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LP 33RPM 180g Black Vinyl
日本 東洋化成 Pressing
인서트, 스티커 포함
국내 인쇄(Printed in Korea)
팝 발라드 장르를 제시한 80년대 명콤비
어느 시대나 ‘흥행 보증수표’가 되었던 황금 콤비는 무수하다. 특히 가수 이문세를 언급할 때 작곡가 이영훈은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다. 작곡가 이영훈은 이문세를 대형 스타로 만든 1등 공신이었다.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을 지닌 낭만적인 발라드 명곡을 무수하게 빚어낸 두 사람의 조합은 1980년대 대중가요계의 블루칩이었다. 1985년 이문세 3집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의미심장했던 동행은 “음반 발표가 곧 히트”라는 하나의 등식을 성립시키는 거침없는 질주로 이어졌다.
신촌블루스 엄인호 사무실에서의 첫 만남
이문세는 2집에서 <행복한 사람>과 <파랑새>로 가수로서 존재감을 찾기 시작했다. 1985년 어느 날,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사무실에 들른 이문세는 그곳에서 작곡가 이영훈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이문세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 연배쯤 되는 사람이 <소녀>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내 심장을 치더라. 곧바로 가서 곡을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영훈 씨는 ‘나는 아마추어입니다. 히트도 안 될 거구요’라고 답했다. 나는 바로 대중적인 것보다 내가 하고픈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고 이영훈과의 첫 만남에 대해 회고했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신보 준비에 들어갔다. 당시 미완의 상태였던 이영훈의 격조 깊은 사랑 노래는 이문세의 목소리에 힘입어 시대를 대표하는 팝 발라드로 완성되었다.
팝 발라드 장르 개척
이 앨범은 이문세와 이영훈이 콤비를 이뤄 발표한 첫 작품이다. 전곡은 아니지만 이정선이 쓴 <야생마>, <혼자 있는 밤, 비는 내리고>, 유재하가 쓴 <그대와 영원히>를 제외한 6곡은 이영훈의 작품이다. 이정선과 김명곤이 편곡을 맡은 이 앨범에서 여러 곡이 히트했다. 타이틀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비롯해 <휘파람>, <소녀> 등은 1980년대 한국 대중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팝 발라드’라는 새로운 장르를 제시한 명곡들이다. 이영훈은 포크와 발라드 사이의 모호한 장르적 경계를, 현악기가 가미된 클래식 음악 기법을 도입해 명쾌하고도 세련된 어법으로 구분했다. tvN 드라마「응답하라 1988」OST 중 오혁이 리메이크한 <소녀>는 추억을 자극하며 2016년 주요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첫 골든컵을 안겨준 <난 아직 모르잖아요>
대중이 기억하는 이문세의 거의 모든 히트곡은 이영훈이 작곡한 노래들일 가능성이 크다. 1985년 11월 세상에 던져진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그때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던 라디오를 중심으로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노래들의 위력은 지상파 TV로 인기가 옮겨갔고, 결국 각종 대중매체 인기 차트의 최상위 점령으로 갈무리 되었다. 서정적이고 감미로우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타이틀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는 발매 7개월 후인 1986년 6월 18일 KBS TV「가요톱10」에서 1위에 등극했다. 이후 7월 16일까지 5주 연속 정상을 굳건히 지키며 이문세에게 처음으로 골든컵을 안겨주었다.
이문세는 언론 인터뷰에서 <난 아직 모르잖아요>에 대해 “이영훈 씨의 곡이 너무 좋았지만 좀 어려웠어요. 클래식한 요소가 많았지요. 녹음이 다 끝난 상태에서 조금 쉬운 곡 한곡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연습실에서 30분 만에 멜로디가 쫙 나온 거예요. 가사도 그 자리에서 막 나왔어요. 노래도 다음날 한 번에 부른 겁니다. 그 노래는 마치 저에게 은혜를 준, 축복 같은 곡이었죠.”라고 회고했다.
황금 콤비의 신호탄
가수로서 존재감을 획득하며 스타덤에 올랐지만 이문세는 주류 매체인 TV보다 라디오를 통한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당시 전담 작곡가 시스템을 통한 음반 제작, 공연 중심의 활동은 다른 가수들이 시도하기 어려운 신선한 발상이었다. 그런 이문세의 자신감은 이영훈이 만든 뛰어난 노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이 제시한 팝 발라드 장르는 이후 변진섭, 신승훈, 조성모 등으로 이어지며 ‘발라드 전성시대’를 불러왔다. 80년대의 명품 발라드가 무수하게 수록된 이 음반은 15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이 앨범은 이문세-이영훈 황금 콤비의 전성시대 개막을 알리는 뜨거운 신호탄이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이문세 4집
Side. A
1. 사랑이 지나가면
2. 밤이 머무는 곳에
3. 이별이야기
4. 그대 나를 보면
5. 가을이 오면
Side. B
깊은 밤을 날아서
슬픈 미소
굿바이(Good Bye)
그녀의 웃음소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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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발매된 이문세 정규 4집은 대중가요의 부흥을 견인한 1980년대 최고의 명반 중 하나이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이 팝송 시대였다면 그 이후는 대중가요 시대로 전환된 터닝 포인트였다. 국제적인 스포츠행사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가치를 자각하기 시작했던 이 시기에 외국 팝송에 비견할 수준 높은 대중가요 명반과 명곡들이 봇물 터지듯 발표되었다. 당시 라디오를 장악했던 팝송 프로그램들도 대중가요의 거센 침공에 서서히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이영훈의 작품으로만 제작된 첫 음반
가수 이문세와 작곡가 이영훈 콤비가 빚어낸 팝 발라드는 80년대 한국대중음악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밀리언셀러로 존재감을 알렸던 3집 발매 후 2년이 지난 1987년 3월 10일 이문세의 정규 4집은 큰 기대 속에 발매되었다. 명곡들의 향기가 그윽한 이 앨범은 작곡가 이영훈의 작품으로만 제작된 사실상 첫 음반이다. 기타리스트 김광석, 함춘호의 세션과 김명곤의 편곡은 앨범에 무게감을 더했다.
<사랑이 지나가면>과 <그女의 웃음소리뿐>은 세련된 어법과 섬세한 감성으로 채색된 명품 팝 발라드들이다. 김동석 오케스트라의 현악 연주로 구성한 <밤이 머무는 곳에>, 팝과 록의 접목으로 흥겨운 비트를 선사한 <그대 나를 보면>, 리듬감이 배어있는 경쾌한 포크 버전 <가을이 오면>, <깊은 밤을 날아서>, <슬픈 미소>, 그리고 이문세의 가성이 돋보이는 <굿바이> 등 어느 것 하나 뺄 곡이 없다. 타이틀곡 <사랑이 지나가면>은 정훈희, 최성수, 이수영, 아이유 등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며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발라드 명곡으로 존재가치를 부여받았다.
주인공이 뒤바뀐 명곡 <이별이야기>
MBC 대학가요제 출신 고은희와 함께 노래한 <이별이야기>는 혼성 듀엣의 대표적인 명곡이다. 당시 이문세는 자신이 진행하던 MBC 라디오 프로그램「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한 고은희, 이정란과 친해졌다. 4집 녹음을 준비하던 이문세는 방송 이후 이정란에게 이 곡의 듀엣 취입을 제안했다. 하지만 지구레코드와 계약 관계로 인해 음반사 전속이 없는 고은희가 주인공이 된 사연이 있다. 이 노래는 케이블 tVN 드라마「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과 미옥의 사랑을 담은 장면에서 원곡 비전이 배경음악으로 깔려 뭉클함을 안겨주었다.
다양한 버전이 혼재하는 80년대 베스트셀러
8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답게 이 음반은 재킷 디자인이 다른 초반과 재발매음반 그리고 45회전 싱글 변형 버전이 혼재한다. 초반 재킷의 디자인은 칙칙한 분위기였다. 발매 직후 빅히트의 조짐이 보이자 제작사는 즉시 뮤지션 정보를 보강하고 독특한 분위기로 재킷 디자인을 변경해 재발매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노란색 바탕에 이문세의 모자이크 얼굴 사진으로 장식된 음반이다. 285만장이 팔려나가며 조용필에 이어 제 2회 골든디스크상을 수상한 이문세 4집은 그때까지 국내 대중가요 음반 최다 판매 기록의 금자탑을 세웠다. 이는 팝 발라드 전성시대의 본격 개막을 의미하는 시그널이기도 했다. 이 음반의 메카톤급 히트로 이문세는 1988년 MBC 10대 가수로 선정되며 최정상에 올랐다.
밀리언셀러 등극 기념 12인치 싱글
킹레코드는 이 앨범의 밀리언셀러 등극을 기념하는 의미로 12인치 싱글 LP를 소량 제작했다. LP의 일반적인 회전수인 33과 1/3이 아닌 45회전 방식을 택해 확연하게 뛰어난 음질이 매력적인 이 음반은 현재 상당히 귀한 몸값을 자랑한다. 싱글 재킷은 재반 커버사진과 비슷하지만 이문세의 검정 머리카락이 파란색으로 변형되어 있다. 재킷 앞면에 '45 RPM'과 타이틀 2곡을 명기한 정규앨범과는 달리 싱글에는 ‘그女의 웃음소리뿐’, ‘그대 나를 보면’, ‘이별이야기’ 등 수록된 3곡이 모두 명기되어 있다. 싱글의 재킷 뒷면도 정규반과는 약간 다른 사진을 솔라리제이션으로 변색 처리해 특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음반의 엄청난 히트로, 이문세-이영훈은 흥행을 보증하는 당대의 황금콤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제작사 킹레코드도 아시아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 공장을 소유한 메이저 음반사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 앨범은 형식과 내용 즉 공존이 어려운 작품성과 흥행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1980년대 명품앨범으로 손색이 없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이문세 5집
Side. A
1. 시를 위한 시
2. 안개꽃 추억으로
3. 광화문 연가
4. 내 오랜 그녀
5. 이 밤에
Side. B
1.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2. 붉은 노을
3. 기억의 초상
4. 끝의 시작
5. 사랑은 한줄기 햇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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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이영훈 콤비의 명반 3부작 완결판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었던 이문세의 정규 5집(1988년)은 3집(1985년)부터 시작된 작곡가 이영훈과 콤비를 이뤄 대중음악계를 강타했던 ‘이문세 명반 3부작’의 완결판이다. 80년대를 대표하는 황금콤비로 평가받는 두 사람에게 이 앨범은 음악적으로나 흥행적으로나 정점을 찍었다. 이영훈의 음악은 시적인 가사와 탁월한 멜로디가 매혹적인 격조 깊은 사랑 노래들이 주를 이룬다. 그가 만든 노래들은 서정과 격정을 넘나드는 창법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 이문세의 입을 통해 더욱 빛났다. 이영훈의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가 이문세의 창법이 지닌 장점과 잘 어우러진 행복한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발라드 명곡들이 넘쳐나는 이 앨범은 한국 팝 발라드의 명곡 만찬장이다. <시를 위한 시>, <광화문연가>, <붉은 노을> 등 동시다발적으로 사랑받았던 히트곡들은 물론이고 <안개꽃 추억으로>, <내 오랜 그女>, <이밤에>, <기억의 초상>, <끝의 시작>, <사랑은 한줄기 햇살처럼> 등 상대적으로 덜 히트한 곡들도 그리움과 추억의 감성 회오리가 휘몰아쳐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가을에 제격인 좋은 노래들이다. 세련된 팝 발라드를 제시해 발라드 전성시대를 견인했던 이문세-이영훈 콤비는 그때까지 팝송에 밀렸던 대중가요에 대한 대중적 인식에 대전환을 불러왔다.
서울을 대표하는 지명송 <광화문 연가>
이 앨범에는 시대를 초월해 지금껏 소환되고 회자되는 명곡들이 무수하다. 앨범의 문을 여는 감성적인 현악이 따뜻한 기운을 안겨주는 <시를 위한 시>를 비롯해 <광화문 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등은 예술적 감성이 정점에 달한 작곡가 이영훈의 내공을 보여주는 80년대의 명곡들이다. 어느 불쌍한 소녀를 위해 쓴 <시를 위한 시>의 가사는 이영훈 스스로도 음악적으로 만족감을 표했던 노래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은 그가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기 이전의 무명 시절인 1983년 어느 가을날, 서울 혜화동 작업실에서 밤새 작곡한 후 새벽에 가로수 길을 산책하며 영감을 얻은 노래다.
그 중 서울과 광화문을 대표하는 로컬송으로 각인된 <광화문 연가>는 이문세-이영훈 콤비의 수많은 히트곡 가운데 <옛사랑>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명곡이다. 이 노래는 작곡가 이영훈의 추억이 거리마다 가득 채워진 고풍스러운 정동교회와 덕수궁 돌담길을 배경으로 아름답고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를 담아 많은 대중의 공감을 얻어냈다. <광화문 연가>는 1989년 MBC 라디오「금주의 인기가요 20」에서 비 트로트 부문 톱10에 뽑힐 만큼 사랑받았다. 2008년 대장암으로 이영훈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만에, <광화문 연가>는 서울의 여섯 번째 노래비로 덕수궁 돌담 길 옆 정동 길에 들어섰다. 아날로그 마이크와 이영훈의 활짝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노래비는 뛰어난 조형미로 눈길을 끈다. 이 노래비는 광화문과 정동, 덕수궁 돌담길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광화문 연가>가 최고의 서울 노래 중 하나임을 묵묵하게 인증하고 있다.
대중가요 음반에 대한 음반산업계의 인식 전환
이 앨범은 한 앨범에서 여러 곡이 동시다발적으로 사랑받았다. 전작들에 이어 연이은 메가톤급 히트로 인해 정규 5집은 선주문만 수십 만 장에 달했다. 이에 이문세의 차기작에 자신감이 넘쳤던 제작사는 대중가요 음반시장을 뒤흔드는 중대한 결정을 했다. 당시 대중가요 LP 음반가격은 3,300원. 킹레코드는 이문세 정규 5집의 가격을 가요 음반에 비해 가격이 비쌌던 팝송 음반과 같은 수준인 4,000원으로 전격적으로 인상했다. 갑작스런 음반가격의 인상 조치에 전국 소매상들은 불매 운동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가격인상에 대한 시장의 부정적인 움직임에 우려스런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이문세 5집은 그 같은 상황을 비웃듯이 오히려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는 반전을 이뤄냈다. 결국 이 앨범은 대중가요 음반 최다 판매기록을 세웠던 전작에 버금가는 258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는 음반 가격보다 앨범에 담긴 음악의 내용과 질을 중시하는 대중의 힘이었다. 이 음반을 계기로, 외국 팝송 음반에 비해 저평가되어 판매가격이 낮게 책정되었던 대중가요 음반에 대한 음반 산업계 전반에 대대적인 인식 전환으로 이어졌다.
방송계에도 혁명적인 전환점을 제공
앨범의 연속적인 흥행으로 인해 이문세는 1986년부터 3년 연속 골든 디스크상 수상, 1988년과 1989년 2년 연속 MBC 10대가수상을 수상하며 최정상에 우뚝 섰다. 작곡가 이영훈도 당대의 모든 가수가 그에게 곡을 받고 싶어 하는 최고의 히트 작곡가로 인정받았다. 두 사람이 선보인 고품격 팝 발라드는 당시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도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장기 집권했던 팝송 프로그램의 시대가 종식되며 가요 프로그램이 대거 편성되는 이변을 일으켰던 것. 그런 점에서 이 앨범은 국내 음반 산업계와 방송계에 대중가요에 대한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는 단초를 제공한 명반의 반열의 올랐다.
이문세 · 이영훈 콤비의 명곡 리메이크 작업
2000년대 들어 불기 시작한 복고 문화 열풍은 대중음악계에 과거의 명곡을 대거 리메이크하는 뜨거운 트렌드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앨범에 리메이크 곡을 한두 곡 싣는 정도였지만, 이후에는 앨범 전체를 리메이크 곡으로만 채운 앨범이 범람하게 되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이문세의 노래들은 무수하게 리메이크되었다. 정훈희와 아이유가 <사랑이 지나가면>, 이수영, 김태정이 <광화문 연가>, 신혜성과 송하예는 <시를 위한 시>, 이승철과 임재범, 장재인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버블시스터즈, 신화, 빅뱅이 <붉은 노을> 등을 다시 부르며 이 앨범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이는 이문세와 이영훈 콤비의 음악이 후대에 음악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증명한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바블껌 베스트
Side. A
1. 이 말만 전해주오
2. 소꿉동무 새색시
3. 아빠는 엄마만 좋아해
4. 그대 그리워
5. 비야 비야
6. 나그네(등대지기)
Side. B
1. 연가
2. 어쩌면은
3. 짝사랑
4. 마당쇠 이야기
5. 아침
6. 산 너머 저 멀리
1LP 33RPM 180g Black Vinyl
日本 東洋化成 Pressing
인서트, 스티커, 브로마이드 포함
Digital Remastered By Yejeon(2023년)
국내 인쇄(Printed in Korea)
순수와 낭만의 기운이 가득한 70년대 포크송
요즘의 감각적인 비주얼 음악과는 달리 7080시절 젊은 세대들이 사랑했던 포크송에는 순수와 낭만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단체문화에 익숙했던 7080시절 대중은 함께 새마을운동 노래를 들으며 잠자리에서 일어났고 애국가와 교가 심지어 사가를 부르면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또한 MT, 소풍, 캠핑을 가면 어김없이 캠프 송을 부르는 그들만의 필수 놀이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컴퓨터와 디지털이 세상을 지배하는 2000년대 이후 단체문화는 과거의 유산이 되었다. 이제는 공동체보다 개성이 중시되고 뭉클한 감동적 메시지보다는 오감을 자극하는 각종 섹시 춤과 단순반복적인 후크송이 범람하는 시대로 변했다. 누구나 좋아했던 사람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과 가슴을 쳤던 옛 음악을 그리워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래서 경제가 어려운 요즘 그 시절의 통기타 음악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바블껌의 결성과 데뷔과정
1971년 결성된 혼성 듀엣 바블껌의 리더 이규대는 1967년 배재고 1학년 때 청와대 옆에 소재했던 진명여고 3.1당 강당에서 열렸던 문학의 밤에 놀러갔다. 그날 초청되어 무대에 오른 중동고등학교 삼중창단이 들려준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화음에 정신이 몽롱했다. 학교친구들과 사중창단 마일스톤을 결성해 포크송을 편곡해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고교생 4명이 통기타를 직접 치면서 노래하는 팀은 이들이 유일했다. 고2때 서울YMCA의 하이Y 연합합창단인 Y코러스 합창단에 들어간 이규대는 바블껌의 여성멤버가 되는 조연구를 처음 만났다. 당시 경기여고 신입생이었던 그녀는 포크의 대모 양희은의 친구다.
1971년 여름, 남성듀오 4월과 5월을 결성한 이수만을 따라 두 사람은 청평 페스티발에 구경을 갔다. 그곳에서 이규대의 창작 곡 <이 말만 전해주오>을 노래한 서유석을 만났다. 그 노래는 당시 군 입대를 하는 학생들을 위한 전송가로 널리 불리어졌다. 그러니까 최백호의 ‘입영전야’와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가 나오기 전까지 군 입대를 앞둔 친구를 환송하는 주제가로 각광받았던 노래였다. 서유석과 인사한 이규대와 조연구는 예정에도 없이 무대에 올랐다. 사회는 정홍택과 팝스 잉글리쉬를 진행하던 신동운. 팀 이름도 없이 두 사람은 Y에서 불렀던 <아빠는 엄마만 좋아해>를 불러 예상치 못한 앙코르 세례를 받고 뉴질랜드 민요를 번안한 <연가>를 연속해 불렀다. 당시 유행하던 포크송이 아닌 귀에 박혀오는 근사한 멜로디의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은 단숨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공연 후 이규대는 아마추어 노래 콘테스트에 출천해 1등을 차지해 하루 5백원을 받는 무명가수로 명동 ‘꽃다방’에 출연했다. 이후 조연구와 함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어느 날, 정홍택이 매니저를 자청했다. 그는 ‘오리엔탈’, ‘코리엔탈’등 합성어로 듀엣의 팀명을 생각하다 “동요 같고 예쁜 곡을 부르는 혼성듀엣이니 풍선껌이란 이름이 좋겠다.”며 팀 이름을 <바블껌>으로 지어주었다. 정식 매니저 계약은 DJ 박원웅과 맺고 이규대의 배재고 출신 사중창단 ‘마일스톤’도 함께 마장동 스튜디에서 녹음을 해 1972년 데뷔 음반을 냈다.
캠프송의 명곡을 총망라한 희귀 음반
바블껌은 70-80년대 청소년들이 애창했던 캠프 송의 명곡들인 <연가>, <짝사랑>, <토요일 밤에(첫 버전은 목요일 밤에)>를 최초로 노래했던 인기 혼성듀엣이다. 캠프송의 지존이라 불릴 만 했던 바블껌은 음악활동을 통해 결혼에 골인했던 특별한 혼성듀엣이다. 어린 시절 ‘예솔이’란 이름으로 유명했던 꼬마가수였던 이들의 막내딸 이자람은 18세 때 판소리 심청전 여덟 마당을 완창 했고 최연소, 최장공연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천재 소리꾼으로 유명하다. 1972년 8월 발매한 혼성듀엣 바블껌의 베스트 앨범은 그들의 데뷔앨범과 함께 가장 희귀한 고가의 70년대 포크앨범으로 명성이 높다. 당대 젊은이들이 좋아했던 싱그러운 캠프송과 포크송들이 총 망라되었기 때문이다. 2013년에도 LP버전으로 재 발매되었던 이 음반은 포크송 애호가라면 누구나 소장을 꿈꾸는 앨범이다.
12곡의 수록곡 중에는 빠트릴 곡이 하나도 없다. 특히 당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었던 수많은 캠프송 중 가장 애창된 <연가>가 수록된 최초의 음반이란 점에서 가치가 크다. A면 첫 트랙 <이 말만 전해다오>는 1977년 최백호의 <입영전야>가 발표되기 전까지 군 입대를 앞둔 친구를 전송하는 노래로 학생층과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널리 애창되었던 의미심장한 곡이다. 이후 군대 전송가의 계보는 1990년 김민우가 발표한 <입영열차 안에서>로 이어졌다. 라틴음악의 여왕이라 불렸던 카테리나 발렌테의 <Papa Ama Mama>를 번안한 <아빠는 엄마만 좋아해>, <짝사랑>도 1970년대 히트한 포크송이다.
작곡가가 수차례 바뀐 포크송의 원곡들
이 음반에는 노래가 발표될 때마다 작곡가가 수도 없이 바뀐 사연 많은 노래들의 원곡이 대거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특히 1971년 친자매 듀엣 리리시스터즈가 바블껌보다 먼저 발표해 히트시킨 <짝사랑>이 대표적이다. 바블껌의 리더 이규대는 이 곡에 대해 “당시 대학가에는 이름도 없이 떠돌아다니던 곡이 많았다. <짝사랑>은 1969년 YWCA의 대학Y 연합 서클인 ‘부족사회’의 선배 김욱이 산행 다니던 시절에 만들었던 노래”라고 증언했다. 서유석의 히트곡으로 널리 알려진 이스라엘 국가인 <비야 비야>는 동요 <꼬부랑 할머니>를 쓴 신일고 교사 한태균이 가사를 썼다. <마당쇠 이야기>도 알고 보면 남성 듀엣 쉐그린이 히트시킨 코믹 포크송 <얼간이 짝사랑>의 오리지널 버전으로 공식 음반 발표전에 학생층에서 널리 애창되었던 곡이다.
이연실이 부른 대표곡의 원곡
혼성듀엣 바블껌은 조선호텔 뒤에 위치했던 라이브 레스토랑인 포시즌을 주 무대로 삼아 활동을 했다. 당시 이들의 앞 순서에 노래한 포크가수가 이연실이었다. 이연실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인 <새색시 시집가네>도 이 앨범과 연관 있는 사연 있는 노래다. 이규대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연실과는 동갑이어서 금방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노래를 많이 들었던 이연실이 자신의 독집 제작 때 곡이 모자라 우리가 밤업소 포시즌에서 불렀던 <소꼽동무 새색시>를 ‘9살 새색시가 시집을 간다’로 가사를 고치고 <새색시 시집가네>로 제목을 바꿔 먼저 발표하는 바람에 많이 싸웠다. 당시 처남과 같은 홍익대 미대생이고 친한 사이라 그냥 넘어갔지만, 작사가와 작곡자도 잘못 발표해 이후 혼란을 빚게 되었다. 이 노래의 원 작곡자는 당시 서울 약수동 장로교회 성가대 지휘자 김신일이다.”라고 증언했다. 10년 만에 다시금 재발매된 이 음반은 7080세대가 열광했던 포크송 시대에 각광받았던 캠프송 문화를 증언하는 기록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장현 AND THE MEN
Side. A
1. 석양
2. 안개 속의 여인
3. 미련
4. 너를 사랑하네
5. 마음의 소리
Side. B
1. 아름다운 강산
2. 잔디
1LP 33RPM 180g Black Vinyl
日本 東洋化成 Pressing
인서트, 스티커, 브로마이드 포함
Digital Remastered By Yejeon(2023년)
국내 인쇄(Printed in Korea)
싱글 자켓(Single Jacket)
한국록의 명곡 ‘아름다운 강산’의 오리지널 버전이 수록된 명반
신중현이 결성한 많은 밴드 중 가장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 최고의 성과를 이뤄낸 밴드는 ‘한국적 록 음악의 완성을 이뤘다’고 평가받는 ‘신중현과 엽전들’이다. 하지만, 더 맨을 신중현 음악의 정점이라 평가하는 음악전문가들과 록 애호가들도 상당하다. 이는 더 맨이 더 없이 풍성하고 세련된 한국적 록 사운드를 구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신중현 사단의 전설적인 싸이키델릭 여성보컬리스트 김정미의 발굴과 무엇보다 한국 록의 명곡 <아름다운 강산>이 더 맨 시절에 탄생했음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신중현이 리드했던 더 맨은 리드 기타 신중현, 베이스 기타 이태현, 드럼 문영배, 오르간 김기표, 오보에와 색소폰 손학래, 리드 보컬리스트 박광수의 6인조 라인업으로 구성된 록밴드였다. 더 맨의 첫 앨범 제작이 끝나가던 1972년 10월 17일에 군사정권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며 유신정권을 출범했다. 이는 전성기를 내달리던 신중현에게 좌절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1972년 10월 29일 유니버샬레코드는 총 7곡을 수록한 더 맨의 첫 독집「장현 and THE Men」을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석양을 배경으로 한 앨범 재킷과 어울리는 장현의 히트곡 <석양>이다. 느리게 흐르는 이 노래에서 저음 가수 장현(본명 장준기)이 가성으로 부른 음색은 매력적이다. 1970년 신중현의 창작곡 <기다리겠소>로 데뷔한 장현은 이 앨범 발표 당시 신중현 사단의 가장 인기 있는 남자가수였다. 그는 1975년 활동 금지된 이후에도 베스트 앨범을 양산할 만큼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았다.
앨범 타이틀「장현 And The Men」을 보면 1면에 수록한 <석양>, <안개속의 여인>, <미련> 등 전곡을 노래한 장현을 더 맨의 리더나 리드보컬로 오해할 수 있다. 앨범 타이틀은 장현의 인지도를 이용한 음반사의 판매 전략이었을 뿐, 당시 더 맨의 리드보컬은 한국 블루스 보컬의 선구자인 박광수였다. 인기가수 장현을 앞세운 판매 전략 덕분에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상업적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이 음반이 한국 록의 명반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2면을 꽉 채운 더 맨의 <아름다운 강산> 오리지널 버전과 금지곡 <잔디>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강산>의 오리지널 버전
유신정권이 가동되었던 1972년에 신중현은 “박정희 대통령의 노래를 만들라”는 청와대의 전화 청탁을 거절한 후 온갖 통제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그로 인해 유신정권에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된 신중현은 자신이 생각하는 애국가를 만들어보았다. 그 노래가 바로 러닝타임 10분의 대곡 <아름다운 강산>이다. 이 음반을 통해 발표된 <아름다운 강산>의 오리지널 버전은 박광수의 저음 보컬에 신중현 등 멤버들의 코러스가 가미되어 구성했다.
앨범발매 후 박광수는 당시 정부의 장발 단속에 대한 항의 표시로 삭발을 단행했고, 나머지 멤버들은 장발에 머리핀을 꽂아 귀만 드러낸 모습으로 한 지상파 TV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이들은 태극기가 휘날리는 엄숙한 장면에서 현란한 사이키 조명으로 정권을 조롱하며, 앨범에 수록한 버전보다 훨씬 긴 18분 동안 <아름다운 강산>을 연주했다. 일종의 음악적 시위였다. 방송 출연 이후 더 맨의 멤버들은 요주의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리드 보컬 박광수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름다운 강산>은 원래 신중현씨가 통기타로 만든 곡입니다. 처음 이 노래를 선보였던 무대는 청평 페스티벌이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했죠.”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아름다운 강산>과 함께 이 앨범의 대표적인 금지곡인 <잔디>의 제목은 대마초를 상징하는 경상도 지방의 은어이다. 이 곡은 묵직한 박광수의 보컬, 가성으로 부른 신중현의 코러스, 더 맨의 사이키델릭 사운드 연주가 어우러진 한국 록의 숨은 명곡이다. 박광수는 인터뷰에서 “솔직히 저는 <아름다운 강산>보다 <잔디>에 더 애착이 갑니다. 그 노래 때문에 대마초 사건 때 기관에 끌려가 호되게 당했지만요.”라며 노래에 대한 강력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국 록 음악 최고의 명곡 <아름다운 강산>
<아름다운 강산>은 이후 김정미, 신중현과 엽전들 등 많은 신중현사단 가수의 음반에 재 수록되며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활동이 금지된 신중현과 운명을 함께했다. 이 앨범은 1972년 10월 발매한 초반이 조기 매진되면서 이듬해인 1973년에 여러 차례 추가 제작되었을 정도의 히트앨범이다. 하지만 판매금지처분이 내려지면서 상당량이 폐기되었고 공개적으로 들을 수 없는 불온(?)한 음반으로 낙인찍히면서 이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 고가음반으로 둔갑했다.
해금 조치 후 컴백한 신중현은 1980년 신중현과 뮤직파워를 결성해 <아름다운 강산>을 다시 불렀다. 이후 이 노래는 이문세, 노브레인 등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특히 1988년 이선희가 부른 버전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국민가요로 사랑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글 /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첫댓글 바블껌베스트, 장현 And The Men 각각 1장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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