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마22:15~22 인터넷설교,스크랩녹취
김성수/계시록34강11‘~25‘
◑‘세금’이 아니라, ‘능력’을 시험했다. 질문에 담긴 뜻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하시니 마22:21
▲본문은, 세무서에 세금을 꼬박꼬박 내라는 뜻인가?
물론 그런 뜻이 없지 않겠지만, 그게 본문의 <핵심 메시지>는 아니다.
롬13장에서 사도바울은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를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롬13:7
위 롬13:7절은, ‘세금을 포함한 국법 준수’에 관한 메시지이겠지만,
마22:21절의 예수님의 말씀은, ‘세금’보다는 ‘다른 메시지’가 있다고 본다.
▲‘세금 질문’을 던질 때,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마22:15
지금 그들은 신10:17절을 인용해서, 하나님을 묘사하는 구절을, 예수님께 적용한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오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신10:17
이것은 진심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비꼬아서 추켜세우고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지금 단순히
‘세금을 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그것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성경을 인용해서,
‘네가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네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너하고, 이 세상 왕인 가이사하고, 둘 중에 정말 누가 더 쎈 사람이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 사실이라면, 가이사를 물리치고 한 번 네 능력을 보여 줘 봐!’
이런 의도로 지금 예수님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세금 내지 말아라’ 라고 답하시면,
금방 로마 군병들에게 고발해서, 예수님은 잡혀가시게 될 것이다.
반대로 ‘세금을 내라’고 답하시면,
‘자칭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이 땅의 왕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하느냐?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게 분명하다!’ 이렇게 반박을 당하시게 될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은,
‘네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면 네 힘을 발휘해서
이 세금으로 고생하는 유대 민족적 상황을.. 네가 한 번 개선해 보아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네 능력을 한번 증명해 봐라’ 이런 뜻이었다.
▲이러한 시험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내내 예수님께 닥쳤던 시험이었다.
사탄도 예수님을 시험할 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란 전제를 늘 붙였다.
무슨 광고 카피처럼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라는 뜻이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동일한 시험이 우리 일생 내내 닥친다.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그럼 한 번 이 세상에서, 네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라는 것을 한 번 증명해 봐?’
▲그래서 신학적으로, 이 세상에서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은 복을 공공연하게 보여주자는 것이
번영신학 prosperity theology이다. ‘성공주의’와 같은 말이다.
‘그래 봐라!
우리는 예수를 믿어서, 복 받았고, 이 땅에서도 떵떵거리며 잘 산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는 것이다.
‘자기 힘/물질/능력으로 세상에 뭘 보여주는 것!’이다.
사탄은 계속 ‘네 능력을 보여주세요?’ 하고 우리를 시험하는데,
거기에 우리가 바보같이 반응을 해 버린다.
예를 들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밑에서 자꾸 ‘네가 메시아면 스스로 구원 해 봐!’하니까, 참지 못하고 내려오셔서
그 조롱하는 자들을 손 좀 봐 주고, 다시 십자가에 올라가서 달리시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그게 우리들에게는 ‘성도가 받은 세상적 복을 자꾸 보여달려고 하는’ .. 마귀의 시험이다.
그러면서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다 잃어버리고,
세상 정복자와 똑같이 처신하고 살아간다. ‘내 힘을 좀 봐!’ 하면서..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시험에 한 번도 자기의 힘으로 자기를 증명해 보이신 적이 없다.
왜 예수님은 자기 ‘힘’을 안 보여주셨을까?
하나님 자녀의 힘과 생명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예수님은, 수난과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다... 그걸 보여주셨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으셨다.
‘저런 무능한 자여! 네가 무슨 메시아냐?’
예수님이 돌로 떡을 못 만드실 리 없었다.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사뿐히 뛰어내리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세상적인 힘과 능력을 보여주는 식으로.. 반응하지 않으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잘 바치는 것처럼,
하나님의 것도 하나님께 열심히 바쳐보아라. .. 답변에 담긴 뜻
▲주님이 말씀하셨다.
‘동전을 내게 보이라. 이 형상과 이글이 뉘 것이냐?’
‘가이사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하시니
고대시대에는, 그 나라의 주화에다 항상 그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형상을 새겨 넣었다.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은, 가이사의 소유라는 의미이다.
그 동전에는 ‘신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 아우구스투스’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뒷면에는 ‘폰티파스 막시무스’ 라틴어로 ‘대제사장’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그 동전에는 <가이사, 그는 신의 아들이요, 대제사장이다> 라는 의미가
동전의 양면에 새겨져 있었다.
문제는.. 이런 표현이 유대교적 관점에서는 ‘우상숭배’에 해당했다.
그래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그 동전을 자기 손으로 만지지도 않았다.
그것은 ‘애국심’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인 문제였다.
그 동전을 사용한다는 것은, 십계명의 제1계명을 어기는 것처럼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세를 낼 때,
그 가이사의 형상이 그려있는 돈으로 내지 않고,
저 위쪽 두로 지방의 돈으로 냈다. 예를 들면, 원화로 하지 않고, 엔화로 한 것이다.
그래서 성전에 들어갈 때, 돈을 바꿔주는 환전상이 생겼던 것이다.
그 정도로 유대인들은, 그 가이사의 형상이 적혀있던 돈을 경멸하고 멸시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것들은 가이사에게 주라!’
그런데 이 말씀이 단순히 세금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면,
또한 이런 뜻이 되겠다.
‘너희가 가이사 아래에서 그 평안함과 풍요함을 원한다면
당연히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 한다.
세상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그 세상에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 논리에, 지금 너희는 당연히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느냐?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것들은 하나님께 드려라’
여러분, 이 세상은 아직도 세상 권세 잡은 자 마귀의 손아귀에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귀를 결박하셨지만,
아직 마귀는 여기서 활동하고 있다. already, not yet
그래서 대부분 세상은 아직 ‘가이사의 나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그 속으로 뚫고 들어오신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자들은, 품고 사는 자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세상의 원리, 마귀의 원리를 따라서 살게 된다...
그러니까 가이사의 나라에 속해 있는 자들은,
가이사의 나라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자들은, 그 세상의 원리를 따라 살면 안 된다.
하나님의 형상을 품고 사는 자들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라..
세상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열심만큼.. 이런 메시지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라.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라서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자처하면서,
우리가 진짜 삶을 어떻게 사는가?
세상의 것들, 가이사의 것들, 그런 것들을 얻어내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대가를 충분히 지불한다.
나의 취미생활, 나의 행복한 가정생활, 나의 자랑, 나의 명예, 재테크,
이런 것들을 위해서는 우리가 아주 많은 대가를 지불한다.
주님은 그 모든 것들을 ‘가이사에게 지불하는 세금’으로 표현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것으로서,
하나님께는 무엇을 드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분명 ‘나의 것은 나에게 바치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너희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자라고 자처하면서,
여전히 가이사의 것들 힘, 권세, 물질, 쾌락 을 추구하며 사느냐? 이 가짜들아!
너희가 하나님의 것이라면서,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있느냐?’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고,
그 분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자들이다.
세상 힘/권력/물질을 자랑, 추구, 과시하지 않고, 주님의 성품을 드러내며 산다.
동전 하나에도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져 있으면 가이사의 소유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소유로 살아야 되는데,
가이사의 것들 힘, 권력 등 에 빌붙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가이사의 나라가 주는 것들이 참 매력적이다. 참 달콤하다.
당시 팍스 로마나 안에서 전 세계는
해적, 산적은 물론 없었고, 지역 분쟁도 없는..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세계 평화가 유지되었다. 이른바 Pax Romana 이었다.
강력한 로마가 보호를 해 주었기 때문에,
또한 세계가 로마로 통일되었기 때문에,
로마의 군사력에 의해서, 세상은 표면적으로는 평화가 한 동안 유지되었다.
그래서 그 로마의 보호를 받고, 로마가 주는 물질적 유익을 받으려면,
사람들이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
우리가 세상의 것들을 얻어내기 위해서, 세상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주님은, 너희는 그 세상이 주는 편안함과 풍요함에 던져져서는 안 된다.
너희는/교회는/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것이니까, (세상 사람들이 세금 바치듯이)
너희도 하나님의 것(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라.. 는 예수님의 답변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말고, 내(하나님)이 이끄는 대로 쫓아와라.
그런데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부자 되고/성공하고/출세하는 것인데.. .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네 힘을 과시하지 말고, 십자가에서 죽으라신다.
그래서 ‘네 힘이 아니라, 너를 죽이는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라’신다.
앞서 주님이 그 길을 가셨던 것처럼...
그런데 여전히 하나님의 소유들이,
가이사의 나라에 꼬박꼬박 세금을 내면서, 대가를 지불하면서
자기 육신의 자랑과 과시를 위해서 매진하면서 즉 가이사의 것은 그렇게 철저히 바치면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는 것’에는 무관심한 것이
과연 옳으냐고.. 예수님은 질타하시는 것이다.
▲정리하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라는 질문에 담긴 뜻은,
일차적으로 세금 문제를 물어본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자처하는데,
당신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세금 안 내도 괜찮겠소?’ 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로서 갖고 계신 능력을 시험한 것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에 담긴 뜻은
‘너희는 가이사, 즉 세상 시스템에 관해서는 온갖 시간/정력/물질을 다 투자하면서도,
그래서 너희가 그 세상 시스템의 우위를 점하기 원하면서도,
너희 스스로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면서도,
왜 하나님 시스템에 관해서는 아무 투자를 하지 않느냐?
그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 아니냐?’
이런 식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여기서 우리가 적용해 볼 점은,
정말 우리들도 ‘세상 시스템’에 적응하고,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열심히 바치고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처하면서
‘하나님의 것인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 있느냐?’ 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 땅에서의 입신양명을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투자하는가?
과외, 연수, 밤새 공부, 직장 충성.. 얼마나 많은 세금을 가이사의 나라에 지불하는가?
반면에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하게 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시는가?
‘우리는 경건합니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일에는,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헌신하는)일에는.. 무관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