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소리가 정겨운 정해년 볕 따가운 복날도 갓 지난 칠월의 마지막 주말. 볕살은 시들줄 모르고 녹음 짙은 벼잎사귀마다 새살새살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산골 계곡마다 폭염을 피해 찾아드는 휴가객들로 강산은 어디나 인파로 넘쳐나고 있다. 우린 잠시 바쁜 일터를 잊고 여름휴가를 떠난다. 오후 한 시반에 곡성 군청에서 출발한 버스가 도림사 입구를 지나고 괴티재를 넘어 삼기 입구에서 막 석곡 방면으로 틀면 논마다 신록의 벼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고고춤이라도 추듯 저마다 손을 흔든다. 아스팔트가 포장되긴 했어도 굽이굽이 돌아가다보면 차멀미로 속이 울렁거린다. 울렁거리는 속을 찻창 밖 경치로 달래다 보면 무성한 잡초와 덩굴들이 시멘트 바닥을 덮고 있는 헌다리와 나란히 놓여있는 "목사동1교"를 만나게 된다. 헌것과 새것이 만나는 순간 사람들은 벌어진 세월의 틈을 더듬게 된다. 목사동천이 유유히 흘러 보성강으로 이어지며 평야를 만드니 토지는 비옥하고 물도 풍부하여 예로부터 농사짓기에 좋은 땅으로 여겼던 목사동. 본래 목사동(木寺洞)에는 목(木)을 그대로 파자해서 열여덟(十八)개의 절(寺)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절터였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곤 한다. 인근 지역인 석곡면엔 고려시대까지 읍치가 있었고 곡성의 대표 문화유산인 태안사가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또한 구룡리는 고려개국공신인 신숭겸장군의 태생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가 찾아가는 신전(薪田)마을은 예로부터 섶이 많아 '섶밭몰'이라 하고 마을 주변에는 숲가마터가 있었다고 전한다. 형제봉이라 불리는 야산이 있는데 이는 필(筆)봉이라고도 하며 신전리(신전2리)와 고제마을(신전1리)에서만 붓 모양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마을에 문필가가 배출된다고 구전하고 있다. 아무리 조그마한 마을이더라도 그 곳에 깃든 역사와 숨결은 그 곳에 나서 자라보지 않으면 모르리. 여름 휴가의 성수기를 맞아 들로 산으로 또는 바다로 내닫지만 그 지역민들의 삶을 보지 않고 그 마을을 안다고 큰소리 치는 이 많은 세상. 남의 고향 경치 좋은 계곡 어느 언저리에 발 담그고 미안함도 모른체 흩어진 쓰레기도 주울줄 모르고 "난 물좋고 산좋은 어드메 시골을 다녀왔네" 하고 도시사람 누군가는 동료들 앞에서 너스레도 떨겠지.
산골 마을의 좁은 길. 부채를 부치는 노인들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정겨운 정자와 솟대를 지나고 좀더 달리면 왼편엔 배영농조합창고가 야산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제 오른쪽으로 눈길 한번 주면 바로 논둑 가운데 오래 된 느티나무 한 그루 턱 하니 버티고 서 있는 마을이 눈에 들어 온다. 논둑길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달려온 대형버스가 마을 입구인 섶밭몰정자 앞에 선다. 무겁던 짐 하나씩 부리듯 손님들을 내려놓고 또 왔던 길을 버스는 먼지 날리며 내달린다. 앞에 보이는 산능선은 언제나 하늘과 인간 세상의 경계 지점을 쪽빛 하나로 선을 가른다. 달력 한 장 넘기면 보았음직한 산수를 화선지에 그대로 옮긴 한국화 한 폭이 펼쳐지는듯하다. 게으른 황소의 엉덩이에 쇠파리가 날아 다닐적마다 한 번씩 긴꼬리로 제 엉덩이를 후려치지만 여전히 쇠파리는 잘도 피해다닌다. 송아지는 송아지대로 어미소와 한가롭게 낯선 방문객들을 맞는다. 한 학생이 쇠똥 냄새 난다고 코를 움켜 잡는다. 농사짓는 시골에서 이십 년 넘게 자란 어른들은 그 냄새가 바로 고향의 정겨움이자 생명의 향내인걸 다 안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쇠똥냄새가 바람에 실려 콧잔등을 후빌때면 고향의 그리움에 울컥 했던 적 있잖은가.
인원 점검 밎 행사 일정이 시작 되었음을 알리는 메가폰 소리가 신전리에 울려 퍼진다. 초.중.고.대학생. 일반인까지 모두 이름표를 받아 들고 담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대열를 이룬다. 이른바 신전마을 생태체험인게다.
(각 담임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대열을 이뤄 신전마을생태체험을 하고 있다.)
신전마을 동네 한 바퀴 순례길은 기대가 크다. 곡성에 시집 와서 산 지 십 년이 넘었건만 동네를 마을해설사와 함께 도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제집과 일터만 주기적으로 왔다갔다했지 동네 구석구석을 다무락('담벼락' 또는 '돌담'의 곡성방언)길따라 걸어 본 게 얼마만인가. 소싯적 친구집에 마실 갔던 일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람 머리만한 돌담을 켜켜이 쌓고 선과 선이 맞닿은 구멍마다 햇살이 드문드문 내비친다. 쌓은 세월의 연륜만큼 담쟁이 덩굴이 재잘재잘거리고 어쩌다 누런 호박이나 한덩이 달려 있으면 그게 그렇게 탐스러울 수가 없다. 하늘나리(하늘수박은 전라도 방언, 하늘래기는 제주도 방언)세 덩이가 한창 물 좋은 알을 키우며 가는 줄기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담벼락에 얼기설기 엮인 담쟁이덩굴과 눈부신 햇살, 그리고 탐스러운 하늘나리는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여름 시골 풍경화의 주인공인 게다. 저것들이 누렇게 익으면 지나가던 노파의 손에 전해져 몸져누운 그 노파 남편의 약탕으로 환생될지도 모르지. 자연은 늘 인간에겐 너그럽다.
(돌담에 얼기설기 담쟁이덩굴 새로 하늘나리가 익어 간다.)
마을엔 담쟁이넝쿨뿐아니라 태양보다 더 뻘겋게 익은 고추, 싱그러운 깻잎, 송송 솟은 털 푹신한 콩잎, 연두빛 갑옷 속에 숨겨진 보물 한 덩이 옥수수, 펑퍼짐한 여인네의 엉덩이를 닮은 비닐하우스의 수박까지도 서로의 빛깔들을 자랑하듯 총천연색의 빛깔 잔치를 벌인다. 마을청년이 직접 마을의 곳곳을 해설을 해주니 눈에 띄는 것 하나 하나가 그렇게도 곰살맞고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다. 마을 길을 걷다 보니 물 건너 고향 생각이 문득 난다. 화산섬인 제주도 마을 역시 돌담으로 집과 집의 경계를 이룬다. 낮은 돌담이 집집마다 금을 긋고 살며 조용한 마을에 아기 울음 소리라도 담을 타고 넘나드는 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인정많은 시골 세상. 이웃 아낙이 돌담 사이로 노릇노릇 잘 익은 부추전 담은 채반을 건네주던 인심 좋은 마을. 내가 나고 자란 고향 마을 풍경과 흡사하다. 뿐이랴 배밭에 주렁주렁 주황색봉지가 눈에 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귤밭의 황금귤이요 칠십 년대 정겨운 제주도 고향 마을 풍경을 연출한다. 해설사인 마을 청년이 안내한 배밭에 들어서니 이상야릇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역겹지는 않지만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밭에 거름 주던 기억이 절로 난다. 산야초를 채취하여 생산한 퇴비를 사용하기때문에 거름냄새가 많이 나는 것이라 한다. 이곳 신전마을은 산간지역으로서 과수재배에 유리한 지형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아침저녁 기온차가 크기때문에 과실의 당도가 높아 배맛이 더욱 좋고, 뜨거운 여름햇살을 받는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커진다고 하며 빠르면 팔월 중순에 수확하는 배도 있다고 한다. 곡성군의 배 주산지인 목사동은 해외 수출배 재배 단지로 유명하다. 지난 2000년 미국배 수출단지로 지정된 이래 군에서 6억여원을 투자해서 선과장및 저온저장고, 집하장 등 시설이 갖춰지기도 했다. 해마다 배 수출실적이 증가되고 있고 전체 농가의 40%가 넘는 농가가 배를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곡성에서 재배되고 있는 배의 품종은 대부분 "신고"로서 상큼하고 아삭한 맛이 일품으로 전량 미국 및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곡성 배는 GAP 우수 농산물 평가심사를 거쳐 인정을 받았다고 국립 농산물품질관리원 곡성출장소 소장인 장택준씨는 말한다. 농림부가 인증한 GAP란 농산물의 생산단계부터 수확 후 포장단계까지 토양, 수질 등의 농업환경 및 농산물에 잔류할 수 있는 농약, 중금속 또는 유해물질 등의 위해요소를 관리해 소비자가 알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햇살만큼이나 열띤 마을청년의 해설은 고향사랑 그차제였다. 배밭 담가에 파란 망이 높게 울타리 쳐져 있는 것은 바람을 막기 위한 거라고 한다. 수확기에 거의 접어든 배가 한 번의 거센 태풍으로 우후죽순처럼 떨어져버리는 날엔 농민들은 얼마나 가슴 아플까. 애써 가꾼 곡식와 과일은 농민의 땀으로 영근 생명의 젖과 꿀인게다. 자연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때론 농심을 울리기도 한다. 자연의 거센 힘에 미리 대비하는 농민들. 바로 높다란 파란 망은 바람을 막아주는 바람막이 역할을 톡톡히 해낼것이다.
마을에서 가장 많은 면적의 배농사를 짓고 있다는 농가(정일균씨)를 방문하기도 했다. 경기가 좋을 때는 1억원의 수입을 벌어들인다고 했다. 대문 앞에 놓여 있는 크고 동그란 플라스틱 통인 거름제조기를 비롯해 운반기계, 저장창고, 포장상자 등 배를 수확하기가 무섭게 상품으로서 출하되기까지의 전과정을 한 곳에서 볼 수 있으리라. 대문 앞 세 평 남짓 공간이 거름을 발효시켜 놓고 거르는 곳으로 친환경공간인 셈이다. 이 마을에선 거름냄새가 역겹지가 않다. 마을에 마지막 남아 있는 재래식 화장실. 녹슨 양철지붕으로 덮혀 있는 모습이 오히려 선진 문물에 한발짝 다가가 사라져 가는 옛 농사 문화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
(배밭 견학)
배밭의 창고엔 늘 개짓는소리가 있게 마련이다. 애써 가꿔놓은 배밭을 망치기 일쑤인 멧돼지를 쫓기위해서라고 한다. 배종류마다 봉지 색깔도 달리하고, 철근과 철사로 아치형 터널을 만들어 수확에 편리함을 꾀하기도 한다고 했다. 튼실한 배나무 아래 질경이들이 방석처럼 무성하다. 논두렁 밭두렁마다 사람들이 숱하게 밟고 다니지만 '끈질기게 살아 남는다'하여 그 이름도 질긴 '질경이'. 질경이는 가래를 삭이고 오줌을 잘 나오게 하는 등 약효가 뛰어나 씨앗이 익을 즈음엔 약초채집하러 다니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한다. 배밭길을 걸어나오는 개천가에 예로부터 산모가 그 즙을 달여 먹으면 이롭다는 뜻에서 이름이 생겨난 익모초 하나 더운 햇살을 받으며 서 있다. 둘러보면 다 산이요 들이지만 동네 길가 밭둑 마다 무성하게 나고 자란 잡초들 하나 버릴것 없이 요긴하게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우린 요즘 친환경이란 말에 사뭇 반가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렁이농법으로 키우는 저 신록의 벼들. 볏잎들 사이마다 핑크빛 우렁이알이 붙어 그것이 자라서 잎사귀를 갉아먹는 해충을 잡아주고 저도 살만큼 사니 이는 동식물이 한데 어우러져 잘 사는 바로 '친환경농법'이 아닌가. 사람사는 세상도 마찬가지. 도농(都農)간의 벌어진 격차를 해소하고 새롭게 상생(相生)의 길을 찾아나서기도 한다.
내가 흐르는 배밭을 지나 논과 다무락길을 사이에 두고 휘감아 돌면 바로 자줏빛 맨드라미가 흐드러지게 웃고 있다. 그 옆에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대문으로 들어서니 바로 희구당으로 통한다. 구릿빛으로 검게 그을린 모습이 영락없이 소박하고 부지런한 농부며 우리나라 어느 시골이나 있음직한 전형적인 이웃아저씨 얼굴을 한 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든 사람은 누구할것 없이 도시로 몰려드는 세상에 일찌기 고향 터전을 지키기 위해 책보따리 풀고 들어앉아 조상님의 가업을 이어받으며 느리게 느리게 살아가는 이 있으니 그가 바로 <돌각담>의 저자 이재백(69세)씨이다. 서라벌예대에서 문예창작을 수학하고 군대 생활 몇 해를 빼놓고는 줄곧 문농일치를 생활화한 순수한 향토작가이다. 김주영, 한승원, 이근배, 유현종, 천승세, 이이화 등 문학을 논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들었음직한 우리나라 현 중견작가들과 동기생으로 또는 선후배로 끊임없이 교류를 해오면서 주경야독의 글선비의 삶을 즐기며 살고 계시는 분. 40여 년 동안 친분관계를 맺어온소설가 황원갑씨는 이재백씨의 첫 창작집출간을 축하하는 글에서 멋과 슬기와 여유를 잃지 않는 풍류정신을 부러워한다고 고백했다.
해마다 섬진강여름문학학교를 열었지만 이번에는 문학단체와 자연부락 그리고 기업이 삼위일체가 되어서 작가의 마을과 주택을 중심으로 개최된 것으로 역사의 새로운 장을 마련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오후 내내 입교식과 마을 소개 및 환영사가 이어진다. 시인이자 광주.전남 민족작가회의 사무처장인 설정환씨의 진행으로 행사가 시작된다. 본채는 물론 희구당인 사랑채와 마당, 텃밭, 너럭바위, 돌탑 구석구석까지 인파로 북적거린다. 악수를 나누며 반가운 인사가 메아리 치고 웃음꽃이 만발하다. "훌륭한 작가는 자연환경이 보존된 농촌에서 생활해보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다."고 소설가 이명한씨는 미리 못을 박는다. 그렇다.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니 문득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찬미시 한 편 써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 않는 이 있으랴. 글은 역시 자연을 벗하고서야 그 빛을 발하리라.
(농촌 사랑 1촌 1사 1단체 자매결연식)
곡성에서 천혜의 자연 경관인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듯 도시민과 농민이 함께 하고, 특히 신전리(이장 박한주)와 KT광주네트워크서비스센터(지사장 유현)와 광주.전남민족작가회의(회장 박혜강)의 '농촌사랑1촌(村)1사(社) 1단체(團體) 자매결연식'이 이어진다. 농촌사랑운동은 2003년 12월 우리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자 경제 5단체장과 도시민 그리고, 농업인들이 농촌 사랑 선포식을 가진 이래 전국의 곳곳에서 그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1사1촌운동"으로 즉, 기업과 농촌이 자매결연 행사를 맺게 된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신전마을은 좋은 자연 환경과 더불어 인심 좋은 선비 마을로 문향이 넘치는 마을이다. 농수산부지정 "친환경 배 재배 마을"로서 배뿐만아니라 깻잎, 고추 등 특산품과 유기농법이 정착화되어 고품질의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농촌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긴 매한가지로 인구의 도시 집중 현상으로 이농 인구가 늘어나고 도농간의 소득격차가 심화되고 외국 농산물 개방으로 더욱더 힘든 게 현실이다. 농촌이 우리의 뿌리로서 도시와 농촌의 균형발전을 위해 KT가 정보통신분야의 선도기업으로서 농번기 일손돕기와 환경보호 활동 농특산물 구매 추진 등을 활발히 전개한다면 서로 좋은 인연으로 발전하고 도`농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됨직도 하다. 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KT직원들이 더운 날씨에 구슬땀을 흘리며 연두빛 조끼를 입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방진료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출향 시인인 임보선생의 강연이 희구당에 모인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임보 선생은 "궁벽한 곳 목사동이 이렇게 많은 문학 향기를 풍길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하고 운을 떼기 시작한다. 희구당주인 이재백 선생의 조부님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을 문학의 정신이 흐르는 영기가 흐르는 곳으로 표현한다. 이 행사를 계기로 영감을 받아서 문재들이 많이 나올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도 했다. 석곡출신으로 주암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전쟁이 훑고 간 상처로 모두가 힘들었던 그 시절 한 학년에 60명안팎의 학생들이 초라한 교사에서의 문학의 꿈이 영글었다고 회상한다. 전공과목이 국어지만 체육과목을 맡고계시던 선생님으로부터 문학수업을 받으며 꿈을 키웠다고 한다. 주암중 2회 졸업생으로 이재백선생과 동기동창이던 시절 바로 이 사랑방인 희구당에 찾아와 얘기도 나누고 잠도 같이 자며 영글던 문학의 추억을 되새긴다. 당시 한학을 하시면서 먹의 향기 속에 젖어 살았었던 분으로 기억되고 있는 이재백 선생의 할아버지의 정기가 결국 손자에게 이어진것이라고 한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의 <누실명(陋室銘)>을 소개하기도 한다.
산불재고 유선칙명(山不在高 有仙則名)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있으면 이름난 산이요. 수불재심 유용칙령(水不在深 有龍則靈)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있으면 신령한 물이라지 사시누실 유오덕형(斯是陋室 惟吾德馨) 이곳은 비록 누추한 집이나 오직 나의 덕으로 향기가 난다네.
장소, 터전 거기에 자리잡고 사는 사람이 훌륭하면 바로 훌륭한 곳이 된다는 뜻으로 이는 어리석은 이가 명당을 찾아 세월을 낭비한다는 것과 같다. 명당은 바로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논리가 여기에 적용되리라. 그러기위해선 당나라 시인 구양수의 삼다 즉 다독 다작 다상량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희구당현판에 비친 학생들의 토막시간을 활용한 백일장)
학생들은 대상으로 토막시간을 활용한 백일장이 한창이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니만큼 글쓰기주제는 구지 먼데서 찾을 필요가 없다. 바로 희구당 잔디밭에 앉아 불타는 칠월 땡볕더위를 맞으며 흙을 삐집고 송송 솟은 잔디면 족하리라. 글감을 찾기위해 헤매지 않아도 된다. 언제 어디서나 앉은 자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 글감을 고를 수 있는 산 문학수업현장인것이다. 5대째 내려온 본채는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껴지기도 했지만 고즈넉한 조상의 숨결을 느끼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직하다. "희구당 (喜懼堂)"이라고 적힌 현판 유리에 학생들의 글쓰는 모습이 짙게 어린다. 마당 잔디밭 가운데 무릎을 세우고 앉아 원고지에 글 쓰는 어린 꿈나무들이 미래의 문학인을 예고한듯 흡족한 미소가 베어나오게 한다. 즐거울 희(喜), 두려워할 구(懼) 기쁨과 두려움이 함께 머무는 집. 집 주인인 이재백 선생은 한 신문에 실린 기사에서 "좋은 일 있으면 까불고 힘든 일 있으면 절망하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지만, 좋은 일 앞에서도 너무 까불지 말고 절망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즐거움을 찾으라는 뜻이지요."라고 풀이해 준다. 본채 건물 뒤란엔 정갈스레 장독대가 놓여 있다. 크고 작은 흙빛 짙푸른 옹기 사이로 숨은 듯 미소 짓는 봉숭아 한 무리. 곱게 피워 간만에 외갓댁 찾은 손주들 오면 조막만한 손톱에 고운 물 들여줄 채비가 다 끝난 듯 자신만만함도 언뜻 내비친다. 시인 설정환씨는 우리의 뿌리가 무엇인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진다. 사회자가 던진 화두, 우리의 뿌리는 과연 무엇인가. 사전적 해답은 식물의 한 부분으로서 땅속으로 뻗어 줄기를 떠받치고 물이나 양분을 빨아올리는 기관인게다. 더 나아가 깊이 박힌 물건의 밑동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 사물의 근본으로 가문의 뿌리라는 말로도 쓴다. 바로 깊숙이 자리잡아 굳어진 것, 그것이 뿌리인 것이다. '뿌리박다'라고 하면 터를 잡아 정착하다는 뜻으로, 타향이지만 뿌리박고 살다보니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할때도 쓰인다. 학생들은 민족이니 농촌이니 하고 뿌리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도 했다. 과연 우리의 뿌리는 우리의 역사속에서 살아숨쉬는 터전인게다. 고향이며 농업국가로서의 오랜 세월을 살아왔던 농촌인게다. 잊혀지고 소외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농촌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듯하다.
이어 "곡성문학, 문화발전을 위한 모색"이란 주제로 작가와 일반인들의 어우러진 대담의 시간이 마련되기도 했다. 광주 전남민족작가회의 회장인 소설가 박혜강선생의 사회로 이루어진 대담의 시간은 곡성출신작가들과 지역민과 학생을 함께 참여시킴으로서 '참여하는 문학토론의 장'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더운 날씨가 제 탓이나 된 것처럼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소설가 희구당선생은 '문학은 바로 더위를 견디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맑은 영혼이 숨쉬는 교육으로서 문학은 역시 인간을 건실한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계속 배우는 자세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게 문학이며, 어린 꿈나무들이 쓸모있는 인간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옥과출신으로 전직 약사이면서 현재 폐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는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한 작품들로 솔직한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소설가 김준웅씨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국민학교 2학년때 6.25를 맞고 어려운 시절에 곡성역 화장실에서 옥과 오는 차비를 잃어버린 기억이 난다며 좀더 어렸을 때 사물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임보 선생은 문학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관심을 갖고 행사를 주최하고 주민을 참여시키고 청소년에게 기회의 장을 마련해야한다고 하기도 했다. 또 많은 예산과 후원이 필요하기때문에 관공서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어야 하며, 기성문학인들이 활발한 동인활동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학부모로서 참여한 진영채(곡성중앙초 교사)씨는 교단에서 감각적이고 쉬운 만화책만 선호하는 학생들의 독서지도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여기에 시인 김준태선생은 본인을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를 노래하는 시인으로 소개하며 만화나 게임이 만연한 시대에 한 시대의 흐름을 누구도 감히 거역할수 없다며 초등학교에 컴퓨터가 없는 독일의 예를 들면서 중독만 아니라면 괜찮다고 했다. 뭐든지 경험을 해봐야 참맛을 알지만 선생을 대면해서 공부하는 것만큼 좋은 공부가 없다고 강조한다.
(소설가 이재백선생이 신전리 마을 주민들과 희구당뜰 나무그늘에 앉아서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낮에 먹은 점심이 다 꺼지고 배가 출출해지기시작할즈음 6시. 더위는 여전히 강렬한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외식업체에서 마련한 부페식 저녁밥을 희구당 나무 그늘아래 옹기종기 둘러앉아 먹는 맛은 또한 일품이다. 마을주민들과 학생들 또는 낯선 방문객들과 이재백선생이 함께 어우러져 둘러앉아 담소를 하며 나누는 저녁 식사 시간은 다시 못 올 행복으로 넘쳐 흐른다. 마을 주민 한 분이 이선생의 조부님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신다. 지금은 서재로 쓰는 사랑채 근처에 조그마한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에 노니는 물고기를 바라보고 서계신 조부님의 모습이 눈에 어린다고 했다. 먹물을 묻혀가며 시 한 수 읊다 바라보셨을 그 연못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자리가 식사시간을 더욱 화기애애하게 만든다. 식사를 마치고 한가롭게 앉은 자리에서 임보선생은 팬을 위해 기꺼이 사인을 해준다.
(올해 낸 시집<장닭설법>과 팬사인을 하고 있는 시인 임보선생)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동문화 한마당이 펼쳐진다. 흥겨운 우리 가락이 신전마을의 천지신명을 깨우기라도 하듯 북 징 괭과리 장구가 호흡을 맞춰가며 상쇠가 이끄는대로 흥을 돋군다. 굴림 풍물놀이패의 사물놀이가 시작된게다. 이어 KT광주네트워크서비스센터직원이 펼치는 5인조 섹스폰 연주가 이어지니 어깨춤이 절로 난다. 장록수, 꽃바람, 꿈꾸는 백마강 등 유행가를 함께 따라 부르며 즐거움을 만킥하는 동안 흥겨움이 더해진다. 마을주민 안숙희씨의 노래로 잔치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판소리 한마당이 펼쳐질 즈음엔 이미 신전마을의 밤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지 오래다. 춘향가 중 사랑가의 한 대목을 명창 박미정씨의 구성진 가락에 맞춰 감상하니 일품이다. 가만히 올려다 본 저녁 하늘엔 언제 떴는지 호박만한 둥그런 달이 골짝나라 목사동 신전마을 잔치를 흐믓하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도깨비마을 촌장이자 동화작가 김성범씨는직접 작사 작곡한 "서현아 너 오줌쌌니?"를 흥겨운 멜로디에 맞춰 들려주기도 했다. 김선옥 외 실내연주단이 들려주는 풀룻, 바이올린, 첼로의 선율이 까만 밤을 반짝반짝 별들로 수놓기 시작할즈음 춘천에서 막 도착한 소설가 공선옥씨가 언뜻 얼굴을 내민다. 하루 일정도 이미 마무리 되어갈 시간. 희구당 서재도 어둔 방을 밝히는 알전구가 빛을 발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이재백선생의 아내 이행숙(62세)씨가 마련한 수박을 나눠먹으며 반가움과 고마움, 또는 아쉬움을 달랜다.
숙소인 압록 청소년 야영장으로 이동하는 승용차에서 나눈 짤막한 대화가 인상적이다. 바로 소설가 공선옥씨와 살을 맞대고 앉아 엿듣는 작가들의 수다. 잠깐 나누는 대화 속에 공작가의 인생살이가 진솔하게 베어나온다. 간만에 들어 본 고향말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다며 웃음부터 쏟아놓는 그녀의 반응이 역시 이웃집 언니같이 소탈한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작가들은 태안사 근처에 마련된 숙소로 이동하고, 우리들은 남아있는 일정에 참여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낸다. "흙과 불의 만남"이란 타이틀로 도예가와 함께하는 야간도예 가마체험을 했다. 도자기 판위에 자기가 원하는 글과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바른 다음 가마에서 약 1000도 정도의 높은 열로 직접 굽는다. 전통도자기와는 다른 현대 도예로서 라쿠소성을 이용한 도자기조형이라고 한다. 라쿠는 일본어인 라쿠야키(樂燒)의 줄임말로서 유쾌, 쾌적, 기쁨 등을 뜻하는 일본어로 지금은 세계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라쿠기법은 도자기를 약 1000 도 정도로 소성한 후 뜨거운 상태에서 가마 문을 열고 집게로 기물을 꺼낸 후 톱밥이나 낙엽, 왕겨, 신문지 등을 넣어 환원시키거나 물에 넣어 온도를 급강하시킴으로서 여러가지 재미있는 효과를 내는 방법이라 한다. 에머랄드 빛 고운 별이 총총 박힌 밤하늘을 보며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신전리에서의 잔치가 아른하다. 나도 도자기판 위에 한 수 적어본다.
다무락 길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담쟁이 덩굴 인심 좋은 이웃 아낙네 덩굴새로 함박 웃다. 해는 중천 때는 칠월 땡볕 목사동 신전마을 희구당 시끌시끌 잔치 한마당 펼쳐지다.
학생들은 조별로 담임 선생님을 따라 배정된 방에서 자고 학부모는 야영장에서 조금 떨어진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다. 오늘 밤 자고 나면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잠이 오질 않는다. 낮에 이어진 가슴속 감동을 서로 나누기 시작한다. 광주에서 온 한 학부모는 아이 담임선생님이 매번 챙겨주는 글쓰기 과제물을 슬며시 꺼내서 보여준다. 하루 일정을 꼼꼼히 적고 그날그날 생활을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한장 한장의 낱장을 모아 한데 묶으니 책 한 권은 되고도 남음직하다며 보물이라도 되는양 소중히 다루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머니의 마음이리라. 너도나도 논술 붐을 타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의 다급함이 칠월 땡볕마냥 타들어가긴 매 한가지다. 어느새 얘기 꽃을 피우다 그것도 시들 하나둘 눈을 감기 시작한다.
이튿날 아침 6시. 해는 벌써 방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짐을 도로 챙기고 방문을 여니 주인인듯 노인이 아침인사를 건넨다. 마을 이름을 물으니 '두가리'란다. 가정마을이라고도 하는데 공식이름은 인근 외갓집 마을인 두계리와 구별되는 두가리라고 했다. 외양간에 송아지를 밴듯 암소가 천천히 여물을 먹고 있다. 어제 신전마을 초입에서 맡았던 쇠똥 내음이 여기도 풍기는 걸 보니 영락없는 시골인게다. 철대문을 나서니 왼편엔 두어 자 넘을 듯 깊은 계곡이 흐르고 커다란 물레방아가 시원스레 물살을 가르고 있다. 한 컷 누르니 옛시골의 정취가 다시 살아난듯 곡식 찧는 방아소리 들린다. 시골 동네마다 하나 씩 있었음직한 물레방아. 지금은 한낱 퇴물로 그저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장식품의 하나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지만 그 시절 많은 곡식을 찧고찧어 떡도 해먹고 국수도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으며 인정넘치는 풍경을 연출했을터. 세월은 늘 변하고 옛것은 잊혀지고 새것이 그것을 대신하며 마냥 변해가는 세상. 자연 친화을 부르짖고 찾지만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게 아쉽기만 하다.
(두가리마을 개천에 세워진 물레방아)
아침식사을 마치고 바로 학생들은 학생들대로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어른들은 한데 모여앉아 "작가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어젯밤 우연한 만남으로 이미 이웃집 언니같은 친근감이 느껴지는 소설가 공선옥씨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95년 8월 그녀의 고향인 곡성에 있는 한 폐교된 학교 관사에서 잠시 머물던 얘기부터 거슬러간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누에를 키우면서 누렇게 변색된 신문지. 덕지덕지 묻은 누에똥을 털어내며 읽었다는 그의 기억 속의 세상이 흥미롭다. 곡성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때 광주로 이사 간 이래 서울, 여수,전주,순창,춘천까지 전국 곳곳을 이사 다니다 지금은 춘천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시절 우울하고 폐쇄적이며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던 그녀는 당시 자신을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 또는 흔한 말로 '왕따였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내성적인 아이가 글쓰기를 통해 자기 위로를 하며 지낸 시절을 돌이켜본다.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자기 치유의 기능을 수행한다면 그녀의 경우에 그게 딱 맞아떨어진 것일 게다. 작가정신이 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특별한 작가정신은 없다고 한다. '그냥 뛰어든다'고 짧게 답변한다. 글을 쓰다보니 어느날 작가가 되어있더란 것이다. 인식못하는 영아나 유아의 삶에서 그 무의식의 세계가 어쩌면 작가가 되게 만들었을 지 모른다. 기억과 체험을 꼬치빼먹듯 사는 사람들이 바로 작가라고 한다. 그녀에 비추어보면 인간의 결핍과 슬픔이 곧 내면을 키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 아이를 위한 어머니의 삶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또는 한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위한 삶을 강조하기도 했다.
(소설가 공선옥씨의 문학수업)
이어 시인 임보선생의 시 강론이 이어진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한 임보 시인은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래 많은 시집과 시론집을 냈고 현재 충북대 교수로 재직하며 우이시회의 창단맴버로서 우리나라 시단의 중심에 서 있는 분이다. 산문과 구별되는 요소로 시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4가지로 압축하기도 했다. 첫째, 시는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 둘째, 상징구조로서 압축성이 있어야한다. 셋째, 유미성, 즉 아름다움을 노래하거나 추구해야 긴 생명력을 가질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호응할 수 있는 작품, 감동성이 있어야한다고 했다. 자유시로 대변되는 요즘 현대시를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했다. 자유시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 이전에 매 작품마다 새로운 틀을 창조해가는 시가 바로 자유시다. 멋대로 쓰는 것은 결코 자유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다섯번째, 운율성을 당조했다. 시가 산문과 구별되는 운율의 문학임을 강조했다. 소재면에서도 천상적 시각, 수평적 시각, 지상적 시각으로 구별되는 시의 세계는 깊고도 넓다. 미당 서정주의 "화사"를 예를 들어 훌륭한 시는 감정의 상반이 되풀이 되는 구조로서 음악과 리듬 우리의 감정을 감격적으로 움직일때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고 했다. 끝으로 시인은 추천작이 대표작이어선 불행한 것이라고 했다.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시인으로서 전성기가 추천작을 쓸 때의 시기라는 것은 블행한 일이다라며 글공부는 끝이 없다고 강조했다.
(시인 임보 선생의 시창작 강의)
임보선생의 강연이 끝나고 바로 김상섭 사상체질연구소 소장의 열띤 강의가 이어지다. 이제마선생의 사상체질을 더욱 연구 발전시켜 자신만의 연구를 발표하고 그 맥을 잇는 김상섭원장. 청산유수같은 말솜씨가 듣는 이들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사상체질이란 기후와 태어난 시기에 따라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체질에 따라 섭생법을 조절하면 무병장수 할수 있다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살아있는 의학이다. 인간은 누구나 무탈하게 오래살길 원한다. 욕심부리지 않고 소탈하게 사는 지혜부터 배울 일이다.
(사상체질연구소 소장 김상섭씨가 수강생들을 일일이 진맥하며 사상체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밖으로 나오니 섬진강 풍경을 그린 대형걸개 그림이 막 작업을 마쳤는지 채 마르지 못한 물감이 뜨거운 태양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고 있다. "아름다운 섬진강에 함께 살아요" 라는 주제로 화가와 학생들이 함께 만든 공동창작품인게다. 곡성군에 기증한다고 하니 어디에 그 작품이 걸릴지 사뭇 기대된다.
(학생들과 화가가 함께 그린 공동창작 대형걸개그림이 아스팔트 위에서 뜨거운 태양열로 마르고 있다.)
다음 순서는 "천연염색을 통한 색의 만남"의 시간이다. 천연염색은 자연속에서 얻는 갖가지 재료를 가지고 천에 물을 들이는 것으로 자연친화적인 우리 민족의 미적 정서가 그대로 배어있고 더 나아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면에서도 배워봄직하다. 여러가지 재료를 섞어서 각종 색상을 낼수 있으며 같은 재료라도 양과 매염재의 종류, 반복횟수, 천의 재질 등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연출한다. 야영장 주차장에 마련된 염색교육장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티셔츠를 염색하고 있었다. 구슬땀을 흘리며 조막손으로 치잣물을 들인다고 옷을 주무르는 아이들을 보니 마냥 흐믓하다. 둥근 고무 다라에 선인장 열매에 붙어 사는 코치닐이란 벌레로 만든 보라빛 염색액, 치자열매로 만든 샛노란빛 염색액, 황토흙 누런 빛깔의 매력을 한껏 뽐낼수 있는 염색액 등 동물성 식물성 광물성 재료를 이용한 염색체험이다. 일반인들은 스카프를 하나씩 받아들고 쪽물을 들인다고 한다. 큰 통에 든 물이 한 번 팔팔 끓어오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때문에 우선 고픈 배를 달래고 나서 다시 염색작업을 하자고 했다. 맛있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전에 덜마무리된 염색체험은 뙤약볕속에 자연으로부터 온 색의 아름다움에 한껏 매료되는 시간이었다. 바람에 날리는 쪽빛 스카프를 두르고 멋쟁이로 변신한 아줌마의 외출을 상상해본다. 강당에선 소설가 김준웅선생의 강의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행해지기도 했다. "열정을 불사르며 산다는 것"을 주제로 한 김작가의 강의를 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운산신화>, <심씨의 안경>을 통해 자신의 투병생활을 소설로 형상화 시킨 열정이라면 익히 그분의 투병이 이기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 이 누가 있을까마는 작가는 글로써 고향을 애무한다. 문학을 통한 짧은 만남 동안 내내 생각한 건 역시 맑은 영혼 속에 꿈틀거리는 열정 하나. 그것 하나 부여잡고 끊임없이 고단한 길을 걷는 작가들. 삶은 고단하고 외로울지라도 글로써 자신을 달래며 세상을 대변하며 미(美)를 추구하는 작가들이 세인의 눈엔 그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초등학생들의 치잣물을 옷감에 들이고 있다.)
(작가와 일반부 참여자들이 함께 하는 스카프 쪽빛 염색작업)
(시상식 및 출교식)
언젠가 보았던 부부가수"프롤로그"가 열정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강당에 모인 캠프참여자들 사이엔 이미 아쉬움을 뒤로하고 출교식의 엄숙함마저 스며든다. 만났으니 헤어져야 하는 건 세상이치. 그 세상이치를 아무도 거부할수 없고 그저 그게 바로 인생이거니 아쉬움과 그리움은 곧 예술로 재탄생하리라. 곧 백일장 대회 및 염색체험, 도예체험 등 모범 학생들을 시상하는 자리가 마련되고 어디선가 감동과 웃음의 물결속에 우렁찬 축하의 박수소리가 이어진다. 광주전남민족작가회의는 곡성군에 아동기증도서를 전달하고 학생들에겐 문학사제교류증서를 수여하기도 했다. 1박2일 동안의 짧은 만남 속에 맺어진 인연들. 문학의 늪을 헤엄쳐나온 느낌이랄까. 많은 걸 얻고 가지만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한편엔 소중한 인연들과 헤어져야만 한다는 아쉬움과 작가들과의 짧은 만남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렇기에 열정은 불꽃 피우듯 훨훨 하늘로 치솟고 여름 볕살마냥 뜨겁다. 저 많은 불타는 영혼 속에 길이 남을 문향의 꽃을 피워보리라.
첫댓글 정성이 가득 담긴, 좋은 글 여기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정성껏 쓴 글 잘 읽었습니다. 이삼교
아~ 이 글이 두모님 글이였군요. ^^ 반갑습니다.
귀한 글 올려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에 많은 칭찬과 격려를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분발하여 열심히 글공부를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