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위 조사결과 "무리한 철거계획 알고도 묵인"
현행법상 재하도급 묵인시 과태료만 부과 받아
유가족 "현대산업개발 경영자 처벌도 이뤄져야"
[서울=뉴시스]정병혁 기자 =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의 모습. 2021.06.16.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홍세희 기자 = '광주 철거현장 붕괴사고' 조사 결과 원도급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 무리한 철거 계획 등을 알고도 묵인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현대산업개발 경영진에 대한 처벌 수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말 현대산업개발 현장소장 등 9명을 검찰에 송치하고, 14명을 입건해 관련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현대산업개발 대표 등을 비롯한 경영진에 대해서는 불법 재하도급을 구체적으로 지시·공모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과태료 등 행정처분만 내렸다.
사고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현대산업개발 경영진과 관련 공무원에 대한 형사 처벌도 요구하고 있어 향후 경찰 수사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부실공사 묵인"…전형적인 인재(人災)
10일 국토교통부 중앙건축물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에 따르면 광주 재개발 현장에서 발생한 해체공사 붕괴사고는 무리한 철거 방식과 불법 재하도급 등이 낳은 전형적인 인재로 드러났다.
사조위 조사결과 철거 공사는 상부를 먼저 철거하고 하부 작업을 해야 하는데, 먼저 하부를 철거한 후 최상층 철거를 위해 흙을 무리하게 쌓아 올린데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물 내부 바닥 절반을 철거한 후 3층 높이로 과도하게 흙을 쌓아 상부 철거를 진행하던 중, 1층 바닥판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파괴됐다는 것이다.
이후 지하층으로 성토가 급격히 유입되면서 상부층 토사가 건물 전면 방향으로 이동했고, 이에 따른 충격이 구조물 전도붕괴의 직접원인이 된 것으로 조사됐다.
사조위는 특히 불법 하도급으로 인해 공사비가 28만원에서 4만원까지 깎이면서 공사 중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사업 정비 4구역 붕괴 참사 발생 건축물 철거 과정. 올해 5월29일 철거용 굴착기를 올릴 흙더미를 쌓는 모습. (사진=광주경찰청 수사본부 제공) 2021.07.2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조위에 따르면 원도급에서 28만원인 단위면적(3.3㎡)당 공사비는 하도급에서 10만원으로, 재하도급에서 4만원으로 깎였다. 원도급사인 현대산업개발은 한솔건설에 하도급을 맡겼고, 한솔은 백솔건설에 재하도급을 맡겼다.
또 현대산업개발은 불법 하도급 등 일련의 상황에 대해 일정 부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사조위는 판단했다. 이영욱 사조위 위원장(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은 "현대산업개발이 이런 해체 공사 공법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전체 과정을 묵인하고 있었던 것을 여러 가지 관련 정보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불법 재하도급 묵인시 과태료 처분 그쳐
경찰의 중간 수사결과에서도 현대산업개발이 불법 재하도급을 인지하고도 묵인한 혐의가 드러났지만 재하도급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거나 공모한 증거가 없어 과태료 등 행정처분 조치만 받았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원도급자가 불법 재하도급을 지시하거나 공모한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가능하지만 묵인이나 과실의 경우 과태료만 부과 받는다.
지난 2018년 국회에서는 불법 재하도급과 관련해 원도급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논의된 바 있지만 법안 심사 과정에서 형사 처벌 대상이 원도급자가 지시하거나 공모한 경우로 축소된 바 있다.
불법 하도급은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으로 지적돼 왔다. 불법 하도급은 건설 현장의 안전과도 직결돼 있지만 현행법상으로는 원도급자에 대한 처벌이 미미한 상황이다.
지난해 중대재해를 발생하게 한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도 제정됐지만 내년 1월27일부터(50인 이상 사업장) 시행되면서 법망을 빗겨갔다.
현대산업개발 경영진이 건설산업기본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형사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유가족에 대한 도의적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 철거건물 붕괴참사 유가족들이 5일 오후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러 광주경찰청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2021.08.05.hyein0342@newsis.com
특히 현대산업개발 측은 사고 발생 직후 불법 재하도급은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권순호 대표는 "철거공사 재하도급에 관해서는 한솔기업과 계약 외에는 재하도급을 준 적이 없다. 법에 위배가 되기도 하고 재하도급 건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권 대표는 지난 6월18일 국회 국토위 현안보고에서도 "재하도급은 몰랐다"고 답했고, 이를 두고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건설현장의 재하도급, 재재하도급, 다단계 하도급 적폐를 세상이 다 아는데, 30년 건설업에서 일하면서 몰랐다라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당초 '재하도급은 없다'고 강조했던 현대산업개발이 부실 공사 정황을 알고도 묵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유족들은 현대산업개발 경영진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유족들은 지난 5일 경찰에 희생자 9명 유족 명의의 진정서를 제출하며 "원청 현대산업개발과 재개발 구역 담당 관련 공무원 처벌을 원하는 취지에서 모든 유족들의 의견을 모아 진정서를 낸다"며 "현대산업개발 경영자와 감리를 부정한 방법으로 선정하고 민원을 방치한 공무원에 대한 처벌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토부는 이날 오전 서울청사에서 '해체공사 안전강화방안 및 불법하도급 대책'을 발표한다.
국토부는 사조위에서 규명된 조사 결과와 재방방지대책 태스크포스(TF)에서 논의한 사항을 토대로 해체공사 안전강화 방안을 마련했다.
사조위는 재발방지 방안으로 ▲해체계획서의 수준 제고 ▲설계자·시공자·감리자·허가권자의 책임 강화 ▲불법 하도급 근절 및 벌칙규정 강화 등을 제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ong19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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