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聞이 不如一見이라
말로 글로만 듣고 배웠던 中國, 좋은 시절 因緣맺어
56개 민족 13억 인구의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생산 및
소비시장을 가진 변화와 기회의 땅 중국여행의 기회를 주고 함께 하게된 아름다운 인연에 감사를 드린다.
가지 않은 길은 항상 두렵고 마음 설레는 것
기쁨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해외 첫 나들이는
유달리 겁이 많고 순하기 만한 딸, 아들놈이
어미 에비 없이 밥은 잘 챙겨먹고 학기말 시험을 앞두고
스스로 알아서 공부는 잘 할련지
마음 한켠 걱정이 앞선다.
평생을 두고 흔치 않은 부부동반 해외여행의 좋은 기회라 아내도 선뜻 따라간다고 해놓고선 내심 걱정이 되는 눈치이다.
4박 5일의 짧은 여정에 챙길 것은 왜 그리 많은지
여권, 디지털카메라, 메모리카드, 차표, 고추장, 김, 물, 과자, 귤, 감기약, 정로환 소화제, 피부약, 립스틱, 속옷, 장갑...
어∼휴∼
여행용 큰 가방은 큰집 조카 공군사관학교 생도시절
지급한 것을 빌리고,
겨울 잠바는 아내가 아들놈 용돈 40만원 모아 둔 걸로 사주겠다는 걸
극구 사양하고 아들놈 오리털 파카로,
운동화도 아들놈이 작아서 안 신는 걸로 내한테는
한 치수 크지만 운동화 끈을 바짝 잡아당기면 신을
만 하다.
쓸데없는데 돈을 낭비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집에 있는 걸로 충당하기로 했다.
아 글씨 경제도 어려운데...
설렘과 떨림
내 유년의 봄 소풍, 가을운동회 하루전날 잠 못 이루는 밤처럼 몸을 뒤척이다가 풍선같이 부푼 가슴을 안고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동대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11.30.새벽2시
심야우등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로등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새벽6시경,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웬 gate(門)은 그리많노 두리번 두리번
촌닭이 묻고 물어서
미팅장소인 3층 K/L카운터 이르러
구석진 의자에서 사가지고 간 24시 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비행기 출발 2시간 전 약속시간인 07:00경
이번 여행 인솔자 NASS항공 이혜선님과
000 혁신기획팀 000 팀장님을 비롯한
경향각지 선발된 善남자 14명, 동반하신 부인 9명,
꿈 많은 일곱 살 어여쁜 울 공주님, 모두 24명이
새로운 인연에 감사드리며 수하물등 공항수속을 무사히 마치고
中國東方航空(MU5052) 09:15경 푸른 창공을 향해 사뿐 날개를 펼쳤다.
기내 탑승객 대부분은 우리나라 사람이고 간혹 덩치
크고 코 큰 외국인이
눈에 들어온다.
참 예쁘기도 하여라!!
女 승무원들은 하나같이 MISS KOREA 울고 갈 정도 다 예쁘네 중국 비행기인데도 한국 女 승무원이 2명이나
탑승해 생긋 웃으면서
친절히 안내를 해주니 고객 만족도 설문조사지에는 인심 후하게 올 백점 美人計에 약한 나?
옆좌석에 있던 아내는 空士 졸업 후 군인 신분인 큰집조카가 설문조사에 응했더라면 겨우 과락이 면하는 60점 정도 밖에주지 않았을 터인데 하고 훈수를 뜬다.
비행기 이륙 후 15분 경과후 대기안정권에서 順航을
하자 단한 밥과 빵 음료수를 곁들인 기내식이 나온다.
나의 60여개조의 체세포들이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은걸 보니 먹을만하다는 사인
오~우~케이
창문 밖 흰 구름 떼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노라니불안정한 기류로 뒤뚱뒤뚱 同體가 흔들려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上海浦東國際空港에 10:50(한국 시차 1시간) 육중한
몸매를 가뿐 내려앉았다.
공항 마중 나온 중국 현지가이드 조그만 덩치에 야무지게 생긴 조선족 3세 李貞花(32세, 미혼) 양의 유창하고 친절한 안내로 上海, 蘇州 관광에 나선다.
《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사랑하고 》
浦東空港에서 浦東시내 까지 30km를 현대과학의 최첨병 독일기술의 자기부상열차로 최고 시속431km로 쾌속 질주 浦東시내로 진입하여
낯선 이방인의 氣를 한풀 꺾어 놓는다.
북한 김정일이 上海(shanghai)를 보고는 천지개벽하였다고 깜짝 놀라고 내 기억 소자에는 설운도의 상하이
트위스트가 메모리 되어 있는 상해는
1320만의 인구, 유동인구가 300만이나 되는 2001년
APEC국제회의를 개최한 중국경제의 요람지로서,
자본주의 보다 더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도시
《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에어콘 없이는 못산다 》
기온이 40도 가 넘어가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습관 때문에 실제 기온보다도 더 낮게 오늘 날씨는 39.5도라고 공식 발표하는 이상한 나라
전기가 부족하여 7∼9月 경 공장은 일주일에 한번씩
의무적으로 돌아가면서 쉬어야만 하고 에어콘은
우리나라 LG에어콘이 인기 짱∼
《 건너고 싶으면 건넌다. 다 알아서 간다 》
자전거 王國, 자전거도 면허증을 따야하고 등록하여
세금을 내야하며, 사람과 자전거 오트바이 자동차들이 서로 뒤엉켜 엉망진창 무질서 속에서도 질서를 찾아가는 희한한 도시
우리처럼 조급하고 서두르지 않아서 그런지 교통사고율은 높지 않으며, 자동차값은 우리나라 2배 가량 비싸며 기름값은 2배 가량 싸며 대신통행료가 엄청 비싸다고
하네 그려~
南浦大橋 1991년 12월에 준공하였으며 8,346m로
강택민 주석이 준공식때 親筆 휘호를 浦자를 아랫점을 찍어 공식석상에서
親筆을 고치지도 못하는 실수를 강물이 영원히 다리
아래로 흘러 간다고
꿈보다 해몽이 멋진 언어의 유희라
점심은 첫날 첫 음식이라 한껏 기대를 하고
중국 현지식으로 붉은 휘장으로 찬란한 東之杰大酒店
에서(소고기, 돼지고기튀김, 두부, 콩나물, 잡채, 푸른 나물, 달걀, 달걀국, 흰밥)
여덟 八자를 좋아해서 여덟 가지 음식을 내놓았다.
온통 기름범벅 찐한 향신료로 영 젓가락이 가질 않네
먹성이라면 나도 왕년에 남한테 지지 않았는데 허허
『기대가 크면 실망도크다』더니 펄펄 날아가는 흰밥에
가지고 간 고추장에 벌겋게 비벼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차에서 내릴 때부터 붉은 과일
(홍모)을 사라고
졸졸 따라 오던 상인이 식당 입구에서부터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결국 부산직원 사모님이 3천원을 주고 싸서 모두가 나눠 먹었는데 새콤달콤하니 먹을 만 하였다.
상해 임시정부청사로 가는 길목엔
집집마다 빨래들이 대나무 꼬챙이에 끼워져 만국기처럼 펄럭이고 난방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인지 初老의 노인네들이 겨울 햇빛이 잘 드는 양지바른 쪽에서
처량하게 있는 모습이 60년 70년도
내 유년의 초등학교 시절 노는 시간마다 쪼르르
뛰어나와선 겨울 햇빛 사냥하던
추억이 아스라이 파나로마 되어 떠오르고
마당로(馬當路)에 초라한 건물의 3층짜리 붉은 벽돌집 임시정부청사는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에 나라 잃은 설움을 곱씹으며 넓디넓은 중국 땅을 유랑하면서 오로지 조국광복을 위해 온몸을 던졌던 한인애국단의 숭고한 애국 혼이 살아 숨쉬는 빛 바랜 태극기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대한민국이 지금 이만큼 설 수 있는 영광된 자리와
내가 존재하여 살아 숨쉬는이 기쁨의 환희는
그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구나.
애국 선열들이여! 감사합니다.
임시정부청사에서 車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는 홍구공원은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 문학가인 루신공원으로 改名되었다.
梅軒 윤봉길의사
1932년 김구로부터 지시를 받고 4월 29일
일본천황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 및
상하이사변 전승기념식이 열리는 훙커우공원
[虹口公園]에 들어가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와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河端貞次] 등을 즉사시키고,
일본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주중(駐中)일본공사 시게마쓰[重光葵] 등에게 중상을 입혔다.
중국 장제스(蔣介石)은
" 백만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한사람의 조선이 해냈다"라고 찬탄하였으며
"丈夫出家生不還"
-사내 대장부는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은 왜 사느냐.
理想을 이루기 위해서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1930년 10월18일 망명지 청도에서의 書信)
만일 너희들도 피가 있고 뼈가 있다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애국 충정이 절절이 흘러 넘치는 이 서신을 읽는 순간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율을 느꼈다.
대한남아의 드높은 기상을 세계만방에 떨친
민족혼이 있었기에 오늘의 榮光된 우리 있음에
그 뜨거운 가슴을 가슴으로 끌어안았습니다.
이 한 목숨 조국을 위해!!
다음 여행지는 상해의 상징 "세계 건축 박물관"이라
불리는 탄관광으로
중국의 5천년의 역사를 보려면 시안(西安)을 5백년역사를 려면 베이징(北京)을 근대 100년 역사는 상하이(上海)를 최근 10년의 역사를 보려면 푸동(浦東)을 보라는 말이 있다.
외탄지역은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소련등
세계열강의 앞다투어 식민지 개척 하였던 시절,
시공된 유럽풍 복고주의의 다양한 근대화 시대의 석재 건축물들이 아직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황포강 저 너머에는 아시아 최고높이의 방송수신탑인 동방명주와 88층 초고층 빌딩인 진마오 빌딩등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멋진 위용을 당당하게 뽐내고 있으며
상해시내에는 30층 이상 건물이 100여개가 마천루를 이루어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화려함과 소박함이
균형과 조화를 절묘하게 이루어내
모든 것이 共存하는 메트로폴리탄(mettropolitan)
상해
황포강에는 배들이 뿌∼뿌∼ 뱃고동 울리며
쉼 없이 넘나들면서
상해의 기적을 이루어 내고 황포강가에 1886년 영국이 조성한 황포공원은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외탄관광후 돌아오는 길목인 지하도 어귀에서
눈이 초롱초롱한 나이 어린 걸인소녀가 나하고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이방인의 발길을 자죽자죽 가로막네
생존의 몸부림이겠지만 어∼허 맹랑하기도 하고
돈 천원 적선에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상해 夜景이 그렇게 휘황찬란하고 아름답다는 가이드의 유혹을 뒤로하고 아쉬움을 남긴 체 , 아득한 지평선 저 너머로 태양이 뉘엇뉘엇 넘어갈 무렵
다음날 일정인
蘇州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물이 많아 고기도 많아 魚, 쌀이 많아 禾, 魚禾之鄕 蘇州라 하늘엔 천당이 있고 땅에는 蘇抗(소주,항주)이 있다"
그만큼 풍광이 좋고 살기 좋은 곳이라 미인이 많고 비단이 많고 수로가 발달하여 동양의 베니스라 불리는 물의도시 정원의 도시로 유명하고 소주의 옛 이름은 고소성(姑蘇城)으로 춘추 말 전국 초 오왕 합려와
그의 아들 부차의 臥薪嘗膽의 전설이 있는 것으로
옛날 중국 사람은 "소주에서 나서 황주에서 자라서 계림에서 놀고 광동요리를 먹고 원주에서 묻히는 것이" 소원이란다.
광동요리는 달리는 것은 자동차 빼고 나는 것은 비행기를 제외하고는 다 요리를 하며 곰 발바닥요리 박쥐가
모기를 먹고 모기
눈알 요리를 먹으면 눈이 밝아진단다.
땅거미 내려앉아 어스름이 짙게 깔린 저녁,
가도가도 끝이 없는 대평원 쭉 뻗은 고속도로 길 양편
으로는 우리나라 굴지의 선전탑을 비롯하여 네온사인 선전간판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변모하는 도시의 인상을 남긴다.
웬 술집이 이렇게도 많은가?
식당도 호텔도 "酒店"간판을 내걸었다.
첫날밤은 소주에서 제일 시설이 좋다는 天平大酒店에서
결혼 후 호텔에서 처음으로 달콤한 신혼 같은
아름다운 밤을 보냈다.
06:35경 기상하여 호텔내 식당에 아침을 먹으로 가는데 만나는 호텔 종업원들이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다. 친절과 서비스의 정점인 호텔이
이 정도이니까 다른 곳은 일러 무삼 하리오?
나는 속으로 "최상의 치안서비스를 위해서 주민과
함께 신뢰받는 경찰, 고객 감동을 위해 거듭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치는
대한민국 경찰의 서비스 정신을 좀 본 받아야 되겠군 허허" 하고 되뇐다
여보(여권, 보따리) 사랑해^^*
하도 가이드가 여권을 꼭꼭 챙겨라고 강조를 해서
어떤 우리나라 할머니 여행객중
한 분이 여권을 베개 속 안에 두고 와서는 찾느라고
혼쭐났다며
여권을 보지만 말고 만져보고 확인하라는
가이드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둘째날 첫 여행코스인 寒山寺로 향한다.
가는 차길 옆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출근하는
남자들의 자전거 앞에는 장바구니를 담을 수 있는 시설이 있어 여기서는
아들은 황제 아내는 황후 남편은 머슴이란다.
퇴근 후 남편이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을 짓고 집안일
을 말끔히 해야하고
그 대신 여자도 직장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단다.
최근에 한류열풍으로 대장금이 중국대륙을 후끈
달구면서 중국남편들이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여자처럼 하라고 부부싸움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사회는 그 옛날 원시사회 엄마가 중심이
되었던 모계중심사회로 회귀하고 있다고 하는데 일벌
처럼 살아가는 기러기아빠신세가 불쌍한지고 울 마나님도 앞으로 중국처럼 황후대접을 받으려고 하면 큰일인데 .이런이런
소주 시내 전체가 수로로 거미줄처럼 연결돼 대동맥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독한 황제 밑에 역사가 이루어진다 》고 건축 토목장비가 발달하지 않은 그 시절 순전히 한사람 한사람의 피와 땀의 역사 수양제의 경항대운하는
수많은 백성들의 애환이 서려 있었으리라
한시간 남짓후 寒山寺에 도착
중국은 다 큰 줄 알았는데 그리 크지 않은 절
절 입구 마당에서 香을 다발로 듬뿍 사루어
소원을 비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종교는 아편이라 하여 엄격히 통제하였던
공산주의 사회에서 개방화의
물결을 느낄 수 있었고
唐나라 시인 장계(張繼)가 몇 차례 과거 시험에
낙방하고
돌아오는 새벽녘에
배를 타고 한산사 부근을 지날 때 쓸쓸히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듣고 지었다는
풍교야박시로 더 유명해진 절
풍교야박(楓橋夜泊)
月落烏啼霜滿天(월락오제상만천)
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외한산사)
夜半鐘聲到客船(야반종성도객선)
'달도 지고 까마귀 우는 어두운 밤
찬서리 하늘에 가득찼네
강촌교(江村橋)와 풍교(風橋)사이
어부의 불빛을 대하며 근심에 젖어
잠 한숨도 이루지 못하였네
고소성(옛날 소주의 지명) 바깥의 한산사에서
새벽녘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타고 있는
뱃전까지 울려 나를 더욱 슬프게 하네'
비움으로써 다시 채워지는 텅빈 충만으로 다가오는
이 겨울
물질과 권력은 가진 것만큼 더 허전하고 공허함이라
내 존재의 뜨락에 욕심그릇을 조금 들어내어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 상생의 공간을 남겨 두어야 겠다.
다음 여행지인 虎丘塔은
춘추전국시대말기 吳나라 왕 부차가 그의 아버지 합려의 묘역으로 조성한 것으로 그를 매장한지 3일째 되던 날에 하얀 호랑이가 나타나서 무덤을 지켰다는 전설에서 虎丘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높이 40m의 야트막한 언덕에 塔의 높이는 47.5m
팔각칠층 석탑으로 번개를 일곱 번 두들겨 맞아 15도
가량 갸우뚱 기울어져 피사의 탑을 연상케 한다.
호구탑의 입구엔 오왕 합려가 천하의 명검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시험을 한 試劍石이 아직도 있으며,
조금 오르다 보면 천인석이 나오는데
이 돌은 두 개의 전설이 있다
하나는 오왕이 자기 무덤에 명검과 보물을 숨겨두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무덤에 동원된 사람 천 사람을
죽일 음모을 꾸며
너른 바위에서 독한 술에 약을 태워 독살하였다는 전설과 또 다른 전설로 천명이 너른 바위에 빙둘러 앉아서 생공이라는
고승의 설법을 들었다는 설이 있다.
千人石 뒤편에는 나무꾼 유동빈이 바둑을 두다가 도끼자루가 썩었다는 二仙亭이 있으며, 올라가는 입구엔
오왕 합려의 유체와 함께
3,000여 개의 검이 묻혀 있다는 劍池가 있고,
한때 진시황이 오왕의 무덤을 파다가 호랑이가 나타나
그만두었다는 말이 있다.
다음 여행지인 拙政園은
明나라 벼슬을 하였던 王獻臣이 落鄕하여 졸장부가
정치에 쫓겨나서
庭園을 지어서 "拙政園"이라 한단다.
1509년부터 16년에 걸쳐 지인으로 부터 산수 32폭 그림을 받아 지었다는
개인 정원으로서는 너무 큰 1만5천평 규모에 중국인의 대륙적인 끈기와 느긋함을 엿 볼 수 있었다.
정원 입구 假山을 지어 중국인은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는 성품을 나타내며
10년은 사귀어 보아야 본 마음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 정원은 東園, 中園, 西園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가 가와도 비를 맞지 않고 걸을 수 있도록 통로식
누각을 지었고
꽃이피는 화사한 봄, 연꽃이 피어있는 여름,
붉은 단풍의 가을, 하얀 눈을 연상케하는 겨울의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연못과 산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진 배치는 절로 입이 벌어진다.
졸정원 구경 후 바쁜 여행 일정으로 마땅히 자기 소개할 겨를이 없어서 장가계로 가기 위한 상해 홍교공항 가는 버스 안에서 각자 소개를 하기로 하였다.
낯설고 물설고 함께한 사람까지 설어서 아직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고무시켜야겠다는 사명감하나로 나의 소개와 함께
잘 못 부른 노래지만 배일호의 "장모님" 한 곡조 뽑았다
"화초처럼 곱게 곱게 기른 딸을 나에게 내어주시며..."
자기 소개 때 나처럼 해외여행은 처음 인 분,
미국, 유럽, 러시아등 자주 해외여행
경험이 있는 분이 있었다. 와∼ 좋겠다
시간의 여백을 현지 가이드가 궁금한 것 질문하라고
하여서
중국 경찰 공안의 위치와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물으니
대답을 영 회피한다.
중국 공안은 가까이 하긴 너무 먼 당신
하기사 우리나라도 병원과 경찰서는 될 수 있으면
안 가는 것이 좋다지만
중국 공안은 주민의 두려움의 대상으로 각인되어 있는가 보다.
앞으로 개방화의 물결로 점진적으로 변해 가겠지
그리고 토지 사용권은 최고 기한이 70년이고
아파트는 건물 껍데기만 지어서 분양
하면 내부 인테리어는 門짝부터 해서 모두 개인이 해야하며, 거리엔 폭스바겐 자동차가 대부분이다.
북경에는 올림픽을 앞두고 현대 소나타가 씽씽 누빈다는 말씀. 우쭐
중국인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휴대폰은 삼성 애니콜이라며, 가이드도 내 보다 훨씬 나은 신형모델로 갖고 있네, 휴대폰 통화를 하면 거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같이
통화료를 내어야한단다. 번호를 잘못 알고 자꾸 걸면 왕짜증 나겠지
상해 홍교공항에서 장가계로 가는 비행기안은 대부분 한국관광객이다.
여기서 부산이모(직원사모님)가 특이의 유머 감각으로 한바탕 웃긴다.
병이든 늙은 시어머니가 병수발하는 며느리가 볼 때
되면 통장 여러 개를
보다가는 얼른 숨기곤 하였는데
저 통장에 돈이 많이 있는 줄 알고 큰며느리 작은며느리들이 앞다투어 열심히 찾아와선 봉양을 잘하고 그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통장을 보니 천원씩 저금하여
5천원이 들었다고 하여 장내를 한바탕 웃긴다.
울어봐도 불러봐도 다시 못을 어머니여!
어머님 살아생전 효도를 다하여라
상해 홍교공항에서 국내선인 중국동방항공 비행기로 2시 가량 어둠을 뚫고서
날아 늦은 밤에 도착한 장가계공항은 수하물 찾는 과정이 아수라장이고
시골 간이역을 방불케 하는 초라한 공항이다.
장가계공항에서 버스로 1시간 가량 이동 현지가이드
이령(23세,여 조선족3세 경력 1년반)의 안내로
亘立國際酒店 장가계에서 제일 시설이 좋다는 별
4개짜리 호텔이 우리나라 장급 여관보다도 못하다.
뜨거운 물이 제대로 나오나
울 마님이 아침에 샤워하다간 차가운 물벼락에 뒷걸음질쳐 엉덩방아를
찧어서 하마터면
낯설은 외국에서 큰 일 날 뻔했다.
문화와 언어의 차이겠지만, 좀 특이 한 것은 호텔 비품창고는 工作間이고 종업원들은 工作員이라면 명패를 달고 다녀서 여기가 스파이 양성소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호텔 투숙객 인원이 상부에 보고되고 버스 운전사는
그날 일일동향을
상부에 보고한다고 하네 뭐 보고 할 것이나 있나
구경하고 밥먹고 똥누고 특급비밀도 아닌데 허허
중국관광 셋쨋날 12월 2일 아침 09:00경 호텔 문을 나서니 가랑비가 가랑가랑 내린다.
여기날씨는 기후변화가 심해서 1년 365일중 200날은
굿은 비가 내리고
산에서는 비가 오다가 말다가 해서 우산을 준비해 길을 나섰다.
미니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산길을 열고
山門에 들어서니
왼쪽을 보고 와, 오른쪽을 보고 와,
수백미터의 주상절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張家界(장씨 마을)는 BC200년경 한나라 유방을 도와
천하를 평정한 책사 장량의 스승 황석도인이
道를 닦았다는 곳,
장량이 토사구팽을 눈치채고 도망쳐서
정착한곳 이라는 유래가 있음.
人生不到張家界
百世豈能稱老翁
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수 있겠는가?
아득한 세월 3억 8천만년전 망망바다가 지각변동으로 치솟아
억만년의 풍파세월 이루어낸 절경으로
산수화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관광객이
해마다 40만명이상 다녀가면서
한국이 개발 한 것이 다름이 없고 한국 간판과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사람으로 전혀 낯설지 않다.
세계제일의 326미터 백룡엘레베이트를 타고
1분 58초에 산 정상에 올라서
천군만마가 달려와 품에 안기는 듯한 산들이
눈에 아찔한 迷魂臺, 遠家界
세계에서 제일 높은 천연다리 天下第一橋난간에는
이 곳을 찾는 연인들이 죽을 때까지 영원한 사랑하자는
사랑의 맹세와 함께 자물통을 채워 걸어 놓고
영원한 사랑의 약속하고선
열쇠를 천길 낭떠러지 밑으로 던져버리고 난간에는
수천 수만개의 열쇠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천지신명이시여 부디부디 우리나라
이혼공화국의 불명예를 벗어나게 하소서!!
가는 곳마다 장사꾼들이 밤, 고구마, 귤등을 "싸다
천원"을 외쳐대며
끈질기게 따라 붙으며 수공예품 가계에서는
"아가씨, 이뿌다 쩐원"을 외쳐댄다.
어떤 곳에는 밤을 수북히 쌓아 놓고선 천원을 내면
위에만 조금 들어내 주는 약삭빠른 상술을 보이며
밤은 우리나라 토종밤처럼 맛이 있었다.
고구마도 냄새가 구수한데 맛은 보지 못했고
귤은 껍질이 뻐적 말랐는 것이
싱싱도가 떨어져 맛이 없어 보였다.
壽石을 좋아해서 가격을 물어보니
2만원부터 시작해 금방 1만원으로 떨어지고
갈려고 하면 5천원까지 판다.
어떤 직원은 그 자리에서 3천원에 사는 사람,
도무지 가격이 들쭉날쭉
제 마음 대로이다.
천하제일교 가는 길목엔 언제 찍었는지
나의 얼굴을 찍어 열쇠고리를 만들어
천원 하기에 하나 샀다.
처음엔 호기심에 샀는데 가는 곳마다 열쇠고리를
만들어 사라고 따라다니니 영 아니올씨다.
어떤 나이 많은 한국 관광객은 산이 가파른 곳에서
두 사람이 앞 뒤로
들고가는 가마를 2만원해서 노인네들이 힘도 들고
호기심 반으로 타니깐
두 사람이 가마를 태우니 한 사람 당 2만원 도합 4만원과 수고비 1만원까지
포함하여 5만원 빼앗겼단다. 역시 뗏놈들이네
또 나이 어린 어린애와 노인들을 동정심으로 물건을
사주면 너도나도 나와서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고 아예 눈길을 주지 말라면서 물건을 먼저 받고 돈을 줘야지 절대 돈부터 먼저
주지 말라고 현지가이드가 당부를 한다.
직원 중 한사람은 서안에서 돈 천원에 병마용 토기등
두 개 준다고 물건을 싸니 한 개 천원이라고 빡빡우겨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쌍칼로 혁명을 일으킨 중국의 10대원수중 하나인 하룡장군 동상 입구에서는
토가족 자매가 빨간 원색 민속옷 예쁘게 단장하고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북을 둥둥치면서
라훈아의 최근 히트곡 " 아무것도 모르고 사랑했어요
당신을.. "
오승근의 내사랑 받아주오 "장미꽃 한송이"를 잘도
부른다. 흥에 겨운 울 부산이모 어깨춤이 덩실덩실
따라 춤추고
돈 바구니에 돈 천원을 넣고, 어절시구∼
下山은 천자산 케이블카로 천천히 내려오면서
빼어난 경치를 감상하고
점심은 모란봉 북한식당에서 곰쓸개酒를 곁들인
동포여러분 반갑습니다 북한 에미나이와 사진도
한방 박고
모란봉 기쁨조는 보이지 않았다. ㅎㅎ
점심을 먹고 나른나른한 오후에는 울 마님
두 손 맞잡고
물길 시원한 寶峰湖
관광에 나섰다.
보봉호는 협곡을 막아서 담수호를 이룬 것으로
말레이시아 상인이 개발하였으며
수심은 72m 깊은 곳은 119.5m로 길이는
2.51km 비취색 맑은 물과
푸른 산이 절경을 이루어 하늘나라 仙女가 목욕하러
내려와선
아직까지 올라가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아름다운 호수로
일년에 한번씩 보름달은 머금는 두꺼비
형상의 산이 있고
그 아래 산장에서 강택민 주석이 하룻밤 묵어 간 곳이라
어허 이 박 삿갓도 하룻밤 묵어가야 되겠네 그려∼
호수 안에 사는 물고기 국가2급 보호종인 도마뱀을
닮은 아기어(와와어) 밤12시가 되면 애기 울음을
낸다고 하네.
응애응애? 아앙?.
배를 타고 미끄러지듯 보봉호를 유람하면 가는 길목엔 토가족 꽃미녀가
배에서 나와선 산에서 일하면서 부르는 민속노래
"띵아이 이 ...우 후" 나도 따라서 "우∼후" 를 불러주고 오는 길목엔 토가족 꽃미남이 아름다운 노래를
선사한다.
토가족 여인이 배안에 타서 아리랑 아리랑 노래를
부르니 마이크가
우리 일행 중에 가장 이쁜고 귀염둥이 지현공주님께
가고 아빠랑 엄마랑
지현공주랑 셋이서 노랠 하고
마이크는 영원한 부산이모
"사랑은 아무나 하나 중국은 아무나 하나로" 이어지고
드디어 마이크는 시동생(?. 울 부산이모가 그렇게 불렀다) 나한테로
"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다음 순서로 한국가이드 언니한테 가니
아이구 빼기는 와이래 빼노 노래못하면
시집못간다 쿵짝 쿵짜작 쿵짝 그래도 극구 사양해서
중국 현지가이드로 가니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흥에겨워 부산이모랑 시동생 둘이 일어서서
한바탕 흔들어 대고 아무튼 그 날도 나는
체면 없이 또 그렇게 아무렇게 뭉개져
내렸다. 여러 사람의 기쁨과 눈요깃거리로 ㅎㅎ
온종일 산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와서
황후 부인들은 특별히 단체로 18∼19세 토가족 꽃미남이 1시간 반 가량 전선 마사지를 나긋나긋하게 서비스로 껍데기 머슴 남편들은 단체로 토가족 처녀, 아줌씨로 구성된 40분짜리 발마사지를 노골노골하게 받기로 하였다.
여기 토가족 학생들은 학교도 가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 발마사지를 한다고 한다.
처음 받는 발마사지라 기대와 호기심으로 받았지만
그렇게 시원하고 짜릿하고 야릇한 기분은 없었다.
내 곁에서 같이 발마사지를 받던 강팀장께서
낯선 뭇 사내들의 발마사지를 해주는 여인네들이
가련해서인지
저 처녀들도 이것을 하면서 행복할까? 물으신다.
나를 발마사지를 한 토가족 여인은 30대 초반 가량으로
한국말도 제법 할 줄 알며 애기까지 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한국 돈 천원도 제법 값어치가 있어서
팁을 좀 더 받으려고 아양을 떠는데
우리는 공평히 3천원을 주었는데
여보 팀들은 부산이모가 천원을 더 주니깐
저쪽의 딴 총각이 억시(매우) 부러운 눈치로 쳐다봐
사서 마 그 놈도 천원 더 주었다나 맞아 돈 천원 땜에
시기하면 큰일 이제
전신마사지를 끝내고 돌아오는 여보들은
그저 싱글벙글해서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신랑들을 골려주려고 작전이었다 나
이 말을 믿어야 하나
영 아직까지 미스테리이네
발마사지를 끝내고 저녁은 호텔식으로 해결한 후
각자가 가지고 온 소주등 술은 모조리 갖고 호텔 노래방으로 다 모여서 한바탕 흥겨운 잔치가 벌어졌다.
다들 자갈논 팔고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다들 잘 부르네 나는 기꺼이 모란봉 기쁨조를 자처하여
잘나지 않는 몸매를 흔들어대며 땀을 뻘뻘 흘리며 까만 밤과 함께 뭉개져 내렸고 특히 부산이모의 멋진 노래솜씨에 감탄사가 연발하고
나는 " 외로움이 없단다. 서러움도 없어라 너와 나 만의 꿈의 대화를..."
몸으로 활활 타올랐다.
와이래 좋노, 어쩌면 좋노
넷째날 12. 3은 십리화랑, 금편계곡으로
산빛 사냥을 나간다
십리화랑은 쪼그만 기차 모노레일을 타고 십리길을
칙칙폭폭 올라가니 각양각색의 기이한 봉우리들이
세자매봉,
약초 캐는 저 노인...
저마다의 이쁜 전설을 담고 신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안개와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그대로가 멋진 한 폭의 동양화요 산수화라
꾸불 꾸불 뱀처럼 걸어 올라가는 금편 계곡도
수백미터 깎아지르는
바위들이 병풍처럼 아득히 펼쳐져
그 옛날 신선들이 노니는
이상향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바로 여기일세, 아이야 어서가세 어서가세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먹으니
임금의 德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 격양가- 중국 삼황오제시대 요 임금이 지음
나라님이 있는지 없는지 느낄 수조차 없으니 好시절
할 일 있고 주리지 않으니 태평성대로세
그 다음 코스인 황룡동굴에 당도하니
그 옛날 황룡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어 토가족이 제사를 지내고 접근을 꺼려했던 신비의 거대한 석회암 동굴로.
1983년 청년 7명이 발견한 이 동굴은
이듬해인 84년부터 일부 개방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개발하고 있다.
개발과 개방을 동시에 하는 현재 진행형 동굴이다
먼저 행복 하라고 행복의 문으로 들어가서
오래오래 살아라는 염원을 담고
장수의 문으로 나왔다.
벽에 똥칠하면서 살면은 누가 좋아할꼬?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동굴에 들어가며 보게 되는 기기형상의 형상물들은
세 가지 형태로 형성된다.
한 가지는 죽순처럼 땅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형태로 이것을 석순이라고 한다.
또 다른 형태는 고드름처럼 동굴 천장에서
조금씩 아래쪽으로 자라고 있는 종유석이다.
마지막으로 석순과 종유석이 맞닿아 기둥형태를
이루고 있는 석주가 있다.
깊숙한 동굴이다 보니 바깥 기온과는 상관없이
항시 20여도를 조금 넘는 상온상태라고 하니
겨울엔 따듯하고 여름엔 시원한 천혜의 관광지다.
석순과 종유석의 성장 속도는 일년에 0.1mm 로 1m
이미 1만년의 세월을 1m가 넘는 석순만 500여 개가
훨씬 넘으니 1만년 이상 장수를 누리고 있는
세월의 증인이 그만큼 된다는 셈이다.
석순과 종유석의 형상은 마치 피어나는 꽃과 같으며
환호하는 군중의 무리와 같다. 수도하는 고승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으며 과일을 먹으려는 원숭이의 모습도 있다.
전원 풍경을 생각하면 눈앞에 구불구불한 다락논의 논두렁이 보이고,
보석을 생각하면 큼직한 오색 칠보가 눈앞에 나타난다.
어머니의 젖가슴을 생각하면 뽀얀 젖무덤이
보이고 그곳에 우윳빛 물이 흐른다.
상상력을 동원해 마음에 그릴 수 있는 모습이란
모습은 다 있는 곳이 황룡동굴이다.
내 눈에는 거시기 속 빼 닮은 석순이 제일 많더라 ㅎㅎ
땅에서 솟아 자라고 천장서 뻗어 자라 맞닿아 형성된
석주는 르네상스 고건축 기둥의 웅장함과 절묘한 무늬를 다 담고 있다.
바늘처럼 가냘프도록 쪽 곧아 수십 길 높이를 하고 있어
숨결에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석순이 있는가 하면 가위 눌릴 만큼 거대한 석순도 있다
용궁에 있는 하나의 석순은 그 높이가 무려 19.2m라고 하니 거반 20만년의 세월을 땀방울 쌓아올리듯 그렇게 자라온 셈이다.
석순이 천장에 닿으려면 6m정도는
더 자라야 한다. 6만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석순에서
석주로 그 이름을 달리할 수 있으니 인간들에게 저 석순이 석주로 불릴 날을 기약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98년 중국 평안보험공사에 보험료가 1억원(인민비) 보험이 들어 있는 정해신침(定海神針) 석순은 중간 중간 허리가 가늘어서
언제 넘어질지 불안하기 짝이 없네
8명의 성인이 들어가도 남는다는 "용왕의 보좌"죽순의 군상이 춤추며 노래하듯 하니 가무청(歌舞廳)이라 불리는 곳을 지나니
저만치 이 동굴의 절정이며 최고층에 위치한 용궁이다.
천용교(天龍橋)라 이름 붙인 이 다리는 길이가 20m
높이가 45m라고 하는데
철 구조물 하나 쓰지 않고 돌로만 되어 있다
동굴 안의 뱃길이 2,820m 向水河 모터보트로
이동하였으며
조용히 물길을 가르며 앞으로 나간다.
실내라는 특성과 동굴을 보호하기 위해 배터리를
이용한 동력선인 모양이다.
위에서 자라고 아래에서 자라고,
웅장함에 놀라고 교묘함에 취해
재롱동이 지현이는 부자 된다는 돌을 자기혼자
만지려고 욕심을 부리고
산 마을에 땅거미 내려앉을 무렵
나그네
발길을 재촉하여
바로 토가족 민속촌으로 갔으면 좋으련만 싫지만
할 수 없는 필수코스
찻집관광에 간다 상해에서도 와탄관광후 찻집관광을 하였는데
또 찻집을 들렸다 무병장수 건강에 좋다는 판에 박힌 설명이 시작되고
아무도 살 것 같지 않던 분위기가 갑자기 반전되어
너도나도 차를 사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도 지나버려
늦은 저녁은 토가족 민속촌에서 먹었는데
소고기가 엄청 맛이 있어 몇 번이나 더 시켜 먹었고
우리 음식과 맛이 비슷하다.
土家族(토가족)은 언어는 있으나 문자는 없다.
키가 작고 피부가 검은 산적의 후예이며,
제사때 춤을 추는 풍습을 가지고 있고
음식은 김치를 간식으로 쭉쭉 찢으며 먹는데
밥을 먹을 때 밥그릇을 들고 집밖에 나와서
서성이면서 먹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총각이 처자의 발등을 세 번 밟아주면 상대처자가
총각의 발등을 세 번 밟아주어
승낙하는 것이고 총각의 뒤축을 세 번 차면 싫다는 정표란다.
여자아이는 잘 우는 것을 美德으로 여겨서 울음침대가 있는데1주일간 앉아서 운다. 잘 울지 못하는 아이는 잘 우는 이웃집 아줌씨를 초빙강사로 들여서 한달 동안 우는 연습을 과외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고 밤늦은 시간에 토가족 할아버지와 딸 부채춤 공연에 이어 토가족 할아버지 칼춤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공연 중간중간에 2번씩이나 칼을 떨어뜨려
앞줄에 있던 사람이 뒷줄로 다 물러선다.
공연이 끝난 후 노인들의 힘든 공연의
찬사로 돈 천원씩 내고
세계기네스북 올랐다는 3층 누각식 목조건물에는
디딜방아등 내 어릴적 촌에서 보았던 모습을
연상케하는 토가족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었으며
저녁 8시 늦은
시간이라 오전10 오후 4에 펼쳐진다는
토가족의 화려한 민속춤을 구경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못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장가계공항에서 22:40분 출발예정인 中國東方航空
비행기가 내방송도 없고 무작정 기다려 22:43경
200여미터를
공항활주로를 걸어서 탑승하여 비행기 탑승하자마자
탑승객이 채 앉지도 않았는데도 출발하는
조급성을 보인다. 완존히 동네 구르마(달구지)이다
12. 4. 00:47경 西安 비행장에 도착한 제대로
비행기도 뜨지 않고 우리나라와
모든 게 차이 난다고 차이나(CHINA)란다 하하
호텔로 가는 서안 시내 신호등이 50초에서 아래로 1초씩 다운되어 차들과 보행자들이 남은 시간을 알 수 있어서 편리하겠다.
1시간 남짓 달려서 서안에서 제일 좋다는
西安喜來登大酒店(Sherton Xian Hotel)에서 여행 마지막 밤을 자고
서안은 영하 3도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동장군 정벌에 나선다. 오랜만에 햇님이 두둥실 떴다고 멍멍이가 해를 보고 짓는다
햇빛과 비를 만나면 서안에서는 福을 가져온다고 하는 가이드의 안내 방송과 함께 마지막날(12월 4일) 여행
오∼라∼이
《 햇빛만 비친다면 사막이된다 》
진시황 병마용 도착 5분전 약 2키로미터 전방에서
불량기름을 넣은 마이크로버스가 정차하네
이런이런 또 차이나네
마침 인근에 있던 다른 관광버스가 대체하여 병마용
도착하였으며
秦始皇은 겨우 열세살의 나이에 王이 되어, 39세에 중국 중원을 평정하고,
천만세까지 이어 나가도록 원대한 꿈을 품었지만
15년의 짧은 왕조를 이루었으며
넓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여 문자, 도량형을 통일하고
도로를 건설하고 차륜폭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하는가 반면에
불로장생을 꿈꾸어 어린 선남선녀 3천명을 태우고
불사약을 구해 오도록 하였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아방궁과 70만명의 죄수를
동원하여 38년간 시황릉을 세우고 그 안에 수은으로
황하, 양자강을 및 바다를 본떠 만들고 수은을 계속
흐르게 하였으며,
천장에는 진주로 아로새긴 해와 달과 별들이
반짝이도록 하여
지상의 세계를 그대로 펼쳐 보이도록 했다.
도굴꾼이 침입하면 자동 발사되는 활을 장치해
두었다니
과연 시황제로소이다.
詩經과 書經 제자백가의 모든 책은 모두 불태워졌고
자신을 비방했던 儒生 460명을 생매장 焚書坑儒를
일으킨 유례없는 독재자의 모습으로
진시황의 德과 不德, 합리성과 비합리성 양극단을
달린 걸세출의 위인이다.
秦始皇陵兵馬俑/陝西
1974년 한 농민이 발견한 지하궁전으로
그때 농민인 아직 살아 있는 양지발 노인은
병마용 소개 책자를 2만원에 구입하는 관광객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연신 카메라 후레쉬를
터 뜨려니
사인 도중 나가버렸다.
배짱이네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인기연예인이라고
저 노인한테 사인을 받으면
재수가 좋아 복을 받는다고 한단다.
진시황릉을 중심으로 약 2km 이내 사방 지하에
건설한 지하 궁전의 일부로
너비가 60m 길이 210m 지표면으로부터 4.5m 땅속에 10열로 전차대, 포대, 화살을 가진 보병대를 구성되어 있고 병사들의 표정이 모두 다르고 그 손에 무기를 들고 있다.
진시황의 움직일 때 똑같은 위장 마차 4대가 따라 움직였다는호위술에는 깜짝 놀랐다.
중국여행의 마지막날 점심은 중국 현지식으로
흰밥은 밥에 윤기가 없고 퍼석퍼석 하고
16개 만두(돼지, 해삼, 호두, 생강, 연꽃, 원숭이,
잉어, 갈고리, 새우,샐러리, 모자,
토마토, 연꽃, 일본, 꽁, 물, 꾼, 사브사브 진주)가
차례차례로 한사람 당 하나씩 조그맣게 나온다.
그 중에서 호두 만두가 고소하니 제일 맛이 있고 다른 만두는 기름냄새가 조금씩 배어 있어서 별로 였다.
중국의 식탁문화는 모나지 않은 둥근 식탁에
여러 가지 음식을
내놓고 빙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면서 즐기는
평등과 나눔의 지혜를 볼 수 있었다.
양귀비와 현종이 추운 겨울을 보냈다는 華淸池는
수온이 항상 43도로 楊貴妃 암내가 많이 나서 海棠湯에서 목욕을 자주 하였으며, 연화탕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으며, 양귀비 머리 말린 곳 43도로 여산을 바라보고 2층 누각이 있고
서시, 왕소군, 초선과 함께 양귀비는 중국 4대 미인중의 한사람으로 玄宗 李隆基가 자기 며느리인 양귀비를 보는 순간 탐을 내어 희한한 역사를 만들어 내었으며 40대 후반의 안록산이 20대의 양귀비를
엄마 엄마하고 따라다니면서
현종이 없을 때 화청지에서 변태적인 사랑으로
가슴에 흉을 붉은 비단으로 가려 브래지어의 시초가
되었단다.
아니 그렇게 깊은 사연이 볼록 브라자안에
양귀비 품속에서 환락과 유희로 쾌락의 늪에 빠져
간신들의 전횡으로 결국 天寶大亂(안록산의 난)을 맞아
양귀비를 38세 나이로 배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결하였다는 비운의 역사를 그려낸 현장이다.
절세미인 양귀비 미모를 찬탄한 노래
물고기는 물 속에 가라앉고
기러기는 땅 밑으로 떨어지네
달은 구름 뒤로 얼굴을 가리고
꽃은 스스로 부끄러워한다
沈魚落雁 閉月羞花
북한에서 외화벌이수단으로 운영하는 白頭山 상점은
차가버섯 (러시아 자작나무산), 영지버섯, 청심환, 수공예품등 1차산업인 농산물 수공업품이 전시되어 있으나 분위기가 썰렁하니
손님도 우리말고는 아무도 없다.
실내에서는 사진촬영금지로 아직도 개방화 물결이
뒤떨어진다.
조선족 가이드도 중국에서 南韓말이 나오면
한쪽어깨가 으쓱 올라가고
北韓말만 나오면 한쪽 어깨가 축 쳐진단다.
조직이든 국가든 OPEN되지 않는 조직과 국가는
결국 패망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일러준 진리이다.
백두산을 나오니 중국인 6명이 큰 전신주를 앞에서
3명 뒤에서 3명 리어카에 밀고 당기며 힘겹게 오르막을 올라간다.
중국에서는 세사람이 충분히 할수 있는 일을
여섯 명이 열명이 일을 분담해서 하고 노동의 몫도
나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갈수록 심화되어 가는 부의 편중으로 인한
양극화와 중산층이 점점 엷어지는 현실 앞에서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에서 앞으로의 사회가
생산 자동화 심화와 정보화 사회로 소수의 정보엘리트 집단과 아무런 희망도 없는 거대한 영구실업자 집단
화해할 수 없는 두 개 집단이 지구촌에 共存함으로서
인류 파멸의 길로 달려가고
있다고 예견하고 있으니
그 많은 13억 인구가 살아가자니
노동과 자본을 나누어 살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현지가이드의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며
우리나라 한 관광객이 깜박하고선 틀니를
휴지에 둘둘 말아 호텔에 두고 와서 급히 연락을 취해보니 쓰레기통에 있는 것을 다음 여행지로 오는 비행기편이 맞지 않아서 한국으로 바로 붙였는데 한국에 있는 부인이 사람은 오지 않고 틀니부터 와서 여행도중 잘못되어 저승길로 갔는가 싶어 화들짝 놀랐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서안 비행장으로 가는 도중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또 멈쳐 선다.
아이구야 이거 큰일인데 비행기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다행히 기사가 버스 뒤로 가서 몇 번 툭툭 치니 시동이 걸린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더니 버스까지 사람을 닮아가네
서안공항에서 中國東方航空(M5021) 12.4. 17:24서울로 향발 2시간 40분 2002km 훌 날아서 20:40분경(시차1시간)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안착함에 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고
그 동안 전원을 꺼두었던 휴대폰을 개방하여
안착신호를 딸, 아들한테 신고하고 나니
인천은 현재 영하8도 하얀 눈이 내려 나를 반긴다.
여행 내내 직원들에게 선물은 무엇을 해야하나
고민 고민하였는데 먼저 여행하고
돌아온 직원들의 선물이 호랑이 연고, 짝퉁
가방등이여서
내가 평소에 즐겨 읽고
감명 받은 책( 장자이야기, 채근담, 선가귀감 서산대사 깨달음에 이르는 길,
법정 스님의 산에는 꽃이피네, 무소유, 데레사수녀의 이야기 등...)을
사서 양식 진주 휴대폰 걸이와 함께 선물하였다.
《 파동과 주파수가 비슷한 에너지들은 서로
공명해 상대 energy를 증폭시킵니다. 》
처음 떠난 해외여행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고
내 존재의 안목을 확장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기며 나선 중국여행은 행복이란 무엇인가?
위로 견주면 모자라고 밑으로 견주면 남는 것,
행복이란?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
화려하고 큰 물질적인 껍데기 보담
일상생활의 사소함에서 묻어 나오는 이 행복,
길섶 풀 한 포기, 하찮은 돌멩이 하나에
생명이 깃 들여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한없이 행복에 겨운 날갯짓을 할 수 있으면
존재의 참 행복이 아닐까?
매양 우중충하고 뿌연 날씨
물이 부족하고
전기가 부족하고
생기 잃은 가로수
집을 떠난 이는 집을 그리워하고
더없이 푸른 산 맑은 물 깨끗한 공기가 나를 반기는
수려한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고,
내 곁에 늘 뒷바라지 해준 가까이 있는 아내,
자식새끼들이
고마움을 느끼게 해준 뜻 깊은 여행이었다.
누에가 나방이 되기까지
침잠(沈潛)에 세월에서 깨어나
느릿느릿 느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또 한편으로는 거대한 공룡이 집어삼킬 듯이 빠르게
달려오는 블랙홀 제조업의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도록 우리 국민 각자가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변화를 거듭할 때
우리 민족이 세계 열강 속에서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3억 8천 만년전 망망대해 오 오랜 세월이 이루어낸
장가계가 변화를 거듭하는 중국역사가 그러하듯
종의 기원을 쓴 찰스다윈은
"강한 種이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種만이 살아 남는다"
영원 불멸의 상징 저 太陽도 100억년이 지나면 생명을 다하고 우리 몸 안의 세포들도 1초에 천만개식 바뀐다고 합니다.
우주의 역사, 지구의 역사, 생명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변하는 자만이 살아남습니다.
" 因緣이 있으면 천리 밖에서도 만날 수 있다 "는 중국 속담처럼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고 또 만나는 영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인연에 감사 드리며 인연이 있으면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도 다시 만날 따뜻한 인연을 가슴깊이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모든 것에 고맙고 감사합니다. 끝.
첫댓글 덕분에 님 따라 중국 여행한 기분 들어 즐거웠습니다 한산과 습득 그 얘기 나오는 그 절은 아닌....가요 한시와 윤봉길 의사 님 글 빌려 갑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혜강님 좀 나눠서 올리시지 않고요. ^^* 한산사도 다녀오셨네요. 다시 와서 천천히 감상해야겠습니다. ()
좋은글 고맙습니다..대륙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잘 보고 갑니다. 나중에 다시 읽어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