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민들레
권옥숙
재래시장에 갔다. 눈이 찢어진 아줌마는 아직도 채소가게를 한다. 어렸던 그의 아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떡방앗간을 하고 있고 그들은 이제 늙었다. 새댁 때부터 그 집을 단골로 해 채소는 그 집에서 샀다. 아저씨는 선해 보였지만 아줌마의 첫인상은 누가 봐도 과히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거래를 하면서 그가 친절한 사람임을 알게 됐다.
아줌마의 인상 때문인지 가게는 그리 잘되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옆 가게는 늘 채소가 풍성했고 부부가 인상도 좋아 단골이 많았다. 내 단골집은 이들에게 기가 죽어 보였다. 한번은 단골집에 찾는 것이 없어 그 옆집에 갔다. 그들은 내게 덤을 얹어주며 은근히 웃었다. 순간적으로 단골을 바꾸고 싶은 유혹이 일었다.
김치를 담그려고 단골집에 가면 배추가 새들해 보여 선뜻 사지 않고 시장을 한 바퀴 휘둘러보고 왔다. 역시나 옆집 배추는 선머슴애 같았다. 내키지 않으면서도 소금에 절이면 다 똑같은데 하며 억지를 써 새들한 놈을 사 왔지만, 그 선머슴애는 소금 치는 곳까지 따라와 혀를 내밀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단골을 바꾸지 않았다.
시장은 작지만 소박하고 정겨웠다.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동네는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변했고 시장도 중형 마트가 생겨 손님을 끌었다. 그러자 시장 양 끝에서 맞서고 있던 철물점 하나가 가게를 접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두 집의 고추방앗간, 떡집, 트로트가 늘 울리던 생선가게, 친구 언니의 정육점이 또 모습을 감추었다.
시장에는 순대며 튀김, 묵, 찹쌀 도넛 같은 것들이 발길을 붙잡았는데 역시 어느 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즉석에서 닭튀김을 해주던 곳도 오래전 어디론가 떠났다. 생닭을 턱턱 잘라 프라이드를 해주던 그 모습과 입안 가득 감기던 튀김 닭의 냄새는 시장의 따뜻한 문안 인사였다. 도시화의 속도는 작은 시장을 관통해 자동차가 잘오갈 수 있도록 길이 정비 되었고, 좌판을 놓았던 곳에는 유명인의 조각 예술품과 시비가 놓였다.
그래도 자리를 비집고 마트 앞에서 한 할머니가 생선 좌판을 벌었다. 할머니의 커다란 대야에는 고등어나 갈치가 있었는데, 내가 지나가니 웃음 섞어 말을 걸었다. 나는 생선을 살 수 없었다. 채식주의자가 된 뒤 그런 것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할머니의 생선은 해거름이 되면 얼음이 녹아 노곤한 몸으로 누웠고, 자동차들은 매연을 뿜어내며 그 옆을 지났다.
내가 새댁 때 할머니는 고깃배에서 생선을 받아와 팔았다. 그때는 채식주의자가 아니어서 단골로 사주었다. 바닷가 근처 셋집에 어린 아들과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서로 잊었다. 한참 세월이 지나 그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다시 시장에 나타났다. 반갑게 인사했지만, 그러나 못 사 주어 미안했다. 채식주의가 주는 아픔이 그곳에 있었다. 누런 늙은 개 한마리가 그녀를 지켰다. 마트 옆 골목에 셋방을 얻어 사는지 장사를 끝내면 개와 함께 들어갔다.
그 개는 언젠가 텔레비전에 나왔다. 동물농장이라는 프로에 할머니와 개가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할머니를 따라 시장에 나온 개는 할머니의 장사가 끝날 때까지 옆에 엎드려 눈감고 가만히 있었다. 당최 요동이 없는 그 개가 신기했던지 누가 제보를 했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가자!" 하면 발딱 일어나 뒤를 따랐다. 비가 살짝 흩뿌리는 날도 예외가 없었다. 차가운 땅에 배를 깔고 엎드린 개는 몇 시간이고 꿈쩍 않았다.
평생 생선을 팔며 살았던 할머니가 요즘 보이지 않는다. 다리를 절뚝이며 들어갔던 그 골목을 본다. 세상의 시끄러움이 단절된 골목은 햇살이 내려앉아 졸고 있고 페인트칠이 드문드문 벗겨진 몇 개의 닫힌 대문들은 엄중한 얼굴을 하고 있다. 회오리바람이 가랑잎을 공중에까지 떠밀었다가 일순 땅바닥에 팽개쳐버린다. 인생은 무엇일까. 나뭇가지에 푸르게 걸렸다가 가랑잎이 되고 이곳저곳 쓸려 다니다가 저렇게 팽개쳐지는 잎새처럼, 그런 존재가 또한 인생이 아닐까.
마트에서 사람들은 무엇인가 한 아름씩 들고 간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마트는 하마의 입을 가졌다고 할까. 하나의 작은 가게가 팔던 것들을 다 비치해 놓으니, 마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전성기가 지나간 시장상인들은 마트를 부러워하며 멍하니 보고 있다. 소비자를 밤까지 맞는 마트는 작은 가게들의 목줄을 죄는데 조금의 멈춤도 없다.
깔끔하게 진열된 것들은 재래시장의 늙수그레한 느낌을 완전히 지우고 생글거리니, 집어가는 손길이 그침이 없을 수밖에. 누구나 편리한 마트를 마다할 이유가 없기에 대세인 마트는 재래시장을 대신해 이제 보편화 되었다. 젊은 사람이 많이 이용하는 편의점은 마트보다 가격이 훨씬 비싼데도 잘 된다. 이것은 그깟 몇 푼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나는 공산품 등은 마트에서 사고 채소는 가게에서 샀다. 그러나 아주 가끔 채소나 과일을 마트에서 살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그들의 눈과 마주칠까 봐 고개를 숙여 걸었고, 시장을 벗어날 때까지 무언가가 목덜미에 달라붙은 느낌이었다.
오래 단골이었던 채소가게를 바꾸었다. 마트에 기운을 뺏긴 시장인데 젊은 부부가 용감하게 마트를 마주 보는 귀퉁이에 채소가게를 열었다. 남편은 채소를 트럭에 싣고 다른 동네에 가서 팔았고 아줌마는 아기를 업고 장사를 했다. 아줌마는 단발머리에 얼굴은 넓었고 작은 눈에 들창코였다. 나는 속으로 돼지코 아줌마'란 별명을 붙여줬다. 비하가 아닌 나만의 ‘애칭’이었다.
채소를 사려고 서 있으면 단골들이 줄을 서는 것을 본다. 그럴 때면 멀찍이 서서 기다린다. 그녀의 손길은 빠르고 내가 부담되는지 눈을 들어 한 번씩 본다. 그 작은 눈에 정이 서려 있다. 전의 가게에서는 늘 무언가 목마름이 있었는데, 이 가게서는 그런 목마름이 전혀 없고 오히려 너무 많이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사양해도 막무가내다. 가게를 차린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단골이 많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줌마의 가게는 물건이 생생하고 덥석덥석 집어주는 인심은 사람을 끌 수밖에 없다. 배추를 살 때도 새들한 것을 사야 했던 예전단골집의 비애감 따위는 아예 없었다. 돼지코 아줌마의 가지는 날로 번창해 마트도 혀를 내둘렀다. 이웃 할머니 두 분은 채소를 다듬어주는 단골이 된 지 오래다. 땅에다 신문을 깔고 막걸리고 부추전을 먹는 그들을 볼 때가 있다. 할머니들의 헐렁한 시간은 붙임성 좋은 채소가게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알까, 가슴을 데우는 장터의정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어쩌다 보는 채소가게 아저씨의 볼은 춥지 않은데도 빨간 사과 같았다. 그는 말이 없고 잘 웃었다. 부부가 유순한 것은 사람들의 예민한 감정을 녹인다. 세상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늘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그런데 속이지 않고 억지가 없는 이들 가게에서는 단단히 다잡았던 마음이 무장해제 돼버린다. 설과 추석에는 과일도 잔뜩 가져다팔았다. 일손이 바쁘니 아들도 가게에 나왔다. 입혀있던 아기가 벌써 중학생이 돼 덩치가 크다. 가족은 닮는가, 애도 후덕해 보였다.
마트를 오가며 채소 집을 본다. 여전히 손님이 많다. 채소가게 앞 전봇대에서 까마귀가 울고 사람들을 겁내지 않는 비둘기들은 고추방앗간 앞에서 기어 다닌다.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푸르름이 아득하다. 바람이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나와 상관이 없으면 평화로운 세상이다. 시장에 풍문이 나돌았다. 얼굴이 빨간 채소가게 아저씨가 아프다고.
말을 섞지 않고 무언가를 사 오기만 했던 채소가게. 평소 얼굴이 너무 빨개 은근히 걱정됐던 그 아저씨가 정말로 병에 걸렸다. 암癌,현대인에게 너무나 흔한 병, 그것은 소리 없이 아저씨에게 스며들었다. 아줌마의 속을 태우며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흘러갔다.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고 통곡을 품은 얼굴은 채소마저 기운을 잃었다. 내 기도가 더해져 그가 낫기를 진정 빌었다.
가랑잎이 나뒹구는 어느 날, 아줌마 혼자서 파를 까고 있었다. 바람이 아줌마의 머리칼을 날렸고, 쓸쓸한 햇살한줌이 그의 얼굴에 드리웠다. 그녀의 까만 머리칼 속에 아주 작은 횐리본, 바람이 아프게 불었다. 검은 바다에 하얀 민들레가 둥둥 떠다녔다. 저런 가슴에 하늘을 보았다. 너무나 파란 하늘에 구름 한두 뭉치가 지나고 있었다. 그가 건넨 것을 들고 집으로 오는 데 자꾸만 콧물이 나왔다.
무심한 세월이 흘렀다. 무슨 일일까. 돼지코 아줌마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 이십여 년이 다 되도록 처음이었다. 어쩐지 마음이 안 좋았다. 빗물받이 천막이 바람에 찌그러진 채 몇 달이 흘러갔다. 새들도 그곳의 기운을 아는지 똥을 싸댔고 초라한 가게는 그야말로 퇴락했다. 그것을 보자 웅크렸던 불안감이 확 밀려왔다. 내 단골집 아줌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나는 여전히 채소나 과일은 젊은 사람이 하는 작은 가게를 고집하지만, 이젠 단골을 만들지 않는다. 돼지코 아줌마의 부재는 내 마음을 무척이나 상하게 했다. 지금도 그이가 별일 없기를 기원하지만, 깊은 마음 한 곳에서 불안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 불안이 없어지려면 멀쩡한 그의 얼굴을 보아야만 한다. 그러나 감히 묻지 않는다. 작은 희망을 걸어 그렇게 기억하고 싶기에…….
오다가다 적당한 곳에서 필요한 것을 사는 자유,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안 써도 되는 자유, 그것은 늘 상 널려있는 자유였다. 스스로 멍에를 만들어 그들과 얽혀 살아온 지난날, 내 삶은 왜 그랬던 것일까? ‘가벼운 소비’를 못했던 것은 어떤 면에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그동안 애썼던 내 삶이여, 이젠 깃털처럼 가볍게 살아라. 세상의 모든 일은 자연을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을 그저 감사하며 살자. 이 오늘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니까.
권옥숙
2019년 《영호남문학》 등단, 부산영호남문학 이사, 실상문학회, 부산여성수필문협 사무국장
실상문학 작품상, 부산영호남문학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