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일념(一念)이 다념(念)과 같다는 설
한 번 불명(佛名)을 염(念)하는 것이 여러 번 염하는 것과 같으냐 다르냐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1) 낙방문류(樂邦文類)에 “석가모니불이 계실 때에 어떤 속가의 늙은 남녀 두 사람이 곡식 한 말을 가지고 수를 세어 가면서 아미타불을 염하여 정토왕생을 원하는 것을 보시고 '나무서방정토극락세계 삼십육만억일십일만구천오백 동명동호 대자대비 아미타불(南無西方淨土極樂世界 三十六萬億一十九千五百同名同大慈大悲 阿彌陀佛)'을 한번 염하는 것이 많은 곡식 수와 같이 염하는 것과 공덕이 같다고 말씀하셨다”한다.
그러나 이 불호는 모든 정토계에서 찾아볼 수 없고 당나라 비석선사(飛錫禪師)의 보왕론(寶王論)에 비로소 이 불호로써 일념다념문(一念多念門)을 세웠고, 다음에 시랑(侍郎: 벼슬이름) 왕고(古)가 직지정토결의집(直指淨土決疑集)에 이 일을 말하였다.
그 후에 삼문직지(三門直指)에는 '나무서방정토극락세계 불신장광 상호무변 금색광명 변조법계 사십팔원 도탈중생 불가설 불가설 전불가 항하사 불찰 미진수 도마죽위 무한극수 삼백육십만억일십일만구천오백 동명동호 대자대비아등도사 금색여래 아미타불(南無西方淨土極樂世界 佛身長廣相好無邊金色光明 邊照法界四十八願 度脫眾生 不可說 不可說轉不可說 恒河沙佛剎微塵數 稻麻竹葦 無限極數三百六十萬億一十一萬九千五百 同名同號 大慈大悲我等導師_金色如來 阿彌陀佛)’의 명호가 금색아미타불경(金色阿彌陀佛經))에서 나온 것인데, 한 번 염하고 한 번 절하면 십념 예념(念) 공덕과 같다고 하셨다.
위의 두 불호는 염불하는 사람이 이것을 참고로 한 번 볼 뿐이고 항상 '나무아미타불' 혹은 '아미타불'만 오로지 염할 것이다
(2) 십념하여 왕생하는 것보다도 일념에 왕생하여 불퇴지(不退地)에 오르는 것이 정당하다.
그 이유는 오역(逆)과 사중죄(四罪)도 모두 일념에 악업을 이루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는 것이 활 쏘는 것과 같고, 또 일념에 선업을 이루어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은 팔을 굽히는 것과 같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도 “일념염불(一念念佛)에 모두 왕생한다" 하셨으나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십념(十念)이라 한 것은 임종시에 극병(劇炳)이 있어서 기운이 없고, 마음이 줄어들므로 십념을 불러서 일념을 돕게 한 것이다.
중국 당나라의 장선화(張善和)는 백정(白丁)을 직업으로 하여 생전에 지은 업이 순전히 흑업(黑業)이므로 이와 같은 사람은 설혹 선지식을 만나서 염불을 가르쳐 주더라도 일념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십념으로써 그 부족한 것을 돕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염심(念心)이 왕생하고 심신(心神)이 어리석고 둔하지 아니하면 다만 일념으로도 족하니 마치 실과 머리카락 같은 묘목(木)을 심어서 백 아름이나 되는 거목이 되는 것과 같이 일념의 힘이 굉장히 큰 것이다.
(3) 선업과 악업이 모두 일념으로 결과하는 것인데 일념이 일체염(一切念)을 갖추어 있으므로 일념이 십념보다 하열하지 아니하고 또 십념이 즉 일념이므로 십념이 일념보다 우월할 것 없으나 부처님이 혹 일념을 말하시고 십념을 말씀하신 것은 여래의 뛰어난 방편이시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실 때에 간이(簡易)한 곳에서는 간이하게 말씀하시고 번다(多)한 곳에서는 번다하게 하셨으니, 간이한 곳에서 일념을 가르치신 것은 그 온 정력을 다하는 마음이 치밀하고 한결 같으므로 일념이 다념(多순)보다 수승한 까닭이고, 또 번다한 곳에서 십념을 가르치신 것은 숙습(宿)이 짙으므로 다념이라야 제거할 수 있으니 적은 염으로 삼매(三昧)를 이루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 방편에 불과하고 실은 일이 곧 이요 이가 곧 일인 즉 일념 십념 분별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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