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련병사 이반
1. 마음으로부터 우는 자는 소경도 울게 할 수 있다.
요안나 콘스탄티노바는 관(棺)이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기를 원치 않았다.
17일 아들의 부대로부터 전보가 온 이후로 계속 그녀는 이 때가 오는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의 부은 눈을 돌려 사람들로 가득 찬 방에 서 있는 남편 바실리 트로피모비치를 보았다.
‘기도의 집’에서 온 한 무리의 형제들이 숙연한 모습으로 남편과 같이 서 있었다.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얼굴이 마루바닥을 향하여 완전히 숙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어이 그 순간은 닥쳐 왔다.
기차 역에서 이반의 관을 싣고 온 소형 트럭이 바깥의 바퀴자국 난 도로에 마찰음을 내면서 멈췄다.
커튼 사이로 요안나는 7월 무더위의 정적 속에 트럭을 호송한 군(軍)차량을 볼 수 있었다.
세 명의 소련 군인들이 회색 군복을 입고 차 옆에 차렷 자세로 서 있었고, 관은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려져 운구하는 사람들의 땀에 젖은 어깨 위에 올려지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 셈욘이 대문을 지나 안채로 그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군인들을 보자, 요안나는 자기가 저지르게 될지도 모를 행동을 생각하고 공포에 질렸다.
죽은 아들을 보고도 울어서는 안되며 기절할 수도 없다.
이런 어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그녀는 자신의 모든 의지력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눈이 남편과 마주쳤다. 그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거룩한 능력이 그에게 임한 것 같았다.
두 장교와 한 젊은 병사가 머리를 숙여 낮은 문을 통해 어색하게 걸어 들어왔다.
그들은 사람들이 가득 찬 방에 그리고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에 자기들이 환영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불편해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비켜서며 군중 가운데 좁은 길을 만들어 바실리 트로피모비치에게 다가가게 했다.
관은 이반의 친구였던 네 명의 젊은이들에 의하여 높이 들려서 앞으로 나아갔다.
요안나는 관이 그렇게 큰 것에, 또 거기서 번쩍이는 금속 반사광선에 질려버렸다.
젊은이들이 요안나가 준비해 둔 상(床)에 관을 내려 놓을 때 남편은 약간 비틀거렸다.
방 안의 대부분의 여자들은 검은 천으로 이마를 가리고 있었다.
이제 몇몇은 흰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요안나는 그 관이 용접되고 소련군 휘장으로 몇 군데 인봉된 것을 보았다.
장교 중에 상급자인 특수임무 부대의 플라토노프 대위가 불안한 듯이 목을 가다듬고 그 부모에게 인사를 했다.
“말신(Malsin)중령과 616968T부대 장교들과 병사들을 대신하여, 병사 이반 바실리에비치 모이세예프의 부모와 친척 그리고 동지들에게 이번 불행한 젊은 소련 병사의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
그의 눈은 불안한 듯, 방 안의 이 사람 저 사람 얼굴로 쫓겨 다니듯 옮겨 다녔다.
어깨를 덮은 숄 밑에서 요안나는 아들이 죽기 며칠 전에 보낸 편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들의 일부분이라도 그 대위로부터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그녀는 플라토노프의 거짓 앞에서 얇은 편지들을 손바닥으로 감싸 자기 앞으로 당겼다.
그녀는 붉은 우표 위에 스며든 붉은 우체국 소인의 날짜에 따라 1972년 6월 15일, 1972년 6월 30일, 1972년 7월 9일, 1972년 7월 14일, 15일 순으로 편지를 정리해서 묶어 두었다.
이 날짜들은 관 앞에서의 거짓에 항거하며, 그녀의 손 안에서 울부짖는 것 같이 느껴졌다.
애도라고? 그녀의 눈은 불타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아들의 관을 열어볼 권리가 있습니다.”
바실리 트로피모비치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필요한 짓입니다!”
플라토노프는 자신도 모르게 날카롭게 대꾸했고, 그 더운 방 뒤에서 고개 숙였던 사람들 중 몇몇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당신 아들의 몸은 이미 케르치(Kerch)에서 당신과 당신 아들 셈욘 바실리에비치에 의해 확인 되었습니다.”
그는 접은 손수건으로 그의 이마를 자근자근 누르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계속했다.
“그런 처절한 사건은 당신과 부인에게 충격이었습니다. 더 큰 슬픔을 초래하지 마십시오.”
그는 이제 속삭이듯, “익사라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드니까요.”라고 말했다.
요안나는 자유로운 다른 손으로 남편의 옆을 찔렀다.
“저 장교 동무의 이름이 무엇이었죠?”
“플라토노프.”
“플라토노프, 이반의 어미로서 나는 그 관을 열 것을 주장합니다. 내 아들을 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들이 군복이 아닌 평민복을 입고 매장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권리입니다.”
못 뽑는 연장이 군중을 통과해 바실리에게 전해졌다.
플라토노프는 몸을 굽혀 다른 두 군인과 귓속말을 주고 받았다.
잠시 후, 바실리는 납작한 연장 끝을 관 뚜껑 적당한 틈에 꽂았다.
그 군인은 손을 내저으며 그를 저지하려 했다.
“모이세예프 동무, 미안하지만 우리는 다른 임무가 있어 곧 떠나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은 매우 어리석은 짓입니다.”
세 군인은 아버지 곁에 서 있는 셈욘을 힐끗 쳐다보고는 군중을 헤치고 사라졌다.
다시 바실리는 연장을 관 뚜껑에 대고 지렛대의 끝을 눌렀다.
관이 열림과 동시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 요안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셈욘은 미친 듯이 관으로 뛰어 뚜껑을 부여잡고 숨 넘어가는 소리로 절규했다.
“아빠! 안 되요. 아빠! 열지 말아요!”
연장이 마루에 꽝하고 떨어졌다.
바실리는 그의 아들을 옆으로 밀치려 했다.
사람들은 앞으로 나가 왜 이런 소란이 벌어졌나 보려고 했다.
“무슨 일이야?”
“셈욘이 아버지와 싸우고 있군.”
“싸우는 게 아니야. 그는 관을 못 열게 하고 있어.”
“누가 싸워? 알 수 없는 일이군.”
“창피한 일이야, 그의 형제인데.”
두꺼운 예복 밑의 셔츠가 흠뻑 젖은 채로, 목사 두 분이 재빨리 앞으로 나가 셈욘의 팔을 하나씩 잡아서 끌고 나갔다.
뒤에서는 몇몇 여인들이 큰 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변화에 따라 눈물을 흘리며 큰 소리로 또는 낮은 소리로 간구하고 있었다.
셈욘은 목사님들의 팔에서 발버둥치며 관을 향해 가려 했지만, 그의 음성은 멀어져 갔다.
“아빠! 아빠! 엄마! 제발 그냥 두세요, 관을 열지 마세요!”
요안나는 그 아들을 응시했다.
그런 혼돈 속에서 갑자기 그녀에게 큰 피곤이 엄습했다.
오래 전에 그녀는 셈욘의 어린 야망 -집단농장에서의 허리가 부러지는 노동자 신분을 벗어나 농장의 지도위원회의 일원으로 성공하겠다는-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어느 날 젊은 개척자의 붉은 스카프를 둘러 쓰고 학교에서 돌아왔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것을 벗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모이세예프가의 자신감에 넘치고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다.
이제 두려움에 떠는 셈욘이 공포에 질린 아이같이 애걸하는 것을 그녀는 멀거니 바라보았다.
젊은 개척자들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특혜는 그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 말았다.
당은 명령을 내려 그의 형의 시체를 감추는데 적극 도우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두 목사님들이 셈욘을 밀어내어, 돌보지 않고 버려둔 배추 포기와 장미가 자라고 있는 뜰로 나갔다.
문은 약간의 마찰음을 내고는 곧 조용히 닫혔다.
바실리는 못 뽑는 연장에 기대고 서 있었다.
그리고 조금 후 연장 누르는 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관으로 시선을 모았다.
관은 정오를 막 지난 태양에 반사되어 번쩍이고 있었다.
두려움 속에서 뚜껑은 열렸다.
목사님들이 앞으로 나아가 주저하면서 시체를 힐끗 보았다.
목사님들의 얼굴을 스쳐가는 경악을 보자 요안나의 가슴 속에는 극심한 고통이 엄습했다.
가장 연로한 축에 드는 피오도로 고렉토이는 그의 흰머리를 관에 기대고 눈을 돌렸다.
풍상에 그을린 그의 얼굴에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두려움에 떨면서 요안나는 옆에 있는 동생의 손을 잡았다.
팔 하나가 그녀를 감싸고 천천히 관 앞으로 데려갔다.
요안나는 남편의 흐느낌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떨면서 아들에게로 다가가고 있었지만, 그녀 안의 모든 것은 그녀를 떠나, 그 방을 떠나, 그녀가 차마 볼 수 없는 것들을 떠나 도망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힘을 들여 관을 들여다 보았고, 숨을 멈추고 그 안의 시체를 응시했다.
그것은 이반이 아니었다!
그녀는 계속 바라보면서, 그녀 안에 안도감이 들지 않는 것이 이상스러웠다.
그것은 좀 더 나이 든 병사로서 목은 늘어져 있었고 생사를 건 격투를 한 것 같이 얼굴은 양쪽이 모두 상처투성이였으며, 입은 부어 올라서 터졌고, 이마와 머리 좌우는 거무스름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의 검은 머리가 얼굴 위로 빗어 넘겨져 조금은 이반 같아 보였다.
그녀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옆에서 어떤 사람이 신음했다.
갑자기 그녀의 눈에 눈물이 어른거렸다.
그것은 분명히 그녀의 아들 이반이었다.
그녀는 쓰러져서 다시 울기 시작했다.
2. 주를 앙망하라 그러나 스스로 노력하라
살을 에는 11월의 하늘 아래 누런 포도원을 걸어가면서 이반의 마음은 찬양으로 가득 찼다.
그 저녁의 찬송이 그의 마음에 되살아나면서, 자기의 마음을 반은 노래로, 반은 말로 하나님께 아뢰고 있었다.
“그 젊은이들, 그 송별회, 그리고 빵과 포도와 꿀을 감사합니다.
내 고향 몰다비아에서 난 신선한 포도주스 그리고 친구들, 보리스, 블라디미르, 루바, 야콥, 빅터, 스베틀라나 모두 감사합니다.
당신의 말씀도, 스테판과 사샤의 설교도 감사합니다.
엘레나의 생일로 인하여 이런 모임을 갖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부엌에서 그의 어머니는 성애 낀 조그만 창을 통해 달빛 속에 들판을 걸어오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얘가 군에 입대해서 무슨 일이 있을까요?”
그녀는 가스 스토브 옆에서 장화를 손질하고 있는 남편에게 묻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남편은 장화를 마루에 쿵 떨어뜨리면서 허리를 폈다.
그는 “주님께서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하셨어.”라고 구약 성경을 인용했다.
바실리는 될 수 있으면 조용히 그리고 싸움을 피해 살기를 바랐던 사람이었다.
“우리들은 그런대로 좋은 세월을 지냈구려.”
아내는 창으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스탈린 시대를 회상하고 있었다.
언젠가 바실리는 그 도시에 머물고 있던 관광객으로부터 이천만 명의 소련인이 학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녀가 알기로도 그만큼은 죽었을 것 같았다.
요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답지 않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가 벽난로에 장작을 집어넣으러 가는 것을 바실리는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 애는 겨우 열 여덟살이어요. 믿은 지는 2년밖에 안 되었고요. 그 애는 어려움을 당할 거예요.”
요안나의 머리에 쓴 모자가 약간 밀려 내려가니 마치 어린 소녀 같았다.
그녀는 차 봉지를 집었다.
“그 애는 뜨거운 차를 원할 거예요.”
그녀의 음성은 낮았지만 속삭이는 것인 아니라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이런 조용한 웅변은 특별히 러시아적이라고 바실리는 생각했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공중 집회 장소나 일터에서도 사람들은 강조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
몰다비아 사람들도 저들과 같이 이것을 배워야 했다.
커튼이 움직이고 문이 열리더니 이반이 들어와서는 빨개진 손에서 장갑을 벗었다.
요안나는 아들의 얼굴에 어린 미소를 보고서 그 저녁모임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왔었지?” 그녀는 주전자를 난로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다 왔어요. 스테판과 사샤도 설교를 했구요!”
“뭐? 스테판과 사샤가 설교를 했다고?”
아이들의 간이침대가 놓여 있는 침실에서 셈욘이 뛰어오며 소리쳤다.
그는 부모들을 좀 불편하게 만들고는 재미있어 했다.
그의 부모들은 셈욘이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대화를 듣지 않도록 조심했다.
셈욘은 부모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척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이, 형! 비밀모임을 마치고 오는거야?”
“셈욘, 오늘은 엘레나의 생일이었어. 너도 왔어야 했어.”
“그리고 오늘이 형이 앞으로 2년간의 군복무를 위해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이라는 사실과 그 모임과는 아무 관계가 없겠지. 아무도 주의하지 않았을 거야, 물론!”
“셈욘, 너도 차 마시러 오렴.”
요안나는 잔을 상에 놓으면서 약간 꺼림직하게 느꼈다.
이반의 어제 저녁 일을 가지고 셈욘이 따질 셈인가?
“드디어 스테판이 설교를 했다고! 잠깐이라도 처녀들이 이반으로부터 눈을 뗐겠군!”
이반은 얼굴을 붉혔고 셈욘은 재미있게 웃어댔다. 요안나도 미소를 지었다.
“그는 멋진 군인이 될거야.”
말씀을 가지고 설교한다는 것을 셈욘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형은 멋진 택시 운전수였지. 형이 가버리면 내일부터 형의 고객들은 어떻게 할 지 모르겠군. 병원으로 가는 노인들이 길에서 ‘젊은 이반이 어딜 갔나?’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군.”
“네가 친절히 해주면 그들은 곧 나를 잊을거야.” 셈욘은 그 말에 가슴이 답답했다.
“친절이라고? 그건 볼셰비키 말이 아니잖아? 친절, 사랑! 사랑이란 생물학적인 반응이야.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그의 눈은 부엌 벽에 어머니가 예쁘게 꽃으로 장식한 성경 구절에 머물렀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어떻게 영이라고 생각되는 하나님이 생물학적인 반응을 하나?”
“엄마에 대한 너의 사랑도 생물학적이니?”
이반은 빈 찻잔을 상에 내려놓으며 조용히 물었다.
“물론이지. 그는 나의 엄마니까 모종의 결합이 있지. 아빠도 마찬가지고.”
“그럼 네가 결혼하게 되면, 넌 네 아내를 사랑하지 않겠니?”
“그건 어느 때보다도 더 생물학적이지!”
셈욘은 조그만 승리감에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성적인 이끌림일 것이고, 그리고는 상호 존경에 기초를 둔 우정이 되겠지.”
요안나가 너무 심하게 난로를 쑤석거리는지 불티가 밑으로 막 떨어졌다.
남편은 다른 한 짝 장화를 마저 닦기 시작했다.
이반은 동생에게 의자를 더 가까이 끌고 갔다.
“그러면 몰다비아는? 네가 네 고향 몰다비아에 대해 느끼는 사랑은 어떤거니? 그건 뭐니?”
셈욘은 깊이 사색하는 자세로 의자를 제쳤다가 마루에 쿵 소리를 내며 바른 자세로 돌아왔다.
“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형이 붉은 군대에서 친절과 사랑을 찾아볼 수 없다는 거야. 그 곳 생활은 농담이 아냐. 형이 듣지 않아도 난 상관 없어. 형이 지금은 거기 앉아서 웃고 있지만 내일 이후로는 웃지 않을 거야.”
이반의 자신 있는 표정과 부모의 표정은 어쩌면 그렇게 같을까!
“셈욘, 물론 나는 웃으며 즐겁게 지낼거야. 내가 군에 들어가 복무를 마치도록 강요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야.
주께서 나를 입대시키는 거야. 그 분이 나를 버리실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셈욘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논쟁할 일이 아냐. 형은 어려운 때를 보내기로 결정한 거야. 그럼 잘 자!”
그는 가스 히터 옆 의자에서 따뜻해진 담요와 베개를 들고 아까 자던 조그만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에서 그는 몸을 돌이켰다.
“형이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항상 기도나 하면서 바보같이 스스로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얘기만은 아냐.
그런 행동은 군에서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난 말하고 있는거야. 내 말을 듣지 않아도 좋아! 난 할 말을 했으니까.”
그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장화를 벗는 동안 침대 스프링은 계속 끼익끼익 소리를 냈다.
바실리 트로피모비치가 불안한 정적을 깨뜨렸다.
그 음성이 너무 낮아서 들리지 않자 요안나는 난로를 쑤석거리던 동작은 멈추었다.
“이반! 하나님께서 네게 말씀하시는 대로 행해라. 그래야 한다. 셈욘이 말한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 음성은 힘없이 끊어졌다.
그는 난로 밑의 빨간 불티들을 잠시 응시했다.
“내가 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는 아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살펴보았다.
“네 어머니와 나 그리고 온 가족과 형제들이 너를 위해 계속 기도하마. 너도 알겠지?”
요안나는 난로 곁에 구부리고 있다가 재를 한쪽을 밀어놓고, 남편 곁으로 다시 돌아와 바느질 바구니를 집었다.
창 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방 입구에 걸려 있는 얇은 커튼을 안쪽으로 휘날렸다.
이 커튼들도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를 듣고 싶어서인가!
이반에게는 18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확신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강제노동 수용소의 형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얼굴에서도 이런 것을 보았었다.
그들은 최악을 경험했지만 견딜 만하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수용소가 아직 그들 가운데 있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다르게 행동했다.
자유롭게 되는 곳은 오직 감옥인데, 거기서는 이미 모든 것을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얘기들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반은 이미 이 자유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도무지 조심하는 것을 몰랐다.
말하기 전에 휙 둘러본다든지, 누가 근처에 있는지 살펴보는 조심성을 배워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등록된 집회장소에서 조차도 신자들은 두려움이 많았다.
경찰에 밀고하는 자가, 지금 방문객과 너무 오랫동안 얘기하는 신자를 주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목사가 너무 열정적으로 설교하거나 심방을 너무 많이 하거나 회중의 이상 유무를 잊고서 보고를 안 해도 낭패다.
그들같이 등록되지 않은 회중인 경우, 조심과 분별은 생활방식이었으나 이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조바심을 어찌할 수 없었다.
셈욘의 방을 힐끗 보고, 아들의 얘기를 듣고자 몸을 기댔다.
바느질 거리를 비추는 빛을 막아 그늘이 졌지만 그녀는 아들의 얼굴에서 완연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이반이 조용히 얘기했다.
“언젠가 저는 꿈을 꾸었어요. 큰 바위 위에서 천사와 함께 보초를 서고 있었는데 그 때 큰 폭풍이 일어났어요.
저는 놀랐지요. 그 때 큰 바다 물결에 배 한 척이 너울거리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막 물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바다에 뛰어들어 그들을 구하래요. 저는 물 속에 뛰어들었고, 어떻게 해서 많은 사람을 해안으로 끌어 왔다고 기억 되요.
파도는 삼킬 듯이 덮치고 제가 마지막 한 사람을 끌어내고 나서 기진하여 쓰러졌어요. 그러나 천사가 저를 바위로 데려다 놓아서 다시 보초를 섰어요.”
요안나는 남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궁금했다.
이반의 이상한 꿈은 무슨 뜻일까?
그러나 남편은 조용히 앉아 아들에게 계속 이야기하라는 듯 아들 쪽으로 머리를 기울이고만 있었다. 이반은 계속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디 있든지 잠잠하지 말고 하나님에 대해 말하라고 했어요. 이것은 우리 목사님들이 말한 것과 일치하지요.
목사님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증거만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두려워 말라고 설교하셨어요. 스테판은 오늘 이것을 얘기했어요.
우리가 학교에 있든지, 일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본을 받아 복음을 증거해야 된다고요.”
바실리는 좀 망설이다가 드디어 아들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웃었다.
그는 아들을 껴안고는 한참 있었다.
“이반, 그러니 너는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마.”
바실리 트로피모비치에게는 그 밤이 긴 밤이었다.
이반이 여행가방을 이미 챙겨 침대 옆에 두고 잠들고, 다른 식구도 모두 자는 동안 바실리는 담요를 쓰고 난로 곁에 꿇어 앉아 아들을 위해 기도하며 씨름하고 있었다.
3. 하나님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거의 새벽 2시, 이반은 졸음에 부대끼고 있었다.
이 곳 오뎃사(Odessa)는 몰다비아보다 추웠다.
눈이 깊지는 않았지만, 열차로부터 트럭에 옮겨 타고 이제 막 연병장에 뛰어내린 징집 병사들의 군화에 묻어 녹은 물이 얼어서 표면은 미끄러웠다.
이제 그들은 미끄러지면서, 뛰면서 호송차량을 따라 어둠 속의 건물 몇 채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반도 어두움 가운데 여기저기서 외치는 소리를 분별하기 위해 신경을 쓰며 가고 있었다.
“이쪽이다. 빨리!”
“호송이 한 시간 늦었어. 우리는 한 시간이나 기다렸어.”
“차렷! 똑바로 섯! 애 모두 이 모양이야, 낙오병들아! 빨리, 어서.”
“어떻게 이 시간에 저들의 잠자리를 준비할 수 있는지 알고 싶소. 누구든지 오후 10시 이전에 도착하도록 규정하고 있소.”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밤새도록 저들을 추운 곳에 세워놓겠소?”
“누가 환영사를 하게 되어 있소?”
큰 점퍼에 목도리를 거의 모자 끝까지 휘감은 장교의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나, 얼어붙은 병사들이 서 있는 앞 단상에 우둔하게 올라섰다.
그는 목도리 안에서 소리치며 연설하고 있었다.
시간이 너무 늦었으므로 환영사는 간단히 하겠으니 모두 막사로 들어가 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 막사들은 큰 건물로서 그들이 서있는 정면에 있었다.
여러 개의 조명등이 비치는 그 건물들은 5층 높이였다.
각 건물의 각 층은 6개의 숙소로, 한 숙소에 32명씩 도합 192명이 한 층에 묵을 수 있었다.
병사들은 기차에서 쪽지를 받았는데 거기에는 각자의 막사, 층 그리고 방 번호가 지정되어 있었다.
장교들이 배정되어 병사들의 침대를 지정하고 있었다.
한 장교가 갑자기 멈춰 서서 헛기침을 하더니 목도리를 벗고, 그리고 눈 위에 침을 탁 뱉었다.
그들은 새벽 6시에 기상나팔에 따라 잠을 깨어, 5분 내에 일어나 옷을 입고 침구를 정돈하게 되어 있었다.
그 때에 그들은 다음 지시를 받게 될 것이다.
이제 해산이다.
그리고 그 뚱뚱한 모습은 굴러가듯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곧 활동사진과 같은 행동이 시작되었다.
장교들은 되살아난 듯이 각 방향으로 군인들을 미고 소리치고 해산시키고 했다.
막사 안에서도 피곤한 병사들이 천정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침상 쪽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장교들의 고함 속에서 그들이 손에 든 펄렁거리는 푸른 쪽지에 적인 번호를 찾아 허둥거리는 모습이, 마치 밤 늦게 일 막이 끝난 극장에 들어와 좌석을 찾는 사람들 같았다.
이반에게는 생소한 억양이 방 안에 가득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더듬거리는 러시아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바이엘로러시아인들은 유명한 모스크바 액센트에, 느리고 부드러운 북쪽지방의 억양을 섞어 이야기 했다.
그리고 구석구석마다 피곤한 팔과 다리, 웃음소리, 욕지거리 등이 모자이크 무늬를 짜며 온 막사에 가득 차 몽롱한 꿈 속 같았다.
아침에는 눈이 약간 내리고 있었다.
보리스 야콥레비치 프롤로브가 기상나팔을 입에 댈 때, 작은 눈송이가 속눈썹과 나팔 위에도 떨어졌다.
그는 엄숙하게 나팔을 들어서, 간밤에 새로 온 병사들이 있다고 생각되는 막사의 삼 층을 향했다.
‘군대생활의 엄격함을 즉시 알려줘야지!’ 찬 공기를 힘껏 들이마신 후 그는 나팔을 불었다.
그는 여러 방안에서 벌어질 광경을 족히 상상할 수 있었다.
뒤에 쳐지지 않으려고, 느리거나 멍청하다고 잡혀 나가지 않으려고 반사적으로 옷 입으러 뛰어가는 모습들을 그려본다.
그들의 새 군복은 우스꽝스러워 보이고, 서로 크기를 재어볼 것이다.
그리고는 생선과 차 한잔으로 된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걸어갈 것이다.
이어서 첫날의 구보, 훈련, 그리고 식당과 체육관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일과로 주어진다.
그는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나팔을 불었다.
그는 이제 군복무가 11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그건 참 감사한 일이다.
이미 그의 부대의 병사들이 아침구보를 하기 위해 벗은 몸으로 막사를 나서고 있었다.
그들은 아침 먹기 전에 15킬로를 뛰어야만 했다.
보리스는 나팔을 내리고 곧은 걸음걸이로 막사를 향해 걸었다.
아마 오늘 사격연습에서는 총알 하나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이반이 식당을 향해 걸어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기도하는 장소를 찾는 것이었다.
많은 병사들, 막사의 소란함 그리고 혼자 있기 어렵다는 것이 이미 그에게 부담이 되고 있었다.
그가 지나쳐온 포플러나무들 조차도 혼자라면 의심을 받는지 서로 뒤엉켜 있었다.
이반이 긴 행렬 뒤에 서서, 찬 공기 속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차를 한 잔 기다리고 있을 때 식당에는 철갑상어를 굽는 냄새가 은은히 퍼져 있었다.
그는 집에 있을 때 이 시간이면 기도하곤 했다.
집에서는 그가 운전교육을 다니던 바쁜 날일지라도 기도시간 정하기는 쉬웠다.
어떤 때는 기차가 떠나기 전에 몇 시간씩 기도할 수도 있었다.
이런 추운 겨울 아침에는 두 동생이 따뜻하게 같이 껴안고 부엌 난로 위에 침구를 깔고 자기도 했다.
그들이 잠든 옆에서 기도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기도소리가 조용히 올라갔다가 내려가도 숨소리 같아서 전혀 잠을 깨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은 식사 후 조용한 장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선 접시는 이미 비웠지만, 식탁에 앉은 30여 명의 병사들은 배가 고파서 계속 검은 빵 접시를 돌려가며 다 비웠다.
식사당번이 큰 주전자를 가지고 식탁을 다니며 치켜 올린 컵들에 미지근한 차를 따라주고 있었다.
고독이 이반의 목을 조이는 것 같았다.
그것은 물론 그가 예상했던 것이었지만, 군대 생활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았다.
각자가 자기의 작은 세계에 몰두해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 한 모금의 차를 넘기는 사람, 마지막 한 조각 빵으로 접시를 닦아 먹는 사람, 접시와 컵을 들고 균형을 유지하며 긴 의자를 넘는 사람, 문 쪽으로 급히 나가는 사람, 기차에서 사귄 친구와 잠깐 얘기하는 사람 등등.
추운 11월 새벽 공기 속을 향하여 군인들이 나가고, 또 줄을 이어 들어오고 있었다.
“너희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내 아버지의 천사 앞에서 너희를 시인하리라.”
이반에게 수없이 말씀하신 이 음성은 너무도 분명했다.
이반은 포크와 스푼을 접시 위의 컵에 세워놓고 의자에서 일어나 다른 사람들과 같이 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처음 해야 될 일은 기도할 장소를 찾는 것이었다.
스트렐코프 하사는 길고 평범한 얼굴에 조바심이 날 때는 양 볼을 빨아들여 쏙 들어가게 하곤 했다.
두 주간 동안 그는 새로 오는 군인들을 훈련시켜 뭔가 만들어 보려고,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질문하고, 격동시키고 또 간섭해 왔다.
그는 장화에 얼어 붙은 한 덩이의 진흙을 신경질적으로 떨쳐버렸다.
이번의 신병들은 형편 없었다.
찬 바람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 꿈틀거리며 구보중인 부대 뒤의 낙오병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는 연병장 끝에서 허둥지둥 뛰어가고 있었다.
그건 모이세예프였다.
숨을 헐떡이며 이제 그는 대열에 들어섰다.
스트렐코프가 곁눈질로 훑어보았지만 부동자세로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약간 기분이 좋았다.
이런 기회에 버릇을 고쳐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이세예프 동무, 왜 늦었는지 이유를 말하라.”
스트렐코프의 엄한 태도는 자기 자신은 한번도 늦어본 일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먼 길을 뛰어온 이반의 벗은 가슴은 벌떡 이고 있었다.
그는 숨을 진정시키면서 꼿꼿이 서 있는 하사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스트렐코프가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긴장은 더해갔다.
“죄송합니다. 하사님. 저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스트렐코프는 이반을 노려 보았다.
모이세예프의 진지한 표정에서 익살꾼의 그것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대열 중의 누군가가 갑자기 기침을 했다.
스트렐코프는 부동자세의 군인들을 응시했다.
이들은 자기들이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을 그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스트렐코프는 군대에 오래 있어서 이런 위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모이세예프, 넌 이 부대와 계속 훈련한다. 훈련이 끝나면 내게 보고하라.”
그는 한 걸음 물러나 대형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군인들은 연병장의 곳곳에 흩어져서 훈련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군인들은 달리고 뛰어오르고 팔을 흔들어 신호하는 등, 전투대형 연습에 연병장은 활기를 띠었다.
이반은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을 잘못 사용하여 늦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떨쳐버리고자 훈련에 몰두하기를 원했다.
사용되지 않는 방을 기도처로서 발견하고 기뻐한 것은 쉬운 일이었다.
방을 청소하는 늙은 여자가 그 방은 오전 10시까지는 사용되지 않는다고 확인해주었다.
그녀는 새벽 5시에 열쇠로 문을 열고 방을 청소했다.
그 곳의 조용함에 영혼을 맡기는 매일 아침의 찬양은 이반을 감격하게 했다.
거기에는 가죽 의자가 있었는데, 그는 꿇어 앉아 팔꿈치를 의자에 올려놓고, 의자의 등을 깨진 유리창 쪽으로 향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을 잊고 훈련에 지각을 하다니! 창피하고 마음이 상해있는데 스트렐코프의 부르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하사의 무신론은 삼 대째 내려온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최초의 볼셰비키 당원 중의 한 사람으로 혁명 당시 전함 오로라의 해군 사관생도 자격으로 레닌그라드 거리에서 전투한 경험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저 위대한 애국전투에서 국가를 위해 선전하다가 레닌그라드의 포위망이 풀리기 얼마 전에 부상과 굶주림으로 전사하고 말았다.
그가 죽었을 때 그 주머니에는 공산당원 신분증이 들어있었다.
스트렐코프는 자기 지갑 속에 자신의 당원증을 간직하고 그 밑에는 아버지의 당원증을 꽂고 다녔다.
스트렐코프는 소위 “부르주아 잔당”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군에 있다는 사실을 언짢아 했다.
그는 장갑 낀 두 손을 비비며 이반에게 따라오라는 표시로 고갯짓을 하고는 걷기 시작했다.
“모이세예프, 기도라고 했지? 농담하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자네 어디 안 좋은가?”
“아닙니다. 저는 건강합니다.”
“정교회 소속인가? 교인인가?”
스트렐코프는 이 날이 혹시 정교회의 행사일인가 생각해 보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무슨 종교기념일에는 사건이 있곤 했다.
“아닙니다. 저는 침례교인입니다.”
그건 낭패였다.
침례교인들은 그 행동을 예측할 수 없었고 고집불통이었다.
콤소몰(komsomol)의 청년당원 시절에 스트레코프는 농촌지역의 반종교 세미나를 인도하곤 했었다.
침례교도들도 참석했지만, 종교적인 질문에 어찌나 길게 대답하곤 했던지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기는 어려웠다.
“모이세예프, 여기서는 안돼! 기도, 종교! 붉은 군대에선 안 돼. 소련 어디서든지 종교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특별히 소련 군대에서 훈련 받는 젊은이들 가운데서는 더하다. 틀림없이 자네는 생각을 바꾸게 될 거야.”
이반은 묵묵히 그와 걸으면서, 그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지 주의하고 있었다.
“자네가 친구들을 사귀고 좀 더 군대생활을 즐기게 되면 자넨 종교적인 사고가 얼마나 유치한지 알게 될 거다.
소련도 전제군주와 교회의 속박을 벗어 던진 후에야 강하게 되었다. 사람도 이와 꼭 같다.”
그의 두툼한 외투에도 불구하고 스트렐코프는 한기를 느꼈다.
방에 들어가 책상에 앉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반을 힐끗 보았다.
그의 피부는 발갛게 추위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반은 연병장을 가로질러 자기 대열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스트렐코프는 장화를 털고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담요장화에도 불구하고 발은 점점 시려오고 있었고 게다가 아침 차도 걸렀다.
오늘 인터뷰는 성공적이 아니었다.
모이세예프가 기도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정훈 장교에게 통고해야 할 사항이었다.
정치국 사무실은 밝지 못했다.
희미한 겨울 햇빛이 조금 들어오고 있었지만 검댕투성이의 유리창 위에 힘없이 축 쳐진 녹색 커튼에 그나마 햇빛은 차단되고 있었다.
정치국 장교 보리스 짤리바코 대위는 키가 작고 단단한 몸매에 털북숭이 눈썹을 가진, 속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워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시간을 안 지킨 것 따위는 그에게 조금도 흥미거리가 되지 않았지만, 모이세예프가 농담한 것이 아닐진대 스트렐코프의 이야기는 그에게 흥미가 있었다.
모이세예프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스트렐코프는 좀 걱정이 되었다.
모이세예프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걸, 그와 대화하지 말걸, 그렇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에게 좋은 조언을 해서 잘 되도록 도와주기를 스트렐코프는 바랬었다.
그러나 모이세예프가 자기를 놀렸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부대원들은 모이세예프가 기도했다고 말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고, 그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명이나 실제로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을까?
누가 가까이 있어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지 스트렐코프는 생각해보려고 애썼다.
짤리바코 대위는 책상 건너편에 차려 자세로 서있는 모이세예프를 거만스럽게 주시했다.
그의 모자는 정확한 각도로 머리 위에 있었고, 예의 바르게 경례를 했다.
짤리바코와 눈이 마주쳤을 때, 모이세예프의 의연한 자세는 그의 마음을 끌었다.
이 젊은 친구는 자신 만만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상대를 무시하는 티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짤리바코는 그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자네는 훈련신간에 늦을 것 같은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군. 무슨 이유로 동료들과 같은 시간에 점호에 응하지 못했는가?”
“매우 죄송합니다, 대위 동무. 제 게으름 때문입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자네는 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지 않아. 늦은 이유가 무엇인지 내게 말하라.”
짤리바코의 음성은 죄이는 듯했다.
그는 정확한 것을 좋아했다.
“저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어서, 허공에 머물러 모두에게 보이는 것 같았다.
스트렐코프는 큰 숨을 내쉬며 안심했다.
모이세예프를 보고한 건 잘한 일이었다.
종교가 아무런 해가 없게 보일지 몰라도 소련 사회에 위협을 준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레닌 자신도 공산당의 목표는 노동자들을 종교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스트렐코프는 자기를 잘 보이도록 몸을 꼿꼿이 했다.
짤리바코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었나?”
“하나님입니다.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짤리바코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우리 소련 과학자들은 이것을 완전히 연구해서 하나님이 없다는 공산주의 가르침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단 말이야. 하나님이란 사상은 미개한 시대에 이해할 수 없는 경제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야.”
“그건 무신론자들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건 올바른 사상이야. 공산주의 정부가 지지하는 입장이고, 과학원 그리고 소련 국방성을 포함한 모든 큰 단체의 입장이야. 이것이 소련 인민의 사상이야.”
“장교 동무, 저는 무신론이 소련의 공식 입장인 것을 압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들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믿음입니다.”
짤리바코는 책상 위에서 조서를 꾸미던 손을 멈추고 물었다.
“자네 성경 갖고 있나?”
“없습니다.”
“성경은 소련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책이야. 거기는 모든 종류의 비과학적인 오류로 가득 차 있어.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비굴하게 만들어. 군대에서는 소지할 수 없다. 왜 사람들이 그런 책을 읽는지 난 알 수 가 없어.”
“그 책이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군대가 인생을 변화시킨다. 모이세예프. 그리고 인간의 견해도. 아마 이것을 이해하는 데 자네는 도움이 필요할 거야. 그것이 네 성경이 선포하는 어떤 것보다도 더 깊은 진리란 말이야.”
“저는 최선을 다해서 군복무 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짤리바코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신앙심이 있는 신병들은 다루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보기와는 딴판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시민이요, 조용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들 같다.
그러나 위선의 탈을 쓰고 그들은 거짓교훈을 퍼뜨린다.
“자네 말을 들으니 기쁘다, 모이세예프. 자네 말은 자네가 하나님에 대한 비굴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소련 군인이 되는 데 필요한 모든 훈련에 임하는 것과 국가에 전적으로 충성한다는 뜻이겠지? 축하한다.”
스트렐코프는 감탄하면서 짤리바코 대위를 바라보았다.
정치국 장교는 사람들을 다룰 줄 알았다.
모이세예프의 실망한 표정을 무시하면서 짤리바코는 계속했다.
“난 자네의 정훈활동과 훈련상황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겠네.”
모이세예프의 반응을 예의 주의하면서 짤리바코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돌파구를 만들어 주었는데도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이 청년은 바보일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처음 시작은 다 바보 같았다.
그는 모이세예프의 소련어가 좀 더 알아듣기 쉬웠으면 했다.
그의 더듬거리는 웅변을 듣기는 좀 피곤했다.
“저는 소련 시민으로서 군복무를 하며 제 힘이 닿는 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데 도울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시민인 또 한 나라가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이 왕국은 신자들의 마음에 있으며, 이 나라의 법은 사랑의 법이기 때문에 소련에 위협을 주는 나라는 아닙니다. 저는 이 왕국의 시민권이나 하나님이신 왕께 대한 충성심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 분은 소련에도 그리고 세계 어느 곳에든지 그의 왕국을 세우십니다. 사랑과 용서의 왕국을.”
대답하는 짤리바코의 음성을 떨렸다.
“모이세예프, 우리들은 소련에서 이미 왕정을 끝내버렸어. 왕도 없어졌어! 아마 자네는 열성적이다가 이런 사실도 잊어버린 게로군. 우리는 국가에 충성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밖에는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스트렐코프는 김이 빠져버렸다.
그는 이런 일들이 순조롭게 처리되기를 바랬다.
그리고 어떻게 소련 청년들이 종교에 의해 이처럼 완전히 세뇌되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짤리바코도 만만치 않았다.
“모이세예프, 자네는 분명히 상관의 훈계와 조언에 저항하고 있다. 난 이 점을 우려하고 있네. 버릇을 고쳐주겠어. 자넨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좋아하니 그런 자세로 사회주의를 위해 노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물동이와 솥을 가지고 막사의 훈련실과 복도를 닦되 무릎을 꿇고 밤새도록 한다. 이런 종류의 연습을, 그것도 동료들 보는 앞에서 해 봄으로써 자네의 생각을 고치게 될지도 모르지. 자네가 계속 반체제 견해를 고수할 것인지 심사 숙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상.”
스트렐코프는 정중히 일어서서 짤리바코 대위에게 경례했다.
이 사건은 만족스럽게 끝났다. 모이세예프가 경례하고 방을 나가자, 이 두 사람에게는 약산의 승리감이 스쳐갔다.
그런 모멸적인 노동은 무릎이 무엇을 위해 잇는 것인지 모이세예프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12월의 해가 얼어붙은 하늘에 뿌옇게 떠오르기도 전에 이 신자의 이야기는 전 중대에 퍼져 있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 이야기가 전해질 때, 사람들은 웃으면서 머리를 흔들기도 하고 어깨를 추스르기도 하면서 재미있어 하는가 하면 또 관심 없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곧 이어서 두 번째 소식이 전해지기를, 정치국에서는 모이세예프에게 조그만 솔 한 개와 양동이를 주고 거대한 막사의 마루를 닦게 했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것은 장교들이 자기들의 방에 그를 불러다가 위협하고 방해하지만 그는 노래하면서 또 미소를 잃지 않고 평안하다는 것이었다.
점심 때 즘에도 병사들이 식당으로 가는 길에 그 방에 들러 그가 즐겁게 부르는 조용한 찬송에 귀를 기울이며 그를 주목해보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
소련에서 침례교인(Baptist)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신교도를 뜻하며, 교인(Churchman)이라면 러시아 정교회의 일원을 의미한다.
4. 각 사람의 마음에 새겨진 계명보다 더 확실한 계명은 없다 –톨스토이-
흑해로 연한 푸르른 해협에 있는 우크라이나의 해안도시 케르치는 여행을 많이 해보지 못한 젊은 병사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부대는 트럭에 실려 거친 길을 덜컹거리며 가고 있었다.
이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 제철소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반짝이는 바닷물 위로 바다 갈매기가 꾹꾹 거리며 날고 있어 새로운 풍물에 대한 기대를 더 하게 했다.
출발 전에 이미 병사들은 그 도시가 아주 오래되었다고 들었다.
그 도시는 6세기에 판티카페움이라고 불리는 희랍인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 도시의 가장 높은 언덕은 미트라데이츠라 불리는데 그 위에는 아직도 고대 희랍 성채의 유적이 남아있어 구경거리가 되고 있었다.
인솔 장교는 병사들에게 계속 설명했다.
이 성채는 헬라 시대에 노동자들의 본거지였는데 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영광스러운 소련 전통이 이 곳 케르치에 있는 희랍 성채의 그늘에서부터 연연히 이어져 왔다는 것은 병사들에게도 흥미롭게 들렸다.
이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나 바로 이 새로운 케르치의 부대에서 이반의 시련은 시작되었다고 그는 후에 회상했다.
처음 며칠간은 이반도 자유롭게 이곳 저곳으로 병사들과 몰려다니며 환담하고 가방에 가득 찬 책들과 서류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다시 힘이 솟았고 마음은 가벼웠다.
때때로 시험에서, 강의실에서 그리고 훈련장에서,
“주님, 제가 여기서 남보다 뛰어나게 해주소서.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훌륭한 군인이 되게 하소서.”라고 그는 기도했다.
오뎃사(Odessa)만 떠나면 이반은 그에 대한 심문이 끝날 것으로 기대했다.
짤리바코가 이반을 보내면서 기뻐했듯이 이반도 짤리바코를 안보게 되어 기뻤다.
그러나 짤리바코는 케르치의 정치국에 61968T부대에 교인이 있다고 자세히 보고하며 경고했다.
병사 모이세예프는 공공연히 기도하며, 침례교 신자로서 기회가 있는 대로 집회에 참석하겠노라고 공언했다.
그는 집요한 사상교육에 완강히 저항했으며 그의 믿음에 대해 침묵하기를 거절했다.
두 주일이 되기도 전에, 병사들의 토론 결과가 케르치 정치국 사무실에 보고 되기 시작했다.
레닌의 포고령 제 5조는 모든 종교인들에 대해 종교 행사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사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전도는 금하고 있었다.
모이세예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정치국 장교에게 설명하려고 했다.
자기 부대의 동료들은 때때로 그리스도에 대해 물어왔다.
그들이 구원에 관해 알기 원하는데, 그들의 질문에 대답해서는 안 된다는 법률 조항이 어디 있는가?
어떻게 그들을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신자는 다 증인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라는 것은 그 분의 계명일진데, 어떻게 매사에 느끼는 기쁨을 이반이 감출 수 있을까?
차가운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잎 낙엽도 하나님의 손길 때문이다.
잊어버렸던 성경 구절이 갑자기 생각 나는 것도 하나님의 음성이다.
휘몰아치는 바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달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이반의 몸의 힘은 하나님의 힘이 그에게 부어진 것을 말하고 있다.
정치국의 야르마크 대위는 젊고 가만히 있질 못했다.
그는 무슨 도전이 생겨서 자기의 위치가 당 조직에서 부상하기를 못 견디게 기다리고 있었다.
모이세예프가 문젯거리라면 훨씬 좋을 것이다.
이 사건을 잘 처리한다면 그의 점수는 배나 올라갈 것이다.
야르마크는 그의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케르치의 1,100명 군인들은 하나하나가 공산당에, 그리고 과학적인 무신론의 가르침에 전폭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그래야만 군부는 각개의 소련 병사에게 요구되는 절대적이고도 즉각적인 복종을 확실할 수 있는 것이다.
모이세예프가 그 앞에 불려 왔을 때, 그는 책상 위의 서류로부터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는 말을 시작하기 전에 몇 초 동안 이반을 노려보면서 얼굴 표정과 목소리를 엄하게 만들었다.
“모이세예프, 어디 아팠나?”
모이세예프의 놀란 모습이 그를 기쁘게 했다.
“아닙니다. 저는 병원 안을 본 일도 없습니다.”
야르마크는 멋지게 팔짱을 꼈다.
소맷자락의 노란 금속 단추에서 반짝이는 빛은 그의 기분을 좋게 했다.
이런 정치국의 일은 자극을 받아 해결되곤 한다.
“건강하다니 다행이다. 앞으로 며칠간 자네는 튼튼한 몸을 필요로 할 것이다. 아니면 마음을 바꾸어도 되지만, 이것이 자네에겐 좀 어려울 것이다.”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 그는 잠시 쉬었다.
“자네는 오뎃사에서 건전치 못하고 반항적인 행동을 했다. 자네의 반정부 견해를 바꾸고, 군사 정치적 지식을 함양시키려고 시도했지만 자네는 거절했다. 이 부대의 권위에 순종하고, 명령에 복종하기로 동의할 때까지 독방에서 굶기겠다. 이상.”
이반이 끌려간 곳은 감방이 아니라 정치국 장교들이 심문하고 구류하는데 사용되는 방이었다.
회색 군용 담요가 덮인 침대, 책상, 의자 셋, 선반 위에 몇 권의 군인 지침서가 그 방의 전부였다.
한 구석에는 수도꼭지와 더러운 변기가 위치하고 있었다.
큰 창문에는 쇠창살이 장치되어 있었고 이중 출입구는 겹으로 잠겨 있었다.
방은 매우 추웠고 오후 늦은 햇살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이반에게는 이 방이 예배당이었다.
감사하면서 그는 침대에 드러누웠는데, 그의 머리에는 오뎃사와 케르치의 성난 장교들의 모습이 군인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고 사라지고 했다.
이렇게 자고 일어나 기도할 수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전에도 여러 번 주님께서는 이반을 불러 금식하며 기도하게 하셨다.
거룩하시고 재미있으신 하나님…… 이반은 미소 지었다. 그런 기간에 그는 매우 강건해지고 소생되었다.
야르마크 대위가 이반에게 이보다 더 큰 선물을 줄 수는 없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반은 주님께 눈을 돌려, 기도와 금식으로 주님의 얼굴을 찾았다.
그가 얼마나 오래 금식할지는 야르마크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둘째 날 밤, 멀리서 뚜벅거리는 소리에 그는 잠을 깼다.
그가 누운 채로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할 때 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노란 불빛이 방에 번쩍였다.
이반이 알지 못하는 장교가 문에 서 있었다.
불을 켜지 않고, 그는 어두운 방에 대고 말했다.
“저쪽 끝의 강의실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겠다. 곧 오라.”
그 군화 소리는 긴 복도로 곧 사라졌다.
엘리트 장교들이 그를 심문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을 보고 이반은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그는 눈의 초점을 맞춰 벽시계를 응시했다.
새벽 2시 15분이었다.
대부분의 장교들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뻗고 담배를 피우며 뜨거운 김이 나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떤 때는 조용히 질문하고 대답을 기다리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갑자기 큰 소리로 각기 다른 허물과 죄를 속사포같이 쏘아대기도 했다.
아프지 않았나? 태도를 바꾸었나? 그의 생각은 전제주의, 자본주의의 유물인 제국주의다.
붉은 군대에서는 이런 사람을 용납할 수 없다.
그의 믿음 때문에 그가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군대에 대한 자기 책임을 기피한 것에 대해 벌을 받고 있다.
그가 동료와 소련에 대한 책임을 얼마나 오래 회피하려고 하는가?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는 자신을 위해 그렇게 작은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왜 그는 고의로 음식을 먹지 않았을까?
그의 정신 상태가 온전한지에 대하여 사람들은 계속 질문을 던진다.
마르크스-레닌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그는 이해하지 않았을까?
인간이 무지해서 기근, 질병, 경제상황 등을 이해할 수 없었을 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은 하나님을 만들었다.
이런 하나님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자유 사회주의 시민의 발전은 이로 인해 방해 받았다.
그런 생각을 퍼뜨리는 자들은 소련의 적이었다.
그가 금식하는 동안 내내, 이반은 불려가 심문을 받았다.
어떤 때는 여러 장교들 앞에서, 어떤 때는 정치국 장교 앞에서, 한두 번은 아버지 같이 질문하다가 갑자기 돌변하여 욕설을 퍼붓는 장교 앞에서, 밤이나 낮이나 그는 심문을 받았다.
닷새가 지나자 시험은 끝났다.
마지막 날 아침, 웅성거리며 다투는 소리와 장비가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그 방문 앞에 고물 X선 촬영기가 굴러 왔다.
문의 크기가 기계를 통과시킬 만큼 큰 지에 대한 다투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다.
결국 이반이 밖으로 나가서 그의 소화기관을 촬영했다.
에스토니아에서 온 미야카예프라는 이 유태인 기사는 속이 상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건 의료활동이 아니다.
그를 이 추운 날 병원에서부터 불러내어, 덜커덩거리면서 미끄럽고 울퉁불퉁한 도로와 경사진 길을 오르내리면서 장비를 끌고 와서, 이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재산을 등한히 관리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범죄행위였다.
그날 늦게 야르마크 대위가 손에 X선 사진과 보고서를 들고 들어왔다.
그런 질문이 백 번도 더 오갔는데도 마치 처음인 듯, 나무 의자에 조용히 앉아서 그는 이반을 응시하면서 물었다.
“자, 모이세예프, 이제 마음을 돌이켰나? 5일간의 금식이 끝났다.”
대위는 더 작아 보였고, 이반의 침대에서 몇 자 떨어져 있었는데 더 멀리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이반은 피곤했지만 야르마크의 질문과 자기의 대답에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썼다.
“어느 날 밤 나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답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날 밤에 두 번이나 깨어났기 때문에, 추웠고 잠을 좀 잤으면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어나 나의 가족과 친구와 야르마크 대위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야르마크는 참지 못하고 일어서서 창살 너머로 내리는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특별히 배가 고픈 것은 느끼지 못했으나 매우 피곤했고 확실히 추웠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놀라운 방법으로 나를 만져 주셨습니다. 나는 따듯해졌고 성대하고 맛있는 식사를 한 것 같이 배가 부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곧 나는 잠들었습니다. 깨어나니 아침이었고 햇빛이 창문으로 비치고 있었습니다. 새 한 마리가 창틀에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이런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환난 날에 내 이름을 부르라. 내가 너를 구원하겠고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배고프지 않고 아프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떻게 내 마음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나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직접 확인하십시오.”
야르마크는 눈송이가 휘날리는 것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정치국 장교로서 그의 위치는 이런 친구들과의 승패 여부에 좌우된다.
이미 말신 중령은 그에게 메모를 보냈다.
“모이세예프에게 음식을 줘라. 자네 때문에 그가 굶어 죽는 다면 나는 그런 책임을 지고 싶지 않네.”
쌀쌀한 태도로 야르마크는 방을 나갔다.
이반이 세르게이를 만난 것은 아침 장거리 구보 도중이었다.
흑해로부터 두꺼운 안개가 몰려와 표지물인 황량한 나무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침 식사 전에 구보하는데, 매일 거리를 늘려 마지막에는 15킬로 지점까지 뛰어갔다가 오는 인내를 기른다.
단단한 벌판, 흘러내리는 개천, 안개 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도랑을 지나며 군인들은 고통스러워 한다.
자연도 힘들어 신음하는 것 같다. 헛디딘 발이 눈 속에 푹 빠지면 가슴이 철렁한다.
이반은 뒤에 쳐지면서도 계속 뛰었고, 목을 찢는 것 같은 목마름을 잊으려고 했다.
다른 부대 병사 하나가 그의 옆에서 계속 같은 속도로 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갑자기 그 병사는 쉰 목소리로, “그는 부활했다!”고 소리쳤다.
뭐라고?
이반은 비슷한 말을 맞추어 보려고 했다.
아마 “눈보라가 치고 있어!”라고 했을 거야.
바람이 살며시 불어 짙은 안개를 몰아냈다.
이반은 그 병사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얼굴은 힘들어 잿빛이었지만 웃고 있었다.
다시 그는 소리쳤다.
“그가 부활하셨다고 했어. 형제여, 그는 부—부활하셨어!”
얼었던 땅덩이가 뒤에서 솟구쳐 나와 언덕이 되었을까?
갑자기 이반은 기쁨에 넘쳐서 언덕을 뛰어 내려가는 것 같았다. 탄성을 발하면서 그는 옛날 부활절 인사를 했다.
“그는 정말 부활하셨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들은 길게 포옹했다.
그들이 만나기로 정한 장소는 부대 정문 쪽의 커다란 차량 정비고였다.
이것은 오래된 석조 건물로서, 옛날에는 마구간으로, 전쟁 전과 전쟁 중에는 막사로도 쓰였다.
두 개의 벽은 큰 추위를 막아주었고, 넓은 주차장은 걸으며 기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간혹 한 두 병사가 바람을 피해 담배 피우러 들어오기도 했지만 보통 이반과 세르게이는 방해 받지 않고 같이 있을 수 있었다.
바쁜 군대생활이라서 그런 만남이 자주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르게이가 있다는 사실은 이반에게는 큰 격려가 되었다.
이 형제를 만나면서 그는 결국 모든 게 잘 되리라고 막연히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정치국의 알렉산더 페트로비치 기덴코 소령에게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는 놀랐고 염려되었다.
5. 성도는 푹신한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
기덴코(Gidenko) 소령은 사자 같은 얼굴에 군인다운 꿋꿋함을 지닌,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었다.
청년시절에 그는 운동에 남보다 뛰어났고, 그가 받은 상장과 상품 덕분에 그는 선생님들과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그의 조국 소련은 그에게 우호적이었고, 그가 태어난 해에 마침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의 장래가 어떨 것인지를 예고하는 것 같았다.
이로 인하여 그는 어려운 대학 공부 중에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대학시절부터 그는 군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케르치의 정치 위원회 위원으로서 그는 모이세예프의 문제를 곧 해결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문제에 이 곳 크리미아(Crimea)지방의 정치 인민 위원장을 끌어들이는 데까지 가서는 안되겠다고 결심했다.
기덴코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32년을 군에 있었고 모든 종류의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보았지만, 그 종교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들은 열심도 없이, 그저 소련 사회의 뒷전에서 꾸물거리는 존재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왜 그들은 그런 이상한 짓들을 팽개치고 조국 소련의 생활에 깊이 뛰어들어 마땅히 국가에 공헌하고 또 그로 인한 유익을 추구하지 않는가?
그 위대한 애국전쟁은 기덴코의 인생에 있어서 황금기였다.
스탈린 그라드의 전투에 참여한 이 젊은 병사는 약 백 미터 전방에서 이 곳을 겨냥한 총구들을 보고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그가 이 전투에서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가 전에 본 나찌의 잔학상은 그에게 살겠다는 의지를 더욱 약하게 했다.
그는 쌓여 있는 하얀 눈과 동료들의 흰색 유니폼에서 반사되는 햇빛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포탄이 날아오는 가운데, 그는 저쪽 구석의 부서진 방앗간에 있는 당 사령부로 뛰어가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당원증을 가지고 다시 전투에 나갔다.
그리고 그가 살아 남았다는 사실은 그에게 사명감을 더 깊게 해 주었다. 그는 소련을 위해 태어났고 소련을 위해 살았다.
사람들이 하나님이라는 생각에 집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노인들은 두려워서 생각을 바꿀 수 없겠지만, 어떻게 젊은이들이 그런 전설을, 아무리 무해하다고는 하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이세예프는 사회주의 학교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는 부패한 성직자들과 교인 지주들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소련에 악영향을 미쳤던 종교의 착취에 대하여 배웠다.
찬 바람이 부대 앞으로 수 마일이나 뻗친 하얀 들판을 휘몰아치고 있었다. 기덴코는 다시 한숨지었다.
그는 신자들을 여러 번 다루어보았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설득이나 재교육은 그리 효과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물론 그는 계속해 보겠지만 효과적인 것은 체형(體刑)이었다.
전날 밤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야채 수프를 앞에 놓고 아내에게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생각해보구려. 과학적인 무신론을 가르치는 모든 교과과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자들의 견해를 바꾸는 데 거의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경우에 엄한 처벌만이 마지막 방법이오. 우리가 주입식 교육에만 의지해야 된다면 나는 정치국 문을 닫아야 할 것이오.”
그러는 그는 모이세예프 문제를 말신 중령에게 어떻게든지 보고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기덴코 소령의 사무실까지는 먼 길이었다.
이반은 눈을 치운 부대 안의 도로를 걸어가면서 기도할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었다.
작은 동생 일류샤가 집에서 가르쳐 주었던 성경 말씀이 기억나서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며 조용히 불러 보았다.
“주의 기쁨은 내 힘일세, 주의 기쁨은 내 힘일세.”
곡조는 경쾌 했고 햇빛 비치는 밝은 눈길에 잘 어울렸다.
아주 맑은 날이었다.
머리 위의 하늘에서 무언가 번쩍이고 있었다.
“주의 기쁨은 내 힘일세.” 기쁨이 그 안에 충만했다.
부대 중앙에 위치한 조그만 공원의 나무들이 하늘 빛으로 옷 입은 것 같았다.
하나하나의 나무를 지나치면서 이반은 예수의 이름으로 인사했다.
그 빛은 거울에서 반사된 햇빛같이 눈부셨다.
“이반, 이반”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눈을 들어 보았다.
자기 위에 보이는 천사의 빛나는 모습이 그를 놀라게 했고 얼마 동안 그 마음에 남아있었다.
그 음성은 마치 옛날에 들었던 것 같이 틀림없고 분명했지만, 이상하게도 언어는 아니었다.
“두려워 말라.”
투명한 천사의 형상을 통하여 이반은 공원 건너편의 큰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천사의 형상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응시하면서 이반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천사들로부터 나오는 빛은 태양보다 더 밝게 공원을 비추고 있었다. 천사는 다시 말했다.
“두려워 말라. 가라, 내가 함께 하리라.”
이반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의 가슴속에는 기쁨이 샘솟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천사로부터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기덴코 소령의 사무실까지 왔는지 그는 기억할 수 없었다.
빛은 사라졌지만 천사는 그냥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소령의 사무실 앞에 가서 조용히 노크했다.
기덴코는 이반을 잘 살펴보면서 미소 지었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쉬울 것도 같았다.
야르마크는 어떻게 했길래 실패했을까?
이반의 나이를 몰랐더라면 아마 열 여섯으로 추측했을 정도로 그 청년의 얼굴에는 시골 소년의 티가 완연했다.
“얘, 거기 앉으렴.”
그는 손바닥을 벌려 자기 책상 건너편의 가죽 의자를 가리켰다.
그에게는 온화함이 있었다.
“모이세예프, 넌 저 멀리 몰다비아 지방에서 왔지?”
“네, 그렇습니다.”
“일 년이 되면 휴가를 가겠군.”
“네.”
“가족이 그립지? 아버님 어머님이?”
“네, 그렇습니다.”
“나도 처음 군대 생활을 기억하지. 집에 매일 편지를 썼거든. 지금 생각하면 우스워. 너는 집에 자주 편지를 쓰니?”
“매일 쓰지는 못합니다. 그다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아니 왜 시간이 없어?”
“심문 때문입니다. 저는 정치국에 불려가 심문을 받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 그리고 이 질문들 말이야. 자네는 정확한 대답을 배우지 않았나? 자넨 똑똑한 군인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대답과 실제 대답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제게 정확한 대답을 허락치 않으십니다.”
“그래? 그러면 자네의 그 하나님은 누구인가?”
이 질문을 던지자마자 기덴코는 후회했다.
모이세예프는 의자에 앉아 몸을 앞으로 기울였는데, 그의 얼굴은 기회를 얻은 기쁨에 빛나고 있었다.
“소령님, 그 분께서는 우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 분은 영이시고 인간을 무한히 사랑하시며……”
“알아 알아, 난 기독교도들의 가르침을 알아.”
기덴코는 의자에서 몸을 흔들었다.
“자네가 회피하는 이 정확한 대답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인가? 자네는 영광스러운 붉은 군대의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네는 우리 전 소련 국가와 그 군대의 기초가 되는 과학적 무신론을 용납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제가 옳지 않다고 믿는 것을 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 외의 것은 제가 다 즐겁게 용납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종교인들 조차도 이에 동의하고 신부도 목사들도 동의하고 있단 말이야.”
그 소령의 목소리에서 이제 온화함은 사라져 버렸다.
이제 이반은 대답하기 전에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덴코는 요점을 분명히 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관하여는 너의 선생들도 너같이 얘기 하지 않았다.”
“소령님, 그들은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에 관하여 얘기했습니다. 그 분을 아는 것에 관하여는 질문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분은 지금 저와 함께 이 방에 계십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그 분은 천사를 보내 저를 격려했습니다.”
기덴코는 이반을 응시했다.
이 친구가 천진난만한 척하는 것일까?
군에게 제대하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에게는 단순함이 있다.
고의적인 단순함일 것이다!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이세예프, 우리는 그전에도 자네와 같은 군인을 보았다. 앞으로도 한 두 사람쯤 자네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반의 얼굴이 기쁨으로 갑자기 밝아지는 것을 기덴코는 힐끗 보았다.
모이세예프는 위험한 기독교가 아니고 휴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향수병에 걸린 소년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모이세예프와 같은 연극을 그는 이전에도 보아왔다.
그리고 이 젊은이는 닷새나 굶었는데도 배고프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던가?
기덴코는 음식을 앞에 놓고도 모르는 체했던 군인들을 보아왔다.
심리요법으로 이런 정신 상태를 고쳤던 것이다!
그러나 모이세예프의 정신 상태가 온전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조직적인 거짓말을 시키기에는 너무나 단순했다.
이제 기덴코는 말하기가 피곤했다.
“모이세예프, 자네가 비정상적인 언행을 계속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자네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것 외에는 아무 유익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약간의 훈련으로 정상을 되찾게 될 것이고, 천사니 신이니 하는 망상으로부터 치료 받게 될 것 같다. 나는 이제 자네에게 명령한다. 오늘 밤 취침시간이 되면 자네는 밖으로 나가 서 있다가, 너에 대하여 그리고 소위 네가 말하는 하나님의 체험에 대하여, 지금까지 군에서 퍼뜨린 상식 밖의 이야기에 대하여 내게 사과할 생각이 들면 내게 들어와 보고하라. 자네를 위해서 하는 얘기지만, 바깥 기온이 영하 25도 이하일 테니 정상적으로 행동하겠다고 되도록 빨리 동의하기 바란다. 내일 자네의 정훈교육을 다시 실시하도록 계획을 짜겠다. 이상.”
모이세예프가 명령대로 시행하려는 그 용기에 기덴코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느꼈다.
그는 모이세예프가 망설이며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태도를 기대했는데 의외로 그의 얼굴은 의연했고 가슴을 활짝 펴고 또박또박 문으로 걸어갔다.
“동무!”
이반은 되돌아 섰다.
기덴코는 그의 얼굴이 약간 창백한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명령을 이해한 것이다.
“여름 옷을 입고 명령대로 시행한다. 알았지?”
이반이 여름 군복을 청구하자, 병참부대의 늙은 상병은 어안이 벙벙했다.
밖에 눈이 두 자나 쌓이지 않았는가!
청구서를 받아본 그는 당황하며 주름진 손으로 걱정스럽게 턱을 만지고 있었다.
그 청구서는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잘못하고 나서 책임추궁 당하기는 싫었다.
겨울에 하복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무엇에 쓰려고 청구했을까?
이반의 설명에 그의 주름진 눈초리에 의혹의 빛이 스쳐갔다.
그는 놀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장난을 곧 끝내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정치국으로부터의 퉁명스러운 전화확인이 끝나자 즉시 이반의 손에는 얇은 바지, 셔츠, 웃옷 그리고 베레모가 주어졌다.
이반에게 옷을 건네준 상병은 말이 없었고, 흰 머리를 무겁게 좌우로 도리질하고 있었다.
그의 동정 어린 눈빛에서 이반은 그의 괴로움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밤은 쓰라린 고통의 밤이 될 것이었다.
달이 떠오르면서 바람이 일더니 건물 모퉁이의 눈가루가 흩날려 깨끗한 도로 위로 휘몰아쳤다.
막사 안에서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어가는 병사들도 추워서 두꺼운 담요를 뒤집어쓰고 침대로 기어들어갈 정도였다.
이고르 알렉산드로비치 마르코프는 담요를 몸에 감고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루지아 출신인 그는 그 지방 특유의 빛나는 검은 눈과 검은 머리를 갖고 있으며 온화한 성품의 사람이었다.
그는 모이세예프를 이해할 수 없었으며, 그가 여름 옷으로 갈아입는 모양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모이세예프, 다시 얘기해 봐. 어떻게 된 거야?”
들린 만한 거리의 침대에서 오가던 대화가 뚝 끊어졌다.
이반의 위 침대에서 블라디미르 야콥레비치 알부가 웃음을 참느라고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이반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지쳐버렸다.
이번의 새로운 체형에 관한 소식이 저녁식사 시간에 삽시간에 식당에 퍼져버렸다.
급식병들은 수프 한 그릇마다 이 이야기를 곁들여 급식했다.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에 이반은 열 두어 번이나 질문을 받든지 아니면 권고를 받았다.
게다가 그의 대답은 엉뚱하게 들렸다.
“소등이 되면 즉시 나는 주번사관에게 신고하고 밖에 나가 서 있어야 한다.”
그는 웃는 사람을 나무라지 않았다.
만약 정치국에서 이반을 이용하여 모든 군인들에게 본 떼를 보이기로 했다면, 일단은 성공하고 잇는 셈이었다.
이렇게 이반과 이고르가 대화하는 중에 여러 사람이 끼어들었다.
“너 얼마나 오래 추운 밖에 서 일을 거냐?”
“항복하는 게 나아. 넌 얼어 죽을 거야.”
“왜 넌 종교에 대하여 입 다물지 않니?”
“왜 믿음을 보류하고 조용히 살 수 없을까?”
“넌 밖에서 5분도 견딜 수 없을 거야.”
이런 와중에 이고르가 소리를 높여 다른 사람들을 잠잠케 했다.
“이반! 왜 이러지 네가 믿는 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 하겠다는 거야?”
“내가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알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야. 그 분은 살아 계시며, 사람을 사랑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형체로, 곧 우리 같은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어. 이제 곧 성탄절이야. 이 절기에 우리 신자들은 베들레헴에 아기로 오신 그리스도를 기념해. 온 세계에서 신자들은 하나님의 이 위대한 일을 주목하고 그 분께 찬양을 드려. 그 분은 죄 사함을 원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러 오셨다고 믿어. 나를 위하여, 또 이고르 너를 위하여.”
몇 줄 건너 다른 침대에 있던 열성당원 뎀첸코가 큰 소리로 끼어들었다.
“동무들, 우린 이런 이야기에 귀 기울이길 원치 않는다고 생각해. 나 개인적으로는 흥미가 없어. 이런 이야기가 호소력이 있다는 데 놀랐다. 특별히 마르코프 동무에게 말이다.”
여기에 반대하는 논쟁이 시작되자 블라디미르 야콥레비치는 낄낄 웃었다.
“이고르는 관심이 없어! 뭐 침례교인들에게 성탄절 이야기가 어때. 그러나 이고르는 아냐! 그는 담배도 술도 너무 좋아한단 말이야.”
멀리서 취침 나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즉시 불이 꺼졌다.
이반은 곧바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휘황한 달빛이 창을 통해 들어와 이반이 걸어가는 침대 중앙 통로를 비추고 있었다.
병사들의 침묵을 뒤로 하고 이반은 통로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서 바깥 연병장으로 나섰다.
갑자기 찬 공기가 그의 얼굴을 때리는 것 같았고, 머리는 깨어지는 것 같았으며,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찬바람이 그의 귀를 따갑게 했다. 캄캄한 막사에서는 병사들이 창 밖으로 이반을 내려다 보고 있을 것이다.
달빛은 연병장에 또 건물 주위에 쌓아둔 눈두덩에 반사되고 있었다.
그는 살을 에는 찬 바람에 몸을 곧추세우고 시계를 보았다.
10시에서 1분이 지나고 있었다.
그는 오래 기도할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점점 엄습해 오는 두려움을 떨쳐버리려고 애쓰면서 그는 움츠렸다.
얼마나 오래 밖에 서 있을 수 있을까?
만약 너무 추워서 항복한다면 어떻게 될까?
얼어 죽는다면?
그들은 나를 얼어 죽게 내버려둘까?
그는 기도에 몰두하려 했지만 두려움에 가슴이 죄었다.
얼어 죽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만약 거의 얼어 죽어가다가 아침에 소생한다면?
그는 동상을 입은 손발의 고통이 무섭다는 얘기를 들었다.
팔이나 다리를 자르게 되지는 않을까?
이런 상념을 떨쳐버리려고 하면서 그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주의 기쁨은 내 힘일세. 주의 기쁨은 내 힘일세.”
갑자기 아침에 보았던 영광이 그에게 다시 나타났다.
그는 멀리 달빛에 비치는 부대 중앙의 공원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천사의 광채가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노라!”
천사의 말이었다!
이 말은 오늘 밤을 위한 것이었다.
그 때의 따스함이 그에게 다시 임한 것 같았다.
이반은 기쁨으로 충만하여 입을 열어 조용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눈 속에서 저벅거리는 발자국 소리에 그의 주의력은 산만해졌고, 시계를 보니 12시 30분이었다.
두터운 외투를 입은 뚱뚱한 장교 세 사람이 막사로부터 그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쉰 듯 했고 바람에 거의 불려가다시피 했다.
“자, 모이세예프, 잘 생각해봤나? 이제 들어갈 준비가 되었나? 여기 서 있었던 것으로 충분하지?”
그들은 매우 걱정스럽게 이반을 바라보고 있었고 이반은 달빛에서도 그들의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따듯했던 것이 가능했을까?
“감사합니다, 장교 동무. 저도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에 관하여 침묵하라는 것에 동의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자네는 오늘 밤새도록 여기에 서 있겠다는 말인가?”
그들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이지러지고 있었다.
“그것을 원치도 않습니다만, 어떻게 다른 일이 가능할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돕고 계십니다.”
이반은 차려 자세로 서서 손가락 끝으로 손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는 손이 시렸지만 아까 막사에서 옷을 입을 때보다 더 시리지는 않았다.
그는 잠시 발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쉽게 움직여졌고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이반에게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장교들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들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도 추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발을 굴러보기도 하고, 손뼉을 치고 몸을 좌우로 흔들어보면서 막사 안의 난로로 돌아가고 싶어 안절부절못했다.
그 중 상급자가 한 시간만 더 있으면 이반의 생각이 바뀌어질 것이라고 중얼거리고는 모두 굴러가듯이 사라져 버렸다.
이반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금할 수 없었으며 또한 감사했다.
그러나 곧 위로의 감격은 사라지고, 상한 심령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고향의 교회에서 이반은 그 또래의 젊은이들보다 뛰어난 것은 없었다.
그 부모들은 몇 년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고통 받아 왔다.
또 목사님들도 심문을 당하고, 체포되고, 강제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던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능력과 구원이 계속 임했었다.
그 안의 어떤 것이 그런 위험으로부터 그를 구해내곤 했다.
그는 유별나게 되기를 원치도 않았었고, 기적이나 신비한 일들이 자기에게는 합당하다고 생각지도 않았었다.
그는 지금 몸이 얼어 굳어져야 마땅했다.
그는 충성스럽지 못했다.
뜨거운 눈물이 그의 볼을 적셨다.
새벽 3시가 되자 그는 선 채로 졸기 시작했다.
회개의 기도는 오래 전에 끝났다.
그가 아는 모든 신자들을 위해 여러 번 중보의 기도를 했다.
크리스마스 캐롤도 불렀다.
그가 직접 알거나 들어서 알고 있는 장교들을 위해서도 일일이 기도했다.
자기 부대의 동료들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러나 점점 그의 마음은 몸 밖의 어딘가를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가 기도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는 놀라 깨어났다.
주변사관이 부드럽게 말하고 있었다.
“좋아, 모이세예프. 이제 안으로 들어가라.”
달도 지고 바람도 자버린 캄캄한 밤에 이반은 그의 얼굴을 보려고 애를 썼다.
그 장교는 이반 옆에 가만히 서서 무언가 망설이고 있었다.
막사 쪽에서 오는 노란 불빛이 그 모자의 금빛 떡갈나무 잎사귀 장식을 비추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심각했다.
“자네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네?”
“추위가 아무렇지도 않은 자네는 어떤 사람인가 말일세.”
이반도 부드럽게 대답했다.
“아, 동무, 저도 장교님과 똑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 기도 드렸고 그랬더니 따뜻했습니다.”
그 장교는 따라오라는 표시로 이반의 팔을 만져주고 천천히 막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게 이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해 주게.”라고 그는 말했다.
기덴코 소령은 혼란 가운데 빠졌다.
말신 중령에게 보낸 이반에 대한 보고는 허황된 것으로 보였다.
벌써 12일째나 계속하여 그는 여름 옷을 입고 영하의 밤에 서 있었다.
그가 얼어 죽지도 않고 용서를 빌지도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밤에는 기덴코 자신이 나가 보았다. 그
의 얼굴은 추위로 새파랗고, 그는 피로로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눈가루가 머리와 옷에 내려 앉아 그는 마치 동상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의 자세는 의연했고, 추위에 4시간이나 있었지만 5분밖에 안된 기덴코가 더 추위에 떨고 있었다.
젊은이가 그런 추위에 견디며 또 추위를 느끼지 않는 게 가능할까?
아마 가능하겠지. 모이세예프는 두 주일이나 그렇게 지내왔다.
이 수 년간에 이번처럼 기덴코를 당혹하게 한 일은 없었다.
최근에 그는 잠을 깊이 들 수 없었다.
말신 중령에게, 그리고 이 지방 정치국 장관에게 보고할 때 무엇인가 의견을 덧붙여야 하겠는데 말이다.
이번의 체형은 효과가 없음이 명백하다.
부대 전체가 모이세예프의 얘기로 웅성거린다.
이제 모두 알고 있는 이반의 야간 보초는 그만두라고 명령해야겠다.
6. 법을 두려워하지 말고 재판관을 두려워하라
막사의 침상은 두자 너비에 딱딱했지만, 담요 속에서 두 다리를 뻗은 이반은 이 호사스런 휴식에 감사했다.
1971년 들어 처음으로 이반은 침대에 누워보는 것이다.
추운 바깥에 서 있지도 않았고, 눈 위에서 또는 장교 방에서의 심문도 없다.
부대 중앙의 작은 공원으로 지는 달을 보는 일도 없다.
취침나팔이 들리기도 전에 이반은 평화롭게 잠에 빠져 들었다.
그전에 꼭 한번 들어본 친근한 음성에 이반은 잠을 깼다.
“이반! 일어나라.”
그는 즉시 일어나 통로에 서서 투명하게 광채가 나는 천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신속히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침상의 병사들은 아무도 깨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앞의 빛나고 사랑스런 천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바지를 입고 신을 찾았다.
천사의 얼굴은 너무나 사랑스러워 그는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순식간에 그들은 공중에 떠올랐고, 천정은 저절로 열리고 지붕을 통과하여 이반과 천사는 시공을 초월한 다른 세계로 날아갔다.
그 곳의 풀밭은 깊고 청청한데 지평선까지 뻗혀 있는 것 같았다.
수목은 싱싱하고 새파랬다.
황홀한 가운데 이반은 천사를 따라갔고 한참 지난 후에 그들은 냇가에 이르렀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이반은 바닥까지 볼 수 있었으며 그의 눈은 황홀했다.
천사는 쉽게 개천을 건너가서 뒤에 쳐진 이반을 돌아보았다.
“이반 왜 두려워하는가?”
그 음성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뱀에 대한 두려움이 이반에게 엄습했다.
“뱀.”
이 말을 뇌이면서 그는 발밑의 무성한 풀밭을 살피고 있었다.
지금까지 일어나 이상한 일이 그에게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가져다주었다.
천사는 저만치 떨어져 있었지만, 이반에게는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이 들렸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함께 있노라. 이곳은 지구와 같지 않다. 여기는 뱀이 없노라.”
두려움이 갑자기 엄습했듯이, 곧 사라졌다.
이반은 쉽게 개천을 넘었다.
그 세상의 광채 가운데 풀잎 하나하나가, 꽃받침 하나하나가, 조명을 받은 것 같이 돋보였다.
아름드리나무의 껍질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표현하기 어려웠다.
나뭇가지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묘하게 뻗어나갔고 각 나무에서 빛이 발하는 것 같이 밝았다.
이반은 본능적으로 눈을 들어 하늘을 둘러보았으나 태양은 없었다.
그가 다시 눈을 돌려 천사를 보니 그 옆에 또 한 형체가 있는데, 천사보다 더 위엄이 있고 영광 가운데 더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니까 그 천사는 이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 같았는데, 이반은 그가 사도 요한인 것을 알게 되었다.
천사를 통하여 사도는 그와 대화했다.
이반은 움직이지 않고 서서 그 입에서 나오는 거룩한 말을 마음에 다 새겨 두었다.
그 사도를 따라 세 사람이 나타났는데 이반은 신비한 방법으로 이들이 다윗, 모세 그리고 다니엘인 것을 알았다.
이반은 너무나 집중해 있었고 그의 놀라움과 기쁨은 너무나 커서 마지막 형체가 사라지자 그는 깊은 잠에 떨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혼자 남은 천사가 빛 가운데서 다시 말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여행했다. 이제 너는 피곤할 테니 와서 쉬어라.”
이반은 자기를 반기는 것 같은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았는데, 그 곳의 향기는 이상하게도 고향 몰다비아의 포도원을 연상케 했다.
천사가 다시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이반은 나무의 싱그러운 냄새를 맡으면서 또 빛 가운데 경치를 즐기면서 영원히 앉아 있으려고 했을 것이었다.
“나는 네게 하늘의 도시, 새 예루살렘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그것을 보게 되면, 너는 더 이상 지금같이 육체 가운데 거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세상에는 아직도 네가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천사가 다시 말하기까지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우리 함께 다른 혹성으로 날아가자. 네가 육체 가운데 살아있는 상태에서 이 도시의 빛을 보여줄 테니 새 예루살렘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도록 하여라.”
순식간에 그들은 높은 산들이 있는 혹성으로 날아갔다.
또 다시 영광스러운 빛은 이 세상의 구석구석을 비추었다.
보석 같은 맑은 물줄기가 산비탈을 흘러내리면서 푸르른 골짜기에서 안개가 솟아오르는 속으로 사라지는 풍경이 이반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이 깊은 절벽에 이르자, 이반과 그 천사는 함께 그 밑까지 내려갔다.
그 천사는 기쁨의 화신 같아 보였고,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보다 더 장엄하고 즐겁게 들렸다.
“이반, 위를 보라. 새 예루살렘의 빛을 보라.”
위를 보자마자 이반은 당황해서 몸을 움츠렸다.
그 빛은 너무나 찬란해서, 그 빛을 보는 순간 이반은 그만 눈이 멀어버렸다고 느꼈다
그러나 곧 천사의 음성이 들렸다.
“네게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보라.”
이반은 그 빛의 영광스러움을 흠뻑 들이마셨다.
사막에서 구조된 어떤 사람도 이렇게 물을 흠씬 들여 마시지는 않았으리라.
그 능력은 어마어마해서 이반은 그것을 느끼고 맛보고 들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 천사가, “이제 땅으로 돌아갈 시간이다.”라고 했을 때 이반은 낙심되고 슬퍼서 울 것만 같았다.
이반의 발이 자기 침대 옆의 마루에 닿는 순간 세 가지의 일이 일어났다.
천사는 사라지고, 기상나팔이 울렸고, 방 안에 전등불이 켜졌다.
잘 정돈된 자기 침대와 정장한 자신을 이상스럽게 보고 있는데 옆 침대 친구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리 페드로비치 체르니크는 같은 몰다비아 사람으로서 이 이상한 시골 친구에게 형제로서의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제 체르니크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바지를 주워 입으면서 아무도 못 듣게 속삭였다.
“이반, 어젯밤에 너 어디 갔었니?”
이반은 애써서 생각을 모아보았다. 막사는 활기찼고 군인들은 이반의 침대를 스치면서 문으로 나갔다.
오가는 농담, 병사들의 하품 그리고 번쩍이는 군복들이 그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는 돌아서서 체르니크를 주시했다.
“내가 어젯밤 옷을 벗고 침대에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얘기는 아니겠지? 우린 같은 시간에 침대에 들어갔잖아?”
체르니크는 웃옷 단추를 신속히 채우고 있었다.
“넌 나와 똑같은 시간에 침대에 들어갔어, 맞아. 그리고 같이 잠들었어. 그러나 너는 오래 자지 않았어. 내가 새벽 3시에 일어났을 때 네 침대는 비어 있었어. 이반, 넌 이 방에 없었단 말이야.”
그는 겉옷을 집어 들면서 익살스레 웃어 보였다.
“도대체 자넨 어젯밤 정말로 사라졌었나?”
이반은 꿈을 꾼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천사와 여행을 했던 것이다!
짜릿한 흥분이 이반의 몸에 전류처럼 흘렀다.
그들은 출구로 급히 걸어 나갔다.
“밤에 누가 자리를 비웠는지 주번사관에게 물어보자.”
대꾸하는 이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주번사관은 화를 냈다.
“아무도 방을 나간 사람은 없어. 빨리 움직여! 나를 영창에 보낼 셈이야?”
이반과 그리고리 체르니크는 말없이 밖으로 나와 아침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드디어 체르니크는 침묵을 깨고 질문을 던졌고 이반은 그 천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쯤에는 이반의 이야기가 온 부대에 퍼져버렸다.
아무도 이것을 믿지 않았고, 체르니크도 그냥 그것으로 만족했다.
이반의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불가능하다는 점이 모든 사람에게는 개운치 않았다.
어떻게 닷새를 굶고도 병이 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어떻게 영하의 추위 속에 몇 시간씩 견딜 수 있으며, 또 감기도 들지 않을 수가 잇는가?
그리고 만약 이반이 막사를 밤새 떠나지 않았다면, 어째서 그의 침대가 비어 있을 수 있었을까?
그는 어디로 갔었을까?
체르니크는 침대에 길게 누웠다.
한 달에 한번 갖는 4시간의 자유 시간을 백일몽으로 보내기는 너무 아까웠다.
그는 종이와 펜을 들어 집에 편지를 쓰기로 했지만, 계속 누워 천정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정치국에서는 이 사건을 속속들이 수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반은 벌써 한 달이나 그들에게서 가혹한 심문을 당하고 있었고,
그런 압박 가운데 그가 얼마나 견디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리는 염려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군대 생활이란 고역 바로 그 자체였다.
그들은 새벽 6시 기상 나팔부터 밤 10시 소등 시간까지 뛰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두 곤히 잠자는 시간에도 비상훈련 신호가 떨어지기도 했다.
새벽 기상 시간 전에 사이렌이 울리면 병사들은 죽지 못해 침대에서 기어 나와 비몽사몽간에 가상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얼어붙은 영하의 어둠 속으로 나간다.
지난 번 비상 훈련 때 체르니크는 벌점을 받은 일이 있었다.
폭설이 내리고 있어서 그는 앞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조심해서 앞을 주시했지만 그는 뚜껑을 열어 둔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눈보라 속에서 소리 지르며 그는 우물 안 벽에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다가 동료 병사에게 구조되었다.
외투에 물이 얼어붙었고, 바짓가랑이는 시멘트같이 굳은 채로 그는 추위에 동동 거리며 훈련을 끝마쳤다.
그러나 이런 일이 하룻밤에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추위와 피곤에 지친 병사들이 침대에 들어가서 한 시간이나 되었을 즈음에 또 다시 기상시켜서 똑같은 짓을 되풀이 시킨다.
그리고리는 이런 기상훈련이 몇 번째인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처음에 흥분하여 적어둔 그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이것을 기록하여 첫 휴가에 가족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이틀 또는 사흘마다 이런 기상훈련이 있었다.
밤에 3~4시간씩 자고 다음 날 훈련하고 공부시킨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것이었다.
이반 바실리에비치가 이런 정규 훈련에 더하여 끊임없는 심문을 어떻게 견뎌내는지 그리고리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이반은 식사 때나, 공부 시간에나, 취침 중에나 상관없이 불려가곤 했다. 낮이나 밤이나 상관없었다.
요즈음 이반의 침대는 밤에 비워져 있었다.
그가 곤경 중에 있음은 틀림없다.
사고도 많았고, 설명할 수 없는 사건도 많았다.
아마 체르니크는 침례교인들이 국가의 적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광적이고 미련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도 붉은 군대와는 다투지 않았다.
여기서 견뎌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만약 어떤 장교가 양배추를 해바라기라고 했다면 해바라기가 맞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복종이라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치국은 모이세예프를 심하게 다루는 것일까?
결국 훈련에서 누군가 하나라도 명령에 불복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체르니크는 다시 침대 위에서 몸을 길게 뉘었다.
여전히 연필과 편지지는 담요 위에 그냥 있었다.
크리미아 지방의 정치국 장관이 말신 중령을 방문 중이라고 하는 소식을 그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모이세예프를 우랄 지방의 스베르들로보스크의 군 형무소로 보낸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떨쳐버릴 양으로 체르니크는 연필을 잡았다.
이런 모든 것은 그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이반이 천사와 같이 다른 혹성에 갔었다는 얘기를 군인들에게 퍼뜨린 것은 자신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아닌 것이다.
이반은 하나님과 그 천사들에 관하여 누구에게나 공공연하게 얘기했다.
편지를 마구 써내려가면서 체르니크는 이런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애썼다.
어제 저녁에 훈련을 마치고 막사로 걸어오면서 그는 어두운 하늘을 우러러보기가 두려웠었다.
차가운 레일 위에서 연결된 기차는 덜컹거리며 달렸고 창 밖에는 겨울 풍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들판, 숲, 작은 호수들 그리고 골짜기들이 죄수들을 싣고 가는 열차의 창문 밖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나무로 된 선반들이 가운데와 사방에 둘러 있었고 그 선반마다 죄수들이 황혼 빛 가운데 앉거나 누워있었다.
더러는 논쟁도 하고 또 담소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비통에 잠겨있었다.
이반은 좀 열려 있는 문 곁에 가까이 앉아서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가끔 문을 닫자 느니, 그냥 열어두자느니 시비가 붙곤 했지만 이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앞에는 꿈나라 같은 정경이 펼쳐져 있었고 거기에는 깊은 평안이 감돌고 있었다.
모스크바 근교 부대에서 차출된 경비병은 흔들거리는 기차에 기대어 서 있었는데, 총은 팔에 느슨하게 걸려 있었고 머리를 연신 끄덕거리며 졸고 있었다.
죄수들은 가끔 흥분하기도 했으나 별 수 없이 진정되곤 했다.
이반의 생각은 기차 안의 군인들(죄수들)과 먼 시골 사이를 왕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반은 훌륭한 군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최선을 다했던 것을 회상했다.
정훈 시간에는 신자들이 자기가 살고 잇는 나라를 사랑하며, 권위에 복종하고 세금을 자 내야 할 것을 성경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분명히 설명해 주었다.
이런 그의 노력이 성공은 고사하고, 한 밤중에 침상에서 끌려나와 기차에 실려 이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시베리아 쪽의 군 형무소 스베르들로보스크로 향하게 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그들은 중앙 러시아의 평원을 떠나 동쪽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이반은 황혼의 어두움 가운데 떠오르는 눈 덮인 언덕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이틀 전에 그는 심페로폴에서 온 그 지방 책임자 안드레이 돌로토프 소령에게 불려갔다.
이반을 바라보는 돌로토프의 편도(扁桃) 같이 생긴 눈은 우울해 보였다.
그는 높은 직책의 장교로서는 이상하게도 수동적이며 조용한 사람이었고, 좀 움츠리고 은밀한 태도로 말미암아 커다란 몸집이 벽같이 보였다. 그의 말소리는 감정이 없었고 나지막했다.
이반이 붉은 군대에 들어온 지 이미 2개월이 다 되었는데도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그는 약간 놀라는 듯했다.
그는 이반의 기록을 죽 훑어보았다.
모이세예프를 재활시키려고, 그의 사고방식을 바꾸도록 기회를 주려고, 이념을 바꾸어 보려고 모든 노력이 동원되었지만 그는 협조하기를 거부했다.
그의 기록에는 오뎃사에서, 케르치의 정치국에서 그리고 모이세예프 소속 부대에서의 부정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었다.
모이세예프는 군인들 가운데 파괴적인 사상을 퍼뜨려서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사상으로 군인들을 오염시켰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정치국 장교들에게는 분명한 규율 위반이었다.
돌로토프는 왜 모이세예프가 복종하지 않으려 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나직해서 이반은 그가 이야기를 마쳤는지를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이반은 잠시 주저했다. 그 방에는 무거운 침묵이 짓누르고 있어 생각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갑자기 이반은 공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는 용기를 내어 간단히 기도하고 숨을 들이 쉬었다.
갑자기 머리가 맑아져서 그는 돌로토프에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동무, 신자들은 자기들 위의 권위에 복종하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게도 그런 깊은 바램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더 나아가서 우리들의 최고 주인은 하나님이라고 가르칩니다. 그 분의 권위는 우리들의 완전한 복종과 헌신을 요구합니다. 제가 양쪽에 다 충성해야 된다는 것을 꼭 이해해 주십시오. 국가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에 대한 충성 말입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께 불복종해야 하는 어떤 것을 하도록 지시받게 된다면 저는 먼저 하나님께 충성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 인민 위원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슬쩍 지나갔다.
그는 입을 열기 전에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 했다.
“자네는 침례교도의 가르침에 묶여서 결박당했네. 좋아, 자네가 감옥의 맛을 본다면 자네 처지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는데 도움이 될 것일세. 케르치에서의 모든 재교육 프로그램보다 이 방법이 더 효과적일지 모르지. 그런 다음에 자네 생각이 어떻게 바뀌나 보세.”
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을 택했는지 이반은 알 도리가 없었다.
흑해 근처에도 감옥은 있었다.
추운 겨울에 먼 여행을 시키는 고통도 미리 계획된 것이었을까?
이반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기차 문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어쩐지 좀 바뀐 것 같았다.
공기가 더 무거운 듯 했고 매운 맛이 있었다.
기차 안에는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각자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한 늙은 남자가 담요더미 속에서 줄을 갖고 나타나 능숙한 솜씨로 담요를 묶기 시작했다.
한 건강한 코사크인이 작은 히터 앞에 있는 녹은 눈 한 냄비를 비워버렸다.
기차가 갑자기 덜컹거리자 수염이 텁수룩한 상사가 욕을 해댔다.
젊은 두 병사가 성난 눈을 하고 같이 서 있었다.
저 멀리 황혼 속 깊이 이반은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숲을 볼 수 있었다.
붉은 불길이 혀같이 하늘 이곳저곳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 늙은 남자는 이반의 뒤에서 문에 허리를 굽히고는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베르들로보스크- 산 위의 도시” 그의 말은 끝을 올리는 오뎃사의 악센트였다.
“노동자며 전사-나는 저기서 노동자며 전사요. 그리고 동무, 당신도 그렇소.”
졸던 경비병은 이제 일어나 그 늙은 남자를 거칠게 문 앞에서 밀어내고 말없이 이반 옆에 서 있었다.
기차가 흔들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멈춰 섰다.
사람들은 문가로 몰려서서 바깥의 도시를 노려보았다. 이제 지겨운 여행의 끝이 왔다.
기찻길 옆의 전나무 행렬 위로 희미한 별이 빛을 내고 있었다. 이반은 그 별빛을 응시했다.
그의 아버지가 사랑하시던 성경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의 마음은 설레고 있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치리라.”
7. 곰을 피해 갔더니 이리떼를 만나더라
그의 감방은 아주 작으며 춥고 빛이 없었다.
그의 눈이 어두움에 익숙해지자, 한쪽 벽에 침대가 보였고 그 위에서 팔을 뻗으면 반대 편이 닿을 정도의 좁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감방문의 위 편에는 조그만 유리창이 있어서 그것을 통하여 한밤중에 간수들이 전등불을 비추곤 했다.
그는 움직이지 않아서 온 몸이 아파왔다.
아픔을 참으며 그는 군화를 벗고 양말을 신은 채로 축축한 시멘트 벽에 발을 뻗어 보았다.
기차에서 계속 흔들리며, 기차 바퀴의 소음에 시달리고, 죄수들의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후로 지금까지 이반에게는 죽음 같이 적막하고, 무덤처럼 고요한 감방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반은 추위 속에 누워 있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기차 안에서 늙은 사람이 내뱉은 “전사(戰士)며 동시에 노동자”란 말이 기차 바퀴의 소음과 함께 그의 귀를 맴돌았다.
그의 마음은 천사와 함께 하늘나라에 갔던 기억을 회상하고 있었다.
“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천사는 말했었다.
전사며 노동자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어둠 속에서 차가운 두려움이 그를 엄습했다. 얇은 얼음장이 침대 위의 공중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어떤 싸움일까? 두려움이 공중에 드리운 오랏줄 같이 이반의 얼굴로 바짝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내 영혼이 잠잠히 여호와를 바람이여, 내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그는 나의 바위 시요, 구원이시요,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라.”
심문하는 방은 이반의 감방이 있는 건물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허술한 건물이었다.
방은 상당히 넓었고, 마루 바닥은 삐걱거리며 한쪽 벽에는 페인트 칠을 한 라디에타가 길게 뻗어 있었는데 갑자기 이반은 고향 몰다비아의 집단 농장에 있었던 유치원이 연상되었다.
방 뒤편에는 고사리 모양으로 장식된 조그만 나무 계단이 있었고 그 위의 계단에는 레닌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이반에게는 이 방이 아마도 각종 문화행사 때에 사용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방 한 쪽에 보라색 천으로 덮인 회의용 탁자가 있었고 그 뒤에 이 곳 형무소의 간부가 앉아 있었다.
그 옆 탁자에는 사복 차림을 한 네 사람이 앉아 있었다.
먼저 간부가 입을 열었다. 그 손에는 이반의 서류가 들려 있었다.
이반이 붉은 군대에 충성하기로 선서한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
침례교도들은 곧잘 이런 선서를 거부했지만 말이다.
이반은 이렇게 잘 시작했었는데, 곧 선동자임이 판명되었다.
그는 가르치는 대로 하지 않고, 고루한 신앙에 집착하여 소련 사회주의자들의 가르침을 거부하기로 결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여 똑같이 만들려고 했다.
그가 붉은 군대에 충성하겠다는 선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었고, 권위에 도전하는 태도는 그의 군대 생활을 다 망쳐버렸다.
그를 고쳐 보겠다는 그의 상관들의 헌신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반은 모든 도움을 뿌리치고 자기 뜻대로 사건에 사건을 일으켰다.
그의 견해를 바꾸도록 그렇게 많은 기회가 주어진 것은 소련 정부가 얼마나 관대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다.
이미 그에게 많은 죄목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가 고소되어 7년형을 선고 받을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그가 불법단체인 침례교 회원이라고 공식적으로 수긍한 것 만으로도 형법 142조에 걸린다.
거짓 증거한 것은 181조, 182조에 걸린다.
그의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완전히 날조된 불가능한 거짓이며, 그가 수차 거짓 증언했던 것들이 모두 증명되었다.
190조 1항은 이렇게 적용되는데, 그가 편지를 통하여 소련과 붉은 군대를 비방하는 거짓말을 고의로 퍼뜨렸음이
그의 집으로 보낸 편지가 복사되어서 확실한 증거가 되고 있다.
반국가 선동에 대한 58조 10항의 적용은 이반을 심각한 곤경에 몰아 넣었다.
이미 그는 감방에 갇힌 상태다.
그러나 아직 그에게는, 다시 돌이킬 수 잇도록 이 곳 스베르들로브스크에서 또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가 협조를 거부하면 설득하기 위한 제반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이반은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지 잘 생각해가며 천천히 말했다.
그는 그의 고향 몰다비아어로 얘기할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러시아어의 구조와 어미가 어려워 그가 피곤해 있을 때라든지 또한 가장 요긴한 때에는 문법이 틀리기 일쑤였다.
“저는 소련 정부에 반대하는 어떤 행위도 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조용히 제 책임을 완수하고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기를 소원해 왔습니다. 소동을 일으킨 것은 제가 아니고 군대였습니다. 이 곳에 7년 동안 머무르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일이라도 저는 제가 속한 부대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확신입니다.”
이반이 옮겨진 새 감방은 사방 넉자의 새장 같은 곳이었다.
꼬마들이 학교에서 사용하는 것 같은 조그만 벤치가 그 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춥고 어둡기는 처음 방이나 꼭 같았다. 이틀간을 이반은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고통을 참았다.
시간은 어두운 천같이 이반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빵과 싱거운 커피가 들어오고 배설물 통이 나갈 때만 열리는 감방 문이 정적을 깨곤 했다.
숨막힐 것 같은 공포로 잠에서 깨어날 때면 그 곳에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이 너무 분명하고, 위로하심이 함께 하여 이반은 기뻐 흐느꼈고, 웅크렸던 사지의 얼어가던 통증이 없어졌다.
드디어 그가 감방에서 끌려 나와 복도의 눈부신 빛 가운데 세워졌을 때 그는 공포로 전율했다.
경비병의 기관총 총구가 그를 찔러 윽박지르며 차디찬 바깥으로 몰아내어 심문실로 끌고 갔다.
지난번의 그 간부가 탁자 옆에 서서 허리에 찬 채찍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래, 자네는 이제 자네의 동굴에서 기어 나와 사회주의자들의 좋은 공기를 마시고 있군! 지난 이틀간 자네는 석방시켜 달라고 애걸하면서 시간을 보내지는 않은 것 같아.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올랐나? 이제 자네 눈을 가린 수건을 벗어버리고 진정으로 소련 사회에 뛰어들 의향이 생겼는지 모르겠네.”
약한 태양 빛에도 이반의 눈가가 타는 것 같았다.
그는, 말을 해도 소리가 너무 작아 들리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애썼다.
그 장교의 얼굴은 불타는 것 같았고 그의 말소리는 서서히 다가 왔다.
“성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속한 진정한 세계입니다.”
이 대답에 그 장교는 한참 동안 말없이 이반을 노려보았다. 그는 채찍을 잡아 탁자를 치기 시작했다.
그는 한 순간도 이반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동물을 때리듯이 탁자를 계속해서 내리쳤다.
이반은 어릴 때 집단 농장에서 술 취한 사람이 소를 때리는 것을 보았다.
그 동물은 멍에를 지고 외양간에 묶여 있었으므로 피할 길이 없었다.
채찍에 무방비인 살갗에서 피가 흘러 다리를 통해 진흙에 떨어졌다.
이반의 평안했던 마음이 갑자기 변하면서 공포가 엄습했다.
“이것이 현실 세계다!”
장교는 소리 지르며 떨리는 손에 채찍을 세워 들고 이반에게로 다가왔다.
“하나님이 네 앞에 다가오는 위험으로부터 너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내가 지금 결정하는 현실로부터 하나님이 너를 구원할 수 없을 때 네가 어떻게 느낄지 두고 보자.”
이반은 채찍이 곧 자기에게 떨어져 다칠까 봐 한 순간 몸을 도사렸다.
그러나 갑자기 그 장교는 굴러가듯이, 그 긴 방을 총알같이 걸어나가 버렸다.
그 순간에 경비병 두 명이 나타나 이반을 밀어 감방으로 데려갔다.
경비병이 열어놓은 조그만 문 앞에서 이반은 두려워 떨며 머뭇거렸다.
“안으로 들어 갓!”
경비병은 총으로 이반의 등을 찔러 조그만 감방 안으로 밀쳐 버렸다. 문은 곧 꽝 닫히고 빗장이 걸렸다.
물방울이 그의 군화에 튀고 또 벽으로 흘러내렸다.
흐린 전등이 갓에 끼워져 낮은 천정에 매달려 있고, 얼음으로 싸인 파이프들이 얼기설기 지나가서 전등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모든 파이프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파이프 중간에서도 연결 부분에서도 물이 새어 감방 한쪽 구석의 얼음으로 덮인 벽을 타고 내려왔다.
이반은 곧 얼음같이 차가운 물방울을 피해 서 잇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외투에서 떨어진 물은 그가 움츠릴 때마다 목 뒤를 타고 흘러 들어갔다.
문의 흰 얼음을 깨뜨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몇 분이 못되어 그는 심히 떨기 시작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구원하실지라.”
곳곳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속에서, 문득 감시 구멍을 통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경비병을 발견하고 이반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내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줄 아나이다.”
감방 구석으로 다가가서 움푹 파인 곳에 등을 대니 겨우 물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계속 이 시편을 되뇌었는데, 그 말들은 마치 자기 옆에서 들리는 듯 하기도 했고, 감방 전체에서 들리는 듯도 했다.
동시에 그가 거의 외치다시피 하는 성경 말씀과는 무관하게 그 마음은 감방을 탈출하고 싶어 몸부림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시나무 떨리듯 하던 몸은 서서히 정지되고 심한 통증이 몸의 모든 연결 부분으로부터 등줄기와 머리로 퍼지기 시작했다.
젖은 군화 속에 눌려 있던 발이 몹시 고통스러워 그는 감방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얼음 섞인 물에 엉거주춤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찬란한 틀에 들어있는 성상에 촛불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어느 정교 성당에 자기가 와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배 드리고 있었고, 장엄한 음악과 찬송이 성당에 가득했다. 예배는 매우 길었다.
이번에 심문하는 방은 감방과 같은 동에 있었는데 돌로 지어진 큰 방의 책상 옆에는 연기 나는 난로가 타고 있었다.
이반은 난로와는 반대편, 그 방 끝의 나무 침상에 누워 있었고 그 옆에는 전기 난로가 발갛게 타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거기 눕게 되었는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정신이 들기 시작할 때, 그는 옷이 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는 뻣뻣하게 몸을 일으켰다. 높은 창과 창살, 사방의 벽, 난로 주위의 간수 몇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가 뒤로 다시 멀어졌다.
옆에 서 있던 간수 하나가 사납게 몸을 당겨 앉히면서 무슨 몸이 이렇게 무거우냐고 욕을 퍼부었다.
장교가 뭐라고 말하는지가 중요하지는 않았지만, 이반은 들으려고 애를 썼다. 그는 몹시 아팠다.
“넌 네 분량의 빵과 커피를 받게 된다. 그리고 소련 젊은이들의 기준에 따라 훈련 받도록 케르치의 본 부대로 돌아간다. 우리의 명령이다. 넌 고집이 대단하다, 모이세예프. 그러나 네 맘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네가 돌이킬 의사만 표시한다면 이 곳을 떠날 수 있도록 조치해서 군에서 요구하는, 그리고 소련 국민의 의무인 훈련을 다시 계속하도록 고려해 보겠다. “
그의 침대 옆 테이블에 싱거운 커피 한 잔과 얇은 은박 접시에 빵이 놓여졌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반은 컵을 들어올려 커피의 향기를 맡았다.
성찬식의 포도주가 이 컵같이 거룩해 보인 적이 없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가득했다.
“이것은 내 언약의 피니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것이다.”
엄습하는 사랑에 감사하며 이반은 잔을 비웠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는 빵을 떼었다.
“받아 먹어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모이세예프, 여기 서류가 있으니 원하면 서명하라.”
장교는 계속했다.
“이 서류에는 네가 케르치의 부대장인 말신 중령과 온전히 협조하고, 네가 붉은 군대에 복무하는 동안 어떤 부서의 어느 장교 명령이든지 온전히 복종할 뜻을 확인하는 것이다. 식사하고 서명만 하면 나는 너를 석방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겠다"
그 후에 이반은 감옥의 악몽 속에 더 깊이 던져졌다.
“넌 ‘얼어 죽는 방’에 보내진다. 항복해! 살아날 수 없어.”
늙은 간수가 속삭였다.
냉동 감방에서 몇 시간이나 살 수 있을까?
이반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두꺼운 문이 덜컥 닫히는데 벽과 천정에는 엷게 눈이 덮여 있었다.
점점 두려움이 커가면서 시간은 지나갔다.
고통이 시작되었으나 문은 눈곱만큼의 틈도 없이 꼭 닫혀 있었다.
천정의 흰 빛이 눈부셨다.
성경 구절을 암송하고, 고향의 집을 회상하며 장차 가게 될, 빛이 가득한 곳을 생각하다가 그는 드디어 조용해졌다.
조금씩 두려움과 고통이 사라지고 그는 졸기 시작했다. 깊이 감사하면서 그는 감방의 바닥에 길게 누워버렸다.
처음에는 자기를 죄어 누르는 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우주인으로서 얼어 붙은 우주 공간을 날고 있었다. 그러나 조여 드는 옷은 실재였다.
“항복하겠나? 신앙을 바꾸지 않겠나?”라고 외치는 소리에 그는 의식을 되찾았다.
그는 매어 달려 대롱거리고 있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공간에는 빛난 모습의 천사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서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리라.”
만약 내가 폭발한다면 천국에서 폭발할 것이다.
압박은 더 심해졌다.
이반은 옷을 벗어보려 했고, 숨막히는 고통에서 벗어나 천사가 있던 시원한 곳으로 나가려 했다.
“믿음을 바꾸겠는가? 그러면 고통을 풀어주겠다.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넌 이 곳에 7년을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이 이반의 목소리를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애써서 몇 마디 내뱉었다.
“만약 하나님의 뜻이면 난 여기 있겠다. 만약 아니면…… 내일…… 죽게……”
담당장교는 빈 담뱃갑을 책상 옆의 휴지통에 구겨 던지고는 서랍 속을 뒤져 또 담뱃갑을 꺼냈다.
불을 댕기고 흠뻑 들여 마셨다.
더 이상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상부로부터 지시 받은 것이 없었다.
이반은 군인의 신분으로서 기소되고 군사 재판을 받아야 마땅했다.
물론 그를 이 곳 스베르들로브스크에 종신토록 가두어 두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런 명령은 받지 못했다.
이 곳 형무관들은 그들의 책임을 다했다.
열 이틀간이나 이반은 극심한 심문과 재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그를 상자에 처넣어 케르치로 되돌려 보내는 것 외에는 더할 것이 없었다.
그는 기차에 실려서 케르치까지의 멀고 불편한 여행을 해야 될 것이고, 좀 회복된 다음에 그의 장래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케르치나 오뎃사의 책임자가 이 일을 염려하게 버려두자.
이 곳의 고문이 부족했다고 그들은 불평할 수 없을 것이다.
이반의 사건에 관한 한 우리는 손을 떼자.
꾀죄죄한 창문 틀에 와 앉은 작은 새 한 마리가 그 장교의 눈에 들어 왔다.
매일 그 새는 그 곳에 놓아 둔 얼어붙은 빵 조각을 쪼아댔다.
이 곳에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매년 새 종류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는 마음의 평정을 잃고 새를 쏘아 보았다.
하늘도 더럽고, 눈도 더럽고, 요사이는 모든 것이 더럽게만 보인다.
8. 나의 조국이여, 당신은 나를 빵으로 먹여 주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소련 전체를 내게 주었소
케르치의 겨울은 마지막에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다.
이른 아침에는 레이스 무늬 같은 눈송이가 한가히 흩날리기도 하지만, 엄격한 훈련은 추위를 잊게 했다.
정치국은 이반에게 스베르들로브스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하여 일체 말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렸거니와, 뒤떨어진 군사훈련과 정훈교육에 여념이 없는 그에게는 이런 명령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거기다가 그는 말신 중령의 운전사로 보직을 받아 예고 없이 불려가서 운전을 해야 했다.
때때로 다른 동료 병사들과 함께 교실에 앉아 있을 때는, 이반의 바쁜 세계가 속도를 늦추면서 평화 속으로 빠져들곤 하는 것 같았다.
스베르들로브스크의 공포에 대해서는 꼭 한번 세르게이와 장기를 두면서 언급한 일이 있었다.
이반과 그의 친구는 휴게실 구석에 앉아 재빠른 동작으로 장기 패를 옮기곤 했다.
웃음 소리와 농담으로 가득한 그 방에서 위로의 성경 말씀이 무의식 중에 이반에게 떠오르고 또 사라지곤 했다.
봄이 오면서 이반은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것을 알았다.
거의 기도가 불가능한 낮에도 이반은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를 점점 크게 경험하게 되었다.
사랑이 그 안에서 촛불같이 빛나고 있었다.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불의(不義)의 세력도 이 불꽃을 끄지 못하는 것에 놀랐다.
오늘 밤에도 ‘과학적 무신론’이란 강좌를 들으러 뛰어가지만 그에게는 불안한 마음이 없었다.
그는 피곤했고 온 몸의 근육이 아팠지만, 하나님을 찬양함이 그 속에 샘물같이 솟아났다.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군인들은 교실 앞쪽의 벌겋게 단 전기스토브 주위에 둘러서서 농담을 하고 있었다.
이반은 자리에 앉은 채로 책상에 엎드려 쉬고 있었다.
침대를 나란히 두고 생활하는 블라디미르 알부는 이반이 이런 소란 속에서도 잠들 수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벽의 시계는 시작 시간을 몇 분이나 지나고 있었으나 아직 교관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군인들은 난로의 따스함에 미련이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교관이 나타나서 착석해 있지 않았다고 꾸짖을까봐 각각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러나 시간은 계속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블라디미르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끼리 강의를 진행해 보자. 정치 토론이 좋을 것 같은데!”
모두들 관심들을 보였고 그렇게 하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명령 없이는 교실을 떠날 생각을 못 했다.
“우리들의 이반 바실리에비치 동무는 교실에서 가르치는 이론에 가끔 반대 의사를 표시해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는 한 번도 그의 변명을 들어보진 못했어. 이런 기회에 한 번 질문해보자. 이반의 신(神)과 우리들의 신-이반은 이것을 국가라고 하지만-과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이반은 이 수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기도하고 있었다.
이제 이반의 가슴 속에는 어떤 뿌듯함이 생기면서 토론을 받아 들였다.
동료 군인들은 담배를 꺼내들고 이반 쪽으로 의자를 돌려 앉았다. 교실 안에는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블라디비르가 침묵을 깼다.
“좋아, 이반! 자네의 하나님은 누군가?”
교실에서 설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이반의 기쁨은 잠깐이었다.
“나의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위대하시며…”
바로 교실 한 가운데 아르메니아 출신 상사가 담배 연기에 기침을 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마루를 구르고 서 있었다.
“잠깐만, 모이세예프. 너의 하나님은 전능하다고?”
“예.”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나?”
“예.”
이 당돌한 도전에 상사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이 완연히 보였다.
군인들은 흥미 있게 주시하고 있었다.
“만약 자네의 하나님이 전능하여 무엇이나 할 수 있다면 증명해보라.”
이곳저곳에서 그렇다고 동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반의 생활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심각한 질문들을 던져주곤 했었다.
상사는 크게 소리쳤다.
“자네의 하나님이 무엇이나 할 수 있다면, 내일 내게 휴가를 주어 집에 가게 해 봐라. 그러면 내가 하나님을 믿겠다!”
“정말 훌륭해!”
블라디미르가 소리쳤다.
이제는 과학적으로 판결할 수 있다.
검으냐, 희냐? 예냐, 아니냐?
휴가란 드문 일이다.
이런 대결에서는 무승부도 신비한 일도 있을 수 없다.
즉시 이 도전에 찬동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래, 네 얘기를 지금까지 들어 왔는데 모두 요정 이야기 같아. 그러나 자네 하나님이 알렉산드로비치 프로코로프 상사에게 휴가를 준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것을 믿겠다.”
“맞아! 자네 하나님이 그렇게 한다면, 그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고 무엇이나 할 수 있음을 믿겠다!”
“그렇고말고! 자네 하나님이 스스로 증명하게 하라구! 그러면 우린 믿겠네.”
흥분된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이반은 뜨겁게 기도하고 있었다.
답변을 기다리던 동료들은 이반의 얼굴에 나타난 진실 된 갈등을 보고 조금씩 숙연해졌다.
주님! 이 일이 당신으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시험을 받으십니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옳습니까?
“어이 이반! 자네의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명해 보라구!”
상사는 자기 의자에서 약간 불안한 듯 몸을 돌렸다.
도전이 너무 심각하게 진전되어 버렸다.
갑자기 이반은 구약의 바알 선지자들과 엘리야의 대결을 생각했다.
새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이반은 주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했다.
그 마음에 분명한 말씀이 왔다.
“내가 그렇게 하리라고 그들에게 말해라.”
이반이 대답을 시작하자 모든 눈이 그를 응시했다.
그의 음성은 확신에 차 있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반은 상사를 향해서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분명한 소리로 말했다.
“내일 상사님은 휴가를 가게 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은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합니다. 담배를 던져 버리십시오.”
상사는 복종했다.
“이제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십시오.”
프로코로프는 별 수 없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담뱃갑을 꺼냈다.
책상에서 몸을 일으켜 천천히 난로가로 걸어가서 벌겋게 단 화로 속에 담배갑을 던졌다.
순식간에 불길이 일어나며 환하게 타 버렸다.
군인들이 교실 앞 뒤 출입문에 모여 있었고 또 사방 벽으로 돌아가면서 서 있었는데 이반은 이런 것을 처음 보았다.
보이지 않는 안개같이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몇 명의 교관들이 숨 가쁘게 도착해서 정적은 깨어지고 저녁 수업이 계속 되었다.
야간 소등시간이 지나서야 이반은 그 상사와 다시 얘기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하여 창밖의 반짝거리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반의 확신에 찬 대답이 그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는 저녁 내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지만, 자꾸만 가슴이 설레는 것을 자신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침엔 무슨 일인가 생길 것이라고 그는 거의 믿고 있었다!
“동무, 말씀드릴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반이 속삭였다.
프로코로프는 담요를 당기면서 한쪽 팔꿈치로 몸을 일으켰다.
“모이세예프, 왜 자지 않나?”
이반은 웃어 보였다.
“당신께 말씀드릴 것이 많아서입니다. 내일 당신은 신자가 될 테니까 들으셔야 될 것이 많이 있습니다.”
“넌 제 정신이 아니다. 빨리 돌아가 자라. 감기 들기 전에 말이다.”
어둠 속에서 프로코로프는 이반을 자세히 보려고 애썼다.
12월의 영하의 추위 속에서 밤새도록 서 있었던 이반의 얘기가 퍼뜩 떠올랐다.
이반은 지금 담요 한 장으로 몸을 두르고 프로코로프의 침대로 찾아온 것으로 보아 그의 이야기는 수긍이 갔다.
“내일 아침 휴가를 가게 되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셨지요?”
“물론이지. 우리 중에 여럿이 믿을 거야.”
“그러나 하나님이 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은 알렉산드로비치 바로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당신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좀 불안했지만, 프로코로프는 이반의 말에 마음이 끌렸다.
이와 같은 확신을 갖고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이전에 그는 들어본 일이 없었다.
성경의 교훈은 딴 세상의 것으로, 이전에 본 박물관의 성상들이나 기독교인들에게서 들은 이상한 이야기들 뿐이었다.
이미 그는 오래 전에 자신의 공허함을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라고 결론지었는데, 이것이 모이세예프가 말한 대로 하나님에 대한 추구란 말인가?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고향에 기도하는 곳이 있습니까?"
상사는 우스웠다.
“늙은 부인들을 위한 기도처 말인가? 어쨌든 없는 것 같아.”
“늙은 부인들만 가지 않고 남자들도 많이 갑니다. 젊은이들도요. 그들이 당신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곳의 신자들의 이름을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케르치의 형제들이 알 것입니다.”
“케르치에 자네같이 믿는 사람들이 있나? 그리고 내 고향에도?”
이반은 씩 웃었다.
“물론이죠! 그들에게 가서 주님이 당신에게 하신 일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큰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찬송하며 당신을 환영할까요!”
프로코로프는 자꾸만 불안해졌다.
“신자들의 모임에는 성경을 가진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적어도 목사님들 중의 한 분은 성경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 목사님들은 다 성경을 갖고 있겠지요. 누군가 당신에게 성경을 빌려줄 것이고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알려 줄 것입니다. 제게는 빌려줄 성경이 없어서 섭섭합니다. 우선 지금은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으셔야 하겠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가능한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 인간, 죄 그리고 인간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 등에 대하여 얘기 합시다.”
혼자 속삭이던 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로 바뀌면서 밤이 깊어갔다.
기상나팔 두 시간 전에야 이반의 기도로 대화는 끝났고 프로코로프는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모이세예프, 내 머리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가득 차 있어. 다시 잠들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나 고마워, 먼동이 트고 있군.”
기상나팔에 잠을 깬 이반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아주 놀라운 날이 시작되었다.
오늘따라 그는 힘든 장거리 아침 구보가 기다려졌다.
세르게이를 만나 프로코로프의 이야기를 해주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나누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섭섭하게도 이반에게는 그 날 아침 구보가 제외되었다.
간밤에 빵이 배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반은 이제 케르치로 가서 아침식사를 위한 빵을 싣고 와야 했다.
이반은 조그만 트럭에 뛰어 올라 노래를 부르면서 시동을 걸었다.
한 시간 만에 돌아와 차를 세우는데 차고 근처에 군인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호기심에 그는 차에서 내려 정문에 몰려잇는 군인들에게로 뛰어갔다.
그들은 이반과 같은 부대 소속의 군인들이었다. 흥분된 함성이 터졌다.
“이반! 프로코로프 동무가 휴가를 떠났다! 그가 떠나버렸어! 자네에게 말하려고 우린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군인들은 진지한 태도로 이반을 에워쌌다.
오뎃사의 사령부에서 어떤 장군인지 대령이 전화를 걸어 프로코로프에게 즉시 휴가를 명하라고 했다.
전화 후 10분도 못되어 그는 출발했고, 기뻐 뛰면서 마침 역으로 가는 우편 트럭에 뛰어 올라 가버렸다.
블라디미르는 무리 중에서 뛰어나와 이반의 팔을 잡았다.
“우리가 모두 웃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장교들이 밖으로 나왔어. 지난 밤 정훈교육 시간에 있었던 일을 말해줬지. 자네 말대로 다 된 것을 듣고 난 그들의 얼굴이 어땠는지 자네가 봤어야 하는데 말이야! 기덴코 소령이 자초지종을 듣고는 군인들을 역으로 보내서 프로코로프를 데려오라고 했지. 그들은 눈보라 속을 미끄러지듯이 정문으로 나갔어. 역에 도착해서 그들이 본 것은 저 멀리 사라지는 기차의 꽁무니뿐이었다네. 프로코로프는 가버렸어!”
모이세예프가 부대로 돌아오는 광경을 기덴코 소령은 사무실에 앉아 쌍안경을 통해 보고 있었다.
모이세예프는 명령을 수행하고 곧 돌아왔다.
이반이 흥분된 군인들을 떠나가고, 군인들이 각기 자기 임무를 수행하려 흩어지는 것을 보고 그는 만족했다.
기덴코는 스베르들로브스크 감옥 이후로 모이세예프가 마음을 가라앉혔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는 셈페로폴의 돌로토프 장관에게 이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확신의 공한(公翰)을 보냈었다.
그러나 이제 또 문제가 발생했다.
모이세예프는 이 부대에서 유명해지고 있었다.
그는 인기가 있었고, 훌륭한 군인이었고, 군인들은 그에게 또 그의 침례교 사상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사고가 계속 되는 가운데서는 이 부대를 군사적으로, 또 사상적으로 효과 있는 훈련을 시킬 수가 없다.
모이세예프에 대하여는 전혀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다.
돌로토프의 직속인 말신 중령은 기덴코에게 이것을 철저히 조사하든지 아니면 알지 못하는 부대로 전출시키라고 했다.
현 상황에서 겉으로 나타난 것 외에 더 관련된 것들이 있었다.
프로코로프의 휴가에 대한 것을 모이세예프는 오뎃사의 몇 사람들에게 전했던 것이 틀림없다.
기덴코는 맥이 빠졌다.
이런 어려움은 시간이 많이 소모되고, 불편하게도 여러 사람들이 관계되어 있다.
모이세예프의 문제가 쉽게 해결되리라는 확신이 없어졌다.
프로코로프의 문제는 별개다.
그는 항상 사상이 온건했는데, 어떤 말썽꾸러기가 프로코로프가 스스로 신자임을 선언했다는 이야기를 조작했다.
이런 것들은 휴가가 끝나면 분명히 증명될 것이다.
말신 중령이 이 문제에 개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불길한 징조였다.
정치국에는 모이세예프의 사건을 10개라도 처리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충분하다.
그러나 말신 중령은 특별히 종교문제에 예민했다.
작은 체구의 말신이 들어오자 기덴코는 일어나서 경례했다.
설상가상으로 말신은 이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 하지 않았다.
“그의 인기만 아니었더라면, 난 이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을 것일세.”
말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기덴코를 찔렀다.
“난 그를 유심히 관찰했네. 믿어도 좋아, 그는 훌륭한 운전수야. 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차는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고, 사리가 분명하고 모든 면에 언제나 정확하거든. 그는 장교들 사이에서도 점수를 얻고 있단 말이야, 점수를! 그가 여기 온 지 6~7개월밖에 안 되었는데도!”
그렇게 오랫동안 한 젊은 청년이 붉은 군대에 대항하다니, 기덴코로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난 그 전에도 침례교인들이 행동하는 것을 보아왔는데, 그들은 고집이 세고 비겁하며 매우 은밀히 처신했다.
그러나 그들은 틀림없이 좋은 성적을 올린다. 그들은 자네들 같은 법률가들을 다 합쳐 놓은 것보다 더 이 나라의 법을 잘 알고 있다. 아니 그렇게 스스로 생각한다.”
기덴코도 대답했다.
“기술적으로, 법에 의하면 모이세예프는 아무 범죄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이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기덴코는 창문을 조금 열어 신선한 공기를 들어오게 했다.
케르치의 봄은 아름다웠고 일직 와서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 쉬고 곧 모이세예프가 도착하기를 바랐다.
“말도 안 된다. 기덴코, 나는 귀관의 능력을 의심한다. 나라면 지금 당장 모이세예프를 선동자로 체포할 수 있다. 내가 알기로, 법에 최소한 이런 조항이 있지 않은가? 반국가 행동과 종교적 선동 말이다. 모이세예프는 둘 다 해당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네도 알 듯이, 한 가지 법은 제쳐두고 한 가지만 기술적으로 적용할 수도 있지 않은가!”
기덴코는 중령과 논쟁하는 것이 싫었다.
“죄송하지만, 모이세예프는 은밀히 다룰 수가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어 있습니다. 부대원들은 우리의 이런 차별을 종교성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절대 해석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령님, 그리고 반국가 행위라는 것도 우리들에게는 명확하지만, 부대원들에게는 그렇게 뚜렷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담배를 붙여 물면서 말신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 문제는 처음부터 잘못 처리되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닷새를 굶겨! 눈 속에 몇 시간을 세워두고!
그런 가운데서 천사의 이야기가 환상 가운데 실제가 될 수 있는 법이지.
바로 그거야.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사건으로 모이세예프와 하나님이 주인공이 되고 있다.
성냥을 긋는 순간 말신의 긴장된 얼굴이 흐린 불빛에 잠깐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사실을 조사해 보면 프로코로프의 휴가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거야. 이 세상에는 신비란 없는 법이다. 단지 우연 밖에는.”
노크 소리가 나고, 이반이 호송병과 함께 들어오고 문이 닫혔다.
말신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이목구비가 분명하고 깨끗하며 눈빛이 진지한 잘생긴 청년이었다.
“모이세예프, 나는 이 지역 총사령관 말신 중령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서, 자네는 반(反)소련 국가 파괴의 혐의가 있다. 오늘 아침 떨어진 알렉산드로비치 프로코로프 상사의 휴가 명령을 알기 위하여 자네는 오뎃사의 누군가와 연락했었다.”
기덴코는 의자를 돌려 멀거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4층 아래 건물 현관 앞에는 군인들이 지나가면서 이따금 이곳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모이세예프가 또 심문받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퍼진 것이다.
“자네의 종교적인 환상 가운데로 유물론과 사회주의에 무지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한 혐의가 있다. 생산적인 활동과 활발하고 창조적인 공산주의 훈련이나 노동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을 떼어내려고 해 왔다. 자네의 사령관으로서 명령한다. 즉시 그런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파괴적인 모든 행위를 자백하라.”
소령은 다시 돌아서서 방쪽으로 향했다.
모이세예프는 의연한 자세로 서서 말이 없었다.
“먼저,”
말신은 목소리를 좀 더 날카롭게 하여 계속했다.
“자네는 어떻게 해서 프로코로프의 휴가를 미리 알았는지 자백하라. 절대 케르치에서는 이 일이 새어나간 일이 없었다. 소상히 설명하라.”
이반의 음성은 힘이 있고 분명했다.
“중령 동무, 저는 프로코로프 상사가 휴가를 얻을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말신은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마치 대답을 들은 적 없는 것 같이 질문을 되풀이 했다.
기덴코는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이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기덴코에게는 일상생활인 분노, 협박, 함정이 도사린 질문 같은 것들이 계속되면서 아침은 오후로 넘어가고 있었다.
말신의 정력은 대단해 보였으나 모이세예프의 대답은 조용했고 어떤 때는 너무나 침묵이 흘러 기덴코는 그가 아픈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아침도 저녁도 먹지 않고 그 소년은 기진할 것이라고 기덴코는 생각했다. 심문은 끝이 없었다.
기덴코는 자기가 했으면 더 잘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말신은 소리 질러 모이세예프를 쫓아 보냈다.
문이 닫히고 나자 분노로 새하얗게 된 말신이 이를 악물고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소련 빵을 처먹고 살고 있다니!”
9. 가난한 자들은 노래하고 부한 자들은 듣는다.
이반은 자신이 다른 부대로 전속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여름 내내 조바심 가운데 지냈다.
말신 중령이 그렇게 결정했다는 것을 이반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해안 도시 카르치의 봄은 싱그러웠고, 찬란한 여름도 어느덧 지나고 또 가을이 왔지만 이반은 여전히 그 곳에 머물러 있었고, 밤낮으로 꽉 짜인 일과에 쫓겨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뛰어나도록 최선을 다했다
-정훈, 사격, 체조, 기계기술, 운전, 야간훈련, 야전 훈련-
이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였다.
그러나 오늘 오후 좀 느즈막이, 전속에 대한 소식이 좀 더 새어 나왔다.
그는 집에 편지를 부치러 영내의 우체국으로 급히 가고 있었는데, 장교 식당 입구에서 몇 명의 군인들이 자기에 대해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렸다.
블라디미르 야코블레비치가 언성을 높였다.
”모이세예프가 무얼 잘못했다는 겁니까? 우리의 헌법은 누구에게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신자가 된다는 것이 위법인가요? 그가 무슨 법을 어겼기에 그렇게 자주 심문을 받는 것입니까? “
이반은 정훈 장교의 퉁명스러운 대답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쉰 목소리의 우크라이나 출신이 한 가운데 나섰다.
“왜 그가 전속되어야 합니까? 그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 부대를 떠나야 합니까?”
장교는 다시 뭐라고 대답했지만, 우체국의 무거운 문을 여는 이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우표를 사려고 주머니 속의 동전을 뒤지는 이반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떤 사건이든지 정치국 장교에게는 심문할 근거가 되었다.
만약 동료들이 이반을 변호한다는 것을 말신 중령이나 기덴코 소령이 안다면 진노할 것이다.
강의실로 내려오는 길에는 자동차 바퀴 자국이 몇 줄 나 있었다.
부엌에 땔감을 실어 나르던 작은 트럭이 만든 자국이었다.
바퀴 자국에서 먼지가 푸석거렸고 이반의 군화에 그 먼지가 덮였다.
온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롭게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그는 생각해 왔다.
저 멀리 싱싱한 들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이 땅을 “신성한 러시아”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이반은 생각했다.
저녁노을에 잎사귀 몇 개가 떨어지며지며 금빛으로 반짝였다.
그의 지나온 나날이 불확신으로 이어진 만큼이나 주님은 확실했다. 그 분은 필요할 때 언제나 도와주셨다.
찬양, 찬양, 찬양하라,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가장 거룩하시고, 가장 귀하시고, 가장 놀라우시고, 가장 엄위하신 평강의 왕 하나님께!
그는 환희에 찬 얼굴을 들어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불꽃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초저녁 이른 별 몇 개가 화염 속에서 빛을 잃으며 사라졌다.
이반은 두려워서 길옆의 조그만 동산에 뛰어들어 나무에 기대어 섰다.
하늘에서 화염이 막 쏟아지는 것 같았는데, 땅 가까이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하늘을 응시하는 중에 이상한 따뜻함과 달콤함이 물결같이 엄습하여 그의 두려움을 녹여주었다.
그 화염 가운데 차차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이 너무나 놀라와 이반은 넋을 잃고 보고 있는데 안에서 읽으라고 명령하는 것 같았다.
글자를 처음 배우는 어린 아이 같이 이반은 한자 한자를 읽어갔다. 천천히 그 의미가 마음에 새겨졌다.
“내. 가. 곧. 오. 리. 라.”
이반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물결치는 듯 했고 글자들도 뛰노는 것 같았다.
계속하여 그 글자들은 축하의 향연을 벌이는 것 같았다.
글자들이 사라지자 이반도 갑자기 실망에 빠져버렸다.
하늘의 화염은 어두운 하늘 저편으로 물러갔다.
순식간에! 아마 이 광경이 일어났던 것은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지나가던 친구가 팔을 당겼기 때문이다.
“이반, 정신 차려! 낮인데 꿈꿀 시간이 어디 있어. 수업 시간에 늦겠다.”
이반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가슴 속의 커다란 슬픔으로 그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친구는 걸어가면서 계속 이야기했다.
이반은 정신을 차려 인사에 답하고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단정히 앉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필기하고, 빠른 강의를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강의가 끝나자, 이반도 가방을 챙겨 다음 수업장으로 뛰어갔고, 저녁 훈련을 마치고 막사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후덥지근한 한 밤중에 비상벨이 울렸을 때, 이반은 계속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쁨과 그 광경을 다시 보려는 열망으로 들떠 있었다.
다시 훈련이 끝나고 그 밤이 새도록 그는 엎드려 기도하면서 그 전에 혹성에서 아직 네게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하던 천사의 말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랬다.
아직 찬양하고 있는 이반을 침대로부터 일으킨 그 아침 햇살이, 불쾌한 가운데 있는 말신 중령에게도 똑같이 비쳤다.
그는 침대에 똑바로 앉으려고 하면서 피곤한 듯 기침을 쿨룩거렸다.
그는 이 아침이 왜 상쾌하지 않은지 알 수 없었다.
아파트의 부엌에서는 아내가 아침을 준비하면서 어린 아들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생선 냄새가 흘러 들어오고, 차를 준비하며 물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하! 오늘이 바로 61968T부대가 조스테나 지역의 추수를 돕기로 한 날이구나.
바로 이반이 속한 부대! 일이 깔끔하게 매듭 되지 않는 것을 말신은 좋아하지 않았다.
모이세예프 문제의 핵심은 그가 자기 부대에서 수 많은 친구를 성공적으로 모으는 데 있다.
쉽게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는 인간미가 풍기고, 열심히 일하고, 누구나 도와준다. 물론 자기의 사상을 퍼뜨리기 위한 수법이다.
그러나 기덴코가 옳았다.
그는 정말 잘못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명석하여 할 수 있는 한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있었다.
말신을 차를 젓고 있었고 아내 갈리나는 근심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이세예프를 그 부대와 함께 추수하러 가게 내버려 두니 언짢아. 그를 알려지지 않은 부대로 전속시켰어야 하는 건데, 은밀히 속히 했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는 중얼거렸다.
“이번 일은 저도 신경이 쓰여요. 이반의 모든 이상한 사건을 당신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녀는 말끝을 흐리고 눈을 돌려 아침의 찬란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말신은 차를 급히 마시려다가 혀를 데었다.
“갈리나, 당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게요? 소련의 모든 사람들 중, 당신은 학교 교사로서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한단 말이요? 매우 이상하군 그래. 내가 알기로는 젊은이들에게 마르크스-레닌 사상을 교육시키는 것이 당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갑자기 테이블 맞은편의 남편 쪽으로 몸을 숙였다.
약간 희끗희끗한 머리를 유행에 따라 희게 염색을 하고 노란 머리카락은 볼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의 커다란 푸른 눈에 좀 장난기가 서렸다.
“여보, 제게 너무 역겨워하지 마세요. 이 모든 과학적 유물론에 당신은 때때로 지겨워하지 않으시나요?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
아내가 계속 말하는 동안 말신은 시선을 돌려 제 방에서 옷을 입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가장 열심히 일하고, 가장 정직한 사람들-이 바로 모이세예프와 같은 침례교도라는 사실을 당신은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있나요?”
“그런 교육을 받고, 그런 위치에 있는 당신 같은 여성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소!”
아내가 계속 한숨을 쉬는데 말신은 화가 치밀었다.
“하나님이란 사상은 옛날 아직 이해할 수 없었던 자연현상을 모두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단 말이요. 더 몹쓸 것은 하나님이란 말을 사용해서 수백 년 동안 이 나라의 불평등과 잔악함과 위선을 옹호해 왔다는 것이요. 이런 것들을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소?”
뜨거운 차에 덴 혀가 종일 고통스러울 것이다.
가방에 서류를 쓸어 담으면서 말신은 아내가 준비한 생선 접시는 무시해 버렸다.
“공산주의가 승리하려면 이 종교라는 암은 근절되어야 해. 몇몇 사람이 아직도 종교적인 편견에 얽매여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어떻게 모든 인민들이 21세기로 발전해 갈 수 있겠어? 어디서 새로운 소련인을 볼 수 있겠냐 말이야?”
갈리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여보, 우리가 듣기로는 종교에 대항하여 싸우는 데는 이론적인 무기가 필요하다지요? 강제적인 방법은 종교를 더욱 뜨겁게만 하니까요. 당신은 젊은 모이세예프에게 강제적인 방법을 쓸 생각은 않으시겠지요?”
어떤 기억이 그녀의 얼굴을 찌푸리게 했다.
말신의 목소리는 침착하지 못했다.
“나의 군사, 정치적인 수단 방법에 대해 학교 교사에게 대답할 필요가 있다면, 아예 당신 교실에 들어가 열 살배기 학생들 틈에 끼어 앉을테니까.”
대답을 하면서 말신은 문을 쾅 닫고 나갈 용기가 없어져버린 것을 느꼈다.
추수하는 들판에서의 몇 주간을 천막에서 지내며, 광활한 우크라이나 하늘 밑에서 살았지만 이반에게는 너무 빨리 지나가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도회지에서 온 군인들은 노동의 단조로움과 시골의 썰렁함에 쉽게 지쳐버렸다.
집단 농장의 농부들이 쓰는 천한 말씨와 흙 묻은 손에 군인들은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저녁에는 천막 안에서 하품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장기를 두면서 추수가 빨리 끝나버리기를 바랬다.
그러나 이반에게는 이 시골이 집 같았다.
부모님들이 일하시던 집단 농장이 이만큼 컸기도, 추수가 그 때와 같았기 때문도 아니다.
등 뒤의 따스한 햇볕, 대지의 향기, 넓은 들에서 서로 부르는 소리들이 이반으로 하여금 어디에 있는지를 잊게 하고, 마치 근처에서 일하고 있는 어머니나 형제들이 금방이라도 부를 것 같이 생각되었다.
참으로 쉬며 영적인 소생함이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는데 너무 빨리 지나갔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트럭에 앉아서 바로 앞에 구동축이 고장 난 트럭을 같은 종류를 다른 트럭이 끌고 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진흙에 뒤범벅이 된 선두 차량이 앞서가고 귀대하는 트럭의 행렬이 케르치로 향하는 시골 언덕을 뱀같이 길게 이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앞의 트럭에서 쿵 소리가 나며 이반의 평안을 깨뜨렸다.
그는 경적을 울려 앞에 있는 구난차의 피오도로 타루소프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들은 언덕 막바지를 오르고 있었는데 피오도르는 길 옆에 차를 세우고 알렉시쿠프린과 함께 뛰어내렸다.
“아마 유니버설 조인트겠지?”알렉시가 추측했다.
이반도 고개를 끄덕이고 차가운 시골 공기 속으로 뛰어내렸다.
“손전등과 수선 공구를 줘. 내가 그냥 연결부를 떼어 낼 테니까. 그리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어 줘.”
저만치서 개가 으르렁거렸다.
부엉이도 기척을 내었다.
별도 없는 밤이었다.
피오도르는 시계를 보고 투덜거렸다.
“밤 10시야. 우린 한숨도 못 자겠군.”
빛이 희미했지만 그것이 유니버설 조인트인 것을 이반은 알 수 있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끙끙거리다가 몸을 잽싸게 집어넣었다.
공구 주머니에서 렌치를 더듬거려 RJsotj 연결부를 떼어 냈다.
그 순간 트럭이 앞으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아차, 알렉시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구나.
이반은 재빨리 몸을 굴려 트럭 밑에서 나오려고 했다.
“후진!”
이반은 소리쳤다.
그 다음의 수 분 동안, 고통 가운데서도 이상하게 이반은 모든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뒷바퀴가 그의 어깨와 가슴을 짓이겼고, 피오도르의 경악한 얼굴이 보였고, 알렉시가 트럭을 후진 시키려고 시도하는 엔진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칠흑같은 트럭 밑에서 고무타이어와 기름 냄새가 코에 메케했다.
손전등이 굴러가 저만치에 보였다.
손전등의 불빛으로 작은 벌레들이 날아들었다.
고통으로 가슴이 찢기는 것 같았고 숨은 턱에 찼다.
알렉시가 트럭을 후진시키지 못할 것은 분명 했다.
조금 있으면 자기는 천사들과 함께 있을 것이 틀림없다.
“예수님.”
“예수님.”
차가 멈칫하더니 6짝의 바퀴들이 뒤로 굴러갔다.
이반은 트럭에서 기어 나와 찢긴 팔과 가슴을 땅에 대고 폭삭 엎드러졌다.
그가 눈을 떴을 때, 뜨거운 고통이 그 안에서 타고 있는 듯했다.
침대 옆에는 의사들이 서 있었고 그들 뒤로 흰 벽과 커튼, 그리고 좁은 창문이 보였다.
그는 말하려 했지만 열 때문에 입이 다 터져 있었다.
한 의사가 이반의 표정을 보고 몸을 굽혀 말했다.
그녀의 음성은 다정했다.
“당신은 심페로폴 육군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이반 바실리에비치.”
그의 팔에서 체온계를 꺼내는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온화했다.
간호사가 시원한 물로 얼굴을 식혀 주었다.
수건이 입에 닿자 이반은 수건의 물기를 빨아보려고 했다.
간호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물을 한 잔 주었다.
아주 조그만 동작도 고통의 큰 수문을 여는 것 같았고, 숨을 쉬는 데도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침대 옆의 조그만 테이블에 잔을 놓는 간호원의 손을 이반의 눈이 따라가고 있었다.
이반의 오른팔은 이불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붕대가 감기지 않은 손과 팔목 위가 회색이었고, 그것은 몸에 붙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부푼 손가락들은 털끝만큼도 움직일 수 없었다.
고통을 참으며 왼손을 뻗어 오른 손등과 팔목을 만져보았다.
온몸은 불덩이같이 뜨거운데 그 부분은 얼음같이 찼다.
간호사의 부축으로 몸을 반쯤 일으키고 그는 물을 좀 더 들이켰다.
그 병실은 꽤 넓었다.
어떤 환자들은 링겔을 꽂고 무슨 장치를 붙이고 몹시 아픈 것 같았다.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회복기에 있는 사람들은 노인들같이 몸을 꾸부리고 있거나, 조심스럽게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또 이반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릇과 수건을 가지고 간호사가 나갔다.
이반은 눈을 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저녁식사 때쯤 의사가 와서 아침에 수술을 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이번 수술에는 특별히 유명한 의사가 초빙되었다면서, 차갑게 느껴지던 오른 팔은 절단해야 되고 짓이겨진 폐의 일부는 떼어내야 하는 수술이라고 전했다.
그 의사가 몇몇 한자들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병실을 떠나 복도로 나가는 것을 이반은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의 흰 가운은 멈춰서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면서 움직였고, 그의 어깨는 피로로 지쳐 있었다.
그가 나가자 환자들은 다시 각자의 고통, 외로움 그리고 슬픔에 몸부림쳤다.
그 의사의 말을 듣고 이반은 절망으로 전율했다.
그의 심장은 상한 폐에 방망이질 했다. 팔이 없는 몸을 생각하자 이반은 미칠 것 같았다.
“오 주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이 주께 상달되게 하소서.
내 환난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감추지 마시고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를 때에 속히 응답하소서.”
이반은 어쨌건 침대를 빠져나와야 했다.
그는 너무나 커다란 슬픔에 빠져 기도할 수도, 소망을 가질 수도 없었다.
그는 무거운 몸을 침대 끝으로 밀고 나가서 두 다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통으로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는 심하게 비틀거렸다. 절망적인 한숨이 터졌다.
병실 안의 모든 사람이 두려움과 경악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큰 소리로 주께 부르짖으며 내 목소리로 주께 간구하나이다.
내 심정을 주 앞에 쏟으며 내 사정을 주께 아뢰나이다.
내 영혼이 속에서 낙망될 때도 주께서는 내 길을 아셨나이다. 주여 내가 당신께 부르짖었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니이다. 내가 비천하오니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소서.”
지나가던 간호사가 멈춰서더니 천천히 방으로 들어왔다.
“내 영을 옥에서 이끌어내사 주의 이름에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선 나를 선대하심이니이다.”
간호사는 이반을 부축하며 인도하여 침대에 뉘였다.
큰 기쁨이 이반을 감싸면서 갑자기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주께서 나를 선대하심이니이다.”
간호사가 젖은 수건으로 이반의 얼굴을 닦아주는 사이에 그는 은혜의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가 깨어보니 오전 6시였다.
몇 분 동안 이반은 꼼짝 않고 누워서 간밤의 달콤하고 멋진 꿈을 기억하고 있었다.
차츰 정신이 들어서 보니, 자신이 다치지 않은 왼팔을 밑으로 하여 꾸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숨소리도 일정했으며 크게 쉴 수도 있었다.
그의 두 팔은 머리 위에 있었고, 두 눈으로는 아직 인기척이 별로 없는 병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 꿈으로 말미암은 놀라운 평안에 대하여 그는 조용히 주께 감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 위로부터 오른 팔을 조심스럽게 내렸다.
그 팔은 완전했고, 손톱에는 혈색이 돌았고, 피부는 햇빛을 받으며 들판에서 일했던 때와 같이 건강했다.
두 손으로 몸을 일으켜 침대 밖으로 나왔다.
간밤의 꿈이 현실이 된 것에 기뻐하며 베개를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그는 한 팔을 장난스럽게 머리 위에서 흔들어보고, 또 다른 팔도 그렇게 했다. 양 손을 허리에 대고 깊이 굽혀보기도 했다.
이 위대한 기쁨에 그는 침대 끝에 무릎 꿇어 기도했다. 낮은 소시로 주님을 찬양했다.
“내 영혼아 주를 찬양하라. 내가 생전에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가 생존 세계에서 내 하나님께 찬양하리이다. 주는 눈먼 자를 보게 하시며, 구부러진 자를 일으키시며, 의로운 자를 사랑하시도다. 주를 찬양하라.”
드디어 옆 침대 환자가 신음하기 시작했다.
저 건너편 환자는 물을 마시려고 손을 뻗쳤다.
창 밖 희뿌연 하늘에 햇빛이 솟아나고 있었다.
간밤의 꿈이 실재가 된 것이 이반에게는 재미있었다.
하품을 하면서 그는 침대로 다시 들어갔다.
단잠에 빠질 것을 상상하면서.
간호사는 기계적으로 이반의 테이블 서랍에서 체온계를 꺼내 들었다.
이반은 졸린 눈으로 간호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체온계는 그냥 공중에 머물러 있고 간호원은 두려운 눈으로 이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사라졌다.
병실의 황망한 발자국 소리에 이반은 다시 깨어났다.
간호사 옆에 그 의사가 서 있었다.
몇몇 의사들이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모두들 놀란 표정이었다.
이반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앉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영광스러움이 그 몸을 스쳐갔다.
그는 일어나 앉았다.
그는 자기 앞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붕대는 발치의 이불 위에 던져져 있었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황홀했다.
두 손을 마주 비벼보고는 떼어 보았다.
이럴 수가 있을까?
의사는 놀랐다.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간호사는 약간 뒤로 물러섰다.
드디어 의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이세예프 동무, 체온을 한 번 재어볼까요?”
이반은 기쁨에 얼굴일 붉어졌다.
“의사 동무, 물론 제 체온은 재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의사는 계속 뚫어지게 보다가 테이블에 약을 놓았다.
머뭇거리다가 그는 손가락으로 이반의 오른 손을 검사해보고, 이반의 팔을 걷어 보았다.
그는 환하게 빛나는 이반의 얼굴을 이상한 듯 자꾸만 돌아보았다.
“당신이 나를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간호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그 주위에는 당황한 병원 직원들이 몰려 있었다.
“그래서 저는 하늘의 의사를 바라보았는데, 그 분이 간밤에 저를 고치셨습니다. 보십시오!”
미소 지으면서 이반은 담요를 제치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지난 밤에 저는 몹시 아팠고 고열에 신음했습니다.”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떨고 있었다.
“나의 하나님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제 당신들에게 보여 주겠습니다.”
이반은 의사에게 체온계를 건네주었고, 의사는 그것을 털어 이반의 혀 밑에 꽂았다.
병실의 다른 환자들도 침대 끝에 모여들고 있었다.
또 서로 낮은 소리로 이야기하면서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며 또 달려주고 있었다.
의사가 체온계를 꺼내들었다.
“체온은 정상이오. 틀림없어요. 자, 어쨌든 이제 침대로 들어가시오.”
이반은 이 명령에 순종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뛰고, 소리 지르고, 찬양으로 그 병실을 가득 채우고 싶었다.
병원 직원들이 모두 흩어지자 그는 팔꿈치로 몸을 일으켜, 흥분된 병실 환자들에게 간밤에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10. 우유를 통해 섭취된 것은 영혼을 통해 나간다
말신 중령은 책상 위의 보고서 뭉치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지금까지 이렇게 화를 일으키는 전화를 받아본 일이 없었다.
심페로폴의 일반외과 과장이란 친구는 자격 없는 멍텅구리다.
어저께 이반에게 대수술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해 왔을 때, 팔을 고칠 수 없으면 절단하게 해야 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모이세예프는 이제 자기 군대에서 오랫동안 떠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상태가 위독함을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말신으로서는 문제가 해결된 셈이다.
모이세예프가 케르치로 돌아오지 않는데 대하여 말신은 마음이 놓였다.
운명의 신이 그렇게 말신을 돕는 것 같다.
모이세예프는 불구가 되고 아마 제대하게 될 것이다.
하여튼 그는 더 이상 케르치의 두통거리는 아니다.
그런데 오늘 외과 과장은 말도 안 되는 소식을 전해왔다.
여러 명의 의사가 이반을 진찰했는데 그는 기적적으로 치료 되어서 더 이상 수술이 필요 없단다.
과학을 한 친구가 기적 운운하다니!
어저께 중환자였던 이반이 오늘 퇴원해서 차를 타고 귀대중이라니 이게 과학자라고!
말신은 보고할 참이다.
틀림없이 이 친구는 불안정하고 무능력한 자일 것이다.
이 친구를 꼭 정신과 의사에게 보내 검사하게 해야겠다.
보고하는 의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말신은 그 보고하는 목소리의 진실성을 무시하려고 했다.
“중령님, 제 평생 처음으로 정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분은 모이세예프를 고치셨어요! 이반은 완전한 상태입니다. 제 능력으로는 수개월이 걸려도 그렇게 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자기의 무능을 감추려는 것에 말신은 구역질이 났다.
진찰에 큰 과오가 있었으면 그것을 인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훨씬 낫다.
불쾌한 기분으로 말신은 모이세예프의 퇴원보고서를 작성했다.
군의관이 기적이니, 하나님이니 한 모든 얘기는 모스크바로 보고된다.
책상의 벨을 눌러 그는 비서를 불러 보고서를 타이핑하도록 했다.
보드카를 따르면서 말신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정치구원은 모이세예프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늦은 11월, 차가운 회색 하늘과 창가를 스쳐가는 시골 풍경을 바라보며 케르치로 돌아오는 이반은 계속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종일 눈이 올 것 같다.
버스가 지나가자 저 멀리 들판의 농부들이 친절하게 손짓하는 모습도 보였다.
자기 고향과 같은 작은 마을은 마치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인 양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옷을 잔뜩 끼어 입어 뚱뚱하나 아이들이 얼어붙은 웅덩이 곁에 서서, 큰 아이들은 어떻게 버스가 굴러 가는 가를 설명해주고 작은 아이들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람들, 넓은 하늘, 끝없는 들판, 마지막 몇 개의 배추 상자를 트럭에 싣는 농부들……. 이반은 이 모든 것을 사랑했다.
잠시 그는 모든 시름을 잊고 문에 기대서서, 자기가 이 소련의 거대한 움직임의 한 부분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나타난 다음에 사단은 최선을 다해서 나쁜 일을 책동하고 분노하는 것을 저는 여러 번 보아왔습니다.”
이반은 부모님께 이런 편지를 썼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케르치에 도착할텐데, 그 곳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이반은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도착하자마자 당한 공격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잔악하여 이반에게는 충격이었다.
크리미아 사령부의 돌로토프 장관은 명령을 내린 바 있었다.
“모이세예프를 꺾어라.”라고.
이제 케르치의 정치국 선임자와 부대 지휘관은 모이세예프에 대해 최종 보고를 해야 했다.
이미 그의 군 생활은 일 년이 지나고 있었는데 아직도 이반은 공공연히 기독교 신자이다.
이 부대에서 더 이상 사고도, 문제도 없어야 한다.
이제 잘못하면 기덴코도 말신도 끝장이다.
이반이 짐을 채 풀기도 전에 그는 정치국 장교에게 불려갔고, 이어 또 다른 장교에게 불려갔다.
그는 조사 받고, 심문당하고, 훈계를 듣고 협박당했다.
그는 수업 중에도, 그리고 한밤 중에도 상관없이 불려다녔다.
그가 군에 들어오기 전에 등록되지 않은 교회에서 불법행동에 가담했던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군대에서 반동에 가담한 것도 명백하다.
얼마나 많은 소련 군인들이 그의 환상의 늪에 빠져들어서 건설적인 행동에서 이탈되어 비밀 이야기나 행동에 자신들을 맡겼는가?
그는 헌법 10조 58항에 의하여 반소련 선동죄로 언제든지 강제노동수용소에 최하 7년의 형을 받을 수 있다.
그는 자주 수업장에도 훈련장에도 빠지는 것 같았다.
그의 상관들이 작성한 불리한 보고서가 여러 장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다. 비밀경찰(KGB)이 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정신적으로 의학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세밀한 조사를 거쳐야 한다.
만약 하나님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아무도 안 믿는 이유란 무엇인가?
그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신론을 알고 있을까?
그가 귀머거리일 수야 없지 않은가?
질문은 몇 시간이고 계속될 수 있다.
이반은 듣지 않으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질문들은 대개 웅변적이었고, 필요한 대답이 없으면 몇 번이고 반복하든지 등이나 머리를 쳐서 깨우기 때문에 이반은 오랫동안 기도할 수가 없었다.
“왜 움츠려 드는가?
자네는 문화 활동에 가담하고 있지 않은가?
자네 중대원뿐 아니라 이 지역 온 부대원들이 자네에게 와서 상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자네는 이들을 개종시키려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가?
이런 행동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자네의 계속적인 불복종은 자살하려는 사람의 행동으로 밖에는 이해될 수 없다.
자네 종교에서도 자살은 금지되어 있지 않은가?
천사니 신유(신의 힘으로 병고침)니 하는 것으로 보아 자네는 종교적 정신착란증에 빠져 있다.
이것은 분명히 레닌의 과학적 공산주의 철학과 상치되지 않는가?
하나님이 없이는 인생의 의미가 없다는 자네 얘기는 자네 의식구조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게야.
자네는 오뎃사에 어떤 친구들이 있나? 오뎃사는 언제 왔었나?
수 백 가지의 자네 대답에 모순이 많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지?
자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어떤지 바른대로 말해보라.
군에 입대하여 선서한 충성은 이제 어디 있나?
우리 무신론자들은 아무도 속이지 않는데 어찌하여 자네 신자들은 국가를 속이고 비밀집회를 갖고 불법인쇄물을 발간하는가?
자네들은 사회와 조화를 이루지 않아…….”
“마르크스 철학을 부정하는 자들은 적이나 다름없다.
국가는 인민들을 위해서 투쟁하고 애쓰는데 자네들은 그들을 직고 병들게 하고 있다.
소련 어느 사회보다도 군에서는 공산주의를 잘 건설해 가려고 한다.
자네의 신앙을 갖고서 군에서 그리고 소련 사회에서 과학적 사고방식을 좀 먹어 가면서 어떻게 충성스러운 군인이라고 우기는가?”
기덴코가 몇 시간째 심문을 계속하고 있을 때 말신이 도착했다.
이때쯤 기덴코의 목소리는 좌절감으로 경직된 채 심문은 계속되고 있었다.
모이세예프는 완강했고, 지시사항을 거절했으며, 상담도 소용없이 계속 자기 부대와 소련 군대의 기능과 안정을 위태롭게 할 목적으로 개인주의적 독선을 가르치고 믿기를 계속했다.
갑자기 이반은 해방되었다.
어쨌든지 다시 수업에 들어가고, 뒤떨어진 군사훈련을 받고, 시험보고, 구두시험도 치렀다.
그러나 잘못하면 언제든지 이름이 적히고, 이반은 별 수 없이 낙제생 명단에 끼곤 했다.
겨울이 가면서 1972년 봄이 악마와 같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지치고 춥고 정처 없는 매일매일 때문에 이반은 기진해있었다.
또다시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심문이 시작되기까지 얼마간 일상적인 군 생활이 계속될 것이다.
매일 이반은 자기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높았다.
막사의 창고로 통하는 문은 화재시 비상구로서 밤새 잠그지 않는다는 것을 이반은 발견했다.
기다란 방 끝의 창문은 비상구로 통하여 건물 옆으로 내려가 시내로 연결된다.
창문을 열어 흑해의 공기를 쐬면서 의자에 꿇어 엎드려 이반은 몇 시간씩 밤에 기도드렸다.
그 방안의 깊은 정적 가운데 주님의 위로가 있었다.
그의 기도와 눈물과 나직한 찬송이 막사에서 자는 병사들의
군복으로 가득한 선반에 너울거리고 있었다.
부대 주위에 봄풀이 파릇파릇해지면 이반은 고향이 몹시 그리워질 때도 있었다.
또 어떤 밤에는 너무나 상심하여 기도를 못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정치국원이나 법관 앞에서의 대답이 혼동되는 것 같다.
어떤 대답은 그들을 즐겁게 한다는 것을 그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심문 중에 그의 마음은 떠다니다가 고향 몰다비아의 부모님이 계시는 집단 농장으로 가기도 한다.
고요함이 그 방에 가득했다. 아침 새들도 아직 깨지 않았다. 분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영혼의 평안을 원하노니, 내일은 심문이 없을 것이다. 넌 곧 여기를 떠나게 된다.”
모이세예프가 운전명령을 받아 부대를 떠났다는 소식에 말신은 울화가 치밀었다.
분명히 말신이 그 운전명령을 취소했는데 아이들이 숙제를 까먹듯이 그런 취소 명령을 잊었다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철저히 조사해서 누구든 책임 있는 사람은 처벌을 받을 것이다.
이제 사무실은 온통 수라장이다.
사무요원들은 아예 서랍을 빼내어 서류더미를 뒤졌고, 타자치던 사람들은 타자기를 치우고 쓰레기통을 뒤지느라 법석이었다.
“그 명령서 본 사람 있어?”
“그게 어제 오후 늦게 그 부대 상사에게 발송되지 않았나?”
“난 받지 않았어. 자네도 알잖아! 나하고는 상관없어.”
텔렉스 편지함도 뒤집어엎었다.
종이가 겨울바람에 나뭇잎 같이 흩어졌다.
계속 뒤집고 소리쳐도 소용이 없었다.
말신은 자기 사무실 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 명령서는 분명히 사라졌다.
시원한 도로에 나와서 주위의 넓은 들판을 대하는 것은 좋은 기회라고 이반은 생각했다.
트럭은 아스팔트 위를 쉽게 굴러갔지만 빵의 하중이 뒤로 몰려 자물쇠를 이중으로 채워 두었다.
고속도로의 이 부분은 가시나무로 경계가 이루어져 있어서 이반은 신경이 쓰였으나 작은 새들이 풀숲에서 날아들고 날아가는 게 재밌었다.
이반 옆에 탄 장교는 직업군인으로 인간미가 풍기는 우크라이나 사람이었다.
그는 조그만 마을을 지나다가 어떤 집 마당에서 자라는 수박을 한 덩이 사서 조그만 칼로 벗겨가면서 수선스럽게 먹고 있었다.
때로 나무 마차를 끄는 말들을 지나치기도 했다.
갑자기 이반은 안으로부터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반, 속도를 늦춰라.”
흘끗 속도계를 보니 시속 60킬로였다.
우크라이나 장교는 계속 수박을 먹었고, 물이 턱에서 튀고 있었다.
하나님이 속도를 늦추라고 말씀하실 리가 없다!
그들은 아주 적당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가시덤불 경계도 지났고, 이제 시원해 보이는 오리나무 넝쿨 숲이 죽 뻗어서 들판 가운데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반, 속도를 줄여라!”
그는 눈을 들어 거울을 통해 트럭 뒤를 흘끗 보았다.
정면을 보는 것 같이 뒤로도 훤히 도로가 보였다.
바딤 하만스키는 수박꼭지를 창밖으로 던지고 옷 소매로 입을 쓱 문질렀다.
칼을 접어 주머니에 넣느라고 엉덩이를 약간 들었다.
도로가에 보따리 같은 게 이반의 눈에 띄었다.
하만스키가 놀라 소리쳤다.
“동무, 저건 우리 빵덩어리요!”
또 누런 덩어리가 굴러갔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시는 구나.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이반은 곧 트럭을 한 쪽으로 세웠다.
장교는 얼른 뛰어내려 짐칸으로 달려갔다.
“이것 봐 동무, 열쇠가 잠겼는데도!”
도로에 점점이 빵덩이가 저 끝까지 이어 있었다.
트럭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반쯤은 도로에 떨구어버렸다.
하만스키는 황망히 목을 긁었다
“이반 이상해. 우리가 같이 이 문을 잠갔잖아!”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자물쇠는 잠겨 있고 빵은 굴러떨어지고. 난 이 트럭을 6년째 관리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이 문이 저절로 열리는 법은 없어. 그리고 우린 같이 이 문을 잠그지 않았나!”
이반도 당황했다.
“저도 그렇게 기억합니다.”
그는 구부려서 빵덩이를 집어 올렸다.
“우리가 달려올 때 하나님이 속도를 줄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럴 이유가 없어서 듣지 않았지요. 계속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나는 듣지 않았는데 드디어 우리를 멈추게 하셨습니다.”
“내가 어릴 때 들은 성경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이반이 차를 돌려 빵을 주우려고 운전을 시작했다.
장교는 모자를 들고 머리를 잠깐 긁었다.
흑해 관광용 버스가 휙 지나갔다.
“우리 부친은 종교적인 유태인이었네. 매주 금요일 밤 그 분은 키에프의 회당에 갔고, 남은 우리에게 할머니는 등잔 불빛 아래서 얘기를 해 주셨지. 한번은 커다란 보리떡 덩이가 미디안 군대의 진으로 굴러 온다는 얘기였지. 그것은 진을 완전히 부숴버렸어. 즉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하리라는 것이었네.”
그는 웃으며 뛰어내려 빵덩이를 주워 올렸다.
다시 문을 닫고 트럭은 서서히 길을 갔고, 그는 계속 얘기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반트럭분의 빵을 트럭 밖으로 던지신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계면쩍게 웃었지만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내가 그를 무시할 때 그 분은 빵을 사용하여 우리를 멈추게 하셨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인적이 드문 거리에서 빵을 한 덩이씩 줍는 것은 시간이 여간 가는 일이 아니었다.
“아마 자네를 벌주려고 하신 모양일세!”
저 건너에서 하만스키가 이반에게 빵을 던졌다.
“다음엔 딴 운전사를 써야겠어.”
그는 씩 웃었다.
“이반, 자네 침례교인들은 이상한 무리야.”
그들은 다시 제 길로 들어섰고, 먼지 묻은 빵들은 다시 트럭에 꼭 잠겨 실려 있었다.
“자넨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것 같아. 아마 나도 때로는 하나님을 믿고, 많은 사람이 그럴거야.
그러나 자네같이 당국에 공공연히 떠들어 인생을 비참하게 하는 이유는 모르겠어.”
이반은 차분히 대답했다.
“우리나라에는 양심의 자유가 있습니다. 헌법에는 사람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그들의 자유이며, 종교를 갖든지 안 갖든지 자유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믿는다는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동무!”
장교는 조바심 가운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자네는 법에 대해 말하는군! 비밀경찰은 법을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네는 모르고 있나?”
그는 습관대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반, 이런 얘기는 아무에게나 하는 게 아닐세. 그러나 자네는 틀려. 많은 사람들이 자네를 알고 또 자네가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 들었네. 자네와 자네의 생활을 통해서 본 것들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무신론으로부터 돌아섰다는 것은 군인들 가운데서는 공공연한 비밀일세. 이제는 이런 사람들도 의심을 받고 있다네.”
이반이 대답하려는 것을 손을 들어 막고 다짐했다.
“내가 만약 심문을 받게 된다면, 자네가 내게 종교에 관해 얘기한 일이 없다고 말하기 원하네. 제발 이런 것은 탄로되지 않게 해 주게나.”
장교는 마음이 안정이 안 되는지 자동차 문에 등을 기댔다.
“그러나 자네에게 알려주네만 비밀경찰은 말신과 정치국에 관계해왔으며 자네 조사를 하고 있다네. 자네는 훌륭한 청년이야. 나는 자네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이것들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내가 아는 것으로 생각하려고 하지 않아.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네를 훌륭하다고 인정해. 자네 그 어려움 가운데서 헤어 나와 평안히 살 길을 택하지 않으려나? 자네가 몇 시간이고 몇 날이고 당국에 갇혀서 잠도 자지 못하고 계속 심문당하는 것이 도대체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결국 자네는 파멸에 이를 것이고, 자네가 살아서 이룰 수 있는 것들을 다 잃게 될 것일세. 틀림없이 자네는 체포될 것을 신중히 생각해 보았을거야. 자네의 생명을 집어던지는 것은 물론 자네 일이지만.”
길 저만치의 어떤 광경에 갑자기 이반은 공포로 숨이 막혔다.
그들이 빵을 주울 때 옆을 스쳐간 버스가 도로 옆구덩이에 뒤틀려 내던져 있었다.
사람들은 사방으로 나둥그러져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크레인 속에 처참하게 걸려 있었다.
버스와 크레인이 충돌한 모양이었다.
충돌시의 연쇄작용으로 여러 대의 승용차가 부서져 있었다.
박살난 창에 노인의 시체가 흉하게 걸려 있었다.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도착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박살난 유리가루와 흥건한 피로 미끄러운 위를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고통의 신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이반과 하만스키는 트럭 안에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하만스키의 목소리도 넋이 빠진 것 같았다.
“우리가 빵 때문에 지체하지 않았다면 사고를 당하여 죽었을 텐데. 하나님이 자네의 생명을 살리셨군!”
그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떨리는 손을 앞의 계기판에 의지했다.
이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감격으로 격해 있었다.
“주님은 나만 사랑하시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입니다. 바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동무!”
하만스키는 갑자기 머리를 손에 기대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11 모든 귀뚜라미가 제 숨을 곳을 안다
말신은 손톱 모서리를 이로 뜯어 내뱉고 그 부분을 짜증스럽게 빨고 있었다.
그는 두 손이 아팠고, 담배를 너무 피워 몸도 좋지 않았는데 그 앞에는 다시 이반 모이세예프의 서류가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다가 또 다른 보고서를 작성해야만 했는데, 이번에는 이반과 하만스키가 빵을 싣고 돌아오는 길에서 생긴 사고였다.
이미 보고되기는 했지만 설명도 안 되고 고쳐지지도 않는 사건들이 너무도 많은 상태인데 말이다.
분명히 이런 사건들은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날 것이다.
어떻게 보고서를 써야 하나?
‘지난주에 하나님이 잠긴 빵 트럭에서부터 빵을 길가에 집어던짐으로 해서 그들의 생명을 끔찍한 사고로부터 건졌다는 이반 모이세예프와 바딤 하만스키의 보고로 인해 온 부대가 술렁이고 일상 업무에 차질을 가져오다.’
말신이 직접 그 트럭 주위에 몰려있던 군인들을 조사해 보았다.
하만스키는 이야기하면서 울고 있었다.
분명히 그는 신경쇠약 증세다.
새로운 생각이 말신에게 떠올랐다.
하만스키를 직무태만으로 구속할 걸 그랬다.
그가 트럭의 문을 잠그지 않은 것은 분명히 책임 추궁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좌우간 정신과 의사가 면담중이니 그냥 내버려두자.
그런데 왜 이런 일에 꼭 이반이 연루되는가?
항상 모이세예프가!
특검 반은 버스사고를 확인했고, 이 사실은 이반의 부대를 더욱 들뜨게 했다.
모이세예프는 어떤 사건을 이용해서 그의 하나님이 기적을 꾸며내는 데 가히 천재적인 소질이 있다.
이제까지의 모든 재교육에도 불구하고 모이세예프는 그의 견해를 계속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모이세예프가 몰다비아의 등록되지 않은 불법교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의 발견은 그래도 말신을 기쁘게 했다.
이것을 꼬투리로 기소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오래된 일이었다.
모이세예프의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반동에 말신은 밤이나 낮이나 속이 상했다.
그의 신앙에 대해 함구하도록 계속 지시했지만 허사였다.
모든 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시도했고 불의한 방법도 사용해보았지만 말이다.
열린 창으로 5월의 미풍이 불어와 담뱃재가 책상 위의 서류에 흩어졌으나, 말신은 재를 털어버릴 생각도 않고 모이세예프의 보고서철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상황은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르게 어려워져 가고 있었다.
심페로폴의 육군 병원으로부터 온 공식 보고서가 그의 손에 있었다.
지난 가을 추수에 동원되었던 200여명의 군인들은 모이세예프의 부상이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완쾌되었다고 공공연히 믿었다.
그들이 외과 과장실에서 흘러나온 소식에 영향 받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전화로 들려왔던 군의관의 떨리던 음성을 기억하면 말신은 지금도 울화가 치밀었다.
“제 인생에 처음으로 저는 실제로 하나님이 계심을 보았습니다!”
도대체 그 병원에는 어떤 종류의 의사들이 모여 있단 말인가? 그들은 과학자가 아니다.
그 병원이라면 말신은 개 한 마리라도 데려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때 추수에 동원된 병력이 여러 도시의 다른 부대에서 왔던 것이 참 다행한 일이었다.
그들이 모두 케르치의 군인이었다면?
이백 여 명이 부대로 돌아와 기적의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모든 현상에는 그 원인이 있다.
모이세예프가 추운 밤 눈 속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추위를 견디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 중에 어떤 사람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용감하기 때문이 아니라 영웅심으로 인하여 명령을 듣지 않거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유전적으로 색맹이거나 키가 특별히 작아서 참호에서 경계하게 좋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아마 유전학은 모이세예프를 설명할 수 있으리라.
그는 스베르들로브스크의 감옥에서 재교육의 명목으로 혹독한 추위와 고통을 이겨냈다.
물론 그 곳으로부터의 보고서에 근거해서 그렇단 말이다.
말신은 담배가 다 타자 넘치는 재떨이에 신경질적으로 담배꽁초를 비벼 껐다.
모이세예프를 공식 기소해야 된다는 것은 분명했다.
18개월이란 오랜 세월을 그는 공공연하게 붉은 군대에 대적했고, 재교육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에 저항했다.
그가 소련 국법을 어긴 일이 없으며, 신앙이능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소련 국가와 사회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이것만으로도 그를 체포할 수 있다.
소련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 종교탄압이란 소련에 없었다.
말신은 피곤했다.
그는 잠을 깊이 들지 못했다.
어떻게 하든지 조서를 꾸며 모이세예프의 불법 활동, 종교전파, 소련 현실에 저항을 들어 그를 기소해야 했다.
돌토프는 그런 견해를 가진 사람은 절대로 붉은 군대에서 제대시킬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군대의 역할 중의 하나는 노동계급의 이익에 위배되는 어떤 운동이든지 그것을 사회로부터 추방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상기시켜 주었다.
배심원이 결정될 것이고 이제 모이세예프의 만기제대가 6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는 재판을 받아 선고를 받으며 제대가 거론되기 이전에 문제가 끝날 것이다.
말신은 책상의 벨을 눌렀다.
얼마 후에 문이 살며시 열리고, 근무 중인 병사가 들여다보았다.
말신은 목청을 가다듬으며 안정을 찾았다.
그는 병사들이 모이세예프와 같은 부대 소속이라는 사실이 싫었다.
“모이세예프를 불러라. 즉시 이 사무실로.”
문이 닫히더니 다시 열렸다. 병사는 송구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만, 모이세예프는 어저께 2년차 휴가로 몰다비아로 떠났습니다. 앞으로 8일간, 즉 12일까지는 부대에 없습니다.”
“제기랄!”
말신의 분노는 피로와 더불어 폭발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모이세예프같은 특별한 경우가 일반 병사와 같이 처리되는가? 내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을 수가 있나? 난 그에게 휴가를 주어 집으로 가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말신은 분노에 찬 눈으로 그 병사를 노려보며 한 걸음씩 다가서며 소리쳤고 병사는 하얗게 질렸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뭔가 잘못 된 것 같습니다.”
“나가!”
말신의 음성은 분노로 더 계속되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학교에 있을 것이다.
집으로 가야겠다.
책상 한 쪽에 있던 서류를 가방에 챙겨 넣고 그는 방을 걸어 나갔다.
이제 곧 모이세예프의 사건을 종결짓고 새로운 활력을 되찾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면서.
화창한 봄,
일요일 아침에 작은 통나무집의 모든 창이 열려있어 봄기운이 가득했다.
안에는 신자들이 가득하여 환기가 필요했다.
젊은이들이 바깥 창틀에 기대어 부르는 노랫소리는 싱그러운 들판에, 푸른 초장에 울려퍼졌다.
오늘 아침 예배에는 이반이 휴가차 돌아왔으므로 아무도 빠지지 않았다.
젊은 스베틀라나 페트로브나는 창가에 앉아서, 앞좌석에 목사님들과 함께 귀빈석에 앉아 있는 이반을 눈여겨보았다.
그는 언제나 모임에 나올 때 입는 옷차림이었으나 몇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스베틀라나는 자신도 그렇게 변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모두가 좋아하는 몰다비아 찬송을 한 곡 두 곡 계속 불렀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이반의 귀향을 축하하고 그를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스베틀라나는 진심으로 찬송을 불렀다.
이반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그녀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목사님 몇 분이 말씀하실 테지만 끝나기 전에 이반의 설교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창가에 턱을 기댄 채로 목사님들 사이에 자리 잡은 모이세예프 가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흥분과 기쁨으로 얼굴이 빛나고 있었다.
그 마을의 불신자들까지도 호기심에 차서 창가의 젊은이들을 비집고 안을 들여다보려고 애썼다.
비단 공장의 반장으로 일하고 있는 여인 스베틀라나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오늘 무슨 특별한 일이 있나? 저 안에서 뭘 하고 있지?”
다른 사람들도 젊은이들을 밀치면서 창 안을 들여다보았다.
스베틀라나의 사촌인 니나 코프닠은 기운이 빠져버렸다.
모든 젊은이들이 창가의 자리를 포기해 버렸다.
“그러나 불신자들이 복음을 듣게 될 테니 기뻐하려무나.”
스베틀라나는 니나에게 속삭였다.
찬송이 끝나자 이반이 맨 처음 강단으로 초청되었다. 그는 빌려온 성경에서 구약을 봉독했다.
‘주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어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작은 성경책에서 눈을 든 이반의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빛났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천사를 보이시고 당신의 능력을 행하게 하십니다.”
비단공장의 반장은 창가에 서서 다른 발에 체중을 옮겼다.
이반을 바라보는 ㄱ녀의 눈은 무엇인가 기대하고 있었다.
스베틀라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간절함을 읽을 수 있었다.
“저는 또 마가복음 14장 35절을 읽고 싶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와 같이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에게 닥치는 이런 어려움의 때는 정말 힘듭니다. 우리도 대개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그 분은 당신 앞에 당할 일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만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저는 설교 대신 같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께서 기도하셨던 것 같이 우리도 기도에 전념합시다.”
무엇인가가 스베틀라나의 코를 찡하게 했다.
비단공장 반장과 몇 사람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가버렸다. 결국 특별한 것은 없었다.
침례교인들은 언제나 기도하니까.
스베틀라나와 다른 젊은이들은 앞으로 움직여 창가의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반은 설교하는 대신 기도할 것을 제안했다.
긴 예배가 끝나고야 어른들은 길을 비켜주어 젊은이들에게 이반의 주위를 허락했고, 이미 비좁던 거실은 메어지고 있었다. 계면쩍은 듯하지만 모두 환영했고, 곤란한 질문은 피했지만 모두 그의 어려움이 무엇이었는지 세세히 알고 싶어했다.
누군가 앞 창문과 현관문을 가만히 닫았다.
이반 바로 뒤에 앉았던 노인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그의 팔을 잡아 흔들었다.
“이반, 이반!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 좀 하려무나.”
그녀의 목소리는 늙었지만 사랑에 넘쳐 있었다.
그 오후를 스베틀라나는 잊을 수 없었다.
주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
기적적인 치유!
그 빵!
상사의 휴가!
이반의 이야기 중간 중간에 화답의 찬양도 있었다.
또 이반의 상관들, 새로운 형제들, 복음을 들은 동료들을 위한 기도도 돌아가며 했다.
대로 그들의 목소리는 나직하게 되기도 했으며, 그럴 때면 집에 돌아온 기쁨으로 얼굴이 환한 이반이 다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황혼 무렵, 모이세예프 일가는 스라보드쩨야의 집회장소를 떠나 블론티르보카와 마을의 집을 향하여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졸려서 어머니 앞에서 넘어질 듯 말 듯 걷고 있었으며 그들에게는 구부러진 언덕길의 푸른 채색도, 나무 꼭대기의 푸른 새순도 보이지 않았다.
이반의 누이와 큰 형제들은 즐겁게 찬송을 부르고 있었고 가끔 어깨 너머로 이반을 눈여겨 보곤 했다.
그들이 지나가는 길의 나무, 오솔길, 담장 하나하나가 이반에게는 가슴 아프게 친근한 것들이었다.
저 멀리 덤불 근처에, 여름이면 함께 버섯을 뒤지며 다니던 결혼한 형님의 집이 보였다.
어깨를 맞대고 걸어가는 아버지는 이반의 얼굴에 역력히 나타난 옛 추억의 꿈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꾀꼬리 한 마리가 삼계음을 내면서 상쾌하게 공중으로 치솟았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황혼의 고요함을 깨뜨리기 두려운 듯 이반은 낮은 탄성을 울렸다.
아버지는 만족한 듯 미소 짓고 있었다.
저 멀리 들판에는 집단 농장에서 내일 아침 밭을 가는 데 쓸 큰 장비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이반은 멈춰 서서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그의 눈은 젖어 있었다.
“아버지, 참기 어렵겠지만 알아두세요. 저는 또 다시 몰다비아를 볼 수 없을 거예요.”
그 당시 녹음기나 확성기 같은 것들이 가난한 모이세예프 가정에는 별천지의 것들이었으나, 스라보드째야의 젤루아크 형제가 어제 저녁 녹음기를 가지고 이반의 집에 찾아와서 위대한 계획을 털어놓았다.
수년간 젤루아크는 자신의 단파 수신기를 통하여 기독교 방송을 받아 테이프에 담아서 자기 가족끼리 또는 예배 후에 모두 같이 듣곤 했었다.
이반의 군대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녹음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이반의 이야기를 어찌 수보르보스키의 몇몇 사람들만 듣고 말 것인가?
테이프를 만들어 몰다비아의 모든 목사님들에게 돌려서 회중들에게 듣게 하자.
하나님께 영광이요, 형제들에게는 큰 격려가 아니겠는가!
이반이 녹음을 시작하자 웬일인지 요안나 콘스탄티노바는 울기 시작했다.
이반의 편지를 한 줄 한 줄 읽고 또 읽으면서 이반의 어머니는 이 몇 개월을 어렵게 보냈었다.
아버지는 이반을 만나게 되면 그녀의 두려움이 없어지리라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이반이 돌아온 후로 그녀는 거의 자지도 못하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아들을 들여다보기만 했다.
나중에는 이반이 웃으면서 어머니를 놀려댔다.
“어머니, 내 대신 어머니가 저 위대한 붉은 군대와 전쟁하는 것 같아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잖아요? 그냥 기도만 하세요.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어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테니까요. 우리의 관심사가 그 분께 합당해야 돼요.”
이반의 눈빛을 보며 요안나는 웃어 보이려 했지만 어쩐지 그는 아들이 떨어져가는 것 같아 매일 밤과 낮을 무서움으로 지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내 아들에게.
12 헐벗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잘 입은 사람들이 부끄러워한다
말신은 그의 작은 아파트의 이쪽 창문에서 저쪽 창문까지 왔다 갔다 서성대며 저 아래 케르치의 복잡한 군중 사이를 걸어오는 아내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의 10살배기 아들은 이미 거실 책상에 숙제물을 펴놓고 구부리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공부하다가 가끔 고개를 들어 서성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훔쳐보곤 했다.
“엄마가 곧 오실 거예요.”
그는 엄마가 그렇게 하듯이 아빠를 위로했다.
“아마 가게에 들러 채소를 좀 사오시겠지요.”
말신은 의자에 털썩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이세예프의 일이 잘 되어가는 것 같아 그는 기뻤다.
어쨌든 갈리나가 빨리 오면, 모이세예프가 휴가를 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얘기해 줘야지, 그 동안에 시간을 얻어 생각하고, 전략을 짜고, 지역 정치국원과 상의하고, 상황을 분명히 파악해야겠다.
아이가 공부하다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엄마가 왔어요!”
그의 푸른 눈은 환히 빛나고 있었다.
갈리나 이바노바는 발로 현관문을 닫고, 채소 봉지를 부엌 식탁에 놓고, 가슴에 안은 소포 뭉치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남편을 잠시 주목하고는 옆방의 아이를 보며 밝게 웃었다.
“차를 드시겠어요?”
이미 그녀는 주전자를 들고 싱크대로 가고 있었다. 그녀의 팔은 따가운 봄볕에 불그스레했다.
말신은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았다.
“좋소, 한 잔 합시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모이세예프 일에 대하여 내 기분이 훨씬 나아진 것을 당신이 알면 기쁠 게요.”
갈리나는 가스불 위에 조심스레 주전자를 놓았다. 될 수 있으면 조용히 지내고 싶어 그녀는 남편의 맞은편에 앉았다.
채소와 소포덩이가 그들 사이에 담을 쌓고 있었다.
“우린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토의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내게 확신이 없다는 데 있소. 이건 평범한 사건이 아니라오. 그는 교활하게도 훈련을 거부하고, 이상한 사건을 일으키고, 광적인 신앙을 선전하는 등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오. 가장 필요한 것은 이제 모든 질문을 세세히 작성해야 된다는 생각이 내게 들었소. 그러니 그가 휴가를 간 것은 아주 잘된 일이오. 그 동안에 난 좀 쉴 수 있고, 가장 정확하게 전략을 짤 생각이오.”
“전략이라고요?”
갈리나는 김이 나는 주전자로 가서, 결혼 선물로 받은 예쁜 잔에 끓는 물을 부었다.
이 몇 년 동안에 그들은 얼마나 변했는가!
아내가 주는 찻잔을 놓기 위해 말신은 상 위의 물건을 한쪽으로 치웠다.
“갈리나, 이 문제가 물론 당신에게 부담이 되어왔고 신경이 쓰였을 거요. 당신이 밤에 자지 못했다는 것을 내가 안다면 당신 마음이 좋겠지? 나도 잠은 잘 자지 못했지만 말이오. 내가 지금까지 비밀경찰에게 이런 사건들에 관하여 진술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은 기적이오. 녀석은 티 없는 얼굴로 순진한 체 하면서 끝없이 말썽을 부리는데 이젠 정체를 밝혀야겠소.”
채소더미 너머로 그는 아내의 컵을 볼 수 없었다.
“기적이라구요?”
아내는 대꾸했다.
동의하지 않는 투로 자신을 쏘아보는 아내에게 말신은 기분이 언짢았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공산당은 기적을 믿지 않아요. 당신은 이상한 어휘를 사용하시는 군요?"
"이것 때문에 당신도 힘들었다는 것을 인정하오.내가 일찍 집에 온 것은 모이세예프의 일이 곧 해결될 것을 당신에게 얘기해 주고 싶어서라오. 나는 결정적인 행동을 취했소. 오늘 아침 그는 케르치로 귀대했소. 이미 그는 체포되었다오. 보안요원이 공식절차를 밟아 그를 정식 체포했다는 것을 당신이 안다면 한숨 놓으리라고 생각했다오. “
“난 절차를 알고 싶지 않아요. 모이세예프에 대하여 알고 싶지도 않아요. 그 문제에 대하여 얘기하지 말자고 수없이 말했잖아요.”
여성들의 말할 수 없는 연약함을 인정해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도 완전한 자유에 필요한 정도로 사회주의 목표의 이상을 깨달은 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말신은 갈리나가 그런 여성이기를 바랬었다.
“모이세예프는 공공연히 감옥에 가겠다고 말해 왔던 것이 문제였소. 그는 너무 환상의 미궁에 깊이 들어가서 그가 어디 있느냐는 상관이 없게 되었소. 그가 반국가 행위나 침례교 설교나 기적을 선전하는 데는 장소가 상관이 없소. 놀라운 승리요! 붉은 군대가 그런 설교자에게 감옥을 제공하다니!”
말신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누구나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데 모이세예프가 그 지경이지. 우리는 지금까지 이것을 기다렸지.”
갈리나 이바노바는 분노로 거의 목이 메었다.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하지 말라고 말해 왔어요. 난 견딜 수 가 없어요.”
일순간에 그녀는 찻잔을 들고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잔을 높이 들어 올리더니 옆으로 집어 던졌다.
잔이 박살나고 접시가 시끄럽게 부서졌다.
화가 치민 말신은 손을 들어 아내를 후려쳤다.
그녀는 핑 돌더니 부엌 벽에 쓰러졌다.
그는 팔을 내리고 가방을 들고 방 한가운데 서서 아내의 새빨개진 얼굴과 반항하는 눈을 쏘아보았다.
그는 방을 거쳐 현관을 나서며 난폭하게 문을 쾅 닫았다.
그는 따스한 햇볕속으로 매정하게 걸어 나갔다.
빌어먹을 갈리나!
따스한 계절인데도 불구하고 감방은 추웠다.
벽 저 높이, 거의 천정 쯤에 찬란한 창공 가운데 조그만 창문이 있었다.
저 창공은 감옥 밖으로, 심페로폴시 너머로, 그리고 초여름의 들과 언덕과 출렁거리는 강들이 넘어서 종내는 향기로운 몰다비아의 포도원까지 뻗쳐 있었다.
이반은 몇 시간이나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그는 창공으로부터 눈을 돌려 기도해보려 했다.
몸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고 자신이 육체를 빠져나간 것 같았다.
그의 실제 삶이 멈추고 그는 감방에 떠 있는 것 같았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실로 느낄 수 없었다.
그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인가?
이반이 믿음을 버리기를 거절한다면 제대도 안 시키고 감옥에도 안 보낸다던 말신의 말은 진실이었을까?
틀림없이 오해였을 거다.
러시아어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어떤 때는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계속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천사의 모습과 몸이 쾌유된 것과 여러 번 그의 몸을 생명력으로 채워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감방의 닫힌 문 뒤에서 자신의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자신이 증오하던 것들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어떤 일이 자행될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이었다.
그러나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이 그의 감방을 계속 엄습하는 것 같았다.
수없이 많은 종류의 고문을 뇌리에서 떨쳐버릴 수 가 없었다. 결국 그는 죽겠지만 아무것도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다시 고민에 빠지면서 그는 감방을 걸었다.
죽음이 닥쳐온다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두려움을 이길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결국 자기는 사라질 것이다.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고통이 그의 마음을 쥐어짰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자기 일생에 같이 하신다는 약속과 더불어 그의 장래는 밝았던 때가 있었다.
가족들, 가정, 친구들, 그의 조국이 주마등같이 스쳐갔다.
그는 결혼하지 못할 신부 생각도 났다.
자그만 얼굴의 어린이들이 감방의 허공에 너울거렸다.
“난 미치고 있어!”
종교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말이 있다.
결사적으로 이반은 성경 말씀에 마음을 집중시켰다.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들어 왔나이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 목이 마르며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보다 많고 무리히 내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니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내 죄가 주의 앞에 숨김이 없나이다. 만군의 주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로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아르메니아 출신 상사 프로코로프의 얼굴이 번쩍 떠올랐다.
추수하던 들판에서 돌아왔을 때 이반을 반겼던 웃음띤 그 얼굴을 또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는 몇 번이나 이반을 끌어안고, 이쪽 저쪽 볼에 키스하고, 또 끌어안으며, “내 형제여”라고 불렀다.
그는 믿겠다는 약속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켰다.
프로코로프의 기억은 이반의 고통을 덜어 주었다.
그는 조용히 감방의 철침대에 앉았다.
믿게 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다가올 고통에 육신은 움츠러들었다.
하나님은 미쁘시다!
“굳세게, 굳세게 앞으로 나가라!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이반은 크게 소리쳤다.
심페로폴의 군 법무관의 기소 내용은 터무니없지만 이반에게는 익숙한 것으로 케르치의 정치국 장교들로부터 수 없이 들어온 바대로였다.
142조에 의하면 그는 등록되지 않은 몰다비아 침례교회 회원이 됨으로써 법을 어겼다.
케르치에서는 군에서 허락한 수 시간의 휴식시간을 불법집회의 참석으로 허비했다.
제 190조에 의하여 그는 소련 국가를 고의적으로 비방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를 배포한 죄가 추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당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부모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도 있었다.
“모든 소련 국민에게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자네는 고의로 소련과 붉은 군대의 명예를 더럽혔다.”
배심원 장교는 서류 한 장을 집어 들고 한 줄을 읽었다.
“레닌의 포고령 제 5항: 종교적인 의식의 자유는 이것이 소련의 공공질서나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장된다.”
그는 이반을 그윽이 바라보고는 계속했다.
“되풀이하지만 모이세예프 동무, 자네는 자네 부대와 그리고 자네가 접촉한 부대의 동료 병사들의 권리를 침해했다. 자네의 철저한 기도생활과 설교는 주위 병사들에게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자네는 수 차 경고를 받았으나 거부했다. 국가의 소유인 군대에서 종교적인 행사를 함으로써 교회와 국가의 분리원칙을 어겼다. 자네는 본 배심원으로부터가 아니라, 자네 자신의 행동 때문에 처벌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자네에게 기회가 주어지니, 오늘 이 법정의 판결에 순응하고 자네의 반 소련행동을 자백하고 자네의 견해를 모두가 볼 수 있게 바꾸라. 3일간의 여유를 줄 테니 생각해보라.”
심페로폴로부터 그는 케르치에 돌아와 3일을 지내고 다시 군 형무소에 들어갔다.
다시 심문이 시작되고, 기덴코 소령과 아르마크 대위는 기소 내용을 읽어주며 이제 7년을 케르치에서 감옥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소리쳤다.
이반은 감옥 한 쪽에 앉아서 불안한 듯 몸을 뒤척였다.
기덴코는 또 3일의 말미를 주었다.
왜 재판부는 그에게 선고하기를 주저하는가?
이반은 누구에게든지, 되풀이해서 자신은 감옥에 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말신은 하품을 했다.
기덴코와 장기간 회합을 가졌으며 잘 견디어 왔다.
아내 갈리나와 다툰 후로는 집에 가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그만두었다.
이번 사건은 자신의 총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세운 전략이 정확히 그리고 실수 없이 수행되어야 한다.
이 사건의 처음부터 있었던 그런 믿을 수 없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낭패해서는 안 된다.
이 일에 계속 매달렸기에 이 만큼 진행된 것이다.
그는 지금 쉬어서는 안 된다.
진행사항을 점검하면서 말신은 만족스러웠다.
모이세예프는 이미 심페로폴의 돌로토프 장관을 만났고 정식 기소되었다.
그는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그가 이전에 정치국 장교들로부터 심문받고 취조 당하던 케르치의 정치국으로 돌아왔다.
다시 그에게는 최후 통첩이 내려졌다. 여기에 응하지 않으면(말신은 그러리라고 확신한다)
그는 오뎃사의 정치국에 가서 신문을 받은 다음 심페로폴에서 말신이 말하는 소위 “최종 결과”를 기다리게 된다.
지금까지의 심문과 협박이 성공적이 아니었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말신은 어깨를 추슬렀다. 모이세예프가 어느 단계에서 범죄했느냐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범죄했다.
곧 그는 심페로폴에서 특별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언제였는지 이반은 잘 기억할 수 없었다.
지난 세월 동안 너무나 많은 감옥으로, 심문 때문에 그리고 케르치에서의 근무지 이동으로 왔다 갔다 해서 그는 시간을 잘 연결해 낼 수가 없었다.
그는 또 다시 심페로폴 감옥 한 구석에 부자연스럽게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몰다비아에서 돌아올 때의 건강하던 그의 피부는 이제 창백한 죄수의 피부로 변해 있었다.
그는 배가 고팠다. 지난 두 주간 동안 그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장교들은 그의 증언을 기다리며 사납게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피로로 잠겨 있었고, 그는 아직도 서툰 러시아어이지만 분명히 말하려고 애썼다.
“내게 대한 기소 내용에 나는 승복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재판석에 진술하기를 요청합니다.”
돌로토프 장관의 슬픈 얼굴이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제가 군에 징집되었을 때, 저는 충성을 서약하고 소련 군대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복종한다는 약속을 깨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제가 받은 명령 중에는 제가 순종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옳지 못한 명령이었습니다. 저는 붉은 군대에 충성하지 않으려 함이 아니라, 이런 명령이 불합리하고, 무엇보다도 제게는 더 높은 충성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제게 내린 명령들은 제가 복종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돌로토프의 음성은 낮았지만 그 무엇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자네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어떤 구체적인 명령을 받았는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떤 큰일을 하셨는지 말하고, 또 우리가 있는 그 곳에서 증인이 되라는 그런 정도입니다. 장관 동무, 저는 설교로 어떤 사람도 얽어매지 않았습니다. 누가 관심을 보이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이 저를 돌보심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돌보신다고 말해줬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는 것이 죄가 될 수 없습니다. 저와 그 외 여러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은 기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에 신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 분은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기적을 행하십니다. 부대에서 제가 지킨 종교의식이란 오직 기도였습니다만, 소련 국민에게 기도를 금지하는 법이 잇습니까? 제 신앙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기록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심중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저는 재판석에 자비를 구하지 않습니다. 자비는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쁨으로 감옥에 가겠습니다. 7년이 선고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달게 받겠습니다. 제게 행복을 가져다 준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찬양합니다.”
돌로토프는 말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경비병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신은 속이 끓어오르는 것을 자제했다.
그는 인내했다.
모이세예프의 의연한 태도에 화가 치밀었으나,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저 뒤에 작은 책상 앞에서 방청하고 있는 비밀경찰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말신은 의자를 들고가서 그들과 동석했다.
얼굴에 억지로 웃음을 띠고 그들과 어울리려고 애썼다.
“동무들,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이반은 경비병의 호송으로 감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13 늙은 자가 아니라 성숙한 자가 죽는다
이반은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것인지를 점점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가 견해를 바꾸지 않으면 감옥에 갈 것이라고 계속 협박을 했지만, 그가 거절하면 또 시간 여유를 주곤 했다.
이반이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어느 도시 어떤 부대에 있든지, 장교들에게 또 병사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나는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라고 말했건만 아직도 선고는 연기되고 있었다.
처음에 이반은 당국자들이 자기를 감옥에 보낸 후에 나타날 그 부대 병사들의 반응에 대하여 고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군인들이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과 기적을 보았다고 증거했다.
바로 세르게이가 그 부대의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군인들은 그를 찾아 질문하고, 같이 기도하고, 그의 성경을 같이 읽었다.
이반은 한숨을 쉬었다. 세르게이가 보고 싶어졌다.
세르게이에게 면회를 허락하도록 계속 요청했으나, 경비병들과 감방이 빈번히 바뀌어서 자기의 요청이 상부에 전달되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세르게이와 많은 병사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을 이반은 알 수 있었다.
당국자는 그들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까지 한 번 선고가 내린 경유에는 또 많은 사람을 체포해 왔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계속 그에게 말씀하고 계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싸움터로 나가신다.”
그래,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휴가 갔다 온 뒤 계속 전쟁이 아니었던가?
그의 새 감방에는 물이 고여 흥건했다.
공기는 탁했다.
아침은 아예 주지도 않았다.
이게 전쟁이 아닌가?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두려움과 평범한 일상생활을 원함과, 닥쳐올 위험과 싸워오지 않았던가?
계속되는 협박과 진술, 심문, 지연작전, 이 감옥 저 감옥 그리고 이 감방 저 감방으로 옮겨다니는 것을 참아오지 않았는가?
그는 경비병들에게, 심문관에게 증거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무엇인가 이반에게 감옥이 싸움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이 감방은 축축했고 침대도 없었다.
1년 전에 있었던 스베르들로브스크의 고통스러운 감옥을 연상케 했다.
감방에 있었던 악몽 같은 일들을 회상하며 그는 몸을 떨었다.
조그만 상자에 집어넣고 위에서 얼음물을 붓소, 그 다음에는 냉장고에 쳐넣고, 다음에는 죄이는 옷을 입혀 고통을 주었다.
“예수께서 싸움터로 나가신다.”
이 말이 계속 그의 마음에 떠오르면서 놀라운 주님의 임재하심이 그를 흔들었다.
기쁨이 서서히 그를 감싸며 따뜻하게 그를 엄습했고, 그는 물속에 무릎을 꿇었다.
“나를 위하여 너는 싸움에 나간다. 그러나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싸움터네 나가신다.”
그는 세상을 이기셨다. 이반도 세상을 이길 것이다. 그의 질문은 사라졌다.
징역형의 선고도 없을 것이고, 자유의 몸도 되지 않을 것이다. 눈물이 이반의 얼굴을 적셨다.
그는 좁은 공간에서 자신을 낮추고 낮추고 울며 경배했다.
순찰중의 경비병이 호기심으로 들여다보았다. 이것은 배심원에 보고할 문제였다.
그는 몽당연필로 노트에 적었다.
“모이세예프가 물에 누워 울고 있음.”
이건 좋은 징조일지 모른다고 경비병은 생각했다.
이 젊은 죄수는 곧 항복할 것이다.
이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지긋지긋하다.
그들은 이것을 재미있는 이름으로 불렀으나 그것은 고문 그 자체였다.
열흘간이나 이반은 고통을 견뎌 왔고, 마지막에는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죽음으로 빨리 해방시켜 달라고 빌었다.
결국 재판은 포기하게 되었다.
이 보고를 받은 말신은 분노로 제 정신이 아니었다.
“더 이상 설득하는 것은 소용없을 것으로 판단되며, 빨리 형을 선고하여 보내버려야 할 것임. 강제적인 방법을 계속하면 결과를 예상할 수 없음.”
다시 말하면, 이렇게 더 계속하겠다면 결과에 대하여 심페로폴의 배심원들은 책임이 없으며 비밀경찰이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계획에 없었던 일이다! 말신은 머리가 띵하게 아파왔다. 그의 계획은 면밀했다.
그러나 모이세예프를 멀쩡한 채로 데리고 본 부대로 돌아가는 것은 그의 의도가 아니었다.
형무소의 다방은 더러웠다. 몇 개의 테이블은 꾀죄죄했고 걸레의 퀴퀴한 냄새가 사방에 베어 있었다.
진한 커피를 저으면서 말신은 보드카 생각이 간절했다.
비밀경찰은 모이세예프를 인계받아 케르치의 본부에서 계속 심문하기로 결정했다.
아마 그들에게 넘어간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지 모른다.
군 배심원은 법적인 모든 절차를 신중히 해야 하지만, 비밀경찰에겐 그럴 필요가 없었다.
비밀경찰은 사건의 안보상 필요할 때면 자의로 집행하고, 재판부의 판결을 무시하고, 법의 보호도 중지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었다.
말신은 무겁게 주저앉았다. 두통이 머리를 내려치는 것 같았다.
며칠 후에야 모이세예프는 케르치로 돌아갈 만큼 회복되었고, 그는 거기서 특별한 장소에 보호되었다.
말신은 모든 것이 정상인 것 같이 보이도록 애쓰고 있었다. 요주의 인물들에게 어떤 사고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말신은 그의 계획을 면밀히 수행하였다. 그의 두통은 계속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이 두통이 처음 시작되던 때를 기억하며 말신은 한밤중에 잠이 깼다. 심페로폴의 심문관이 이반의 발을 냉동기에 집어넣었다.
그것은 놀라운 착상이었지만, 말신은 그런 예비 순서에 반대했다. 모이세예프를 즉시 냉동기 속에 쳐넣어야 했었다.
공포심이 영하의 온도만큼이나 효과적일 것이다. 특별히 이미 쇠약해진 이반의 몸에 말이다.
그러나 발만 냉동기에 넣었던 사건은 모이세예프가 특별히 추위에 잘 견딘다는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준 셈이다.
보통 사람이면 고통으로 비명을 지를 테지만 모이세예프는 기도에 미쳐 있었고, 약간의 고통만 느낀다고 했다.
그의 발은 분명히 얼어버렸다. 말신은 침대 옆 테이블의 보드카 병을 들면서 자기 생각을 정정했다.
보통 사람의 발이면 분명히 얼었을 것이다. 심문관은 그의 발이 얼었고, 기계는 정상 가동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최악의 경우에도 모이세예프는 그것을 또 하나의 기적으로 바꾸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듣고 그의 발을 치료하셨음은 물론이다. 고문관의 공포스런 얼굴이 말신에게 이 지옥 같은 두통을 갖다 주었다.
그는 알콜의 진통효과를 최대로 얻으려고 얼른 술을 마셨으나 소용이 없었다.
좌우간 그는 모이세예프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내일이 그 마지막 날이다.
어둠 속에서 그는 또 한 잔을 부었다.
이제 그는 집으로 가서 갈리나와 어린 아들 사샤를 볼 참이었다.
모든 불쾌함이 곧 끝날 것이고, 갈리나는 행복하게 될 것이다.
그는 불안한 채 잠이 들었지만 머리는 띵했고, 양심 깊은 곳에서는 고통이 방망이질하고 있었다.
7월 16일 오전 내내 그는 유고슬라비아의 공산당 관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다른 고위 장교가 그 일을 맡아주기를 기대했었지만, 오뎃사의 사령부는 말신 중령을 지정하여 그들을 접대하고 케르치 군부대를 돌아보도록 했다.
모이세예프를 오전 내내 자유롭게 내버려두고, 그들에게 군사 훈련법, 정치과학 교육과정 그리고 휴가제도에 대해 설명하려니 미칠 지경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 아닌가!
오늘 모이세예프를 어떻게든지 굴복시켜야겠는데 말이다.
말신은 유고슬라비아 관리들을 돌보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모이세예프가 부대안의 문화관에 입추의 여지 없이 들어선 군인들 앞에서 겸손하게 그의 종교적 견해를 철회하고, 소련 국가에 대한 비방을 자백할 것을 상상하면서 말신은 승리감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의 종교에 깊이 빠졌던 병사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보게 하자!
아마 모이세예프는 용서를 빌고, 자기가 잘못으로 인도했던 병사들의 견해를 고쳐볼 기회를 달라고 할 것이다.
이런 보고는 돌로토프에게 무척 인상적일 것이다.
정오쯤 그는 “긴급한 업부” 핑계로 유고슬라비아 손님들을 작별할 수 있었다.
비밀경찰의 장교들은 오전 내내 말신의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말신은 그들이 너무 침착한 것에 놀랐다.
이제 시간이 촉박했지만, 그의 계획이 세밀한 것에 만족했다.
모든 세부사항이 다 고려되었다.
심페로폴에서 가능했던 극비의 보안 상태가 케르치에서도 계속되었다.
모이세예프 부대의 병사들 가운데는 아무런 유언비어도 퍼지지 않았다.
평상시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같이 모이세예프 스스로 운전하여 시내의 비밀경찰 본부로 가게 될 것이다.
말신과 민간인 보안요원은 다른 차로 부대를 떠날 것이다. 말신에게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물론 가혹한 조치가 취해질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궁극적인 목표-인간의 마음을 쇄신하고 순전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를 위해서 때로는 이런 과정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비밀경찰은 이런 일에 전문가들이다.
시계를 보고 말신은 수화기를 들어 차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모이세예프를 비밀경찰의 특수 방음실에 가두어 심문할 것이고, 오늘 이반은 항복할 것이다.
모이세예프가 오히려 죽음을 택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말신은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죽음은 그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또 비밀경찰도 그런 죽음에 관심은 없었다. 단지 가능성으로 예상은 했었다.
그러나 말신에게는 그 처참한 죽음이 그만 승리의 꿈을 앗아가버린 것이다.
그 날 공포의 오후에 말신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7월의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그는 추위에 떨었고, 그의 입 안은 두려움으로 바짝 말랐다.
그의 머리는 터지는 것 같았다.
그는 방음실 바닥에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는 모이세예프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이제 설명해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그 부모에게 알려야 하고, 부대 장병들에게도 만족할 만한 이유를 대야 할 일들이 남아있다.
기독교인 세르게이는 가둬두면 되겠으나, 병사들에게는 모이세예프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비밀경찰은 조용히 방을 치우고 있었다.
말신은 팔짱을 끼고 떨리는 몸을 꼿꼿이 세우려고 애썼다.
그는 앉고 싶었다. 아니 눕고 싶었다.
모이세예프가 신음하며 기도하던 조금 전으로 돌아가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리스도는....... 모든 죄인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던가?
그의 심장 부분의 상처로부터 피가 조금 더 흘러나왔다.
비밀경찰은 그가 아직 죽지 않았으며, 그의 죽음은 사고인 것처럼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말신을 바보 취급하여 옆으로 밀어내고 모이세예프를 담요에 쌌다.
이런 골치 아픈 일에 필요한 의사도 틀림없이 준비되어 있으리라.
말신은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들이 원하면 모이세예프를 물속에 던지게 두자.
흑해가 근처에 있으니까.
이제 그의 심장이 멈추기만 하면 말신은 모이세예프가 한 말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작성자 다비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