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축복(루디아라 하는..)/사도행전16:11~15/P.215.2016.10.16.주일낮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개역개정]
[목회기도]
전능하셔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우리에게 새날을 허락하시고 예배하는 자리에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 예배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변함없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옵소서. 살면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만왕의 왕 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내 마음 내 뜻대로 살아가려 했음을 고백합니다. 모든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습니다. 다스려 주옵소서. 주님 주시는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배의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하고 객지, 외국 군대, 병원에 …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저들 모두에게 필요한 은총을 내려 주옵소서. 주고 받는 소식이 감사의 소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말씀을 전하고 듣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로 채움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 사람의 생애와 운명은 그 사람의 생각 여하에 따라서 결정되어 지는 것입니다. 즉 좋은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성공과 승리가 있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나쁜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찬 사람에게는 실패와 어두움의 그림자만이 찾아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외부 환경에 의하여 좌우되거나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생각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행을 만들어 내는 생각만을 하는 사람은 필연코 그의 생애가 불행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행복을 만드는 생각만을 하는 사람은 분명히 행복하게 되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을 나는 대로 들어오는 대로 행동할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잘 조절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방안에 에어콘(air Condition)을 설치하면 밖의 날씨가 아무리 무더워도 시원하게 할 수 있고 또 아무리 춥다고 하더라도 방안의 온도를 덥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도 조절할 줄만 알면 우리의 주의 환경이 아무리 변하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도 창조적이고 성공적이며 평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써 우리의 생각을 잘 조절하면 우리의 생각을 언제나 맑게 할 수 있고 정신적으로도 새 힘을 얻을 수 있으며 마음의 평안도 몸의 건강도 따라서 모든 생활에 활력소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된 자리에서 만난 것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과 인사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만나서 반갑습니다. 좋은 일로만 만나길 바랍니다.”
<성령이 …>
사도행전 15장 후반부부터는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40절에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행 15:40)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바울의 2차 선교여행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 머무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막으셨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행 16:6) 라고 했습니다.
또한 7절에도 “…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행 16:7) 했습니다.
비두니아는 소아시아 북서쪽 고산지대입니다.
이처럼 바울의 선교 사역의 중심에는 언제나 성령님이 함께 계셨고, 바울은 그 이끄심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 16:10)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누구나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이끄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했습니다.
여기서 보혜사(保惠師)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입니다.
문자적으로는 ‘도움을 베풀기 위해 곁으로 부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위로자’(Comforter), ‘중보자’(Mediator),
‘돕는 자’(Helper), ‘상담자’(Counselor), ‘탄원자’(Supplicator)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 라이프성경사전 참조 ]
그런데 쉽게 말하면 운동경기에서의 ‘코치’ 같은 존재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 말씀에 따르면 예수 믿는 우리는 세상에서 ‘믿음의 경주’를 하는 하늘나라 대표 선수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 코치이신 성령님의 이끄심에 순종하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 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또한 성령님은 ② 우리가 옳은 길을 가도록 책망하십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우리가 무엇이 옳은 것인지 … 그른 것인지 … 분별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성령의 인도를 구하면 분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님은 ③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13)
우리가 성령의 이끄심대로 살면 참 자유와 진리 안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빌립보에 이르니>
사도행전 16장 9절에 보면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행 16:9) 했습니다.
바울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게도냐로 향했습니다.
여기서 ‘넓은 땅’이란 뜻의 마게도냐(Macedonia) 는 현재 그리스 북부 지방으로 즉 지금의 유럽 지역을 말합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에 들어가 처음 도착한 곳이 ‘빌립보’였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빌립보’를 "…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 …”(행 16:12)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빌립보에 갔기 때문에 나름대로 빌립보에 어느 정도 기대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에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도 모르는 동네에 이사를 가면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떨까, 여기서 잘 살아야 할텐데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더욱이 외국에 가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새로운 문화, 철학, 사상, 풍속 … 등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해서 바울도, 바울 일행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이끄심을 믿고 순종하며 가도, 하나님의 뜻을 전하러 가는 길이라도, 모든 길이 꽃길이 아닙니다.
고난의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길이라 해서 모든 일이 잘 되고 … 막혔던 길이 활짝 열리고 잘 풀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14장, 마가복음 6장, 요한복음 6장에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셨어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먹을 것을 해결해 주자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제자들에게 빨리 가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가고 있는 길은 자신들이 가려고 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빨리 가라고 해서 가는 길인데 그 길을 가다 풍랑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내가 예수 믿음으로 부끄럽지 않게 사려고 가는 길이라 해도 거기에서 풍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13절에도 보면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행 16:13) 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간 바울은 먼저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그리해야 합니다. 힘들 때, 새로운 일을 할 때, 처음 가는 길, 처음 만나는 사람을 앞두고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중한 일을 앞두고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 기도하세요. 그리고 기도할 곳을 찾으세요.
집에서도 혼자 조용히 기도할 시간, 문을 잠그고라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마게도냐 유럽지역에서 선교의 첫 단추를 잘 꿰기 위해 기도할 곳을 찾았던 것처럼
우리도 가장 먼저 기도할 곳을 찾고 기도해야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드십니까?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고 하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아픈 곳이 있다면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4~16)
는 말씀 붙잡고 기도하세요.
혼자 기도하기 힘들면 기도를 부탁하세요.
가족에게, 친구에게, 교역자에게, 만나는 사람마다 기도를 요청하세요.
기도의 빚을 지세요. 기도할 때 닫힌 문이 열립니다. 기도할 때 흔들리고, 기도할 때 풀리고, 기도할 때 보이고, 기도할 때 만나게 됩니다.
이런 역사가 있기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루디아를 만나다>
기도할 곳을 찾은 바울은 빌립보 성문 밖 강가에서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 여자…”(행 16:14) 였습니다.
‘두아디라’는 소아시아, 오늘날 터키에 위치해 있습니다.
금속 세공술과 함께 양모 방직, 피혁(가죽) 가공, 염색 산업이 발달한 상업도시였습니다. [ 라이프성경사전 참조 ]
루디아는 ① 자색(purple-NIV, 짙은 남색에 붉은 빛이 도는 색) 옷감을 파는 부자였습니다.
예부터 염색은 고급 기술이었고 값도 비쌌습니다. 물론 옛날엔 염료를 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색(보라색)으로 된 옷은 왕족이나 귀족, 고관들만이 입을 수 있었으며, 자색은 부유함, 권력을 상징하는 색이었습니다.[ 비전성경사전 참조 ]
존 스토트는 두아디라 출신인 루디아가 마게도냐에서 바울을 만났다는 것은
염색 공장은 두아디라에, 판매 대리점은 마게도냐에 둔 ‘부유한 경영인’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존 스토트, <BST시리즈-사도행전 강해>, IVP, p.311. 참조. ]
그런데 성령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여셨습니다.
“…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행 16:14)
루디아는 하나님이 바울에게 붙여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마게도냐 선교를 위해 루디아를 대기시켜 놓으셨던 것입니다.
② 또한 루디아는 하나님을 섬기는 여인이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였지만, 개역한글과 새번역 성경에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문에는 예배하는 여인이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도 예배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마음 문을 열어 주시고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 것입니다.
루디아는 바울을 만난 후에 ‘그녀와 그녀의 집이 다 세례를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루디아는 당당하게 자신의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15절에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이라고 한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는데도, 직분을 받았는데도 세상 사람을 만나면 숨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례 받은 게 부끄러우십니까?
집사, 권사, 장로로 밝혀지면 부끄러우신가요? 손해 볼 것 있으신가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루디아처럼 예수 믿는 사람임을 드러내고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③ 그리고 루디아는 대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 일행을 강권하여 자기 집에 초대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로부터 환대받는 것을 강하게 금했습니다.
또한 여성의 집이었기 때문에 루디아의 집에 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루디아가 초대를 강권했던 것 같습니다.
유진 피터슨이 번역한 메시지 성경을 보면 15절의 마지막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저했으나, 그녀는 절대로 우리의 거절을 받아들일 태세가 아니었다.”
(We hesitated, but she wouldn’t take no for an answer.)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멀리서 온 사람들을 대접하려는 마음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루디아처럼 …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선교사에게, 목회자에게 힘을 더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학자들은 바울에게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루디아가 고향 두아디라에 교회를 세웠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 하나입니다.
이처럼 루디아는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한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입학, 졸업, 취업, 사업 등 인생의 크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계십니까? 낯선 곳에서 어떤 사람을 만날지 두려우십니까?
일이 잘 될지 걱정되십니까? 먼저 기도할 곳을 찾으시고 기도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바울에게 있어서 루디아와 같은 사람을 만나는 복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때로 어떤 것은 응답하지 않으실 때도 있지만 사람을 만남으로 해결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만남의 복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도 만남의 복이 있어야 합니다.
친구들,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하고, 사업하는 분들은 파트너를 잘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 만남의 복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기도함으로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저는 어디든지 가면 만남의 복에 얘기합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만남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기도하는 자리를 찾으면 하나님이 만남의 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여러분도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며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고 기도하며 준비하면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복이 여러분의 평생의 삶에서 지속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 기도하는 자리를 찾게 하여 주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앞에 두고 두려워 떠는 자가 아니라 기도할 곳을 찾고, 기도하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 살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땀흘렸습니다. 때로는 눈물 흘리고 목숨을 걸어가며 돈을 벌었습니다. 그렇게 애써서 벌은 돈에서 십일조를 구별합니다. 건축, 선교헌금, 감사헌금, … 여러 가지 제목으로 예물을 드립니다. 성도들의 정성된 예물을 구별하여 주옵소서. 봉투 봉투마다 적힌 이름들, 봉투 봉투마다 적힌 기도제목에 응답하여 주옵소서. 물질 때문에 죄와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일용할 양식 때문에 눈물 흘리는 성도들 없도록 하나님 지켜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