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의 일생의 시작 과정을 조망하여 보는 일은 인간의 정신이 지닌 지고함의 극단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서늘한 즐거움의 본보기로 다가온다. 시는 그것에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성의 차이에 의해 여러 가지로 정의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일차적으로 시인의 사유에 의해 빚어진 인간 정신의 응축된 표현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가 지닌 형식적 특징이나 음율적 즐거움을 논의하는 것도 궁극은 그것이 인간 정신이 지닌 본질에 얼마나 가까이 가 있으며, 그것을 높고 깊게 자극하는가를 가늠하는 독창적 작업이라 하겠다.
우리는 여기서 임강빈 시인의 시작 과정 전체를 조망하면서 바로 그러한 시인의 정신적 면모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그는 1956년 《현대문학》으로 데뷔한 이래 여섯 권의 시집을 엮었다. 이것이 이순의 나이를 살아가는 시인에게 결코 많은 시집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그동안 거의 고른 간격으로 시집을 상재하였다. 다작은 아니나 쉬지 않고 보여준 그의 시작 과정은 그가 시에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그리고 시라는 것을 만만하게 보지 않고 적당히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시의 품격을 지키려 했는지를 입증한다. 요컨대 우리는 이러한 그의 시에서 그가 일생 동안 집착해 온 시정신의 일대기를 발견하게 된다.
시는 인간의 의식 영역에서 생성된 정신적 산물이다. 인간은 의식을 지닌 존재이다. 의식하는 것은 감각하는 것이며, 지각하는 것이며, 이해하는 것이며, 판단하는 것일진대, 시는 이러한 의식의 영역을 강렬하게 표출한다. 임강빈의 시는 바로 이러한 그의 존재에의 의지와 연관을 맺는다.
인간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향하여 형용되고, 외부로 발현되는가. 그것은 존재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다. 임강빈은 그러한 자신의 생존의 의미와 욕구를 시를 통해서 나타낸다. 그러나 그것은 늘 절제되어 있고 담백하다. 자신을 보다 과장하여 드러내 보이려는 치기 어린 세속적 인간의 꾸밈과는 거리가 멀다. 그에게는 자신을 감추려는 동양적 미덕이 담겨 있다. 그것은 그의 선비정신과 연관시켜도 좋을 것이다. 그를 지칭하여 설명을 보류하고 있는 시인, 일정한 대상에 대해서도, 또 삶 자체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는 시인이라 함도 임강빈의 그러한 삶의 자세와 그것의 시적 표출에 기인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를 읽어가면, 그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애정과 연민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싶어하는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외부로 드러나기에는 온유하고 정지되어 있는 듯하나, 내부로는 강렬하고 역동적인 임강빈의 시정신은 여러 가지 양식으로 나타난다. 그의 순수한 감정 이면에 표백된 그리움이나 외로움은 그가 대면한 세계와 사물과의 교응에서 유래한다. 생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인간과 대상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그러한 감정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임강빈은 이러한 인간의 삶에 대한 애착에서 나오는 내면의 정신을 그가 만나는 대상이나 사물에 감정이입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고도의 간결과 내숭이 뒤따르기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어떤 때에 아주 무심하게, 남의 일인 듯 사물을 보고 그것의 형상을 그리기도 하나,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서 시인의 단단한 정신의 핵심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것은 생의 의미를 저만큼 떼어놓고 보는 듯한 객관화된 시정신이기에 보다 깊고 은밀한 내성으로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2. 시정신의 연원
흔히 임강빈의 시와 삶을 평할 때, 논자들은 그의 선비정신과 중용정신을 떠올리곤 한다. 그렇듯 그는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의 풍모를 지닌다. 그의 시에서 전통적인 조선조 선비의 풍모를 논급함도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주는 인상이 작용한 감이 없지 않다. 이러한 임강빈에 대한 인상은 필자의 스케치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충청도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80년대에 박용래도 가고, 그 위를 이어 둑길을 맴돌던 한성기도 가고, 그 빈자리 위에 [冬木]의 임강빈이 홀로 우뚝하게 서 있다. 그는 "공명으로써가 아니라 작품"으로 살아야 한다는 겸허를 꿋꿋하게 지켜왔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안정된 자세다. 지친 빛이 없다. 시인 임강빈을 마지막 남은 충청도 선비시인이라 한다. 선비의 덕목은 중용―언젠가 70년대 그의 시화전이 <심지> 다방에서 끝나고, 목척교 뒷골목 선술집에서 우리는 맛있게 막걸리를 마셨다. 그때 마른 입술에서 떨어지는 그의 중용의 뜨겁고 차거움을 몰래 훔쳐보았다.
이러한 임강빈의 인간적 인상은 우리가 그의 시를 말하고, 그의 문학적 위상을 점검하고자 할 때, 그 출발점에 놓인다. 왜냐하면 이는 그의 시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표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무엇에도 조급함이 없는 여유, 절제된 말과 행동, 그리고 그윽히 풍기는 풍란과 같은 음향, 늘 중심을 지키면서 변화하는 삶에 근본을 일깨워주는 경건한 자세, 이는 시인 임강빈을 이르러 충청도의 전형적인 선비시인이라 이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유이다. 이를 필자는 [문단별곡]에서 임강빈 시인을 "마지막 남은 충청도의 선비시인"이라 지칭한 바 있거니와 그가 지닌 범상치 아니한 침묵과 여백은 그에 대한 이러한 호칭을 더욱 굳어지게 한다.
그러면 선비정신이란 무엇인가. 사대부란 따로 하늘이 내는 것이 아니라 했으니, 백성 중에 덕이 있으면 선비라 하여 벼슬을 시키고, 벼슬하지 못한 사람은 농사를 짓기도, 장인이 되기도, 그리고 장사를 하기도 했으니, 선비, 즉 사민(士民)은 백성의 귀감이 되는 위치로 이들이 곧 선비이다. 선비는 도덕과 학문을 익혀서 예의와 염치를 알고, 항시 언행을 바르게 하여, 불의한 방법으로 영화와 부귀를 탐하지 아니하여야 한다.
또한 선비는 안빈낙도로 처신하며 열심히 학문을 갈고 닦으며, 시작이나 서예에 힘써야 한다. 선비는 향촌에서는 행실을 바로 하여 덕행을 몸소 실천하며, 국가의 정치가 잘못되었을 때는 임금에게 옳은 말로 간언하며,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버리고 나설 줄 알아야 했다. 그래서 본능의 욕구를 억제하고 양심을 키우며 고귀한 정신의 높이를 유지하고자 한다.
그리고 사적(私的) 인간이기 이전에 공적(公的) 인간이기를 소망하는 정신이다. 진정한 선비에 이르는 길은 이렇게 어려운 자가 수련을 요구하는 것이었으니, 선비란 칭호가 아무에게나 섣부르게 불리워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임강빈을 선비시인이라 부르고자 함은 그의 인간적 풍모가 바로 그 그윽한 조선 선비의 그것에 닮았음에서다.
그가 40여 년의 문단 경력에 여섯 권의 시집을 상재한 바, 이는 틀림없는 과작의 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그 과작의 요인은 중용을 바탕으로 한 그의 철저한 시적 절제 때문일 것이다. 그는 공명으로서가 아니라 작품으로 살아야 한다는 겸허한 입장을 꿋꿋하게 지켜왔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안정된 자세이며 지친 빛이 없다. 바로 그의 문학적 족적을 지켜온 이 중용이야말로 선비가 지녀야 할 제일의 덕목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임강빈의 정신적 면모는 그 가계에서 유래되었음을 그는 시를 통해서 고백한다. 먼저 그의 내면을 검열하는 엄격한 기준이 된 자신의 부친을 형성한 부분이다.
조용히 먹을 가신다.
안으로 괸
앙금이랑 섞어 먹을 가신다
연적의 물을
盆에서 자란 느티나무 뿌리에
조금씩 부으시며
다시 먹을 가신다.
붓끝에서만 풀리는
당신의 매듭
한 획 한 字 내려가는
아버지의 隸書
풀리지 않는 매듭이나
풀어가듯
나도 조용히 무릎 꿇는다.
그 行間에 비치는
가랑잎 소리.
― [매듭을 풀며] 전문
먹을 가는 것으로
낙을 삼고 살아오신 아버지
봄바람에 묵향이 일다.
하얀 벽을 응시하다가
옛 한 자를 쓰고 계시다
아직 찍지 않은 낙관
그것에 또한 마음쓰시다.
― [62병동]에서
그것을 부정하고 살아가든 긍정하고 살아가든, 한 인간의 근원은 아버지다. 아버지는 우리의 인격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권위적 존재이다. 더욱이 전통 양반의 가부장적 가계에 있어 아버지의 위상은 거의 초월적으로 자리한다. 우리는 임강빈의 위의 시적 단상을 통해서 그의 부친이 전통적인 유교적 삶의 질서를 규율해 온 어른임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아버지는 객관적 상관물로 전통사회의 선비정신을 표상한다.
이미 과거의 가치관도, 삶의 목적도 무너져 버린 시대에 지난 시대를 떠받들던 지고했던 삶의 양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얼핏 느끼는 것은 근접하기 어려운 경외감이다. 우리는 그것을 결코 낡은 방식이라 폄하할 수 없다. 그것은 과거 시대를 지배한 양반문화이며, 그 속에 어우러져 있는 고고한 기품인 선비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거에만 그랬을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가 흉내내고 싶은 품격을 지닌 삶인 것이다. 임강빈의 부친은 바로 그러한 삶의 한 자락을 지키며 살아오신 분임을 위의 시구는 말해준다. 그는 전통적인 유교적 집안의 가통을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있었던 인물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임강빈이 그러한 부친의 삶의 모습을 향수와 연민으로 반추하는 음영에서, 그가 그러한 가풍을 이어받았으리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의 隸書]는 그 한 편린이다. 거기에는 조선조 지배 계급이 지녔던 기품이 어려 있다. 이 시에 머무는 정점에서 우리는 그 무엇의 숭고한 의미를 체득한다. 거기 소란스러움이 끼어들면, 그윽한 품격의 삶의 양식은 깨어지고 만다. 임강빈의 부친은 바로 그러한 문화를 지키고 살아오신 분이다. 시집의 표제가 『매듭을 풀며』이었거니와 자신의 부친은 바로 "붓끝에서만 풀리는/ 당신의 매듭"을 지니고 살아오신 것이다.
이는 무엇을 표현코자 한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유교적 교양과 예절에 강박된 한 사람을 본다. 그가 삭여야 했을 분노, 그가 목도하여야만 했을 상실감, 그러면서도 그가 자신의 그 삶의 자세를 지녀야 했기에 속으로만 삭일 수밖에 없었을 인내, 우리는 우연히 그런 모습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그가 살아가는 방식은 그렇듯 침묵하고 글씨를 쓰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슴에, 그리고 인생에, 더 나가서 세계에 얽힌 매듭을 푸는 것이다.
임강빈 시인은 그런 부친의 삶을 "나도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로 표현했듯 순연히 받아들인다. 그런 가계의 내력이 그로 하여금 자연적으로 유교적인 사고방식, 생활방식이 체질화되도록 작용했으리라.
임강빈에게서 전통적인 선비정신을 찾고자 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가계의 또 다른 분위기 속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외할머니 외동딸 하나
어머니는 나 하나 두고 먼저 가셨다
여름에도 버선을 벗은 적이 없던
외할머니
투정을 웃음으로 받아주시던 외할머니
장죽 물고 먼산을 바라보시던
그 마음을 읽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 [외할머니 생각]에서
절도 있는 생활 자세란 자신을 흐트러짐으로부터 단속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것은 자신에게 자신이 강요하는 것이기에 쉽사리 무너져버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심코 넘어가고 말아도 그만인 생활의 규범을 지켜야 하는 것은 체통 있는 사람의 도리였다. 더욱이 여자에게 그것은 더욱 엄숙히 지켜야 할 덕목이었다. 임강빈은 그러한 반듯한 가문에서 아녀자가 지켜야 할 법도를 따른 외조모를 추억한다. 과거란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존재의 시원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되짚은 그 과거에로의 시간이란 더욱 분명히 그 시인의 현재에 늘 머물면서 사유와 행동을 규정짓는 엄격한 검열관이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는 이렇듯 그의 외조모를 떠올리는 단상에서도 그의 시적 세계를 이루는 뿌리를 선비정신과 연관지움을 이해하게 된다.
한 시인의 정신세계는 본인의 의지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인식하고 방향 짓고자 하는 세계와는 다를 수도 있는 그를 둘러싼 외적 조건에 무의식적으로 강박되어 있는 존재이다. "내 딸에는/ 말씀을 헤프게/ 살아온 것 같은데/ 입을 다물고 있다 한다"고 임강빈은 토로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자신이 인식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삶을 강박하여 주어진 것이다.
임강빈 시인의 선비정신은 그렇듯 그의 가계가 지닌 엄숙한 품격이 자연스럽게 삼투된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자신의 삶에 무의식적으로 베어든 절도 있는 삶의 자세는 그의 시쓰기에 그대로 투영된다. 그가 순수서정의 시심을 지키면서 간결하고도 세련된 언어를 구사함은 그에서 기인한 바라 할 것이다.
3. 시적 공간
(1) 그리운 사물 채우기
임강빈의 시는 어디서 출발하는가. 우리는 이미 그의 전 시세계를 관류하는 유교적 선비정신에 대해서 통찰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그의 시가 조선조 선비들이 지닌 관념과 표백된다든지, 시인이 그러한 삶의 모습을 향수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그의 인간됨이나 시 전체에 아주 막연하게 감지되는 느낌을 단정하여 규정한 것일 뿐이다. 그의 시의 구체적인 출발점은 사물을 응시하는 그의 독창적인 눈빛의 현현이며, 거기에 묻어나는 무욕(無慾)이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한 서정을 지켜가려는 시인의 결백한 마음은 초기시에서부터 단단한 언어로 그의 시 속에 자리 잡는다. 그는 제2시집인 『冬木』의 자서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나에겐 무엇보다도 소망스러운 일이다. 이것을 떠나서는 한가닥 나의 진실은 위태롭기만 하다"고 토로한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시를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절대적인 대상으로 간절히 부둥켜 안으려 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임강빈에게 있어 시쓰기란 자신의 존재 전체를 현시하는 진실한 작업임을 본다. 그렇지만 그는 시를 통하여 자기를 섣부르게 말하려는 시인이기 보다는 시 자체에 자기를 겨우 드러내고 있을 뿐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한 것이다. 다만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이 진실하게 드러나기를 갈망할 따름이다.
요컨대 우리는 그러한 임강빈 초기시에서 시에 대한 그의 순백한 자세를 발견한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간결하리 만큼 너무 맑아 필요한 그늘마저 찾기 어려운 느낌"을 주기도 하려니와 그의 시가 지닌 정서의 순연함은 세속에 거리를 둔 유적함을 지닌다. 아울러 그러한 순수한 시심을 견지하기 위한 언어에 대한 장인적 연마는 시의 응축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는 항상 말을 아낀다. 그의 시에서 군더더기 수식이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시를 통해서 그 어떤 감정을 과시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렇듯 그의 시는 잘 절제된 언어가 야무진 짜임새로 조직되어 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그의 시는 자연과 사물에 가까이 가고자 한다. 사욕이 전혀 배제된 순백한 마음으로 그는 한편의 시에서 다루고자 하는 대상에게 민들레처럼 접근한다.
크고 작은 숱한 항아리 옆
민들레가 피었다.
솔 한 그루
굽어보듯 서 있는
그림 같은
愛情.
무엇이나
가득히 담아주고 싶도록
그토록 하늘마다 향한
둥그런 門.
아아
나도
항아리 옆에 피어가는
노을이 되고 만다.
― [항아리] 전문
그는 우주적 침묵으로 사물을 응시한다. 그 관조자의 눈빛에는 사심이 없다. 즉 자신이 주시하는 그 대상을 뿌려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이념을 구현코자 하는 세속적이고도 전위적인 인간의 사욕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 그는 그저 대상을 보고 그리고 그 대상에 자신을 동화시키고자 한다. 그 응시로 그가 찾아낸 것은 무정한 대상으로 알았던 사물의 그리운 풍요로움이다. 사물은 오히려 인간에게 가르쳐준다. "무엇이나/ 가득히 담아 주고 싶도록/ 그토록 하늘마다 향한 / 둥그런 門"을 열어두고 옹졸한 인간의 마음에 여유를 준다.
결국 그는 자신이 대면한 자연이나 한 사물에게서 인간의 결벽, 인간의 옹졸, 인간의 불완전함을 채우고자 한다. 이러한 시인의 사심없는 사물에 대한 인식은 사물과 자신과의 동일시에 이른다. [항아리]에서 다다른 그러한 일체감은 "머리말/ 꽃병/ 허무한 항아리/ 빈손으로 돌아와/ 꽃무더기 속/ 내가 있었다"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는 결코 그 어떤 대상을 인식하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의 본질 속으로 자신이 몰입하여 들어가고자 한다. 인간이 사물을 부리고자 함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사욕이 개입된 사물에의 응시는 항시 그 의미가 굴절되기 마련이다. 임강빈의 시에는 그러한 사물에 대한 집착이 없다. 그는 "우리집 비좁은 마당/ 비집고 들어와/ 피어준/ 장미 앞에 서고 싶다"고 순연하게, 그러면서도 간절하게 느낄 뿐이다. 그리고 그는 그 자체로 아름답게 스스로의 존재에 형용되는 대상을 경이롭게 혹은 감사하게 응시한다.
그러나 임강빈은 그 대상에게서 자신의 내면을 본다. 이는 그가 [추부에서]와 같이 자연이나 대상을 거의 무관심하다 싶을 정도로 묘사하던 태도와는 달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시인의 자의식이 드러나는 시쓰기에 진정한 시인의 존재 가치를 체현한다.
언제부터인가
새는
울고 있거나
아니면
懺悔하는 노래일 것이다.
또는
慈悲와 같은
그런 웃음이나마
卿卿 새겨가는 것인가.
울고 있는 것인지
웃음 같은 것인지
스스로 분간 못하는
새.
차라리
자유롭지 않아도
좋았을 날개를
또 한번 하늘 높이
펴보는 것이다.
― [새] 전문
"새"를 통해서 자아를 들여다 본 작품이다.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본다는 것은 비극성을 전제한다. 자아는 내면의 고통스런 헤집기를 거쳐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강빈의 그러한 과정은 예외적인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봄이 현란한 충동이나 격렬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그윽하고 깊게 정제되어 있다. 그는 조용히 상처받은 감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가 보고 있는 그것은 고독이다. 그러나 그의 시에 머물러 있는 고독은 "조용한 고독, 청결하기 조차한 고독"이다.
그의 초기시를 관류하는 이 고독의 주체는 임강빈에게 시인으로서의 길을 강요한 내면의 진실이다. 고독이야말로 인간의 심성이 서정적으로 기울도록, 내면의 황홀함에 취하도록 밀어올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고독이란 낱말"을 자신의 시쓰기에 절대적 분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란 고독한 사람의 고독한 작업 속에 생산되는 미적 양심임을 그는 자신의 시작 초기부터 터득하고 있었다.
(2) 외로운 언어 비우기
우리는 임강빈의 초기시가 지닌 자연과 대상에 대한 극진한 애정, 사심 없는 갈망의 세계, 그리고 인고와 냉엄의 이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독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의 시쓰기의 동기는 결국 경외스러울 정도로 담담하고 초연한 삶의 자세 뒤에 숨겨진 고독이었다. 그런데 그 고독이란 고고한 삶을 홀로 세워가려는 사람들에게 필연적인 대가일 것이다. 근엄하면서도 자애로워 보이나 마음을 헤프게 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마음의 병이 곧 고독 아닌가. 바로 그 마음의 허허로움이 임강빈에게 시쓰기를 강요했음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어차피 문학이란 한 개인으로 보면 존재에 대한 구원행위이다. 임강빈 시인에게서 우리는 문학이 지닌 그 동기성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결국 시는 우리의 감정을 통하여 세계에 대하여 말한다. 시는 우리의 감각을 갈아 더욱 더 날카롭고 완전하게 목숨으로서의 자각을 굳게 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연마하여, 우리의 기억 속에 소중한 보물을 저장하는 구실을 한다.
"어릴 때 죽음을 일찍 접해서인지 "고독"이나 "외로움"이라는 표현은 싫어하게 됐어요. 모친과 동생 등과 일찍이 사별하면서부터 거부반응이 잠재돼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작품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상하게도 죽음이나 외로움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돼요." 임강빈 시인의 직접적인 토로이다. 결국 삶을 지나오면서 경험했던 소재들이 작품 속에서 무의식적인 제재로 작용한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임강빈의 내면에 응결된 고독이 세계를 향하여 열리게 되는 까닭을 이해한다. 그는 자신의 고독을 그 자체로 폐쇄하여 가두어 두지 않는다. 그는 시쓰기를 통해서 그러한 감정을 세상 밖으로 표출한다. 그 고독의 한 지류에서 그가 절실하게 느끼는 감정으로 우리는 외로움을 찾을 수 있다.
뿌리가 깊은 나무를 보며
그 흔들림에
문득 사랑이 그립다
추수가 끝난
빈 들판에 내린
하얀 무서리
그런 사랑을 한 아름 안고 싶다
― [연가]에서
이 꽃보다
우리는 얼마나 작아 보이나
아직은 따가운 햇볕
공터 언저리
하얀 들깨꽃
잔잔한 외로움
― [들깨꽃]에서
외로움이나 그리움은 인간의 감정이 지닌 아름다움이다. 이것으로 하여 인간은 보다 더 인간 곁에 가까이 가려는 따뜻한 마음을 품는다.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감도 이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다. 임강빈은 그러한 정서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서 토로한다. 그가 자연을 오만하지 않고 겸허하게 온유한 자세로 마주했던 것도 이러한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자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연은 늘 그대로 있으나 거기에 반응하는 인간의 감정은 무시로 변한다. 그리고 그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감정은 천차만별이다. 임강빈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연에 애정을 보내며, 그 자연이 주는 친화력에 동화된다.
[연가]에 담겨진 흘러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 [들깨꽃]에 표징된 왜소하게 놓인 인간의 외로움, 그러한 감정들은 모두 자연의 건강한 생명력에 위안받고 새로운 삶의 힘을 얻는다. 이렇듯 자연과의 만남과 거기서 얻는 생명에 대한 인식은 그의 고독을 파탄으로부터 끌어내어 맑고 고운 정서로 순화시킨다. 그를 "투명한 수정 같은 영혼을 가진 시인"으로 만든 것도 그 자연이 주는 웅훈한 정기를 순연하게 받아들인 까닭이다. 그러한 융화된 감정이 영롱한 언어로 빚어졌을 때, 우리는 그 속에서 얼마나 큰 감화를 받는가. 우리가 임강빈 시에서 얻는 정신적 즐거움은 세속에 젖어들지 않은 그의 자연과의 교감에서다.
더불어서 우리는 그의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의 솔직한 고백에 사로잡힌다. 그가 지닌 고독, 그리고 그 가닥으로 자리하는 외로움이나 그리움을 보았거니와 그에게는 세속적 삶이 주는 비애가 또한 깃든다. 그는 "슬픈 것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슬픔이/ 비에 적고 있다" "웃자란/ 나와 당신의 비애"라고 우수에 찬 심경을 노래한다. 그 비애는 너무도 부정적이고 한 개인에게 억압적인 것이어서 그 누구와 나누어 가질 수 없다. 그리하여 비애는 시인만이 간직하여야 할 자기만의 짐으로 다가올 때, 그가 돌연 반성하여 보는 자신의 인생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자신에게 엄격하고도 허정한 것이다.
빈손으로 교외에 나갔다
허전한 빈손을 위해서
묵은 가지를 흔드는 이른 봄바람
들녘의 사람들은 바쁘다
― [빈손으로]
세상에 태어나
내가 한 일
부끄러울 때가 있다
― [까치집]에서
모두 어디 갔을까
이 집 주인은
아내도 읽지 않는
시를 쓴다
― [不在]에서
위 세 편의 시를 부분적으로 읽으며, 우리는 그의 비애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짐작케 된다. [빈손으로]에서 보이듯, 그에게는 아무런 욕심이 없다. 그는 비어진 마음으로 세상 나들이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명력에 넘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문득 자신의 삶을 본다. 자신이 바라본 자신의 삶은 [까치집]에서와 같은 부끄러움이다. 임강빈 시인은 자신이 존재의 의미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해 온 시,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붙는 시조차 부끄러워한다. 이는 시인의 지나친 겸손이려니와 여기서 그는 인간 존재의 허위를 맛본다. 그것은 『매듭을 풀며』나 『등나무 아래에서』에 노정된 비애스러움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감정은 정신적 삶이 거부되는 세속화된 인간 세상으로부터의 소외감의 표출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이탈감은 그의 후기시로 가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나 시쓰기 자체에 대한 돌아봄으로 이어진다.
(3) 쓸쓸한 마음 세우기
제5시집 『조금은 쓸쓸하고 싶다』(1989)와 제6시집 『버리는 날의 반복』(1993)은 임강빈 시인의 후기 시편들을 수록하고 있다. 그에게는 분명 후기시에 속하게 될 이 시집 속의 작품들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그가 제4시집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작품세계에서 보여준 양상과의 공통성과 차별성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먼저 공통성은 그의 시가 지닌 순수 서정이나 간결한 시형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데서 찾아진다. 그의 인간적 면모와 그러한 인상이 그대로 문학 속에 나타난 선비정신에 대하여 이미 살펴보았거니와, 그는 한국 고유의 전통적 정서를 거의 원초적으로 체현한 시인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 씌여진 그의 초기시에서 제6시집에 이르기까지 "시의 형식이나 문체의 기본적인 틀을 거의 바꾸지 않은 채 조용히 원숙과 심화의 목표만을 향해서 걸어온 것"이다. 그는 시형식이 지닌 응축의 미학을 누구보다도 잘 구현한 시인이다.
산문과 운문을 구별하는 가장 본질적인 기준 중의 하나가 이 압축성일 것이다. 산문과 운문의 경계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그 시각적 표지로 우리에게 명징스런 변별점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 압축성이다. 이는 결코 간결한 언어 절제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의미의 응축과 그것이 무한히 생산해내는 의미의 다의성, 곧 한편의 시를 더욱 풍부한 정신 세계로 이끌어가는 시의 애매성과도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시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문제이면서도 시인들에 의해서 자칫 무시되기 일쑤였다. 임강빈은 그렇듯 시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시작 과정을 통하여 초지일관하게 보여준 시인이다. 중용을 바탕으로 한 그의 철저한 시적 절제가 그를 과작의 시인으로 만들었던, 이러한 그의 태도는 한편 한편의 시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 바라 하겠다.
임강빈은 순수 감성을 지닌 전통적인 서정시인이다. 그의 초기시에서 후기시에 이르는 또 하나의 공통된 특성이 바로 서정성이다. 감성은 한 개인의 내면에서 유로되는 것이나 사회상의 흐름이나 그 사람의 연령에 따라 그 반응을 달리한다.
그런데 임강빈은 70년대와 80년대 역사의 진보를 꿈꾸는 현장성이 강조된 연대기를 살아오면서도 자신이 지닌 순수 서정의 시세계를 올곧게 지킨다. 그에게 있어 시는 한 시대를 개혁하거나 역사의 나갈 길을 전망하는 변혁을 이끌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에게 시는 한 개인의 존재론적 깊이를 성찰하고, 그가 대면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존재의 고통이나 허망을 위안하는 소박해 보이면서도 시의 본질에 다가가 있는 것이다. 시의 원형질에 해당할 서정성은 그에게 있어 시쓰기에 출발점이자 그 이후의 지향점이었다.
이렇듯 임강빈의 시들은 초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특성을 지니면서도, 후기시에 해당할 제5시집과 제6시집은 기존의 시상과는 다소 다른 정서적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각과 빈도의 전환에 기인한다. 그는 죽음에 대하여, 추억에 대하여, 그리고 시쓰기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의 후기 시편에 오면 그것에 대한 사색의 빈도가 높고, 그 정도가 심화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의 시세계의 변모를 감지한다. 그것은 이전의 시에 비하여 한 인간의 원숙한 인생에 대한 통찰과 내면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 있기에 경원함을 준다.
죽음은 사랑과 더불어 가장 문학적인 주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적인 경건함을 내포한다. 임강빈의 후기시에는 이러한 죽음에 대한 주제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는 세상에 널려있던 죽음이나 자신에게는 피상적으로만 보이던 죽음이 이제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주변에서 현실적인 상황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본다. 그는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사색한다. 죽음을 은폐함은 어떤 의미로든 죽음 속으로의 도피라 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여 존재한다. 임강빈은 죽음에 대하여 능동적이다. 그는 그것을 세상살이의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표정은 쓸쓸하고 허무하다.
이 길로 해서
조심을 잊으라 한다
눈부신 신록인데
하얀 영구차 하나
차창 밖으로
막 비가 내린다.
― [憂愁吟]에서
여보게, 꿈을 키우면서
설익은 과일만 한 바구니 땃지
후회한들 무엇하나
어릴 적 여행하듯 그렇게 가라
― [여행하듯 가라]에서
시집 『버리는 날의 반복』은 무심코 아무 면이나 펼쳐도 위와 같은 어조의 시편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화장터가 있는 정수원이란 곳을 지나면서 그 단상을 토로한 [憂愁吟],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 죽음에 순응할 것을 고하는 [여행하듯 가라]는 그의 죽음의 인식과 태도를 드러낸다. 그에게 죽음은 삶의 일부이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삐걱 소리를 내며], [나비 한 마리], [마른 풀밭에서], [감빛], [중학동창모임] 등에도 이러한 분위기는 노정된다. 그는 굳이 죽음을 초월하거나 외면하려 하지 않는다. 그가 맞이해야 할 죽음이란 현실적이면서 진실한 것이다. 그것이 기쁨이 아니듯이 또한 슬픔이지조차 않다. 공포는 더욱 아니다. 이러한 그의 마음의 평온 상태는 어디서 기인하는가.
문틈 사이로 가을 본다
무성했던 나무
그 잎들이 익어서
갈색으로 물들어
막 떠나려는 시간을 본다
가을은 나에게 명령을 한다
이렇게 의젓한데
자꾸만 작아지라고 호령을 한다.
― [문틈 사이로]에서
그것은 그의 겸손이다. 세상을 늘 낮은 자세로 살으려는 그의 인간적 아름다움의 발로이다. 절제와 겸양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선비정신은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삶의 자세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는 문틈으로 가을을 본다. 극구(隙駒)라 했다. 말이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보듯 세월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랬다. 그는 그렇듯 문틈으로 가을을 본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비단 가을이 아니라 또 저물어 가는 한 해이다. 결국 그는 빠른 세월을 느낀다. 그리고 그 세월 앞에 잠시 살아가는 인생이 겸손한 것이어야 함을 다진다. 자신을 낮추고 세상을 보는 시인에게 두려움이란 없다. 절대적 힘에 자만한 인간은 죽음이 전혀 낯설고 공포스럽게 다가오리라. 그러나 세계와 자연의 운명적이기조차 한 위력을 이미 감득하고 스스로를 소박하게 채찍해 온 시인에게 그것이 두려울 리 없다.
임강빈은 이러한 죽음에 대한 겸허한 수용과 더불어 자신이 평생 지켜온 시쓰기에 대해서 돌아본다.
시인은 시를 쓴다
시를 쓰면서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고
안으로만 밝히는 시인도 있다
시인이라고
뭐 크게 내세울 것은 아니다.
섣불리
인생 운운하는 것도 우습다
목탄으로
가볍게 스케치하듯
그런 시나 쓰면서도
공치는 날은 허전하다.
바람에 흔들리다가
풀잎이며
나뭇잎이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선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시인이다.
― [시인] 전문
정신적 삶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위축되고 있는 이 시대, 시인은 어떠한 모습으로 표상되는가. 먼저 임강빈은 자신이 시인임을 자각한다. 그러나 겉으로 화려한 시인, 타인에 군림하는 시인, 그리고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을 경계한다. 그는 시인인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다만 "꽃병에 꽃이 없다는 것"이 "참 공허한 일"이듯 시인에게 시가 없다는 것이 허전한 일임을 일깨운다. 그는 부단히 시를 쓰려한 시인이다. [시가 되기까지], [감동에 대하여], [수녀 Cecila], [삘기 뽑기] 등은 모두 이러한 임강빈의 시작 과정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다.
여기서 보면 임강빈의 마음은 세계와 사물로 향하기보다 자신의 가장 지고한 삶, 즉 시쓰기로 향한다. 이것을 우리는 시인의 경험의 소진이라 폄하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시쓰기에 대한 질문이자 인생에 대한 성찰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거기에 담겨있는 임강빈 시인의 겸허하고도 진실한 삶의 태도와 시인으로서의 자세에 흠취하게 된다.
4. 맺는 말
정신적 삶이 얼마나 지고의 안락한 것인지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임강빈의 시는 대단히 소중한 가치를 지닌 읽을거리로 다가온다. 그것은 시편들 속에 그러한 사색의 풍요로움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물질적 쾌락에 탐닉된 인간들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정신의 깊이를 지닌 시읽기의 즐거움, 임강빈 시는 이러한 문학 정신의 본령에 다가간다.
그가 충청도의 대표적인 선비시인이나 순수 서정시인으로 지칭된 바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는 시의 본질을 누구보다도 잘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떠한 시대의 외침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러한 시의 바른길을 지켜왔다. 그의 시가 지닌 절제의 언어미란 이러한 그의 시정신에 의해서다. 시는 무엇보다도 시다운 형식과 의미를 지녀야 한다. 임강빈은 이러한 시의 본령을 유지하면서 40여 년을 시쓰기에 몰두한 시인이다.
그의 시의 출발점은 고독이었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투시하는 냉엄한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불현 자신의 내면에 침잠된 고독의 형상을 그려낸다. 그러나 임강빈이 초기시를 통해서 본질적으로 드러내려 한 것은 이러한 고독한 정신적 면모였다. 이러한 정신적 풍경은 중기시에 이르러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채색되기도 하며, 후기시에 이르러서는 죽음에 대한 관조와 시쓰기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 이어진다. 이러한 일련의 시작 과정을 통해서 임강빈 시인은 한 인간의 정신적 지고함과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그윽한 품격과 정갈한 인상으로 안내해 준다.
□ 연보
31년 2월 22일 충남 공주군 반포면 봉명리에서 父 任瑛淳, 母 鄭順謨 사이에 장남으로 출생.
36년 모친 별세.
50년 공주사범대학 입학.
51년 이재복, 이원구 교수 지도로 시동안 <詩會> 창립.
52년 청양중학교 교사 부임.
56년 《현대문학》에 박두진 추천으로 등단.
66년 충남문화상 문학부문 수상.
69년 제1시집 『당신의 손』출간.
71년 『靑蛙集』(한성기·박용래·임강빈·최원규·조남익·홍희표 공저) 출간.
73년 제2시집 『冬木』출간.
77년 한국문협충남지회장.
79년 제3시집 『매듭을 풀며』출간.
84년 고 박용래시인 시비건립추진위원장.
85년 제4시집 『등나무 아래에서』출간.
88년 부친 별세.
89년 제5시집 『조금은 쓸쓸하고 싶다』출간.
93년 요산문학상 수상.
93년 용전중학교 교장.
93년 제6시집 『버리는 날의 반복』출간.
94년 공산교육상 예술부분 수상.
95년 시선집 『초록빛에 기대어』출간.
96년 40년 교직계 정년 퇴직.
96년 대전시인상 수상(제1회)
97년 제7시집 『버들강아지』출간.
98년 상화시인상(제3회)
00년 제8시집 『비 오는 날의 향기』출간.
02년 제9시집 『쉽게 詩가 쓰여진 날은 불안하다』출간.
02년 정훈문학상(제1회) 수상.
첫댓글 좋은 자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