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 1장 1~10절/ 작고 약하지만 튼튼한 교회(317/454)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할 때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생명의 위협을 받아서 생각보다 일찍 떠나야만 했다. 데살로니가를 떠나서 고린도에서 여장을 푼 바울은 새롭게 세워진 교회와 성도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염려가 되고 궁금했다. 그래서 디모데로 데살로니가로 보내어 교회에 말씀을 가르치며 격려하게 하였다. 바울은 디모데가 돌아오기까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염려를 가지고 기도하였다. 그런데 디모데가 돌아와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정을 말해 주었을 때 바울의 염려는 기우였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짧은 시간 말씀을 가르치고 교회를 세웠지만, 바울이 전한 복음의 말씀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너무나 잘 하고 있었다. 바울이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쓴 편지다.
1.짧은 순간 말씀을 가르치고 교회를 세워서 염려가 되었던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렇게 든든하게 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1~3).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부모가 떠나 있을 때 어린 자녀들이 자기들끼리 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부모는 그 자체가 너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데 그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든든한 교회로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믿음의 역사다. 믿음의 역사라는 것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믿고 신실하며 충성을 다하였다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단지 마음으로 믿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졌으면, 그 믿음에 따른 행함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특히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신실했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예배하며 섬기며 충성하였다는 것이다. 모든 신앙생활의 첫 출발은 하나님과 관계를 신실하게 맺는 것이다. 둘째는 사랑의 수고가 있었다.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는데 있어서 수고하는 손길들이 필요하다. 수고하는 손길들이 없으면 교회 공동체는 세워질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수고의 동기가 무엇인가? 사랑이다.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직분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이다. 사랑이 동기가 될 때 자발적으로 기쁘게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수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들이 행하는 모든 수고의 동기가 사랑이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로가 기쁘고 감사함으로 그 일을 감당한 것이다. 셋째 소망의 인내다. 인내라는 것은 핍박과 환난에서도 견디는 것을 말한다. 이들이 인내하며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주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거야!’라는 희망 사항이 아니라, 주의 재림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었다. 주의 재림의 날에는 더 나은 미래가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되는 날이다. 이 소망이 모든 환난을 견디고 이기게 한 것이다. 주의 재림을 소망하는 성도가 되자.
2.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교회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4). 그러면 바울이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가 택함을 받은 교회라는 확신을 가진 이유가 무엇인가(5~7). 첫째는 바울이 전한 복음이 그저 말로만 그들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임했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복음의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확신을 가질 수 없고, 구원의 능력을 누릴 수가 없다. 그러기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큰 확신과 구원의 능력을 누린 교회였다. 둘째 복음을 전한 바울 일행에 대한 성도들의 신뢰다(5).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을 신뢰했다. 바울의 일행을 신뢰하지 않았다면 쫓겨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음으로 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음으로 받은 것은 끝까지 바울이 전한 복음이 생명의 말씀이라는 신뢰를 하였기 때문이다. 복음 전파자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믿음을 가지는 것도 어렵다.
셋째 더 중요한 것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었다(6,7).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통해서 말씀을 받고, 믿고, 박해와 환난 중에도 말씀대로 현실을 살아낸 것이다. 말씀대로 현실을 살아내면서 믿음의 열매가 드러났다. ‘열매로 알리라’고 말했듯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열매가 있었다. 열매 없는 신앙은 그 신앙이 문제가 있든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든지 둘 중에 하나다. 열매가 있는 성도가 되자.
3.이러한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생활은 많은 교회들에게 소문이 퍼지면서 본이 되면서, 선한 자극을 주었다(7,8).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에 대한 소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넘어서 세계 각처로 퍼졌다. 이 소문은 육로를 따라서 로마까지 이르렀고, 바다를 건너서는 소아시아와 안디옥과 예루살렘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들의 신앙에 대해서 바울은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고 한 것은 최고의 찬사다. 쉽게 말해 ‘두말하면 잔소리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아냐!’이런 의미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참으로 믿음의 본이 된 교회였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이 이렇게 극찬할 수밖에 없는 믿음의 본이 된 것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가?
우상숭배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으로 완전히 돌아섰다(9).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우상을 섬기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았는데, 더 이상은 우상이 저들의 중심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우상을 중심에 놓지 않았다. 이것은 삶의 전체적인 방향이 바뀐 것을 말한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서서,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살아간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항상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로 신앙생활을 하였다(10). 주의 재림의 날을 눈앞에 보고 있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하였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것과 타협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날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뻐하며 순종한 것이다. 얼마나 오래 신앙생활을 했느냐하는 것보다 어떻게 말씀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느냐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