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첫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 4S의 인증 주행가능 거리는 289㎞. 그것도 추가 옵션인 ‘퍼포먼스 배터리 플러스’를 더해야 가능한 거리다. 그렇지만 포르쉐 코리아는 주행거리에 대한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강원도 고성에서 양양, 평창, 속초 등 약 350㎞거리, 총 5시간의 장거리 시승 코스를 준비했다.
글 이동엽 기자
사진 포르쉐, 이동엽
나는 아직 전기차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이다. 주행가능거리나 충전시간에 관한 평범한 얘기는 아니다. ‘차덕후’의 입장에서 전기차는 사실 너무 재미없다. 물론 처음 전기차를 접했을 때의 그 가속감은 잊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지나면 강렬한 가속감도 무덤덤해진다. 조용하고 쾌적한 차를 타고 있지만 미세한 엔진의 진동, 배기음이 그리워졌다.
타이칸이 등장했을 때도 디자인을 제외하곤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시승회에서 타보니 평범한 전기차와는 느낌이 달랐다. 처음엔 보닛에 얹어놓은 포르쉐 배지 때문인가 싶었지만, 결국 “포르쉐가 전기 포르쉐를 만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포르쉐는 이미 전기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911 GT3R 하이브리드
919 하이브리드
포르쉐는 타이칸 출시 전부터 전기 파워트레인에 대한 개발을 진행해왔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2010년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를 위한 911 GT3R 하이브리드다. 주행 중 엔진 문제로 완주하지 못했지만 포르쉐는 이때부터 전기 파워트레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4년 뒤인 2014년, 르망 24시 내구레이스 출전을 위한 919 하이브리드 프로토타입 모델을 선보였다. 첫 해에는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그 다음 해인 2015년부터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그 이후 포르쉐는 르망 24시에서 철수한다.
한편, 르망 24시에 한창이던 2015년, 포르쉐는 전기 콘셉트카 미션-E를 대중에 공개한다. 외모는 4도어 세단인 파나메라와 비슷해 보였지만 포르쉐는 ‘E-버전’의 911이라며 전기 스포츠카임을 강조했다. 이후 2019년 미션-E의 양산형인 타이칸이 드디어 등장했다.
911과 파나메라 그 사이 어딘가
미션-E의 양산차인 만큼 그 흔적이 많이 보인다. 아무래도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이용한 만큼 디자인의 자유도가 높았다. 엔진이 없어 보닛 라인을 낮게 떨어뜨릴 수 있었고, 이 덕분에 볼록 튀어나온 좌우측 펜더는 919 하이브리드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차체의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965×1,965×1,380㎜. 파나메라(5,050×1,935×1,425㎜)와 비교하면 모두 불과 한 뼘 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미션-E와 마찬가지로 한 눈에 보기엔 허리가 조금 더 긴 911의 느낌이다.
운전석에서 본 콕핏은 참으로 보잘 것 없었다. 전원 버튼과 기어레버, 비상등을 제외하곤 모두 디스플레이를 심어놨기 때문이다. 기어레버는 계기판 우측에 작게 마련해서 더욱 초라해 보였다. 스티어링 휠 왼쪽에 자리한 전원버튼을 누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타이칸 실내의 디스플레이는 모두 5개. 뒷좌석에 자리한 공조 시스템 패널을 제외한 4개의 디스플레이가 켜지면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다.
계기판은 커브드 디스플레이로 운전자를 집중시키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다만, 양쪽 끝의 정보는 스티어링 휠 림에 걸려 잘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대략 5시간에 가까운 주행을 하면서 계기판에 다양한 정보를 띄웠는데, 양 끝의 정보를 보기 위해선 머리를 좌우로 기울여야 했다.
퍼포먼스 배터리 플러스 옵션을 더한 타이칸의 몸무게는 2t(톤)이 넘는다. 그중 배터리 무게가 634㎏으로 30% 이상 차지하는데, 무게 중심을 위해 배터리는 차체 가장 낮은 부분에 자리한다. 때문에 탑승객의 머리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루프를 높이게 되는데, 포르쉐는 타이칸의 넓고 낮은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1열 시트 밑에는 배터리를 얹지 않았다. 덕분에 운전석의 시트포지션과 지붕의 높이를 최대한 낮췄고, 뒷자리 탑승객의 발 공간도 마련할 수 있었다.
타이칸의 세 가지 매력을 살펴보자
시승 전, 일정을 간략하게 정리하는 시간에서 포르쉐는 “이번 시승 행사는 타이칸의 스포츠성을 알리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타이칸의 오너가 되어 장거리 여행을 다니는 컨셉트입니다. 여유롭게 즐겨주세요“라고 강조했다. 솔직히 350㎞가 넘는 주행거리가 부담스러운 게 아닌지 의심했다.
출발지점에서 전원을 켜고 배터리 상황을 먼저 체크했다. 배터리 잔량은 99%. 다만, 내가 알고 갔던 공인 주행가능거리와는 차이가 있었다. 계기판 상에 표시된 남은 주행가능거리는 400㎞ 이상이었다. 타이칸은 드라이브 모드를 돌려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진입해도 410㎞ 이상 달릴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이칸은 스포츠카를 원하는 소비자에게 추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전기차라고 생각했다. 스포츠카는 단순히 출력만을 과시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배기음, 가속감, 변속 느낌 등 세 가지가 운전자를 가장 잘 자극한다고 생각하는데, 타이칸은 이를 전기 파워트레인으로 대체했다.
스타워즈 우주선
타이칸만의 ‘일렉트릭 스포츠 사운드’가 운전하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해줬다. 일렉트릭 스포츠 사운드는 인위적으로 모터의 소리를 증폭해주는 시스템이다. 흔히 전기모터로만 시속 30㎞ 이하의 속도에서 보행자에게 존재를 알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 그러나 포르쉐는 이 증폭 사운드를 통해 전기차의 심심함을 덜어냈다. 흔히들 우주선이 쏜살같이 날아가는 소리라고 표현하는데, 실제로 영화 ‘스타워즈’ 팀과 협업해 만들었다고 한다. 와인딩 코스에서 들어보지 못한 오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엔진’스러운 가속감
낯선 소리와 함께 66.3㎏‧m에 달하는 토크감도 큰 매력 중 하나다. 전기차는 언제든지 모터의 최대토크을 단번에 낼을 수 있는데, 타이칸은 이를 한 번에 뿜지 않는다. 마치 엔진이rpm을 올리듯 힘을 꾸준히 증가시킨다. 덕분에 다른 전기차와 달리 엔진이 갖고 있는 느낌을 유지해 이질감을 낮췄다.
감속할 때도 마찬가지다. 정차할 때의 낭비되는 에너지를 모으기 위한 회생제동은 내연기관 자동차의 엑셀을 뗐을 때 엔진브레이크와 유사한 느낌이 들도록 세팅했다. 엑셀 페달만으로 감속이 가능한 ‘원페달 드라이빙’은 불가능하지만 회생제동으로 얻는 전력은 크게 모자라지 않는다. 대관령 산길을 지나오며 엑셀량을 최대한 줄이고 얕은 브레이크로 회생제동을 적극 활용하니 배터리의 3% 정도를 충전할 수 있었다.
전기차 최초 2단 미션
타이칸의 또 한 가지 매력은 고속도로 주행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전기차 최초로 장착한 2단 미션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전기 모터는 언제든지 최대토크를 낼 수 있는데, 그에 반해 내연기관은 일정 rpm에 도달해야만 최대토크가 터진다. 이를 최대한 맞추기 위한 장비가 변속기다.
전기차는 고속으로 갈수록 전비가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 타이칸은 후륜 모터에 2단 변속기를 짝지어 이를 해결했다. 뿐만 아니라 저속 또는 고속, 언제든지 오른발에 힘을 가하면 재빠르게 가속할 수 있도록 세팅했다. 각 단을 넘나들 때, 약간의 변속충격이 운전자를 더 자극시킨다.
가격은?
타이칸 4S의 기본 가격은 1억4,560만 원부터 시작한다. 물론 ‘옵션의 포르쉐’답게 다양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일렉트릭 스포츠 사운드 역시 옵션인데, 가격은 60만 원으로 생각보다 저렴하다. 퍼포먼스 배터리 플러스 역시 810만 원을 더해야 하는 옵션이다. 배터리를 79.2→93.4㎾h로 늘리고 모터의 출력도 조금 더 높일 수 있다.
그래서 289㎞의 주행거리 괜찮아?
전기차의 주행가능거리 인증 방식은 각 나라의 환경이 다른 만큼 천차만별이다. 퍼포먼스 배터리 플러스 옵션을 더한 타이칸 4S의 경우도 국내 환경부 인증거리는 289㎞인 반면, WLTP(국제 표준 배출가스 시험방식) 기준 463㎞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번 시승회에서 나는 전혀 전비 주행을 하지 않았다. 더우면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산길에 들어서서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창문도 활짝 열고. 와인딩 코스인 만큼 가‧감속도 빈번하게 이뤄졌다. 전기차에겐 악조건인 상황이지만 모든 주행을 마치고 나서도 대략 30㎞ 이상의 잔여 배터리가 남아있었다. 특히, 같은 그룹의 다른 기자는 “배터리를 바닥을 내겠다”라는 생각으로 일부러 과격한 주행을 했지만 결국 별 탈 없이 완주했다.
물론, 널널한 규정으로 공인 주행가능거리보다 실제 주행 거리가 짧은 불상사는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둘 사이의 오차가 적을수록 신뢰도가 높은 수치라고 생각한다. 신뢰도를 높여 소비자가 혼란을 겪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좋아요
① 포르쉐 배지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② 과격한 주행에도 인증 주행가능거리보다 더 긴 주행거리
③ 비율 좋은 4도어 세단
싫어요
① 스티어링 휠 림에 가리는 계기판 모서리
② 직관성 떨어지는 메인 디스플레이 UI
③ 무분별한 디스플레이 남발 (공조장치만을 위한 추가 모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