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나해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요한 14,21-26)
복음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21-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2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성령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가?
누군가가 나에게 준 계명을 실천하면 반드시 그에게 칭찬받게 되어 있습니다. 칭찬은 영광과 비슷한 말입니다. 칭찬을 위해서는 상대가 원하는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어른 보면 무조건 인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고 무조건 인사하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우리가 인사를 너무 잘하고 다닌다고 다른 어른들에게 칭찬받으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칭찬해 주셨고 우리는 이 때문에 더욱 열심히 인사하고 다녔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합니다. 칭찬은 사실 선생을 지속시키는 힘입니다. 어느 정도는 칭찬이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디팩 초프라도 두 아들에게 모든 것은 아버지가 책임질 테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만 생각하며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자녀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결과는 놀랍습니다. 두 아들 다 세상에서 성공해서 아버지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게 훌륭하게 성장하였습니다. 이 영광으로 그들은 아버지가 왜 그렇게 시켰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종에게 자기 아들 이사악의 신붓감을 구해오라고 하였습니다. 종은 자기 낙타들과 자신에게 선행을 할 줄 아는 레베카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각종 폐물과 옷을 주었습니다. 이는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성령님은 이미 선행을 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영광입니다. 이 영광으로 레베카는 이웃에게 선행을 더욱 잘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선행의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나에게 주어지는 칭찬, 영광, 성령의 은총은 내가 지금 하는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이해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게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라고 하시며,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이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것인데,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정말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은 사랑이신데, 사랑의 말씀은 사랑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일에 축일 잔치를 본당에서 했습니다. 일 년 중 가장 견디기 어려운 날입니다. 도망을 치고 싶지만, 신자들이 아쉬워할까 봐 어쩔 수 없이 국수 잔치하였습니다. 신자들에게 해 준 것도 없는데 받는 영광은 정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것으로 왜 사람이 스스로 지옥에 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영광이 감당하기 어려워 숨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영광이지만, 자기 양심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늘 나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나에게 오는 영광은 나 자신이 합당하고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너무 두렵습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 부담감을 감소시키기 위해 신자들에게 사비로 국수를 대접해 드렸습니다.
물론 신자분들이 축하한다고 주시는 축하금이 그 비용보다 많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그것까지 받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라 본당에서는 저의 어머니와 제가 아는 지인들을 초대하여 같이 식사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분들에게 국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할 수 있다면 이 부담감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잔치는 잘 끝났습니다.
이것을 하는 중에 지금의 상황이 야곱이 에사우를 만나는 상황과 똑같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먼저 에사우가 부담스러워 그에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줄 수 있는 것은 다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나라에서 사는 영광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되지 않아서 자기 가족들을 보냈습니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안 되니 기도하였습니다. 겸손해진 마음으로 에사우 앞에서 일곱 번 절하며 에사우를 하느님처럼 경배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신자들에게 힘줄이 끊어진 장단지를 가진 야곱처럼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러니 그 영광을 조금 받아들일 만했습니다.
이것이 왜 주님께서 당신 앞에 나아올 때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지가 이해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요구하시는 이유는 그것 때문에라도 하느님 나라 영광을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하심입니다. 그분 앞에 내놓을 것이 하나도 없다면 저는 스스로 지옥을 선택할 것이 확실히 이해되었습니다.
성령의 영광은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 꼭 선행을 하고 영광을 받아봅시다. 그러면 천국에 이를 수 있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하게 될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