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경제개혁은 중국 경제발전의 새 시대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구도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다 주고 있다. 21세기에 중국이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에 도전할 것이라는 견해는 결코 무모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갈수록 `중국 위협론'이 득세하는 것이나 `No라고 해야 하는 중국'이라는 제목의 책이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나 모두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현상을 말해주고 있다. 중국의 경제개혁이 중국 경제를 크게 발전시켰으며 앞으로도 중국 경제가 계속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처음 개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20년이 안 되는 사이에 지금과 같은 경이로운 변화가 생기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혁 초기에 등소평이 20세기 말까지 중국의 국민소득을 4배로 끌어 올리겠다고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다만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캠페인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은 일정을 크게 앞당겨 1995년에 이미 이 목표를 실현했다.
외국인들은 중국에 갈 때마다 도시의 빌딩 숲과 자동차 대열이 깜짝 놀랄 정도로 늘어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전에 자전거 한 대를 사기 위해 정부가 발급하는 쿠폰을 몇 년씩 기다려야 했던 많은 중국인들이 이제는 오토바이를 사는데도 어떤 브랜드를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중국도 이제는 소비자가 주권을 갖는 공급과잉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중국의 경제개혁은 아시아 금융위기의 와중에서도 그 성과를 충분히 과시했다. 여러 아시아 국가들의 화폐 가치가 급락하고 경제가 사상 최대의 하락세를 기록하는 가운데 중국은 거액의 외환 보유고를 바탕으로 위안화 가치의 안정을 유지하는 저력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98년과 99년에도 여전히 연속 7% 이상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달성했다. 물론 중국경제에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상당 기간 동안 계속 7% 이상의 고도 성장을 유지할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중국과 같이 인구가 많고 다양한 나라가 연속 20 여년간 고도 성장을 유지해 온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특히 중국 지역발전의 불균형을 고려한다면 중국은 지금까지 그 어느 나라가 세운 고도성장의 기록도 훨씬 뛰어넘는 새로운 기적을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 연해지역의 몇 개 성(省)은 그 면적과 인구로 보아 모두 아시아의 각 NIEs를 훨씬 초과하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 지역은 10년 이상이나 연 평균 15% 이상의 고도 성장을 달성하였는데 이는 경제발전 역사에 있어서 속도가 가장 빨랐던 아시아 NIEs를 초과하는 기록이다.
중국경제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경제개혁이었던 것은 더 말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수많은 학자들이 중국의 경제개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개혁이 성공한 원인과 특징을 연구해 왔으며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러시아나 동유럽의 개혁과 비교하면서 활발한 논쟁을 벌여 왔다. 예를 들면 Sachs & Woo(1993)는 중국과 러시아 경제개혁의 초기 조건이 다른 점을 강조하면서 중국에서 점진적 개혁의 성공 요인이 된 특수성을 설명한 반면, 林毅夫 등(1994)은 경제의 초기 조건과는 관계없이 양국 경제개혁 전략과 추진방식 차이가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중국의 경제개혁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성공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설명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중국 국민들의 의지와 역사의 필연적인 흐름이라는 시각에서 개혁 성공의 원인을 설명하는 견해도 있다.
본문에서는 중국에서 경제개혁이 발생하게 된 사회적 배경과 추진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중국 경제개혁의 필연성과 역전 불가능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2절에서는 먼저 중국 경제개혁의 기본 성격을 살펴본다. 3절에서는 개혁 시작 당시의 중국의 내외 환경을 살펴보고 경제개혁이 1978년에 시작될 수 있었던 원인들을 분석한다. 4절에서는 성공적인 개혁 조치의 예를 들어 개혁의 필연성과 대중적 기초를 설명한다. 5절에서는 마지막으로 중국의 경제발전 전략과 점진적 개혁간의 관계를 분석하고 그 전망을 조명해 본다.
2. 중국 경제개혁의 성격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개혁 성공사례로는 `인민공사' 제도를 특징으로 하던 집단 노동방식을 철폐하고 가정 단위로 농민들에게 토지경작 권리를 부여한 `가정책임경영제(家庭承包責任制)'(혹은 包産到戶라고도 함)를 들 수 있다. 중국에서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불러 일으켜 식량을 중심으로 한 농산품의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킨 가장 주요한 조치가 바로 `가정책임경영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70년 대 말 이 개혁을 처음 실시할 때 중국 주민들 사이에서는 `몇 십년 혁명해 오다가 하루 밤 사이에 해방 전으로 돌아갔다(干革命幾十年, 一夜回到解放前)'는 우스개 말이 크게 유행하였다. 즉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즉 낡은 사회로부터의 해방)되기 전까지는 지주들이 토지를 소유하던 것이 지금은 정부의 소유로 바뀌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과연 농민들에게 변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뜻이다.
중국정부가 아무리 복잡한 이론으로 `가정책임경영제'가 그 때까지 실시한 사회주의 기본정책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한다 하더라도 일반 농민들이 보기에 이치는 매우 간단하다. 즉 농업개혁이라는 것은 50년대부터 실시해 오던 집단 노동제도가 철저히 실패한 실험이었다는 것을 승인한 전제하에서 중국 지도부가 농민들의 요구에 따라 결국 사실상의 `개인농' 제도를 회복시켜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을 개혁이라고 한다면 그 이전에 해 온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영기업이나 주식시장, 시장 거래, 경쟁 등 중국에서 개혁 이후 나타난 현상들을 자세히 따져보면 그 어느 것이나 과거 모택동 시대에 `자본주의'라고 비판을 받지 않았던 것이 없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될 당시 중국은 비록 경제가 낙후한 농업국가였지만 이미 시장경제 제도의 대부분의 골격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1949년까지 중국 상해는 홍콩과 도쿄를 훨씬 능가하는 아시아 금융 중심지였고 양자강 삼각주 지역에서는 공업이 상당히 발달해 있었다. 결국 지금의 개혁조치는 거의 대부분이 중국정부가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명분하에 해체하고 몇 십년 동안 금지시켰던 제도를 부활시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중국의 이러한 개혁을 간단히 `과거로의 복귀'라고 규정한다. 적어도 형태로 보면 `과거로의 복귀'가 틀림없다. 오히려 1949년 이전에는 지주들의 고리대금업이 기승을 부려 사영기업의 발전에 불리했지만 지금은 정부가 나서서 사영기업의 설립을 권장하고 있기 때문에 1949년 당시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측면마저 있다.
물론 중요한 차이는 있다. 중국은 지금도 시장경제라는 용어 앞에 `사회주의'라는 수식어를 붙여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한다고 한다.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정치적 측면을 제외하고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정부가 국민경제의 주요한 명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이전과 상당히 구별되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에 중국에서도 국유기업을 주식회사로 전환시키고 정부가 보유한 주식을 상당부분 외국인을 포함한 비국유 주체들에게 매각하고 있는 추세를 볼 때 정부가 국민경제의 명맥을 장악하면 곧 `사회주의'라는 기준 역시 모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경제개혁이란 과연 무엇인가? 중국정부의 해석에 따르면 경제개혁은 `경제발전을 방해하는 모든 제도나 방법을 바꾸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등소평은 이를 간단히 `검은 고양이나 흰 고양이나 쥐를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라는 유명한 `고양이론'으로 결론지었다. 즉 경제발전이라는 `쥐'를 잡을 수 있는 제도와 조치가 곧 `좋은 고양이'이며 경제개혁이란 바로 부단히 이러한 제도와 조치를 찾아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국내외 상황의 변화는 경제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적합한 제도나 조치 역시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 특히 중국처럼 다양하고 변화가 많은 사회에서 과거 어느 시기에 성공했던 경험이라 하여 영원히 불변할 수 없으며 경제개혁은 `과거식(過去式)'이나 `미래식(未來式)'이 아니라 끝이 없는 `진행식(進行式)'이라는 것이다.
경제발전에 유리한 제도나 정책조치를 찾자면 실험해야 하며 어느 정도 실패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불가피하다. 또한 각 경제주체가 자주적으로 실험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하며 스스로 새로운 실험을 찾아 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실험은 정부뿐만 아니라 경제발전에 관련되는 모든 경제주체가 자주적인 판단에 의해 진행해야 하며 실험성공으로 인한 이득과 시행착오로 인해 발생되는 손실도 상당부분 스스로 부담하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의 경제개혁은 모든 경제주체가 자주적으로 참가하여 부단히 시행 착오를 통해 경험과 교훈을 축적하는 거대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등소평을 `개혁의 총설계사'라고 하는 것은 그가 그 어떤 경제발전 계획이나 구체적인 정책을 내 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사람들에게 과감한 실험을 통해 경제발전이라는 `쥐'를 잡을 수 있는 제도와 방법을 찾는 권리를 부여하고 어느 정도의 시행 착오를 허용하는 `고양이론'의 논리를 중국 사회에 정착시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