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준호 지음
( 20세기 브랜드에 관한 명상 , 랜덤하우스 중앙, 2005 )
'르네상스'란 상호를 기억한다면 그는 적어도 마흔을 넘긴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종로에 있던 '음악 감상실' 말입니다.
오디오라는 것이 아무나 가질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던 시절,
고전음악을 좋아하거나 좋아하는 척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베토벤을 듣고 바하를 이야기하던 곳이었지요.
벽면 가득한 클래식 음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충만한 지성의 기운이 가슴을 파고드는 것 같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앉아 고뇌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것만 같던 '르네상스'의 시간.
거기 그 많던 클래식 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저는 압니다
. 그것들이 지금 어디 가 있는지.
그것들은 지금 문예진흥원 산하 어떤 부속기관 자료실에서 화려했던 과거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고물상으로 가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벼룩시장이나 헤매고 있지 않고,
장식용 소품의 재료로 쓰이지 않고 제 값 그대로 고이 모셔지고 있으니까요.
주인도 잃고, 살던 집도 잃었으나 어떤 세대들의 젊은 날을
'르네상스 시대'로 만들어주던 음악만은 살아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르네상스 시대' 주인공들의 청춘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그 음악 감상실보다 훨씬 더 많은 장면을 찍어야 할 장소가 있습니다.
책방입니다.
거기 쌓인 책이 '백만 권'쯤 된다고 했지요.
아마,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그 책방을 생각하는 지금,
제 머리 속엔 '그 많던 책은 다 어디로 갔을까'하는 궁금증이 가장 먼저 일어납니다.
그야말로 파지(파지)가 되어 종이재생 공장으로 갔는지,
아니면 집 없는 신세가 되어 전국 각지의 헌 책방을 헤매 돌고 있는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책을 좋아하는 주인을 만났는지.
그리고 더불어 떠오르는 의문.
그 책방 입구를 막고 서서 오지 않는 친구나 애인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종로서적'.
그것은 제가 속해 있는 세대에게는 단순한 책방 이름의 차원을 넘어서는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KFC거나 롯데리아입니다.
그것은 지하철역이거나 버스 정류장 이름입니다.
그것은 302호 강의실이거나 정독도서관입니다.
그것은 비디오방이거나 멀티플렉스입니다.
그것은 PC방이거나 게임방입니다.
그것은 인터넷이거나 아마존입니다.
그것은 백과사전이거나 선생님입니다.
아니, 종로서적은 그 모든 것입니다.
그 이름이 찍힌 종이로 표지를 곱게 싼 책을 들고 다니면
저절로 '이 나라 지성인의 1%'쯤 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하였습니다.
김홍도의 풍속화 '성당 풍경'이 그려진 그 포장지 말입니다.
생전 소설책 한 권 사 읽지 않은 녀석일수록 기를 쓰고
'종로서적에서 보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촌놈들일수록 더했습니다.
경인선 통학생이었던 제 경우만 하여도 등굣길 전철 안에서
동창생이라도 만난 날이면 차안의 모든 사람들이 다 들으란 듯이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야, 다섯 시쯤 종로서적으로 나와."
상대가 여학생일 경우엔 좀 달랐습니다.
"종로서적 '철학' 코너에서 기다리겠습니다."
2
사람으로 치자면 100살 가까이 산 것이니
명실상부하게 한 세기를 살아낸 20세기 대표 브랜드 하나가 죽었습니다.
종로서적이 죽었습니다.
우리가 '월드컵 4강 드라마'에 넋이 나가 있을 때
우리들의 양식창고 하나가 문을 닫았습니다.
2002년,
새로운 신화에 열광하고,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에 환호하는 사이에
우리는 1907년부터 지난해까지 저 보신각종처럼
이 땅의 잠든 영혼을 깨우던 또 하나의 종각을 잃은 것입니다.
아니, 종지기를 잃은 것입니다.
물론 전문가들이 말하는 몰락의 이유는 대개 타당한 것들입니다.
새로운 제상이 오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방만한 자세로 구태의연한 경영방식에 안주햇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말은 틀린 지적이 아닙니다.
경쟁상대들이 고객의 동선(動線)까지 고려하여
매장을 설계하고 온라인 시장에까지 눈을 돌리고 있는데
이 눈곱 낀 95세의 노인에게는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던 모양이라는
설명에는 한없는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어쨌거나 종로서적은
이제 저와 같은 사란들에겐 수몰촌(水沒村)이나 다름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곳은 이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곳.
잠깐이나마 들어가서 추억의 편린(片鱗)이나마 더듬어보고 싶지만
물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서 아무 것도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게 된 옛 마을과 다를 바 없는 곳.
거기서 애인에게 줄 시집을 사고, 거기서 그녀를 기다렸지요.
그 앞에서 그녀가 타고 올 버스를 기다렸으며,
뒷골목에 있는 '찻집;이란 이름의 찻집에 가서 커피를 마셨지요.
셔터가 내려진 '종로서적' 앞에서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막차의 꽁무니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서 있었지요.
군대 가는 친구의 코트 주머니에 <샘터> 한 권도 거기서 산 것이었고,
아직도 제 책꽂이에 꽂혀 있는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도 거기서 샀지요.
"필요한 책이 있거든 말만 하라"던 대학동기 K가 친구들이
원하는 책들을 척척 뽑아주던 곳도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녀석에게 종로서적 책꽂이는 자기 방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처럼 폐쇄회로 TV야 없었지만 그 시절에도 감시원의 눈초리가 만만치 않았는데 말입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제 여자친구의 친구가 점원 노릇을 하던 곳도 그곳이었습니다.
이름만 들던 유명작가를 직접 보게 된 곳도 그곳이었습니다.
경찰에 쫓긴 시위학생이 최루탄 자욱한 거리로부터 황급히 달려 들어와
소설책을 뒤적이던 저를 부끄럽게 만들던 곳도 그곳이었습니다
3
"우리 늘 만나던 데 있잖아. 종로서적 앞, 거기서 만나자."
나는 마치 십년의 세월이 없었던 양 자주 만나던 친구 대하듯 말햇다.
"종로서적 없어졌다며?" 친구의 목소리는 기운 없이 쓸쓸했다.
(중략) 종로서적이 없어졌다는 게 더는 책방이 아니라는 소리지
그 건물이 아니니까 그냥 그 앞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친구는 강한 어조로 "싫어"라고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왜? 그냥 보기 싫어서. 나는 더는 권하지 못하고 호텔 커피솝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친구의 마음이 옮아 붙은 것처럼 나도 한동안 쓸쓸한 감회에 젖어 또 한 친구를 생각했다.
( 박완서의 산문, 「두 친구」 중에서 )
이런 이야기가 어찌 이 할머니 작가와 그 친구만의 사연이겠습니까.
그 지점을 '종로서적 앞'이라고 부르던 모든 이들에게 섭섭한 소식일 것입니다.
서울 한복판, 엘리베이터까지 달린 커다란 건물 전체가 책방이란 사실에 입을 딱 벌리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책방 구석구석을 훑어보느라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던 날의 기억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참으로 쓸쓸한 뉴스일 것입니다.
학생 수가 줄어서 결국 문을 닫게 된 산골 분교를 모교로 둔 사람의 서운함이 그럴 테지요.
어린 시절 그네를 매고 놀던 느티나무가 태풍에 쓰러져 누운 것을 보는 사람의 느낌이 그럴 테지요.
해마다 복사꽃이 흐드러지던 집 근처 과수원이
아파트 부지로 파헤쳐지는 것을 보는 사람의 안타까움이 그럴 테지요.
비디오 가게가 이사간 자리에 빵집이 들어서는 것을 보는 영화광의 심정이 그럴 테지요.
그것은 상실감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일까요.
종로 2가 근처에서 사라진 책방이 종로서적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처음도 아닌데 왜 그리 허전한 것일까요
(이를테면 '양우당' '삼일서적' '동화서적;을 떠나보낼 때도 그했던가 싶은 것입니다).
그것은 '종로서적'이 우리들 가슴에 단순한 책방 이름으로만
자리 잡고 있던 것이 아닌 까닭일 것입니다.
그만큼 이야기를 간직한 장소로서
'젊은 영혼의 정거장'과도 같은 곳이었던 까닭일 것입니다.
책방은 일종의 '성소(聖所)'입니다.
거기서 얻은 '말씀' 하나가 인생을 바꿔놓고,
그 바뀐 인생 하나가 세상을 바꿔놓기도 하니 말입니다.
나약한 이들이 힘을 얻어 나가고 어리석은 이들이 지혜를 얻어 나가는 곳이니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종로서적은 '조계사'나 '명동성당'과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곳이었다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학창시절..전철타고 .종로에나가서 종로서적에서 책 사들고
.집에 오는길의 전철 안에서 읽을 때의 행복감
전 주로 2층에 있는 기독교 서적 자리에 .갔었지요
생명의 말씀사, 보이스사 책..그리고 열화당의 미술책.
을유문고,범우사, 이광수 전집의 삼중당,의..책들..
지금은 카페건물이나.음식점으로 바뀐 .장소..
..요새 그 근처의 영풍이나,교보,반디앤루디스서점에 가도
종로서적의 추억.만큼은..영 ...
..청계천의 헌책방도..예전 같지는 않고..
.. 추억의 물건들이 생각나는 것은.
내가 그만큼 나이들었다는 것이 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