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산' 지형과 적진으로 돌입하는 해병
이와 같이 한국 해병 제1연대의 공격은 불운하게도 고비 때마다 잦은 비와 산악 특유의 농무로 인하여 화력지원, 특히 항공지원이 제한되었고 또 유일한 능선접근로를 통한 정면돌파만 반복함으로써 전사, 상자가 급증함에 따라 공격의지마저 약화되어 해병들의 사기는 몹시 저하되었다.
후일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목표 #4, #9 및 #13을 연하는 선은 북한군 제12사단의 주저항선으로서 적은 1개 연대규모로 동 거점을 고수하기 위하여 진지전방에는 수많은 지뢰를 매설하였고 또 기암, 괴석의 공간을 이용하여 경기관총을 배치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진지와 진지는 교통호로 연결하고 이 지역을 난공불락의 요쇄진지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해병 제1연대는 6월 10일 오후에 연대장과 연대참모가 동석한 가운데 긴급 작전회의를 개최하여 그 동안의 작전경과와 실패원인을 면밀히 분석, 검토한 결과 야간공격을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미 해병 제1사단장은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한국 해병 제1연대장의 결의에 찬 집요한 건의에 반신반의하면서 야간작전을 승인하였다. 연대 전 장병들은 야간공격의 승패가 곧 연대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비장한 각오하에 공격준비를 완료하고 6월 11일 02: 00시에 이미 여러 차례 치른 작전으로 눈에 익은 지형을 따라 무조명, 무지원하에 공격을 개시하였다.
공격부대는 예상외로 적의 큰 저항을 받지 않고 순조롭게 진출하여 공격개시 3시간이 경과할 무렵에는 목표 #4에 이어서 목표 #9 에서 목표 점령을 알리는 신호탄을 새벽 하늘에 쏘아 올렸다. 연대로서는 북한군이 난공불락이라고 호언장담하던 목표 #4, #9 및 #13을 연하는 주저항선 돌파가 이렇게 쉽게 성공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하였다.
이때 북한군 제12사단은 그들의 주전술인 야간공격을 해병 제1연대가 사용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한 결과 일부 병력만 경계부대로 배치하고 주력은 후방 능선으로 철수 중에 불의의 일격을 받았던 것이었다.
목표의 점령으로 사기가 충천된 해병 제1연대는 비로서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한 후 전과확대를 위한 추격작전을 실시하여 경미하게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퇴하고 목표 #7 및 #10을 점령하였다.
6월 12일에는 우전방 제3대대만 계속 공격을 재개하여 목표 #12, #11 및 #14를 점령하였고, 제9중대 1개 소대는 목표 #15인 '대암산'으로 진출한 우인접 미 해병 제5연대와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Kansas선내의 16개 목표를 완전히 점령하고 13일 작전을 일단락지었다. 연대는 즉시 방어로 전환하여 제1대대를 목표 #2, #4 및 #7에, 제2대대를 목표 #9 및 10"에, 그리고 제3대대를 목표 #11 및 #14에 각각 배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한편 북한군 제12사단은 해병 제1연대의 끈질긴 공격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주저항선에서 철수하여 '도솔산' 일대에 축차진지를 편성하고 진지보강에 주력하고 있었다. 이 무렵 연대의 우인접에서 새로운 Kansas선으로 진출한 미 해병 제1연대장 브라운 (Brown) 대령이 동 연대의 방어선이 북한군의 주요 거점인 757고지(DT 109254)에서 감제되고 있으므로 주저항선을 3~4km 북상시킬 것을 건의하였다. 미 해병 제1사단장은 이 건의를 검토한 결과 미 해병 제1연대 전방의 757고지와 한국 해병 제1연대 전방의 '도솔산'을 연하는 Brown(후일 New Kansas선에 포함됨)선을 설정하고 이 선을 점령하도록 하였다.
이 명령에 의거 한국 해병 제1연대 제2대대는 6월 15일 08:00시 목표 #17, #18 및 #19를 향해 공격을 개시하여 산발적으로 저항하는 적을 격퇴하고 목표를 점령 후 적의 역습에 대비하여 진지강화와 정찰활동에 주력함으로써 "도솔산 공격"의 발판을 확보하였다. 이어서 제3대대가 "도솔산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때 대대를 방문한 김대식 연대장은 지난 6월 초부터 감행된 이 전투를 이번에 공격할 고지의 이름을 따서 "도솔산 전투"라고 명명한다고 하여 당면한 전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대대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제3대대가 6월 17일 08:00시에 공격을 개시하자 북한군은 대대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무수한 박격포를 사격하며 완강히 저항하였다. 그러나 대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두더지처럼 교통호를 파면서 적진에 접근한 후 야간공격을 감행하여 6월 19일 새벽에 '도솔산'을 점령하였다.
제3대대가 중앙에서 주변고지를 감제할 수 있는 '도솔산'을 확보하자 맨 마지막으로 공격준비를 완료하고 명령만 기다리던 제1대대가 6월 19일 08:00시 제3대대의 엄호하에 '도솔산' 좌측방으로 뻗은 능선상의 목표 #23을 공격하여 점령한 후 이미 목표 #24로 진출해 있는 미 해병 제7연대와 연결하고 동 고지를 인수함으로써 해병 제1연대는 작전개시 16일만에 '해안분지'를 남쪽에서 감제, 관측할 수 있는 '도솔산' 일대의 고지군을 확보하였다.
이 무렵 한국전쟁 발발 1주년을 맞이하여 그 동안 UN군측의 여러차례에 걸친 평화제의를 거부해 온 중공군측이 소련 외상 말리크(Malik)를 통해 휴전을 제안해 옴으로써 협상개시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전장은 7월 초까지 소강상태로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 기간 중 북한군은 밤만 되면 소규모 부대를 침투시켜 주저항선에 대한 탐색활동을 계속하였다. 이때 목표 #24를 방어 중이었던 제3중대는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한 때 주저항선의 일부가 점령당하는 위기 상황을 맞기도 하였으나 포병의 화력지원과 우인접 제2중대와 협조된 공격을 펼쳐 이들을 격퇴하였다.
이때 UN군측도 휴전협상이 열리기 전에 방어선을 엄호할 수 있는 중요한 정찰기지를 확보하기 위한 작전을 펴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미 제10군단장은 예하 사단에 Kansas선 전방에 설정된 정찰한계선인 Badger선내에 강력한 정찰기지를 설치하도록 명령하였다. 이 명령에 따라 해병 제1연대는 눈위의 혹처럼 연대의 작전지역을 감제, 관측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안분지'를 서쪽에서 통제할 수 있는 '대우산'을 공격목표로 결정하였다.
해병 제1연대는 7월 8일 10:00시에 공격준비사격을 실시한 후 제5, 제7, 및 제10중대로 혼성편성된 공격부대를 제2대대장의 지휘하에 공격을 개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공격부대가 적진으로 진출할수록 적의 박격포 사격을 동반한 저항은 예상외로 완강하였고 특히 진지 전방에서는 발을 옮길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지뢰가 매설되어 있어 전진이 지연됨은 물론, 이로 인한 사상자가 급증하였다. 설상가상으로 기상의 악화로 항공기 및 포병의 화력지원마저 여의치 못하여 공격은 돈좌되었다.
후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연대 정면의 북한군 제5군단은 해병 제1연대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재편성이 불가피한 북한군 제12사단을 7월 초순의 소강상태를 틈타 예비대로 전환시키고 대신 부대정비를 완료한 그들의 제32사단을 '대우산' 일대에 투입하고 진지를 보강하기 위해 수많은 지뢰를 매설하였다.
"도솔산 전투" 후 해병 제1연대로 현지를 방문하신 이승만 대통령과 김대식 연대장(철모)
사진 우측부터: 손원일 해군 참모촌장, 무치오 미국 대사, 밴프리트 미 제8군 사령관(연대장 뒤)
"도솔산 전투" 후 현지(해병 제1연대)를 방문하신 이승만 대통령께서 내리신 휘호.
해병 제1연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이번에는 제1대대를 투입하여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공격하였으나 '대우산'과 주저항선 사이에 위치한 1100고지와 1001고지를 연하는 선에서 공격이 저지되었다.
연대가 재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인 7월 10일 해병 제1연대의 상황을 지켜본 미 해병 제1사단장은, 불굴의 공격정신으로 무장된 한국 해병 제1연대라 할찌라도 적의 저항이 완강한데에다가 또한 연대가 그 동안 혈전을 펼쳐 지쳐있으므로 계속 공격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차후작전을 위해 일단 공격을 중지하고 현 위치에서 방어에 주력하도록 명령하였다. 이 명령에 의거 한국 해병 제1연대는 '도솔산'을 중심으로 한 주저항선의 진지보강과 전방지역에 대한 정찰활동을 계속하였다.
이와 같이 정찰기지 확보작전이 부진하자 미 제10군단장은 7월 15일에 지난 6월부터 '양구' 북방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미 해병 제1사단을 군단예비대로 있던 미 제2사단과 교대시켰다. 이에 따라 그 동안 미 해병 제1사단에 배속되어 연대창설 이후 가장 치열한 혈전을 치른 한국 해병 제1연대도 용맹한 해병의 피의 대가로 얻은 '도솔산' 방어지역을 미 제2사단에 인계하고 '홍천' 북방의 '북창'(DS 1282) 부근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에 주력하게 되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