼 2010년 1월 리모델링하여 지금의 모습과 이름이 되었다. 1층에는 국가홍보관, 서울홍보관 등이 있으며 2층에는 대통령관, 국정홍보관, G20휴게관 등이 위치했었다.
1월1일과 매주 화요일은 휴관이다. 별도의 예약 없이 자유 관람이고, 입장요금은 무료이다.]
10:55~11:03 자하문로를 건너서 통인시장으로 이동
11:03~11:08 통인시장 탐방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형성된 재래시장.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변모하고 있는 전통시장이다. 뷔페처럼 고객이 먹거리 상점을 찾아다니며 도시락에 담아 먹는 도시락 카페를 운영하면서 시장을 찾는 고객이 증가했다. 광화문, 경복궁 등 주변의 관광지와 결합해 이색적인 재미를 주는 먹거리 판매방식이 인기를 끌면서 단체 관광객들이나 가족단위 고객들의 방문이 늘고 있다.]
11:08~11:14 사직공원으로 이동
11:14~11:22 사직공원 탐방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공원. 인왕산 남동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1940년 3월 서울의 도시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8년에는 사직단이 새롭게 단장·복원됐다. 각종 공원시설을 비롯한 놀이터, 수영장 등이 있으며 신사임당과 이율곡 모자의 동상, 김동인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태조가 한양 천도 이후 첫 사업으로 '우사좌묘의 원칙', 즉 경복궁의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짓고 왼쪽에는 종묘를 짓는다는 원칙에 따라 현재의 자리에 사직단을 건립했다.]
11:22~11:35 사직로를 건너서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이동
11:35~12:09 서울 역사박물관 관람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시립 박물관. 서울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정리해 방문하는 내외국인들에게 서울의 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어 1997년 12월에 개관하였다. 지하 1층과 지상 3층 규모의 건물로, 전시공간은 1층과 3층에 마련되어 있다. 18만 점 이상의 서울 관련 유물을 소장하여 전시하고 있다. 서울 역사박물관은 1월1일과 매주 월요일에 휴관이고, 입장요금은 무료이다.]
12:09~12:12 경희궁으로 이동
12:12~12:35 경희궁 관람
[사적 제271호. 5대궁 중 서쪽에 자리하여 서궐로도 불렀다. 인조, 효종, 철종 등 10여 명의 임금이 살았지만 기간이 짧았고 거의 빈 궁궐로 있었다. 원래 ‘경덕궁’이었는데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경희궁지〉에 경희궁의 규모와 배치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둘레는 6,600자였으며 흥화문, 흥원문, 개양문, 숭의문, 무덕문의 5개 문을 두었다. 숭정전은 신하들의 조회를 받던 곳이며 뒤쪽에 있는 자정전은 임금이 업무를 보던 곳이었다.
1908년에 일제의 일본인 중학교를 세우면서 조선왕조의 5대 궁 중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88년부터 복원작업을 시작하여 2002년 자정전과 숭정전, 숭정문 등을 복원하는 1차 복원공사를 마치고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1월1일과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고, 입장요금은 무료이다.]
12:35~12:36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 이동
12:36~12:46 돈의문 박물관 마을 탐방
[돈의문박물관마을은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로서의 역사적 가치와 흘러간 근현대 서울의 삶과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서울형 도시재생 방식을 통해 재탄생한 도심 속 마을 단위 역사·문화공간이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이웃한 종로구 교남동 일대와 더불어 2003년 '돈의문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기존의 건물을 모두 허물고 근린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로서 새문안 동네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고 마을의 삶과 기억이 잘 보존되어 있는 작은 마을 그 자체를 박물관마을로 남겨 서울시민의 역사·문화 자산으로 조성하고자 하였다. 마을 내의 건물은 최대한 살려 리모델링하였으며, 일부 집을 허문 자리에는 넓은 마당을 만들었다. 근현대 건축물 및 도시형 한옥, 100년의 역사를 지닌 골목길 등 정겨운 마을의 모습은 같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 많은 시민이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의 장으로 재탄생하였다.현재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서울 100년, 도심 속 시간여행놀이터> 콘셉트로 새롭게 단장을 마치고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40개 동의 기존 건물은 그대로 두면서 본래 조성 취지인 '살아있는 박물관마을'이라는 정체성을 되살릴 수 있도록 일 년 내내 전시, 체험, 공연, 마켓 등이 열리는 '참여형' 공간으로 콘텐츠를 꽉 채워 전면 재정비한 것이 큰 특징이다.]
12:46~12:59 영천시장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탐방 완료
12:59~13:08 영천시장 버스 정류장에서 구산역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752번 버스 승차 대기
13:08~13:31 영천시장 버스 정류장에서 752번 버스를 타고 구산역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23분 소요]
청와대 지도
사직공원 지도
[경희궁&서울 역사박물관]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