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Jurgen Moltmann, 1926년 4월 8일 – 2024년 6월 3일)교수가 독일시간으로 3일 별세했다. 향년 98세. 그는 오랫동안 튀빙겐 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쳐 왔으며 은퇴후에도 명예교수 직을 유지해 왔다. 한국에는 그의 저서 ‘희망의 신학’, ‘십자가에 못박힌 하나님’ 을 비롯해 거의 모든 책이 번역되어 있다.
그는 몰트만은 저명한 페미니스트 신학자 엘리자베스 몰트만-벤델(Elisabeth Moltmann-Wendel) 의 남편으로도 유명하다 몰트만은 자신의 신학을 칼 바르트(Karl Barth )의 신학 저작, 특히 교회교의학(Church Dogmatics) 의 확장, 즉 포스트바르트주의(Post-Barthian) 로 묘사했다.
몰트만은 하나님이 인류와 함께 고난을 당하신다는 관점에 입각한 해방신학을 발전시켰으며, 부활 의 소망을 통해 인류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했는데, 이를 '희망의 신학'이라고 불렀다. 희망의 신학은 해방신학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삼위일체와 교회’, ‘배제와 포용’ 등으로 유명한 미로슬라브 볼프(예일대 신학부)도 그에게 사사했다.
몰트만의 경력중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 독일군으로 그의 2차 대전 참전이다. 그는 16 세 의 나이로 1943년에 징집되어 독일군에 입대했다. 1945년 영국군에게 항복했다 전쟁 이후에는 1948년까지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몰트만은 수용소에서 미국인 목사로부터 신약성서 와 시편의 작은 사본을 받았다. 이 때 경험을 "내가 그리스도를 찾은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찾았습니다"라는 신앙고백으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감된 영국의 수용소에서 라인홀트 니부어의 ‘인간의 본성과 운명’을 읽은 뒤 회심했고 석방후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그의 제자로는 김균진(연세대), 이신건(서울신학대)이 있으나 모두 은퇴한 상태다. 생존하는 신학자 중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덕분에 노후에도 이어진 그의 잦은 방한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광림교회에서도 설교했으며 조용기와 오랫동안 교분을 나눠왔기 때문이다. 조용기와는 ‘희망의 신학’을 공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조직신학회에 소장된 논문에는 심지어 김삼환과 몰트만의 신학을 비교한 논문도 검색된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해방신학자 홍인식은 몰트만의 죽음의 소식을 전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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