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Chapter 3 마리우스 가난의 얼굴(2)
마리우스는 몽상과 정열에 마음을 빼앗겨 지금까지 이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자신을 뉘우쳤다.
마리우스는 대부분의 성실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스스로 자신의 선생이 되어 지나칠 정도로 자책하고 있었다. 이처럼 그는 자기 자신에게 훈계하면서 종드레트 일가와 경계를 이루는 벽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연민으로 가득 찬 시선이었다. 마치 그 시선은 벽을 뚫고 나가 불행한 사람들을 포근히 감싸 줄 수 잇을 것 같았다. 벽은 얇은 판자를 각목으로 친 것이어서 그쪽에서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마리우스는 몽상가였기에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벽은 종드레트나 마리우스 쪽에서도 벽지가 발라져 있지 않았으므로 허술한 방임이 한눈에도 드러나 보였다. 마리우스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벽을 살펴보았다. 몽상가도 때로는 사유하듯 검토하고 관찰하며 탐색하는 일이 있다.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천장 가까운 곳에서 삼각형으로 둟린 구멍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 구멍은 세 장의 판자 조각을 끼워 맞추느라 생긴 것이었다. 그 틈새를 막고 있었을 회반죽 덩어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옷장 위로 올라서면 그 구멍으로 종드레트네 방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동정심에는 호기심이 따르는 법이다. 그 구멍은 일종의 엿보는 구멍이 되었다. 구제를 위해서라면 불행을 들여다보는 일도 허용된다.
마리우스는 생각했다.
‘저 사람들이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지내는지 어디 한 번 보자.’
그는 옷장에 올라가 눈을 구멍에 바짝 대었다. 마리우스가 본 것은 황폐한 집이었다. 마리우스도 구차스런 생활을 하고 있어서 세간다운 세간이 없었지만, 방 안은 그런대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들여다보고 있는 방은 누추하고 더러우며 악취가 나고 형편없이 지저분했다. 가구라고는 짚 의자 하나와 부서진 탁자, 깨진 그릇 몇 개, 구석에 놓인 낡아 빠진 침대가 전부였다. 채광은 네 장의 유리가 끼워진 다락방 천장의 창문뿐이었는데 거기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그 창문으로부터 인간의 얼굴이 유령으로 보일 정도로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벽은 흙투성이어서 마치 마마라도 앓은 얼굴처럼 흉측하게 보였고 축축하게 습기가 배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목탄으로 그린 저질스런 그림이 걸려 있었다.
마리우스가 살고 있는 방에는 비록 깨진 것이기는 하나 그래도 벽돌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그가 지금 들여다보고 있는 방은 돌도 널빤지도 깔려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도 밟아서 검어진 회칠된 바닥 위를 그냥 걸어 다녔다. 빗자루를 댄 적이 없고 먼지가 엉겨 붙어 있는 그 울퉁불퉁한 빵바닥에는 낡은 슬리퍼, 헌 신발, 누더기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그런 방에도 벽난로가 붙어 있었다. 이것 때문에 방세가 1년에 40프랑이나 되었다. 그 벽난로 속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 있었다. 풍로, 냄비, 판자 조각, 못에 걸린 누더기, 새장, 재, 장작개비가 처량하게 연기를 내고 있었다.
이 다락방을 더욱 황량하게 보이게 만든 것은 방이 휑하게 넓다는 사실이었다. 그기에는 툭 불거진 곳, 모난 곳, 어두운 구멍, 흙이 드러나 보였다. 이 때문에 속을 알 수 없는 구석에는 주먹만 한 거미며 발바닥만한 바퀴벌레, 또 무어라 형용키 어려운 괴물까지도 도사리고 있는 듯싶었다. 침대 하나는 문 곁에 다른 하나는 창가에 놓여 있었다. 그 두 개 모두 끝이 벽난로에 맞닿아 있고 마리우스를 향해 있었다.
마리우스가 들여다보는 구멍 가까이에 있는 벽에는 검은 테두리를 한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 색채 판화 밑에는 굵은 글씨로 ‘꿈’이라 쓰여 있었다. 잠자고 있는 어머니와 어린애를 그린 것이었다. 어린애는 어머니 무릎에 안겨 있고, 그 위에서는 독수리 한 마리가 부리에 왕관을 물고 구름 속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그 뒤에는 영광에 쌓인 나폴레옹이 굵고 푸른 기둥에 기대어 있는데, 누런 기둥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마린고(마랭고)
아우터리스(아우스터리츠)
이에나
와그람
앨로(엘로)
모두 나폴레옹의 옛 싸움터인데 무식하기 때문에 오기되어 있었다. 이 액자 밑에는 긴 게시판 같은 것이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림을 뒤집어 놓은 것이거나 벽에서 떼어 놓은 채 다시 걸기를 잊어버리고 그냥 내버둔 거울 같았다. 탁자에는 펜과 잉크와 종이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 60세쯤 된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는 체구가 작고 마른 데다 눈초리가 날카롭고 약삭빠르게 생긴 험한 인상의 남자였다.
이 남자의 긴 턱수염은 반백에 가까웠고, 여자용 슈미즈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털이 덥수룩한 가슴과 잿빛 털이 곤두선 팔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그 슈미즈 밑으로 흙투성이가 된 바지와 발가락이 드러나 장화가 보였다. 입에는 파이프를 물고 열심히 빨아 대고 있었다. 이 집 안에 빵은 없었으나 담배는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는 무언가 쓱 있었는데 아마 마리우스가 읽었던 것과 같은 내용의 편지일 것이다.
40세로도 보이고 100세로도 보이는 뚱뚱한 여자는 난로 옆에 맨발로 앉아 있었다. 이 여자 역시 슈미즈 하나에 헌 나사 헝겊으로 기운 메리야스 속치마 하나만을 걸치고 있었고, 무명 앞치만가 치마를 반쯤 가리고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 있었지만 상당히 키가 큰 것 같았다. 남편에 비하면 거구라 할 만 했다. 백발이 섞인 다갈색 머리를 넓적한 손톱이 달린 큰 손으로 가금 걷어 올렸다.
마리우스는 키 큰 처녀가 헌 침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창백한 얼굴에 거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발을 흔들거리며 앉아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듣는 것도 아니고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마리우스를 찾아왔던 처녀의 동생임에 틀림없었다.
마리우스는 가슴이 답답해져 엿보던 것을 중지하고 내려오려고 했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느닷없이 방문이 열렸다.
큰 탈이 문지방에 나타났다. 커다란 남자 신발을 신고 있는데 진흙이 빨간 복사뼈까지 튀어 올라 잇었다. 그녀는 낡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한 시간 전 마리우스가 보았을 때에는 입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더 가련해 보이기 위해 마리우스의 방문 앞에서 벗었다가 나가면서 다시 입은 것 같았다. 그녀는 방문을 들어서서 손을 뒤로 돌려 문을 닫았다. 숨이 차서 잠시 헐떡거리던 그녀가 승리와 환희의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와요!”
아버지는 눈을 돌리고 어머니는 고개를 들었다. 동생은 무표정한 태도로 그냥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물었다.
“누가?”
“그 양반 말예요!”
“자선가?”
“네.”
“생자크 성당의?”
“그래요.”
“그 늙은이가 말이냐?”
“네.”
“그가 온다고?”
“내 뒤에서 오고 있어요.”
“확실하니?”
“그럼요.”
“정말 온단 말이지?”
“마차로 와요.”
“마차로?”
남자가 일어섰다. 그 얼굴에는 빛이 돌고 잇었다. 그가 소리쳤다.
“여보. 들었지? 자선가가 온대. 불을 꺼!”
부인은 어리둥절하여 꼼짝도 안 했다. 남자는 곡예사와도 같이 재빠르게 난로 위의 이빠진 항아리를 집어 타고 있는 장작에 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큰 탈을 향해 소리쳤다.
“너는 의자의 짚을 빼라.”
딸 역시 영문을 몰랐다. 그러자 남자는 의자를 붙들고는 발로 짚을 어지럽혀 놓았다. 그가 딸에게 물었다.
“밖이 춥더냐?”
“아주 추워요. 눈도 내리고.”
남자는 창가의 침대에 앉아 있는 작은딸을 향해 버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빨리 내려오지 못하겠니, 나쁜 년 같으니라고! 너는 언제나 손까딱을 않는구나! 창문 유리를 한 장 깨뜨리란 말이다!”
처녀는 떨면서 침대에서 내려왓다. 남자는 계속 소리쳤다.
“유리창을 깨라니까!”
처녀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남자가 거듭 외쳤다.
“안 들리냐? 유리창을 깨뜨리라고 하지 않아!”
처녀는 겁을 먹고 발끝으로 일어나 유리창을 주먹으로 쳤다. 유리창이 깨지면서 큰소리를 냈다. 남자가 말했다.
“됐어.”
남자는 침착하고 그려면서도 민첩했다. 이러는 동안 남자는 다락방의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마치 전투가 시작되려는 순간에 마지막 준비를 하는 장군과도 같았다.
부인은 이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그제야 겨우 일어나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얼어붙은 듯한 목소리였다.
“당신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잔소리 말고 침대에 누워.”
그 말투에는 상대방을 위합하는 무엇이 있었다. 부인은 아무 대꾸도 못하고 낡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이 순간 한 구석에서는 흐느끼는 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남자가 소리쳤다.
“왜 그래?”
작은딸은 웅크리고 있던 방 한구석에서 피투성이가 된 손을 내밀었다. 유리창을 깰 때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처녀는 어머니 곁에 가서 그저 울기만 했다. 이번에는 부인이 일어나 소리쳤다.
“그것 봐요!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유리가 깨지면서 손을 다쳤잖아요!”
남자는 말했다.
“오히려 잘되었어! 예정대로 된 거야.”
“뭐라고요? 잘되었다고요?”
남자가 고함쳤다.
“시끄러워! 이제부터 닥치고 조용히들 있어!”
남자는 자신이 입고 있던 슈미즈를 찢어 그것으로 딸의 손을 동여맸다. 그는 찢어진 자신의 옷을 만족스러운 듯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슈미즈까지도 그럴싸하게 보이는군.”
싸늘한 북풍이 유리창을 흔들며 방으로 불어왔다. 바깥 안개까지 방안으로 흘러 들어와, 눈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가만히 펼쳐 놓은 하얀 손처럼 퍼져 있었다. 깨진 창문 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제 성촉절의 햇빛이 예고했던 추위가 찾아온 것이다.
남자는 무언가 잊은 것이 없나 하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헌부삽을 집어 젖은 장작에 재를 덮어싀워서 완전히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일어서서 난로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자아, 이것으로 자선가를 맞이할 준비가 끝났군.”
방 안은 한순간 고요해졌다. 큰딸은 망토 자락에 묻은 흙을 태연스레 털고 있었고 동생은 계속 울고 있었다. 부인은 작은딸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마구 입을 맞추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참 착하기도 해라. 제발 울지 마라. 아버지가 꾸중하신다.”
곁에서 남자가 소리쳤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계속 울어야 해! 어서 울어!”
그러면서 큰 딸에게 말했다.
“어떻게 된 거냐? 안 오지 않니? 만일 오지 않는다면 불을 끄고 의자를 망가뜨린 것, 또 옷을 찢고 유리창을 깬 것이 수포로 돌아간단 말이다.”
부인이 중얼거렸다.
“더군다나 작은애까지 다치게 하고. “
남자가 말했다.
“이놈의 방구석은 지독하게도 춥군. 만일 그 영감이 안 오면 어떡하지? 제기랄, 오래도 기다리게 하는군. 녀석은 아마 ‘뭐, 그들은 기다릴테지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하고 생각할 거야. 참 지긋지긋한 녀석들이야. 아주 죽여 없애면 기분이 풀릴 것 같아, 부자 녀석들은 말이지. 부자 녀석들은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 버리면 시원하겠어! 자칭 자선가 녀석들은 점잔을 빼고 미사에 가서는 되지 못한 신부 놈들과 어울려 지껄이며 우리보다 높은 인간이라 자처하는 거야. 그러고는 남들 보란 듯이 옷가지나 나누어 주는 거야. 그런데 이것이 서 푼짜리도 안 되는 낡은 누더기와 빵조각이란 말이거든! 내가 필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라 돈이거든! 망할 자식들! 그런데 돈은 절대로 주지 않아. 돈을 주면 술을 마시러 간다는 거지! 주정뱅이가 되고 게으른 자가 된다 그 말이지! 그러면 놈들은 대관절 무어냐 말이야. 도둑놈들이지! 그렇지 않고는 부자가 될 수 없어. 아아! 이놈의 세상을 그저 내동댕이쳐 버리면 시원하겠어. 그렇게되면 몽땅 부서져 버리겠지. 그렇지는 않다 해도 가진 놈이 없어지는 세상이 되겠지. 이게 상책이야. 그런데 네가 말한 자선가란 녀석은 도대체 어찌 된 거냐? 녀석이 주소라도 잊어버린 게 아닐까? 틀림없이 그 늙은이는…..”
이때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달려가더니 공손히 절을 하며 억지웃음으로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 들어오세요, 자비롭고 존귀하신 선생님. 아름다운 따님께서도. “
나이가 지긋한 사나이와 젊은 여인이 다락방에 나타났다. 마리우스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 마리우스의 기분이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랑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사람’이란 한마디에 포함된 찬란한 뜻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마리우스는 미친 듯이 떨고 있었다. 아아, 그 사람이었구나! 가슴이 뛰고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토록 오래 찾아 헤맨 사람을 이제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기 영혼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하얀 신사와 함께였다. 그녀는 몇 걸음 실내로 들어와 큼직한 보따리를 탁자에 놓았다.
하얀 신사는 정답고도 슬픈 표정을 지으며 종드레트에게 말했다.
“이 보따리 속에 새 옷과 신발과 담요가 있습니다.”
“천사같이 자비로우신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종드레트는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이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그는 이 두 방문자가 처참한 실내를 돌아보는 동안, 큰딸의 귓전에 입을 대고 재빨리 ㅣ말했다.
“내 말이 어떠냐? 헌 옷이야! 돈이 아니란 말이다! 놈들은 모두 똑같아! 그런데 이 늙은이한테 보낸 편지에는 이름을 뭐라고 했니?”
딸이 대답했다.
“파방투예요.”
“옳지, 배우였군!”
이렇게 물은 것이 종드레트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마침 이때 하얀 신사가 남자에게 돌아서서 이름을 물으려는 태도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사정이 어려우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어….”
종드레트가 얼른 대답했다.
“파방투라고 합니다.”
“파방투 씨. 아아, 이제 생각이 나는군요.”
“배우지요. 전에는 그래도 날렸습니다.”
여기서 종드레트는 자선가에게 매달릴 대가 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장터의 요술쟁이 비슷하기도 하고 길가의 떠돌이 거지와도 비슷한 비굴한 목소리로 말했던 것이다.
“탈마의 제자랍니다, 선생님! 저는 탈마의 제자입니다. 예전에는 행운을 누렸습니다마는 지금은 불행한 몸이 되었습니다. 자비로우신 선생님, 이걸 보십시오. 빵도 없고 불기도 없습니다. 하나뿐인 의자는 짚이 빠져 나갔습니다. 유리창도 깨지고! 이런 날씨인데도 말입니다. 아내는 병들어 누워 있습니다.
하얀 신사가 말했다.
“가엾은 부인이군요!”
종드레트가 덧붙였다.
“자식은 상처를 입었고요!”
작은딸은 낯선 사람이 온 것에, 그리고 신사와 함께 온 딸의 모습에 정신이 팔려 울기를 그치고 있었다. 남자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울란 말이다! 크게 소리 내어 울라니까!”
동시에 그는 상처 입은 딸의 손을 꼬집었다. 요술쟁이같이 빠른 솜씨로 해치웠던 것이다. 딸은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마리우스가 마음속으로 ‘나의 위르쉴라’라고 이름 지은 아름다운 여인이 곧 그 곁으로 갔다. 그녀가 말했다.
“가엾은 아가씨. “
종드레트가 말을 계속했다.
“이것 좀 보세요, 아름다운 아가씨. 이 피투성이가 된 손을! 이것은 하루 6수를 벌기 위해 기계에서 일하다 다신 손입니다. 어쩌면 팔을 잘라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인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정말입니까?”
작은딸은 이 말을 사실이라고 믿고 전보다 더 크게 울어 댔다.”
“네, 사실입니다. 자비로우신 선생님!”
그런데 종드레트는 조금 전부터 이 자선가를 묘한 태도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껄여 대면서도 무슨 기억이라도 더듬는 듯 주의 깊게 노인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손님들이 부상당한 딸을 가엾게 여겨 이것저것 질문하고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그는 문득 아내가 누워 있는 침대 곁으로 가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저 사나이를 자세히 봐.”
그는 하얀 신사에게로 가서 탄식을 계속했다.
“보십시오, 선생님! 저는 입은 것이 고작 아내의 슈미즈뿐입니다! 그것도 누더기입니다. 이 겨울에도 말입니다. 옷이 없어 외출도 하지 못합니다. 저희 집에는 한 푼도 없습니다. 아내는 병이 들었고 딸년도 상처를 입었으나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아내는 가끔 숨이 막힌답니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신경을 쓴 것이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아내를 구해야 되겠고, 딸년 역시 저 모양입니다. 그런데 의사나 약제사의 신세를 질 수 없습니다! 돈이 한 푼도 없으니까요! 단 10상팀이라도 무릎을 꿇고 얻어야할 형편입니다. 선생님! 선생님, 훌륭하신 선생님, 내일은 어떻게 되는지 아시겠습니까? 내일 2월 4일은 집주인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집세 받는 날입니다. 만일 오늘 밤에 지불하지 못하면 내일은 큰딸과 저와 병든 아내, 상처 입은 딸이 모두 집 밖으로 쫓겨나서 머물 곳도 없이 한길에서 비나 눈을 맞아야 합니다. 선생님, 형편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4기분 그러니까 1년 치가 밀렸습니다! 60프랑이지요.”
종드레트는 거짓말을 했다. 4기분이 40프랑밖에 되지 않았고, 또 그만큼 밀릴 수도 없었다. 마리우스가 2기분의 것을 지불해 준 지 아직 6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얀 신사는 주머니에서 5프랑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종드레트는 재빨리 큰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망할 영감 같으니라고! 단 5프랑으로 어쩌자는 거야? 의자와 유리창 수리비도 안 되겠어! 적어도 그만한 정도는 내야 할 게 아니야!”
그 사이에 하얀 신사는 청색 프록코트 위에 입고 있던 커다란 갈색 외투를 벗어 의자 위에 던져 놓았다. 그가 말했다.
“파방투 씨. 나도 이 5프랑 밖에 가진 것이 없어요. 하지만 딸을 집에 데려다 주고 오늘 밤에 다시 오리다. 당신이 지불해야 할 기한이 오늘이라면서요?”
종트레트의 얼굴이 야릇한 표정으로 빛났다. 그가 얼른 대답했다.
“네, 거룩한 선생님. 여덟 시까지는 집주인에게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여섯 시에 다시 오리다. 그때 60프랑을 가지고 오겠소.”
종드레트는 미친 듯이 외쳤다.
“친절하신 선생님!”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아내에게 은밀히 말했다.
“잘 보아 둬!”
하얀 신사는 아름다운 딸의 팔을 잡고 문가로 갔다.
“여러분, 저녁에 다시 만납시다.”
그의 말에 종드레트가 재확인하듯 말했다.
“여섯 시라 하셨죠?”
“여섯 시 정각에.”
이때 의자에 걸쳐 놓았던 외투가 종드레트 큰딸의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 외투를 잊으셨어요.”
종드레트는 무섭게 어깨를 들먹이며 딸을 노려보았다. 하얀 신사는 고개를 돌려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말했다.
“잊어버린 게 아니라 두고 가는 것입니다.”
종드레트가 말했다.
“아아, 수호신 같은 어른이시여. 이 은혜를 어찌합니까. 그저 눈물이 쏟아집니다. 제가 마차 있는 데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하얀 신사가 말했다.
“밖에 나가려거든 저 외투를 입으세요. 날이 몹시 춥습니다.”
종드레트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재빨리 그 갈색 외투를 걸쳤다. 종드레트가 앞장서고 세 사람은 밖으로 나갔다. 마리우스는 그들의 뒤를 따랐으나 골목길을 돌아서는 마차 그림자를 보았을 뿐이었다. 그는 실망을 안고 방으로 돌아왔다. 문 옆에 종드레트의 딸이 서 있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아가씨’의 주소를 알아서 가르쳐 주겠다고 마리우스에게 약속했다.
마리우스는 혼자가 되었다. 그는 머리와 두 팔을 침대에 얹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걷잡을 수 없는 생각에 빠져 머릿속이 몽롱한 것 같았다. 아침부터 일어난 여러 사건, 천사의 출현과 소멸, 그 처녀가 지금 한말, 끝없는 절망 끝에 보이는 희망의 빛, 이런 것들이 그의 머리를 잡다하게 채우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몽상에서 깨어났다. 종드레트가 거칠게 지껄여 대는 말이 들렸던 것이다. 그 말은 마리우스에게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틀림없어. 분명 그 녀석이야!”
마리우스는 옷장 위로 뛰어 올라가서는 아까처럼 작은 벽 구멍 옆에 진을 쳤다. 종드레트의 흩어진 방 안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집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고 다만 모녀가 보따리를 풀어 그 속에서 털양말과 내의를 꺼내 몸에 걸치고 있는 것만이 달랐다. 새 담요 두 장이 침대에 펼쳐져 있었다.
종드레트는 이제 막 돌아왔음에 틀림없었다. 그자는 헐떡거리고 있고 딸들은 난로가에 앉아 있었다. 언니가 동생에게 붕대를 좋게 감아 주고 있었다. 부인은 난로 곁 침대에서 멍청히 앉아 있었다. 종드레트는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는데 이상하게 빛나는 눈빛이었다.
부인은 남편 옆에서 겁먹은 사람처럼 앉아 있다가 이런 말을 했다.
“정말인가요, 여보? 확실한가요?”
“확실해! 벌써 8년이 지났지만 나는 알 수 있었어! 아암, 알고 있고 말고! 금방 알아보았지. 그래, 당신은 눈치채지 못했어?”
“네.”
“하지만 내가 말하지 않았어, 주의해 보라고! 키도 얼굴도 그때 모습이야. 별로 늙지도 않았더군. 세상에 좀처럼 나이를 먹지 않는 친구들이 있는데,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어. 음성도 똑같더군. 옷차림이 좋아졌을 뿐이야. 아아!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녀석을 이제야 잡았어!”
그자는 걸음을 멈추고 딸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나가! 너희가 그걸 깨닫지 못했다니 바보로군.”
두 딸은 밖으로 나갔다. 딸들이 문을 나서려 할 때 그자가 큰 딸의 팔을 붙들고 특별히 주의를 주었다.
“다섯 시까지는 꼭 돌아와야 한다. 둘 모두. 너희가 꼭 필요해.”
마리우스는 더욱 자세히 들어보았다. 종드레트는 아내와 단둘이 되자 다시 방 안을 서너 번 서성거렸다. 그러더니 한참 동안 입고 있던 슈미즈 자락을 바지에 밀어넣었다. 그자가 갑자기 아내 쪽으로 몸을 돌려 팔짱을 끼고 소리쳤다.
“그래, 한 가지만 이야기해줄까? 그 처녀는…..”
아내가 물었다.
“누구예요. 그 처녀가?”
마리우스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 여인에 관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불안한 생각에서 그는 자세히 귀를 기울였다. 그의 모든 정신이 두 귀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종드레트는 몸을 굽혀 작은 소리로 아내에게 말한 다음 일어서면서 큰 소리로 결론을 내렸다.
“그 애야. “
“그 처녀가?”
“물론이지. “
“저런 세상에!”
부인은 말을 계속했다.
“우리 아이들은 맨발에 입을 것도 하나 없는데! 그런데도 비단 망토에 모피 모자, 구두 하며! 몸에 걸친 것마도 2백 프랑어치는 되겠어요. 마치 귀분인 같아요! 당신이 잘못 보았을 거예요! 우선 그 애는 보잘것없이 못생겼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그럴 리가 없어요!”
“틀림없다니까, 이제 알게 될거야.”
이 같은 단정적인 말을 듣자, 부인은 검붉은 얼굴을 들어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마리우스에게는 남자보다 부인이 더 무서워 보였다. 호랑이 눈을 가진 암퇘지 같았다.
“뭐! 우리 딸을 가엾은 듯이 바라보던 그 미인이 거지 계집애라고! 아아, 그년의 옆구리를 걷어차 버려야 속이 시원하겠군!”
부인은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머리털이 흩어지고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입을 반쯤 벌리고 떨리는 손을 뒤로 돌려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다가 그만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자는 이러한 아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서성거리고 있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그자는 아내 앞으로 가서 아까처럼 팔짱을 끼고 은근하게 말했다.
“한 가지 더 말해줄까?”
“또 뭐예요?”
그자는 낮은 음성으로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했다.
“이제 우리도 한 재산이 생겼어.”
부인이 물었다.
“무슨 뜻이에요?”
그자는 머리를 흔들고 눈을 껌벅거리면서, 마치 거리의 요술사가 비밀을 알려 주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슨 뜻이냐고? 들어 봐!”
아내가 말했다.
“쉿! 그렇게 큰소리를 내지 말아요.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괜찮아! 옆방 말이야? 아까 나가는 걸 봤어! 있어도 상관없어. 그 바보가 들을 까닭이 없지. 나가는 걸 분명히 봤다니까!”
그러면서도 종드레트는 일종의 본능에 따라 말소리를 낮췄다. 그래도 마리우스가 못 들을 만큼 작은 소리는 아니었다.
“우린 부자가 될 수 잇어. 그놈은 오늘 밤 여섯 시에 올 거란 말이야. 60프랑을 가지고 말이지. 그 시각에는 이 집에 우리밖에 없어. 옆방의 젊은 녀석은 밤이 깊어야 들어오니까 말야. 딸들더러 망을 보라 하겠어. 당신도 거들어야 해. 아마 꼼짝도 못할걸. “
아내가 물었다.
“만약에 말을 듣지 않는다면?”
종드레트는 흉측한 몸짓을 해 보이며 말했다.
“우리가 해치워 버려야지.”
그자가 웃었다. 종드레트가 웃는 것을 마리우스는 처음으로 보았다.
그 웃음은 싸늘하고 조용했으며 소름이 끼치는 것이었다. 종드레트는 난로 곁에 있는 벽장을 열어 낡은 사냥 모자를 꺼냈다. 그자는 옷소매로 먼지를 닦은 다음 머리에 올려놓았다. 그자가 말했다.
“그럼 다녀오겠어. 만나야 할 친구들이 있어. 좋은 녀석들이지. 어떻게 되는지 기다려 보란 말이야. 되도록 빨리 다녀올게. 이번 일은 아주 멋져. 집이나 잘봐.”
그자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런 말을 했다.
“어쨋든 나를 알아보지 못한 건 천만 다행이야! 녀석이 나를 알아보았더라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야. 하마터면 놓친 뻔했어! 내 수염이 도와준 거지! 귀여운 턱수염, 이 멋진 턱수염!”
그자는 또다시 웃어 대며 창가로 갔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 눈이 잿빛 하늘에 무늬를 놓고 있었다. 그자는 외투 깃을 세우면서 말했다.
“날씨 참 더럽군. 이 외투는 너무 크고! 하지만 상관없어. 그 늙은이가 나를 제법 도와준단 말이거든! 이게 없었더라면 외출도 하지 못할 것이고, 만사가 끝장났을 텐데. 세상일이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그자가 모자를 푹 눌러 쓰면서 밖으로 나갔다. 몇 걸음 걸었을까 했을 때 문이 도로 열리며 그 흉포하고 빈틈없는 얼굴이 입구 쪽에 나타났다. 그자가 말했다.
“잊을 뻔했어. 풍로에 불을 피워 둬.”
그자는 자선가에게서 받은 5프랑을 아내의 앞치마에 던졌다. 부인이 물었다.
“풍로에 불을 피우라고요?”
“그래. “
“얼마나요?”
“두 삽 정도. “
“33수가량 들 거예요. 나머지로는 저녁 거리를 살게요.”
“그런 안 돼!”
“왜요?”
“5프랑짜리를 써서는 안돼.”
“어째서요?”
“사야 할 물건이 있어.”
“뭔데요?”
“뭐든지.”
“얼마면 되나요?”
“이 근처에 철물점은 어디 있지?”
“무프타르가에 있어요.”
“아아, 그렇지! 길모퉁이에 가게가 생겼더군.”
“대관절 당신이 살 건 얼마가 필요한데 그래요?”
“50수 아니면 3프랑 정도.”
“그럼 저녁 장만은 못하겠군요.”
“먹는 게 문제가 아냐. 좀 더 중대한 일이 있어. “
“알겠어요, 여보.”
종드레트는 다시 문을 닫았다. 마리우스는 복도에서 멀어져 재빠릴 층계를 내려가는 종드레트의 발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