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문 >
이 수필은 2015년에 계간지 『문예 감성』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며칠 전 오후에 ‘옥구 공원’에 들러 일부러 ‘무궁화 동산’에 가봤더니 아직 무궁화가 만발하지는 않았더군요.
저는 아직도 학교나 관공서 화단 정원수와 길거리 가로수로 무궁화가 많이 심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옥구공원 무궁화 동산
삼일 이재영
말복이 지난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집 근처의 ‘옥구공원’을 찾았다. 천천히 걸으면 집에서 30분 정도의 거리라 아내는 매일 아침 식사를 마치면 와서 한 시간쯤 운동한다. 나는 가끔 마음이 내킬 때나 따라오는데, 주로 계절이 바뀌는 봄이나 가을에 와보고 한여름 땡볕에는 거의 오지 않는다
인조 잔디 축구장과 농구장도 있는 공원을 지나서 해발 95m의 가파른 ‘옥구봉’을 관목 가지 젖히고 돌부리를 밟으며 10여 분 오르면, 꼭대기에 있는 ‘옥구정’ 큼직한 정자가 지친 몸을 반갑게 맞이한다.
보통 때는 이 등산로를 오르내리는데 오늘은 너무 더워서, 등산로 입구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이 없는지 찾아보았다.
산자락을 따라 100m쯤 걸어가자, 산으로 오르는 제법 넓고 완만한 시멘트 길이 나타나고 대문처럼 기둥을 세운 입구에 ‘무궁화동산’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동산 입구 좌우에 키를 두 배도 넘는 무궁화 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고, 새파란 잎사귀 사이로 손바닥만 한 무궁화 꽃들이 잔뜩 달라붙어, 청초하면서도 화사한 하얀 꽃잎을 수줍게 펼치며 만개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자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보, 여기에 좋은 데가 있었구먼! 무궁화동산이라는데, 허허.”
“그러게요, 이런 좋은 곳이 있는 줄 몰랐네요. 무궁화 나무가 크니까 무궁화 꽃도 참 보기가 좋네요. 작은 나무는 별로였는데.”
산책로 양쪽으로는 심은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턱 높이의 무궁화 나무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다. 키는 작아도 흰색과 자주색, 붉은색 단심이 섞인 여러 종류의 무궁화 꽃송이가 순박하면서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탐스럽게 피어있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다.
환갑도 지난 초등학교 동기동창인 우리 내외는 어느새 손을 붙잡고 아이들처럼 흔들며, 모처럼 만에 다정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티 없는 동심에 흠뻑 젖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술래잡기할 때가 참 좋았지?”
“그러게요. 엊그제 같은데 벌써 노인네가 되었네요. 술래잡기 한번 할래요? 가위바위보부터 합시다. 호호.”
아내가 장난스럽게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린다.
“노망들었다고 흉보면 어쩌려고? 저~기 사람들이 내려오는 고만! 허허.”
가위바위보는 안 했지만 나는 어느새 상고머리의 어린 술래가 되어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나무에 기대서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단발머리 소녀가 된 아내는 무궁화 나무 뒤에 쪼그려 앉아 숨어서 치맛자락을 보인다.
“꼭꼭, 숨어~라. 치맛자락 보인~다.”
장난을 치며 조금 올라가니 왼편 쉼터에 커다란 안내판이 설치되어있다.
“아하, 무궁화가 영어로, 로즈 오브 샤론(Rose of Sharon)이라네. 성스럽고 선택받은 곳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라는 고만.”
“그러네요. 독립문 건축기념행사 때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됐대요.”
그림도 곁들인 안내판에는 무궁화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기술되어 있었다. 원산지는 우리나라 서해안 지방과 중국 랴오뚱 반도로, 꽃이 아름답고 추위에 강해 세계적으로 널리 심고 있다. 높이 3~5m까지 자라는 낙엽활엽수 종으로 병충해에 강한 생명력 있는 나무다. 꽃은 7~8월 사이(약 100일간)에 계속해서 피고 지며 8월이 절정이다.
“한 송이 꽃은 아침에 일찍 피었다가 해가 지면 떨어진다네? 나는 한 송이가 뒷날 다시 피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가 보네!”
“오매나~ 그럼 백일동안 한 그루에 몇 송이가 피고 지는 거래요? 세상에, 천 송이 만 송이도 피겠네요! 저 큰 나무는.”
무궁화는 목근화, 천지화라고도 부르고, 200여 품종 중에 우리 고유 품종은 70 여종이다. 꽃잎의 색과 중심부의 단심(붉은색) 유무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되는데, 배달계(중심부에 단심이 없는 순백색의 꽃), 아사달계(중심부에 단심이 있으며 백색의 꽃잎에도 붉은 무늬가 있음), 단심계(중심부에 단심이 있고 꽃잎이 백색, 적색, 청색인 계열)로 단심계는 다시 백단심계, 홍단심계, 청단심계로 세분된다.
또한, 꽃잎이 다섯 개이면 홑꽃이고, 안쪽에 별도의 작은 꽃잎이 추가로 있으면 겹꽃으로 불린다.
동양 최고의 지리서인 산해경에 ‘군자국에는 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무궁화가 많은 곳이란 뜻으로 ‘근역’, 또는 ‘근화향’이라고 불렸다 하니, 참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의 근면성과 순결, 강인함이 무궁화의 생태적인 특성과 유사해서 은연중에 나라꽃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일본의 벚꽃, 중국의 국화와 견주어 본다면 우리의 무궁화는 얼마나 훌륭한 나라꽃인가?
8월 땡볕에 땀방울은 송골송골 맺혀 흘러내렸지만, 무궁화동산 산책길을 따라 산 중턱까지 갔다가 아내와 함께 돌아오는 발걸음은 여느 때와는 달리 상쾌하였다.
“길가의 가로수를 모두 무궁화로 바꿔버리면 안 될까? 허허.”
“국회의원 출마하세요. 한 표 찍을게요. 호호.”
모든 학교, 관공서, 아파트 단지의 화단이나 울타리에 거목이 된 무궁화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모습을 상상해보며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 종합문예지 『문예감성』 2015년 가을호 등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