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우리가 지난 주는 참으로 많은 말씀의 교제를 나눴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영이시다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의 영 안에서 목자가 되셔서 지금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살펴주시고 감춰주시고 숨겨주시는 분으로서
그 목자는 외형적인 목자가 아니라 이제는 내적인 목자로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라는
이런 얘기를 여러분들에게 전 해 드렸습니다.
그래서 목자 되셔서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 영 안에 살아계셔서 인도하시고 안내하시는 그분의 양인
우리를 다스리고 인도하심은 바로 의를 소유하여서 의의 길을 가도록 내적인 목자 되신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이 의를 쫓아 살도록 의를 쫓아 움직이고 의를 쫓아 행하는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의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의는 바로 참 생명의 영이신 그 하나님의 영의 뜻을 쫓아 움직이고 행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렸고 그리고 또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집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도피처로서 인간의 외형적인 모든 문제들을 감춰주시고 그리고 사람들과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숨겨주시는 그러한 피난처가 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된 하나님의 집이요 거처로 보여주시는 바로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여러분 집은 안식과 생명과 평안이 있는 곳이죠. 먹을 양식이 있는 곳이죠.
예 그리스도는 그런 면에서 우리를 위한 모든 것이 되시기도 하시며 하나님의 성전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가 평안과 안식과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어디입니까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주소는 바로 성육신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성전 삼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움직이신 것입니다. 성전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고 행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거처이시며 성전 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함께
자유스럽게 이렇게 움직이실 수가 없으셨죠.
그런 면에서는 바로 하나님의 그러한 들숨과 날숨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정말 목마름을 오히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움직임이 표현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유롭게 하신 분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내신 분 그대로 보여주신 분 체현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집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우리들에게 묻는다면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 없고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는 그분이 지금 어디 계십니까 라고 물을 때 예 그분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라고 대답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그 집을 통해서 방문해 주시고 그곳에 거처를
삼아주시고 그 집을 통해서 그리스도라는 육체를 지니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움직이시고
함께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집이신 그리스도 안에는 이 성경 전체가 가르키는 것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양식이시다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생명수 강이시다 생명의 원천이시다 빛이시다.
이렇게 여러 가지 유형의 특별한 그리스도만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내적인 것을 우리에게 표현해 줌으로
말미암아 이것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입니다.주님 안에 있는 내적이고 영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늘의 양식을 먹게 하시는 분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생명수 강이라는 것은 갈급함과 갈증을 느끼는 그러한 그목마름을 가진 수가성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처럼
목말라 하는 갈급함과 갈증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러한 상태에 빠진 그 타락한 죄인을 위해서 생명수를 마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살릴수 있는 그러한 일을 육체를 가짐으로 인하여 제한적이고 간헐적으로 밖에 할수 없었지만 이제는 십자가를 통한 죽음과 부활과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영이 되셔서
그 온전히 전달하지 못했던 그 생명수를 지체들인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지고
가지 못한 십자가를 구레네 시몬이 함께 골고다 언덕 까지 지고 가게 하신 것처럼 우리 이긴 자들을 통해서
그 생명수 마실 자들에게 찾아가서 생명의 양식이 되신 그 분을 온전히 전하게 하시고 그들로 먹고 소유하게
하시고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 되셔서 우리에게 음식과 생명수 강과 생명의 원천과 빛을 소유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다 라는 것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멸망에 빠져서 사망 가운데 거 할 자들을 살림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숨을 깊게 들이쉬게 하여서 그분에게 우리의 일들을 통해서 평안함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배부를 수 있도록 그분이 온전히 숨을 쉬어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게 되는 것이 바로 남은 자들 이긴 자들인 우리 교회들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교제를 통해서 나눴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이 되셔서 우리에게 양식을 공급하게 해주는 먹는 그 자체가
되시고 생명수 강이 되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갈증과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고 원천이 되어 주셔서 주님을 믿고
따르며 거듭난 모든 자들이 주님의 하늘의 영역들 안에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영적인 모든 축복들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원천이 되어 주시고 빛이 되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소경된 우리를 친히 보게 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의 복들을 소유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시고 참여하고 누리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은 유용의 형태로 빛이 되어 주셔서 그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36편에서는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유용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살리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원천도 우리 모두에게 유익이 되고 유용이 되며 빛도 그러한 것들을 봄으로써 참여하게 함으로써 절대적으로 유용한 것입니다.
7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8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리이다
9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10주를 아는 자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하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의를 베푸소서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빛이다.하나님의 집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전하고도 완전한 누림을 위해
주님께서는 유용하고도 유익한 모든 풍성한 것들 아버지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들을 다 가지고 계셔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양식과 생명수 강과 원천과 그리고 생명의 양식을 우리에게 분배해 주시기 위해서는 성육신 하심으로
말미암아 육체가 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에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육신 안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러한 일을 친히 우리에게 공급해주고 분배해 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서는 경건의 큰 비밀이다 라고 이렇게 얘기했던 것입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여러분 정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이 되셔서 성육신 되셔서 그 육체 안에 계셨던
하나님과 함께 행하시고 역사하시고 함께 움직이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을 통하여 제한적으로 움직이시고 행하실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해방이 되어서 온전하게 드러나게 되어서 우리 교회들에게 그 생명의 영을 분배해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교회들을 통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고 행하시고 함께 살고 함께 하나 되고 연합되어 주님의 경륜을 이루고 도모하는 일인 동역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이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형제들이 되게 하여 주셔서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 영이라는 존재 안에 예수님의 영이신 그분께서 들어오셔서 그분의 집 안에 우리가 또 거하면서 함께 그분께서 가지신
양식 생명수 빛의 모든 것의 원천 그리고 그분이 가지고 계셨던 그러한 좋은 것들을 마음껏 우리에게 누릴 수 있도록 빛이 되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사람 안에 들어오셔서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이 모든 것들을 보여주시고 계시 하신 분이 바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사건들을 통하여 신성이 인성 안으로 들어와서 두 가지
종류의 본성인 신성과 인성을 소유하신 자가 되어서 33년 반 동안의 인간의 삶을 사셨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것을 통하여 인성이 신성 안으로 이끌어져서 존귀함과 높임을 받는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맏아들이 됨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형제들 그리스도의 형제들을 산출하여서 수많은 하나님의 맏아들 들을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어우러지고 녹아지고 정말 빻아지고 그런 고난과 곤고함과 심지어는 생명을
받쳐서 피를 흘리는 죽으심에 대한 그러한 일들을 치르면서 까지도 우리에게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부여해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결코 하나 될 수 없기 때문에 바로 인간의 몸을 피와 살을 가지고 세상에 육체로 오셔서 삶을 사시다가 죽음과 사망 죄와 사망을 무효화시키고 무력화시키는 부활을 통하여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안으로 이끌려짐으로 말미암아 신성과 인성이 연합되어져서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예수님의 영 부활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 주의 영 다른 보혜사 성령님그분이십니다.
성경 전체는 창세기를 통해서 계시록까지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과 하나가 될 수 있는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 안으로 들어와야 되는데 어떻게 들어오는 일이 가능한가?
그것이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신성과 인성이 연합되어져서
인성 안으로 그 예수님의 영이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과 비천한 몸이며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죄된 악한 본성을 가진 첫 사람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죽을 수밖에 없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를 가진 자를
어떻게 죄를 없애주는 의로운 자로 만들어주고 그 의로운 자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하나님과 하나 될수 있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 안으로 들어와서 사람 가운데 살 수 있는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영이라는 존재 안에 영 하나님 예수님의 영이 어떻게 들어와서 내주하실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을 다루시고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이런 것들을 알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이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네 바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셨던 하나님의 생명을 통해서 표현되어 지고 유출되어지는
분배되어 지는 그런 생명의 양식들 생명수 목마름과 갈증을 영원히 해결해 줄 수 있는 영원히 배고프지 않고
허하지 않는 그런 생명의 양식 생명수 원천 모든 것 가운데 모든 자들에게 분배해 주실 수 있는 생명의 원천 바로 그런 것들을 빛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보게 함으로 말미암아 참여하게 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안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생명을 사람에게 공급해 주셔서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 받아 분배되어지고 침투되어진 그 하나님의 생명을 바로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양식과
생명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원천이신 생명나무의 열매를 통해서 우리에게 공급되어 짐으로 말미암아 그 타락하여 죄를 짓고 불의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자들의 영 안에 들어와서 의롭게 하고 거듭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처럼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 안에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의 요소를 지닌 자들로서 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가지고 살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오직 이 일을 할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체현이시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되었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
그리스도 그 안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 성경에서는 한명의 아내만 갖도록 그렇게 제정해 놓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들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이 솔로몬을 통하여 이 솔로몬이 많은
첩들과 후궁들인 아내들을 얼마나 많이 두었습니까 ? 이방인 나라의 열방 가운데서도 왕들의 딸 왕족의
신분인 자들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두지 않았습니까? 그 헤아릴 수 없는 여자들을 아내로 취하여
왕후가 되게 하고 금실로 짜진 옷을 입게 하고 오빌의 금을 두르게 하고 아름다운 왕족의 신분을 나타낼 수
있는 수가 놓아진 그 첫 번째 옷 누가복음:15:22절에
돌아온 탕자 에게 제일 좋은 겉옷을 갖다 입혀주어라 라는 그 옷을 입게 하셨습니다.
예 하나님의 객관적인 의와 주관적인 의가 필요한데 특별히 승리를 위해서는 주관적인 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잔칫집에 초청을 받아 그 잔칫집에 들어가는 자들은 이긴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왕후가 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왕후는 하나님의 집안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왕궁 바로 그 왕궁 안에 왕으로서 보좌에 앉아 있는 그 왕은 죄와 사망과
죽음을 이기고 부활을 통해서 사탄의 세력을 완전히 폐하고 정복한 자가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아내가 된 짝된 자들 아내 된 자들인 왕후는 이긴 자들이 아니면 합법적인 아내
합법적인 위치에 들어설 수 있는 왕후인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잔칫집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남편이신 그리스도와 그 그리스도와 짝된 자 아내된 자
연합된 자 왕후으로서 칭함 받은 자 초청을 받은 자는 그 왕후 안에 다 속해 있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 궁전에서 정복하고 이김으로 말미암아 왕이 되었는데 왕의 아내된 자들 또한
이기는 자들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수많은 헤아릴 수 없는 교회들 무리들로 형성된 단체적인 아내들을 가진
그리스도를 표징하고 나타내는 것이 바로 솔로몬 왕인 것입니다.
물론 솔로몬왕이 어떻게 저렇게 돈도 많고 권세도 있고 그래서 수많은 아내들을 취하고 얼마나 멋졌을까
그 멋졌을까라는 이 세상적인 그런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그와 같은 수많은
헤아릴 수 없는 짝된 자 아내 된 자 바로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처럼 막달라 마리아처럼 그와 같은 자들을 찾기
위해서 오셨고 찾아서 왕후로 만들어주기 위하여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자신의 영을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막달라 마리아 또 수가성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의 안에 들어가서 그를 거듭나게 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말할 수 없는 달콤한 사랑과 향기로운 사랑의 영이 되신 그분을 부어주셔서 계속적으로 접촉하게 하고
계속적으로 공급받게 함으로 말미암아 아내 왕후가 되는 삶을 살도록 그런 과정을 거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그 여인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신 예수님은 그 여인들과
사람들을 만날 때 너무나 달콤한 사랑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에서는 외모도 볼품 없고
비천한 가문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정말 나사렛이라는 조롱받고 업신여김을 받고
비아냥거림을 받는 그러한 곳에서 태어나신 분일지라도 그분이 사람들을 만남에 있어서 정말 달콤한
사랑을 전해줌으로 말미암아 그 내적으로 그분의 아름다운 그 삶의 미덕들인 하나님의 속성들을 그대로
육체가 되신 그리스도를 보여줌으로 말이암아 그들이 그 볼품 없는 예수님을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딴 세계에서 오신 분으로 받아들이고 그분과의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 신성한 생명 이것을 받아들여서
짝된 아내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담 안에 속한 하와처럼 하와는 아담 안에 속한 자죠 아담에 속한 하와가 짝꿍 된 자인 것처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인 것처럼 뼈는 생명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짝궁은 신랑 그리스도의 양식을 받아 먹음으로 말미암아 그 생명을 소유 받아
하나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 수가성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은 여섯 남편이 있었다고 얘기한 겁니다.
여섯 남편 세상에서 마귀를 통하여 준 그런 세상의 것들 유형의 것들을 통해서 참된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기를 원했지만 그 짝된 세상과 짝된 여섯 남편과 세상을 상징하고 있는 원수 마귀는 그 여인에게
자기가 소원하고 갈망하고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7번째 등장하고 나타났던 주님께서 그렇게 갈급함과 갈증을 통해서 배고파 허기져서 죽을 수밖에 없는 그에게
바로 달려간 것은 그에게 바로 먹을 것과 생명수를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갈증을 해결하고 배고픔을 해결해
주고 빛을 비춰줌으로 말미암아 다른 세계를 보게 하셔서 비천하고 볼품 없는 자가 아니라 수려한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보게 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남편임을 알게 하고 빛을 통해서 그를 직시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그 모든 것들 하늘들 영역 안에 있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지셨던 하늘의
영적인 축복을 다 누리게 하고 참여하게 하고 소유하게 하기 위해서 빛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갈급함과 배고픈 자들을 찾아 다니기 위한 일을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는 주의 영이 되어 주셔서 그 영을 받는 자들에게 이 나머지 일을 맡긴 것입니다.
너희가 이 남은 일들을 내가 한 일과 똑같은 일들 목마르고 배고픈 자들에게 생명수를 주고 생명의 양식을 주고 빛을 비쳐주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산출시켜주신 조성되어 주시고 완결되어 주신 하나님을 먹고 마심으로
말미암아 누리라는 겁니다.안식을 누리고 평안을 누리고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메고 가다가 무겁고 지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가던 그 십자가의 큰 인류의 죄 짐을 다
끌어안은 그 무거운 나무를 구레뇨 시몬을 통해서 지고 가게 한 것처럼 그 남은 일들을 우리에게 줌으로
말미암아 명예를 회복하고 그 존귀한 영광된 일을 우리에게 부여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존귀하게
만들고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여서 만왕의 왕이신 그분이 천년 왕국에서 만왕의 왕으로서 통치할 때
그분의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 그분이 하시는 모든 그리스도와 같이 권위안에 속한 자가 되어서 다스리는 자
통치하는 자 창세기:1:26 절에 나온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우리가 창조합시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통치하게 합시다 다스리게 하십시다 라는 아담을 통해서 이루지 못한 그 일을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결되어 주시고 섞어지시고, 쪼개지시고 빻아지시고 잘라지시고 정말
불태워지시는 이러한 곤고한 삶들을 통해서 완결되어 주신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의 영이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안에는 세분 하나님이 다 계시죠.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지신 것은 아들 하나님 안에 있고 아들 하나님께서 가지신 것은 영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렇게 공급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의 궁극적인 결과물인 완성되고
완결되어진 새 하늘과 새 땅 안에 도래할 새 예루살렘은 이러한 자들 솔로몬의 수많은 아내들로 취해진
이방인 나라의 왕족의 신분을 가진 자들과 또 많은 사람들이 있었겠죠.
그러나 그들은 솔로몬 왕을 만나기 전까지는 바로 이방 나라에 속했던 자들이고 어둠의 권세 아래 있었던
자들인데 주님께서 이러한 자들을 찾으셔서 자기 소유가 되게 하고 아내가 되게 하고 왕후가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의 성 하나님의 궁전 안에서 만왕의 왕이 되신 그분이 소유한 모든 것을 함께 누리고
소유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전체적으로 형성된 무리를 지어서 연합적으로 형성된 것이 새 하늘과 새 땅 안에 도래할
새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종족 솔로몬 왕이 수많은 이방 나라의 왕들의 딸들을 취하여서 자기의 아내로 거둔 것처럼
말할 수 없는 종족 언어가 다르고 종족이 다를지라도 그 나라들로부터 데리고 온 모든 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솔로몬 왕이 취한 아내들처럼 새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종족 가운데 열방 민족들 가운데서 취해진 그 아내들인(교회) 이들이 왕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시편 45편에 이러한 왕후가 된 자들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시 45:1)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시 45:2)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시 45:3)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시 45:4)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시 45:5)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시 45:6)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주의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라
(시 45:7)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 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시 45:8)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시 45:9)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 (시 45:10)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시 45:11)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시 45:12)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시 45:13)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시 45:14) 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시 45:15)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시 45:16)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시 45:17)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여러분 여기 9절에 왕께서 가장 귀히 여기는 여인들 중에는 여러 왕의 딸들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을 두르고 왕의 오른편에 있습니다. 9절에서 왕후가 바로 교회들이며 바로 수가성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이나 막달라
마리아 같이 목 마르고 배고픈 자들 갈망을 느꼈던 그들 하나님을 참으로 경배하기 원하는 그런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참 남편을 만나 먹을 것과 양식과 생명수을 먹고 마시는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아내가 되게 하시고 왕후가 되게 하셔서 그 왕후가 입는 옷 금실로 수 놓아진 옷을 입게 하시고
왜냐하면 특별한 왕후는 만왕의 왕의 아내이기 때문에 짝된 자이기 때문에 동반자이기 때문에 특별히
구별된 옷을 입었겠죠. 얼마나 아름다운 영광의 옷이겠습니까?
얼마나 고상하고 거룩하고 존귀함을 드러낼수 있는 옷이었겠습니까
그래서 누가복음 에서는 탕자에게 제일 좋은 겉옷을 가져다 그에게 입혀라 라는
말씀으로 이 옷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옷이 입혀진 자 의의 옷을 입은 자 여러분 누더기 옷이 아닙니다.
거지 옷이 아닙니다. 여러분 요한과 베드로가 성전 미문 앞에서 만난 그 앉은뱅이는
하나님의 집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그런 자입니다. 소경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을 볼수 없어서 갈 수 없는 자 벙어리가 된 자들 입이 있어도 찬양을 드리지 못하는 자들 귀가 있어도
주님의 말씀과 음성을 들을 수 없는 자들 그들을 눈으로 보게 하고 성경에
(눅 4: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신 이것은 여러분 그 실제적인 육신의 장애를 가진 자들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간적인 장애의 표현으로 말미암아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하나님을 친히 볼수 없는 그런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는 문둥병자입니다.
문둥병자는 전체의 삶이 망가진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오염되고 전염되어진 이 육체 안에 마귀가 또아리를 틀고 앉아 그 육체를 단단하게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죄라는 것은 살아있는 인격이며 생물입니다.
아주 활동적인 생명인 이 마귀는 육체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반하는 일을 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혼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영의 그 양심과 교통을 이루고 교감을 이루게 하는 그런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는
기관을 훼손시킴으로 말미암아 금실을 넣어 짜서 수놓아진 그 옷 그냥 평범한 일반적이고 세상적인 옷이
아니라 특별한 문구가 새겨 졌다거나 특별한 것들로 취해져서 만들어진 그 왕께로 초청받아 입고 갈수 있는
그 옷을 입지 못하도록 얼룩지게 하고 더럽혀지게 합니다.
왜냐하면 초청을 받아 택함 받은 자들에게는 그 신랑과 그 아내의 이 결혼을 위해서 여러분 초청장을
보내는 것이죠.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독생자이신 아들의 그 잔치를 위해서 부모인 아버지가
초청장을 보내는 것입니다.
초청장을 보내는데 그 초청장과 함께 옷을 함께 보내주는 것입니다.
그 옷은 이와 같은 금실로 짠 옷이고 수놓아진 옷을 입은 자가 되어서 왕께로 이끌림 받아서 만왕의 왕이 되신
우리의 남편되신 그리스도와 합법적인 아내로서 합법적인 위치에서 합법적인 옷을 입고 들어가서 예식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옷을 입지 못하도록 이 하나님의 대적자인 우리의 원수들은 그렇게 역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루살렘 성은 영적인 의미에서 높은 곳이고 여리고성을 말할 때는 내려간다고 표현을 하죠
그 여리고 성으로 내려가는 삶을 살고 있는 그런 초청장을 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고 하나님의 왕궁이며 왕이 있는 곳입니다.
왕이 있는 곳에 가서 이 결혼식에 참여하는 길의 노선을 감으로 말미암아 그 옷을 입고 당당하게 왕의
아내로서의 그 길을 가야 되는데 그 길을 가는 과정에서 금실을 넣어 짠 옷이 주어질 것이고 그런 과정들에
어떤 길들을 통해서 완결되어질 때 수놓아진 옷을 입고 바로 우리의 왕이 되시는 신랑되신 남편이 있는
혼인 잔칫집에 참여할 수가 있는데 엉뚱하게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여리고성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첫 번째로 나타나는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서 첫 번째로 마주 한 그
사단이 권세를 잡고 있는 어둠을 나타내고 있는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성입니다.
그것은 마귀가 아주 그곳에 자리 잡고 좌정한 그곳이 바로 자신의 수하들인 어둠의 세력들을 통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자들을 바로 강도짓을 해서 그러한 나쁜 짓을 해서 실족시키고 기만하고 거짓말하는 삶을 통해서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옷을 빼앗음으로 말미암아
아내가 되지 못하도록 신부가 되지 못하도록 혼인 잔치집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게 한 사건이 바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성으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모든것을 다 빼앗겨 버린 사건입니다.
예 어떤 의미에서는 유대교가 바로 그런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상징하고 있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인 그분이 나타나서 강도가 빼앗아 간 옷
그 옷이 얼마나 귀중한 옷이기에 그 강도를 만난 사마리아 사람은 돈도 가졌을 때고 여러 가지 보물과 여러 가지 양식과 짐승 노새 말 낙타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 거기에 그런 얘기가 안 쓰여 있고 옷만 뺏어갔다고 그랬어요.
그 옷은 왜냐하면 왕후가 잔칫집에 참여하여서 그 신랑되신 그리스도의 아내 될 자들이 입는 옷입니다
물론 그 옷이 여행을 통해서 예루살렘 성에 가까워 질수록 누추한 그 옷이 점점 금색실로 수 놓아진 옷으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강도는 사마리아 사람의 옷을 뺏어가지고 감으로 말미암아 잔치집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또한 폐가 망신하게 만들었습니다.
(눅:10: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눅 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눅 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눅 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눅 10: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눅 10: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눅 10: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눅 10: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 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몸도 많이 상하게 했죠 그때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신 그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나타나서 그 강도 당한
사람을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기름을 발라주셔서 상처를 싸매어 주고 옷을 먼저 입혀주셔서 먼저 응급 조치를
하신 다음에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셔서 돌보아 주시고 떠나 오면서 여관 주인에게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 강도당한 사람이 회복이 될 때 까지 돌보아 주라 부탁까지 하고 길을 떠나셨는데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강도 만난 자를 대함에 있어서 그 강도 만난 자가 긴 여정길에 지친상태에다
강도에게 매맞고 옷도 빼앗겨서 아사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 벌거 벗은 자에게 먼저 옷을 입혀주고 탕자가
집을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한 아버지의 행동이 바로 "우리 집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좋은 옷 겉옷을 그에게 입혀주어라" 그다음에 나머지 반지도 끼어 주고 신발도 신겨주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먹였던것 처럼 그는 강도를 만나서 지금 아사 직전에 있기 때문에 먹을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포도주를 통해서 생명의 수혈을 한 것이고 치유제인 기름을 통해서 상처에 발라 싸매어
준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동남아시아에서는 이 감람나무 기름을 상처 부위에 발라서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제로 사용을 하고 있는데 기름을 통해서 먼저 치료를 일단 해서 살리고 살린 다음에 새로운 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고 사관에 가서 돈을 주면서 안식과 함께 먹을 것을 제공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마귀에게 빼앗겼던 그 옷을 되찾아주고 그리스도 자신인 생명의 양식과 생명수와 그 모든 원천이
되시는 그런 것을 통해서 기름과 포도주와 그리고 사관을 통해서 내가 올 때까지 돈이 더 들면 내 더 주겠다.
바로 그 사관에서 선한 사마리아로 예표되는 그분께서 맡긴 자 그와 같이 마시지 못하고 먹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옷을 빼앗기고 매맞음을 당하고 실족당한 자를 그리스도께서 살려놓았는데 그 살려놓은 자를 우리가 여관의
주인이 되어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돌보는 일이 복음을 가진 우리들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여관에는 먹을 것과 간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기름과 포도주까지도 다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는 바로 그런 모든 것 그리스도가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을 소유한 자들이기 때문에 여관의 주인은 복음을 맡은 자들입니다.
이는 그를 보살펴주는 것이 바로 그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돈을 주고 정말 능력과 큰 은사와 어떤 모든 은혜의
것들을 베풀어주셨고 다시 와서 주겠다라고 약속을 한 겁니다. 다시 와서 주겠다 라는 것은 처음에 받았던 그
여관 주인이 그 강도를 당하는 사마리아 사람을 관리하는 그것보다도 열 배 몇 배 천 배 만 배나 크고 좋은
것들입니다.
다시 와서 부족한 것을 내가 채워주겠다 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그 일을 돌보는 것이 우리 교회 우리 성도들 복음을 접한 자들의 일인데 부자와 나사로 얘기에서 나사로가 먹지 못하고 배고파하고 허기져 있고 목말라 한 그가
구걸하고 있는데 이 부자는 복음을 맡은 자로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죠.
바로 하나님의 종교인 바로 유대교 율법 아래 있어서 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그 단계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그 어떤 의미에서는 복음을 맡은 자인 그 부자가 자기와 자기 가족만 배부르게 먹고 그 나사로 에게는 나누어
주지 않아서 그래서 나사로가 죽게 되는 것을 누가복음 16장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비유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눅 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눅 16: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채
(눅 16: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
헌데를 핥더라
(눅 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눅 16: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눅 16: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눅 16: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눅 16: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우리는 복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나만 혼자 먹고 나만 마시면 안 됩니다.
그 여관의 주인처럼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그에게 가서 사정을 했습니다.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이 사람을 살리고 혹시 모자란 것이 있으면 내가 와서 다시 더 주마라고 그 약속하신
그 약속의 말씀을 따라 우리는 정말 청지기가 되어서 그목말라고 배고픈 자들에게 양식을 건네주는
제자들처럼 사도바울 선생님처럼 베드로 선생님처럼 요한 선생님처럼 그러한 자들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강도를 만난 예루살렘 높은 곳에서 아래의 삶으로 내려감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어려운 지경에
빠진 사단에 의해서 매맞음을 당하고 사단에 의해서 실족을 당할 뻔했던 그들을 찾아 복음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양식을 주어 먹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것이 다 있죠 양식과 생명수 하나님의 원천과 빛 이 빛이 되어 주셔서
그들을 보게 함으로 말미암아 참여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45장 13절에서 말하고 있는 왕후가 첫 번째 입는 옷이 금실로 수놓아진 옷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외형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왕후라는 표시를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편 45장 9절 보면
오빌의 금을 두르고 왕의 오른편에 서 있습니다.
누가 오른편에 서있죠? 바로 그리스도의 짝된자 아내입니다.
바로 교회인 아내 곧 왕후는 주님께서 그렇게 높이셨죠. 만왕의 왕이신 자신의 아내가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오른편에 서 있게 하였습니다. 두 가지 옷을 입고 있었어요. 오빌의 금으로 짜여진 첫 번째 옷은 우리
구속을 위한 객관적인 의이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다라는 얘기입니다.오빌의 금으로 짜여진 첫 번째 옷 금이 뭐죠? 신성한 본성
이게 계시록에 보면 예루살렘 성이 모두 정금으로 되어 있다고 써 있는데 새 예루살렘 성이 왜 정금으로
다 이렇게 조성되어졌을까요. 신성한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신성한 본성을 드러내고 나타내는 것이
바로 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계 21:18)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래서 금은 뭐예요. 바로 하나님의 집이신 그리스도가 오빌의 금입니다.
신성한 본성을 가지시고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죽으심을 통하여 구속의 문제를 성취해 주셨습니다.
구속의 문제를 성취해 주신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들입니다.
이것이 객관적인 의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금으로 수 놓아진 옷은 뭡니까? 이것은 우리의 승리를 위해서 주관적인 의가 되신 그리스도
이 첫 번째 옷이 9절에 오빌의 금을 두른 이 왕후와 그리고 왕의 딸이 나오는데요 우리에게 오빌의 금을 통해서는 의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의 성취를 이루게 해주시고 그 의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으로 들어가서
영접하게 되면 우리가 의롭게 된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옷인 금실로 수놓아진 옷은 그리스도와 결혼하기 위한 요구 조건을 이루기 위하여 성도들의
의로운 행실임을 나타내는 그 옷을 입고 그리스도께로 인도될 것임을 상징하고 있는 계시록 19장 8절의 말씀이 이 두 번째 옷입니다.
(계: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이 두 가지 옷이 표현된 것이 시편 45장 9절에서 오빌의 금을 두르고 라는 금 얘기가 나오고 13절 말씀에
왕의 딸이 입었던 옷이 금실로 수놓아진 옷인데 이 두 가지 옷은 교회를 상징하고 있는 왕후가 입게 되는
옷으로 마귀에게 빼앗겼던 그 성을 정복하여서 자신의 것으로 취한 이긴자 승리한자로 그리스도의 아내가
될 자들이 입게 되는 옷입니다.
첫 번째 옷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함에 의해서 입혀지는 옷이고
그리고 두 번째는 생명의 영이신 그리스도의 영인 금으로 수놓아진 옷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수가놓아졌다 라는 것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의 영 안에 예수님의 영이 내주 하셔서
우리를 그렇게 수놓아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쪼개고, 자르고, 때리고, 박고, 불 태우고, 씻고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성육신하셔서 육체가 되셔서
죽음과 부활이라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의 영이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것처럼 그 생명 주시는 영이
우리 영 안에 내주하여서 살아 있는 생명을 소유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수를 놓아야 됩니다.
수를 놓게 되면 바늘이 들어가야 하죠 바늘에 찔릴때 마다 고통을 당하게 되죠.
그러나 한번씩 찔러 질때 마다 영광의 하나님 그 신의 요소가 침투되어 함께 어우러 지는 것입니다.
그 신의 속성들을 우리가 소유 받기 위해서는 고통과 고난과 아픔과 외로움과 슬픔과 이런 곤고함을
인내해야 하고 그 찔러질 때 마다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영 안에 있던 우리의 속성들 누더기 옷들이 벗겨지고
제거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정말 물두멍에서 티끌로 만들어진 그러한 것을 완전히 씻음 받고 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깨끗이 씻음 받기 위해서 기름과 더불어 포도주로 수혈 받고 기름을 공급 받음으로
말미암아 바로 우리의 영을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누가요?예수님의 영이요
그분은 여러 가지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생명을 주시는 영 그런데 그 생명을 주시는 영 안에는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생명 그 자체만 가지면 더 불완전하기 때문에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달콤한 사랑이
그 생명 안에 있어서 그 생명이 완전하고도 온전하게 됐던 것입니다.
생명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요. 생애를 통해서 아름다운 미덕의 삶들을 인간 생활을 통해서
보여주셨잖아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얼마나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주님께서 펼쳐 보여주셨습니까.
그 사람을 변화시키고 수를 놓기 위한 짜집기 하기 위한 바늘로 찌르는 그러니까 예수님을 만날 때 아픈
것입니다.
복음을 접하게 되면 생명의 말씀을 접하게 되면 내가 버리지 못한 죄로 말미암아 너무나 아픔니다.
이걸 버리면 내가 죽을 것 같거든요.육체를 통해서 욕망을 주고 정욕을 주고 정말 탐심을 만족시켜주는
그 일들을 주님을 만나면 다 버려야 하니까 그게 싫은 겁니다.
그러니까 내 영과 육이 소원한 것들에 반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심히 분쟁이 생기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주님께 걸쳐져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건 세상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도 아닌 그런 자들로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수 놓아진 옷이 왜 중요하냐면 첫 번째 옷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문제를 성취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그 죽음 사건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만 의롭게 된다는 건
하나님의 영원하고도 신성한 본성인 의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소유 받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옷은 그 바늘을 통하여 꿰어져서 매달려진 함께 하나가 된 그 주님의 것이 바늘이라는
인간 세상 인간사 앞에 드러나는 그러한 환경적인 문제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 직장에서의 문제 부모와의 문제 물질의 문제 이런 육체의 정욕적인 모든 그러한 것들의 문제로 인하여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된 인간에게 주님의 영께서 날카로운 바늘로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혼과 관절과 골수와 이런 것들을 뼈 속에 들어가서 가장 깊은 은밀한 곳에 있는 불순물들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뼈 속이 잘라져야 됩니다.
제거되고, 쪼개지고, 또 파헤쳐지고 끄집어 내어지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 불의한 영이 주님의
의로우신 영의 의해서 변화시키시는 일을 주의 영이께서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 영이라는 존재 안에
그분께서 바늘과 실이 되어 주셔서 바늘을 통해서는 외적인 이 세상 사람들의 환경을 통해서 오는 재난들과
또 사람을 통해서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설정되는 그러한 일들을 통하여 우리 존재를 그렇게 무력하게 했던 그 영을 새롭게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 안으로 수놓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에게 그 고난과 슬픔과 재난과 질병들을 주시고 세상을 통해 얻어진 모든 것을 때리고 완전히
벗겨 버리시고 뼈와 생명과 가죽만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뼈를 상징하고 있는 주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이 그 뼈를 통해서 온전히
전달받아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 놓아진 옷을 입고 우리의 신랑되신 그리스도에게로 왕에게로 이끌림 당하게 되는 것은 이 세상 삶을 사는
과정을 통해서 바로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의 영을 부활의 영이신 예수님의 영께서 이 수놓아 지는 일을
통해서 변화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이 수가 놓아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그 영이 아프고, 따갑고, 베어지고, 잘라지는 그 일들을 통해서 얼마나
얼마나 때림을 받습니까 바로 그런 것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주님의 영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본성이 우리 안에 수 놓아짐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번째 옷은 이러한 수 놓아지는 일을 통해서 욥기:23:10 말씀과 같이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라고 고백한 그런 것들은 우리의 승리를 위해서 주님께서 특별히 개인적으로 나에게
그것을 경험하고 접촉하게 하여 주셔서 바로 그리스도를 내 안에 살아계시게 하여서 모든 믿고
거듭난 자들이 오빌의 금으로 꾸며진 자들 바로 의로운 구속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내가 죽고 그분께서 다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의의 옷을 입게 된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가 된다 라는
이런 것을 오빌의 금으로 상징하고 있는 첫 번째 우리를 감싸고 있는 외형적인 옷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옷은 수 놓아진 겉으로 걸쳐진 옷 안에 또 하나의 옷을 입혀줌으로 말미암아 완전함과
온전함을 동시에 이루게 한 그 옷은 개인적으로 내 영을 변화시키는 그 주의 영에 의해서 내 영이 조성되어지고 변화되어지고 건축되어져서 주님이 우리 안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그 주님이 우리 안에 새겨질 때 얼마나 아픔과 얼마나 큰 고통이 오겠습니까
근데 그 고통과 과정을 거치면 이긴 자가 되고 이긴 자가 반복되면 승리하게 돼서 주님이 온전히 우리 안에
새겨지는데 그 옷이 13절에 그 여인의 옷은 금실로 변하는 것입니다.
금실로 짠옷 이것이 하나님의 성경을 통해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 옷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기 위해서
소유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되어 이 오빌의 금과 금실로 수놓아져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를 의롭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 모든 거듭난 자들에게 제한 없이 모두
단체적으로 이루게 한 객관적인 의이신 그리스도를 이렇게 소유하게 하신다 라는 것이지만
이 수 놓아진 두 번째 이 옷은 왕에게로 갈수 있는 옷입니다.
그래서 청함은 받았으나 택함 받지 못하여서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은 여러분 구원함을 받긴 하지만
그가 왕에게로 이끌림 당하는 그 왕의 진정한 왕후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의 영 안에 그러한 과정들을 거쳐서 조성되어지고 완결되어 주신 예수님의 영 다른 보헤사 그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영을 변화시킴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만왕의 왕이 되신 예수님이 온전히 드러나야 됩니다.
그것이 수 놓아진 옷이며 이 수 놓아진 옷 안에는 얼마나 기가 막힌 모든 것을 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수놓아진 옷은 그리스도가 수 놓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마 22:14)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라고 주님께서 말씀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초청장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그 옷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간수하여 잃어버리지 않고 간수한
그 옷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수 놓아져야 됩니다.
변화가 돼야 되고 조성이 돼야 되고 건축이 되어져야 된다는 얘기죠.
여러분 들이 하나님의 집으로 건축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성 바깥에서 망치에 의해서 깨트려지고
부서지고 다듬어 져야 된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다음에 그대로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 가져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는 망치 소리가 들리질 않아요. 그대로 인도받고 그대로 운반되어서 하나하나 세워지고
조성 되고 건축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깥에서 정에 의해서 쪼개지고 망치에 의해 때려짐 당하고 운반하는 과정을 통해서
볶아지고 빻아지고 섞어지고 씻어지고 불태워지고 하는 이런 영의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우리 영이 변화가 되기 위해서는 생명주시는 영이신 달콤한 사랑이 내재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수놓아짐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으로 드러내어질때 이긴 자가 되고 지속적으로 이기고
또 이겨서 예수님께서 승리하셔서 그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정복함으로
말미암아 왕의 보좌에 앉혀서 금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고 시편45편6절에 나오고 있죠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주의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라
이기고 이기고 또 이겨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승리한 결과물로 가져온 그 왕의 왕 만유의 주가 되신
그분의 왕후 아내 중에서도 특별한 왕후가 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수놓아 짐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짐으로 누구에 의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조성되어지고 완결되어 주고 부어 주시는 영이 되신 생명과
달콤한 사랑의 하나님의 영이신 그분에 의해서 수 놓아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왕께로 이끌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시면 수놓아지는 일들을 통해서 경험되어지는 모든 그런 아픔들 괴로움들
바늘에 수없이 찔려져야 하는 고통들 이 아름다운 수가 형형색색으로 정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하고도
완전하고도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그렇게 드러나는 옷을 입기 위해서는 그 달콤한 사랑과 함께 내재되어 있는
생명의 영 부활의 영이신 주의 영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키실 때 그러한 과정의 아픔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길이 그러한 고난과 아픔의 길이었고요 욥이 내가 귀로만 하나님을 들었사오나
이제 내가 눈으로 하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한 것처럼 그런 과정이 벗겨지고 깨어지고
쪼개지고 정말 모든 것을 다 제거해 내는 그런 체험과 경험을 했기 때문에 결국 종국에 가서는 주님을
친히 뵈올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그분에게 이끌림 당하기 위해서는 우리 영을 변화시키고 조성시키고
건축시켜주시는 그 영을 따르는 삶이 있어야 조성되어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다른 그 어떤 것도 조성시킬수가 없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시니
이것 때문에 성경이 기록된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것 때문에 아담을 만드시고 노아를 통해 구원의 방주를 보여주시고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아브라함의 후손의 씨를 통해서 다윗의 가문을 통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나시는
그 성육신 하신 그 과정을 통해서 33년 반 동안의 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야만
이 변화시키는 영이 되실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영 외에는 누구도 완전하게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변화를 받을 자가 없기
때문에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수 놓아진 옷을 입게 함으로 말미암아 먼저는 구속의 성취를 위해서
우리에게 의롭게 한 오빌의 금을 두르게 하고 그리고 수놓아진 옷을 통해서 바로 영이 변화되는 그 생명주시는
영에 의해서 때림을 받고 정말 쪼개짐을 받고 정말 섞어짐을 당하는 이러한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영을 통하여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온전히 수놓아지는 과정을 통해서 이기고 이기고 또 이기게 되면
바로 승리한 자로서의 주관적인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시다 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들이 왕후가 되는 것이고 오늘날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들입니다.
이 오빌의 금을 두르고 왕후가 된 자는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수 있게 합니다.
누가 복음 15장 22절 말씀이에요. 여러분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의 노예들에게 가서 그 제일 좋은 겉옷을 내어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여기에서 제일 좋은 겉옷으로 상징된 이 옷은 외적이고도 객관적인 옷인 반면에
예수님의 생명의 영에 의해서 변화시켜진 일을 통하여 우리 안에 아름답게 수 놓아짐으로 말미암아
그 왕의 잔칫상에 배설된 그 살찐 송아지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살찐 송아지는 내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인 방면 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성취를 통해서
죄의 문제 불의의 문제가 해결돼서 의로운 자가 돼서 의의 옷을 입게 된 것은 객관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은 면에서 외형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완전히 우리의 겉옷입니다.
바로 제일 좋은 겉옷은 특별히 이 집을 나가서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않다가 아버지가 생각나서 돌아온
이 탕자는 아버지의 요구 조건들을 충족 시켜서 아버지를 기쁘고 만족시키게 할 수 있는 것이 제일 좋은
겉옷을 입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제일 좋은 겉옷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즐거워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첫 번째 옷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옷과 함께 초청장을 받고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난 사마리아 사람을 연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가 이 옷을 입고 예루살렘이 아닌 반대로 내려가는 삶인 여리고성으로 갈 때는 그 옷마저도 빼앗기게 됩니다.
바로 그 옷은 가는 과정의 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아버지를 대면하는 데 없어서는 아니 될 첫 번째 가장 귀하고 중요한 옷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옷인 수놓아진 옷은 바로 왕 앞에서서 잔치를 배설 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구별된 자입니다.
여러분 여기 성경에서 보면 청함을 받은 자도 있고 택함을 받은 자도 있는데
이 청함을 받은자 안에서 왕의 앞으로 이끌려 가서 식탁에서 살찐 송아지를 함께 누리는 탕자
이야기에서 마치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식탁에서 안식과 진정한 평안과 생명 가운데 살게 되는
것처럼 바로 우리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영 안에 우리의 존재 안에 그리스도가 온전히 새겨지고 수 놓아지는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만왕의 왕이 되신 진정한 우리의 남편 되시는 그리스도 왕 앞에 서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결혼 잔치에 초대받을 이기는 성도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계시록 19장 9절 말씀인 것입니다.
(계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 19:10)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초대받은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의 22장 2절에 보면 천국 혼인 잔치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요
(마 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22: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마 22: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바로 결혼 잔치의 모든 이들이 세상 사람은 아니고 구원받은 자들 모두가 결혼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들만이 결혼 잔치에 초대받을 것이라고 이 성경은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25장 8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마 25: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마 25: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마 25: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마 25: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마 25: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마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어리석은 다섯 처녀 와 지혜로운 다섯 처녀 둘 다 신랑 되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일에 동원이 되었지만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정작 결혼 잔치에는 들어가지를 못했어요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아니라 이겨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들만이 천년 왕국의 누림안으로 인도받고 결혼 잔치에 초대받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긴 자들은 천년 왕국에서의 삶이 보장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이렇게 첫 번째 옷인 오빌의 금을
둘러서 아내 된 자들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 안에 도래할 새 예루살렘에 거한다는 것이 천년 왕국이
그런 면에서 훨씬 더 우월하고 존귀하며 정말 하나님 앞에 더욱더 복된 것이라는 것이죠.
마태복음 22장 2절을 이렇게 보면은요 (마 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라고 하시면서 초대받은 사람들이 이렇게 쭉 나오는데요.
여기 14절에 보면 (마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라고 초청장을 받은
사람이 많은데 그 사마리아 강도를 만난 사람처럼 청함은 받았는데 신랑 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
그분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 집중하면서 관심가지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중간에 가다가 사단의
기만과 실족에 의해서 삐딱선을 타고 내려가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옷을 뺏긴 자들을 청함 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은 부름받은 사람들은 많은데 라고 초청을 받을때 옷도 겸해서 받았습니다.
그 옷을 입고 그쪽으로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수 놓아진 옷을 입고 왕에게 이끌림
당해야 되는데 가다가 이런 실족 당하게 되는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선한 사마리아인 되시는 주님께서 다시
이렇게 잡아주셔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원하던 길로 가게 하시는 주님의 긍휼과 은혜와 자비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주님께서 천국의 누림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주관적인 의를
그에게 주었는데 그것을 수놓지 못 함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그리스도를 살아내지 않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어리석은 다섯처녀 처럼 잃어버리고 말아요.
마지막으로 빌립보서 3장 9절 말씀을 다같이 읽고 오늘 교제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빌 3: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