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림자 신부.
적승의 가솔들은 제 주인인 안류 총독이 들어앉힌 여덟 번째 신부, 초연을 그리 칭했다. 고요하게 음울한 얼굴, 창백한 안색, 초점을 잃은 흐릿한 눈빛. 초연은 수라도의 노예 시장에서 총독의 눈에 든 죄로 신붓감으로 사로잡혀 내당에 갇혀야 했다. 혼례식을 기대하는 신부가 아닌 벌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주인의 비틀어진 기호를 입에 올릴 수 없으니 그들은 초연에게 화살을 돌렸다. 한낱 비천한 찬다라는 눈도, 귀도 멀었다 여겼는지 뒷말을 속닥거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알아가게 되었다. 여기로 총독이 맞이한 일곱 명의 부인들은 전부 죽어서도 혼만은 매어있다는 것을. 패전국에서 온 이방인은 가녀린 희생양에 불과했다.
이제 여덟 번의 신접이 이뤄진 내당을 핏빛 물든 붉은 끈[赤繩;적승]으로 엮은 안락한 새장이라 했다. 보이지 않는 철창 안에 갇힌 채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감옥, 혹은 가장 아름다운 수집품을 꽃처럼 이울어갈 때까지 전시해두는 장이라거나. 고상한 수식을 뒤로 하면 고작 제단 위에 바칠 제물이 머무는 곳이었다. 내당의 문은 상이 들고 나갈 때만 하루에 각각 세 번 열리고 닫혔다. 분명 초연은 수저를 올려 겨우 음식을 삼키고 있는데도 하루하루 야위어만 갔다. 그러다 속에서 받지 못해 조용히 물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 내당에 네 번째로 문이 열리고 닫힌 밤이 있었다. 시린 초겨울의 바람을 타고 들어온 낭보는 총독의 명으로 보름 후에 초연의 가족들이 대도로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가솔들은 이전의 부인들에게 했던 총독의 무심한 다정이라고만 여겼다.
새벽녘부터 초연은 차양을 거두고 창을 환하게 열었다. 암청빛 하늘을 보며 차분히 다짐을 했다. 총독의 자비에 감사하며 가족들만이라도 피사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기를 애원하리라. 제 몸은 여기서 얽힌 붉은 실에 감겨 죽어가는 게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테니. 여명에 저물어가는 저 손톱달을 바라보며 소망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초연은 해진 털옷을 찬장에서 꺼내 품에 그러안았다.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어린 시종을 창가로 불러선 귓가에 나붓이 속삭였다. 말을 잃어버린 줄 알았던 조용한 정경부인이 건네는 청에 시종은 고개를 주억대며 초연에게 나오라고 손짓했다.
해진 털옷을 물에 담그고서 묻은 자국들을 세답하는 초연의 손길은 거칠 게 없었다. 어린 시종은 어찌하여 털옷에 무수한 자국이 묻었는지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두 손을 턱에 괴고서는 여덟 번째 부인으로 온 초연을 신기해하며 바라보았다. 나이는 열 두 살, 이름은 섬섬이라고 했다. 초연은 꽃을 수놓아 여동생을 위한 볼끼와 털장갑을 만들어 줄거라고 답하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침선 노비가 잠든 사이에 자수에 필요한 걸 전부 훔쳐왔다면서 초연에게 신나서 떠들어대는 모습이 꼭 십 여년 전의 여동생을 빼어 닮았다. 차디찬 물에 손이 아려오는 줄도 잊고서 초연은 한참동안 시종을 바라보았다.
「웃는 모습이 참으로 어여쁘셔요, 마님.」
냇물에 비친 초연의 얼굴엔 물기 어린 미소가 머물렀다.
두 손을 들어 이미 발개진 섬섬의 볼을 감싸주었다. 자그마한 볼에 닿은 한기에 지금쯤 마차를 타고 언니를 보기 위해 오고 있을 여동생의 말간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자투리 천까지 아끼지 않으면 섬섬이를 위한 선물 하나도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섬섬이, 너의 볼끼도 만들어 줄게.”
소박한 정을 나누면 다가올 겨울이 이 차가운 냇물보다 시리진 않을 거라고, 그렇게.
2.
수없이 매듭을 다시 풀고 묶으면서 완성한 선물을 바라보며 초연은 흡족했다.
기일이 다가오면 올 수록 설레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어 환한 미소를 흘리면서 적승을 돌아다녔다. 가족들이 타고 있는 마차가 오기를 발을 세우며 담장 너머 지평선을 둘러보며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불행을 몰고 올 폭풍인 줄도 모르고서. 마차에 인영이 비치지 않아 이상하다고 여기며 열었을 즈음 폐부를 찌르는 고통에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잊어버린 사람처럼 숨조차 멎어버렸다.
잊으려했던 아스라한 기억이 떠올랐다. 수라도에서의 어느 조우였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손을 놓아버렸던 정혼자는 소료로 망명하여 수라도에 피사국 백성을 바치는 자가 되어있었다. 조용히 은장도를 꺼내 그 목을 겨누었더니 비굴하게도 목숨을 구걸하며 가족들의 생사를 알려주었다. 곱고 여린 심성을 가진 초연만을 알아왔으니 초연이 칼을 거두자 금세 마음을 놓으며 되물었다.
「헌데, 초연. 낭자는 왜 죽지 않았소?」
다만 현재엔 비열했던 정혼자의 목소리 너머로 초연의 가족들을 보고 싶었다는 그의 단호하고 서늘한 음성이 겹쳐 울렸다. 눈 앞에서 초연을 내려다보는 총독의 비릿한 시선은 도리어 무감했다. 주저앉아 무너져가는, 그가 선사한 나락에 손톱에서 피가 날만큼 흙바닥을 할퀴며 소리 없는 비명을, 눈물을 삼켜내는 초연을 바라보는 눈빛. 그는 피사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저리 세 명의 가련한 숨결을 베어내서 부서지게 했다. 가슴을 움켜쥔 채로 바닥을 기지 않도록 버텼다. 눈조차 감지 못한 채로 죽은 부모님과 여동생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건 오롯이 초연이어야 했다. 영영 잊지 않도록, 내 목이 저리 잘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수라도에 온 망국의 여인들은 자결로 정절을─.」
변절자의 여인으로 남을 수 없어서 그 날 밤, 초연은 망발하는 정혼자의 가슴께로 칼날을 올려 미련조차 두지 않고 그의 심장에 칼을 꽂았었다. 다시 빼내자 짓이겨진 살결로 핏물이 새어나왔다. 타인을, 그것도 사랑했던 남자와 이토록 서글프게 별리할 거라고 세 달포 전까지 생각조차 못했다. 혼례를 치르게 될 서른 두 살의 가을이 이토록 참혹할 거라고 여기지 않았다.
「무원, 당신은 쉽게 저버린 절개를 저는 지켜야 하나요?」
살아서 돌아가고자 했는데 초연은 소료로 끌려온 후로 걸음마다 무수한 비극을 산재해왔다. 시린 겨울이 다가오는 수라도는 지옥도가 되어가고 있었다. 여길 떠나 노예 시장으로 나서 좋은 주인을 찾아 피사국으로 속환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리 된다면 소료를 떠나는 걸음마다 흘렸었던 비극의 조각들을 모아서 피사국의 푸른 바닷가에 제 숨결과 같이 보낼 수 있기를 소망했다.
...
..
.
나의 소망들은 이토록 초라했었나. 그의 발치에 짓밟힐만큼. 한 품에 그러안으면 바스라질 만큼 비참했다.
“이리 은혜를 베푸셔도, 갚을 길이 없으니.”
품 안의 은장도를 꺼내 제 목에 겨누고선 사라지지 않은 상흔 위를 그었다.
“공께서는 저를 위해 더는 아무 것도 해주지 마시어요.¹”
그는 막지 못한, 혹은 그렇게 안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파리한 초연의 얼굴에 핏빛 어린 눈빛이 맺혔다.
바라던 대로 그의 액운을 단물처럼 받아마시며 느리게 시들어가는 귀결만이 유일하다면 아직은 살아야했기에.
이제는 알아. 나의 간절한 소망들은 당신에게서 처절히 부서지겠지.
그래, 그게 정해진 거라면 나의 마지막 소망은 안류, 당신으로 하면 되겠어.
그 소망은 오로지 나만이 저버릴 수 있으니까.
흐렸던 시야가 깊은 어둠으로 잠겼다. 감기던 두 눈으로 마지막으로 바라봤던 그의 얼굴은 여전히─.
3.
늦가을의 물기를 머금은 소나기가 그 날 밤을 잠재우지 못했다.
두 눈을 뜨자 어두워진 내방, 창문 틈을 타고 들어오는 물결같은 달빛이 초연의 가녀린 몸을 도려내듯 비치고 있었다. 창밖으로 내미는 손목으로 빗물이 닿았다. 목을 베었던 칼날보다 더 벼리니 이대로 다 잠겨버리고 싶었다. 차마 토해내지 못한 눈물, 아니면 하릴없이 억울하게 죽은 이들에게 보내주는 서러운 위로인가. 몇 시진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자 보름 동안 열려있던 차양은 다시 내려왔고 창문은 닫혔다. 그리고 이레 동안 초연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인 마냥 죽을 것처럼 앓았다.² 조용한 장례를 치렀다.
맑아진 날씨도 적승에 드리운 그림자를 거두지는 못했다. 일전에 총독을 바라보며 목에 칼을 그은 초연이 또 자해를 할까 저어되었는지 날카로운 것들은 내방에서 전부 사라졌다. 실과 바늘을 거두어 가는 시종들을 보며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치미는 고통에 제 몸을 수틀 삼아 바늘로 용서치 못할 죄목을 새겼을테니까. 식사만 세 번 들고 나르는 일상이 돌아왔지만 상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로 물러졌다. 가솔들은 초연이 총독의 액받이가 되기도 전에 메말라 죽을 거라고 수근대기 시작했다.
초연은 바람결에 비스듬이 내방의 창이 열리자 갈피를 잊고 허공에 머물었던 시선 끝을 꽃망울이 맺힌 서향목에 두었다. 저 너머로는 가닿지 못할 아득하고 머나먼 남서단에 잊혀진 나라, 피사국이 있었다. 잔잔한 수면 위로 번영했던 제국은 잠식한 지 세 달은 훨씬 지났다. 황태자의 혼례식 날 펼쳐진 전쟁이라는 비극 아래로. 침략자들은 잔혹했고 패배자들은 무지하고 나약했다. 패국의 일개 백성에 불과했던 초연은 가여운 피해자였다. 무투회에 승리한 소료의 황태자는 소원으로 피사국의 왕녀를 배필로 삼겠다고 청했다. 총독이 초연을 취한 것처럼 그 흔한 전리품에 불과했을 것이다.
서서히 초연은 삶에 대해 서늘한 마음을 품게 되곤 했다. 원한이라고 부르기엔 연약하고, 원망이라고 부르기에는 얼마간 독한 마음이었다.³ 모든 게 다 제 잘못이라는 죄책과 회한이 보이지 않는 칼날이 되어 초연의 숨과 마음을 베어갈 수록 생기를 잃어갔다. 짓무른 눈가를 매만지며 침상에 기댄 채로 흘러가던 고요한 내방에 문이 열렸다. 고개를 올려다보니 섬섬이었다.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모를 수가 없었다. 초연이 수저를 한 번도 대지 않고 물리면 그 상을 나른 시종에게 어떤 벌이 내려지는 지를.
우연인가. 아니면 어린 여자 아이를 보내면 또 제 가냘픈 마음 자락에 밀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던가. 섬섬이는 일전에 활발했던 모습과 달리 시무룩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웃으면서 저를 바라봤던 그 날이 그리워요. 라는 말과 함께 수저를 건네기만 했다. 섬섬이를 내치지 못하는 걸 보니 다 버렸다고 여겼는데 아직 제게 남아있는 다정이 있기는 했구나 싶었다.
“내가 미소를, 보였었구나. 얼마나─.”
하찮게 보였을까. 너의, 아니 이젠 나의 주인에게.
뒷말을 삼키고서 수저를 내려두었다. 그리고 볼끼와 털장갑을 짐짝처럼 섬섬의 품에 내던지듯 건넸다. 여동생의 손길조차 닿지 않은 걸 유품처럼 끌어안고서는 더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이제는 온 몸이 시리도록 알았다. 여동생의 이름은 초선이었다. 선아, 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꼭 섬섬아, 처럼 들릴까봐. 대신 그렇게 부르고 싶을까봐 두려웠다.
“다시는 내당에 오지 마, 섬섬아.”
마지막으로 그 이름을 대신 부르고는 마치 걸신이라도 든 것처럼 허겁지겁 수저를 들어 팥죽을 입에 겨우 넣었다.
시간이 이리도 무심이 흘렀던가. 시종들과 새알심을 나누어 만들던 지난 동지가 그리워졌다. 시리지 않았던 지난 날의 겨울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살아야 해, 살아야만 해. 그래야 죽을 수 있어. 저승길을 홀로 떠나진 않을 거야. 같이 가야할 이가 생겼어. 초연은 곱씹듯이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적승에 아홉 번째 부인은 들지 않을 것이다. 초연이 여기에 묻힐 마지막 신부로 남아야 하니까.
이미 정해진 이 운명의 끝자락에서 그는 어디에 서있을 지 가늠치 못하더라도.
“곧 떠날 사람에게 마음을 주면 슬프단다. 알겠니?”
서서히 초연은 불행이라는 궤도 속으로 들어가 무덤덤하게 타들어가고자 했다.*
*<조혜은, 신부 수첩> 변용
¹ <드라마, 연인(mbc). 변용>
² 키워드
³ <한강, 흰 :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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