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서울의 봄 의 참군인들
군부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행위자 였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가 1960~1980년대 권력을 쥐었다. 분단.전쟁을 거친 대한민국에서 군이 정치에 노출되는 것은 불가피했지만 그 때문에 민주주의 역사가 굴절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전두환은 정치군인 의 표상이었다. 박정희가 1961년 5월16일 군사반란을 일으키자 서울대 ROTC 교관이던 전두환이 육사 생도를 이끌고 서울도심에서 지지시위를 벌인 건 알려진 일화다. 전두환은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 박정희 시대 권력 핵심부와 군내 요직을 벗어나지 않았다. 전두환이 만든 사조직 하나회 는 공조직을 무력화했다.
전두환 신군부가 박정희 사후 권력을 찬탈한 12.12 군사반란 은 전두환의 보안사가 군통신을 장악했고 하나회가 수도권 각급 부대 요직에 포진해 성공할 수 있었다. 하나회 군인들은 전두환 쪽에 납치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구출하라는 군령을 어겼다. 정치군인들이 군령보다 사조직 명령을 따름으로써 서울의 봄 이 짓밟혔다.
후일 단죄됐으나 성공한 쿠데타 로 불린 탓에 반란세력에 대적한 참군인들의 존재는 한동안 묻혀있었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진기 헌병감은 반란군을 진압하려 동분서주했으니 휘하 주력부대들이 반란군에 가담해 저항은 꺾이고 만다. 정병주 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은 총부리를 거꾸로 든 동료들에게 맞서다가 최후를 맞는다.
개봉 일주일 만에 관객236만명을 모은 영화 ( 서울의봄)은 정치군인과 참군인을 대비시킨다. 군사정권하에서도 참군인이 있었다는 귀한 사실을 일깨운 게 영화의 미덕이다. 지금도 참군인은 존재한다. 해병대 채모 상병 죽음의 진상을 밝히려다 항명죄로 기소된 박정훈 대령이 참군인이다. 그런 박 대령이 맡은 군사경찰 병과장직을 해병대가 지난 28일 박탈했다. 군사정권도 아닌데 참군인의 수난은 그치지 않는 현실에 분노한다. 영화 엔딩의 군가 전선을 간다 를 들으며 감오랑 소령의 최후를 떠올린 관객이 적지 않다고 한다 "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전우여보이는가 한맺힌 눈동자." 서의동 논설실장 / 11월30일 경향신문026면기사
주말 서울의 봄 영화 한편 어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