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프리부르, 로잔, 제네바
여행을 하다 보면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큰 행복감을 느낄 때가 있다. 프리부르가 바로 그런 곳이다. 베른과 로잔 사이에 있는 작은 도시 프리부르. 역에 내리자 마자 보이는 것은 화려한 꽃밭이다. 예쁘게 핀 꽃들을 바라 보며 걷는 길은 즐겁고 구시가로 올라 가는 길은 아름답다. 멀리 첨탑교회와 흰벽에 벽돌색 지붕의 집들이 보인다. 고풍스러운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후에 알고 보니 프리부르는 베른 보다 34년이나 더 먼저 생긴 유서깊은 도시였다. 프리부르는 언덕 아래 바스빌 지역과 언덕 위 구시가 지역으로 나뉘어 진다. 바스빌 지역에는 1255년에 건립된 마이라우 수도원이 있다. 당시 바스빌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살았다고 한다. 수도사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수도생활을 병행했다. 사린강 다리 위에서 입맞춤 하는 연인이 보인다. 그 모습이 마치 에밀 프리앙의 연인들이란 작품을 보는 듯 했다. 젊은 연인들이 서로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구시가로 가려면 오래된 돌길을 한참 올라야 한다. 돌계단 위에는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청사가 위치해 있다. 언덕길을 오르기 싫은 사람은 푸니쿨라를 타고 오르면 된다.
프리부르에서 태어난 유명한 사람으로는 장 팅겔리와 조 시퍼트가 있다. 장 팅겔리는 키네틱 아트의 세계 제1인자 조각가이고, 조 시퍼트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인 포뮬러 원의 전설적인 레이스 드라이버다. 포르쉐 운전의 명수로 불리는 시퍼트는 41번의 경기에서 14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지상에서 가장 빠르게 질주하는 포뮬러 원은 전세계 남자들에게는 최고 스포츠의 로망이다. 하지만, 극한의 스포츠로 불리는 포뮬러 원 레이스 드라이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기중에 일어나는 엄청난 압박과 중력의 힘은 물론 스티어링휠, 각종 계기류, 페달을 조작하고 경쟁자와 치열한 두뇌싸움까지 해야 한다. 거기에 레이스 내내 유지해야 하는 지구력은 엄청난 훈련과 관리를 요구한다. 그 것을 모두 갖추고 있던 인물이 바로 조 시퍼트였다. 시퍼트는 1971년 제작된 레이싱 영화, 르망(Le Mans)에서 스티브 맥퀸에게 많은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그런 그가 영국에서 열린 월드 챔피온쉽 빅토리 레이스에서 충돌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충돌로 연료통이 터지자 경주차가 삽시간에 엄청난 불길에 힙싸인 것이다. 불길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던 시퍼트는 자신의 경주차에서 최후를 맞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동료 드라이버들과 전세계의 레이싱 팬들은 모두 경악했다. 1971년, 프리부르에서의 장례식에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5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리고 1984년 6월에는 조각가 장 팅겔리가 ‘조 시퍼트 분수’를 제작해 프리부르에 세웠다. ‘짧고 멋진 인생을 사는 것이 지루하게 100년 인생을 사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시퍼트의 누이, 아델라이데가 그의 무덤 앞에서 한 말이다.
프리부르에서 로잔까지는 기차로 45분 걸린다. 로잔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우시라는 지역이다. 산책로에는 철재로 만든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초승달 모양의 하얀색 풍향계도 있다. 제방에는 책을 읽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 그 앞으로 하얀 요트가 지나 간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30분 정도 가면 프랑스 마을인 에비앙 레 벵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수 에비앙이 솟구쳐 오르는 곳이다. 로잔은 또한 학문의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1537년에 세워진 로잔대학교와 국제경영대학원, 유럽의 MIT로 불리는 로잔공과대학이 있기 때문이다. 두 대학은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와 함게 스위스를 대표하는 명문대학이다. 로잔의 대학과 로잔 시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독일어 아닌 프랑스어다. 그래서 로잔에서는 봉쥬르와 메르시라는 단어를 많이 듣는다. 로잔은 원래 루손나라 불리며 로마 시대부터 번영했던 도시다. 상업이 활발해지자 상인들은 루손나 곳곳에 시장을 만들었다. 팔뢰 광장과 클레 광장 두 곳을 이어주는 장터길도 13세기에 만든 것이다. 장터길을 잇는 마르쉐 계단에는 지붕까지 얹어 놓았다. 이 계단 꼭대기에 이르면 로잔의 자긍심이라 할 수 있는 대성당이 나온다. 대성당은 1170년부터 짖기 시작해 1240년에 완공된 건축물이다. 800년의 때가 뭍은 대성당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는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됐다. 대성당 내부에는 13세기에 제작된 여러개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조각 등이 있다. 당시 프랑스에서 온 비야르 드 옹느쿠르가 조각, 회화, 스테인드 글라스 등 고딕건축기법의 기술들을 모두 스위스에 전수한 것이다. 대성당 한 편에서 몇 명의 노인이 성인들의 조각을 스케치 하고 있다. 그 뒷모습이 보기에 너무나도 편안하다. 노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로잔에서 제네바까지는 기차로 35분 정도 걸린다. 제네바의 특징은 시민의 반 정도는 스위스인이 아닐 정도로 외국인들이 넘쳐 난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 국제적십자 등 수많은 국제기구와 200 여개의 대기업 본사가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외교기관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UN 유럽 본부. 본부 앞에는 12m 높이의 의자 조형물이 놓여 있다. 한 쪽 다리가 부서진 모습이다. 조형물의 의미는 지뢰 피해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제네바를 쉽고 편안하게 관광하는 방법으로는 기차 트롤리 투어가 있다. 레만 호숫가에서 출발하는 트롤리 투어는 바스티옹 공원, 구시가 등 중요한 장소는 모두 돌아 본다. 기욤 앙리 뒤푸르는 스위스의 통일을 주도한 장군으로 스위스의 20프랑 지폐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동상 옆으로는 대극장과 제네바 국립 고등음악원이 자리 잡고 있다. 1835년에 창립한 고등음악원은 프란츠 리스트가 초대교수로 활약하기도 한 명문 음악원이다. 성 피에르 대성당은 12세기에 착공하여 13세기에 완성된 건축물이다. 1535년 이후부터는 개신교 교회로 탈바꿈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1541년부터는 장 칼뱅이 이곳에서 설교를 담당하기도 했다. 설교단으로 올라 가는 계단 옆에는 칼뱅이 앉았다는 의자가 놓여 있다.
종교개혁의 슬로건은 라틴어로 “어둠 뒤에 빛이 있으라”였다. 이 글이 새겨져 있는 곳은 바스티옹 공원의 종교개혁 기념비다. 거대한 부조에는 기욤 파렐, 장 칼뱅, 테오도뤼스 베자, 존 녹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파렐은 제네바에서 처음으로 종교개혁을 부르짖었고, 칼뱅은 종교개혁을 체계화하고 실천했으며, 베자는 제네바 대학의 초대학장을 지냈고, 녹스는 스코틀랜드에 장로교 뿌리를 내린 개혁가였다. 기념비는 칼뱅(1509-1564)의 탄생 400주년과 제네바 대학 창설 350주년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높이 10m, 길이 100m에 이르는 종교개혁 기념비 앞에는 제네바 대학이 있다. 장 칼뱅에 의해 1559년 설립된 제네바 대학은 신학대학교와 로스쿨로 시작된 대학이다. 지금은 학생수 14,500명으로 스위스에서는 취리히 대학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대학이다. 루소섬은 연인들이 데이트 하기에 매우 로맨틱한 장소다. 하지만 이곳은 16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성벽에 둘러 쌓인 요새였다고 한다. 17세기에는 조선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후에 다리가 건설되며 루소섬으로 명명된 것이다. 이곳에는 제임스 프라디에가 제작한 루소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몽블랑 다리 뒤로 보이는 큰 물줄기는 제네바의 상징인 제트 분수다. 분수는 한 번에 1,800갈론의 물을 140m 높이로 뿜어 올린다. 실로 어마어마한 힘의 분수다. 우리에게는 철학자, 소설가, 식물학자로 알려져 있는 장 자크 루소. 루소는 제네바에서 1712년 태어나 프랑스 에르므농빌에서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사상가였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그는 어려서부터 폭넓은 독서를 하며 지적 성장과 감성의 기반을 다졌다. 16세 나이에 고향을 등진 루소는 바랑 부인의 도움으로 음악수업을 받았다.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어진 그는 악보 표기법을 개발하고 오페라도 작곡했다. ‘주먹 쥐고’라는 동요와 찬송가 61번, 찬송가 94번이 모두 루소의 곡에 가사를 붙인 것이다. 루소의 작품 중에는 “마을의 점쟁이”라는 오페라가 가장 유명하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음악은 귀에 상쾌하게 들리도록 음을 결합시키는 예술이다, 장 자크 루소가 한 말이다.
Le Mans (1971) MICHEL LEGRAND
https://www.youtube.com/watch?v=bQpSrlsMLBg&feature=emb_l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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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