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단의 특별한 송년회
최 순 태
올해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정유년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대구시청합창단이 창단 된지 14년이 되었다. 내가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을 한지도 13년이 지났다.
연말이 되면 각종 송년회 내지 가는 해를 아쉬워하는 망년회가 많이 개최된다. 보통은 아는 친구나 지인끼리 모여 술을 마시고 2차로 노래방을 가는 일상적인 일이 되풀이 된다. 이러한 구태의연한 방식에서 벗어나는 획기적인 방법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러한 나의 바람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우리 합창단에서 아주 특별한 송년회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즉, 노래나 악기연주 등으로 음악회를 개최하고 연주회가 끝나면 2부 행사로 단원들과 조촐한 파티를 연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좋은 기획이 아닐 수 없었다. 미리 송년회에서 연주할 희망자 신청을 받으니 많은 참여를 바란다는 운영진의 당부가 있었다. 지금의 단원들은 거의 모두 현직 공무원이나 퇴직한 옵서버인 나도 참가자격이 있을까 잠시 고민하였다.
하지만 합창단의 단원이면 별로 문제되지 않으리라 생각되어 V.de Crescenzo가 작곡한 이태리 가곡인 rondine al nido(제비는 돌아오건만)를 부를 노래로 선택하여 신청하고 맹연습을 하였다. 가사의 내용은 해마다 봄이면 겨우내 따뜻한 곳으로 갔던 제비도 돌아오는데, 나를 떠난 애인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서글픈 심정을 나타낸다.
정년퇴직 후 공무원연금공단의 수필창작교실에서 글쓰기 공부, 일본어 수업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며 문우(文友) 등과 교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올해 12월 중순부터 제과제빵 학원에 수강하며 기술을 배우느라 연습할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송년회가 코앞으로 다가왔으므로 시간을 내는 것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우선 합창단 공식 연습일인 월요일 시청에 갈 때 오고 가는 길에서, 때로는 우리 집 자동차 안, 내가 사는 아파트 정문 건너의 학산 공원에서 주로 노래를 하였다. 독창은 음정과 가사를 외워서 연주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악보를 암기했다.
연주회가 열리던 날 제빵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그날 만든 식빵과 필기구 등을 집에 놓고서 급히 합창단복을 챙기고 집을 나서니 벌써 오후 5시 30분이 지났다. 6시까지 송년회 장소에 가야 했으므로 서둘러 도시철도 월촌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주회장 앞에 도착하니 예정보다 10분이 초과되었다. 다른 연주자들은 연습을 끝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반주자와 함께 간단하게 리허설을 마치니 오늘 부를 합창곡을 연습하잔다. 합창곡으로 선정된 “당달구, 여미에서” 두곡을 노래하고 나니 이번에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신입단원들이 행사장으로 들어왔다.
오늘 참석한 신입생들은 오디션에서 선발된 18명 중 13명이었다. 각 파트별로 골고루 배치된 단원들이 들어올 때 우리는 진심어린 환대를 하였다. 사회자가 연주회의 시작을 알리면서 우선 합창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연주회의 막이 올랐다. 오늘 연주할 팀은 독창, 중창, 악기연주 등을 포함해서 11팀이었다. 서막은 수성구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듬직한 베이스님께서 테이프를 끊었다.
그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non piu andrai(더 이상 날지 못하리)를 불렀다. 묵직하고 풍부한 음색과 감미로움으로 모든 청중들을 잠시 오페라의 무대로 끌어들였다.
이어서 혼성 듀엣으로 “시월에 어느 멋진 날에”, 여성 독창곡인 “그리운 님은 멀리 떠나고”를 듣고 나의 차례가 되었다. 준비된 곡을 열심히 노래하고 나니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에 속이 후련하였다.
그 다음으로 지산동에 사는 단원들로 구성된 중창단이 동백섬을 불렀는데 이 때 합창단원인 엄마, 아빠의 연습장에 따라 다니며 온갖 재롱을 피우는 합창단의 마스코트인 네 살이 된 어느 어린이도 동참하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합창연습에 같이 따라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노래를 외워서 부르는 모습을 보니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앙증맞게 율동을 하면서 부르는 모습에 청중들은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즐거워했다.
특히 행사가 열리는 송년회장은 플루트 동호인들이 연주를 하는 공간이란다. 그런 용도에 맞게 남녀 혼성 플루트 연주단이 감미로운 노래를 들려주었다. 계속하여 얼마 전 입단한 젊은 베이스가 신성우 작곡의 “너는 내 것이다”를 멋진 목소리로 불렀다. 이 외에도 알토 중창단의 “아름다운 동행”이 환상의 화음으로 우리들의 영혼을 일깨워 주었다.
특별 순서로 지휘자와 트레이너 선생님이 부부 중창으로 부른 정지용 작시 김희갑 작곡인 “향수”가 멋진 앙상블을 이루며 연주회장을 찾은 모든 분들의 마음을 적셨고, 우리들의 송년회를 축하하러 온 시청 간부님의 “오 솔레 미오”가 울려 퍼지며 밤에도 연주회장에 태양이 뜬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들을 위해서 수고하는 단무장님은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을 열창하였으며, 아울러 이 노래를 계기로 본격적인 테너로 데뷔하게 되었다고 노래가 끝난 뒤 소감을 말하였다. 테너가수 데뷔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마지막은 매번 다른 연주회에서 피날레로 즐겨 부르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가 최고의 테너단원과 소프라노의 멋진 혼성 이중창으로 어우러졌다. 노래 마지막에 둘이서 댄스를 추면서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모두를 감동케 하였고, 오페라 중 알프레도 역할을 한 남자 단원은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분장을 하여 장가가는 새신랑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였고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 부분에서 참석자 모두는 각자 컵에 와인을 따르고 건배를 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지나가는 한해를 아쉬워하며 이별의 노래인 올드 랭 사인을 부르면서 송년연주회가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이번에 처음 들어온 단원들의 입단 소감을 듣는 순서가 마련되어 합창에 임하는 각오와 오늘 연주회 소감을 들어보는 자리를 가졌다. 모두 힘든 심사를 거쳐 들어온 사람들이라 마음가짐이 대단 하였다. 앞으로 우리 합창단이 더욱더 발전하리라는 확신이 섰다. 그리고 기존 단원들이 더욱 분발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 까지 많은 수고를 하신 지휘자 선생님의 소감을 들어보았다. 선생님은 국내대학에서 음대를 졸업하고 이태리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 돌아와서 한동안 방황을 한 시절이 있었다 한다.
그러나 “음악에 비겁한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하며 굳은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합창은 희생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을 낮추고 남과 맞추어 가며 협동심을 발휘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예술가들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관련하여 예전에 우리 합창단을 지도하던 지휘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문득 회상된다. 음악을 전문적인 직업으로 함은 상당히 힘이 든다며 대신 취미로 즐기며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내 귀에 선하다.
오늘 실시한 뜻깊고 특별한 송년회는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내년에는 더욱 풍성한 잔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퇴직을 한 나를 단원으로 계속 머물게 해 주는 단원들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오늘 사진을 찍어 준 합창단의 단원 중 한분이 내게 자연스럽게 웃는 포즈를 취하라고 하지만 경직된 내 얼굴이 그나마 펴지는 때는 합창을 할 때나 공무원연금공단 수필창작교실에서 문우들과 글쓰기를 배우고 작품에 대해 토론할 때다.
오늘의 행사를 기획하신 모든 운영진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면서 행사장을 빠져나와 집에 도착하니 피로가 몰려온다. 피곤하면 즉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특별한 송년회의 감동 때문에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앞으로 몸 상태가 좋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기꺼이 참가할 것이다. 단원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저물어가는 정유년을 알차게 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란다. 내년의 첫 연습이 기다려진다. 우리 합창단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것이다. 더 높은 미래를 위하여 우리 모두 힘내자!
첫댓글 음악처럼 아름답고 멋진 송년회를 하셨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일본어 공부며 제빵,제과까지
선생님의 왕성하신 활동에 박수를 보냅니다.모든일이 뜻 대로 성취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송년회 모습입니다. 음악인이라 더욱 멋진 송년행사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송년 모임도 더 격조 있는 모습으로 변모해 가는 게 바랍직해 보입니다. 음악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니 에너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새해에도 더욱 정진하시어 멋진 모습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합창단등 예술활동은 기본적으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연습으로 승화 되는것 같습니다. 퇴직후에도 후배들과 어울려 활동하는 모습이 좋아보입니다. 합창단에 걸맛는 송년회 특색이 있으며 더욱 발전시키으면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특별한 송년회에 뽑혀 멋진 솜씨를 보여 주셨습니다. 재능은 타고 나기도 하겠지만 계발과 연습의 효과로도 볼 수 있는거 같습니다 . 은퇴 후 에도 열심히 활동을 하심에 박수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타고난 재능이 부럽습니다. 음악, 수필, 제빵 등 다양한 취미와 열정 또한 부럽습니다.
더욱 정진하시고 좋은 결실 기대합니다.
정말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시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잘 읽었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