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오른쪽 적당한 곳에 널찍한 덧마루가 깔려있고 그 위에 무구(巫具) 와 굿상차림이 놓여 있으며 꽃등과 꽃송이들이 매달려 있다. 개막 시간이 되면 악사들이 나와 굿상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해설자] (주위를 둘러보고) 정작 굿 할 놈들은 안 뵈고 떡 먹을 양반들만 모여 있군.
[꽹가리] 굿은 어찌 됐던 떡 값은 많이 나오겠네
[고수] 그나저나 오늘 굿은 비 맞은 베잠뱅이 꼴 되기 십상이겠구나.
[꽹과리] 왜?
[고수] 온통 뻔지르르한 거시기들 투성이니 흥이 나겠나? 곤쟁이 젓도 먹어 본 놈이 그 맛을 알지. 슬쩍 지나가면서 냄새만 맡은 놈들은 발가락 고랑내가 어쩌구 송장 썩은 내가 난다느니 일년 열두달 목욕이라곤 안하는 자네 사타구니 냄새 같다느니 하고 아는 채 코를 막고 지나간단 말이거든
[꽹과리] 그래도 우리 마누라는 막 삭은 곤쟁이 젓이라면 사정없이 죽자 사자 아닌가
[해설자] 그럼 좋은 수가 있네. 자네 죽으면 철산 앞 바다에 수장 지내주지
[고수] 왜 하필 칠산 앞 바다야?
[해설자] 자네 마누라가 곤쟁이 젓을 좋아한다니 죽거든 바다에 던져 곤쟁이 밥이 되라고 말이야.
[꽹과리] 요즘은 굵은 고기들이 극성을 부려서 곤쟁이 차례나 가겠수? (낄낄거리며 재담을 한다.)
[퉁소] (퉁명스럽게) 이거 굿을 하는 거야? 안하는 거야?
[고수] (해설자에게) 성님 판 기다리기 싱거우니 우리 짝이나 한번 맞춰 봅시다.
[해설자] 그럴까? (한 관객보고) 굿 구경 좋아하세요, 굿판에 자주 가 봤어요?--- 굿 구경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관객] ---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거지.
[해설자] 꽁짜 좋아하시는군 (다른 관객에게) 「얼씨구」란 말 알아요?
[관객] 얼씨구 좋다. 그러는 거지요!
[해설자] 그건 낭비에요 비경제적이에요. 그리고 얼씨구 하고 좋다는 그 맛이 서로 다른거에요 "얼씨구"는 좋은 맛을 향해서 힘주어 올라 갈 때 나오는 소리고 "좋다"는 그 고개를 넘어서 내려올 때 (황홀경에 빠진 어투로) 「좋다」하는 것이에요. 그렇지요?
[꽹과리] 성님 그렇게 말로 일러주어서 알아요? 한번 해 보라고 그래요.
[해설자]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부뚝막에 소금도 집어넣어야 맛이 나고 오뉴월 복중에 썩은 홍어회도 먹어 봐야 맛을 알고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고 백번 보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고 백번 보는 것이 한번 행하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 한번 해 봅시다. (관객 전체에게) 무엇을 하는고 하니 추임새라는 것을 한번 해 보는데--- 추임새라는 것이 꼭 음양 조화 부부의 사랑 같아서 가락과 추임새가 짝이 맞아야 되는 법이라. 한쪽이 너무 느려지면 힘 빠지고 너무 성급하면 맥 빠지고 디딜방아처럼 저 혼자 돌면 싱거웁고 가락 사이 구멍 찾아 때 맞추어 주고받기, 번개 치고 천둥소리에 나듯 의좋게 맞 그네 뛰듯 던져 줬다 잡아주기 받쳐주고 눌러주기 몰아쳤다 풀어주기 같이 웃고 같이 울기 천변 만화 세상사를 함께 즐겨보는 것이렸다.
[악사들] 얼씨구! (합창)
[해설자] (악사들을 가르키며) 저렇게 하는 것이오. 한번 해 볼까요? 얼씨구
[관객들] 얼씨구-- (관객들이 제 맛을 낼 때까지 되풀이한다.)
[해설자] 「얼씨구」올라갔으면 내려와야지--- 「좋다」---
[관객들] 「좋다」---
[해설자] 정말 좋아요?--- 뭐가 좋아요. 나는 처음에 거시키들만 모이신줄 알았더니 우리 마음이 통하는군--- (악사들을 향해서) 자-- 이제부터 가루지기 굿을 시작하는데 앞 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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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터 하렸다. (흥겨운 굿가락이 떠져 나와 흥취를 한동안 돋군다. 이러는 동안 등장인물 몇이 객석 통로를 통해서 춤을 추며 들어와 무대로 올라간다)
[해설자] 이 굿판을 차리기는 천생만민의 안녕태평의 치성을 올리고자 하는 것인데 천지개벽할 때에 하늘이 먼저 나고 땅이 뒤에 생겨 만물이 성성할 때 사람 또한 생겨났는데 남녀 둘이 서로 합해 사람人자 생겨났다. 음양이 화합하여 만물이 생겨났다. 음양이 화합하여 만물이 생겼는데 사람 또한 그 이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사람에겐 인성이란 것이 있어서 만물의 영장하거늘 이 즈음 인성은 악성 욕성 물성 살성 추성이 판을 치니 이 모두가 사람되려는 정성이 부족함이며 제 분수를 모르는 자들이 늘어나는 탓이라. 춘하추동 상풍한설 벌거벗은 알몸으로 팔도 없고 다리도 없이 쇠줄에 묶인 장수처럼 눈만 크게 뜨고 입은 딱 벌리고 동구밖에 버티고서 동리 안녕 지켜주던 장승을 업신여긴 탓이로구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넋을 불러 가루지기 굿을 하니 여기 모이신 가중 대주님네 뒤도 없고 탈도 없이 태평안녕 다복영화 누리게 하옵소서--- 덩지 덩지 덩더쿵--- (한바탕 굿가락이 울리고 나면「해설」"어--- 위" 하고 장단을 멈춘다.)
첫째 거리
[해설자] 이제 가루지기 굿을 하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 한데 각기 혼을 실어서 굿을 하는것이고나---
(해설자 부채와 방울을 흔들며 객석을 두루 돈다. 다음 소리를 하면서 한 남자배우 (관객 가장) 에게 가서 혼을 실어 준다.)
옛날 옛적에 맹랑한 일이 있었구나 변강쇠라는 천하잡놈이 있었는데 그 화상을 볼작시면 갓 날때 시궁창에 떨어져서 꾸정물과 흙을 젖대신 먹고 자랐지만 기운이 장사요 성질은 개차반이라. 주색잡기에 돈 투정 매일 장취 투전질에 색주가에 치가하고 오입쟁이 친구로다. 매사냥 꿩사냥에 사냥질로 살아갈 제 장손이라 자랑하며 산소 팔아 돈 쓰고 남의 딸을 혼인 핑계 제가 먼저 겁탈하고 쌈질에 이력나니 동네 촌장 몰라보고 의관 찌고 사람 치고 맞았다고 돈 뜯기와 남의 과부 겁탈하고 유부녀 능욕하기 이 동리에서 일 저지르고 저 동리 뒤집어 놓기 거머리 같고 구렁이 같고 징글맞고 능글맞다. 그 행패가 심하기로 삼남이 노해서 뭇매치고 몽둥이질에 더 견디지 못하고 남남 북녀 말은 들어 북쪽으로 가는구나.
(탈춤 가락이 시작되면 변강쇠 춘정을 못 참아 춤을 추다가 퇴장한다.)
[해설] 이 때에 또 하나 맹랑한 일 있었으니, 평안도 월경촌에 계집 하나 있으되 얼굴을 볼작시면 봄에 피어나는 복사꽃 같고 아름다운 귀밑머리 초승에 지는 달빛 아미간에 비치었다. 앵도같은 고운 입술 빛난 당체 주홍 필도 말캉말캉 쿡 찍은 듯 세류같은 가는 허리 봄바람에 흐늘흐늘 실눈 뜨고 웃는 것과 교태 있게 걷는 태도 서시와 우미인도 따를 수가 없건마는 사주에 청상 살이 겹겹이 쌓인 고로 서방을 잃어도 징글징글 지긋지긋 끔찍스럽게 잃어버리는데, 첫째 서방 첫날밤에 급상한으로 죽고 둘째로 얻은 서방 당창병으로 튀고 세째번에 얻은 서방 용천병으로 펴고, 네째로 맞은 서방 벼락맞아 식고, 다섯째 서방은 천히 대적, 포도청에서 떨어졌고, 여섯째로 얻은 서방 싸움질하다 맞아죽고, 일곱번째로 얻은 서방 전쟁에 나가 타 죽었으며, 기둥서방 간부 애부, 거드모리, 새호루기, 입 한번 맞춘 놈 , 젖 한번 쥔 놈, 눈 흘레한 놈, 손 만져 본 놈, 심지어 치마귀에 냄새 맡은 놈까지, 결단을 내는데 어떻게 쓸었던지 삼십리 안팎에 상투올린 사나이는 고사하고 열대여섯 넘은 총각도 씨가 마를 지경이라. 황평 양도 사람들이 합세하여 쫓아낸다. 이년이 하릴없이 쫓기어 나올 적에 행똥 행똥 거닐면서 남쪽으로 내려온다.
(옹녀로 분한 배우 갖은 교태를 부리면서 춤을 추고 나온다. 옹녀가 춤을 추는 동안 변강쇠 다시 나와 꺼떡거리고 춤을 추고 무대를 돌다가 옹녀와 만날 듯 말 듯 엇 비켜 다니다가 둘이 마주친다. 장단 멈춘다. 서로가 이리 저리 살펴본다.)
[해설자] 무얼 망설이고 있나? 둘이 잘 만난 것 같으니 한번 통성명이나 해 보지 그래---
[강쇠] 쥐띠로구나. 나는 임술생 개띠요. (읊어 댄다.) 천간으로 보거드면 갑은 양목이요, 임은 양수이니 수생목이 좋고 납음으로 의론하면 임술계해 대하수, 갑자을축 해중금, 금생수가 더 좋으니, 이는 아주 천생배필이오, 오늘이 마침 기유일 음양부장 짝 맞으니 당장 예를 치릅시다. 예물 치례다 형식이라 맨 입으로 혼례를 치뤄 보는데 춘향년과 이도령놈이 첫날밤 치루는 뽄으로 놀아보세--- (강쇠, 옹녀를 업고 덩실거리고 춤을 춘다.)
[강쇠] 사랑 사랑 사랑이야 네가 내사랑이로구나 호색남자 내가 나매 절대가인 네가 났구나. 네 무엇을 가지려느냐. 네가 무엇을 먹고 싶냐 둥글둥글 수박덩이 옷봉지를 뚝 떼이고 강능백청 따르르 부어 은수저로 휘휘 둘러 씰랑은 뚝 따 발라버리고 붉은 자위만 덤뻑 떠내어 조금 먹으려느냐, 시금 털털 개살구 아이 서는데 먹으려느냐.
(강쇠 옹녀를 내려놓고) 여필종부라니 자네도 날 좀 업소.
[옹녀] 깍지섬 등치같은 당신을 내가 어찌 업소?
[강쇠] 꼭 들쳐업어야 맛이오 업는 시늉이라도 해 보세---
(옹녀 업는 시늉을 하고 강쇠는 옹녀 뒤에서 두 팔을 옹녀 어깨 위에 얹고 실금 실금 까불면서 능청거린다.)
[옹녀] 사랑 사랑 사랑이야, 태산같이 높은 사랑, 하해같이 깊은 사랑, 남창 북창에 노적 같이 다물 다물 쌓인 사랑. 은하 직녀 비단 같이 올올이 맺힌 사랑. 모란화 송이 같이 펑퍼져 버린 사랑. 세곡선 닻줄 같이 타래 타래 꼬인 사랑, 내가 만일 없었다면 풍류남아 우리 낭군. 황이 없는 봉이오 임을 만일 못 봤으면 원 잃은 앙이로다. 기러기가 물을 보고 꽃이 나비를 만났으니. 좋을씨구 좋을씨구 동화방촉 무엇하며 대낮 향락 더욱 좋다.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다. 요렇게 좋다가 다 팔아먹겠네---
(두사람 흥취를 마음껏 누리며 춤을 춘다. 장단은 굿거리 장단으로 시작해서 자진모리 휘모리로 바뀌며 절정에 다 달았다가, 다시 느린 장단으로 풀어 준다. 춤을 끝내고)
[옹녀] 여보시오 서방님!
[강쇠] 와야---
[옹녀] 우리가 청석관에서 만나 부부된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그 동안 일원산 이 강 경 삼포주 사법성 곳곳을 두루 돌아 도방살림을 하였는데 내가 들병 장사 막장사며, 돈냥 모아 놓으면 당신은 닷냥 내기 빵 때리기, 두냥 패에 가보타기, 장군 멍군 내기 장기, 맞혀 먹기 돈치기와, 불러먹기 주먹질, 걸개두기 윷놀이와 한집 두집 건누두기 의복전당 술먹기와 남의 싸움 가로막기 그 중에 무슨 비위로 강새암 계집치기 암만해도 살 수 없소.
[강쇠] 그 년 뚫어진 입으로 말씸(힘) 도 좋다. 내가 놀고 싶어 그러는 줄 알어? 그게다 네 년의 상부살을 막아 줄려고 그러는 거야 이년아!
[옹녀] 상부살을 면한 것 같아 좋기는 하지만 당신 그 성질 가지고서 도방 살림하다가는 남의 손에 죽을테니, 심산궁곡 찾아가서 삼전이나 파서 먹고, 꾸꾸리집을 지어놓고 군불를 덥게 집히고, 추동야장 긴긴밤 터누르기 방아타령, 짝짓기와 사랑가로 여한 없이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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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쇠] 그 말이 장히 좋다. 십년을 굶어도 남의 계집 눈에 안띄고 눈웃음 하는 놈만 다시 안 보게 되면 내일 죽어도 한이 없겠다. 그럼 산중으로 찾아가 보세---
[옹녀] 그럽시다.
[강쇠] 산중으로 찾아간다. 어느 산으로 갈거나 동금강 돌산이라 나무 없이 어이 사나. 북향산 찬곳이라 눈 쌓여서 어찌 사나. 서구월 좋다하나 화적떼 무서워 살 수 없고, 남지리 기름지니 생입이 좋다. 그리로 가세---
(두 사람 춤을 추며 퇴장한다)
둘째 거리
[해설자] 두 년놈이 지리산 중 찾아가 동구마천에 이르니 첩첩 산 깊은 골에 빈집 한 채 서 있거늘 난리통에 어떤 부자가 피난하려고 이 집을 지었던지 다섯간 달작 기와집이 수 백년 사람 자취 없고 흉가로 비어 있어 도깨비 동청이오 묏귀신 사람이라. 거친 뜰에 있는 것이 삵과 여우 발자국이오, 숲 우거진 뒤곁에서 들리느니 우루루 끽끽 뼈끔 뚜루루 날짐승 소리 날 저물면 부엉이 올뺌이 소리에 도깨비 방망이 소리, 짝을 찾는 짐승 소리 상풍한설에 청송 부러지는 소리, 우지끈 뚝딱. 이런 야단이 또 없구나. 그래도 두 년놈은 천생연분이라 정은 갈수록 깊어가서 그런 저런 소리들이 저희들 사랑굿에 굿 가락으로 여기고 살아가는데 하로는 옹녀가 강쇠에게 일을 시켜볼 작정을 하였구나.
(옹녀 허리끈을 잘끈 매고 절구질을 한다.)
[옹녀] 산에 올라 산정방아 들에 내려 물방아. 여주 이천에 밑다리방아, 진천 통천 오려방아, 남창 북창 화약방아, 각대 하님 용정방아, 칠야삼경 깊은 밤 헐레벌떡 사랑방아, 이 방아, 저 방아 다 내 놓고 지리산 동구마천 강냉이방아가 웬 말인고---
(이때 초동 하나 지개 지고 나무하러 가다가 옹녀의 소리를 받아 방아타령을 잇는다.)
[초동] 여보시오 방아 찧는 아줌씨요 방아 처음 내던 사람 알고 찧나 모르고 찧나?---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에 강태공의 조작방아 사시사철 걸어 두고 떨구덩 찧어라. 전세 대동이 다 늘어간다. (「심청가 중 방아타령을 해도 좋다.」 지게자루를 낫자루로 때려 장단을 치면서 옹녀 앞을 지나간다. 강쇠가 허리춤을 움켜쥐고 허겁지겁 뛰어 나오며 소리친다.)
[강쇠] 이놈 어느 놈이냐?
[옹녀] 여보 서방님 낮잠 더 주무시지 않고 왜 나오시오.
[강쇠] 너 이년 어느 놈하고 수작을 한 거냐?
[옹녀] 수작이라니?
[강쇠] 지금 방아가 어쩌고 수작을 주고받지 않았느냐?
[옹녀] 어떤 아이가 산으로 나무하러 가면서 소리를 한 거예요.
[강쇠] 그 놈 어디로 갔어? 당장 잡아서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려야지.
[옹녀] 여보 서방님. 그 성질 가리 앉히고 내 말 좀 듣소.
[강쇠] 말은 무슨 말 여보 마누라 그 강냉이방아는 나중 찧고 안으로 들어가 찰떡방아나 찧으세---
[옹녀] 찰떡 메떡도 땔 나무가 있어야 떡을 하지요. 여보 서방님 들으시오 천생만민 필수 직업 부모 받들고 처자를 길거 거느리는데 낭군신세 생각하니 어려워서 못 배운 글 지금 공부 할 수 없고 손재주 없으니 장인질 할 수 없고 밑천 한푼 없으니 장사친들 할 수 있소 그 중에 할 노릇이 막일 밖에 없으니 이 산중에 살자하면 갈퀴나무 비나무며 물 거리 장작 패기 땔나무나 많이하여 집에도 때려니와 장에 져다 팔면은 단 두 식구 우리 부부 생계가 넉넉 할터 건장한 그 신체로 병날 짓 그만하고 오늘부터 지게지고 나무나 하여 오소.
[강쇠] (어이없다는 듯) 어허 허망하다. 호달마가 요절하면 왕십리 거름 싣고 기생이 잘못되면 길가에 탁주장사란 말 남의 말로 들었더니 나 같은 천하한량이 나무지게를 진단 말인가?
[옹녀] 싫으면 그만 두소 난 당장 하산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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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쇠] 여보 마누라 내가 안간다고 했나 내 신세 말이 아니라는 것이지 내 가지 간단 밖에--- 그럼 우선 의관부터 갖추고---
[옹녀] 나무하러 가는 사람이 의관은 또 뭐요?
[강쇠] 항차 궁반이라도 양반이 외출할 때는 의관은 차려 입어야 하는 법이라. 내 비록 잡놈 짓은 하지만은 뼈대있는 집 자손이라 허튼 차림으로 외출할 수 있나?
[옹녀] 외출이 아니라 나무를 하여 오란 말이오.
[강쇠] 옳거니. 나무를 하러 가는 것이란 말이지?
(옹녀 지게와 도게, 낫을 들고 나오면서)
[옹녀] 빨리 가서 해지기 전에 내려오시오! 내 무서워 혼자 오래 못 기다릴 테니. 쉬이 다녀오시
[강쇠] 오냐! 다녀오마. 그런데 마누라 내 없는 새 어느 놈이라도 얼씬하거든 독하게 맘먹고 물어뜯어서라도 쫓아버려야 하네---
[옹녀] 그런 염려 마시고 어서 다녀오오.
[강쇠] 자 그럼 다녀오리다.
(지게를 한 어깨에 걸치고 객석으로 나오면서 신세타령을 한다.)
[강쇠] 태고적 천황씨는 목덕으로 왕했다니 오행 중에 먼저 난게 나무덕이라. 천지인 삼황시절 각 일만 팔천세를 정치 교육 없었어도 자연히 나라가 다스려 졌다는데 그때 내가 태어났으면 오죽이나 편겠는가. 수인씨 무슨 일로 불을 찾아내 화식을 가르쳤나? 그 뒤부터 사람들은 일이 점점 생겼구나.
(이때 객석 한쪽에 새우젓장수가 강쇠 노래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외친다.)
[새우젓장수] 새우젓 사려어---
[강쇠] 하은주 석양 되고, 한당 고송 풍우 일어갈수록 일만 늘고 쌈질만 늘어가니 일년 사철 놀 때 없이 밤낮으로 벌어도 기한을 못 이기니 불쌍한 건 백성이로구나.
[새우젓장사] 곤쟁이젓 사려어---
[강쇠] 내 평생 먹은 마음 남보다는 다르구나. 좋은 의복 갖은 패물 호사를 찔근하고, 예쁜 계집 좋은 주효, 잡기로 벗을 삼아 세월 가는 줄 모르고서 살랫더니 층암절벽 저 높은데 다리 아파 어찌 가며, 억새폭 가시덩쿨 손이 아파 어찌 베며 너무 묶어 온집되면 어깨 아파 어찌지고 고산심곡 무인처에 심심하여 어찌 올까?
[새우젓장사] 새우젓 사려! 곤쟁이젓 사려!
(강쇠와 새우젓 장수 만난다.)
[강쇠] 이 산중에 민가가 어디 있다고 새우젓 통을 짊어지고 산속으로 들어오는 거냐?
[새우젓장수] 저 아래 백모촌에 들렀다가 그냥 내려가려 하니 사람소리 들리길래 올라오는 길이오.
[강쇠] 여기는 사람 집 없으니 얼른 내려가시오.
[새우젓 장수] 남이야 내려가든 올라가든 당신 가든 길이나 가시오.
[강쇠] 그러면 이쪽으로 가지 말고 저쪽으로 가시오!
[새우젓장수] 아무 쪽으로 가든 새우젓 장수 마음이오.
[강쇠] 층암절벽 저 높은데 다리 아파 어찌가나.
(흥얼거리며 객석을 돌아 퇴장. 새우젓 장수 새우젓, 곤쟁이젓 소리를 장단에 맞춰하며 강쇠 온 길로 해서 방아찧고 있는 옹녀에게로 간다.)
[옹녀] 낭군이지요. 열일곱번째 낭군인데 살풀이를 해서 겨우 겨우 살지만, 내 몸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잠도 따로 자야되니 내 마음 고鑯기가 어떻겠수?
(새우젓 장수 겁을 먹기도 하고 군침을 삼키기도 한다.)
글쎄 내가 어쩌다가 손목만 잡아도 그 자리에서 급살을 하니 이런 팔자가 어디 있습니까? 기구한 팔자지요. (옹녀 손을 내밀어 새우젓장수의 손을 잡으려 하며) 어서 들어가시지요.
[새우젓장수] (겁을 덜컹 먹고 뒤로 물러나며) 어이쿠 가까이 오지 마시오.
[옹녀] 왜 그러세요? 새참 해 드릴테니 어서 안으로 드시와요. 혹시 압니까? 연때가 맞아 함께 살게 될지?
[새우젓장수] 나, 나 샛참 안 먹어도 좋으니 가까이 오지마슈! (말을 더듬거리며 뒤로 물러난다.)
[옹녀] 그 전에 어떤 낭군은 음식을 품고 눈 흘레를 하려다가 죽은 일도 있긴 하지만 새우젓장수 아저씨야 무슨 탈이 있으시겠우 --- 어서 들어와요.
(새우젓 장수는 벌써 새우젓 짐을 지고 일어서 외면한 채 도망하기 시작한다.)
[새우젓장수] 난 안 봤소. 난 본 일 없어요.
[옹녀] 여보시오. 새우젓 장수 새우젓 값 받아가야죠.
(새우젓 장수 꽁지가 빠지게 도망친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더니. 별 별 사는 수가 다 있군. (퇴장한다.)
셋째거리
(무대 오른쪽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들이 삐뚜름히 서 있다. 강쇠 빈 지게를 지고 힘겹게 들어와 장승 앞에 이르더니 지게를 벗어 놓고 쉰다.)
[강쇠] 에이구 다리 아파라. 이쯤에서 나무를 해보자. 헌데 어떤 나무를 벤다? 오동나무 베자하니 가야금에 거문고감, 살구나무 베자하니 공자님의 글공부, 소나무 좋다마는 임금님의 벼슬나무, 잣나무 좋다마는 잣 또한 곡식이다. 복사나무 사랑옵고, 버드나무 지화자라. 밤나무 신주감, 전나무 돛대 재목, 가시나무 단단하니 각 영문 곤장감. 참나무 무늬 좋다 화목되기 아깝구나. 이리저리 생각하니 벨 나무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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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네. (이때 초군들이 목발을 때려 산타령을 부르며 등장)
[강쇠] 얘들아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좀 쉬어서 놀다가 가거라.
[초동] 나무하러 왔는데 놀고 가다니 웬 말입니까?
[강쇠] (눈을 부라리며) 이놈들아 놀고 가라는데 웬 대꾸야?
[초동] 그럼 아저씨가 우리 나무 대신 해 주실테야요?
[강쇠] 암 해주지. 잘 놀면 해주고 못 놀면 알밤이나 몇개씩 주지.
[초동] 그럼 한번 놀아 볼까나?
[초군들] 어이! (소리) 갈퀴 메고 낫 갈아 가지고서 지리산으로 나무하러 가자. 얼럴--- 쌓인 낙엽 부러진 고목 굵고 주워 엄뚱여지고 석양산길 내려올제 노인보고 절을 하니, 주머니 속에 있는 과일 땍대굴 다 떨어진다. 얼럴 --- 비 맞고 목마른 노인 술집이 어디 있소? 저 건너 향화촌 손을 들어 가르키자 얼럴 --- 뿔 굽은 소를 타고 단적을 불고 가니 유비가 보았으면 나를 오죽 부뤄하랴. 얼럴 --- (초군들이 한창 흥을 돋구고 있을 때 강쇠는 잠이 오느 듯 팔베게를 하고 장승 아래 눕는다.)
[초동] (노래 다 끝내고) 아저씨 이만하면 됐습니까?
[강쇠] (코를 드르렁거리고 곤다.)
[초동들] (실망하고) 공연히 힘만 들고 해만 보냈구먼 가세---
(모두 흥얼거리며 산으로 오른다. 강쇠 잠에서 깨어나는 듯 허리를 펴고 주위를 돌려보고)
[강쇠] 순사또는 가는데 마다 선화당이라더니 내 팔자도 비슷하여 정막한 이 산중에 잠자리 편한데서 낮잠 한번 잘 잤다. (주위를 둘러보며) 헌데 벌써 날이 저물지 않았어? 요새 해가 이리 짧아졌나? 그러나 저러나 빈 지게 지고 내려 갔다간 계집년이 방정 떨겠는데 어떻게 한다? (주위를 들러 보다가 장승을 발견하고) 에게게? 벌목 정정 애쓸 필요없이 좋은 나무 거기 있구나. 날은 저물고 갈길은 먼데 불노이득 좋을씨고 (장승을 보더니 갑자기 호령을 한다.) 네 이놈 뉘 앞에다 색기를 뿜어 눈방울을 부릅뜨냐? 삼남 설축 변강쇠를 이름도 못 들었느냐? 과거 마전 마시 평과 사당노름 씨름판에 내 솜씨로 사람 칠제 복장 치고 덜미차기 가래딴죽 열두 권법, 조선천지 다 아는데--- 수족 없는 네란 놈이 생심이나 먹을소냐? 네 놈이 대체 무슨 염치로 마누라 옆에 세워두고 낮 바닥에 핏기 올리고 눈을 딱 부릅뜨고 있느냐? 네가 무슨 벼슬했다고 사모관대 갖추고, 방울 눈 주먹코에 채수염을 점잖히 하고 어영대장 지낸 듯이 입을 크게 벌렸느냐? (천하대장군을 쑥 뽑아 지게에 가로지어 짊어지고 노래를 한다.)
[강쇠] 나무를 했네 나무를 했어. 실컷 놀고 낮잠 자고 애 안 쓰고 나무했네. 대장부 한번 걸음에 열흘 땔감을 거두졌구나. 얼널널 상사디야. (꺼덕거리고 춤을 추며 무대를 한바퀴 돈다.) 여보 마누라 장작 나무 해왔네. (장승 무대에 아무렇게나 뉘어 놓는다.)
[옹녀] (안에서 나오며) 아이고 어찌 이리 늦으셨소? 평생 처음 나무 가서 오죽 애를 쓰셨겠소? 어서 들어가 저녁 밥 자십시오. 그런데 나무는 어데 있소?
[강쇠] (눈짓으로 장승을 가르키며) 저기 있지 않소?
[옹녀] 애게? (찔금 놀랜다.)
[강쇠] (자랑스럽게) 한 열흘은 잘 땔 것이구만.
[옹녀] 아니 이것은 장승이 아니오?
[강쇠] 왜 아니겠소?
[옹녀] 이것이 웬 일인가? 이것이 웬 일인가? 나무하러 간다더니 장승을 빼어왔네그려. 나무가 아무리 귀하다 한들 장승 패어 땐단 말은 듣도 보도 못하였오. 만일 저것 패어 때면 목신동티 조왕동티. 목숨 보존 못할 테니 어서 급히 지고 가서 섰던 자리에 도로 세우고 외발 굴러 진언 치고 다른 길로 돌아오소.
[강쇠] (호령조로) 가장이 하는 일을 보기나 할 것이지 계집이 용망하게 오두방정을 떨다니 --- ? 진나라 충신 계자추는 먼 산에서 타서 죽고, 한나라 장군 기신이는 형양에서 타 죽고, 참된 사람이라고 타 죽어도 아무 탈이 없었는데 나무로 깎은 장승 사람모습 하였은들 패어 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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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 있나? 사람이 말 안하면 귀신도 모를테니 요망한 말 다시는 하지마라. (강쇠 장승을 끌어안고 퇴장. 옹녀 지게 들고 퇴장.)
넷째거리
장승회의
((굿가락이 연주되며 지하여장군의 형상을 한 여자 춤을 추며 나온다.))
(살풀이 춤) ((여장승이 춤추는 동안 노량진 대방장승, 화성 사그네대장승, 용인 지지대장승, 새남터 장승, 네명의 장승이 나와 춤을 춘다. 춤이 끝나면 사그내장승이 중앙에 자리 잡고 좌우에 세 장승이 서고 여장승 엎드려 아뢴다.))
[마찬여장군] 소장은 경상도 함양군 동구마천 산길을 지키는 장승의 아내로서 신기 처리 한일 없고 평민 침략 한일 없이 불디 풍우하고, 부부가 한결같이 각수 본직하옵다가, 일국의 난봉인 변강쇠라 하는 놈이 산중으로 이사터니, 무죄한 소장 남편에게 공연히 달려들어 욕설을 퍼붓고는 빼어지고 집에 가서 도게로 꽝꽝 패어 도게 아래 조각 나고, 제 부엌에 화장하여 잔재되어 죽었으니 그렇게 원통한 일 고금에 있으리까? 의지할 곳 바이없어 중천에서 우는 원혼 저 혼자서 달랠길 전혀 없고 이 원한 갚을 길이 막연하여 왔아오니, 소장의 한 풀어 주시고, 후환 막게 하옵소서.
[사그내] 이런 큰 변이 있나? 우리 장승국 생긴 후로 처음 만난 괴변이니 산소임만 모여 앉아 종용작처 못 할지라. 팔도 동관 다 청하여 공론하여 처리 하옵시다.
[세장승] 그리합시다.
[지지대장승] 여봐라! 경상도 함양 통관 억울한 사정들은 죽 천만고에 없던 변이 오늘 날 생겼구나. 팔도동관님들 수고타 마시고 잠깐 왕림하옵시라 전달하고 모셔오라!
[악사들] 예 분부대로 하오리다.
[사그내] 자 그럼 촌음을 아껴서 먼저 소임들의 의견을 말씀해 보시오. 그 변강쇠란 놈을 그저 두었다가는 이웃 동관 장승들은 삼동 땔감 될터이오, 차차로 화가 미처 팔도 장승 못 남겠으니 심사숙고 의논하여 미리 후환 막읍시다.
[마천여장승] 새남터 어른의 말씀 시원키는 하옵지만 그 놈의 식구란게 계집 하나 뿐이오며, 계집은 말렸으니 죄를 줄 수 없고 강쇠라 하는 놈도 남 모르게 효수하면 세상 사람 알 수 없어 일벌백계 못 되오니 여러 어른께옵서는 다시 생각하옵소서.
[사그내장승] 그 말에 일리 있으니 다시 생각하여 보오.
[지지대장승] 세상은 돌고 돌아 제게서 나온 것 제게로 되돌아가는 법. 옛 성인의 말씀이니 우리동관 화장되었으니, 우리들도 그 놈 집을 둘러싸고 불을 질러 장쇠 놈을 화장하옵시면 어떠할지---
[사그내장승] 흉악한 그런 놈을 부지불각 불지르면 제 죄를 제 모르고 도깨비 장난인가, 화적패의 난리던가, 의심을 할터이니 다시 생각하여 보오.
[대방장승] 그 말씀 절절히 지당하오. 그러한 흉한 놈을 쉽사리 죽여서는 설욕이 못 될테니 고생을 실컷 시켜 죽자 해도 썩 못 죽고 살자 해도 살 수 없어, 칠칠은 사십구 한달 열아흐레. 밤낮으로 보깨다가 험악하게 죽게 하면 장승 화장한 죄인 줄을 저도 알고 남도 알아 쾌히 징계 될 터이니 경기 34관, 충청도 54관, 황해도 23관 평안도 32관 강원도 26관 함경도 24관 전라도 56관 경상도 71관 총삼백이십관. 우리 식구대로 병 하나씩 들고 가서 정수 집에 토벽 바르듯 신방에 도배하듯 각 장 장판 기름 걸듯, 묵은 비각 단장하듯 겹겹이 발라주면, 그 수가 어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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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사그내] 대방어른 의견이 장히 좋소이다. 그러하나, 그대로 시행을 하되 조그마한 강쇠놈에게 그 많은 식구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많은데는 축이 들고 빠진데는 틈 날테니 머리에서 두 팔까지는 함경, 평안 차지하고 겨드랑이서 볼기까지는 강원, 경상 차지하고, 오장 육부 내복일랑 경기 황해 차지하여 팔만 사천 털구멍 한 구멍도 빈틈없이 단단히 잘 바르라.
[일동] (에잇 하며 물러나면서 장단이 시작된다. 변강쇠와 옹녀는 반나의 몸으로 허벅지게 춤을 춘다. 춤이 끝나면 옹녀는 퇴장하고 변강쇠는 쓸어져 잠이 든다. 이어서 장승들이 하나, 둘 등장하여「장승병도 배춤」을 추기 시작 변강쇠는 병이 몸에 발라질 때마다 꿈들대다가 장승에게 도전한다. 한동안 처절한 대결이 벌어진다. 장승들 병 도배를 끝내고 승전무를 추듯 신명나게 놀고 퇴장한다.
다섯째거리
[해설자] 이렇게하여 변강쇠는 순식간에 장승들에게 병 도배질을 당했으니 견딜 재간 있겠는가? 변강쇠 형상을 보면 말하자니 안나오고 만신을 결박된 듯 각색으로 쑤시는데 이를 꽉 아드득 물고 낭자한 부스럼이 어느새 농창하여 피고름 독한 냄새 코를 들 수 없구나. 병 이름을 들자 하면 만가지가 넘겠는데 다 외울 수 있겠는가? 몇 가지만 일러보면 풍두통, 편두통, 담결통 겸하고 귀고름 이명에 귀젖알이를 겸하고 비창, 비후증에 주독을 겸하고 면종 협종에 손종을 겸하고 중치 풍치에 구화증을 겸하고, 흑태 백태에 설축증을 겸하고, 후비창 천비창에 쌍단아를 겸하고 낙합중 항강에 발제를 겸하고, 연주창 나력에 상감을 겸하고, 견비통 응절에 수전증을 겸하고, 협통 요통에 등창을 겸하고 늑막염 복막염에 부종을 겸하고 임질 곤지름에 토산 불알 겸하고, 이질 치질에 탈항증을 겸하고, 가래톳 학질에 수종을 겸하고, 무좀 도장병에 티눈을 겸하고 주독 색독에 당토를 겸하고, 육체 주체에 식체를 겸하고, 황알 흙달에 헛배부르기를 겸하고, 물똥 곱똥에 피똥을 겸하고, 재채기 기침에 딸꾹질을 겸하고, 헛소리 경기증에 헐떡증을 겸하고, 급체 곽난에 토사를 겸하고, 열병 시병에 영광증을 겸하고, 울화허화에 물조갈을 겸하고, 이밖에도 무수한 병을 얻었다 하나 그는 모두 광대가 꾸민 재담이고 어떻든 변강쇠는 굽도 잣도 못하고, 앉도 서도 못하고, 송장꼴이 되었는데, 숨은 아직 남아있어 모진 곤욕을 치른다. 강쇠지어미 아침에 일어나 변강쇠 모양보고 오죽 놀라고 겁을 먹었으랴? 문복이나 하여 보자하고 아래 마을로 내려가 봉사를 데리고 오게 되었겠다.
[봉사] (지팡이로 더듬어 보고) 응, 그러면 지어미는 사방에 황토 놓고 목욕하고, 재계하고, 깨끗한 의복 입고 살망떡과 과실, 채소 급히 채리시오.
[옹녀] 내 정성껏 차릴테니 점이나 한장 쳐주시오.
[봉사] (북을 앞에 놓고 단정히 끓어 앉아 산통을 꺼내 들고 흔들면서 축사를 외운다.) 천하언제시며 지하언제시오마는, 고지즉음하나니, 부대인자는 여천지합기덕하며, 여일월합기면, 여사시합기서라며 여귀신 합기길흉하시니, 신기영의라. 감동하시와 통하여 주소서. 을유 10월 갑자삭 초육일기사, 경상우도 함양군 동구마천 지리산 중에 사는 여인 옹씨 여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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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 낭군 임술생 변강쇠가 우연히 병을 얻어 사생을 단파하니, 복걸점신은 물비괘효 신명소시--- 신명소시--- 하나, 둘, 셋 (산을 뽑아보고 얼른 산통 속에 넣고) 사목비목 사인비인이라? 나무 같으나 나무가 아니며 사람 같으나 사람이 아니라? 어허 그것 괴이하다.
[옹녀] 엊그제 지아비가 장승을 패 때더니 장승 동증이 아니오?
[봉사] 맞소 맞어. 사목비목 사인비인은 바로 장승이구먼! 그러면 그렇지. 목신이 난동하고 칠성을 지키는 귀신이 발동하여 살기는 가망 없구먼.
[옹녀] 그러면 원이나 없게 독경이나 하여주소.
[봉사] 내 시키는 데로 다 차렸는가?
[옹녀] 네, 차렸오.
[봉사] 그러면 경 읽제--- (북을 뉘어 놓고 한 손에 북채 들고 한손에 요령 들고 쨍쨍 통통 울리면서 경을 읽는다.)
(이생원 신명이 나서 장단에 맞추어 침을 주고, 봉사 까딱거리며 어깨춤을 출때, 변강쇠 '으악' 소리지르며 벌떡 일어나 장승처럼 버티고 선다. 그 바람에 이생원 나자빠저 기절한다.)
[봉사] 이 무슨 소린고?
[옹녀] 이 일을 어쩌나 우리 낭군은 살아났으나 이새원이 기절하였군요.
[봉사] 낭군이 살아났어? 그것 내 경읽은 효험이 이제야 나타났군 그래.
[옹녀] 서방님 이제 견딜 만하오?
(변강쇠, 무서운 얼굴로 옹녀를 바라보더니 두 팔을 벌리고 주척주척 옹녀에게 다가간다. 옹녀는 겁에 질려서 얼떨결에 봉사의 지팡이 잡은 손을 쓰다듬으며 희주이 웃는다. 강쇠 뻣정다리 걸음으로 뒤뚱뒤뚱 걸어가서 옹녀의 한쪽 손을 덥석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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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쇠] (눈을 흘리며) 자네는 황평사람, 내 몸은 삼남 사람, 하늘이 지시하고 귀신이 중매하여, 오다가다 맺은 연분, 죽자살자 깊은 맹세, 단산의 봉황이요, 놋수의 원앙이라. 잠시도 이별말고 백년회로 하쟀더니, 하로 밤에 얻은 병 백가지 약 효험없고, 마누라 정성 또한 닿지를 못하고서 청춘원혼되어서 황천길을 가게 됐오. (봉사는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고 있다) 이생에 와 잠깐 머물다가 죽은후에 본댁감이라. 성인 말씀 있으니, 나는 섧지 않거니와, 생이사별 자네 정경, 차마 어찌 보자는가? 억수같이 붓던 정기, 구름같이 흩어지면, 봄눈같이 녹는 간장, 알개같이이는 수심, 도리화되는 봄과, 오동잎지는 가을, 두견이 설이 울고, 기러기 높이 날제, 독수공방 자네 신세, 불쌍하고 가련하다. 자네 정경 가긍하여, 내 아무리 살자하되, 내 병세 지독하여, 기어이 죽을테니 이 몸이 죽거들랑 염습하고 입관하기, 자네가 손수하고, 줄상한 제 상여배행, 시묘살며 조석상식, 삼년상을 지낸후에 비단 수건 목에 졸려 저승으로 찾아오면 이생에 미진 연분 이어지게 되려니와 지금 죽은 후에 사나이라 생간, 높은 열사전 아이라도 자네 몸에 손대거나 집근처에 얼씬하면 즉각급살할 것이니, 부디부디 그리하소. 나는 죽네. 나는 죽어.
(장단이 나오며 변강쇠 마지막 잔생을 연소시키려는 듯 죽음의 춤을 춘다. 기절했던 이생원 깨어나서 도망치고 봉사도 도망친다. 변강쇠 한참을 추다가 우지직하고 기를 쓰더니 오른쪽 덧 마루 앞에 가 쓸어진다.)
[부] 2부
여섯째거리
(옹녀 머리를 풀고 병풍을 내다가 변강쇠 시신을 가린다.)
[옹녀] (관객을 향해서) 이제 난 어떻게 하죠?
[해설자] 뭘 어떻게?
[옹녀] 울어야 하나요? 웃어야 하나요?
[해설자] 강쇠 혼령이 들으면 큰일날 소릴해?
[옹녀] 그럼 강쇠 유언대로 해야해요?
[해설자] 해야하고 말구
[옹녀] 그럼 해 보지요 (갑자기 주먹쥐고 땅을 치며) 애이고 애이고 설운지고. 애이고 애이고 어째할꼬? 변서방아, 날버리고 어디가나--- 나도 가세, 나도 가세, 임을 따라 나도 가세 청석관에서 만날적에 백년해로 하자더니, 황천객 혼자되니 일장춘몽 허망하다. 웬 년의 팔자로서, 상부복을 그리타서, 송장 많이 보았으나, 보던 중에 처음이네, 적막신중 텅빈집에, 낭군장례 어찌할꼬, 나를 만일 못 잊어서, 눈을 감지 못하면은 날 잡아가, 날아가, 애고 애고 설운지고 (관객에서) 이만 하면 되었소?
[해설자] 이제 사자법 지어놓고 옷깃잡아 초혼해야지
[옹녀] 이렇게 하면 어떠할까요?
[해설자] 어찌?
[옹녀] 이 산중에서 나 혼자 울어서는 이 집에 초상난줄 아는 사람없을테어, 몇날을 지내다 보면 송장이 썩어서 벌레가 기어나오기 똑 알맞지 않아요?
[해설자] 그래서?
[옹녀] 그러니 큰길가에 앉아 울면 어떨까요?
[해설자] 그건 또 왜?
[옹녀] 그러다가 오입쟁이 사내라도 만나면 이리로 데려와서 장사를 지내지요.
[해설자] 그것참 묘안이군요.
[옹녀] 그럼 한번 해볼테니 사람 지나가거든 귀뜸이나 해 주소.
[해설자] 그렇게 허지
(옹녀 아장아장 걸어서 무대를 한바퀴 돌아 관객 가까운 곳에 앉아 노래를 하는데 남자 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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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으로 맛이 나게 부른다)
[옹녀] 애고 애고 설운지고 이 내 신세 가긍하다. 길심이 고단귀로, 이십이 겨우 넘어 삼남을 찾아오니, 사고무친 객지로다. 오행궁합 좋다기에, 육례없이 얻은 낭군 칠차상부 또 당하니 팔자이리 험궂은가? 구곡간장 이 통한을 십왕전에나 아외리까, 애고 애고 설운지고--- (해설자를 보고) 아직 아무도 안와요?
[해설자] 저기 산 나비하나 내려오네.
[옹녀] 그래요? (다시 소리를 한다) 애고 애고 설운지고 비들에 우는 꾀꼴, 벗을 오라 한다마는 황천가신 우리 낭군, 내 어이 불러오며 가장 치상 못한 나를 어디가자 부르느냐--- . 염라국이 어디 있어 우리 낭군 가 계신고- 애고 애고 설운지고 (소리를 하면서 힐끗힐끗 중 오는 쪽을 보며 앵도를 딴다. 술이 알맞게 취한듯 한 중, 육환장 이리 저리 철철거리며 취중에 겨워오다가 옹녀를 발견하고 멈추어 서서 사면을 둘러본다 한참 주저주저 하다가 여인 얼굴을 얼른 보고는 탐이 나는 듯 가만 가만 여인 가까이 간다)
[옹녀] (중 오는 것을 짐작하고 온갖 태를 부리는데 얼굴을 번뜻 들어 먼산을 바라보고, 치맛자락 올렸다가 눈물로 씻어 보고, 손으로 턱도 받쳐보고, 설움을 못 이겨 머리도 뜯어가며 애처롭게 우는 시늉을 한다.) 내 신세를 생각하면 해당화 각가지에 목을 매여 죽고 싶지만 눈 같이 흰 이 살갖, 꽃같은 이 얼굴이 아직 청춘 한창이니, 적막공산 쥔 없는 몸 이 아니 원통한가, 넓고 넓은 천지간에 풍류호걸 의기 남자 응당 많이 있건마는 내 속에 먹은 마음 그 뉘라서 알 수 있나. 애고 애고 설운지고---
[중] 참다 못 견디어 죽기로 작정하고 나선 단 소승 문안 드리오.
[옹녀] (힐끗 보고 못 들은채 하며) 오동에 봉 없으니 오작이 지저귀고, 녹수에 원 없으니 오리가 낮아든다. 애고 애고 설운지고.
[중] (바짝 달려들며) 소승 문안이요. 소승 문안이요?
[옹녀] (꾸짖는 투로) 중이라 하는 것이 부처님의 제자이니 계행이 다를텐데, 산중 숲속에 혼자있는 여인에게 염치없이 달려드니 버릇이 괘씸하오. 문안은 그만하고 갈 길이나 어서 가소.
[중] (더욱 애가 달아서) 부처님의 제자이기에 자비심이 많사와 시주님의 그 청춘에 애원히 우는소리 뼈가 저려 못 갈테니, 우는 내력이나 알려주오.
[옹녀] 단 두식구 산중에서 근근히 살아오다 신수 불행하여 낭군 초상 만났는데 송장조차 험악하여 치상할 수 없기로 여기 와서 우는 뜻은 담기 있는 남자 만나 낭군 치상 한 연후에 그 사람과 부부되어 백년해로 하자하니, 대사의 말씀대로 자비심이 있으시면 근처로 다니시며, 혈기 남자 만나거든 지시하여 보내주오.
[중] 우리 절 중들 중에 자원할 이 있으면 가르쳐 보내리까?
[옹녀] 치상만 하여주면 그 사람과 살터인데 중과 속인을 가리리까?
[중] 그러면 쉬운 수가 있오. 그 소장 내가 치고 나하고 살면 어떠하오?
[옹녀] 한번 입 밖에 낸 말인데 다시 물으시면 어떻해요? (중 좋아라하고 장단에 맞추어 장삼 벗어 어깨에 둘러 매고 춤을 추며 여인을 따른다. 중 장난을 하는데 옹녀의 등덜미에 손을 넣어보고 가슴도 불끈 쥐어보고 허리를 질끈 안아보고, 손목도 꽉 잡아보면서 춤춘다.)
[옹녀] (꾸짖는다.) 바삐 먹으면 목이 메고, 급히 더우면 쉽게 식는 법이에요.
[중] 일인즉은 그러하네. 십년 공부 나무아비타불. 참 부처는 틀렸고 삼생가약 우리미인 가부처나 되어 보세. 덩덩 더쿵 덩덕쿵. (무대를 돌아 병풍있는데 까지 온다.)
[옹녀] 다 왔소.
[중] 신체 방기 어디 있소?
[옹녀] (병풍 가르키며) 저 방에 있소. (중 성급히 그쪽으로 가려할때) 대사님!
[중] 왜?
[옹녀] 시체의 형용이 험악하니 마음을 단단히 먹으시오!
[중] (과장되게 장담하며) 우리 중은 본시 겁이 없오이다. 칠야삼경 깊은 밤에, 궂은 비 흘뿌릴제 적적한 천왕각에서 혼자서도 자는 사람이라. 그까뾵 송장쯤은 조금도 염려없오. (병풍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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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나무아비타불---
(이때 변강쇠 시신이 병풍 안에서 벌떡 일어선다. (등신대 인형으로 대치) 중「윽」소리와 함께 병풍 밖으로 나뒹굴어 죽어 버린다.)
[옹녀] (이 광경을 보고 놀랜다.) 애계? 송장 하나 치우려다 송장 하나 더 늘었네. (강쇠에게) 여보소, 변서방 어찌 그리 무정하오? 이렇듯 죽은 것은 모두가 자업자득 장례행상 하려하고 간신히 중을 후렸는데 송장 치우려 온 사람을 저 죽음 시켰으니 이 소문 나게되면 장사 어이 치루겠오? 장사만 치른 다음 당신의 유언대로 수절을 할 터이니 다시는 강자마소. 제발 제발 부탁이오. 다시는 강자를 마소. (객석을 향하여) 송장 치워 줄 사람 없소? 송장만 치워주면 원대로 해 드리죠.
일곱째거리
(이때 객석의 뒤쪽에서 초란이 나타난다. 그는 구슬상모 단 벙거지에 장구를 메고, 누비저고리에 떼 묻은 붉은 전대를 어깨에 띠고 초록색 비단 쌈지 차고, 청색허리며 짚신에 파랑허겊 잡아매고 헛기침하며 촐랑거린다.)
[초란이] 에 오너라 가노라 하노라니 우리집 마누라가 아주머님 길에 문안 아홉꼬장이, 평안 아홉꼬장이, 이구십팔 열여덟꼬장이 낱낱이 전하라 하옵니다. 당둥당--- (각사석 가까이 오면서 장구채를 부린다.)
[초란이] 여보소 길 좀 물읍시다.
[해설자] 어디를 가는 누구요?
[초란이] 지리산 동구마천 초상집에 송장 치려가는 초란이오.
[해설자] 초상집에 가는 놈이 장구를 치면서 초랑거리고 간단 말인가?
[초란이] 장가들러 가는데 울면서 가겠나?
[해설자] 초상집에 장가들러 간다니?
[초란이] 초상만 치러 주면 그 예쁜 마누라가 같이 살아 준다는 소문 원근 산천에 쫙 퍼져 있는것 자네는 모르나?
[해설자] 참! 그렇던가?
[초란이] 참 그렇던가라니? 그것도 모르면서 왜 거기 앉아있나?
[해설자] 그런데 내가 듣자니 그 송장이 아주 험상궂게 생겨서 보기만 하면 나자빠져 고태골로 간다든데?
[초란이] 그런 염려 잡아매게. 내가 초상집에 가서, 중복막이 악귀돌림 잡귀잡신 퇴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라네.
[해설자] 그건 그렇고 송충이가 솔밥 먹어야지. 길잎 먹으려다 가는 큰 일 저지르네.
[초란이] 지금 세상이 어떤데 솔잎 갈잎을 가리는가? 솔잎도 먹고 갈잎도 먹어야 사는거야.
[해설자] 그럼 잘 해보게.
[초란이] 나 갈테니 장단이나 쳐주소.
(악사들 자진굿거리 장당을 친다. 초란이 특유의 춤을 추면서 옹녀 가까이 간다.)
[옹녀] (초란이를 꾸짖는다.) 아무리 초란이라지만 초상집에 와서 어찌 그리 경망하단 말요? 장고소리 멈추소.
[초란이] 이 초란이 기가문전 들어갈때 반겨주는 이 어데있소? 뒷꼭지를 질러도 소용없고, 핀잔주어도 소용없고, 악담 난장을 쳐도 꿀로 알고, 박살이 난데도 호강으로 가는 초란이니 송장이나 치워 봅시다. 우선 액풀이 고사부터 해야하니, 통영칠두 리반에 쌀이나 되어 놓고 명실과 명천이며 귀가지 저고리를 아끼지 말고 어서 어서 내 놓으시오.
[옹녀] 다 준비되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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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이] (장고를 치며 고사를 지낸다.) 사망이다. 사망이다. 내 발뿌리가 사망이다. 불었구나, 불었구나 좋은 바람 불었구나. 재수있네 재수있네. 흰눈꼬리가 재수있네. 복이 있네 복이 있네 주석 코가 복이 있네. (장고를 치고) 어제 저녁 꿈 좋기에 이상히 알았더니, 이댁 문전 찾아와서 재수사망터졌네. (장고를 치고) 신사년 괴질통에 험악하게 죽은 송장 내 손으로 다 치웠으니 먼저 삯을 결정하오!
[옹녀] (애련하게) 가난한 내 형세에 돈 없고 곡식 없으니 장사를 치룬 뒤에 부부되어 살터이오.
[초란이] (덤벙거리며) 얼씨구나 멋있구나. 절씨구나 좋을씨고. 듣던 소문 틀림없다. 맛속 있는 초란이가 일색미인을 만났구나. (장고를 치고) 시체를 어서 치웁시다.
(초란이 강쇠 시체를 한번 보더니 뒤 꼭지를 두세번 치고 정신이 아득한 듯 머리를 탈탈 털고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다시 고사를 시작한다.)
[초란이] 여보소 저 송장아! 이 내 고사 들어보소. (뚜당동당) 오행정기 생긴 사람. 노소간에 죽어지면 혼령은 귀신되고, 신체는 땅속에 묻히는 법, 무슨 원통 속이 있어 혼령은 안 떠나고 송장은 뺏뺏이 섰노? (장고치고) 이 내 고사를 들어보면 자네 원통 다 풀리리. 살았을 제 이생이오. 죽어지면 저 생이라. 만사는 뜬구름인데 처자 어찌 따라갈까? 죽어서도 살자 하는 자네 원성 가증하나 자네 처 청춘이니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때 바람소리 으시시하게 들리면서 송장 걸어서 초란이에게 다가선다. 초란이 장고 채를 치다가 점점 굳어져서 뒤로 발랑 자빠져 죽는다.)
[옹녀] (깜짝 놀래고 땅을 치며) 또 죽었네. 또 죽었네. 이 웬수야, 서방아. 여자의 몸으로 세 송장을 어찌 치우라고 또 죽였나? 나는 어떻해? 난 몰라.---
(이때 도망쳤던 이생원이 부채질을 활활하며 강쇠네 집 쪽을 기웃거린다.)
[해설자] 여보 이생원
[이생원] (깜짝 놀랜다.)
[해설자] 뭘 게웃거리고 있나?
[이생원] 그 변강쇠 송장은 치웠나?
[해설자] 아직 못 치웠어. 이생원도 생심이 동하는가?
[생원] 그 강쇠놈 마누라를 한번 보았더니 발 뿌리가 자꾸 이쪽으로 돌아선단 말이야. (이 얘기를 하는 동안 옹녀 초란이의 시체를 치운다.)
[해설자] 아까 그렇게 혼이 나고서도 그래?
[이생원] 그때는 아직 죽지 않았을 때니까 그랬지. 죽은 다음에야 제가 어쩔려구?
[해설자] 그럼 말리지 않을테니 가서 치워주고 원이나 풀지.
[이생원] 그래 볼까? (이때 새우젓 장수가 새우젓 사려--- 를 외치며 나타난다.)
[해설자] 저 사람도 소문 듣고 찾아가는 모양이구만.
[이생원] 허허 이것 자칫하다간 선수 빼앗기겠는걸. (새우젓 장수를 세운다.) 여보게 자네 어디로 가는 길인가?
[새우젓장수] 생원님은 어디로 행차하시니까요?
[이생원] 이 사람아 내가 먼저 묻지 않았나?
[새우젓장수] 생원님께서는 제 뒤를 따라오시지 않았습니까?
[이생원] 이런 고얀 놈 봤나!
[새우젓장수] 그 참 고얀 양반 봤나? 길가는 사람보고 시비가 웬 시비이실까!
[이생원] 그만 두세, 어서 가던 길이나 가게!
[새우젓장수] 새우젓 사려어- (강쇠네 집쪽으로 간다)
[이생원] 여보게, 내가 앞장을 설테니 자네는 뒤 따라 오게.
[새우젓장수] 생원님은 어딜 가시는데 절보고 뒤따른다 하십니까?
[이생원] 이 길로 가면 닿는 곳은 뻔하지 않는가?
[새우젓장수] 뻔하다니요?
[이생원] 초상집으로 가는 것 아닌가 말일세?
[새우젓장수] 그럼, 생원님도 소문 듣고 송장 치우러 가십니까?
[페이지] 017
[이생원] 옛끼 이 사람, 점쟎은 사람한테 말을 함부로 하는군---
[새우젓장수] 엎질러진 물이오 사후 약방문인데 초상집에 의원샌님이 무엇 하려 가십니까?
[이생원] 약 값을 받으러 가는 길이다.
[새우젓장수] 아! 그래요? 저는 또 송장 치러 가시는 줄 알았습죠.
[이생원] 그래, 자네는 어디를 가나?
[새우젓장수] 지난달에 준 새우젓값 받으러 가는 길입죠.
[이생원] 누구네 집으로?
[새우젓장수] 변강쇠 마누라 한테요.
[이생원] (조바심이 나서) 그 집에 초상이 났는데 새우젓값을 받을 수가 있나?
[새우젓장수] 그 집에 초상이 났는데 약값을 줄라구요? 약 잘 못 써 죽었다구 몽둥이 찝질 당하시기 알맞죠.
[이생원] 허허, 그 사람하고 얘기하다 해 저물겠네.
[새우젓장수] 그러나 저러나 동행이 생겼으니 잘 됐네요, 어서 가십시다요. (생원 할 수 없이 새우젓 장수를 앞세우고 무대를 한 바퀴 돌아 병풍 근처로 온다)
[이생원] 이리 오너라!
[옹녀] (안에서) 누구시냐고 여쭈어라---
[생원,장수] (동시에) 자바지 이생원이라 여쭈라! 한동골 새우젖장수라 여쭈어라
[옹녀] (나오면서) 어떤 사람인데 한 사람이 두 입으로 말을 한다지? (두 사람을 보고 반겨 하며) 아이구 어서들 오세요. (갑자기 애절하게) 상례 치루어 주실려구 두 분이 같이 오셨군요. 고맙기도 하시지. (앙징맞고 요염하다) 애고 애고 설운지고---
[이생원] 여보게, 저 마누라 울리지 말게! 그 송장이 뻣뻣히 서 있다니 무섭긴들 오죽하며 밉긴들 오죽하겠오? 내 얼른 치워줄터이니 진정하오. (하면서 옹녀를 감싸 안으려 한다. 이때 새우젓 장수가 병풍 쪽으로 가며)
[새우젓장수] 송장만 치우면 자네하고 부부되는 게 틀림없으렸다.
[옹녀] 하지만 송장이--- (말을 할 사이도 없이 생원이 소리를 친다)
[이생원] 네 이놈! 장유유서 내가 먼저--- (하면서 날랜 매가 꿩을 차듯 새우젓 장수를 나꾸어챈다. 서로가 내가 먼저를 연발하며 병풍 속으로 들어간다. 한참 실강이를 벌이다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잠시 후 두 사람의 머리가 병풍 밖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동시에 떨어져 굴른다
[옹녀] (기가 막혀) 애고 애고 가루 갔구나, 가루갔어. 둘이 한꺼번에 가루갔네 그려. (손가락으로 셈을 하며) 하나, 둘, 셋, 넷, 닷--- 송장이 다섯일세- 늙고 젊고 귀하고 천하고간에, 음신 품은 작자들만 몰려오니 이러다간 떼죽음에 삼남이 여인국이 되겠구나 이일을 어이 할거나, (객석에 대고) 여보시오! 신사님네, 당신들은 음심 없을테니 이리 와서 송장 좀 치워주소!
[해설자] 이 사람아, 요즘 꽁짜가 어디 있나? 대가가 있어야지---
[옹녀] 내가진 재산이라군 이 몸둥이 밖에 없으니 무엇으로 대가를 치루리까?
[해설자] 돈, 돈, 돈이면 다 돼!
[옹녀] 돈이 있어야지요.
[해설자] 송장을 치워 달라지 말고 송장 치우게 돈을 적선해 달라고 해?
[옹녀] 그래서? 돈을 안내면요?
[해설자] 굿판에서 불쌍한 인생, 저승길 잘 가라고 돈 많이 쓰면, 재수 있고 복 많이 받는다고 해봐!
(옹녀, 꽹가리를 잦혀 들고 채로 그 말을 치면서 복타렬을 다 부르면서 객석을 돈다, 이러는 동안 무대 위에는 각설이패 세 사람이 각설이 타령을 불러가며 등장)
[각설] (합창) 뚜르르 하고 돌아왔오, 각설이라 멱설이라 동설이를 짊어지고 뚤 뚤 돌아 장타령, 만경주관 경주장 삼복입고 상주장 이술 잡수 진주장 관인부의 성주장 이랴 복 채쳐 마산장, 펄쩍뛰어 노리골장 면태 옆에 대구장 순사 앞에 청동장---
(입장단 뻗정다리 춤 곰배 춤, 채머리 춤, 허리부러진 춤 등 갖가지 병신춤판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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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한다 잘도 한다 초당 짓고 한 공부냐, 실수가 없이 잘도 한다, 동삼 먹고 한 공부냐 기운차게 잘 한다. 기름 동이나 먹었는지 미끈 잘 한다, 냉수 동이나 먹었는지, 6시원 시원 잘 한다, 품파 품파 잘도 한다, 네가 그의 잘 적에 네 선생은 할말 있나, 네 선생이 누구더캬, 내가 바로 네 선생이다, 지리구 지리구 잘 한다, 떨떨거리고 잘 한다.
[각설1] 이리 목이 터져라 하고 소리하는 건 우린데 돈은 저 여자가 몽땅 거두어가니 세상에 별별 희안한 일 다 보겠네.
[각설2] (옹녀에게 소리친다) 빨리 이리와야 굿이 되지!
[옹녀] 잠깐 기다려 돈을 벌어야 장사 밑천을 삼지.
[각설3] 장사라니? 술장사 차리려고?
[옹녀] 송장 장사하려네---
[각설1] 이제 그만 올라오슈.
[옹녀] (관객에게) 금방 죽을 목숨들인데 뭐가 그리 급해서 저러지? 안그려요? (옹녀 무대로 돌아온다) 그래서 단신들도 송장 치워주려구 왔단 말이오?
[각설들] 물으나 마나 한 소리지.
[옹녀] 우리 집 낭군의 시신이 하도 허막한지라 송장 치우려 왔다던 사람 족족 까무라쳐 죽어서 지금 송장이 다섯이 되었는데 그래도 치우겠오?
[각설3] 우리들은 공동묘지에서도 자보고 상여집에서도 자본 경력이 있는지라 그걸랑은 염려없오.
[옹녀] 그럼 송장 저기 서 있으니 쓸어뜨려 염을 해 주시오!
[각설1] (변강쇄 송장을 한번보고 약간 질린다) 자, 신랑감은 셋이고 색시감은 하나인데, 누가 먼저 치우려나.
[각설2] 그야 우리들이 장유유서 빼면 뭐 남겠오? 윗성님이 먼저 하셔야죠.
[각설1] 나는 이런 일 많이 해봤으니 너 막내가 먼저 해보아라.
[각설3] 내가요?
[각설1] 이 세상 살아가려면 담력을 길러야 한다. 너부터 하거라!
[각설3] 난 그리 못하겠오. 이 세상에 나오기를 성님들이 먼저 나왔으니 나보다는 성님들이 많이 살지 않았우? 혹시나 죽는수가 있을 때 먼저 나온 사람이 먼저 가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우?
[옹녀] 다들 그만 두고 둘러 가시오. 그런 배짱으로는 송장 못치리다.
[각설2] 좋은 수가 있오. 셋이 함께 치읍시다. 삽질보다는 가래질이 힘을 쓰는 법. 성님이 가래대를 잡고 우리 둘이 잡아댕기면 간단하지 않겠오?
[각설1] 너 참 신동이구나, 그런 소견 가지구, 어찌 각설이가 됐단 말이냐? 자, 그럼 셋이서 함께 힘을 써 보자, 덩기 덩기 덩 더쿵- (각설이 가래질 춤을 추면서 병풍 뒤로 들어간다. 잠시 장단이 계속되더니 우당탕소리 요란히 들리면서 병풍 옆으로 세게의 몽뚱이가 패댕이질 쳐서 굴러 떨어진다)
[옹녀] (다시 기가 막혀) 또 당했네. 또 당했어. 이제는 별 수가 없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장례는 고사하고 황, 평에서 붸겨나듯 삼남에서도 붸겨날 판이니 집에 불을 질러 여덟 송장 함께 화장을 시킬 수밖에 도리가 없다 여보, 변서방! 불에 탄다, 원망마오! 불로 인해 화를 입었으니 불로써 다스려짐은 당연지사가 아니겠오? 애고 애고 설운지고---
[강쇠소리] 요년아! 마음을 곱게 써라 나두 내 맘대로 살자 했는데 떼 장승이 모여들어 나를 이지경 만들었으니 나도 내 동류 패를 지어서 묻 놈들 혼내줄테다. 음심 품고 송장 치러 오는 놈들은 모두 송장에 붙어 떨어지지 못하게 할 것이니 그리 알거라!
[옹녀] 아이고, 기 막혀라 세상에 저런 심통이 또 있을까? 무슨 심통이 저럴까? 아이고 기 막혀.
(소리를 빽지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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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거리
(뎁득이 우악스럽게 등장한다)
[뎁득이] 이런 제미를 할 (옹녀에게) 마누라가 낭군의 송장 치원 주면 같이 살자하는 마누라요?
[옹녀] 예, 그러하오.
[뎁득이] 그 제미를 할 송장이 어디있오?
[옹녀] 저기 있오.
[뎁득이] (한번 슬쩍 보더니) 이런--- 이놈 너 누구를 꽉 차자고 두 다리를 뻗디뎠고, 바위 같은 두 주먹은 십왕전에 둔 지키려느냐? 두 눈을 부릅뜨고 누구한테 호령하느냐? 이놈! (옹녀에게) 집에 길퀴있오?
[옹녀] 있오만, 무엇하시려고?
[뎁득이] 가져오기나 해. (옹녀 갈퀴를 갖다 준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이 갈퀴로 그 놈 눈거풀을 긁어서 덮을테니, 마누라는 저기 서서 갈퀴가 눈꺼풀에 닿거든 닿았다고 하오. (뎁득 갈퀴를 들고 엇비슥하게 송장 겉으로 다가가 송장 얼굴에 갈퀴를 대고) 닿았오?
[옹녀] 조금 올리시오.
[뎁득이] 닿았오?
[옹녀] 조금 내리시오!
[뎁득이] 닿았오?
[옹녀] 닿았오!
(뎁득이 힘을 주어 내리 긁는다는 것이 아래 눈까풀을 긁어서 눈앞이 더욱 크게 튕겨져 나올 듯 더 무섭게 보인다)
[뎁득이] (점쟎은 체) 예, 나는 제밀할 서울사는 뎁득이 김서방인데 새로 오시는 진주 독사 마종으로 경상도 황실 역에 무물려고 그리로 가는 길인데 듣자하니 일색 청춘 어떤 마누라가 험산한 가군 치상하여 주면 같이 살잔다는 말을 독사 어른이 들으시고 가보라 해서 왔오.
[옹녀] 서울서 사시고 신수 그리 건장한데 그깐 송장 겁을 내어 버려두고 가시다니 내 얼굴이 못 생겨서 당신 눈에 안 드시오?
[뎁득이] 미인 보면 정 있다가 송장 보면 정 떨어지오.
[옹녀] 내 지금에사 말이지만 송장 치려 왔던 이는 사람마다 기절하여 송장이 여덟이 됐는데, 송장보고도 죽지 않은 이는 당신 한 사람 뿐이오. 그 좋은 풍신으로 송장에게 붸긴다면 사나이라 할 수 있오? 불쌍한 이내 신세 버리고 가옵시면 고통 자진할 것이니 날 살리시오. 날 사리시오. 한양낭군 날 살리시오. (뎁득이의 허리츰을 잡고 늘어지며) 만일 그냥 가려하면 날 죽이고 가오!
[뎁득이]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죽어도 내가 죽지 자네 죽게 안할테니 울지마라 울지마.
[옹녀] (반가워하며) 정말 안 가시지요?
[뎁득이] 못 간다, 못 가! 헌데 자네 집에 떡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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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녀] 떡메는 없고 절구공이는 있오.
[뎁득이] 그것 가져 오! (옹녀, 절구공이를 가져온다) 힘으로만 싸울것이 아니라 지혜를 써서 싸울지어다. (때를 맞춰 풍각쟁이 자객, 해금, 북잽이, 검무주는 아이, 투우장이 등이 들이 닥친다) 어랍쇼! 자네들, 마침 잘 오는군 구색이 잘 맞는다. 잔치집인 줄 알고 찾아온 모양인데 아무려나 풍악이나 울리게---
[옹녀] 그렇게 장담하다 죽은 사람 몇인 줄이나 알아요? 손님네들 송장 먼저 보게 되면 아마 기절 초풍할 것이니 저 송장이 멋을 아는 송장이라 이쯤에 늘어앉아 각색 풍류나 하여 주면 감동하여 묶어내기 쉬울지 모르니 그리하여 주겠오?
[가객] 그 말 장히 좋소. 그리 합시다. (풍악장이들 판을 벌리고 앉아 연주한다. 가객은 초한가를 부른다. 뎁득이 절구공이를 들고 마치 장비가 삼호창을 쓰듯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송장과 계루다가 송장 옆으로 가서 절구 공기로 그 얼굴을 사정안하고 쥐어지르니 뇌성 같은 소리를 내며 송장이 쓰러진다)
[뎁득이] 제깐 놈이 나를 당할 수 있나? 자 송장을 쓸어 뜨렸으니 둘둘 말아 저 냅시다. 어서 따라 와요! (퇴장)
[옹녀] 정말 명인 들이셔. 송장이 감동을 하셨나 봐요. 자 어서 들어가서 송장을 치워주셔요! (애교를 부리며 뎁득이 들어간 쪽으로 퇴장)
[북] 허허 이거 닭 쫓던 개 울 쳐다보기 되는 것 아닐까?
[퉁수] 미인 하나에 사내가 여섯이라? 삯이나 받고 술 밥 고기 잘 얻어먹는 수가 제일이겠군---
[가객] 저 미인보고 침 안 흘리는 놈은 사내가 아니지 자 어서들 들어가세 (이때 사또의 목소리 들린다)
[가객] 너 죽어도 이 길이오, 나 죽어도 이 길이라. 북망산천 돌아 들제, 어욱새, 더욱새, 덥갈나무 가랑잎에, 잔 빗방울, 큰 빗방울, 소소리 바람 뒤섞이어, 으르렁 시르렁 슬피 불제, 어느 벗님 찾아오리. 인생사 허사로다.
[일동] 후렴---
[가객] 지고 가는 여덟분이 모두 다 호걸이오. 기주 탐색 풍류 남안데. 어이 황천길 돌아가느냐.
[일동] 후렴--- (객석을 도는 동안 옹녀는 괭가리를 들고 건립을 한다.)
[옹녀] 애고 애고 걸입이고, 애고 애고 걸입이오.
(객석이 넓은 경우에는 일반적인 향두가를 이어서 부르면서 객석을 돌아, 다시 무대로 돌아와 덧마루 앞에까지 이른다.)
[사또] 여봐라, 어깨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니, 잠깐 쉬어 가자.
[페이지] 022
[일동] 그리합시다. (모두 적당한 곳에 송장 짐을 내려놓고 어깨를 빼려하니 그만 송장과 상두꾼과 땅이 함께 딱 붙어 떨어지지 않게 된다.)
[사또] (짐을 벗으려 한다.) 그런데 묘자리는 보아 두었는가?
[봉사] 예--- 명당 자리를 하나 봐 둔 것이 있읍죠.
[북잽이] 장님이 눈 뜬 사람 코비어 가겠는걸?
(낄낄거리고 웃는다.)
[가객] 눈 멀겋게 뜨고 못 보는 장님병이 돈다지 않아?
(이렇게 담소하며 송장짐을 내려놓고 어깨를 빼려하니 요지부동이다. 한사람씩 겁을 먹기 시작하고 안간힘을 써 본다.)
[해금] 아이고 이게 웬 일인가, 그 사이 송장이 천근 만근 되었네--- ?
[사또] 뎁득아! 얼른 와서 이것 좀 벗기어라.
[뎁득이] 나도 꼼짝 달짝 못하는데 어찌 그쪽으로 간단 말이요?
(일동 송장에게서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써 보다 꼼짝 달삭도 않는다.)
[풍각쟁이들] (합장) 애고 애고 어찌할꼬. 천지개벽한 이후에 이런 괴변 또 있을까? 한번 안은 후에 꼼짝할 수 없으니, 귀신의 조화인가, 도깨비의 장난인가, 오라는데 없어도 갈 집이 백집인데, 이 신세를 어이할꼬? 애고 애고 큰일 났네--- .
[사또] 뎁득아! 이놈! 이 모두 네 탓이다.
[뎁득이] 어찌 제 탓이라 하시옵니까?
[사또] 네 놈이 송장을 잘못 다루어 이리 된게 아니고 무엇이냐? 아문에선 도임 잔치 차려 놓고 학수고대 기다릴텐데,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냐?
[뎁득이] 여보시오, 저 여인네! 이게 다 뉘 탓이오? 죄는 내가 지었지만 벼락은 너 맞아라 하고 굿만 보고 서 있으니 그런 인심 있는가? 주인 송장, 손님 송장, 여인 말은 들을테니 빌기나 하여보소.
[옹녀] (빌면서) 빌어 봅시다. 여보소, 변낭군님 이건 또 웬일이오? 험악하게 죽은 송장 방안에서 썩을 것을 여덟 사람 공덕으로 염습하여 지고 왔으니 가만히 있으면은 명당을 깊이 파고 안장을 한 연후에 수절시묘 하자 했는데 이러한 대로변에서 이 트집을 어이할꼬? 날이 점점 저물어가니 어서 급히 떨어지소---
[뎁득이] (화가 나서) 내가 여인의 치마귀나 만졌으면 개 아들이오. 변서방!
[가객] 난 손 끝이라도 만져 봤으면 쇠아들이오 변서방.
[옹녀] 중, 촐보, 새우젓, 의원, 각설님네, 다각기 맛에 겨워 이 지경이 된것을 심술을 부린들 소용있소? 하관시가 늦어가니 어서 급히 떨어지소!
[봉사] 장사살을 맞은 것이니, 살풀이를 해야 하네! 잽이는 장단을 치고 저 마누라 춤을 추게!
(잽이 시나위를 연주하면 악기가 없는 사람을 구음으로 누벼주고 옹녀 살풀이 춤을 춘다.) 살풀이가 끝난뒤 다시 일어서 보려 하지만 떨어지지 않는다.)
[가객] 붙었구나. 붙었구나. 꼼짝없이 붙었구나. 뎁득이도 붙었고, 사또님도 붙었네. 이 오라질 강쇠 놈아! 너도 한세상 살기를 네 맘대로 살자하고, 천하잡놈질 다 하고서 네 무슨 원한 있어 우리를 묶는단 말이냐? 네 놈이 장승을 빼어다가 패 땔때 우리하고 상논했냐? 묻긴들 했단 말이냐? 풍객쟁이 40년에 이런 변이 웬 말이냐? 아이고, 가슴이야---
[뎁득이] 여보게, 저 마누라! 배고파 살 수 없네. 동네로 내려가서 밥이나 얻어 오소.
[사또] 여보게, 저 마누라! 동네에 내려가거든 짚이나 둬 못 얻어 가지고 오오.
[옹녀] 짚은 무엇하게요?
[사또] 이 자리에 앉아서 몇 해가 저물지 모르니, 비오면 상투 덮게 주저리나 틀을려고---
[봉사] 여보게, 저 마누라! 동네에 내려가거든 무당 하나 급히 불러오오!
[옹녀] 무당은 무엇하게?
[봉사] 이것이 원혼들이라, 삼현을 걸고 넋두리를 잘 하면은 귀신이 감동하여 뚝 떨어질 것이네.
("네 저놈들, 남의 참외밭에 웅크리고 앉은 놈들 웬 놈들이냐?" 하는 옴생원의 소리 멀리서 들린다.)
[뎁득이] 이거, 야단났구나. 하필 앉은자리가 참외밭 둔덕이니, 도둑놈으로 몰리기 십상일세. 무슨 수가 없을까? 이것들아! 무슨 묘안이 없느냐 말이야?
[해설자] 좋은 수가 있네.
[일동] 뭔가?
[해설자] 보부상 차림을 하고 담배장수라고 해!
[뎁득이] 그것 좋군. 모두 건을 벗고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
(모두 명령대로 한다.)
[사또] 저놈이 이젠 함부로 반말 지껄이라! 네 이놈! 나중에 보자. (투덜대면서 수건을 맨다. 옴생원 나막신에 담배대 쥐고 허둥대며 나온다.)
[옴생원] 네 이놈들! 웬 놈들이 남의 참외를 따 쳐 먹고 있느냐?
[뎁득이] 우리는 담배짐 지고 전주장으로 가는 담배장수요.
[옴생원] 그래? 담배장수야? 난 또 참외설이하는 놈들이라고? 그 담배 맛 좋으냐?
[뎁득이] 십상 좋은 상관초요.
[옴생원] 한 대 피워 맛 좀 보고 좋으면 내가 사지.
[뎁득이] 와서 떼어 잡수시오.
(옴생원 점잖은 양반 걸음으로 뎁득이에게 걸어가 거적 속에 손을 쑥 넣는다.)
[옴생원] 에게? 이게 웬 일이냐?
[뎁득이] 어찌 되시었오?
[옴생원] 무엇이 뭉클한 것이 내 손을 딱 쥐고 아니 놓는다.
[일동] (손벽치며) 옳지 붙었구나?
[옴생원] 붙다니? 양반한테 함부로 그런 쌍말을 하느냐 (호령하며) 이놈 썩 놓거라!
[뎁득이] 아무리 호통을 쳐도 소용없오. 그것이 송장 짐이오. 헤헤---
[옴생원] 이놈들아! 아무리 무식이기로서니 송장을 참외밭 머리에 놓았느냐?
[뎁득이] 날이 어둑어둑한데 외밭인지 콩밭인지 아는 제에밀헐놈이 있소?
[옴생원] (기세가 꺽이며) 아무튼지 손이나 떼어 다오.
[뎁득이] 오비도 삼척이오.
[옴생원] 그게 무슨 말이냐? 애비가 삼촌이라니?
[뎁득이] 그게 아니고, 우리 코도 석자나 빠졌단 말이오.
[가객] 이것이 바로 사생비생 사사비사의 지경일세.
[옴생원] 그건 또 무슨 말이냐?
[가객] 산것 같으나 살아있지 않고, 즉은 듯 하나 죽지 않았단 말이오.
[옴생원] 그것 참참 한심한 일이로고---
[사또] 동병상련(同病相憐) 이오
[옴생원] 동편에 쌍년이라니?
[사또] 같은 신세니 가엾게 여기라는 뜻이다.
[가객] 아가사창이오.
[옴생원] 아가사창이라니?
[가객] 내가 할말 사돈이 한단 말이오.
[옴생원] 그러하면 너희들도 모두 접했단 말이냐?
[뎁득이] 어느 개아들 놈이 송장하고 접을 붙는단 말이오?
[옴생원] 그런 접이 아니라 철컥 했느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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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뎁득이] 곤장 틀에 묶이듯 딱 접했소.
[옴생원] 송장에 사람 붙는다는 말 금시초문이니 내력이나 상세히 말하여라.
[뎁득이] 산중에 여인하나 낭군송장 치워주면 같이 살아준다기에 오뉴월 똥파리 끼듯 모여들었다가 줄초상이 나서, 송장이 여덟이 되었고, 그 뒤에 모인 풍각쟁이 파리, 봉사 파리, 사또 파리, 뎁득이 파리, 여덟 마리가 하나씩 지고 가다 이 지경이 되었오이다. 이제 속이 후련하오?
[옴생원] 그것 참 동편에 쌍년이로고.
[사또] 동병상련이라니까.
[옴생원] 당신이 사또 파리요.
[사또] 파리가 아니고 사또다 이놈아.
[옴생원] 수인사 합시다. 나는 옴부틀이라는 선비요.
[뎁득이] 옴붙을? 이름 한번 더럽군 그래. 이 처지에 예의범절 갖추게 됐어? 우라질 놈들아, 궁리들이나 해봐!
[옴생원] 좋은 수가 있네. 기소불욕 물시어인이라. 내가 바라지 않는 일은 남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으되, 궁무소불위라, 궁할 때 못할 짓이 어디 있소?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는 대로 후려 들여 무수히 붙여 놓으면 소일도 될 것이오, 혹 뗄 궁리도 날 것 아니겠소?
[뎁득이] 그것 가히 선비 어른다운 심술이로소이다.
[옴생원] (껄껄대며) 마침 악공들도 있으니 이 자리에 굿판을 벌려, 사람들을 모아보세.
[뎁득이] 좋은 일엔 뜻이 안 맞아도 나쁜 짓에는 뜻이 잘 맞는 법이렸다. 저어기 사당패가 오네--- 쳐라---
(가객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진육자배기 또는 등가타령을 돌림노래로 부르며 논다. 이때 사당패들이 왁자지껄하며 몰려온다.)
[엿장수] (신이 나서 돌아다니며) 옛소, 엿 먹으시오. 옛다 엿 먹어라. 너두 먹고 철커덕 붙고 너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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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먹고 철커덕 붙어라. 엿 먹어라, 엿 먹어라. (사람들 몸이 안 떨어진다고 점점 아우성이다.) 못 다 팔고 집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땡수 만났구나. 샌님 엿 값 주십시오.
[옴생원] 모두 얼만가?
[엿장수] 모두 닷냥 어치올시다.
[옴생원] (염낭에 손을 넣으며) 이리로 와! (엿장수 다가간다.) 조금--- (한발자국 더 간다.) 조금 더--- (또 한 발자국. 옴생원 엿장수의 손을 잡고 돈을 쥐어준다.) 옛다, 먹어라!
[엿장수] 고맙습니다. 그럼 안녕히들 계십시오. (발을 움직이려다) 에게? 이게 웬 일인고? 샌님 이 손놓으세요! 왜 이리 잡고 놓질 않으시는 거예요?
[옴생원] 붙었네.
[엿장수] 붙다니요?
[뎁득이]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송장에 붙었단 말이다. (엿장수와 사당들 겁을 먹고 안절 부절)
[옴생원] 이제 소리 쳐도 쓸데없고 울어도 할 수 없다. 다 같은 처지이니, 떨어질 궁리나 하여 보자.
[엿장수] 엿 값으로 받은 돈 모두 드릴테니, 나 좀 떼어 주시오. 오늘이 안 사람 해산날인데 이 지경이 되었으니 이 일을 어쩌란 말이오? 이런 옴 붙을 놈들 같으리--- 아이고---
[사또] 이것이 모두 요망한 계집 탓어라. 제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런 일없을 것을. 그 계집이 조선의 사내 씨를 말릴 양으로 태어난 듯하니 그년을 저 강쇠한테로 보내야겠다.
[뎁득이] 종살이가 어떤 것인지 안해본 놈은 모르고, 옥중고생 어떤 것인지 안해본 놈은 모른다. 두 발로 펄펄 갈데 안갈데 다니는 놈 황소 코뚜레 맛이 어떤 것인지 알리 없구나.
열한째거리
(옹녀가 무당「해설자」을 데리고 급히 들어온다.)
[옹녀] 아니 잠깐 사이에 사람 나무에 꽃이 피었군요. 여보소 박사님 어서 넋두리를 하시구려.
[해설자] 에라 만수, 저라 만수. 넋이야 넋이로다. 백양청산 넋이로다. 옛사람 누구 누구, 만고원혼 되었는고. 만승천자 삼공육경 기구로도 할수 없고, 천석노적 만금부자 값을 주면 면하겠나. 열대왕림 부리는 사자, 일직 사자 월직 사자, 금강야우 강림도령, 이생망제 잡아갈제 그 누구라 거역을 할까? 허나 여기 있는 여덟 목숨, 비명에 죽었으니 어느 대왕이 불러주며 어느 사자가 데려 갈까, 어라 만수 저라 대신이야. 하늘에 맨데 없고 지상에 부칠 곳 없이 부초같이 떠돌다가 원통히 죽은 혼을 무지한 인생들이 경대할 줄 모르고서 손으로 만져 보고 걸터앉기 쾌심쿠나. 어라 만수 저라 대신--- 풍각한량 다섯분은 오입맛이 한통속, 눈치도 빠를테고 경계도 알 터인데 동류 송장 짊어지고 풍류놀이가 웬 말이며, 권사또 자넬랑은 한 고을의 목사요, 옴생원 자넬랑은 식자 있는 선비로서 송장 대접 그리 하는가? 변장군, 대사, 졸보, 걸사님들 그리고 의원, 새우젓 장수, 여덟 혼령 비옵네다. 무지한 저 인생들 허물도 과도 말고 갖은 배반 진사면에 계대춤에 놀고 가소. 얼 쑤--- (잦은 굿거리 연주되면 해설자 무대를 돌며 부채와 방울로 등장 인물들을 마구 때린다. 그러자 맞은 사람은 하나씩 떨어지는데, 일어서긴 했으나 송장짐은 안 떨어진다. 떨어진 사람들 안도의 숨을 쉬며 멀찍이 서서 춤을 구경한다. 해설자 한동안 춤을 추다가 장단을 멈추게 한다.)
[해설] 뎁득아, 뎁득아! (부르면서 뎁득이 쪽으로 간다.)
[뎁득이] (우악스럽게) 왜 그래 제미를 헐---
[해설] (강쇠의 혼이 실린 듯) 어이구 불쌍한 뎁득아---
[뎁득이] 내가 왜 불쌍해?
[해설] 네 녀석이 원망스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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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병을 얻을 적에 장승떼가 몰려들어 묶고 치고 병을 발로 홀로 당키 어렵더라. 그 원수 갚자하고 송장 친구 모으쟀더니 네 놈 손에 자빠져서 그 꿈 또한 헛되었다. 네 놈의 뚝심으로 내 원수 갚아줄까 행여나 바랬더니 남의 심부름한 한단 말이냐? 괬심함 놈. 여덟 송장 억울해서 놓아주지 않을테다.
[뎁득이] (분이 나서) 이런 육시를 할 놈. 안 떨어지면 갈아 버리지.
[해설자] 하지만 염려마라. 내가 뉘도 없고 살도 없고, 원도 없고 탈도 없게 빌어줄 것이니 떨어진 다음에 장사나 잘 치르도록 하여라! 변서방 자네는 협기있는 남자로서 술먹기에 접장이요. 화방에 패두로서 간데 마다 이름 있고 사람마다 무서워했지. 그 기운 혈기로서 좋은 일 해봤느냐? 죽어서도 미인을 못 잊으니 모질고 질기구나. 주동지 자네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선공부 경문 외어 계행을 닦았으면, 흰 구름 푸른 뫼에 간데마다 도방이요, 비단가사 연화대에 열반하면 부처됐지. 잠시 음욕 못 참아서 가루지기 송장이 웬말. 졸첨지 자네 분수, 고사 동양 전업이라. 얼굴에는 탈을 쓰고 목에는 장고 메고 돈 푼 쌀 한줌 얻자하고 이집 저집 다닐 적에 따른 것이 아이들, 짖는 것이 개소리라. 타고난 복 그러한데 요랑 없이 못다 살고 남의 송장에 붙음송장. 소금장수 방서방과 천하명의 이생원아! 무엇이 그리 급해 싸우다가 쌍송장. 각성받이 걸첨지들 주막거리 장판이며 큰 동네 파시평에 동무지어 다니면서 타령으로 먹고사니 눈치도 빤할텐데 송장을 쳐낸데도 계집은 하나, 누구 좋은 꼴 뵈자고 한꺼번에 달려들어 한날 한시 떼 송장. 여덟 송장 각기 설움 다 원통한 송장이라. 살아있을 제 집이 없고, 죽은 후에 자식 없어 높은 뫼 깊은 구렁. 이리 저리 구는 뼈를 묻어 줄이 뉘있으며, 슬픈 바람 지나갈 때, 애고 애고 절하면서 곡해 줄이 뉘 있겠나. 심사 부려 쓸데 있나, 이생 원통 다 버리고, 지부명왕 찾아가서 절절히 원정하여 세월이 태평할 제 부귀가에 다시 생겨, 평생행락 하게 되면 그 아니 좋겠는가? 제발 덕분 떨어져주면 청산명당 터를 잡아 푸짐하게 장례함세. (송장들이 우수수 떨어지는데 강쇠 송장만은 안 떨어진다.)
[해설]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그 송장은 지독한 송장이로구나.
[뎁득이] 이놈이야말로 옴 붙을 놈이로구나. 제 놈이 안 떨어지면 가리질로 갈아버릴 수밖에. (송장을 진체 덧마루쪽으로 가 등을 벽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한다.) 어기여라 가리질, 어기여라 가리질. 10년 동안 칼은 갈던 협객의 가리질.
[일동] 어기여라, 가리질.
[뎁득이] 춘풍에 저 나비야, 향내만 찾아가다 거미줄에 걸릴 줄을 왜 몰랐으며 양지에 저 장끼야 까뚜리소리 찾다가 포수울에 몰렸구나.
[일동] 어기여라, 가리질.
[옹녀] (보다 못하여) 여보시오, 여러분네! 눈뜨고 못 보겠소. 모질어도 내 낭군, 험악해도 내 낭군. 마지막으로 원 없게 내가 한번 빌어 보리라. 여보소 변낭군아, 이내 말 좀 들어보소. 천고에 의기 남자. 원통히 죽은 혼이 맘 아는 벗 못 만나면 위로할 이 뉘 있으리. 원통한 낭군마음 내 모르지 않소이다. 그렇다고 이 씨름 언제까지 하려하오? 어서 속히 떨어지면 청산에 고이 모셔 년년이 기일 오면 내가 봉사 할 터이니 제발 덕분 떨어지오. 만일 이렇게 빌어도 안 떨어지면 수절은 고사하고 나도 자진하여 당신이 빼어다 땐 그 장승 자리에 서서 장승의 한이나 풀어 주겠오!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이때 강쇠 송장이 덜커덩 떨어진다.)
[뎁득이] 이거 몇 번 죽다 살아났구나.
[해설] 자 이제 정성이 통하여 송장이 떨어졌으니 불상한 고혼들 남은 한을 말끔히 씻어 주고 여기 모이신 여러분네 액운도 막아주고 복도 빌어 줄겸 뭇장사나 걸게 치룹시다.
(일동 거적말이를 무대 가운데 모아 놓고 둥글게 서서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며 달구지 노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