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9:26
죽으면서도 챙기는 예수님의 효도 관
철야기도회
26.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1. 예수님의 가상 칠언 중에서 세 번째의 말씀의 의미는?
세 번째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다 하시고,” 란 말씀이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라고 죄 용서를 비는 말씀과 한 영혼을 낙원에 데리고 가시는 긍휼까지 보이신 주님이 세 번째 극한 상황에서 하신 일은 어머니 챙기시는 일이다.
같은 시간대 한 편의 강도는 악을 쓰고 저주하고 죽어갔고(마27:44절) 눅23:39절에서 비방하여 예수님을 조롱하기까지 하였다고 했다. “얼마나 힘들면 악을 쓰고 발악을 하다 죽었을까?”
그런데 그 상황에서 어머니를 챙기는 모습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 공경은 반드시, 그리고 절대로 해야 될 일임을 보여 준다.
마지막이라고 할 때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무엇을 챙길까? 자식, 자신 그러나 예수님은 어머니를 챙긴다. 그리스도를 믿는 진짜 성도가 해야 될 도전아닐까?
2. 요한의 입장
요19:27절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어떤 신학적인 해석이 필요할까? ‘네가 나를 메시아로 보고 믿었다면 통로 역할을 해 주신 마리아 역시 하나님이 주신 분인 줄 알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해달라는 부탁이다.’
① 역사 자료에 의하면 요한은 마리아를 에베소로 모시고 가서 잘 모셨다고 하고, 잠시 밧모섬에 유배 가는 과정은 있었지만 어머니를 끝까지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다른 제자들에 비해 94세까지 살고 칼날을 피하는 은혜를 입었다. 그야말로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엡6:3절의 약속이 이루어졌다.
② 그렇다면 과연 요한에겐 갈등은 없었을까?
마리아에 대한 봉양을 부탁받았을 때 요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내 어머니도 아닌데 모셔야 하는 부담감.
더군다나 그는 예수로 인해 한몫 챙기고 싶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혈기와 욕심의 대명사로서 남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 자였다.
예수님을 쫒지 않는 다른 사람이 귀신 쫒는다고 해서 가로막았다고 막9:38절은 전하고 있다.
사마리아에선 가는 길을 막는다고 불을 내려 태워버리겠다고(눅9:54) 혈기와 분노를 들어내기도 하였다.
형은 우편 나는 좌편에 앉으리라 해서 자기 어머니까지 동원해 예수님께 청원(막10:37)하는 이기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베드로가 이를 갈고 저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고 자기 죽음에 대해 예언할 때 요한을 끌고 들어갈 정도로 미운 털이 박힌 자였을까!
(요21:21)
이러한 그가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한 몫 잡으려고 했는데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허탈에 빠질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런 자리에서 어머니까지 부탁받으니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참으로 궁금해지게 된다.
문제는 거기가 십자가 밑이었다. 고스란히 가상 칠언과 예수님의 장엄한 죽음, 그리고 갖가지 나타난 현상들을 목격하며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로 그는 요한복음 전체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버린다. 그렇게도 자신을 챙기고 들어내고 싶어 했던 그가 그리고 대신 “예수님의 사랑한 제자가” 란 식으로 이름을 감추면서 오직 주님의 하나님 되심을 강력하게 외친다.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세븐 미러클(Seven miracles)을 기록하고, “나는 나다.” 라고 하는 그 유명한 신학적 용어인 “에고 에이미” 나는 목자다. 나는 양의 문이다. 등등을 기록한다.
그리고 요한 일이 삼 서 등에서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인 “사랑하라.” 를 외친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참 모습을 발견한 후로는 그 어머니마저 반듯하게 모시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러기에 성경의 약속이었던 엡6:3절의 말씀대로 장수와 잘됨의 복을 받지 않았을까!
말씀을 마친다.
요즘 우리는 5월만 되면 효도 잘했던 인물들을 내세우며 효도 관을 외치곤 한다. 물론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의 효도 관을 배우고 본받는 것이 가장 성경적이고, 올바른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③ 효도의 모델들 그리고 예수
이삭을 보자. 아버지 명령에 제물 될 정도로 순종에 있어 남다른 효심을 갖고 있었다. 다윗 역시 효도 잘한 자식임에 틀림없다. 전쟁터에 잘못 갔다 간 큰 일 날 수 있는데도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형들을 찾아갔다.
사울 역시 효심에선 타의 추종을 부러워할 정도였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소를 찾으러 다닐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예수님만한 효심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죽어가는 가운데서도 어머니 챙기는 효성, 제자에게 부탁해서 끝까지 돌봄을 다하고자 하는 효성
28절에 이루신 줄 아시고 “목마르다.”란 말씀하시고 얼마 후 운명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전까지 마지막에 하신 일이 어머니 챙기는 일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나의 마지막이 온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챙길 수 있을까, 과연 그게 부모일 수 있을까?
이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부성을 대신 해서 주신 아버지, 그리고 하나님의 모성 성을 대신 해서 주신 어머니를 챙기고 돌보는 모습을 갖는 일은 너무나 성경적이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는 일인 줄 믿는다.
예수님을 대신해서 어머니 마리아를 섬겨준 요한은 본인 자신이 94세라는 장수의 복만 받은 게 아니라 그의 이름값은 세계적으로도 각가지의 이름으로 알려졌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이와븐스(Ιωάννης)라고 하고, 이것을 마르틴 루터가 요한(Johann)이라고 독일식으로 번역했다.
그로부터 요한이라는 이름은 유럽 각국에서 즐겨 사용하는 이름이 됩니다. 영국에서는 존(John), 스페인에서는 후안(Juan), 프랑스에서는 장(Jean), 러시아에서는 이반(Ivan), 이탈리아에서는 조반니(Giovanni), 핀란드에서는 얀(Jan), 스코틀랜드에서는 이안(Ian), 헝가리에서는 얀켈(Jankel) 등의 이름으로 변형되어 사용되고 있다.
철저히 그 이름값을 유명하게 만들어 주셨다.
꼭 유명해지고 싶어가 아니라는 것은 다 아실 것이다. 그게 성경적이니 유명해지는 은혜까지 받은 것이다.
왠지 이번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그런 은혜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었으면 하는 바라마지 않는다.
기도하자.
성경적이니 그렇게 살겠습니다.
예수님이 하셨으니 참 제자로서 우리 역시 어머니 아버지를 공경하며 살겠습니다.
그런 후손이 잘되어 더욱 간증거리 되게 하옵소서! 라고
다음카페//디모데설교연구원(Timothy Preaching Institute)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