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프 아저씨의 재수없는 장남(5)
"흐음. 의외인데? 새플리 아아. 류마루라고 했었나? 아무튼 류마루를 이용하려는 생각을 하다니….
하여간 이… 젠장. 잉크번졌다."
몰트케 후작은 여전히 이미지 마법으로 류마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유희는 유희이기에
서류를 결제하면서 보고 있었는데 영상에 너무 집중을 했기 때문인지 잉크가 번져버렸다.
꽤나 중요한 서류였지만 몰트케 후작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잉크가 더 번지지 않도록 마를때까지
옆으로 제쳐두기로 하고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영상에서 본 류마루… 새플리의 성격은 여전했다. 다혈질에다가 잘 웃는 것이 말이다.
분위기는 뭔가 좀 달라졌지만, 별 상관없었다.
<디킨스한테 하라고 하….>
파앗!
갑자기 돌아가는 문고리에 몰트케 후작은 깜짝 놀라며 서둘러 마법을 풀고
열심히 서류를 정리하는 척했다.
몰트케 후작의 보좌관 가르니에 경이었다. 가르니에 경은 몰트케 후작에게 인사를 하고
옆에서 서류 정리를 도왔다.
평소같았더라면 알려져 있는 몰트케 후작의 이미지대로 '고맙다'라는 말을 건네었을텐데
지금은 전혀 고맙지가 않았다. 가르니에 경이 빨리 단장실을 나가 다시 이미지 마법으로
파블로프 경과 류마루의 일이 어떻게 되었을지 보고 싶었다.
류마루가 파블로프 경의 부탁을 들어줬을지 안들어줬을지는 그녀의 표정에 이미 다 나왔기에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 달라진 그녀가 어떻게
거절을 할 것인가 궁금했다.
'젠장, 젠장, 젠장! 이 녀석은 평소에는 일을 시키면 느그적 거리더니 오늘은 왜 하필 빨리 온 거야?!'
평소에 서류 정리할 것이 많아 가르니에 경이 필요하기에 시간이 빨리가는 것처럼 느꼈을뿐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듯 몰트케 후작은 애꿎은 가르니에 경을 탓했다.
"단장님, 제게 무슨 시키실 것이라도…?"
"아아. 아무것도."
가르니에 경을 단장실에서 쫓아낼 일만을 생각하고 있던 몰트케 후작은 자신도 모르게 가르니에 경을
노려보았다. 그때문에 가르니에 경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나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기에 무슨 시킬일이라도 있나 물어본 것이다.
'오, 그래! 쿠쿡! 그러면 되겠다!'
"가르니에 경."
"예, 단장님."
"골즈워리 경을 불러다주겠나?"
"……알겠습니다, 단장님."
그가 생각해낸 건 사람을 불러오라고 시키는 일이었다. 지금 시간은 검술연습 시간이 아니었지만
곧 로얄기사 서열시합이 있었기에 모두들 연무장에서 검술연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연무장이 멀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골즈워리 경은 한 번 검술연습을 시작하면 옆에서 아무리
불러도 꾸준히 검술연습만 하는 사람이다.
그가 골즈워리 경을 부르는 이유는 가르니에 경을 밖으로 내보는 것도 이유였지만 이번에
체르인 제국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여자로서 로얄기사 테스트를 합격한데다가 이번 로얄기사
서열시합에서 상위권이 될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몸이기에 격려라도 한마디
……는 다 개뻥이고, 골즈워리 경은 개인적인 친분으로 부르기가 쉬웠다.
가르니에 경이 나가자 몰트케 후작은 서둘러 이미지 마법을 실현시켰다. 어찌 된 일인지 류마루는
꽤 엄한 표정을 지으며 파블로프 경에게 훈계를 하고 있었다.(?)
<당신 재수없어. 젠장. 오빠 생겼다고 좋아한거, 후회되네.>
<……무슨 말이냐.>
<애석하게도 난 기사란 신분… 정확히는 신분이란 것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 자라서 당신이 생각하는
기사의 충성이란 것을 잘 몰라. 하지만 사극같은 것 때문인지 대충은 알 것 같은데, 당신과는 전혀
달라. 뭐? 기사의 충성이란 주군에 대한 복종? 어디서 개지랄같은 말을 처들은거야?
그러면 당신이 황제한테 충성서약 안하고 반황제파한테 했다고치면 당신은 반황제파겠네?>
<그…>
파블로프 경이 뭔가 반박을 하려했지만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류마루는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 당신 말처럼 기사의 충성에 복종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게 당신같은 복종은 아니지.
난 지금 1년밖에 안됬지만 대강 여기 나라가 어떤 꼬라지로 돌아가는지 대충은 알겠어. 그래서
당신이 더 이해가 안돼. 당신은 잘사는 사람이니까 모르는 거야?
여기는 저소득층한테 연금같은게 있을일도 없으니까 황제라는 사람이 정책이든 뭐든 잘해야 될텐데
보니까 아주 개지랄을 떨던데. 보니까 꼭 망하기 직전의 왕하고 비슷 아니 똑같던데?
술퍼마시고 개지랄하고. 고상하게 말하면 사치와 향락? 그런데도 당신은 당신 아빠하고도
반대로 친황제파를 계속 할거라고? 아주 개지랄하고 자빠졌네.>
"푸하하! 역시 새플 아니, 류마루다!"
예전에 새플리였을때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게 복종을 하라고 한 적 없는데? 후훗! 난 그저 너희들의 충성심을
원한거 뿐이야.'…였던가?"
여자의 몸이었지만 공작 그것도 황실의 피가 흐르는 공작가의 딸이었기에 어렸을 때부터 검술에도
소질이 있어 공작가의 기사단을 직접 지휘하던 그녀였다. 남자가 아닌 여자인데다 기사단을
지휘하는 것치고 어린 나이였기에 기사단에게 대하는 말투도 친근했었다.
지난 날을 회상하던 그의 얼굴은 가만히 미소 지었다.
"그건 그렇고, 지금 내가 백작가의 양녀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그에게 또다른 고민이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