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품성 도야
오늘날 미국인의 생활구조는 불행하게도 경쟁적인 스포츠의 해로운 영향을 개선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하는 경향이 있다. 요즈음 미국에 있는 거의 모든 마을이나 도시에는 십대 자녀들이 럭비, 야구, 축구, 그 밖에 다른 스포츠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기려는 부모들을 위해 건설한 운동장이 있다.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인 상징은 또한 통찰력 있는 전문가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선수 대기실의 교훈(Lesson from the Locker Room)> 이라는 책 가운데서, 연구자인 미러클과 리스는 오늘날 미국의 스포츠에 대한 집착은 자기 민족의 진정한 장기적인 필요와는 상반된다고 주장한다. 만일 미국이 오늘날의 지구촌 시장에서 경제적으로 경쟁하여 성공하려면, 필요한 것은 비상한 운동선수들이 아니라 기술력을 가진 일꾼들이다. 그러므로 스포츠가 계속해서 교육을 지배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미국은 정상급의 직업 운동선수들에게 엄청난 연봉으로 보상하는 수십억 달러의 사업을 후원하는 스포츠 광들의 열광주의에 둘러싸여 있다. 많은 사람은 이런 후한 급료에 대해 운동선수들이나 구단주들을 비난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미국사회에 있다. 스포츠에 대한 광신적인 관심은 입장권과 TV광고 판매 수익을 통하여 높은 연봉을 줄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도록 한다.
스포츠 열광자들은 인기있는 선수들이 운동인답지 않은 행동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다수는 그것을 칭찬한다. 예를 들어,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농구선수들은 운동인답지 않은 행동으로 전례없이 많은 벌금을 물어야 했다. 그러나 수많은 팬들은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자기 지역의 영웅들에게 “디트로이트의 악동들(Detroit’s Bad Boys)”이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이런 칭호는 자동차 스티커나 티셔츠에도 등장하고, 신문이나 스포츠 잡지들에도 나왔다.
미국의 대중들은 대부분 과학적인 체육문서에서는 분명한 것처럼 보이는 다음의 두가지 결론을 기쁨에 겨워 잊어버리는 것 같다.
1. “스포츠는 품성을 도야한다”라는 말은 근거없는 통설이다.
2. 실제로 스포츠는 품성을 타락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선수 대기실의 교훈”이라는 저서에서
미러클과 리스 박사는 그들의 저서 <선수 대기실의 교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포츠에 대한 도덕적인 이치를 심도있게 분석한 결과, 운동선수들은 도덕적인 결정을 그들의 의무가 아니라고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으며, 어떠한 폭력적인 행동이 적합한가를 판단할 때 자기 방식의 편견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운동선수들은 일반인에 비하여 공격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도덕적으로 덜 진보된 형태의 이론을 갖는 경향이 있다. 스포츠에 참여하는 것은 직업적이고 사회적인 개성을 발달시키고,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며, 고등학교 시절이나, 다른 환경에서도 품성을 도야해 준다는 주장은 전혀 정당화 될 수 없는 믿음이다. 그와는 반대로, 운동선수들의 도덕적인 이론에 관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긍정적이 아니라 부정적인 모습을 그려야 하는 추세이다.”
사회적인 문제
미국이 한 나라로서 이런 문제들을 인식하고 적당한 지출을 결정할 때까지는, 운동선수들이 여전히 많은 돈을 긁어모으게 될 것이다. 초등학교나 고등학교, 대학 등의 운동선수들을 위하여 투자되는 돈은 계속하여 교육적인 활동 기금을 축낼 것이다. 더욱이 이런 투자는 우리 젊은 이들에게 기술력 있고 생산적인 일꾼이 되려는 일의 중요성보다는 운동을 함으로 얻는 명예와 특권에 대하여 역설하는 셈이다. 그리하여 땅에 걸려 있는 무지개 끝에 놓인 직업적인 운동선수들의 커다란 금항아리가 지속적으로 많은 젊은이들을 경쟁 세계로 유혹하여, 결국에는 그들의 품성을 망칠 것이다.
나는 이것이 매우 민감한 문제임을 잘 알고 있다. 스포츠는 우리 사회의 광범위한 면에서 강한 지배력이 있지만, 우리 모두는 경쟁적인 스포츠가 우리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많은 부모는 자기 자녀에게 운동을 하며 경쟁하도록 격려함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운동 장비를 사주고, 운동 시합과 경기를 연습하도록 후원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소비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자녀들에게 줄 수도 있는 손상에 대하여는 거의 또는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스포츠의 영향
어떤 종교 교육가는 경쟁적인 스포츠에 관하여, “미식축구나 권투처럼 몸이 부딪히는 운동은 야만성을 권장하는 도장”이라고 언급하며 가장 인기 있는 오락들은 야만성을 기르는 교육장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그런 것들은 고대 로마 경기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성품을 길러 준다. 그리고 비단 몸을 부딪치지 않는 야구나 테니스, 배구처럼 격렬하지 않은 운동일지라도, 만일 그것들에 지나치게 빠질 경우,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부절제성 때문에, 쾌락과 흥분을 사랑하는 마음을 조장하고, 실제적인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는 기질과 유용한 노동을 싫어하는 습관을 길러줄 가능성이 있다. 경쟁적인 스포츠와 그런 스포츠에 너무 집착하는 일이 자녀들의 성품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
* 경쟁적인 스포츠에 의한 인성 파괴
1. 학생들의 학업 향상을 방해함.
2. 학구적인 연구에서 마음을 이탈시킴.
3. 쾌락과 흥분을 사랑하는 마음을 격화시킴.
4. 유용한 노동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킴.
5. 실제적인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려는 기질을 배양함.
6. 삶의 온건한 사실들에 대한 흥미를 파괴함.
7. 생애의 잔잔한 즐거움들을 손상시킴.
8. 불법을 증가시킴.
9. 남을 지배하려는 마음을 강화시킴.
10. 생명을 무시하는 마음을 배양시킴.
11. 야만적인 힘을 자랑하는 마음을 배양시킴.
스포츠 열광의 또 다른 함정
스포츠는 직접 참여하여 열심히 하거나 TV를 통해 관전하거나 간에 어쨌든 커다란 기분 전환거리이다. 스스로를 “스포츠 팬(fan)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들을 스포츠에 열광적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사실 “팬”이라는 말은 “광신자(fanatic)” 의 줄임말이다.
스포츠에 마음을 두다 보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기가 어렵다. 그것은 “나의 영혼은 어떠한가?”를 스스로 살피고 자문하는 기회를 막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스포츠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경쟁심과 시합에 대한 흥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심지어 자기와 저희 창조주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할 시간조차 갖기 어렵다. 실제로 스포츠 행사에서 도덕적으로 고양시키는 내용은 거의 없다. 선수들과 관전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똑같이 한가지 목적에 고정되어 있는데, 상대방을 이기고 그를 때려눕히는 것이다. 이렇게 스포츠는 사회폭력을 조장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을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알 수 있다.
미국이 당면한 문제들과 맞먹는 역사적인 사건
성경에는 비행과 폭력이 전염병처럼 일어났던 어떤 문화권에 대한 실례가 나와 있다. 그 사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부패의 물결 속에 떠내려 가는 것처럼 보였다. 비록 미국이 아직은 그런 형편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믿지만, 아주 두드러진 유사점들이 있다. 그 문제의 도시는 중동 지방의 소돔이었다. 폭력과 성범죄는 그 고대의 도시 지역에서 자행되던 으뜸 목록이었던 것 같다. 소돔의 네 가지 특징을 유의 해 보자.
* 소돔의 죄악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에스겔 16:49).
1. 교만함
2. 식물의 풍족함
3. 태평함(나태함이 가득함)
4.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음(불행한 자에 대한 동정심 결여)
지면상 다른 문제에 대한 고찰은 생략하기로 하고 이 중에서 교만에 대해 살펴보자.
교만함은 흔히 알려진 “자존심”과 구분하기가 어려운 개념이다. 자존심의 근거는 경쟁심에서 비롯되는 자부심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고, 그래서 자신에 대하여 좋다고 느낀다. 성경은 이런 종류의 자존심에 대해서 말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성구 사전에서 “교만(pride)”이라는 단어를 살펴 보면 그 위험성에 대하여 많은 경고를 하고 있다. 남들에 대하여 우월하다고 느끼는 자들은 변덕스런 마음이나, 심지어 자기 목적을 이루려는 계략으로 남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어떤 사회에서는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열등한” 자들을 복종시키거나 심지어 없애버려야 될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자기가 “바르다”는 주장을 했다. 이에 대한 두드러진 사례가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있었던 노예제도이다. 그러나 어쩌면 놀랍게도 미국의 사회학자들이 경쟁적인 스포츠에 의하여 육성되는 “남성적인” 경향에 관하여 말하면서, 똑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유용한 운동
만일 경쟁적이고 도전적인 스포츠가 젊은이들의 생활을 가득 채운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서 바람직한 성품형성이나 충만한 영적경험을 하므로 오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학생들은 운동을 해야 한다. 나태함과 할일없이 빈둥거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병폐는 없다. 그러나 대개 경쟁적인 운동 경기들은 청소년들의 안녕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염려의 대상이다. 학생들의 시간을 그다지도 많이 점령하는 경기들은 공부에서 마음을 돌려 버린다. 그것들은 청소년들의 생애에서 실제적이고 진지한 일을 하도록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일 경쟁적인 스포츠 대신 청소년들에게 육체적인 노동을 하게 한다면 아주 좋을 것이다. 육체를 단련하고 한창인 에너지를 유용한 데 쓰도록 만들 수 있도록, 집 밖에서의 노동, 가정을 돕는 일, 어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프로젝트 만들기 등등으로 너무 경쟁적이고 성격을 사납게 만드는 격렬한 스포츠로부터 그들을 떼어 놓고 훈련시키는 일을 부모들이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만일 스포츠를 해야 한다면, 경쟁심을 유발하지 않고 유익한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또 가족끼리 참여하여 함께 할 수 있는 경쟁적이지 않는 스포츠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경쟁적인 스포츠가 우리의 품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 보았다. 하늘을 위하여 준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품성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에 가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 역시 품성이다. 우리 자신들과 자녀들의 올바른 품성 형성을 위하여 해로운 것들은 과감히 개선해야 할 용기가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용기있고 현명한 독자들이 되고, 또 독자들의 온 가족이 함께 협력하여 아름다운 성품을 이루는 가정들이 되기를 바란다. 경쟁적인 스포츠에 참여하거나 관전하는 대신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아래에 있는 방법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바람직한 사회활동 >
* 가족 예배
* 성경 연구와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토론
* 비경쟁적인 야외 운동
* 정원 가꾸기
* 천연계 탐사
* 캠핑
* 유적지 답사
* 음악회 참석
* 자연 비디오 시청
* 가족회의
* 감사함(기쁨)을 표현하도록 자녀들을 교육시킴
* 가정의 규칙을 따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을 초청함
* 특별한 주말 식사
* 떨어진 가족과 지내는 특별한 기회
* 서명한 책 선물하기
* 가정생활을 비디오로 만들어 보기
* 도서관 방문
* 악기 연주법 배우기
* 매일 집안 일에 참여하기
* 남을 도와주기
* 함께 새로운 요리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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