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헤딩하기
허정 정성록
해외에서 당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오기 때문에 참을 수가 없었다.
방학하기가 무섭게 해외 어학연수가 봇물이 터지듯 할 때의 일이다. 괜찮은 어학원은 두 달 전에 다 예약이 끝난다. 미국이나 캐나다나 유럽 권 국가로 가지 못 가면 가까운 동남아로 겨울방학 때는 많이들 간다.
초등학생 남매를 둔 딸네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롬프로로 간다고 한다. 나는 하나뿐인 아들네 친손녀도 내심 같이 데리고 같으면 싶었다. 친척이라고는 외사촌밖에 없는 친 소녀를 같이 보내면 비용도 절감될 것 같아 딸려 보내려고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딸의 시댁 어른들이 한 달 동안 골프 치면서 설 명절을 그곳에서 함께 보내기로 했기에, 딸은 시집과의 일정도 있고 두 달 동안 아이 셋을 지켜주지 못 할 것 같다며 거절을 했다.
친손녀에게 가자고 말했다가 섭섭해 할 것 같아 며느리에게 여행 삼아 우리 셋이 가자고 했다, 며느리가 순발력 있게 집이랑 어학원까지 예약했다, 우리는 말레이시아 서쪽코타키나발루로 날아갔다. 친손녀는 명절 때나 우리 집에 한 번씩 와서 외손녀들과 자고 갈 뿐. 오붓이 한 방에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다. 딸네 애들은 중국 주재원으로 몇 년 있을 때 내거 건너가서 몇 달씩 같이 생활한 적은 있었다. 친손녀의 어학연수가 목적이지만, 서로 아름다운 추억도 만들 겸해서 나는 그들과 동행하는 여행은 처음으로 시도 한 것이다.
어학원은 시설이나 환경이 생각보다 열악했다. 공부하는 학생은 모두 한국 아이들뿐이었다. 며느리는 한국 아이들이 없는 좋은 학원으로 옮기고 싶어 했다. 한 달을 채우고 다른 데로 숙소를 옮겨 다시 한 달 동안 그곳에서 개인 지도할 대학교수 두 명도 섭외해 놓았다. 시설은 지금 사는 아파트보다 못했지만, 계약이 끝나면 그곳 아파트로 옮겨 가기로 했다. 아파트 임차 비용의 완불을 요구해 와 바로 인터넷뱅킹으로 송금해 주었다.
손녀를 학원 셔틀버스를 태워주고 나면 쇼핑하며 놀다가, 주말이면 승용차나 비행기를 타고 유명한 리조트로 여행을 다녔다. 비행기로 두 시간 가는 산다칸 밀림에서 지낼 때, 밤새 손녀가 모기에 물려 보드라운 살이 붓고 열도 약간 났다. 혹시나 해 혈액검사 했는데 다행히 말라리아는 아니었다. 머문 지 3주가 지나 며느리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에도 손녀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비행기 표를 취소할까 망설이다가 특수 교육 교사인 며느리는 한국에 있는 학생들 때문에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손녀는 엄마 가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침대에 엎드려 배웅도 하지 않았다. 이별이 힘들었는지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손녀랑 같이 공부하던 학생 엄마가 같이 동행해 주어 그곳에서 유명한 대학병원에 갔었다. 다행이 피곤해서 편도가 부었다고 했다. 이사 가기로 예정된 날자가 임박해 오자, 손녀는 한 달 동안 같이 공부한 친구들이 정이 들었는지 예약한 숙소로 가야 하는데, 한 달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했다. 마침 다니던 어학원에서 다시 레벨 테스트를 했는데. 손녀는 초등학교 4학년인데도 다른 나라에서 온 대학생들과 같은 반이 되었다. 손녀는 자기 수준이 맞는지 신이 났다. 가기로 한 숙소를 입주 열흘 정도 남겨 놓고 예약을 취소했다.
내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해 미안하단 사과와 일부를 덜 돌려받는 조건으로 숙소 측과 합의하고 환불을 받기로 했다. 처음엔 돈이 없어 그 아파트가 나가면 돌려주겠다고 했다. 며칠 후 50만 원을 보내왔다. 하지만 그 후로 그쪽에서 나머지 돈에 대해 연락이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 아파트를 밤에 찾아갔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기에 전화를 했더니 자기들이 잠깐 들렸다가 나오면서 불을 안 끈 거라 했다.
그 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그럴싸하게 꾸민 홈페이지에다 재차 환불을 요청했다. 댓글 달기가 무섭게 금방 지워졌다. 화가 난 나는 그들에게 사기꾼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내 핸드폰에 늙은이가 곱게 늙어야 한다며 욕을 했다. 처음 계약할 때는 한국에 있는 자기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라며 어머니가 온 것처럼 주말에 모시고 다닌다고까지 했던 사람이 돈 몇 푼에 말이 험해지기 시작했다.
답답한 마음에 손녀 학원 옆 단골로 점심을 먹는 한국식당에 갔다. 식당주인은 그 사람이 누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학연수 왔던 사람들은 어차피 여권 만료 되면 떠나게 되고, 며칠 더 버티면 적은 돈들은 모두 포기하고 간다는 걸 알기에 돈을 절대 안 돌려준다고 했다. 보태 준 샘치고 그냥 가라고 한다. 그러나 욕 얻어먹은 것이 너무 괘씸했다. 교민 사회단체에도 찾아 가봤더니 그런 돈은 돈도 아니라고 했다. 그곳 교민 중 반은 사기꾼이라고 보면 된다는 말까지 하며 여사로 여긴다. 심지어 여기서는 사람도 죽이고 배를 타고 필리핀으로 도망가서 한 이년 살다 오면 된다고까지 했다. 사기꾼들이 많아 아는 사람들끼리만 지낸다고 했다. 나는 이럴 수가 있나. 타국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야지 하는 생각에 화가 났다.
아파트를 대여해서 재임대하는 것과 과외 알선은 법에서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다. 어학연수 온 이이들 엄마들도 속은 사람들이 분통을 터트린 것을 봤다. 말레이시아 시경을 찾아갔다, 홈페이지 사진과 번역기까지 동원해 가면서 불법이니 처벌해 달라고 주장했다. 그 사람은 내가 경찰에 전화하고 간 것 알고 자기들 약점을 잡고 공갈 협박을 했다며 다시 문자로 욕을 했다. 나는 그 뒤 시간이 흘러 그들이 바라는 귀국길에 올라야만 했다. 내가 한국 나오고 이틀 후 문자가 왔다. 잘해 주려고 했는데 나가셨다고... ...
말레이시아가 어떤 나라인가? 북한의 김정남이 그렇게 벌건 대낮에 독극물에 피살될 때의 상황을 보면, 사람들이 게으른 데다 우리나라 경찰들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안이 허술한 곳이다. 2개월 머물면서 나는 조호르바루로 간 딸에게 수영장 딸린 집을 매매로 알아보라고 했었는데, 막연한 나의 방랑 끼 있던 마음을 접었다.
그야말로 뜨거운 타국의 맨땅에 헤딩만 하다가 머리만 아픈 채 돌아 왔다. 맨땅도 봐가며 쳐 박아야 하나 보다.
첫댓글 후손의 교육을 위해 맹렬하게 화끈하게 실행에 옮기신 점이 놀랍고 부럽습니다.
결과는 어쨋던 힘든 외국여행 중에 용기있게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때로는 뜻대로 안되는 때가 있어 안타깝지만 값진 체험을 하셨습니다.
단숨에 써내려간 에너지가 느껴지네요. 멋있어요
감사합니다 맨땅에 헤딩 하고 돌아온 느낌 이였어요 내가 돈 몇푼에 그랬나 생각하다가도. 요즘 손자들 한테 빠진 조부모들 한테 돈을 받아서 어학연수 온 아이들이 많았더라고요 . 아이들 엄마들은 이리저리 당해도 시부모들 알까봐 말 안하고 가는것을 보았어요 .나라도 본때를 보여 주려고 했었는데 모래밭에서 바늘 찾아 내기였어요. 요즘 코로나로 해외 어학연수 관광이 끊긴 그곳 교민들 살기 힘들어 질것 같아요. 사기 당하는 교민들 이야기 들어 보니까 정말 겁나더라고요, 나는 새발에 피 었다고 생각해요 그때 뉴스에도 나왔잖아요 해외여행 갔다가 가이드가 돈 다들어먹고 공항에서 갈때 없었다고 방송 나올 쯤 이였어요.
들꽃 정성록님의 손녀사랑에 해외연수를 행동으로 어렵게 옮기셨는 데 현지 한국인 들의 처신에
엄청 화가 많이 나시고 실망도 크셨겠어요~^^ (말레이시아엔 업무 출장으로 공장에만 있다와서)
교민들 비지니스에 대해 거의 모르는데 생생한 좋은 정보를 공유해 주셨습니다.
"뜨거운 타국의 맨땅에 헤딩만 하다가 머리만 아픈 채 돌아 왔다. 맨땅도 봐가며 쳐 박아야 하나 보다."
이 귀절에선 분노를 유머와 위트를 발휘, 공중으로 바람처럼 날려버리신 지혜가 엿보입니다.
멋지신 체험기 수필 잘 읽었어요~^^
들꽃 정성록님~^^ 만세!만세!
서사수필의 전형입니다. 사건 중심으로 기술하셨지만 글 속에 필자의 작가정신이 숨어 있음을 엿볼 수 있어요. 보편적인 의미화도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미 부분이 반전입니다.
안홍진 선생님 김국현 선생님 두분 댓글 감사 합니다 . 무모한 해딩 이었지요. 눈에 보이는 선 하나 없는 핸드폰 외엔 아무것도 신원을 알수 없는 사람에게 목을 메어봐야 나만 손해이지만. 그래도 타국에서 한국사람 끼리 서로 돕고 정직하게 살아야지 돈 몇푼에 그젋은 사람이 벌써 부터 그런 식으로 살기 때문에 코로나로 해외여행과 어학연수도 못 가니까. 한편 안됐기도 하지만 그놈 나한테 늙어도 곱게 늙어라고 하던 죄, 아마 지금 쯤 받고 있는것 같아요. 아파트를 일년에오백만원에 얻어서 한국 사람들 한테 한달에 백 팔십에서 이백을 받고, 단기는 일주단 백만원 받는것과 봉고로 관광시켜주며 네 식구가 먹고 사는것 같았는데
들꽃 님, 잘못된 걸 바로잡으려는 집념, 이해할 만합니다.
막힘 없이 시원시원한 서술도 인상적입니다.
어쩌다보니 말레이지아는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인데 고약한 교민 친구들이 있네요.
같은 나라 사람들 도와주는 정신이 있어얄 텐데. . .
제가 느낀 교민 사회가 아니 더라고요. 옛날에는 서울만 와도 객지라고 사돈에 팔촌도 다 도와주고 살았는데, 그곳에서 본 교민들 사회는 사기가 만년하고 특히 동남아 쪽은 이민가는사람이 유럽 과 미국쪽으로 가는사람보다 약간 질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들꽃 정선생님,
손녀 사랑으로 이뤄진 해외연수 체험,
잘 읽었습니다. 전개를 잘 하신 덕분에
현지 교민사회 실정과, 부딪친 상황들을 곁에서 보는 듯 실감했습니다.
사기 친 그들조차 요즘엔 어렵게 지낼
현실이 안타깝네요. 잘 감상했습니다.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레이지아 까지 가셔서 헤딩한 이야기를 쓰셨군요.
속상한 이야기 풀어 놓으셨으니 마음이 조금 편해 지셨을까요?
잘 읽었습니다. 금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