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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순수투유(young----hee@hanmail.net)
출처 - 유머나라 (http://cafe.daum.net/humornara)
※불펌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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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하지만 오빠, 아직 세민이가 이 세계에 남아있다며!"
"......연소 너도 알잖아. 이 세계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그게 누구든 기를 느낄 수 있다는 거.
세민이는 실력자야. 게다가 서광미국의 왕의 자리를 물려받을 애란 거 너도 잘 알잖아.
세민이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민이는 분명히 이 곳에서 떠나는 우리의 기를
느낄 거야. 분명히 그럴거야, 연소야."
......마지막 희망까지 잃어버렸다.
이 곳에 남아있을 아주 작은 희망을 잃어버렸다.
"제길! 절대로 못 가! 알리지 않고 갈 생각이었다고?!"
"수, 수혁아..."
"수혁... 오빠..."
"천수혁?"
난데없이 방문을 열어 들어와버린 수혁은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고 있는 수혁은 광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안 보낼 거야... 연소도, 형도, 이제야 알게 된 은민이 누나도... 다 안 보낼거야."
"......이윤 오빠......"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보내지 않을 거다, 지연소."
흔들리는 눈동자를 애써 연소에게 고정시키는 지우.
"천지우, 이러지 마라... 네가 이런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어 갈 뿐이지."
"......형."
"연우 오빠 말이 맞아. 지우야, 이건 엄연히 우리 문제야."
"우리들과 알고 지내는 이상... 이건 우리들 문제나 마찬가지야."
수혁이 단호하다는 듯 말했다.
"......어디까지 들은 거야."
"서광미국, 그리고 소환국... 정세민... 모든 것 다."
"그럼 우리가... 이 세계 사람이... 아니라는 것까지 다 알고 있다는 소리네..."
"......뭐야. 대체...형이랑 연소, 저 누나까지 다 뭐야?"
"말 그대로 우린 이 세계 사람들이 아니다. 휴우. 밝히지 않고 그냥 사라지려고 했는데...
그러니까 우린... 우린 말이지......."
.
.
.
.
머엉.
머엉.
머엉.
절대적인 차가움이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지우도 멍하고,
늘 귀엽게만 느껴졌던 이윤도 멍하고,
가끔씩 내뱉는 욕이 그래도 친근하게만 느껴지던 수혁도 멍하다.
"......못 믿어, 못 믿어, 못 믿어! 하나도 못 믿겠어!"
"......나도......"
이윤은 절대 믿을 수 없다며 중얼거렸고, 그 말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수혁이 중얼거렸다.
"떠나는 날이... 3, 4일 후... 아니면, 일주일 후라고 했지?"
"......응."
"만약에... 세민이란 놈이 나타나면..."
"그 날 당장이라도 소환국인가... 그곳으로 날아간다고 했어."
"......"
휴우.
숨을 쉬어도 숨을 쉬는 것 같지 않고,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혁과 이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우 자신만큼은 그랬다.
"......지연소가 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일... 없게 만들어야 해."
"지우야."
"지우 형?"
"절대로... 보내지 않아."
"무슨 수로..."
"천수혁, 정이윤... 난 정말 지연소 사랑한다."
"......응."
"알아..."
"사랑하면, 보내지 않아. 다시는... 사랑하니까 보내지 않을 거다."
.
.
.
.
"......연소야... 이 학교가... 이 지역에선 마지막 학교야......"
노란색 머리칼에, 새하얀 피부에, 훤칠하게 큰 키에, 시선을 잡아끄는 이목구비.
그의 왼쪽 가슴엔 하얀 바탕에 검정색으로 쓰인 글씨가 있었는데...
"휴우. 정세민, 이 곳이 아니라면... 넌... 죽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이름은 '정세민'이었다.
.
.
.
.
"야, 야! 빅뉴스! 1학년 지연소에 이은 초특급 전학생이래!"
"......남자, 여자?"
"진짜 잘생겼대! 교무실에서 잠깐 뒷모습을 봤는데, 예술이었어!"
"남자야, 여자야?!"
"남자다!"
"이름은?!"
"푸하하하! 이름 정도는 식은 죽 먹기 아니겠냐! 이름이 정세민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지우와 수혁과 이윤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익숙한 이름에 자세를 바로 했다.
"뭐라고? 이름이 뭐라고?"
"정세민."
"설마... 걔 1학년이냐?"
"응. 1학년이라고 하던데?"
정세민. 나이는 17살.
연우와 은민이 지우와 수혁과 이윤에게 말 해줬던 상세정보가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지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지우의 심장도 두근두근- 심장병에 걸리기라도 한 듯
더 심하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젠장!"
"미치겠네!"
"연소 먼저 숨겨!"
세 사람이 자리에서 동시에 일어서며 3학년 교실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이윤이 연소의 반으로 뛰어갔을 때, 연소도 이미 소식을 듣고 나가버렸는지
책상과 의자가 뒤집어진 채 쓸쓸히 제 자리를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어떡하지?!"
"이윤... 선배?"
"재아야, 연소는?"
"교무실에... 아까..."
틀림없었다. 아니, 확실했다.
연소는 분명 '정세민'이라는 녀석의 이름을 듣고 확인을 위해 교무실로 달려갔을 것이다.
\교무실
지우와 수혁은 헉헉거리며 뛰어왔을 때, 교무실 앞에 서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연소... 연소가 저 앞에 서 있다. 그것도... 저 안에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세민을 쳐다보며 말이다.
"하아... 말도 안 돼... 세민... 세민이 일리가 없잖아..."
패닉 상태로 이제야 돌입한 듯 보이는 연소의 모습.
하지만, 그런 연소보다 더 철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지 못해 안달이 난 지우와 수혁.
"연소야."
"아니야, 아니야... 절대로 그럴리가 없어. 벌써... 벌써 이렇게 눈 앞에 나타났을리가 없어.
세민이가 아니야. 절대로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사람은... 세민이가 아니야."
"......젠장! 튀어!"
연소의 손을 잡고 수혁과 지우가 뛰기 시작했다. 반대편에서 재아와 함께 가뿐 숨을
내쉬며 뛰고 있던 이윤도 그들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일은 왜 이렇게 꼬이고, 또 꼬이는 것인지... 그들은 모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단 한 명, 아무 사정도 모르는 재아만 빼고.
"하아..."
"휴우..."
"젠장. 저 녀석이야? 세민이라는 녀석?"
"......어떡해요... 어떡해요, 오빠... 세민이... 세민이......"
"내일부터 학교 오지 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세민이... 잠깐 들었는데... 우리 반이래요.
세민이가 우리반이 되면, 훨씬 더 빨리 내가 그 반이라는 거... 이 학교에 있다는 거
걸리고 말 거예요. 안 돼요, 절대로 안 돼요."
연소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세민이가... 누구야?"
"......"
재아의 물음에도 아무런 대답을 않는 그들이다.
"이렇게 속이고 돌아설 수만은 없어요."
"어쩌려고?"
"설마..."
"안 돼."
"정면돌파 할 거예요. 이렇게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요."
[지은이] 순수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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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절대로 안 돼."
"왜 안 된다는 건지 전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전 제 의사대로 그렇게 할 거예요."
연소가 돌아섰다. 그리고 연소가 돌아섰을 때, 지우를 향해 있었던 자신의 마음도
이제 차츰차츰 돌아서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난... 너 보내지 않아, 연소야."
"......난... 오빠 곁으로 가지 않아요."
"네가 어떻게 하던 간에, 난 절대로 이렇게 포기할 순 없어."
"오빠 혼자서 포기하지 말아요. 난... 그래도 친구였던 세민이... 배신할 수 없어요."
"넌 이미 그 자식을 배신했잖아!"
흠칫.
"무슨 말이에요..."
"네가 세민이란 녀석과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쳤던 그 순간부터..."
"아니. 난 연소가 날 배신했다는 생각따윈 한 적 없어."
그리고, 연소의 귀에 아주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굳어있던 몸을 서서히 움직여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을 땐...
"세... 민... 아..."
"배신한 게 아냐. 그저 한순간에 찾아온 결혼이 무서웠을 뿐이지."
"......세민아......"
세민은 연소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지우가 보란 듯이 연소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지우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손톱이 살을 파고드는 데도, 지우는 여전히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천지우? 당신 이름이 천지우인가요? 어쨌든... 연소를 건드리지 마십시요.
연소는 엄연히 소환국 왕실의 공주입니다. 당신같이 천한 사람들이 건드릴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이제 곧 소환국으로 떠나가게 될겁니다. 아니, 내일 당장 떠나게
될 지도 모르죠. 그러니 연소를 홀릴 생각 따윈 하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왕실의 공주...
천한 사람...
연소와 자신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듯, 자신은 연소에게 그저 밑바닥을 굴러다니는
같잖은 사람이라는 말에 지우는 세민을 응시했다.
연우에게 들은 바 있다. 세민은 서광미국이란 나라의 왕자라는... 이제 곧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저렇게 태평하고, 여유롭게 이야기를 하고 있나 싶었다.
"정세민, 너 말이 심해."
"......지연소, 넌 할말 없어."
"저 자식이!"
수혁이 발끈하며 나섰지만, 곧 지우의 손에 의해 저지되었다.
"......한 가지만 말해두지."
"......"
"연소를 과연 소환국으로 데려갈 수 있기나 할까?"
"거 참 쉬운 질문이군."
"......데려갈 수 있다고 한 들, 영원히 내 기억 속에서 연소가 잊혀질 거라 생각하는가 본데..."
"......잊혀질 수밖에 없지."
"소환인을 소중히, 그리고 너무 사랑하면... 현재인의 기억 속엔 어느정도 흐릿한 기억이
남아있게 된다고 하더군. 그건 서광미국의 왕위를 물려받게 될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그런데?"
"난 연소를 기억 속에 흐릿하게라도 간직할 거다."
"그 말이 무슨 뜻이지?"
"......난......"
연소는 더 이상의 말은 하지 말라는 듯, 지우를 간절히 쳐다보았지만...
"네 정략 결혼자를 사랑하니까."
지우는 몰랐을 것이다.
그 순간, 몰래 엿듣고 있던 누군가가 절망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
.
.
.
"......세민아."
"연우 형."
"오랜... 만이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래..."
연우와 세민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연소도, 은민도, 지우도, 수혁도, 이윤도 모두 침묵을 유지한 채 연우와 세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환국과 서광미국......"
"......"
"그리고... 연소와 저..."
"......"
"두 나라의 관계... 형도 잘 알고 계실 거예요."
"......그래."
"연소 아버지와 절 낳아주신 어머니가 사랑하셨고, 제 아버지와 연소 어머니가 사랑하셨죠."
은민과 연소가 놀란 얼굴로 연우와 세민을 응시했다.
누구와 누가 사랑해?
하지만 연우는 별다른 기색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네 분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계시구요."
"그래..."
"세민아, 잠깐만."
"일단은 내 말부터 들어줬으면 좋겠어, 연소야."
"......하아......"
"하지만 지금은 돌아가신 소환국의 전 국왕이셨던 형의 할아버지와
저희 서광미국의 전 국왕이셨던 저의 할아버지는 서로를 좋지 않게 보고 계셨구요."
전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었다.
세민의 아버지와 자신의 어머니, 자신의 아버지와 세민의 어머니가... 사랑을?
간혹 가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를 아는 체, 모르는 체 하고 있는 건 자신도 진작부터
느끼고, 또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숨겨진 이야기가 따로 있었다니...
"엇갈리신 네 분은 전 국왕 때문에 서로 내색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며 정략 결혼을 하셨어요.
전 국왕폐하들이 돌아가신 후...
저희 아버지나, 현재 소환국의 국왕이신 연소의 아버지는 서로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해서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설마..."
"아니야.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가 그러실리가 없어."
"아니. 두 분은..."
"믿을 수 없어!"
"진정해, 연소야."
"정세민, 그럼 넌 처음부터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구! 그럼 네가 처음 길을 잃고
내 앞에 나타났었던 것도... 지금껏 우리가 쌓아왔던 좋은 추억들까지도..."
"그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던건 아니었어!"
연소의 얼굴은 그저 배신감에 휩싸여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하아... 그래......"
"알면서도... 동맹을 맺어, 서로의 자식들을..."
"그게... 너랑 나라고...? 정세민, 그렇다구?"
세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안 믿어. 그런 말 따윈... 절대로 믿지 않아."
"그럼 네 눈으로, 네 귀로 확실히 확인하면 되잖아."
"소환국으로 돌아가자고?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 어쨌든 우리는 결혼해야하는 거잖아!
지금 내 심정이 어떤지 알아? 어떤지 아냔 말이야! 그동안 친구라고 믿고 의지해왔던 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이렇게 날 감쪽같이 속여왔다는 데에 배신감이 커!"
"......연소야......"
"이래서... 사람도 믿을 게 안 된다는 말이 있는 거야."
"......연소야, 감정만으로 생각하지 마. 이성을 되찾고..."
"이성을 되찾으라고? 정세민, 난 지금도 충분히 이성으로 대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여전히 연소의 눈엔 배신감과 분노가 이글이글 불 타올랐다.
"......돌아가려면... 너 혼자 돌아가. 그리고 내 부모님께 전해줘.
난...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돌아가게 되는 날이 있다면... 그건... 그건..."
"연소야..."
"너와 내 부모님을 용서하는 날이라고."
"......연소야......"
"아, 한 가지 더."
연소의 차가운 눈동자가 세민을 쳐다보았다.
세민은 연소를 만나 처음보는 그 차가운 눈동자에 몸이 얼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고 있음을
느끼고 그저 연소를 간절한 눈으로 애원하며 쳐다볼 뿐이다.
"내가 너와 내 부모님을 용서하는 날은..."
"......"
"내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없다는 거야."
세민은 깊은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한 사람을 속인 댓가라는 녀석이 이렇게 세민에게 절망감을 안겨주리라곤 한 번도 생각치
못했던 세민이었는데...
절로 눈물이 나왔다. 모든 게 차갑게 식어버린 세민에게 눈물만큼은 뜨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지우는 절망감에 휩싸여 그저 눈물만 뚝뚝 흘려내고 있는 세민을 날카롭게 응시하며 말했다.
"저 정도면 이제 너도 알고 있겠지?"
"......으윽......"
"이제껏 받고 있었던 연소의 믿음까지도... 잃어버렸다는 걸."
"......연... 소야......"
"그 순수했던 연소의 마음까지도... 한없이 배신이란 말로 짓이겨 버렸다는 걸..."
[지은이] 순수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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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이란 녀석이 네 마음 속에 어느 정도까지 자리하고 있었기에......"
"흐윽... 하아..."
지우는 숨 넘어갈 듯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 연소를 안타깝게 응시하며 말했다.
"네가 이렇게까지 울어야 하는 거냐..."
"......흐으윽... 흑......"
"그깟 놈이 뭐길래..."
"......"
"네가 이렇게까지 울어가면서 사람 속을 뒤집어놔야 겠냐고..."
연소의 곁으로 다가가 한없이 여려진 연소의 마음을 감싸안았다.
연소를 품으로 끌어들인 지우는 지금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수천 번은 더 하며 연소를 꽈악 끌어안았다.
"......나......"
"그래."
"소환... 국... 으로..."
"응."
"돌아..."
"응."
"가고... 싶... 어..."
자신의 품 안에서 흐느끼고 있던 연소를 그대로 떼어낸 지우가 불안감 때문에 흔들리는
눈동자를 연소에게 겨우 옮겼다.
"뭐... 라고? 연소야, 다시... 뭐라고?"
"......세아 언니... 보고... 싶... 어......"
그 순간부터 깊은 절망과 슬픔에 빠진 건, 세민이 아닌... 지우였다.
.
.
.
.
"......형......"
"언제부터 나와있었냐..."
"연소 말이야..."
"그래..."
"소환국... 그래, 소환국이라는 곳으로..."
지우의 입에서 '소환국'이라는 말이 튀어나왔을 때, 연우는 무척 당황해야했다.
소환국이라는 말을 내뱉을때의 지우의 표정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어린 아이가 소중히 하고 아끼던 장난감을 잃어버려 잔뜩 슬픈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지우, 결국은......"
"하루빨리... 연소가 그 곳으로 가게... 형이... 그렇게 결정 내려줘."
"대체 왜 이러는 거냐, 천지우. 갑자기 마음이 바뀌게 된 이유... 물어봐도 되겠어?"
갑작스럽게 마음이 바뀌게 된 이유라...
지우는 대답도 않고 그저 밤하늘을 응시할 뿐이다.
하지만 연우는 알 수 있었다. 지우의 결심이 어떻게 하다 서게 됐는지에 대해서.
"......연소... 때문이구나."
"그냥... 그냥 그래..."
"넌... 이 곳에서 잘 버티며 살아갈 수 있을 거다, 지우야."
"......"
"그리고... 꼭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될 거다, 지우야."
'새로운 사랑'이라는 말에 덜컥 겁도 났고, 슬퍼졌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연소를 자신이 잊어버리게 될까봐 두려워서였다.
"형..."
"그래."
"다른... 방법은... 없어? 내가, 내가... 연소를 보내고 난 뒤에도... 내가 내 스스로 끝까지
연소를 기억하는 방법... 왜 그런거 있잖아... 그거... 없어?"
"......없......다......."
그러나 연우는 애매모호한 여운을 남기며 말끝을 흐렸다.
.
.
.
.
"연소야..."
"......"
"미안해..."
세민은 아무도 없는, 연소만이 침대에 누워 고이 잠들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곤히 자고 있는 연소의 곁으로 다가가 연소의 하얀 손을 꽉 잡았다.
"처음부터 속이려는 생각은... 없었어. 정말이야... 난... 난 정말... 그런 생각은 없었어, 연소야..."
"......"
"뭐라고 욕해도 좋아. 뭐라고 날 보며 소리쳐도 좋아... 하지만..."
"......"
"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연소야."
아무리 말해도 곤히 잠을 자고 있는 연소에게 들릴리 만무하지만, 세민은 중얼거려본다.
곧 죽어도 좋으니, 제발 자신이 죽기 전까지만이라도 곁에 있어달라고...
자신의 곁을 지켜달라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세민은 연소의 손을 꽉 잡았다.
"......나... 용서할 수 없을 거라는 거 잘 알아, 연소야."
"......"
"네가 소환국으로 돌아가고, 내가 서광미국으로 돌아가는 날...
우린 더 멀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 나 아닌 다른 녀석에게 널 주고 싶지 않아.
정말 미안해, 연소야.... 하지만... 이건... 내가 사랑하는... 방식일 뿐이야."
세민의 방식.
억지로 사람의 마음을 잡으며,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망쳐버리는...
세민의 독한 사랑의 방식.
"......난... 널... 놓지 않아......"
"......"
"처음엔 정말 의도적인 접근이었는지 몰라도..."
"......"
"마지막은 아니야. 그 의도적인 접근의 끝은... 내겐 사랑이었어."
"......"
"물론... 지금도 내겐 사랑이야..."
"......"
"그러니... 그러니까..."
주르륵... 연소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세민은 보지 못했으리라... 세민의 눈에선 연소의 눈물보다 더한 눈물이 흘러내렸으니...
"떠나지 마, 연소야."
"......"
"나... 더 이상... 널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아."
세민도 울고, 연소도 울었다.
세민이 주저앉아 울 때, 연소는 눈물을 흘리며 작게 뜬 눈으로 세민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세민아...'
연소가 세민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저 미안하다는 말과 그래도 배신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는 말... 그 말 뿐이었다.
문 사이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이윤과 수혁과 은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곧 돌아가게 될 사람들...
이윤과 수혁은 어쩔 수 없는 두려움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좋은 추억을 함께했던 그들을 기억 속에서 지울 수밖에 없다니... 전혀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사진을 찍어서든 추억을 남기고 싶지만...
"......사진을 찍게 되도, 그건 한 순간일 뿐이야. 우리가 소환국으로 돌아간다면......"
"설마..."
"그래... 사진 속 우리들도 없어. 사라지고 없단 말이야."
어떻게 해서도 그들을 기억할 방법이 없었다.
그림을 그려도 결국 모델이 사라지면, 그림도 지워지는 법이라고 하니...
그들은 도무지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세민이란 녀석..."
"연소를 많이 좋아해. 아니, 어쩌면 많이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우 형도!"
"......지우는 이 곳에 남아야 할 이 세계 사람일 뿐이야."
"연소가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누나."
"세민이와..."
"저 자식이랑 결혼?"
"......그렇지......"
"연우 형이 가잖아요! 연우 형이 가니까... 이제 정략결혼 안 해도..."
"소환국과 서광미국은 현재 전쟁중이란 말이야. 알아 들어? 그럼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그 두 나라를 동맹맺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해. 그리고 그게 뭔지 알아?"
"......전쟁의 원인인......"
"연소와 세민이지."
띵동. 띵동.
그리고 그 때,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선배, 저 재아예요."
"이 시간에 웬일이냐?"
"궁금한 거 있어서 왔어요."
이윤이 문을 열자, 재아가 심오한 표정을 지은 채 집안으로 들어왔다.
"......뭔가 있는 거죠......"
"뭐가?"
"연소랑 세민이라는 남자랑... 모두 무슨 일 있는 거죠?"
"......그런 거 없다. 가라, 민재아."
"거짓말 하지 마요. 알 건 다 알면서 살자구요! 엄연히 저도 연소 친구잖아요!"
"......이윤아, 그냥... 재아도 앉게 해. 알아야 할 건... 알아야지."
"누나!"
"재아도... 연소 친구잖아. 알아야 할 건 알아야지. 앉아, 재아야."
.
.
.
.
소환국(小奐國).
세아는 애써 긴장감을 없애려 노력하며 세민의 아버지와 어머니,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가며 응시했다.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그 네 사람의 눈동자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정말 굉장히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세민이와 연소, 연우와 은민이가 돌아오면......"
"그 때 지금 이 전쟁이 끝낼 것입니다."
"그리고..."
"연소와 세민이를 결혼 시켜야 겠지요."
연소의 아버지와 세민의 아버지가 번갈아가며 이야기했다.
"그럼 그렇게 협상한 것으로 마무리를 짓지요."
"그러지요."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서광미국의 사람들이 들어와 경호하며
세민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세아도 두근 반, 세근 반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자신의 남편인
지운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
"지운... 씨..."
"......그래."
"......이제 곧... 연우 오빠랑 은민이랑 연소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그래......"
"잊지... 않았지?"
"......휴우... 그래..."
"나... 놔줘야 하는 거야. 알지? 나... 놔줄 수 있는 거지?"
지운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지운씨."
[지은이] 순수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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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문] ※불펌/팬픽/성형/도용/표절/수정※ 절대금지
<54>
"......오늘 간다."
"오빠!"
"형!"
연우의 선포에 은민과 이윤이 소리를 질렀다.
"그, 그래도... 이렇게 빨리 가는 건..."
"세민이가 왔잖아. 세민이 녀석이 왔으니까... 우린 가는 거다."
"......언제 가는데?"
"오늘 밤. 소환국과 이 곳이 통하는 길이 열리는 때는 밤늦게만 있으니까."
지우도, 연소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세민은 지우와 연소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살며시 눈을 감아버릴 뿐이다.
"......학교 간다."
"지우 형!"
"지우야!"
"......"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친 지우는 그저 퉁명스럽게 학교에 간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고,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수혁과 이윤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갔다 올게. 자퇴서 내고......"
"그래, 갔다 와."
"나도 같이 가, 연소야."
"......세민아."
"그래..."
"오늘만큼은 나 좀 혼자 있게 해 줘. 오늘 아니면... 나 이제 자유도 아니잖아."
터벅터벅 걸어나가는 연소의 뒷모습이 위태로웠다. 마치 툭 건드리기만 하면
툭하고 쓰러져 버릴것만 같은데... 세민은 차마 연소를 잡을 수 없었다.
'자유도 아니잖아.'
라는 말이 왜 자꾸 세민의 귓가를 맴돌고 있는지...
"정세민."
"......"
"연소도 많이 힘들다. 연소가 한국으로 와서 처음 마음의 문을 열어준 사람은 현유민...
그 녀석이었지만, 연소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사랑한 건... 지우 저 녀석이니까."
"......형......"
"그래."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약이 있었다면 좋을 뻔 했어."
"그래."
"그랬다면... 연소도, 나도... 아플 일은 없을텐데."
한숨을 내쉬는 세민을 차갑게 응시하는 수혁이다.
"정세민."
"......"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약이 있었다면... 난 지우 형의 마음을 돌리고 싶다."
"......"
"너의 그 지연소를 사랑했던 마음을... 은진이에게 돌렸으면 좋겠다고."
"......"
"수혁아."
"형은 빠져. 형도 똑같아.
......정세민, 남들이 보면 너와 너의 그 지연소만 힘들어 하는 줄 알겠네."
"......"
"근데 지금 제일 힘든 건, 지우 형일 거다. 넌 그래도 지연소와 정략 결혼을 하면 끝이겠지.
하지만 지우 형은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연소를 지워야 하거든. 그게 원래 원칙이라며?
킥... 별 웃기는 원칙이 다 있네, 정말."
연우도 그동안 수혁의 행동들을 미루어 보아, 지금의 수혁은 조금만 더 건드리면
폭발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엔 자신에게도 저런 적이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분명히 예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 똑같다, 똑같아. 그냥 아예 우리 없을 때 사라지지, 왜? 왜 하필이면 우리 집에
와 있을 때 가는 건데? 진짜 더럽게 재수없네."
은민이 욱하며 나서려 했지만, 곧 연우의 손에 의해 저지 당했다.
"......수혁아, 그만 가라."
"......내 이름 부르지 마. 짜증나니까. 이제 형한테 형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아.
그러니까 떠나기 전까지만이라도 제발 나 좀 건드리지 마. 아니, 지우 형 좀 건드리지 마."
"......"
"그리고... 지연소... 연소 간수도 좀 잘 해."
밖으로 나온 지우는 답답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은 느낌에... 지우는 그대로 머리를 부여잡아야 했다.
"으윽..."
갑자기 전해져오는 두통. 지우는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주저앉아 버렸고,
그런 지우를 향해 달려오는 누군가.
"지우야!"
"......젠장......"
"괜찮아, 천지우?"
내심 그 사람이 연소이길 바랐다.
하지만... 자신에게 달려온 사람은 은진이다.
꼭 이럴 때... 꼭 이렇게 힘들 때... 하필이면 은진이다.
"......어떻게 이렇게 일찍 나왔냐?"
"그것보다... 너 정말 괜찮은거야?"
"괜찮아. 그냥 잠깐 아팠던 것 뿐이다."
"어디 이마 좀..."
은진이 지우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자신의 손을 타고 전해지는 뜨거운 열... 지우의 이마는 그야말로 불덩이였다.
"병원으로 가자. 응? 지우야, 병원으로 가자!"
"......됐어."
"그래도... 응? 빨리 병원으로 가자."
"......한은진."
"응?"
"나 지금... 몸보다는... 마음이 더 아프다."
"천... 지우..."
"몸 치료하는 거 말고, 마음 치료할 수 있는 곳으로... 나 좀 데려다 줘."
열로 인해 빨갛게 달아오른 지우의 얼굴.
지우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은진의 얼굴이 흐릿흐릿해지고 있는 것 같아 애써
정신을 놓지 않으려 손을 꽉 쥐고 있었다.
하... 이건 또 뭐야...
애써 눈을 뜨고 앞을 직시 했을 땐, 은진의 얼굴이 아닌 연소의 얼굴이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지우는 이젠 더 이상 가까이 할 수 없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연소야..."
"천... 지우..."
"가지 마... 제발... 정세민이라는 녀석에게... 가... 지... 마..."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오는... 은진일 뿐이다.
집에서 억지로 빨리 나온 건... 세민에게 차갑게 대해가며 집을 나온 건...
순전히 지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서 너무 많이 멀어진 지우를... 조금이라도 많이 봐두고 싶어서...
이제 오늘이면 더 이상은 볼 수 없게되는 그를 보고 싶어서...
얼굴이 아니라도 좋으니, 그의 뒷모습이라도 보고 싶어서... 그래서 빨리 집을 나왔었는데...
지우는 은진의 품에 안겨있었다.
그리고... 지우를 향한 은진의 시선이... 너무나도 애틋했다.
조금은 떨어진 거리였지만, 연소는 단 번에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기댄 벽을 타고 그대로 주저 앉았다.
이런 미련따위는 이젠 더 이상 가져서도, 또 가지고 가도 안 되는 것을 알지만...
마음은 자신의 편이 아닌가 보다.
"지우... 오빠..."
"......이렇게 오빠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나... 용서... 해요......"
"떠나고 싶지 않지만... 떠나야 하는 나... 용서해... 줘요..."
"생각같아선... 예전처럼 도망치고 싶지만..."
이젠 더 이상...
"도망칠 수도 없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그리고...
내가 제일 하고 싶은 한 마디는...
"사랑... 해... 요..."
더 이상... 연소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정말... 많이... 아주... 많이..."
"........사.........랑........해........"
그의 귓가에... 자신이 속삭인 이 달콤한 말이... 닿을 수 있기를...
닿을 수 없겠지만... 바람을 타고... 그의 귓가로 전해지기를...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지금 이렇게 만나게 되어 자신도 무척 후회스럽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매몰차게 싫어한다고 해야만 했던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그렇게 해야만 했던 자신이... 아직도 밉다고...
아니...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라고...
연소는... 눈물을 감키며...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말없이 눈물로써 배웅할 뿐이다.
"......이 모든 게... 꿈이었다면... 난... 정말 행복할 것 같은데......"
꿈이었다면...
너무나도 행복했으리라.
만약 꿈에서 깨어...
다시 소환국의 '공주'로 돌아가게 된다 할지라도...
꿈에서 그를 만났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리라.
[지은이] 순수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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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됐다."
"지우야..."
"한 가지만 묻자, 은진아."
"......"
"지금 네가 나한테 이러는 게..."
은진은 지우가 지금 자신이 예상하고 있는 말을 해 주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친구로서의 감정 때문인 거냐......"
"지우야."
"아니면..."
"......제발......"
"친구 이상의 감정때문에 이러는 거냐..."
"그렇게 말하지 마.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
병원 앞에 멈춰선 지우는 은진을 응시했다.
늘 차가워보이면서도 따스함을 지니고 있던 지우의 다갈색 눈동자가 서늘함을 풍기며
슬픈 듯 자신을 향하자, 은진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네 눈이 슬픈 이유가... 뭔지... 지우야, 나 너에게 물어봐도 될까...
"솔직한 대답을 원해? 아니면... 네가 듣고 싶은 대답을 원해?"
"......후우......"
그냥... 솔직한 대답을 원한다고 이야기 해 주면 안 될까, 지우야?
내가 정말 이기적이라는 거 아는데... 나 그렇게 해서라도... 지금 흔들리는 네 마음...
조금씩 연소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네 마음... 잡고 싶은데... 안 되겠니?
"내가... 지금 이 순간... 듣고 싶어하는 대답..."
"......끝까지... 난... 아니어야 하니?"
"이미... 움직여버린 심장... 되돌릴 수 없어."
.
.
.
.
"지연소, 나와."
"......싫어."
"이제 모든 이야기들 다 알고 있으니까 나와!"
나름대로 일찍 학교로 와서 책상에 엎드려 있는 연소에게 다가온 여자는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녀가 누군지... 연소는 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외톨이었던 연소에게 있어선 정말 제.대.로.된 친구는 그녀 뿐일테니...
"......무슨 소리야?"
"다 알아. 네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은민이 언니도 이제 누군지!
......연......우....... 오빠까지도... 이제 어떻게 하는지... 다 알아. 그러니까 연소야...."
어떻게 알았을까... 지금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우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재아의 심정이 어떨까... 이게 중요했다.
지금 소윤의 이야기, 부모님의 이야기 때문에 많이 힘들 재아를 알기에...
연소는 나중에 이 곳을 떠나게 될 걱정보다, 재아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선다.
"......언제... 가는 거야?"
"오늘..."
"오늘... 언... 제?"
"늦은 밤에... 가게 될 것 같아..."
"네가 가면... 나..."
"기억을... 잃게 되겠지..."
"나... 너에 대한 기억... 지우고 싶지 않아, 연소야. 제발... 나... 기억 지우기 싫어."
"재아야..."
텅 빈 체육관 안에서... 예전의 끔찍한 추억이 있던 이 곳에서... 재아와 연소는 매트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두 사람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무언의 교류를 하고 있었으리라.
"나도... 나도 말야... 가고 싶지 않아..."
"그럼 가지 마. 가지 않으면 되잖아."
"난... 한 나라의 어엿한 공주야."
"그게 뭐가 중요해! 너 가면... 지우 오빠는 어떡해!"
'지우'라는 말에 유독 민감은 연소가 입을 연다.
"지우 오빠는..."
"......"
"기억을 잃게 될 거야..."
".......잃지 않을 거야."
"분명히... 기억을 잃을 거야."
"왜 확신하는데?!"
"난..."
"그래, 넌..."
"지우 오빠가 날 많이 사랑해주고, 아껴줬다는 사실을..."
"......"
"믿고 싶지 않으니까."
잔잔한 연소의 울림이... 왜 그렇게 서글프게만 들리는지...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 봐도 돼, 연소야?"
"......응......"
"이 세계의 사람은... 소환국으로 갈 수 있어?"
"걸리면... 죽음이야. 그건... 원칙을 어기는 일이니까..."
"소환국에서 이 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거야?"
"......소환국은......"
소환국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야.
날 억지로, 강제적으로 결혼 시키려 했던 사람들이야. 내 언니들을 억지로 결혼시켰단 말야.
연우 오빤 그들의 강압적인 힘때문에 힘들어서 이곳으로 온 것일테고...
그런 소환국에서 이 세계 사람이 건너가서 이 곳으로 살아돌아오는 것은... 쉽지 않아.
"호락호락하지 못 해. 쉽게... 돌아올 수 없을거야."
"......연소야, 나중에... 너 갈 때... 꼭... 갈게."
"오지 마, 재아야."
"갈 거야. 가서... 너랑 연우 오빠랑 은민이 언니, 정세민까지도... 다 볼 거야."
오늘따라... 지금은 참 잘도 간다.
수혁과 이윤은 같은 짝이라 그런 지, 한참동안 시간에 대해서 토론중이다.
"이제 막 3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어."
"......이제 별로 안 남았어! 젠장! 볼때마다 10분씩 지나가니까 진짜 미치겠네."
"......근데 지우는......"
"은진이도 지금 형 상태랑 똑같아. 둘이 짠 것도 아니고."
수혁은 어지럽다는 듯 아무 죄 없는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찢어서는 정서불안이라도
걸린 듯 다 찢어버린다. 그건 이윤도 마찬가지였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만 같은 이윤의 눈동자.
그만큼 이들에게 있어서 연우도, 연소도... 다 소중한 존재였던 것일까.
콰앙.
그리고 종이를 찢고 있던 수혁이 갑자기 일어섰다.
"아! 이게 있었어!"
"응?"
"연우 형과 연소를 따라가는 거야!"
"에에~?"
"소환국인지 뭔지로 나도 갈 거야!"
수혁은... 과연... 흔히들 말하는 '머리 속 텅 빈 병신'인 것일까...?
아니면... 과연... 흔히들 말하는 '이 세상 최고의 천재'인 것일까...?
연우와 연소에게는 전자가 맞겠지만,
이윤과 지우에게 만큼은 후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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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 1부 완결
처음 봤을 때의 연우가 있다. 수혁과 이윤의 눈 앞에... 처음 봤을 때의 연우가 있다.
연우는 현란하지만, 왠지 모르게 위압적인 힘을 풍긴다.
그런 연우를 쳐다보며 떡 벌어진 입을 여전히 다물줄 몰라하는 수혁과 이윤.
처음과 같다. 정말 놀랄 정도로 연우와 연소는 처음과 같다.
하지만... 지금 연우의 눈빛은 처음과 다르다.
"형이 진짜 간다는 게... 이제서야 실감이 나."
"......그래?"
"형도 이런 인간이었구나."
수혁은 처음 연우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은진이 연우를 좋아한다 생각해 그저 질투심에 눈이 멀었던 자신을 생각하니
문득 피식 거리며 웃음이 튀어나왔다.
"은진이한테 말을 하지 않아서... 그래도 괜찮겠지? 은진이 기억 속에서 우린 사라질 테니..."
"......그런가......"
"지금이라도 연락할까?"
"하지 마, 이윤아. 그냥... 그냥 가는 것도 괜찮을 법 하다."
연우의 첫사랑이 있었던 은진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말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부르고 싶지 않다. 정말...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은민은 쇼파에 앉아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 지금 방 안에 있는 지우와 연소가 무얼하고 있을까... 하고 궁금증을
품어보는 재아를 쳐다보기도 하고, 연우의 모습을 쳐다보는 수혁과 이윤의 모습도
쳐다보고... 은민은 지금 이 순간, 너무나도 복잡한 마음속을 정리할 수 없다.
지금 자신의 옆에서 연소의 방문을 한참동안이나 응시하고 있는 세민을 보아도
여전히 답답하고, 또 가슴 한 켠이 쓰리다.
"......나도... 소환국이란 곳에 가고 싶어, 언니."
"재아야."
"나... 연소가 어떻게 그 곳에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언니."
"......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지 알아?"
"몰라..."
"떠나야 할 연소와... 이 곳에 남아야 할 지우다..."
"......휴우."
"세민이 너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난 솔직히..."
"알아. 알고 있어, 누나. 말하지 마."
세민도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한 지... 관자놀이를 짚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연소 이 곳으로 보내지 말지 그랬어요, 언니."
"어쩔 수 없었어."
"결국... 이 곳에 와서 제일 힘들어 하는 건..."
"그래, 알아... 연소라는 거..."
거울 속의 자신은... 엄연히 '소환국'의 '공주'다.
분홍색 계열의 옷을 입고, 목걸이며 뭐며 몸에 여러가지 치장을 한...
하지만, 지금 연소는 공주이고 싶지 않다.
'공주'라기 보다는 '그저 평범한 지우와 같은 이 세계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꼭... 가야... 되는 거냐?"
"오빠, 이제 준비 다 끝났어요. 나가요."
"......가지... 마..."
"오빠가 이렇게 어린 애처럼 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었다면 내가 먼저 해결했을 거예요!
근데 이게 아니잖아요! 이게 아니잖아! 난... 난..."
지우가 연소의 곁으로 다가갔다.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버린 연소를... 지우가 다시는 놓아주지 않을 듯이 으스러지도록
꽉 안았다. 어린 아이가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손에 꼭 쥐고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지우도 지금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기세다.
"......알아... 미안... 미안... 하다......"
"세아 언니한테 가고 싶어요. 우리 남매 지금 다 있는데... 세아 언니만 혼자 있잖아요.
그래서 소환국에 가고 싶은데... 그러고 싶은데...
한편으론 그게 아니야. 오빠때문에... 이 곳에 쭉 남아있고 싶어요.
어제도, 오늘도... 이 생각에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 번씩 울어봐도... 소용이 없잖아요."
"......연소야."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어요. 처음 이 곳에 왔을 땐 그저 연우 오빠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왔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이 곳에선...
늘 재밌으면서도 차가운 수혁 오빠도,
항상 밝은 면만 보여주려고 하는 이윤 오빠도,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사귀었던 마음씨 좋던 재아도,
처음으로 마음을 열어줬던 유민 선배도,
무섭기만 했던 은지 선배도,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은진 언니도,
내 곁에서 이렇게 지금 같이 슬퍼하고 있는 오빠도...
왜 이렇게 추억만 가득 새기고 가야하는지 모르겠어요... 나... 나 어떡해요..."
너무 많은 추억에 감사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추억은 때론 버겨울 정도가 되어 사람을 지치게 한다.
"......연소야."
"오빠... 미안해요... 나... 이렇게 떠나야 하는 나... 용서해줘요... 그럴 수 없겠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만... 오빠 곁을 떠나야만 하는 나... 용서해줘요, 오빠."
연소의 모습을 보는 지우의 마음엔 아련한 추억들로 가득하다.
"용서 안 해, 지연소."
"......미안해요."
"처음부터 미안해 할 일도 없었고, 용서해야 할 일도 없어."
"지우 오빠..."
"사랑한다, 연소야."
"......"
"넌 죄 없어. 내가 널 사랑하는 게 죄가 된다면... 그건... 미안해해야 할 일이 되고,
용서해야 할 일이 될 테니까. 그러니까... 미안하다는 말, 용서해 달라는 말... 안 해도 돼."
늘 이렇게 차가우면서도 타이르듯 말하던 지우를 생각해본다.
자신때문에 힘들어했을 지우를... 연소는 생각해본다.
세민의 흔적 속에... 힘들어하던 연소를 바라보며 뒤돌아서야 했던 지우를 생각해본다.
"소환국에서..."
"......"
"오빠를 그릴지도 몰라요."
"......"
"세민이를 보면서... 오빠를 그릴지도 몰라요."
"......"
"만약 나중에... 다시 이 곳으로 내려오게 된다면..."
"......"
"예전에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은 분명 이윤 오빠와 수혁 오빠이었지만..."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오빠가 되길... 간절히 바랄게요."
바라지 마.
내가 되길 바라지 마.
"......"
"그 땐... 오빠를 가장 먼저 만났으면 좋겠어요."
믿는 거야.
내가 될 거라고... 무조건 믿는 거야, 연소야.
"젠장... 못 보내겠다. 너... 못 보내겠다."
"......이제... 우리끼린... 마지막 인사... 해야죠... 세민이 앞에선... 그러지 못할테니까......"
연소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기도 전에...
연소의 분홍빛 입술이 지우의 차가운 입술에 겹쳐졌다.
더 실감이 난다.
이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그 막을 수 없는 사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이라도... 두 사람만의 공간에, 두 사람만이 존재하기를...
.
.
.
.
"잘 있어..."
"연소야..."
"재아야, 아버지... 용서했으면 좋겠어..."
"......"
"많이 아프시다잖아. 그리고... 난... 널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진소윤 선생님... 후우...
선생님이라고 해야하나? 어쨌든 진소윤 선생님한테 갔으면 좋겠어.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아."
"......연소야."
"내 생에 최고의 친구였던 거 알지?"
재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수혁 오빠, 이윤 오빠... 왜 벌써부터 딴청이에요. 괜히 정말 모르는 사람 같잖아요."
"......쳇. 아는 척도 하고 싶지 않네요."
"그냥... 이제 진짜 마지막인가 싶어서 무서워, 연소야."
"수혁 오빠, 그러면 나... 가서도 되게 힘들텐데... 그리고 이윤 오빠,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오빤 그저... 이 곳에서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예요.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그게... 네 말처럼 쉬운 게 아냐, 연소야.
이윤은... 솟구치는 슬픔을 애써 꾹꾹 눌러 담아본다.
"잘 가, 정신병자."
수혁이 괜스레 찡해져오는 코끝을 문지르고는 퉁명스레 이야기한다.
그래도 끝까지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게 수혁의 방식이라면 방식이니까.
"그럼 나도 그렇게 인사해야 하나? 잘 가, 외계인."
"......풋......"
"가서도 그렇게 예쁘게 웃어라, 연소야."
"그래. 수혁이 말처럼 그렇게 예쁘게 웃으면 돼."
가서도 예쁘게 웃을 수 있을까요...?
"지우 오빠..."
"그래..."
"잘 지내요."
"......잘 가라, 연소야."
"행복해요."
"행복해라."
"수혁 오빠랑 이윤 오빠랑 또 투닥거리면서 싸우면... 이젠 오빠가 나서서 말려줘야 되요.
이젠 저 두 사람 싸워도... 끼워서 같이 싸움 일으키는 사람 없으니까... 좋겠네요."
"상대하고 싶지 않은 녀석들인데... 상대하라고 하면... 할 말이 없잖아."
"......은진이 언니한테도, 유민 선배한테도... 안부 묻고 잘 있으라고 해줘야 하는데...
유민 선배는 그래도 가기 직전에 전화라도 해줬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내가 전해줄게."
오빠... 그건 몰라요.
정말 오빠가 지금 나와 한 약속들... 지킬 수 있을지...
"......그럼... 좋겠다......"
한편, 연우도 다른쪽에서 인사를 나눈다.
슬픈 빛 가득한 얼굴로... 애써 웃음 짓는 연우가... 왜 그렇게 안쓰러워 보이는지...
"재아야."
"오빠..."
"알바할 땐... 늘 네가 날 도와줘서... 너무 고마웠다."
그건... 오빠를 좋아했기 때문이었어요.
재아의 속마음을... 연우가 알리 만무하다.
"그럼... 다행이네..."
"행복해라."
"......오빠도..."
연우의 시선이... 재아에게서 수혁과 이윤에게로 향했다.
"......잘 가슈."
"그 말투는 또 뭐야. 하여튼..."
"쳇. 빨리 가기나 하셔."
"그래, 그렇게 꼴보기 싫다면 빨리 가마."
연소와 다를 바 없이 수혁도 툭툭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연우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이것만이 수혁이 자신의 마음을 포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형..."
"벌써부터 이렇게 마음 약해지면 안 되지, 이윤아."
"......잘 가."
"그래. 항상 웃고만 지내."
"나... 지금도 웃고 있잖아."
정이윤이라는 녀석은 마음이 너무 약하다.
수혁이나 지우의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으련만... 연우는 학생이 아닌, 성인이었을 때의
이윤의 모습을 아주 많이 기대한다.
그땐 이런 약한 모습은 말고, 남자다움을 몸에 지니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모습을 꼭 한 번 다시 자신이 와서... 봤으면 좋겠다.
"그래."
마지막으로 연우의 시선이 향한 곳은... 지우가 있는 곳이었다.
다갈색의 눈동자가 슬픔으로 일렁이고 있다. 단번에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연우다.
"연소가 없더라도... 힘들어하지 마."
"걱정 마."
"너희들이 정말 인연이라면..."
"......만나겠지......"
연우와 지우의 feel이 팍 통했는지, 두 사람은 동시에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서로를 보며, 피식- 웃어버리고 만다.
은민과 세민은 그저 눈으로 인사를 한다.
잘 있어라, 잘 지내라... 그들의 눈동자가 말해주고 있었다.
"잘 있어."
연우와 연소, 은민과 세민의 몸에서 강한 빛이 일렁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오른 네 사람...
수혁과 이윤은 네 사람 중 아무나 잡아보려 했지만, 빛은 그들의 강한 보호막이 되어
막을 형성했고,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모든 게 끝.
이제 저 네 사람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그들의 기억 속에 네 사람은... 이대로 끝이다.
"제길! 난 절대로 안 잊어!"
계획에 실패한 수혁이 소리를 지른다.
"......잘 가!"
서운한 듯 이윤도 소리를 지른다.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사람들이었어요! 물론... 기억에서 이제 곧 지워지겠지만!"
재아의 눈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다.
"잊지 않아. 지금 네가 내 앞에서 사라진다 해도... 난... 절대 잊지 않아!"
지우는... 있는 힘껏... 연소에게 전해지도록... 아주 크게... 소리를 질렀다.
너의 그 미소.
늘 너와 함께해서 행복했던 우리들 추억.
우리 그거 다 머릿속에 간직하자.
앞으로 우리가 만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남겠지만.
난 믿어.
언젠가 우리 꼭 만나 사랑할 거라고.
예쁘게 사랑해서.
지금처럼 이렇게 헤어지지 않을거라고.
난 믿어.
지금 내 손에 있는 네가 준 반지.
이걸 보면서 잊혀질만하면 널 기억할거야.
소환국에서 만들었다고 했지? 네가 고생해서 네 힘으로 처음 만들었다고 했지.
그러니까 더 잃어버리지 않을 거다.
힘들만 하면 이 반지를 기억할게.
널 잊고 싶어서 힘들다 싶으면.
그때마다 나 이 반지 기억할게.
네가 자꾸 내 머릿속에서 잊혀지려고 하면.
나 그때마다 이 곳을 꼭 찾아올게.
.........근데 있잖냐.
나 이 곳 왜 매일 찾아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연소야...
왜 나 이 곳에 매일 찾아와 네가 그리워 한참을 헤맬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넌 알고 있냐.
내가 지금 너무 힘들어서.
떠나는 널 봐야만 하는 내 심정이.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지금 나... 왜 이렇게 원망스러운 거냐.
그곳에서 넌 세민이 녀석의 여자가 될 지도 모르는데.
왜...
난 이 곳에서 멍하니 떠오르는 널 응시하고 있는 거지?
이런 게 바로 남아있는 자의 '미련'이라는 건가...
사랑해. 사랑한다.
수십 번 외쳐주고 싶지만.
지금 마음 속에 몰래 모셔놨다가 나중에 네가 다시 돌아오면.
그래서 내가 널 만나면.
그때가서 몰래 해 줄 거다.
'사랑해...'라고.
[지은이] 순수투유
[이메일] young----hee@hanmail.net
[경고문] ※불펌/팬픽/성형/도용/표절/수정※ 절대금지
<epilogue>
갈색의 머리칼, 다갈색의 눈동자, 훤칠한 키.
그는 늘 이 곳에 들러본다.
내 기억 속에 뭣때문에 지금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
그는 생각한다.
그의 머릿속에서 잊혀진 듯한 무언가가 대체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것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가 추측에 추측을 거듭해 알 수 있었던 사실 하나는...
"내 기억 속에 무언가가 반지를 만드는 사람인가?"
"천지우, 하여튼 대학교 들어가고 나서 성격 엉뚱하게 변해서는... 생각하는 거 봐라."
그의 곁으로 다가온 짧은 단발 머리칼의 한 여자.
"한은진, 네가 생각해봐. 아무리 생각해봐도 진짜 모르겠다니까!"
"네 기억 속의 무언가?"
"그래!"
"전생... 뭐 그런 거 아냐? 너 아무래도 무당한테 가봐야 겠다. 귀신이 단단히 씌였다니까."
"시끄러워. 천수혁 콩깍지나 씌인 주제에."
여자가 시원스레 웃는다.
"아까 이윤이랑 재아랑 유민이랑 이영이 언니 있었잖아. 어디 갔어?"
"몰라. 이윤이 놈은 그냥 이곳저곳 둘러본다고 갔고, 재아? 글쎄... 모르겠네.
현유민 그 놈은 이영이 누나가 끌고 갔지. 뻔한 거 아니냐?"
"후후. 그렇기도 하네."
"너 그렇게 웃지 마라. 재수없으니까."
"그럼 헤헤헤- 하고 웃으리?"
"그 웃음은 더 짓지마."
그리고 지우는 하늘도 쳐다봤다, 밑도 쳐다봤다, 주변도 쳐다본다.
그러나 여전히 찾을 수 없는 단서들.
"오늘도 별 수확은 없는 거 같네?"
"젠장. 조용히 해."
"그러지, 뭐. 근데 수혁이는 어디로 갔지?"
"아~ 씨! 잘 찾아봐! 그 자식 진짜!"
"왜 수혁이만 보면 뭐라고 그래, 넌? 네 동생이야, 그것도 쌍둥이 동생."
"시끄러. 이란성 쌍둥이가 뭔 쌍둥이야."
"이런성 쌍둥이라는 말에 엄연히 '쌍둥이'라는 말이 붙는다, 천지우."
난리에, 난리를 거듭하는 지우를 보며
또 '후후'거리며 웃어버린 은진은 수혁을 찾기 위해 나선다.
.
.
.
.
"어?"
"뭐야...?"
"아니... 잠깐만."
갈색머리칼의 다갈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는 앞을 스쳐 지나가는 여자에게로 뛰어간다.
"......저기......"
"네?"
"너..."
여... 여... 여...
순식간이었다.
지우가 생전 처음들어보는 이름을 기억해낸 것은.
"연소?"
"죄송합니다.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연소라고? 내가 지금 뭔 이름을 댄 거야?
반지의 주인공과 연관이 있는 건가... '연소'라는 이름은...
"이번에도 반지의 주인공이냐?"
"아니더라."
"역시네, 역시야."
"시끄러워."
늘 이랬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얼굴을 확인하고는 죄송합니다... 고개 숙이는 지우.
"왜 너한테만 그런 게 나타나는 걸까?"
"야, 왜 나만 그러는 거야?! 민재아는!"
"괜히 할 말 없으니까 그러지, 천지우?"
"시끄러워."
"하긴... 재아도 너랑 좀 비슷한 반응을 잘 보이고 다니더라. 애 둘이 이상하단 말야."
은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저멀리 지나가는 낯익은 뒷통수에 소리를 질렀다.
"야, 천수혁! 이 자식아! 너 정말 죽을래?!"
"피식- 못말려, 진짜."
지우는 또 다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달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연... 소?"
"네?"
"연소...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사, 사람... 잘못 보셨나... 봐요..."
지우가 잡은 사람은 또 엉뚱한 사람이다.
여자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가던 곳을 재촉한다.
지우는 한숨을 푹 내쉰다.
역시 이번에도 아닌가...
지우가 은진과 수혁이 길 한복판에서 싸우고 있자, 그 곳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지우가 달려가자 아까 그 여자가 지우를 응시하며 말한다.
"지우 오빠..."
지우가 잠시 멈칫하며 여자를 돌아본다.
"환청인가?"
뒤돌아서서 걸어가는 지우의 가슴이 아프다.
물질과 물질이 서로에 반응하 듯,
지우는 지금 저 여자에게 반응하고 있었다.
기억을 잃기 전 지우도,
기억을 잃어버린 후의 지우도...
모든 게 그녀에게는 사랑이리라...
[지은이] 순수투유
[이메일] young----hee@hanmail.net
[경고문] ※불펌/팬픽/성형/도용/표절/수정※ 절대금지
<57>
"......이제 곧 시작이야."
"언니... 은민이 언니..."
"아직도 지우 생각이 나서 네가 힘들다는 거 알아... 하지만 연소야..."
아무리 애원하고, 애원해도...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이것만이 소환국과 서광미국... 두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길이야."
"......내가... 힘들어도... 내가 너무 많이 아파도... 두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길은... 이것 뿐이라는
말로 쉽게 넘어가려 하지 마! 나 정말 싫어... 지우 오빠 보지 않으니까 미쳐 죽어버릴 것만 같아!"
"......어쩔 수 없잖아......"
"나 좀 보내줘... 나 좀 보내줘!"
악에 바친 비명을 질러봐도...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컵에 담을 수는 없는 법.
"......니가 가면... 남겨진 세민이 녀석 입장은... 생각도 안 해봤어?"
"언니..."
"저 밖을 봐. 왕실의 힘 하나만 믿고 살아가는 저 가엾은 이들을 봐!"
"......그래서... 나보고......"
"넌 소환국의 마지막 공주야!"
"이제 팔려가면 공주도 아니잖아!"
"연우 오빤... 연우 오빤 어떨 것 같은데, 지연소."
연우가 무엇을 어쨌길래... 문 밖으로 살며시 보이는 연우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본 은민은
한숨을 푸욱 내쉰 뒤, 연소에게 입을 열었다.
"연우 오빠... 재아 많이 좋아했어."
"설마...!"
"재아가 연우 오빠를 좋아했듯, 연우 오빠도 재아를 좋아했단 말이야!"
"......하아... 못 믿어.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는 사실이...
그 사실이라는 녀석이...
"근데 너 이 결혼 끝나고, 몇 일 뒤면 또 연우 오빠 결혼식이라구!"
"......연우 오빠도, 나도... 왜 이렇게 인생이 꼬였는 지 모르겠어, 정말."
"몰랐던 것 뿐이야. 이렇게 이까지 올 줄... 아무도 몰랐던 것일 뿐이야."
연소를 미치게한다. 늘 연우를 쳐다보는 재아의 시선에, 연우가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또 한 번 가슴엔 비수가 꽂힌다.
그 비수가 가슴에 상처를 낸다.
"세아 언니..."
"......그래."
"미안..."
처음 말했었잖아.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 했었잖아.
근데... 지키지 못했어. 내 힘으로 돌아올 자신이 없어서... 결국은 은민이 언니랑 세민이랑
연우 오빠랑 이렇게 다 같이 와 버렸어. 미안해... 힘들었을 언니... 생각하지 못해서...
말하지 않아도... 세아는 연소의 진심을 느끼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 진심과 함께 연소의 맑은 두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쓰라린 아픔을
세아도 짐작하고 있었으리라.
"은민아, 나가자."
"......"
"연우 오빠 들여보내줄게. 두 사람은 통하는 게 많을 거야. 얘기 나눠, 연소야."
세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은민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 연우가 슬픈 눈망울을 한 채, 안으로 들어왔다.
왈칵.
왜 연우를 보자마자 눈물이 이렇게 쏟아지는 지.
울었다면 그동안에도 너무 많이 울었을 텐데.
왜 연우의 헬쓱한 모습을 보자마자 이렇게 눈물은 끊임없이 멈추지 않는 것인지.
"......연소야."
"오빠, 오빠, 오빠..."
"미안해."
"뭐가... 뭐가 미안한데... 오빠가 뭐가..."
"그때... 지우 이 곳으로 데리고 와서 무사히 다시 그 세계로 돌려보냈다면..."
"......흐윽......"
'지우'
연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지우'라는 이름은 너무 슬프다.
"지우는 널 그 곳에 가서도 기억하고 있을 지 모른다."
"......흐윽... 무, 무슨... 말이야......"
"사실... 알고 있었어. 소환인을 잊지 않고 끝까지 기억하는 방법을..."
"......!!!!!!......"
"그 방법이란 게 그런 거였다. 소환국으로 데려왔다가 다시 그 세계로 가면, 영원히 소환인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그럼......"
연소의 눈동자가 연우를 향했다.
"재아를 데려오지 그랬어! 재아 데리고 오지, 왜 그랬어!"
"......연소야."
"힘들게 보내면 뭘 해! 재아한테는 오빠의 형상이 조금은 기억될텐데!"
"......연소야......"
알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재아를 향한 자신의 마음과, 자신을 향한 재아의 마음을.
그러나 모르는 척 하는 수밖에 없었던 연우.
연소처럼 지우에게 마음을 줬다간, 훗날 소환국에서 힘들어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다. 재아의 마음을 억지로 밀치고, 밀쳤다.
그러면서도 지우를 향한 연소의 마음과 유민을 향했던 연소의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너무 귀하게 자라나서 세민을 향한 감정을 '우정'이 아니라
'사랑'이라 믿고 있었던 연소가 불쌍해서.
그래서 세민과의 결혼 이 후,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그때서야 힘들어 할까봐서.
"......기억할 거야."
"......"
"재아는... 꼭 오빠를 기억하고 있을 거야. 내가 아는 민재아라면... 분명히..."
"기억할 거다, 연소야."
"......"
"내가 알고 있는 천지우라는 녀석이라면... 분명히 널 어렵지 않게 기억하고 있을 거다."
서로에게 고마웠다.
믿음을 주고 있는 서로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할 거야."
"연소야..."
"터뜨릴 거야. 이 모든 일... 끝까지 돌아가게 할 순 없어."
"그건 안 돼."
"이미 결심해 버렸어. 아무도 못 막아. 오빠도, 나도... 반드시 그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허락을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할 거야, 난!"
그리고, 연소의 어머니가 들어온다.
이미 자신의 부모와 세민의 부모간에 아픈 속사정을 알고 있는 연소는 쉽게 자신의 어머니와
대면하고 앉아있을 수 없었다.
"나가볼게."
"오빠, 잊지 마. 난 꼭 해..."
"어마마마 계신다..."
"......"
연우가 나가고 난 뒤 흐르는 고요한 침묵.
"미안하구나..."
"어마마마에게... 우릴 이렇게 만들어버린 어마마마에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이 어미를 용서하겠니."
"용서할 수 없어요. 집안의 반대때문에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야했던 어마마마와
아바마마를... 세민이 부모님을... 용서할 수 없어요."
"......그땐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단다, 연소야."
"그럼... 지금 제가 이렇고 있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구요?!"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연소는 예전과는 달리 많이 변했고, 또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네가 정 싫다면... 가렴......"
"하지만..."
"가고 싶다면... 가거라..."
"이곳에서의 12일은 그곳의 1년이에요!"
소환국에서의 12일.
그리고 '현재'라는 곳의 1년.
"가고 싶다면 가거라. 연우도... 너도..."
"어마마마..."
"더 이상 너희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어미로서 보고 싶지 않구나."
"그럼 또 다시 이곳은 전쟁이에요!"
"내가... 이 어미가 책임지마."
"하지만..."
"밖에 연우 있느냐."
"네, 어마마마."
연우가 들어왔다. 연우의 눈엔 그저 슬픔이 일렁이고 있었다.
"......가거라."
"어마마마!"
"그 곳으로 가거라. 이 곳에 있기가 힘들다면... 그곳으로 가거라."
"그럴 수 없습니다."
"네 연인이 그립지도 않느냐..."
멈칫했다. 연우의 눈동자가 혼란스럽게 일렁인다.
어머니가 알고 있을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이 일을
알고 계셨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중엔... 이 어미도 그 곳으로 가... 너희들의 연인을 보고 싶구나..."
여느 때보다도 인자해보이는 미소와 부드러운 표정은... 결국 모질었던 연소를 울린다.
늘 아프기만 했던 그들이기에... 늘 슬퍼해야만 했던 그들이었기에...
하지만 연소는 그러면서도 세민이 마음에 걸렸고, 세아와 은민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이 곳에 남아 힘들게 변명이라면 변명을 해야하는 자신의 어머니도 마음에 걸린다.
"가, 연소야."
"......세... 민아......."
"이 곳에 같이 와 준것만으로도 난 충분해. 그러니까... 내 마음 바뀌기 전에 가."
"세민아."
"결혼식 파혼내는 건... 나 하나면 충분해."
"하지만!"
"......우리 부모님과 너희 부모님도... 곧 제자리를 찾게 될 것 같아."
세민이 연소母를 향해 의미모를 미소를 짓는다.
"난 더 이상 서광미국의 왕위를 물려받고 싶다는 생각... 들지 않아.
물론... 두 나라가 이렇게 싸우는 걸 원하지도 않아.
그래서 뒤집어 엎을 생각이야. 난...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물론이고
너희 아버지, 어머니까지도 잘 되셨으면 좋겠으니까."
어렸을 때 봤던 세민의 미소다.
늘 밝고 투명해서...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것만 같았던 세민의 미소다.
"이 결혼식 자리는..."
"......설마, 세민이 너......"
"내 아버지, 그리고 연소 너의 어머니... 내 어머니, 연소 너의 아버지의 결혼식이 될 거야."
햇살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그들의 11일간은 다소 불안정했다.
하지만...
이제 곧 시작될 그들의 12일은 다소 편안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축하해 드리는 게 예의가 아닐까."
"그렇지."
"세민아..."
"어머님, 걱정마세요. 저... 허튼 짓은 하지 않아요."
네 사람의 얼굴은... 처음의 어두웠던 표정과는 달리... 밝다.
[지은이] 순수투유
[이메일] young----hee@hanmail.net
[경고문] ※불펌/팬픽/성형/도용/표절/수정※ 절대금지
<58>
수많은 백성들. 그들이 나와 자리를 해 주고 있는 가운데...
연분홍색의 화려한 의상을 갖춰입은 연소와 단정하게 회색의 의상을 갖춰입은 세민이 있다.
그리고 양쪽으로 세민의 부모와 연소의 부모가 있다.
그 옆으로 연우와 은민, 세아가 있다.
"......두 분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
두 사람의 지위가 그렇듯, 결혼식은 주례사가 아닌 그 두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먼저 마이크를 잡아버리는 연소다.
연소는 모르겠지만, 세민은... 두 주먹을 꽉 쥔 채 연소를 아프게 응시하고 있었다.
"......이 결혼식은......"
"......"
"세민이와 저의 결혼식이..."
두려웠다.
연소의 입에서 터져나올 그 한 마디가... 너무나도 두려웠다.
"......아닙니다."
"......"
"소환국의 왕과 왕비이신 저의 아버지, 어머니와..."
"서광미국의 왕과 왕이비신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제 꾹꾹 눌러왔던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새로 시작하게 되는 결혼식이 되겠습니다."
주위가 술렁거렸다.
그럴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던 연소와 세민으로선 그저 묵묵히 할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전... 세민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
"세민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어... 차마 세민이와... 결혼할 수 없습니다."
원래는 '왕자'라는 말을 해야 알맞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뻣뻣하게 '왕자'라는
말 보다는 '세민'이라는 친근하고 좋은 말을 쓰고 싶은 연소다.
"......어머니, 아버지... 이젠... 제 갈 길을 가셔야 할 것입니다."
"그건 안 된다, 세민아."
"이건 왕실의 법도를..."
"그깟 왕실의 법도가 무엇이 중요합니까!"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 저희가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요. 전... 충분히 알고 있어요.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쩌다가 네 분이 이렇게 갈라져야 했는지!"
술렁거리는 백성들의 앞으로... 연우가 나왔다.
"지금부터 소환국과 서광미국... 두 나라의 통합을 선언합니다."
"......연우야!"
"아버지, 아무런 말씀도 하지 마십시오."
"그건!"
"두 나라가 지금 이 순간부터 통합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소환국과 서광미국의 왕실은... 지금 이 순간부터 사라졌음을 알립니다.
더 이상의 전쟁도, 더 이상의 충돌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벌어지는 일을 계기로 여기저기서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 사료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서로의 마음을 숨기고 각자 다른 사람의 곁에서 살았을
저 네 분을 봐 주십시오."
감정이라는 건...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게 되지 못한다.
"그럼 지금부터 신랑 정세현 씨(세민父)와, 신부 이윤하 씨(연소母)의 결혼식과..."
"신랑 지연후 씨(연소父)와, 신부 선재인 씨(세민母)의 결혼식을 합동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전자가 연소였고, 후자가 세민이었다.
.
.
.
.
여러가지 복잡한 결혼식이 술술 진행되어 갔다.
결혼식이 진행되어가면 갈수록 연소는 속으로 내심 마음이 다급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축하의 말들이 오가고 있는 가운데, 연소가 입을 열었다.
"......전 연우 오빠와 지금 이 순간부터 사라질 생각입니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연소의 말이 끝나자, 연우가 말했다.
"서로만의 연인을 찾기 위해서... 오늘부로 떠납니다."
"안녕히 계세요."
"......지금처럼만... 딱 지금처럼만... 행복하세요, 어마마마... 아바마마..."
세아의 눈에도, 은민의 눈에도, 부모님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힌다.
"오늘 너무 기분 좋아요. 부모님이 네 분으로 늘었잖아요."
"......연소야, 연우야."
"꼭 오세요. 어디에 있든, 소환인의 기를 느낀다면... 그건 분명히 우리 가족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어디에 있든 꼭 찾아낼게요. 아셨죠?"
은민과 세아의 눈을 마주쳤다.
억지로 결혼했던 은민 언니과 세아 언니도 이제 곧 이혼의 길로 들어서겠지.
그리고 서로의 행복을 찾게 되겠지.
세아 언니와 은민 언니의 곁에 있는 그 두 사람... 원하지 않았던 그 두 사람...
그 두 사람도 이젠 곧 자신들만의 길로 들어서게 될 테니... 걱정을 하지 않을게.
잠깐동안의 형부들... 안녕히 계세요.
힘들었을 부모님들... 안녕히 계세요.
무엇보다 더 많이 힘들었을 언니들도... 안녕히 계세요.
왕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모든 분들도... 안녕히 계세요.
소환국을 떠나던 그때처럼... 두 사람의 몸이 가뿐히 날아오른다.
환한 빛에 둘러싸인 두 사람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간다.
'이거...'
'이게 뭐야...'
'오빠한테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거예요...'
'......반지......'
눈을 감고 그 마지막을 회상했다.
지우와 자신의 마지막 추억을.
'이거 가지고 있으면... 오빠 쉽게 찾아낼 것 같아서.'
'......제길... 이런 거 없어도......'
'이거 가지고 있으면... 여기 내 손에 있는 이 반지로... 서로를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난 너 잊지 않아!'
'만약 나중에... 내가 다시 이 곳으로 오게 된다면... 그땐 이 반지 보고 알아줘요.'
'이거...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을테니까... 돌아만 와라.'
나 지금 그 약속 지키러 가요.
'반지... 내가 소환국에 있을 때 직접 만들었던 거예요.
그래도 공주라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던 부모님 말씀도 듣지 않고 고집부려서
내가 처음으로 내 손으로 만들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그거 잊어버리지 마요.
내 첫작품... 잊어버리면... 오빠 미워할 거예요.'
'돌아오기만 한다면... 네가 돌아온다면...'
'......오빠......'
'난... 이 반지 영원히...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있을 거다.'
힘들었죠?
나 없는 사이에 그곳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겠네요.
12일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연우 오빠와 난 정말 많이 변해버렸어요.
어느새 많이 자라버린 머리카락하며, 그리고 좀 더 성숙해진 모습이에요.
내가 가면... 내 이름 꼭 불러줘야 해요.
내 이름... 꼭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다 왔다..."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연소와 연우의 눈 앞에는 벌써 그들이 그토록 원하고, 원했던
현재가 있었다. 연우는 새로운 듯... 연신 눈을 깜빡이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많이... 변했네... 아주 짧은 시간동안......"
무성히 자란 나무들과 풀.
그리고 그런 나무들과 풀을 누군가가 손질해 놓은듯한 이곳.
믿고 싶었다.
지금 이 나무들과 풀이 말끔하게 손질된 이유가 지우이기 때문이라고...
"......오빠, 예전 그 곳에서... 있다가 만나. 해지기 전까지."
"알았어. 나중에 보자, 연소야."
하나 둘...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연소가 멈춰섰다.
지우가 보였다.
여전한 다갈색의 눈동자, 검정색이었던 머리칼이 갈색으로 변해버린 지우의 모습.
그리고... 또 한 가지 변한것이 있다면...
"......은진이 언니... 구나......"
그의 곁에는 이제 '지연소'가 아니라, '한은진'이 있다는 사실이다.
절망스러웠다.
이보다 더한 절망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결국 지우의 곁에는... 지우의 곁엔... '지연소'가 아니라, '한은진'이어야 했던 것일까.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고, 그 눈물 방울은 풀잎으로 떨어졌다.
이곳으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아 다시 소환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기억이 많이 조정이 되었을 것이란 건 안다.
소환인과의 기억이 없어진다면... 그들의 사이엔 조금씩의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이건...
그녀에겐 쇼크였다.
진작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결국 지우는 그녀의 곁이 아닌, 은진의 곁에 있다.
지우의 옆자리엔 은진이.
은진의 옆자리엔 지우가.
이것이... 연소가 바라고, 또 바랐던... 그 원점인 것일까.
[지은이] 순수투유
[이메일] young----hee@hanmail.net
[경고문] ※불펌/팬픽/성형/도용/표절/수정※ 절대금지
<59>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 그곳을 애써 빠져나온 연소는 거리를 활보했다.
오빠와 했던 말... 내가 소환국으로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땐 먼저 오빠를 보겠다고 했던 말...
그 약속 지켜졌는데... 그 약속때문에 내 마음은 찢어져요, 오빠.
아까 어지러운 듯, 혹은 은진과 행복한 듯 웃고 있던 지우가 생각났다.
그것이 원래 지우의 모습이라는 것일까...
앞이 흐릿흐릿한 것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뿌연 안개 속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연소의 머릿속도 덩달아 흐릿흐릿해지며 아까의 지우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연... 소?"
앞을 걸어가던 연소를 향해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멈칫하며 고개를 돌린 연소는 흠칫하며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지우다. 분명 아까 은진과 같이 있었던 지우다.
"연소... 아니에요?"
부드러운 목소리... 차가운 듯 보이나 부드러운 목소리가 연소의 청각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연소는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이 남자를 와락 껴안고 싶다는
충동에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다.
고개를 숙인 연소의 시야에 꽉 들어차는 저건...
반지였다. 확실히 연소가 소환국으로 가기 전... 지우에게 줬었던...
분명 그것은 반지였다.
무엇보다도 연소가 깜짝 놀라야 했던 이유는 지우의 입에서 튀어나온 너무나도 그리운
자신의 이름인 '연소'라는 사실이다.
"죄송합니다... 사, 사람... 잘못 보셨나... 봐요..."
하지만... 이젠 지우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는 자신이다.
솔직히 지금 너무나도 이 사람에게 안겨 울분을 토하고 싶지만,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은... '지우'가 아니라 은진만의 '지우'이기 때문이다.
지우가 고개를 숙인다.
사과의 뜻인가 보다.
사과는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정말 지연소니까... 오빠가 지금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는 그 사람이 난데...
이렇게 고개 숙일 필요... 없는데...
돌아선 지우의 한숨소리가 들려오자, 연소는 기어코 참았던 눈물을 한 방울 흘려보낸다.
이렇게라도 잊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 마지막으로 오빠 불러볼게요.
이게... 정말... 내 인생에선 정말... 마지막이에요, 오빠.
"지우 오빠..."
연소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지우의 귓가를 간지럽혔던 것일까.
걸어가던 지우가 멈춰선다.
그리고 연소를 쳐다본다. 하지만 연소는 뒤돌아선 채 고개를 숙 푹이고 있을 뿐.
"환청인가?"
연소의 목소리는 이제 지우에게 '환청'이 불과한 것이란 사실이,
그 믿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
이제부턴 자신을 늘 아프게할 그 사실이라는 게 너무나도 밉다.
그 사실이 미워짐과 동시에 자신을 끝까지 알아보지 못하는 지우 역시 밉다.
지우가 뛰어간다.
은진에게로... 지우가 뛰어간다.
지우 오빠... 오빤 이제 정말 은진 언니의 사람인가봐요...
끝까지... 그를 잡을 수 없었다.
늘 유민과 함께 했던 카페를 찾았다.
유민이 노래를 부르던 그 곳을... 연소가 정말 오랜만에 찾아왔다.
떠난다던 말 한 마디 남기고 가 버렸던 유민이 미워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어쩐지 오늘은 꼭 이곳에 들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함부로 사랑이란 말 하지 말아요.
그 사랑이란 말에 난 늘 기대하는 걸요.
기대하다 늘 그대의 옆자리에 있을 수 없어 돌아서야 했죠."
라이브 카페인지라,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언젠가 이곳에서 유명하다던 연예인 밴드도 본 적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너무나도 좋아했던 유민의 노래실력을 감상하며 운 적도 있었지...
연소는 이런 생각을 하며 무대를 쳐다보았다.
"늘 부질없던 생각으로 그대를 기쁘게 하려던 날 모르겠죠.
영원히 알지 못할 거예요.
그대의 무관심이, 그대의 싸늘함이 날 하루에도 수백 번씩 울리는 걸요."
"손님, 주문하시겠습니까?"
넋이 나간 채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저 사람들을 응시해야했다.
하아... 믿을 수 없어.
너무 믿을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유민... 선배..."
분명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은 유민이었다. 분명 유민이다.
슬픈 눈동자에, 슬픈 표정에, 슬픈 손짓에... 유민은 온통 슬퍼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오직 연소의 눈에는 지금 유민이 슬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노래를 마친 유민이 숨이 찬 것인지 한동안 헐떡이다 마이크를 잡았다.
"아주 흐릿하지만... 누군가의 형상이 기억에 남아요."
유민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
.
.
.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곳이지만, 그래도 소환국의 12일은 대단한 것일까.
벌써 이렇게 무성하게 자라버린 나무들과 풀이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면...
연우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소환국을 떠나던 그때처럼 지금도 이 곳의 봄의 하늘은 푸르다.
"아무것도 없네... 결국... 오늘도 그냥 가야하는 건가..."
들려오는 목소리. 너무나도 익숙하기만 한 그녀의 목소리.
설마... 설마... 설마.
설마에 설마, 점점 의문증은 더해만가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그곳으로 뛰어가는 연우다.
"......재... 아......"
머리도 조금은 짧아지고, 키도 아주 조금은 커 버린 듯한, 그러나 너무나도 성숙한 재아의 모습.
변해버렸지만, 소환국의 12일과 함께 이곳의 1년이 훌쩍 지나가버린 지금...
17살 그때와 다름없는 재아의 모습.
지금 넌... 17살을 넘어 18살이 되어있겠구나, 재아야.
연우는 세한고의 교복이 잘 어울리는 재아의 모습을 응시하며 그래도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어보았다. 근데... 지금 그녀는 무엇을 저리도 고민하며 찾고 있는 것일까.
"......기억이... 나지... 않으니... 정말 미치겠단 말이야......"
머릿속이 어지러운지, 재아는 머리를 아무렇게나 헝클어뜨린다.
"머리카락... 이렇게 헝클어뜨리지 말아요. 단정한게 예쁘잖아요."
"......아......"
이러고도 날 기억하지 못할 거니, 재아야.
이렇게 네 기억속에서 아주 조금 살아있는 나... 기억해주지 못할 거니.
"......이렇게 머리 하고 있는 게 훨씬 예뻐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해주면...
"......나... 알아?"
빈정거리며 연우에게 톡 쏘며 묻는 재아다.
그런 재아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져있다는 걸 아는 건, 연우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재아 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네.
그 아무것도... 그 털털한 성격도, 쏘아붙히던 말투도, 정말 짜증나고 괴로울때면 머리 헝클이던
그 습관까지도... 넌...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재아야.
단 한 가지 변한 게 있다면 날 기억해주지 못한다는 거겠지만... 그게 가장 내겐 쓰라린
상처가 되겠지만...
"......알 거라고 생각해요?"
"아저씨, 미쳤어요?"
"아니요, 안 미쳤어요."
"그래도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생각할 거 같은데... 이 옷 꼬락서니부터가 문제잖아."
"그런가..."
"어쨌든 정신병원에 꼭 한 번 찾아가봐요."
예전에도, 지금도 '정신병원'이라는 말을 들먹거리는 재아.
무튼 연우와 연소 남매는 '정신병'과 아주 연관성이 깊은 사람들인가 보다.
지금 연우가 재아에게 듣는 '정신병원'이라는 말과,
예전에 연소가 수혁에게 들었던 '정신병자'라는 말과 틀린 건 없으니까.
"그리구요, 아저씨."
"......응?"
"다음부턴 함부로 여자들 머리 건들지 마요. 아저씨가 오늘 내 하루의 엔딩을 망치네.
난 지금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거든요! 아저씨는 고등학생 주제에 무슨 중요한 일이냐
할 것 같이 생겼는데... 나 지금 기억 속에 아련한 뭔가를 찾아야 겠거든요?"
그 아련한 뭔가... 여기 있잖아.
하고 싶은 말인데, 저것이 진정으로 자신이 재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인데 할 수가 없다.
잃어버린 재아의 기억을 들쑤셔봤자, 재아에게는 해가 될 뿐이니.
"......미안......"
"이 아저씨가 정말! 왜 반말이야!"
"반말은 네가 먼저 썼잖아."
"내, 내가 언제! 요..."
"......미안하다... 재아야......"
"어라? 아저씨 주제에 내 이름을 알아요?"
연우는 씽긋 웃으며 재아의 왼쪽 가슴부분에 달려있는 명찰을 응시했다.
"이 아저씨 변태아냐!"
"재, 재아야."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냐니까!"
"네 명찰. 이름이 '민재아'라고 쓰여있어서."
아까보다 더 새빨갛게 달아오른 재아의 얼굴. 토마토를 넘어서서 이젠 딸기 수준이다.
"에이~ 씨! 아저씨 만나고 진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얼른 가요! 갈 길 가라구요!"
"내 갈 길은..."
"아저씨 갈 길은 뭐~"
"너를 향한 길 뿐인 걸."
"엥? 뭐라고? 내가 지금 졸라게 느끼한 소리를 들었거든요?"
"아니야. 그럼... 그 아련한 거... 잘 찾아."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지나치려는 연우의 손목을 잡는 재아.
"아저씨... 나 갑자기 궁금한 거 하나 생겼는데요."
"그래..."
"아저씨, 이름 뭐예요?"
"......지......"
"지? 뭐지? 바보지? 멍청이지?"
"지... 연우..."
"연우? 지연우? 아저씨랑 졸라게 안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연우가 재아를 지나쳐간다.
멍하니 연우를 응시하는 재아다.
.
.
.
.
"근데... 전 기억할 수가 없었어요. 꼭 기억하고 싶은데... 기억이라는 게...
쉽게 살아나지 않더라구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사람의 심정이 이런건가 싶은 게...
오늘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어요. 오늘은 더더욱 그래요."
"유민 선배..."
"이름도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게... 제 기억 속의 형상... 그 사람의 이름인가봐요.
요즘은 더 그래서... 정말 미칠 것만 같아요."
고통스러워보이는 유민의 모습.
선배... 나... 기억하고 있어요?
지우 오빠만 나 기억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유민 선배... 선배까지도 나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넋이 나가버린 연소의 모습에 주문을 받으러 왔던 알바생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그대로 가 버린다.
"꼭 어느날 갑자기 툭하니 제 앞에 그 사람이 나타날 것 같아서... 요즘 너무 심란해요.
휴우... 이거 우울증인가요? 아는 정신병원 있으면 저한테 소개시켜주세요."
유민의 귀에 귀걸이와 유민의 목에 은색 목걸이가 빛에 반짝인다.
유민의 눈물도 그와 같이 반짝인다.
"다음 곡입니다..."
힘없는 유민의 목소리에... 연소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진다.
아픔이 더해가면, 그 아픔은 크게 상처로 남는 법이다.
그 법칙이란 녀석이... 유민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일까.
[지은이] 순수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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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퉁퉁 부어버린 눈. 그 눈때문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연소.
연우는 오피스텔 앞에 서 있다 연소가 비틀거리며 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연소를 부축하려 뛰어가기에 이르렀다.
"연소야!"
"......오빠......"
"그래..."
"지우 오빠가... 내 이름을 기억해줬어."
그랬구나. 재아는... 내 이름 조차 기억하지 못했어.
단... 나와의 기억은 조금 가지고 있는 듯 했지만.
연우의 얼굴에 슬픔과 함께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표정이 떠올랐다.
"지우 오빠가... 내 이름 부르면서 나냐고 묻는데... 나 아니라고 해버렸어."
연우가 품에서 연소를 떼어냈다.
연우의 얼굴엔 광기가 가득했다. 쇼크로 인한 광기.
"왜!"
"......오빠 옆에 있는 사람이......"
"......그래."
"은진이 언니였으니까."
"확실해?"
"응... 우리가 떠났을 때 그 장소에... 지우 오빠랑 은진이 언니가 같이 있었어. 둘이..."
"휴우."
"재아... 만났어?"
"응."
"재아는... 아직도 착하지? 예쁘지?"
연소가 재아에 대해 많이 궁금한 지, 이것저것 물었다.
"아니. 되게 안 착하고, 되게 안 예쁘더라. 그냥... 예전 재아가 제일 좋아."
"오빠 재아 못 만나서 괜히 그러지?"
"......진짜야."
낮에 '아저씨'라고 부른게 아직 기억에 남는지, 연우가 대답했다.
"예전에 통장 하나 만들었었거든. 거기에 알바하고 받은 돈 다 저금했었는데...
꽤 많을 거야. 그거 돈 찾고 우리 살 집이랑 지금 이 옷부터 어떻게 좀 하자, 연소야."
"알바? 얼마 모았어, 오빠?"
"나 이곳에 오자마자 했으니까... 한 500만원 되려나?"
"500만원씩이나?"
"나 여러가지 많이 뛰었잖아."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그럼 빨리 옷부터 사러가자."
"응."
연우와 연소가 손을 맞잡는다.
누가 보면 두 사람을 연인이라 오해할지도 모를 포즈다.
영락없는 연인의 포즈.
옷가게를 향해 걸어가던 두 사람의 앞으로 보이는... 5명의 형체.
"아이고, 천지우! 결국엔..."
"시끄럽다, 한은진!"
"왜 은진이보고 뭐라고 소리 치냐, 지우 형! 웃긴다, 진짜!"
"시끄러워, 콩깍지."
"지우야, 수혁아, 그만 해."
"정이윤, 넌 좀 조용히 해!"
"좀 조용히 있어봐!"
지우와 은진, 수혁과 이윤... 그리고...
"아, 진짜! 이 야밤에 고성방가 죄로 잡혀가야 겠냐고!"
"시끄럽다고 했지!"
"시끄러워, 선배들! 우리학교 졸업했으면 이제 선배도 아니지!"
"야, 한 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다!"
"웃기고 있으시네."
"재아야, 왜 수혁이보고 난리야!"
재아...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5명이 함께 있는 모습.
손을 꼭 붙들고 걸어가던 연우와 연소의 발걸음이 거짓말처럼 멈춘다.
"어라~? 아까 그 아저씨 아냐? 이름이... 이름이... 아, 뭐였지?"
재아가 인상을 찡그리며 연우의 앞으로 다가왔다.
"......아저씨, 아까 낮에 나 봤죠?"
"......"
"아저씨 이름이... 지... 지... 뭐였죠?"
"지연우..."
"아~ 맞다!"
자신의 손으로 이마를 한 번 툭하니 친 재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연우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연소를 쳐다본다. 요상한 차림새의 연우보다도 더 심한 차림새의 연소를...
"넌 누구야?"
"......지... 연소......"
"어? 잠깐만, 민재아."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재아의 곁으로 다가온 지우가 연소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쑤욱 뒤로 빠져버린 연소의 얼굴.
"낮에... 나 봤죠?"
"......"
"이름이... 지연소... 라구요? 낮에 내가 물어봤던 이름이랑 똑같네요..."
"......!!!!!!......"
애초에 지우에게 자신이 '연소'라는 사실을 부인했던 것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연소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더불어 연우의 얼굴도 불안감에 휩싸였다.
"낮에 당신같은 사람 본 적 없어요."
"아닌데? 이 거추장스러운 거 보면 나 한 눈에 딱 알아보겠는데..."
"본 적 없어요. 지나가게 좀 비켜주세요."
"내빼니까 더 수상하잖아! 당신, 내 머릿속에 연소라는 사람이야? 이 반지의 주인공 말이야."
지우가 연소의 눈 앞에 반지를 들이댔다.
연소는 누가 볼까 자신의 손에 끼여졌던 반지를 남몰래 주머니에 숨겼다.
"그 반지도 처음 봤구요. 당신도 처음 봤어요. 그리고 당신 머릿속에 연소라는 사람도...
그 사람도... 아... 니에요... 아니니까... 제발 좀 비켜달라구요!"
연소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지우를 세게 밀치고 뛰어갔다.
그리고 그런 연소를 따라 연우가 따라가려 했다.
"아저씬 나랑 아직 할 말 있다니까요?"
"지금은 이야기보단...!"
"저 여자애... 내가 따라가도 괜찮겠죠?"
지우가 나서서 연우가 안 된다고 말도 하기 전 뛰어간다.
"내가 가야 그 애 자리에 멈춰설 거라구! 재아야, 이것 좀 놔!"
"절대로 못 놓지, 아저씨! 아저씨, 경찰서 가야지!"
"무슨 경찰서?"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연우가 재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고.
"오늘 낮에... 아저씨가 내 가슴 뚫어져라 쳐다봤잖아. 안 그래, 변태?"
"......그건!"
"변명 따윈 이럴 때 필요없죠. 그렇죠? 경찰서로 갑시다."
막무가내의 재아가 끌고 가는 곳은... 경찰서도 아닌, 오피스텔 안이다.
뭔지 아무것도 몰라 물끄러미 두 사람을 응시하는 다정한 수혁과 은진.
그리고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는 이윤이 뒤를 따른다.
애써 눈물을 감추며 무지막지한 속도로 어디론가 뛰어온 연소는 그곳이 곧 자신이
소환국에서 이곳으로 왔던 곳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고 말았다.
연우가 지금 자신을 따라오고 있을테니, 차라리 지금 소환국으로 돌아가자고 말할 생각으로
주저앉은 채 연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정말... 어린 애가 달리기도 엄청 빠르네."
"......연우 오빠... 아니에요?"
"난... 지연우라는 사람이 아니라, 천지우라는 사람인데요."
어둠에 눈이 차차 적응이 되어갈때쯤, 모습을 드러내는 지우.
그리고 또 다시 일어서서 도망칠 준비를 하는 연소.
그런 연소에게 다가가 연소를 꽉 붙잡는 지우.
지우에게 붙잡힌 어깨를 어떻게든 빼내려 애쓰는 연소.
연소의 주머니로 손을 집어넣는 지우.
깜짝 놀라 얼음장처럼 굳어져버린 연소.
연소의 주머니에서 꺼낸 반지를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와 맞춰보는 지우.
그 모습에 깜짝놀라 굳어버린 연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연소를 응시하는 지우.
그 눈길을 피해버리는 연소.
"이래도... 내가 찾는 '연소'라는 여자... 아니라고 할 거예요?"
"......으읍......"
"입 막는다고 해서 사실이 사라지는 게 아니야. 내가 낮에 만났던 여자 맞죠?"
"......아니에요."
"아니라고 해놓고 뒤에서 내 이름 부르던 사람... 당신이죠?"
끝까지 들키지 않으려 했건만.
끝까지 걸려들지 않으려 했건만.
은진과 행복한 지우를 위해... 끝까지 사실을 숨기려 했건만.
결국... 사실은 밝혀지는 법인가...
"아니에요. 정말 난 아니에요!"
하지만 그 법이란 것을 어겨보고자 연소는 악에 바친 소리를 질러본다.
[지은이] 순수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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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문] ※불펌/팬픽/성형/도용/표절/수정※ 절대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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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고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봤다. 그리고 아니라고 우겨도 보지만...
지우는 여전히 그 의미심장한 눈길로 연소를 응시하며 연소의 주머니에서 나온 반지와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아니라는 이유를 딱 100가지만 말해."
"그런 거 없어요!"
"그럼 나보고 대체 뭘 믿으라는 거야..."
지우의 서늘한 눈빛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마는 연소.
"나 자체를 믿지 말라구요! 정말 왜 이래요! 처음보는 사람한테 이런 무례한 행동하라고
누가 가르쳐 줬어요? 이게 대체 정말 뭐하는 짓이냐구요!"
"......그럼......"
"정말 왜 이래요!"
"네가 이 반지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이유... 어떻게 설명할 건데..."
후회 막심이다.
떠나기 전 지우에게 줬었던 반지하나가 지금 이렇게 자신을 힘들게 할 줄이야...
"그건... 기억이... 알아서 해 줄거예요."
"......뭔가 알고 있지?"
"몰라... 아무것도 몰라요!"
"난 궁금하다. 대체 내 기억 속에 뭐가 날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제발 내 기억 좀 가르쳐달라고 하고 싶다.
정말... 정말... 이 반지에 대해서 모르는 거야? 네 이름이 지연소라며! 내가 기억해낸 '연소'라는
이름이랑 똑같잖아! 말해... 제발..."
지우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연소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지금처럼 슬프게 우리 마지막 고했잖아요.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지만... 연소는 말할 수 없었다.
"모르는 게.. 좋아요."
"......뭔가 알고 있는 거지?"
"모르고 살아요. 그냥... 은진이 언니 곁에서 행복해요, 오빠."
보기만 해도 절로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지우의 모습, 혹은 연소의 모습.
서로의 모습을 쳐다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데, 지금 이 순간도 눈물이 나는데
앞으로 더 부딪혀봤자 지우의 행복을 깨뜨릴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연소는
애써 입을 틀어막아 볼 뿐이다.
"......무슨 말이야. 한은진? 왜 내가 한은진 곁에서 행복해야 하는데?"
"은진이 언닌... 예나 지금이나 오빠 곁에 있을 사람이니까."
"한은진은 수혁이 옆에 있어야지. 왜 내 옆에 있어야 하는데...?"
무언가 엇갈려도 단단히 엇갈린 모양이다.
.
.
.
.
"......그러니까......"
"뭐가 그러니까예요~ 수혁이 오빠랑 은진이 언니는 이미 약혼까지 했는데."
"은진아, 지우는..."
"지우라니?"
"지우는... 지우 옆에는 아무도 없는 거야?"
"지우는 현은지가 따라다니고 있긴 한데... 뭐 막 심한 정도는 아니니까, 뭐."
"휴우..."
안도의 한숨소리가 집안에 울려퍼진다.
다행이다, 연소야.
지우 은진이 곁에 있는 거 아니라잖아. 정말 다행이다.
"근데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은진이 이름에, 내 이름에, 이윤이 이름에, 지우 이름까지...
혹시 당신 우리 스토커 아냐? 어떻게 우릴 다 알고 있어?"
수혁은 그때도 지금도 연우에게 싸늘하게 대하고 싶은가 보다.
아니, 연우에게만 매정하게 구는 게 수혁의 유일한 취미인가 보다.
"아까 이름을 들어서 그래..."
"반말까지? 당신 우리 알아?"
"수혁 오빠, 하지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오빤 안 그래? 난 무지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때문에 이 아저씨 여기로 데리고 온 건데."
"난 본 적 없어."
"그나저나 지우는 왜 이렇게 안 들어와?"
이윤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할 말... 많을 거야."
"엥?"
"두 사람만큼은... 할 말... 많을 거라고..."
"대체 당신 정체가 뭐야?"
"그래요. 저기... 지연우... 라고 그랬죠? 나이는 나보다 많아 보이는데...
연우 오빠라고 불러도 되는 거죠?"
"......그래."
"연우 오빠, 정체가 뭐예요?"
정체...
자신의 정체...
"그냥... 이름 모를 낯선 곳에서 온 정신병자... 인가?"
"진짜 정신병원 다녀요, 아저씨?"
재아가 심각하게 물었다.
"네 마음 속에 있는 병원에 다니고 있어. 나 일반 병원에서는 고칠 수 없는 고질병 있거든."
.
.
.
.
"그럼..."
"그것때문에... 네 정체를 나한테 밝히지 않은 거라면, 나 지금 이 자리에서 너 죽인다."
"......"
"말 해."
"그것때문 아니에요. 단지..."
"단.지.?"
"내가 지금 오빠가 알고 있는 '연소'라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동명이인일 뿐이라구요."
"그렇다고? 아하~ 그래서 지금 이렇게 내빼는 거라고? 말이 돼?"
갈수록 기가 막혔다.
기억해내고 싶은데 기억할 수 없다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지우에게 제일 힘든 건...
그런 자신을 알면서도 아직까지 내빼고 있는 저 여자, 지연소라는 것.
"......난... 오빠 옆에 있으면서 제대로 해 준게 없었으니까... 그런 거예요.
내 대신 오빠에게 잘 해줄 수 있는 사람... 은진이 언니라는 거... 오빤 모르잖아요!"
"지금 은진인 수혁이 옆에 있다고 했잖아!"
"......오빤... 아무것도 모를 거라구요."
"내가 모를만한 게 대체 뭔데?"
"나... 연우 오빠..."
멍해진 지우를 두고 점점 지우의 시야에서 사라지려는 연소.
잡고 싶다. 저 여자... 잡고 싶다.
자신에 손에 남겨진 또 하나의 반지의 주인공이라는 걸 이미 알아버린지 오랜데...
그 사실을 내빼려는 저 여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뭐야..."
자신의 눈에서 영문없이 흐르는 눈물은... 뭘 의미하기에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일까.
"기억해낼 수 있게 해줘... 제발..."
눈을 감고 그곳에서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린 지우다.
서로를 쳐다보며 울고 있는 두 사람.
그리고 두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반지를 서로 나눠갖는다.
눈물로 흥건히 젖어버린 두사람의 얼굴.
환한 빛에 둘러싸여 올라가버리는 웬 남자와 여자.
그 이상한 사람들을 밑에서 구슬프게 응시하는 수혁? 이윤? 재아? 그리고... 자신?
그리고 그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자신.
'잊지 않아. 지금 네가 내 앞에서 사라진다 해도... 난... 절대 잊지 않아!'
잊지 않겠다며 소리를 지르는 자신.
그리고... 환한 빛으로 살짝 보인 여자와 남자의 얼굴은...
"연소야... 형..."
깜짝놀라 정신을 차린 지우의 주변은 그때와 똑같은 장소.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란 이곳과 꿈속에서 봤던 그곳의 일치.
그리고 아까의 '지연소'라는 여자와 '지연우'라던 남자와 자신의 꿈속에서 봤던 두 사람의 일치.
설마!
정신을 차린 지우는 오피스텔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젠장! 이번은 절대로 놓치지 않아! 기억따위도 잃지 않아!"
모든 것이... 기억나고 말았다.
[지은이] 순수투유
[이메일] young----hee@hanmail.net
[경고문] ※불펌/팬픽/성형/도용/표절/수정※ 절대금지
<62> - 2부 완결
눈물 범벅이 된 연소가 직감적으로 찾아온 곳은 전에 살았었던 오피스텔.
연소가 위태위태한 발걸음을 옮기며 초인종을 눌렀고, 수혁과 이윤이 같이 나왔다.
그리고 나온 수혁과 이윤의 표정은 과히 과관이었다.
"으아악! 깜짝이야! 당신 누구야?!"
"천씨, 미친 여자인가보우."
"정씨, 그런 거 같지?"
예전보다는 훨씬 많이 줄어든 그들의 장난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또 아닌 것 같다.
"천수혁, 정이윤! 그거 연소야? 거기 밖에 있는 사람 연소지?"
연우가 달려나와 숨 넘어갈 듯 울고 있는 연소를 부축하며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너무 많이 울고 있는 연소는 서 있을 힘 조차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이, 이게..."
"오빠... 으윽... 흐윽..."
"그래, 그래... 연소야, 오빠 여깄어... 뚝. 울지 말고..."
"지우 오빠가... 바, 반지... 흐윽... 반지..."
"그래."
"알아.... 버렸어... 내가... 지연소... 흐윽... 라는... 으윽... 거..."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연소야."
한참동안의 시간이 지난 뒤, 집안이 평소처럼 평온을 되찾아 갈 때쯤이었다.
연소의 울음소리가 차츰차츰 줄어들고, 늘 시끄러운 수혁과 이윤이 웬일로 가만히 있어
아무런 소란도 일어나지 않는 집안에 갑자기 뛰어드는 이상한 소음.
"젠장! 문 열어! 여기 지연소 있지? 연소 있지?"
"저 목소리..."
"지우 형이다."
"으아아악! 빨리 문 열어, 천씨!"
후다닥 달려나간 수혁과 이윤.
철컥-하는 소리가 무섭게 집안으로 뛰어들어온 지우가 연우의 품안에 얼굴을 묻고
전혀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연소에게 다가갔다.
"지연소..."
"......"
"연... 소야..."
"......지우야......"
"형, 왜 말 안 했는데?"
"......지우야......"
"왜 형이 지연우라고, 연소가 내가 그렇게 찾던 지연소라고 왜 말 안 했는데?"
"......!!!!!!......"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안할 뿐이다, 지우야."
"......미안하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 연소야, 일어나 봐. 응?"
지우가 연소에게로 한발자국 다가왔다.
그리고 지우의 움직임을 눈치챈 연소가 지우에게서 한발자국 멀어졌다.
"연소야..."
"......"
"왜 말 안 했는데..."
"......"
"나 이제 다 기억했단 말이야... 1년 전 그날도... 소환국으로 돌아가던 연우 형도, 너도...
정세민 그 자식도... 은민이 누나도... 그곳에 있었던 민재아, 천수혁, 정이윤, 나...
네 사람까지도 다 기억해냈단 말이야..."
"......흐으읍......"
됐다. 이 정도면 된 거다.
지우가 연소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만 연소는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연소가 벽에 부딪혔고, 벽에서 등으로 서늘한 느낌이 전해졌다.
지우가 연소에게 다가가 연소의 작은 어깨를 감싸 안았다.
"보고 싶었어... 안 잊겠다고 했으면서 잊어서... 미안해, 연소야."
"흐엉엉엉!"
"내 이름... 나 만났을 때 불러줬던 내 이름... 한 번만 더 불러줘..."
"......지우 오빠......"
"1년 전도, 지금도... 변한 게 하나도 없어서 다행이다."
.
.
.
.
"뭐해, 아저씨?"
"그냥..."
"이름이 지연우라고 했지? 지금 연우 아저씨라고 불러도 되지?"
"그 반말 먼저 다 고치면."
연우가 씨익 웃는다.
"지우 오빠 기억속의 무언가가 이제 나타났잖아... 덩달아 지우오빤 기억도 되찾고."
"그래..."
"그럼 내 기억속의 무언가도 아까 그 여자처럼 주렁주렁 이상한 거 몸에 막 치장하고
나타날까? 아저씨는 내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그럴수도 있겠지..."
재아의 눈동자가 연우를 향했다.
"그럼... 내 기억속의 무언가를 찾는데 아저씨가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거네?"
"그럴수도 있겠지..."
재아의 눈동자가 연우에게서 밤하늘로 향한다.
"그럼... 아저씨가 나 좀 도와줘."
"......어떻게?"
"음... 일단은."
"일단은?"
연우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내 주변에 찰거머리 진소윤이라고 있는데... 아저씨가 그 놈 좀 사라지게 했으면 좋겠어.
내 아버지란 사람이 요즘 그 자식이랑 결혼하라고 성화거든.
근데 난 그 자식이랑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서 말이야.
도와줄거지? 그렇지, 아저씨? 안 도와준다고 하기만 해봐."
"안 도와준다면 어쩌려고?"
"아저씨한테 확!"
"확?"
"시집 가 버린다."
"그것보다 무서운 협박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들의 밤하늘에... 뿌연 먼지로 별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던 밤하늘에...
아주 작은 별 하나가 보인다. 작은 별이지만 그 별빛은 아주 센 것 같다.
.
.
.
.
"언니, 웬일이야! 다른 사람 같아요!"
"연소야..."
"아하하하..."
"뭘! 고개 숙이지마! 맞는 말인데, 뭘."
"재아야..."
"흠... 뭐 봐줄만도 하네."
은진의 얼굴은 오늘따라 더 화사하다.
"하여튼 진도 빠른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천.지.우."
"뭐...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뭐. 그렇지, 연소야?"
"지.우.오.빠."
"왜 오늘따라 날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야."
투덜거리는 지우를 보며 한껏 웃어보인 연소는 똑똑 거리며 노크소리가 들리자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 곳에 서 있는 지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잘 생긴 남자 세 명.
"유민 오빠!"
"연소야, 오랜만이다~"
"아~ 정말! 이제 대체 얼마만이야! 일주일 정도 됐지?"
지우는 저리가라다. 지금 연소의 태도는 멀쩡한 남편 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는
것처럼 보인다고나 할까... 어쨌든 지우의 눈에 만큼은 그렇게 보였다.
"현유민! 떨어져!"
"지우 형, 오늘 은지 안 데리고 왔어요!"
"잘 했다. 연소야, 좀 더 팍팍 앵겨야지!"
세 사람이 투닥거리는 사이, 연우와 이윤이 은진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동시에...
"여기가 한은진 씨 대기실 맞아요? 신부 대기실을 잘못찾았나..."
이런 말을 내뱉으니, 왈가닥 은진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죽을래?!"
"아니."
"은진 언니! 왜 우리 연우 오빠한테 그래요? 진짜 웃겨~"
"민재아, 아까부터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응? 진짜 오늘같이 기분 좋은 날 한 대 맞아야 겠어?"
"아니오."
"근데 진짜 딴 사람 같아. 역시 결혼식 갔을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진짜 특이하단 말이야."
"뭐가 특이해, 정이윤!"
"신부가 너무 달라보여서."
피식 웃으며 이윤을 응시한 은진은 '신부 곧 입장해요!'라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섰다. 그리고 그대로 꽈당.
"언니, 신부가 참~ 잘하는 짓이에요. 그렇죠?"
"오호호호! 그러게. 이런 날 넘어지고 싶나~"
연소와 재아가 은진을 비꼬았다.
"있다 보자, 다들!"
식장 안으로 들어가 잘 보이는 곳에 앉은 지우와 연소, 재아와 연우, 유민과 유민의 옆에
꽉 붙어있는 이영은 '신랑, 신부 입장'이라는 이윤의 말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렸다.
뭐가 그리 좋은지 여기저기 자신이 연예인이라도 되는 듯 손을 흔들고 있는 수혁,
창피한 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도 모르게 수혁에게 낀 팔짱을 이용해 꼬집고 있는 은진.
"아, 진짜! 꼬집지 말라고!"
수혁이 소리를 지른다.
"니가 쪽팔리게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이러겠냐고 이 바보탱이야!"
"......뭐 어때. 이런 날 아니면 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받기도 힘든 일이라구."
푸하하하-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웃음.
물론 연소와 지우, 연우와 재아, 유민과 이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티격태격하며 그래도 잘 걸어가던 은진이 꽈당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지면.
"아, 씨! 진짜 쪽팔려! 나 이 결혼식 안 해!"
"천수혁, 일으켜 세워봐!"
이번엔 수혁이 난리다.
"지금처럼만 행복했으면..."
"진짜 좋겠다."
"연소야."
"응?"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결혼할까?"
"미쳤어요?!"
하객들 사이로 터져나오는 고함소리.
"수혁이 오빠랑 은진이 언니처럼 결혼하겠다구요? 오빠가 헬렐레해서 손 흔드는 거
생각도 하기 싫어! 아우, 진짜! 그런 상상은 절대로 하지 마요!
그리고 내가 은진이 언니예요? 저렇게 방정맞게 남편이나 꼬집고, 넘어지게?
오빠! 난 절대로 그런 결혼은 안 할 거라구요!"
벌떡 일어난 연소가 소리를 지르는 것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응시하는 지우와 하객들.
그리고 그제서야 연소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고개를 숙인다.
"나중에 봐요. 진짜..."
"풋..."
"웃지마요, 지우 오빠. 나 진짜 이러면 세민이한테 가 버릴테니까."
"그러기만 해봐! 너 진짜 죽어!"
이번엔 지우에게로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
지우도 덩달아 고개를 숙인다.
"이 결혼식... 왠지 우리 결혼식 같지? 쟤네 집중도 못 받고 있잖아."
지금처럼만.
딱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해 주세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해 주세요.
지금처럼 오빠 옆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풉... 아... 오빠, 나 할 말 있는데..."
"뭐?"
"나..."
"그래. 너 뭐?"
"임신 3주래요."
"뭐?!"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기도...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거 들어주지 않으면...
지우 오빠, 나 정말 소환국으로 날라버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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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순수투유(young----hee@hanmail.net)
출처 - 유머나라 (http://cafe.daum.net/humor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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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투유] ※라스트 프린세스(last princess)※ 51 - 62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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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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