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화로 기록하는 우리마을 기억찾기 in 미군부대(2022.7.5.)
의정부문화원(2021)
2021 어르신문화 프로그램 어르신문화활동지원
■ 발간사_ 윤성현 의정부문화원장
■ 명동상회 이옥순 어르신_의정부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양담배가 주요 상품
■ 가나안 피자 최윤복 사장님_의정부1호 피자집_1986년11월 가능동 미군부대 앞
■ 비바양복점 채학권 사장님_1970년부터 CRC미군부대 앞에서 운영
■ 양복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들_
■ KSC 임종현 어르신_KSC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물자를 날라주는 한국사람들에 의해 생
겨났다. 지게를 지고 산악지대로 물품을 운송해주던 사람들이 지고다니던 지게의 모양을 따서
A Frame Army라고 불렀다.
■ 김상배 어르신_KSC관리자로 근무 Korea Service Corps의 약자 한국노무단 _미군부대
지원 역할
■ 빼뻘 지킴이 김성일 어르신_빼뻘마을 통장님
■ 빼뻘 김옥순 어르신_빼뻘에서 포장마차로 시작해 미군 상대 식당 운영
■ 7080 그시절 미용실_1970년대 미용실 풍경 _바닥에 장판
■ 구두닦이 소년_미군부대 앞에서 미군의 군화를 닦아주는 구두닦이
■ 우리 언니들_한국전쟁 후 삶을 이어가야했던 우울한 시절이지만 덕분에 한 가정이 살아갈
수 있었다.
■ 밤송이 삼형제_
■ 장교급 숙소_캠프 홀링워터 지금의 백화점 앞 1953년에 지어졌다
■ 미군 독신자 주택_1953년 이후 금오동에 자리한 캠프 카일내에 지어진 숙소
■ 빼뻘 앞 오복식당_빼뻘 입구에 위치한 식당, 점심이면 사람이 북적인다
■ 전쟁 후 의정부 시가지_
■ 미군 클럽과 현란했던 상점 간판들_가장 잘나가는 마을
■ 빼뻘 운동복 상점_기지촌이라는 특성으로 보세나 구제의류를 통하여 의복을 구입하고 의복
문화를 형성하였다.
■ 지게를 지려다가_멀리 천보산 자락아래 금오초등학교 건물이 하얗게 보인다
■ 고마운 연탄_전쟁 직후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해준 연탄
■ 트럭 위 미군_인근 마을주민과도 친근하게 지냈던 미군병사의 모습
■ 고산 편의점_미군부대 인근 마을에서 오랜기간 편의를 제공해준 곳
■ 마을회관_지금은 마을회관으로 어르신들께서 모여 친목 도모
■ 볏가리 앞 따뜻한 가족_1960년대까지 의정부는 논과 밭이 많았으며 주민의 생업이 농사
■ 소나무 사이 소녀_미군부대 인근 마을엔 소나무가 많아
■ 삶의 현장_미군부대에서 나온 빈 깡통을 싣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모습
■ 아리랑공연_전쟁 후 시민들을 위로했던 공연장 풍경
■ 의정부를 지켜준 국군 전차부대_미군이 철수 후 전차와 미군 용품들을 남겨 놓아 사용
■ 거리풍경_전쟁후 경운기와 자전거가 교통수단의 주를 이룸
■ 빨랫줄의 노래_빼뻘마을 한가로운 아침 햇살에 옷가지가 리드미컬하게 널려 있다
■ 어름가게가 있는 골목_한여름 어름을 팔았던 가게는 시민들에게 여름 한철 시원함을 선사
■ 미장원 앞 한가로이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_리어카에서 쉬고 있는 모습
■ 골목길 판잣집_골목 양쪽에 늘어선 낡은 판잣집
■ 지금의 빼뻘은_미군부대가 철수하면서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
■ 미군부대가 들어오기전에 빼뻘은..._다섯가구 정도만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 문화관과 도라지 위스키 국제인삼주 시음장_1963년 문화극장은 문화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김지미, 김희갑, 최무룡 주연의 약혼녀가 여기서 상영되었다
■ 대한 연탄 공장_연탄은 겨울철 중요한 연료
■ 트럭과 아이들_아빠가 미군부대에 다니는 아이들은 미군부대에 들어가거나 부대 관련 시설
을 이용하는 것이 익숙하였다
■ 아이스크림집 앞 소년_전쟁 후 네모진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다니며 아이스크림을 팔았던
소년의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 고산초등학교와 자전거를 타는 남매_누나가 남동생을 뒤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고 있다.
■ 미군트럭_어려웠던 시절 미군트럭은 마을 주민들의 삶에도 도움을 주었다
■ 결혼식전 신부의 꽃단장_멋진 날 신랑신부의 모습이 요즘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 꽃동네(1950년대)_초가집이 즐비한 천보산 아랫마을 어귀에서 마을 젊은이들이 모여 배구
를 하고 있다. 금오동에는 미군부대가 있어 배구공을 쉽게 구할 수 있었나 보다
■ 미군부대 초소_산속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미군 초소들이 많았다
■ 미군 장병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_두줄 일렬로 서서 가정용 연탄을 옮기는 작업을 돕고 있
다. 독거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 모습
■ 캠프 스탠리 옆 마을, 빼뻘_빼뻘은 고산동 캠프 스탠리 옆에 위치한 마을이다
■ 미군부대 속 한국인_미군부대 내에는 정비, 수리, PX판매, 식당, 세탁실 등등 미군들의 생
활에 도움을 주기 위한 한국인 근무자들이 있었다
■ 미군부대 앞 독바위 마을_캠프 스탠리 건너편에 위치했던 독바위마을
■ 두 집 사이의 문_누구의 공간도 아닌 공간, 반으로 나눌 수도 없는 공간
■ 다리_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도구이다 1970년대부터 국도39호선, 국도43호선을 잇는 신
곡교, 양주교, 그 밖에 금신교 동막교 등이 놓여졌다
■ 미군장병들과 함께_뒤로는 도봉산이 보이고 의정부어린이들과 미군장병들의 모습이다.
■ 다목적 행정시설_캠프 홀링워터 내 행정업무를 맡았던 장소
■ 유류저장탱크 –캠프에세이욘_미공병부대의 유류저장탱크
■ 독신자주택-캠프시어즈_미2사단 방공전투지원을 제공하는 군인과 민간인들 거주
■ 초가집 앞 어린이_미국의 원조를 받던 가난한 시절
■ 독바위 마을에서_캠프 스탠리 배경으로 장난감 총들고 사진찍기
■ 1954년 의정부시가지_Jim Oneil 미군이 촬영한 의정부 시가지
■ 티파니 미용실_고산동 빼뻘마을 초입 위치_당시에 빼벌마을에만 미용실 7개
■ 비바양복점 내부_부대 앞에서 성업 중일 때
■ 눈사람과 어린이_어려운시절 눈은 추위에 더 힘들게도 했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신나고 즐거
운 놀이도구가 되었다
■ 고데기와 드라이기_처음에는 머리를 하기위해 연탄불에 달군 고데기를 사용하였다. 곤로가
나오고 난 후에는 석유곤로에 달궈서 사용하다 휴대용 가스렌지에 달궈서 사용하기도 했다
■ 이정표_빼뻘마을은 아래쪽에서 위쪽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골목길을 중심으로 형성
■ 캠프레드클라우드 앞의 낮과 밤_1960~1970년대 가능동에 있었던 미군부대 앞 화려했던
향군클럽 주변 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