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가져가라) / 김광욱
내가 쓴 이 서툰 시를
가져가라.
말도 되지 않는 엉터리 연애 편지 같은
이 시를 가져가라.
가져갈 수 없거든
그냥 뒷골목 하수구에 버려 다오.
아무도 보지 않게
아무도 읽지 않게.
어느 땐가 생일 선물로
당신이 내게 주었던
빛바랜 시집과 성경책을 가져가라.
이제는 필오엾어진 우리의 시간에
필요없어진 모든 흔적과
비애(悲哀)의 조각과
삶의 어느 페이지에 남아 있을지 모를
환희의 녹물까지 벗겨 가라.
추해서 가져가기 싫거든
내 인생의 몫으로 간직해 두리라.
모든 것이 시들하고
가증스러워져서
그날의 복음 같은 생명의 양식들조차
더 이상 반추(反芻)하기 싫구나.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황혼의 불 켜진
초가집이 청춘의 희망의 전부였던
옛고향에 돌아가고픈 때
당신은 이 유치한 향수까지 에니메이션 같다고
비웃어도 좋다.
당신이 느낌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와 함께 했던 기억을
깡그리 도시의 냄새나는 쓰레기 매립지에
묻어 줬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우리 존재를 기억하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