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人日記
魯 迅
모(某)씨라는 형제, 지금 그 이름을 숨기거니와 모두 내가 전날 중학교에 있었을 때의 좋은 친구였다. 떨어져 살기 여러 해, 소식 듣기가 힘들었다. 얼마 전에 우연히 그 중의 하나가 중병을 앓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고향 가는 길에 길을 돌아 찾아갔을 때 그 중의 한사람을 만났는데, 앓은 것이 아우라 하였다. "먼 길을 문안하여 주어 고맙네, 허나 동생은 벌써 병이 나아 어느 곳에 후보(候補)가 되어 부임하였네."라고 말하고는 크게 웃으며, 일기장 두 권을 꺼내어 나에게 보내주며 말하기를, "이를 보게나, 당시의 병상을 알 수 있을 걸세, 옛 친구에게 주는 건 무방하겠지."라고 하였다. 가지고 돌아와 읽어보니 그 병이 대체로 피해망상증의 한 종류임을 알았다. 그 말이 지극히 착잡하고 전후 순서도 없으며, 황당한 말이 많았다. 월일은 적지 않았으나 먹빛과 자체가 한결 같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것이 일시에 쓰여지지 않았다는 것이 틀림없다. 사이사이에 맥락을 갖춘 부분이 있어 이를 발췌하여 한 편의 글로 간추려 의가(醫家)의 자료로 제공코자 한다. 일기 중에 말이 잘못된 곳도 있었으나 한 자도 고치지 않았다. 다만 인명만은 모두가 마릉 사람이고 세상의 유명인이 아니어서 거리낄 것은 없다 할지라도 이를 모두 고쳤다. 그리고 책이름은 본시 동생이 완쾌한 뒤에 붙인 것이니 굳이 고칠 것이 없다.
민국 7년 4월 2일
1
오늘밤은 달이 아주 밝다. 내가 달을 보지 못한 지도 이미 30년이 되었다. 오늘 달을 보니 마음이 정말 상쾌하다. 비로소 지난 30년 이상 동안이나 온통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저 조(趙)가네의 개가 무엇 때문에 나를 노려보는 것일까.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2
오늘은 전혀 달빛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형편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아침에 조심스럽게 집을 나서니, 조귀(趙貴)노인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했다. 나를 무서워하는 것도 같고, 나를 해치려는 것도 같다. 그밖에 몇몇은 머리를 서로 맞대고 귀엣말로 내 험담을 하고 또 내가 볼까봐 두려워하였다. 길에서 만난 놈들이 다 이런 식이었다. 그 중 가장 험상궂게 생긴 놈이 입을 벌리고 내게 웃어댔다. 나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갑자기 싸늘해졌다. 놈들이 일을 꾸미기로 모두 벌써부터 작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두렵지 않았고, 계속 갈 길을 갔다. 앞쪽에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는데, 역시 거기서 나를 험담하고 있었다. 눈빛도 조귀 노인과 같은 것이었고, 얼굴빛까지도 시퍼랬다. 아이들이 내게 무슨 원한이 있어 그들까지 이러는가 싶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큰소리로 "내게 말해!"하고 호통을 쳤더니 다 도망가 버렸다. 나는 조귀 노인과 무슨 원한이 있으며, 길 가는 사람들과는 또 무슨 원한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다만 20년 전 고구(古久)선생의 헌 장부를 발로 걷어차서 그를 불쾌하게 한 것뿐이었다. 조귀노인이 고구(古久)선생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소문을 듣고 대신 화가나, 지나가는 사람과 짜고 나를 미워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아이들은?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오늘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두려워하는 듯, 나를 해치려 하는 듯 노려보는가. 이것이야말로 나를 두렵게 하고. 또 나를 이상하고도 슬퍼지게 한다. 알았다. 이것은 놈들의 애미,애비가 가르쳐 준 것이다.
3
밤에는 내내 잠을 이룰 수 없다. 모든 사물은 반드시 따져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다. 놈들 - 그 중에는, 현지사(知縣)에게 걸려 칼을 쓴 놈도 있고, 마을어른에게 따귀를 맞은 놈도, 관리에게 계집을 빼앗긴 놈도 있다. 부모를 빚쟁이에게 시달려 죽게 만든 놈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 놈들 얼굴 표정이 어제처럼 무섭고 흉악하지는 않았다. 제일 이상한 것은 어제 길에서의 그 여자다. 자기 자식을 두들겨 패면서 "망할 영감쟁이! 내가 네놈을 몇 입 물어뜯어야 분이 풀리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그 여자의 눈은 나를 보고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어디에도 숨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 시퍼런 얼굴에 허연 뻐드렁니를 드러낸 놈들이 크게 소리쳐 웃어대는 것이다. 진노오(陳老五)가 급히 달려와 억지로 나를 잡아끌고 집으로 갔다. 집으로 끌려들어오자 집안 사람들이 모두 나를 모르는 체 했다. 그들의 눈초리도 다른 놈들과 마찬가지였다. 서재로 들어가자 밖에서 문을 잠가 버렸다. 마치 닭이나 오리라도 가두려는 것처럼, 이 일로 나는 더욱더 놈들의 자세한 내막을 알아낼 수 없었다. 며칠 전에 이리마을(狼子村)에서 소작인 한 사람이 와서 농사가 흉년이라고 불평하다가 형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들 마을에 아주 못된 놈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맞아 죽었는데, 누군가 그놈의 내장을 꺼내 기름에 볶아 먹었으며 그렇게 하면 간을 튼튼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한마디 말참견을 하였더니 그 소작인과 형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오늘에서야 그들의 눈빛이 마을에 있는 놈들과 똑같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만 해도 온몸이 오싹해진다. 놈들은 사람을 먹는다. 반드시 나를 먹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봐라, 그 여자가 "네놈을 물어 뜯겠다.."고 말한 것과, 그 시퍼런 얼굴에 허연 뻐드렁니를 드러내고 녀석들이 웃는 것과, 며칠 전 그 소작인이 했던 말은 분명한 암호인 것이다. 나는 이제야, 놈들이 하는 말은 모두가 독(毒)이라는 것과, 그놈들의 웃음 속에 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놈들의 이빨은 모두 희고 날카롭게 줄지어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먹는 도구인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고구(古久)선생 집의 장부를 밟은 뒤로는 꼭 그렇다고만은 할수 없다. 놈들은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놈들은 사이가 나빠지면 사람을 못된 놈으로 만든다. 나는 지금도 형이 내게 글짓기를 가르쳐 주었던 때를 기억한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이론에 대해 몇마디 반대이론을 내어놓으면 잘했다고 몇 개의 동그라미를 주고, 나쁜 사람에 대해 몇마디 관대한 말을 하면 , '하늘을 뒤집어 놓을만한 뛰어난 재주'라든가 '아주 독특하다'고 칭찬한다고 했다. 놈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더구나 사람을 먹으려 하고 있는 판이니. 모든 것은 연구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예로부터 끊임없이 인간을 먹었다고 나는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확실치는 않다. 나는 역사책을 뒤지며 조사해 보았다. 이 역사책에는 연대가 없고 어느 페이지에나 '인의도덕(仁義道德)' 따위의 글자만이 꼬불꼬불 적혀 있었다. 나는 아무리해도 잠을 이룰 수 없어, 한밤중까지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그러자 글자와 글자 사이에서 겨우 글자가 나타났다. 책에는 가득히 '食人'의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책에는 이렇게 많이 쓰여 있다. 소작인도 그렇게 많이 지껄였다. 그런데도 실실 웃으면서 이상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것이다. 나 역시 인간이다. 놈들이 나를 먹고싶어진 것이다.
4
아침에 나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진노오(陳老五)가 밥을 날라왔다. 채소가 한 접시, 생선 찐 것이 한 접시였다. 그 생선 눈은 희고 딱딱하였으며 주둥이를 벌리고 있는 것이, 사람을 먹고싶어하는 저놈들과 똑같다. 젓가락을 조금 대어 보았으나 미끈미끈하여 생선인지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뱃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다 토해버렸다. "노오(老五), 형에게 말해줘, 나는 갑갑해서 견딜 수가 없어, 뜰을 좀 거닐고 싶어." 라고 말하자, 노오(老五)는 대답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그러나 조금 후 다시와서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꼼짝도하지 않았다. 놈들이 나를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보고싶었다. 나는 어쨋든 놈들이 나를 풀어줄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였다. 형이 한 늙은이를 안내하여 천천히 들어왔다. 기분 나쁜 눈빛을 한 놈이다. 내가 알아챌까봐 그 눈길은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고 안경 너머로 힐끔거리며 나의 동정을 살핀다. 형이 "오늘은 꽤 기분이 좋은 것 같구나" 하였으므로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형이 "오늘은 하(何)선생더러 진찰해 주시도록 부탁을 했다"라고 하였으므로 나는 그러냐고 대답했으나 이 늙은이가 사람인지 백정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맥을 짚어본다는 핑계로 내 살집을 살필 것임에 틀림없다. 그 공으로 자기도 고기 한 조각 쯤 나누어 먹겠지. 나는 겁나지는 않다. 사람을 먹지는 않지만 간만은 놈들보다 크다. 두 주먹을 내밀며 놈이 어떻게 손을 쓰는지 보고있었다. 놈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한참이나 내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러고는 기분나쁜 눈을 뜨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조용히 몇일 요양하면 곧 낫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걱정하지말고 조용히 요양하라구 요양해서 살찌면 물론 놈들은 그만큼 많이 먹게 되겠지. 나한테 좋을 게 무엇인가. "무엇이 좋게됩니다"야? 놈들은 사람을 먹고 싶어 하면서도 체통만 생각하고 직접 손을 쓰지 못하는 꼴이 정말 가소롭다. 나는 참을 수 없어서 큰 소리로 한바탕 웃어 주었더니 마음이 상쾌해졌다. 이 웃음에는 용기와 정기가 넘쳐 있음을 나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그 늙은이와 형은 나의 용기와 정기에 압도되어 얼굴빛이 변했다. 그러나 내게 용기가 있기 때문에 놈들은 나를 더욱 먹고싶어 한다. 그 용기를 얻고 싶은 거다. 늙은이는 방을 나가자 얼마 가지 않아 작은 소리로 형에게 속삭였다. "빨리 먹이세요." 형은 끄덕였다. 알고보니 형까지도! 이 대발견은 비록 의외인 듯 했지만 실은 의외가 아니다. 한패가 되어 나를 먹으려하는 사람이 나의 형인 것이다. 사람을 먹는 것이 나의 형이다 나는 사람을 먹는 놈의 동생이다 나 자신이 먹혀버린다 해도 나는 여전히 인간을 먹는 놈의 동생이다.
5
요 며칠 동안은 한 걸음 물러나서 생각해 보았다. 설령 저 늙은이가 망나니가 아니라 진짜 의원이라 하더라도 인간을 먹는 놈임에는 변함이 없다. 놈들의 시조인 이시진(李時珍)이 만든 "본초(本草)무엇"인가 하는 책에도 인육을 삶아 먹을 수 있다고 분명히 쓰여 있지 않는가? 이래도 놈들이 '나는 사람을 먹지 않는다'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형 역시 뚜렷한 증거가 있다. 형이 나한테 글을 가르칠 때 분명히 "자식을 바꾸어 먹는일"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번은 어느 악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놈은 죽여야할 뿐만 아니라 "그 고기를 먹고 가죽을 깔고 자야 한다." 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아직 어렸으므로 한참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며칠 전만해도 이리마을(狼子村)의 소작인이 와서 간을 먹은 이야기를 했을 때도 형은 이상히 여기지 않고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로 보아도 옛날과 마찬가지로 그 마음이 잔인함을 알 수 있다. "자식을 바꾸어 먹는 일"이 있을 수 있다면 무엇이던 바꿀 수 있고, 누구라도 잡아먹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전에 형의 설교를 그저 지나가는 말로만 들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놈이 설교할 때 틀림없이 입가에 사람 기름을 바르고 있었을 뿐 아니라 마음속에는 인간을 먹고 싶은 욕망이 가득 차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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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하다. 낮인지 밤인지 알 수가 없다. 조가네의 개가 또 짖어대기기 시작했다. 사자같은 흉악한 마음, 토끼처럼 겁내고, 여우처럼 교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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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놈들의 수법을 알아냈다. 제 손으로 해치우기는 싫고 또 할 수도 없는 거다. 자신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연락을 취하여 함정을 파놓고 나를 자살하게끔 만들려는 것이다. 그렇다. 일전에 거리에서 본 사내나 여자의 꼴로 보나 얼마전 형의 거동으로 보나 십중팔구 그게 틀림없다. 내가 허리띠를 풀어 대들보에 걸고 스스로 목매어 죽어버리기를 바라겠지. 놈들은 살인이라는 누명을 쓰지 않고도 소원성취 하겠다는 수법이다. 내가 죽으면 기뻐서 비명을 지르며 날뛰며 웃어대겠지. 그렇지 않더라도 괴로움에 고민하다 죽고 말 것이다. 이리되면 살은 빠지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말족할 것이다. 놈들은 죽은 고기만 먹으려는 것이다. .---무슨 책에서 읽은 일이 있다. 하이에나라는 동물은 눈길이나 몸매가 아주 추악하다 그리고 언제나 죽은 고기만을 먹고, 아무리 굵은 뼈라도 잘게 씹어 삼켜버린다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무섭다. 하이에나는 늑대 종류이며 늑대는 개의 조상이다. 며칠전 조가네의 개가 나를 노려보았는데 틀림없이 그놈 역시 한패일 것이다. 늙은 의사도 눈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었지만 나는 속지 않는다. 가장 불쌍한 건 형다. 그도 사람인데. 어쨰서 무섭지 않겠는가. 게다가 공모하여 나를 먹으려 하다니. 형은 익숙해져 나쁘다는 생각을 못하는 걸까, 아니면 양심을 잃어버려 나쁜줄 알면서도 하는걸까? 나는 사람을 먹는 자를 저주한다. 하지만 먼저 형부터 저주하리라. 사람을 먹는 자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도 우선 형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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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한 이치는 이미 놈들도 알고 있어야할 일인데...... 갑자기 한 사내가 다가왔다. 나이는 고작해야 20세 안팍, 얼굴 모습은 확실치 않다. 얼굴에 웃음을 띠고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진짜 웃음이 아니었다. 나는 물었다. "사람을 먹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 사내는 여전히 웃으며 대답하였다. "흉년도 아닌데 왜 사람을 잡아 먹습니까?" 나는 금방 깨달았다. 이놈도 한 패로 사람을 먹고싶어 하는 구나. 그래서 나는 용기백배하여 따져 물었다. "옳은 일인가?" "그런건 왜 물으십니까. 당신 정말 ...... 농담도 잘하십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군요." 좋은 날씨였다. 달도 밝았다. 그러나 나는 네게 묻고 있는 거다. "옳은 일인가?" 그는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다. 애매 모호한 말투로 "아니......"라고만 대답했다. "옳지 않다고? 그렇다면 놈들은 왜 사람을 먹지?" "그런 터무니 없는......" "그런 터무니 없는? 하지만 이리마을(狼子村)에서는 정말 잡아먹고 있는걸. 게다가 책에 도 적혀있어. 온통 새빨갛게!" 그의 얼굴빛이 시퍼렇게 변했다. 눈을 크게 뜨고는 "있을 지는 모르지,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옛날부터 그랬다면 옳은 일인가?" "당신과 이런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쨌든 당신은 이런 말을 하면 안됩니다. 당신이 하는 말은 모두 잘못입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눈을 뜨고 자세히 보니 그 자가 없었다. 온 몸에 땀이 흘렀다. 그의 나이는 형보다 훨씬 아래인데도 벌써 한 패가 됐다. 틀림없이 제 부모가 알려준 것이리라. 벌써 제 자식에게도 알려줬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이들도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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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면서, 남한테는 먹히려 하지 않으려고 서로 의심하며 상대방을 흘끔흘끔 훔쳐보고 있다...... 이런 생각을 버리고 마음놓고 일하고, 거리를 걷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그것은 단지 문지방 하나, 관문 하나만 넘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놈들은 부자, 형제, 부부, 친구, 스승, 원수, 게다가 모르는 놈끼리도 한 패가 되어 서로 권하고, 서로 끌어서 죽어도 이 한 걸음을 딛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10
아침 일찍 형을 만나러 갔다. 형은 문 밖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형의 뒤로 가서 문을 붙들고 아주 부드럽고 조용하게 말을 건넸다. "형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봐" 형은 곧 뒤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 것도 아닌데,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형님, 아주 옛날에 야만인이었을 무렵 누구나 사람을 잡아먹었겠지요? 그러다가 저마다의 생각이 달라서, 어떤 자는 오로지 착해지려고 노력해서 사람을 잡아먹지 않고 인간답게 된 거지요. 결국 인간다운 인간이 되었죠. 그런데 어떤 자는 여전히 인간을 먹었지요---버러지와 마찬가집니다--- 어떤 것은 고기가 되고, 새가 되고, 원숭이가 되고, 마침내 인간이 되었습니다. 어떤 자는 좋게 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버러지로 그대로 있습니다. 이 사람을 먹는 인간은 사람을 먹지 않는 인간에 비해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버러지가 원숭이에 비교해서 부끄러운 것 보다 훨씬 더 부끄러운 일이죠. 역아(易牙)가 자기 아들을 삶아서 걸(桀)·주(紂)에게 먹인 이야기는 아주 옛날의 일일까요? 반고(盤古)가 천지를 연 이후로 줄곧 먹어 오다가 역아(易牙)의 아들에 이르렀고, 역아의 아들로부터 줄곧 먹어오다가 서석림(徐錫林)에 이르고 서석림(徐錫林)으로부터 줄곧 잡아 먹어오다가 이리마을(狼子村)에서 붙들린 놈에 이른 것입니다. 지난해에도 성내에서 죄수를 처형하여 폐병 환자에게 만두에 그 피를 적셔 먹게 했습니다. 놈들은 나를 먹으려 합니다. 형님 혼자서는 어쩔 수 없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한 패가 될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사람을 먹는 놈들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나를 먹고 나면 형님도 잡아먹을 겁니다. 그러고는 한 패끼리 서로 잡아먹을 겁니다. 만약 한 발만 방향을 바꾸어 내딛으면 곧 모두가 태평하게 될 것입니다. 예로부터 이러했지만, 우리는 오늘부터라도 마음을 고쳐먹고, 안된다고 해야합니다. 형님, 형님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전에 소작인이 세금을 줄여달라고 했을 때, 형님은 안된다고 하지 않았읍니까?" 처음에 형은 냉소를 띠고 있었을 뿐이었으나 이내 눈길이 험악해지기 시작하고 놈들의 내막을 폭로하는 순간 얼굴빛이 시퍼렇게 질렸다. 문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조귀(趙貴)영감과 그의 개도 끼어 있었다. 놈들은 머리를 맞대고 조심조심 들어왔다. 어떤 자는 천을 감싸고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또 어떤 자들은 시퍼런 얼굴에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분명 본 기억이 있는 놈들이다. 모두가 사람을 먹는 놈들이다. 그러나 놈들 생각이 다 같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잡아 먹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놈들과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 먹고싶어 하는 놈들. 게다가 폭로되면 곤란하니까 내가 하는 말을 듣고도 발끈 화가 났지만 겉으론 히죽히죽 웃고 있는 것이다. 그 때, 형이 갑자기 무서운 얼굴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모두 나가! 미치광이가 무슨 구경거리야!" 이때, 나는 놈들의 교묘한 꾀를 알아차렸다. 놈들은 마음을 고치기는커녕 이미 함정을 파놓은 것이다. 미치광이라는 핑계를 마련해 놓고 나에게 둘러씌운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먹어도 걱정이 없을 뿐 아니라, 아마도 다른 사람의 동정을 받을 수도 있을 테니까. 소작인의 이야기 가운데의 여러 사람이 악인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틀림없이 이런 방식인 것이다. 이것이 놈들의 상투적인 수단이다. 진노오(陳老五)가 화가 나서 달려왔다. 그러나 어떻게 내 입을 막을수 있겠는가. 나는 끝까지 놈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 좋아. 진심으로 고쳐먹어. 이제 사람을 먹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 용납될 수 없고, 살아갈 수 없게 될 거야." "끝내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자기도 먹혀버리게 될 거야. 아무리 많이 낳는다 해도 모두 참된 인간에게 전멸 당하고 말 거야. 사냥꾼이 늑대를 다 사냥해 버리듯---버러지와 마찬가지로." 그놈들은 모두 진노오(陳老五)한테 쫓겨나고 말았다. 형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진노오(陳老五)가 나를 달래서 방으로 데리고 왔다. 방안은 깜깜하였다. 대들보나 서까래가 머리 위에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출렁거리며, 내 위를 덮쳤다. 무겁다. 정말 무겁다. 움직일 수도 없다. 놈들이 나를 죽이려는 것인가. 그러나 나는 놈들의 무게가 속임수라는 것을 알아차렸으므로 몸부림을 치며 빠져 나왔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래도 나는 호통을 쳤다. "이놈들, 당장 마음을 고쳐먹어! 진심으로 고쳐먹어! 이제 사람을 잡아먹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 용납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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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보이지 않는다. 문도 열리지 않는다. 매일 두끼의 밥만 들어왔다. 나는 젓가락을 집어 들자 형의 일을 생각하였다. 누이동생이 죽은 까닭도 다 형 때문임을 알아차렸다. 그때 내 누이동생은 겨우 다섯 살이었다. 귀엽고 애처로운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울었다. 그러자 형은 어머니에게 울지 말라고 하였다. 자기가 잡아먹었으니까 우는 것을 보면 다소 마음이 좋지 않은 탓이리라. 만일 아직도 마음이 좋지 않다면...... 누이동생은 형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어머니는 그걸 알고 있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어머니도 아마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울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셨겠지. 분명 내가 네댓 살 때였으리라 생각되는데, 내가 문 밖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형이 이런 말을 했다. 부모가 병이 들면 자식은 자기 살을 한 조각 베어내어 푹 삶아서 잡수시게 해야 비로소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고. 그때 어머니는 나쁘다고 하지 않았다. 한 조각을 먹을 수 있다면 통째로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의 울던 모습은 지금 생각하여도 가슴이 아프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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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수가 없다. 4천년 이래로 끊임없이 사람을 잡아 먹어온 고장에서, 나 역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형이 집안살림을 맡자, 누이동생이 죽었다. 그자가 몰래 음식에 독을 섞어 우리들에게 먹이지 않았다고는 말 할 수는 없다. 나도 무의식중에 누이동생의 고기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으니...... 4천년의 식인의 역사를 가진 우리들. 처음에는 몰랐으나 이제는 알았다. 참다운 인간을 보기가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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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잡아먹어 본 적이 아이들이 아직 있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구하자......
1919년 4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