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보행이 인생 최대 목표라고 한다. 걷기 운동 전도사인 친구가 한 말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두 발로 걷고 다니지 않는가. 주위 친구들이 뜨악해 하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라고 하면,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사람이 나이 들어서도 걸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고 싶은 데 갈 수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날 수 있고, 식당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을 수 있는데, 걷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이 실현 불가능한 망상이라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앉고, 일어서고, 걸음마를 시작하면 그 부모는 세상에서 더없는 기적을 본 것처럼 환호한다. 마치 다른 집 아이는 하지 못하는 것인데 자기 아이만 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렇게 성장하던 인간도 나이가 들면 왕성하던 체력도 약해지고 정신적으로도 활력이 줄어들어 간다.
나도 얼마 전부터 허리와 무릎의 통증 때문에 걷는 것이 부담으로 여겨진다. 한때는 테니스 경기도 거의 매일 하고. 설악산 대청봉, 한라산 백록담, 지리산 천황봉 등 유명산은 물론이고 근처의 산은 한 달에 두세 번 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산에 오르는 것 대신에 아파트 창문가에서 멀리 보이는 앞산을 눈으로만 올라간다.
병원의 진료를 받아보니 노화의 진행이란다. 인간은 골반이 발달하고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뇌 용량이 커지게 되었다. 또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언어의 발달, 생산력의 증대로 다른 동물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예술과 종교, 문화와 통상, 각종 기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반면에 잃은 것도 많다. 인간의 신체가 성장할 때까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성장이 멈춘 후에는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다. 계속 허리를 세워 중력을 거스르게 되면서 걸을 때마다 수없이 반복되는 척추의 뒤틀림으로 키도 줄고 다양한 질병이 생긴다. 내 경우에도 키가 몇 센티미터 줄어들었다. 그중 대표적인 질병이 허리 통증으로 노인 대부분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생하는 형편이란다.
담당 의사는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니 걷기 운동을 하되 무리하지 말고 꾸준히 하라는 운동처방을 주었다. 무릎과 허리가 아파서 걷기 힘들다고 하는데 걸으라고 해서 의아해하고 있는데 설명은 간단하다. 이이제이以夷制夷 혹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원리와 같이 계속 사용하며 강화시키라는 것이다.
의기소침해 있던 어느 날이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산책로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사는 아파트 옆의 야산으로 통하는 산책로였다. 본래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오솔길이었는데 어느새 차량 교행도 가능한 넓이로 확장되었다. 다행인 것은 포장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두었다. 지금은 구석구석 포장이 되어 있는 탓에 흙을 그대로 밟을 수 있는 길이 너무 귀하게 여겨졌다.
얼마 후, 그 길에 시詩를 쓴 게시판들이 길게 세워졌다. 또 조금 지나니 길바닥에 야자수 껍질 매트가 깔려지고, 입구에는 몇 가지 운동기구도 설치되었다. 마지막으로 신발의 먼지를 털 수 있는 압축공기 분사기가 설치되었다. 걷기 운동을 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 되었다.
산책로를 보고 나 또한 직립보행을 인생 최대 목표로 삼게 되었다. 아파트 바로 앞의 정원에 있는 나무들이 철 따라 옷을 갈아입는 것을 감상하며 때로는 숲속으로 들어가 거닐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이렇게 즐길 수 있는 우리 집 정원이 삼만 평이나 된다고 나는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오솔길은 유명 시인의 작품을 걸어 놓은 문학의 길이기도 하지만 군데군데 앉아서 쉴 수 있는 정자도 있다. 최근에는 카페도 하나 생겼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이것을 내가 직접 관리하지 않아도 되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시절 따라 나무에 소독하고 가지치고 오솔길 보수도 하는, 이 모든 작업을 국가에서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정원은 바로 국립박물관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지방단체가 이렇게 많은 예산을 들여서 주민의 건강을 위해 잘 조성해 놓은 환경을 잘 이용하지 않으면 분명히 범죄행위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렇게 잘 갖추어진 주민 편의 시설을 이용하여 열심히 걷고 있다.
그런데 느낌이 예전 같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계절에 대한 감각도 없어지고 사물을 보는 눈도 특별한 느낌이 없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균형감각도 많이 둔해졌다. 작가 박완서 선생이 한 말과 같이 ‘나이 들어서의 내 몸은 내가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 온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된 것 같다. 그렇지만 나도 내 친구와 같이 직립보행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지 않았던가. 개으름 피우지 않고 무조건 걸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오늘도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어본다.
(김상태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