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차 대마도 1박2일
가. 일시 : 2018.10.24~25(수.목)03:20
나. 일정 : 1. 24일 조식07:10(부산 자갈치시장 생선구이)-09:10 부산항 출항(오션플라워)-12:00이즈하라 입항 하선-
중식(도시락=아라아케산(유명산)등산-14:17~16:50(2시간30분 /2.9Km왕복)
(일부 덕혜옹주 봉축비,팔번굴신사등 관광)-온천욕-석식(니지 민박 =바베큐 ,회)
2. 25일 조식 (전복죽)-거북섬 일출-만관교-와타즈미신사 (히코호호신 김수로왕 후손)-슈시산림공원 슈시단풍길
면세점- 미우다해수욕장=천학(중식 초밥 우동)-한국전망대-조선역관위령비-하타카츠항출항(15:40)-
부산입국16:50-석식 청도휴게소(김치찌게)-21:30대전도착
다. 산행코스 : 면세점앞-유명산입구-오름길-석성(청수산성)-조망처-숲길 내림길-이치노마루-국유림안내판-삼나무길
성상산갈림길-오름길-돌탑-평지길-오름길-잔듸평원-정상(넓은분지)-해발558m
라. 요약
연중행사 수요산악회 모처럼 해외로 1박2일 여행을 갖게 되었다. 가까운 대마도 한국사람이 년27만명 다녀간다고 하며
일본인들이 반갑지는 않다고 한다. 조용한 어촌 3만여명이 거주하는 스시마시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산지로 이뤄져
농업은 발전하지 못하고 어업 또한 본국으로 판로가 열려 대마도는 상가가 없는 편이다. 부산 낚시꾼들의 입소문으로
산악회에서 싼 비용으로 산행을 시작 10년이 넘었다. 직선거리 58Km한국이 보이고 부산에서 대마도가 보인다고 한다.
대마도는 우리와 깊은 역사를 갖고 있다 유적지도 마찬가지 몽고가 해군이 없어 고려때 고려군과 연합해 상륙했으나
태풍으로 본토를 공격 하지 못하고 퇴선하기도 하고 최익현의 분신 덕혜옹주의 강제결혼 임진왜란의 전초기지 그리고
왜구의 침입기지, 고려말에서 조선초기까지많은 노략질 결국 세종때 이종무장군에의해 대마도정벌 조공을 받고
자유무역 허가, 통신사가 거쳐가는곳, 예전에는 신라 영토설도 있으나 증명할 길 없으며 와타나미 신사는 김수로왕의
후손 히코호호를 숭상하는 신사 척박한 대마도 그들은 살길을 해적으로 삼았다. 울릉도에도 일본인이 거주한 기록도
있어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이유다.
대마도를 거쳐 백제 문화가 전래되고 그 흔적은 지금도 곳곳에 있다. 대마도는 불모지라 본국에서 도망치거나 정치에
밀려 숨어든 곳이라고 역사는 말하고 있다.
일본 역사를 더듬으면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귀족은 백제인 성씨를 가진 백제인이 일본의 역사를
쓰고 의자왕도 일본에서 성장했으며 무령왕의 목관도 일본 금송이고 칠전도도 백제에서 하사한 칼이다.
일본 학생이 부여 공주로 수학여행 오는것도 뿌리를 찾는것이고 백제 왕국시절 일본인이 벼슬을하였다는 기록도 있으며
그 무덤이 일본식으로 되어 일본에서 임라설을 들고 나오는것이라 여겨진다고 한다.
대마도여행 출발 24일 아침 식사를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하고 오션플라워 쾌속선에 출국절차를 마치고 09:10 출항
11:40 하도 이츠하라항에 하선후 바로 중식 일본식 도시락을 취식하고 산행 희망회원은 아리아케산으로 나머지 인원은
주위에 관광지 팔번궁신사 덕혜옹주비 대마역사민속관을 관람하고 산행후 다시 합류 온천욕으로 땀을 씻는다.
음식은 깔끔하고 소량으로 간결하고 모양도 예쁘다. 온천은 별도의 수건도 없었으며 개인이 휴대해야 했다
우리와 목욕 문화가 다른점이 보였으나 온도는 적당하고 탕내는 깨끗해 보였다. 온전욕 후 니지 민박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식사 바베큐 헌데 우리와는 다른 음식 문화다 소고기 돼지고기 그리고 버섯 야채를 구이판에 구워서 먹는 형식이다.
맛은 좋았고 더불어 생선회 부드러웠지만 한국의 회맛과는 차별화가 되었다.
잠자리는 일본 특유의 다다미방 해변가라 전기요를 깔았고 방은 여러개인데 화장실이 1개, 어이가 없고
변기 사용법도 다소 생소하고 소변은 밖에서 바닷가에 보면 된다고 한다 조용한 바닷가 합판으로 만들어진 민박 3~5인실
국립공원이라 건축도 마음대로 못한다고 한다 바닥은 따뜻했으나 윗풍으로 추위를 느끼게 하였다.
민박 주인은 동경 가이드로 근무하다 이곳이 좋아서 일본인과 결혼하여 18년이 되었다고 한다 또래의 손님이 와서 반갑다고
한다. 원래 집은 서울이라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경관이 매우 좋았다. 섬 사이에서 솟아 오르는 일출 장관이다.
민박은 허름했고 불편했지만 경관은 매우 흡족하였다.
아침은 전복 죽 전복 크기도 매우커서 신기할 정도였다. 식사를 마치고 어제 밤에 오던 길을 다시 큰 길까지 오른다.
주인장이 작은차에 배낭을 운반해 주어서 고맙고 우리가 떠날 때까지 남았다 손을 흔들어주는 다정다감함을 느끼게 했다.
민박집 앞 바다 그 풍경은 어디서도 보기힘든 장소라고 생각하며 니지 민박을 떠나 인공으로 섬을 갈라놓은 운하
다리(만관교)를 관람하는데 청일전쟁 노일전쟁 이곳이 요새가 되어 일본이 큰 승리를 갖게된 계기도 되었다고 한다
가이드가 일본 대학을 나와 학교 국어선생을 했다는 경력으로 일본 역사 소개를 세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의 역사를 바로 보지않고 침략에 견주어 보기에 달갑지가 않았다. 다리를 건너 와타즈미신사 바다가 열리는 문은
밀물일때 바다물에 잠기고 썰물일때 육지가 되는 신사 이 신사는 김수로왕의 후손 히코호호를 모신 신사라고 한다.
신사 옆 소나무 용이 바다를 향하는 모형이다. 일본은 신사가 곳곳에 있으며 우리 불교문화와 비슷하게 비교가 된다.
화장실은 깨끗하게 청소가 잘 되어 있고 도로는 좁고 굴곡이 많아 사고 위험성을 염려하지만 대부분 소형과 경차가
많아 도로폭과 알맞는 구조다.
좌측에 운전자가 있고 좌측길로 운행이 되어 다소 헛갈리는 교통 문화다 길거리는 깨끗하고 담배꽁초하나
보이지 않는데 민박집에서 나올때 도로 옆에 쓰레기 버리면 벌금 물리겠다는 안내판이 있어 의아한점을 느끼게 하였다.
슈시단풍길은 아직 단풍이 없어 삼나무가 쭉쭉 뻗은길로 산책겸 계곡을 끼고 걸어 본다. 삼나무가 많은것은 건축을하기위해
식재한다고 한다. 나무가 가벼워 지진이 나도 무너져도 생명을 어느정도 보장해 준다고 하며 1층은 콘크리트지만 2층은
목조 건물이라고 한다 산 기슭은 대부분 삼나무 편백나무가 일색으로 경관이 매우 수려했다.
미우다해수욕장 인근에는 집도 없고 상가도 없으며 관리소만 덩그라니 그리고 말을 탈수 있는 마부가 있고 작은
차에 아이스크림 커피를 판매하는 것이 전부 고운 모래톱 넘어 작은 바위 해수욕장의 경관이 되는 1등공신이다.
이곳에서 기념사진 그리고 자리를 옮겨 한국 전망대 부산이 보인다고 하는데 야경때는 보인다고 한다. 가까우면서도
먼 일본 역관들이 현해탄을 건너오다 불의의 사고로 그들의 넑을 한국이 보이는 이곳에 설치했다고 하며 그들의
이름과 위령비가 서있고 전망대도 있다.
면세점을 끝으로 1박2일을 마치고 15:40분 배로 하타카츠항을 떠난다. 비록 1박2일 짧은 여정이지만 나름대로 역사
공부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몇년전 곤게산을 등정해기 위해 대마도를 방문한적이 있지만 수요와 함께
민박에서 숙식을하고 불편한 시설이지만 좋은경관을 보여주었고 계획에 있던 예보시다케전망대(공사중)도노자키
전망대(미우다해수욕장 우측편) 을 보지못하고 예정에 없던 온천욕과 만관교 관람이 추가 되었다. 부산에 16:50경
하선 청도휴게소에서 김치찌게백반으로 작은 식사량 일본 식단을 생각하며 맛있게 한국식 식사 21:30대전에 도착
모든 일정을 마쳤다.
준비에 여념이 없는 회장,총무 부회장님 수고가 많았고 무사하게 귀국 좋은 추억을 남기게 해서 감사 드립니다.
수요산악회 회원님 수고 많았습니다. 어설픈 문장 아량으로 보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