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 원은 기본이라는 국산 경차들이 잘 팔리는 이유
by오코모46분전
생산 중인 캐스퍼 / 현대차 제공
경차는 소형차와 더불어 보급형 자동차의 상징이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기아 모닝은 965만 원부터 시작했고 최근 단종 수순에 들어간 쉐보레 스파크도 977만 원에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돈이면 차라리 아반떼를 사고 말지"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로 현재 판매되는 경차 가격은 준중형 세단에 범접할 수준이다.
한 예로 현대차가 작년 9월 출시한 경차 캐스퍼는 인스퍼레이션 트림에 터보 패키지인 '액티브 2'와 선루프만 더해도 2천만 원을 넘긴다. 반면 아반떼는 스마트 트림에 시동 버튼, 원격 시동을 지원하는 스마트키, 듀얼 풀오토 에어컨과 스마트 트렁크, 하이패스 시스템 등이 포함된 '컨비니언스 1'을 추가해도 견적표에는 1,991만 원이 찍힐 뿐이다. 옵션에 차이가 있더라도 같은 예산으로 준중형차를 살 수 있는데 왜 많은 소비자들은 경차를 선택할까?
편의사양 고급화
가심비가 우선
캐스퍼, 레이 운전석 통풍시트 버튼
YouTube '시골양 SHEEP POV'
현재 한국에서 필수 옵션인 통풍시트는 2000년대까지만 해도 최소 K7, 제네시스, 에쿠스, 체어맨 등 준대형 이상 차급에서 선택할 수 있는 고급 옵션이었다. 2010년대 들어 중형과 준중형급 모델에도 확대 적용되며 대중화 흐름을 타기 시작했고 현재는 운전석 한정이긴 해도 캐스퍼, 모닝, 레이 등 경차에서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로 이탈 방지 시스템도 빠지면 섭섭하다. 10년 전 이 두 가지 옵션을 넣을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차는 그랜저 HG였다. 하지만 현재는 캐스퍼 전 트림에 차로 유지 보조 시스템이 기본 사양으로 들어가며 모던 트림에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선택할 수 있다. 풀옵션 경차를 구매하는 고객들은 큰 차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면 작은 차를 사는 대신 각종 고급 사양을 선택한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경차 호황기 다시 올까
레이 10만 대 찍을 수도
캐스퍼
레이 페이스리프트 / 더 팰리세이드 순수오너클럽
트렌드가 이렇다 보니 경차도 비쌀수록 잘 팔리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기아의 올해 1분기 통계에 따르면 레이 중급 트림인 프레스티지가 전체 판매량의 70%, 최상위 트림인 시그니처가 21%를 차지했으며 스탠다드는 8%에 그쳤다. 현대 캐스퍼 또한 2천만 원을 넘나드는 인스퍼레이션 트림이 70%, 중급 트림인 모던이 20%, 스마트는 9%꼴로 나타났다.
지난 몇 년간 경차 판매량이 바닥을 기었으나 올해 다시 호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자동차 부품 공급난 여파로 차량 판매량이 전체적으로 감소세를 보이는 가운데 올해 1~7월 경차 판매량은 78,056대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캐스퍼는 23,288대, 레이는 22,195대가 판매됐다. 캐스퍼는 올해 판매 목표가 5만 대이며 레이는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흥행할 경우 총 10만 대를 찍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차급 신분제 깨지나
차박 열풍도 한몫
캐스퍼 풀 플랫 시트 / View H
레이 페이스리프트 풀 플랫 시트 / 기아
국내에서는 자동차의 크기와 가격으로 차주의 신분을 결정짓는 '자동차 카스트'가 맹위를 떨쳤다. 하지만 요즘은 경차의 상품성이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아졌으며 더 이상 자동차 카스트에 얽매이지 않는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경차는 무조건 저렴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이 줄었다. 또한 차박 열풍도 경차 판매량 증가 원인으로 꼽힌다.
경차 차체 규격(전장/전폭/전고 각각 3,600mm/1,600mm/2,000mm 이하) 내에서 공간을 최대한 뽑기 위해 박스형에 가깝게 만든 차체가 차박에 최적화되었다는 이유다. 차박이 유행하기 전에 출시된 레이는 조수석 풀 폴딩과 뒷좌석 6:4 폴딩, 슬라이딩을 지원해 공간 활용성이 우수한 차로 평가받았다. 이번 페이스리프트 모델부터는 캐스퍼와 마찬가지로 운전석까지 접히는 1열 풀 플랫 옵션이 추가되며 본격적으로 차박이 가능한 경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