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온 여인 · 1
전선자 ( 아이리스)
그녀가 친구 둘과 함께 무주를 찾은 것은 지난 10월 27일, 금요일 정오경이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아침 첫차를 타면 무주에 그렇게 도착 된다.
물설고 낯설은 무주를 처음 오면서 얼마나 조바심 낫겠는가? 짐작이 갔다.
2004년도에 우리나라를 다녀간 뒤 19년 만에 찾아온 땅, 미국 뉴욕에서 50여 년간 살면서 뉴요커가 다 된 줄 알았더니 그들은 아직도 된장 시래기국에 새우젓갈 들어간 것절이를 즐기는 토종 전라도 사람들이었다.
점심을 한방오리 백숙으로 잘 먹고, 오후에는 적상산 오색단풍 관광에 들어갔다.
올라가는 길이 햇빛을 받아 가을 단풍잎들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모두 환호했고 탄성을 질렀다. 가로수로는 노란 은행잎이 단연 눈에 띄었고 사이사이 빨간 단풍과의 조화가 아름다워서였다. 상부댐 주변 주차장의 단풍 색깔은 얼마나 다양하게 곱고 짙고, 여리게 밝던지 말을 잃어버렸다. 최고의 가을풍경이다. 양수발전소와 이조실록 보관소와 상부댐을 안내했고, 안국사에 가서는 수월심의 안내로 스님이 손수 내려주신 귀한 발효차를 정중히 마시며 불교에 대한 간단한 강론을 들을 기회를 가졌다. 어렸을 적 할머니 손에 이끌려 절에 간 적은 있으나 그들은 지금 교회밖에 모른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조금은 무엇인가 알아차린 듯 고개도 끄덕이면서 스님의 기본적 교리의 일부분, 탐진치(貪瞋痴) 삼독심을 버리라는 말씀을 경청했다. 안국사 뜰의 단풍이 어찌나 곱던지 ‘우리의 마지막 생도 저리 고울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면서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적상산을 내려오는 길에 보니 천일폭포에서 물이 많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하늘 아래 하나밖에 없는 폭포라 하여 븥여진 이름 천일폭포! 덕유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주변 정리를 잘해주어 멋진 풍경을 보았다. 전에는 주변에 나무가 많이 자라 감추어져 폭포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내려오는 길에 훤히 보이니 그 또한 관광의 일부여서 좋았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우리의 심신(心身)도 물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려오는 길에 머루와인 동굴의 신비함도 마주했다.
예약해둔 무주 덕유산리조트 숙소로 가서 여장을 풀었다. 그 친구는 몸집은 작아도 손도 크고 스케일이 대단히 컸다. 뉴욕에 살면서 오는 이, 가는 이들을 많이 도우며 살았다고. 고향은 익산군 황등면의 100마지기 이상 대농(大農)에서 6남매(딸 셋, 아들 셋)의 맏이로 태어나 남성여고를 졸업하고 뜻이 있어 개정간호학교(현재 군산간호대학교)를 나와 미국 뉴욕으로 이민 간 인재(人才)이다, 아버지는 양조장도 하시고 60년대를 주름 잡았던 부농(富農)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그 뒤에는 현명하게 내조를 잘하신 어머니가 계셔서 자기네가 잘살 수 있었다고. 먼저 이민 간 후 남동생 셋과 어머니를 미국으로 불러들여 한 동생은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급 연구원으로 20여 년 있으면서 연줄연줄 우리나라 인재들을 많이 안내한 바 있고 유능한 삶을 살고 있다고. 96세의 노모가 미국에 살고 계시는데 건강하시다고 즐겁게 얘기했다. 성장기 집안 환경이 구애 없이 살 수 있었다는 것, 또 맏이로 살면서 동생들을 잘 돌보고 거두며 보살폈다는 것, 이런 것들이 그가 손이 크게 된 이유였다.
1976년도 내 동생이 미국 이리노이주 주립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코스를 밟고 있을 때 휴가를 얻어 뉴욕에 갈 일이 있어 갔다가 내 친구인 정희 누나를 찾아갔었더란다. 청바지가 한창 유행할 때 젊은 이 입고 있던 옷이 얼마나 누추했으면 청바지를 사서 키에 맞춰 단을 잘라 꿰매 줘서 잘 입었노라고 두고두고 얘기했었다. 이번에 무주에 왔다고 했더니 동생이 꼭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해서 하루 전주에 세 분 모셔다가 전주 시내 투어를 자세히 잘 시켜드리고 미국에서는 먹을 수 없는 갈치 정식을 점심에, 저녁에는 쏘가리 매운탕을 사 드렸다고. 흐뭇해하는 정희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정말 잘했다. 동생아! 고맙다’고 나도 칭찬해 주었다.
이 가을만큼 정이 깊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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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의 지정된 제목을 <고백>으로 설정하고 한 주를 시작했는데 쓰지 않은 분들이 여럿이어서 10-5까지 시간을 주었는데도 <고백>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였습니다. 고백이라면 보통, 은밀한 얘기를 털어놓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은밀한 이야기 중에는 함부로 털어놓을 수 없는, 절대로 털어놓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네게 고백할 말이 있어”라고 하면 비밀처럼 끌어안고 있다가 마음먹고(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풀어놓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백이란 반드시 비밀스러운 내용만은 아닙니다. 가슴속에 깃들인 진실한 말을 표현하면 그게 바로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하는 말도 고백이고 오래 참았던 말을 하는 것도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맺힌 심경을 고백하고 신부님이나 목사님이나 스님 앞에서 어쩐지 떳떳하지 않은 듯한 내 속마음을 있는 대로 내보이기도 하는 것만이 고백은 아닙니다.
털어놓으려고 작심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가까이 해온 친구와 진지하게 대화하다 보면 그와의 하루하루의 대화가 모두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오래 사귄 친구, 흉허물없이 가까운 사이에서는 고백한다는 생각도 없이 마음을 나누듯이 정겨운 말들이 내왕합니다.
그러므로 친구와 주고 받는 편지는 모두 고백입니다. 문학작품은 고백일 때 깊어집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젊은 베르테르의 고백서입니다. 작가들의 작품은 그들의 내면 의식을 내보이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작가의 작품을 여러 권 읽어나가면 그와 친해지기 마련입니다. 나는 한때 독서를 그런 방식으로 했습니다. 누가 그에 대해 말하면 전문가처럼 답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되더군요.
미국에서 살던 사람이 잠시 고국을 방문하였는데 그가 친구와 함께 무주에 갔었군요. 내용을 읽으면서 반드시 무주에 가야 할 사람이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그가 한국방문 일정을 짤 때 무주 방문은 최상단에 적혀 있었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도 뉴욕에서 살다가 무주에 갔으니 얼마나 정겨웠을까요. 국토가 아무리 넓고 자연이 무궁무궁해도 무주를 당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무주에 살아도 아이리스처럼 손님 대접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마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손님을 대접한다는 명분으로 무주가 품고 있는 구석구석의 진면목을 충분히 우려내듯이 복습하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러면서 갈수록 무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도 깊어질 것입니다. 아이리스에게 전화를 하면 무주군청에서 근무하는 관광과 직원의 전화에서나 들려올 법한 멘트가 시작됩니다. 그 멘트를 들을 때마다 향토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진짜 고백은 아이리스가 한 것이 아니라 윗글에 나오는 미국의 친구가 했구나 느꼈습니다.
문장의 처음을 미국에서 온 친구라고 하지 말고 “미국에 사는 정희가 무주에 왔다.”로 이름을 밝히면서 시작하는 것이 더 정겹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문장을 계속하면 숱한 친구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이름을 밝히면 특별한 친구가 됩니다. 정희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이야기, 정희의 입으로 털어놓은 어린 시절의 회고담 정희의 추억이 담긴 고백이 특별합니다.
특히 이글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1976년도 내 동생이 미국 이리노이주 주립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코스를 밟고 있을 때 휴가를 얻어 뉴욕에 갈 일이 있어 갔다가 내 친구인 정희 누나를 찾아갔었더란다.” 이후의 내용입니다. 내 동생이 휴가를 얻어 뉴욕에 갈 일이 있어서 갔다가 찾아간 정희 누나니까 매우 가까운 친구입니다. 내 친구도 쉽지 않은데 누나의 친구를 찾아갈 정도면 그렇습니다. 청바지가 유행할 때 사서 줄여서 입혀준 친구, 그 누나의 친구에게 고국의 미각이 듬뿍 담긴 갈치조림 정식에 쏘가리 매운탕을 궁리를 깊이 하여 대접하고 전주 시내 관광을 맡아서 해드렸습니다. 정희 누나와 함께 온 친구들까지 잘 대접해 드렸으니 좋은 동생입니다. 잘했네요.
아이리스는 무주에 살면서 무주 방문자들 대접한 내용만 모아놓아도 책 한 권은 넘칠 것입니다.
친구 정희에게 구경시킨 무주의 구석구석이 우리가 두 번이나 갔을 때 구경한 곳과는 전혀 다른 지명이네요. 무주는 넓지도 않은데 아직도 그렇게 숨겨놓은 듯한 좋은 곳들이 많군요. 무주 구경 잘하면서 전라북도 황등의 양조장집 딸 정희의 얘기 잘 들었습니다.
첫댓글 선생님!
논평하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고백도 아닌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했어요.
올 가을, 무주 적상산 단풍이 하도나 예뻐서 그 친구들 휭재했다고 했어요.
시기적으로 완전 피크 타임에 와서 구경 잘 할 수 있었던 것이 복이 많은 여인네라고 할만 했지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아픈 곳, 다친곳, 빠른 쾌유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