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4일 일요산행
강진 만덕산
백련사동백숲&다산초당길
\40,000
20명 제한 1인1좌석
마스크필~~!
한번쯤 가보고 싶은곳.
죽기전 꼭 가보라는곳.
역사와 문화 茶가 있는 아름다움이 넘치는곳.
백련사와 다산초당길에서의
눈물을 훔치는 우리 모습에서 사랑을 느낄겁니다.
만덕산!
주작,덕룡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던곳.
그.러.나
그곳에는 기암절경과 진달래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말로 표현키 어려운 그곳으로 달려갑니다.
도보:가우도트레킹-백련사동백숲길-다산초당길(5시간 널널)
산악:소석문-석문산-용문사-바람재-만덕산깃대봉-백련사-다산초당(5시간30분)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 걸으며 봄 만끽
◆ 강진 백련사와 다산초당
해마다 봄이면 성숙한 여인의 순정처럼 붉은 동백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청자의 고을’ 강진. 붉은 동백숲과 어우러진 푸른 차밭이 유난히 아름다운 만덕산(409m) 자락엔
고려 말 천태종 부흥의 본산이었던 유서깊은 백련사(白蓮寺)가 있다.
이 절집 주변의 수 백년 묵은 동백림(천연기념물 제151호)은 남도의 봄을 봄답게 해주는 곳으로
1,500여 그루에서 피어나는 동백꽃들은 강진만 바다,
그리고 단아한 절집과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백련사 부도밭 주변의 동백꽃 일품<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 절을 가리켜
“남쪽 바다에 임해 있고 골짜기 가득히 송백이 울창하며 동백 또한 곁들여져 창취가
사계절을 통해 한결 같은 절경”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동백림중에서 부도숲 주변의 정취가 일품이다. 동백이 만개하는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 사이에 이 숲을 찾으면 동백의 붉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동백꽃이 아름다운 이 절집의 본래 이름은 백련사였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만덕산에 있다 하여 만덕사(萬德寺)로 불리다가 근래 다시 원래 이름을되찾았다.
백련사는 천태사상에 입각한 결사도량을 개설하여 침체된
불교의 중흥을 꾀하는데 중심 역할을 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고려 고종 19년에백련결사문을 발표하여 참회와 정토를 강조한 백련결사운동은
송광사의 정혜결사운동과 함께 고려 후기 불교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백련사 동백꽃 감상과 다산초당에서 약천 한 모금 마시는 일은 한 코스로 엮인다.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오가는 오솔길은 다산이 백련사의 혜장선사와 만나기 위해 다니던 오솔길이다.
동백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도암만 풍경은 고즈넉하고,
대나무와 차나무와 동백나무 어우러져 있어 사색하며 걷기에 더 없이 좋다.
천천히 걸어도 20~30분쯤 이면 된다.
다산초당주변에도 동백나무가 많다.
조선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강진에서 18년의 귀양살이 가운데 10년쯤을 이 다산초당에서 지냈다.
다산이 해남 윤씨 소유의 만덕산 기슭의 초당으로 들어온 것은 1808년 봄이다.
다산의 모친이 공재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손녀고,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증손이니 해남 윤씨 집안은 다산의 먼 외가 친척들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윤씨 집안의 각별한 배려로 1818년 9월 해배될때까지 본격적으로 학문에 탐구했고,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등 ‘다산학’이라 일컬어지는 방대한 저술활동을 대부분 이곳서 이루었다.
원래 초가였던 것을 복원할 때 매년 짚을 갈아주는 번거로움 때문에지붕을
기와로 올리는 바람에 ‘와당’이 되어버려 ‘초당’의 소박한 정취를 느낄 수 없지만, 곳곳에 다산의 체취가 남아있다.
정약용 실학정신 엿볼 수 있는 다산초당뜰앞의 평평한 바윗돌은 다산이 솔방울을 지펴
찻물을 끓이던 부엌인 다조(茶竈), 초당 왼편 뒤쪽의 맑은 샘물은
다산이 찻물로 쓰던 약천(藥泉), 뜰 오른쪽의 아담한 연못은 다산이 직접 축대 쌓고 못을 파고
꽃나무도 줄지어 심고 물을 끌어 폭포도 만들었던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이다.
또 초당 뒤쪽의 바위벽에는 선생이 해배될 때 썼다는 정석(丁石)이란 글씨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 네 가지를 일컬어 ‘다산4경’이라 한다.강진으로 귀양 온 다산은 다산초당으로 들어오면서
생활의 안정을 얻어 학문에 몰두하는 한편 본격적인 차생활을 즐겼다.
차를 즐겼던 다산에게 차나무 많은 만덕산은 마음의 위안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다산이 백련사 혜장스님에게 “목마르게 바라노니 부디 선
물을 아끼지 말기를” 하며 올린걸명소(乞茗疎)에는 다산의 차 사랑과 여유가 돋보이고 있다. 그리고,
"새 비가 내린 귤숲은 자못 아름답구나
바위샘물을 손수 떠서 찻병을 씻네
약 절구질 잦아지니 번거로운 곰팡이는 없건만
드물게 달이는 차풍로엔먼지만 있네" 하는 다산의 글에 나오는 ‘바위샘물’은 초당 뒤꼍에서 솟아나는 약천(藥泉)이다.
이 옹달샘은 1808년 다산이 손수 파서 만든 샘으로 이 물로 차를 끓여 마셨으며
담도 삭이고 묵은 병도 낫게 했다 하여 약천이라 불렀다.
200년 가까이 지난 요즘은 뜰앞의 차부뚜막이 반질반질해질 정도로
많은 답사객들이 찾아와 이 샘물을 마시며 다산의 실학 정신을되새기고 있다.
한편, 다산초당과 700m쯤 떨어진 곳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민 다산유물기념관이 있다.
좀더 자세한 사항은 강진군청(www.gangjin.go.kr) 문화관광과(061-430-3223)에 문의.
강진 만덕산 백련사는 고려 후기에 천태사상에 입각한 결사도량을 개설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조선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의 18년 귀양살이 가운데 10년을 이 다산초당에서 지냈다.
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2번 국도→18번 국도(해남 방향)→1.5km→학명리(좌회전)→4km→백련사 입구→1km→다산초당 입구.
서울서 5시간 소요. 서울고속버스터미널(호남선)에서 강진행이 하루 13회 운행. 5시간20분소요
한정식은 강진만 갯벌과 탐진강, 그리고 주변의 들녘에서 구한온갖 재료로 만든 요리를 푸짐하게 내는 것이 특징이다.
해태식당(061-434-2486) 등 유명한 식당이 많다. 기본 2인상에 40,000원. 다산초당 아래귤동마을에 민박집이 두어 곳 있다. 강진 읍내엔 프린스장(061-433-7800)등 숙박시설이 많다.
백련사의 역사
백련사의 원래 이름은 만덕사로 신라 문성왕때 무염국사(801-888)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1211년(고려 회종7년)에 원묘국사 요세(1163-1245)스님이 옛터에
중창하고 백련결사로 크게 이름을 날려 백련사로 불리게
되었다.
고려후기 정치와 종교가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몽고와 왜군의 침략으로 살육가 눈물로
점철된 고난의 시대에 요세스님은 어움의 한 가운데서 온 몸으로 희망을 말하고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는 결사운동을 벌인다.
이렇게 태동된 백련결사는 삶속에서 민중들과 함께 참회와 염불수행을 통해
현세를 정토로 만들자는 최초의 민간 결사 운동이였다.
원묘국사의 백련결사는 120년간 고려 8분의 국사(원묘국사,정명국사, 원환국사, 진정국사, 원조국사,원혜국사,진감국사, 목암국사)를 배출하고 번창하였다.
고려사기를 보면 공민왕자가 1351년(충정3년)에 백련사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사찰은 고려말 왜구가 세 차례나 침입하여
노략질을 일삼았을 때 폐허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1430년(세종12년)에 행호대사가
효령대군의 후원으로 동원 20동과 서원4동을 건립하고
왜구의 침입에 맞서 행호토성을 쌓는다.
세종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은 백련사에 입산하여
8년간 큰 법회를 열고 불,법,승 삼보에 기원하는 수륙재를 지매며 수행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백련사는 청허 호정선사의 의발을 전수받은 8명의 종사
(소요대사,해운대사, 취여대사, 화악대사, 설봉대사, 송파대사, 저암대사,연파대사)를
배출하며 이어져 내려왔다. 백련사에 8국사와 12종사가 나온다고 하였는데
8국사는 고려때 나왔으며
8종사는 조선시대 배출되었으니 앞으로도 4종사가 나올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그 가운데 여덟번째가 다산 정약용과 교류하던 아암 혜장선사로 두륜산 대흥사에서는
12대 강사로 꼽힌다. 백련사 옆 다산초당에 적거했던
다산 정약용은 백련사에 자주 들러 차를 마시며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한다.
백련사 바로가기(홈페이지) http://www.baekryunsa.net/
대웅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136호)
1760년 큰 불이 일어나 대웅보전이 소실되지 월인당 총신 스님은
왈찰, 지정, 혜철, 태화, 신징, 규연, 찰연, 윤철연징, 붕관스님
등과함께 대웅보전 중건에 서원하고 시주를 모아
이듬해 4월 8일 불사를 시작해서 1762년 4월 13일대웅보전을 완성합니다.
새로운 법당에 모셔진 삼존불(아미타불, 석가모니불,약사여래불)은
1710년에 목조로조성된 부처님으로
얼굴에 드러난 온화한 미소는 당시 불상을 조각했던 조선사람들의
순박하고 지극한 마음을 시대를 넘어 느낄수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법당내부에는 아름다운 벽화와 조각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
옛 선조들의 아르다운 신앙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삼성당 올라가는 계단과 삼성당 앞에 있는 베롱나무
삼성당
삼성당에는 독성탱화와 칠성탱화, 그리고 1931년에 그려진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다.
삼성당은 불교가 한국의 민간신앙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전각으로 만덕산 삼성당은 예로부터 큰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자손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부모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산신탱화는 소화 6년 일제시대때 그려진 것으로 소나무
아래 부채를 들고 있는 산신령과 까치 오랑이 ,
그리고 지팡이 끝에 물병을 매달고 있는 동자그림이 매우 민화적이고 친근한 느낌이 든다.
▲ 삼성당 앞에서는 백련사 기와지붕위로 강진만의 구강포와 멀리 천관산을 바라볼수 있다.
부도가 있는 동백숲
천연기념물 제 51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 안에는 고려,
조선시대의 부도가 곳곳에 숨박꼭질하듯 흩어져 있다.
부도란 스님들이 열반에 들면 다비식을 해서 나온 사리를 모셔놓은 탑이다.
동백숲 안에는 원묘국사증진탑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3호인 강진백련사원형구형부도,
대웅보전을 중수하신 월인당 총신 스님의 부도,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2기의 부도가 있다.
또한 웅진전 앞에 춘파당 부도,
절 입구 축대위에 부도, 명부전 앞에 부도의 잔해가 남아 있다.
준비물
바람막이/스틱/여벌옷/행동식/식수/랜턴 기타 개인필수품
예약문의: 회장 거목(010 3727 9806) 총무 옥경이(010 8636 5466)
안전부장(010 5296 7268)
입금계좌:농협 241032 -56-059972 김경옥
인터넷 예약:다음카페(인천사계절산악회)
간석 늘님 갑니다
길병원사거리탑승 1명 추가요. ㅎ
예약 감사합니다
동춘역 탑승합니다 (23번)
예약 감사합니다
동막 한사람추가입니다.
확인 합니다
원인재 신청합니다
예약 감사합니다
참석합니다
예약 감사합니다
급한 사정이 생겨 꼬리 내립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확인 합니다
동막 제비님 갑니다
범혜경 선학공영 1명 신청합니다
예약 감사합니다
1인1좌석으로 2호차 출발합니다
선학공영1명 신청합니다..
예약 감사합니다
방갑넹 ㅎ
문학역에서 탑승합니다.
예약 감사합니다
자리있으면 갑니다
예약 감사합니다
동막탐승요
확인 합니다
한양 한신님 갑니다
선학공용 옥경 동생 탑승
예약 감사합니다
류재근. 동막에서. 탑승
예약 감사합니다
동춘역 탑승합니다
예약 감사합니다
김인숙입금했어요
선학공영2명입니다
예약 감사합니다
동양장하이마트서 탑니다
예약 감사합니다
산행 마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