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장 始作되는 追踪
월화루를 떠나온 담사는 느릿하게 시진으로 들어섰다.
한 번도 뒤도 돌아봄 없이 천천히 주위를 구경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항주의 풍물을 구경하는 유람객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와 십 여 장쯤 떨어진 곳에서
허름한 장삼을 입은 장한이 가끔 그의 뒷모습을 살피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담사의 신형이 한 건물 안으로 사라지자
멀찌감치 뒤를 따르고 있던 장한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장한은 건물 앞에 도착하자 잠시 머뭇거렸다.
건물의 처마 밑에는 장전원(場錢院)이란 간판이 붙었는데,
이곳은 항주성에서 유명한 도박장의 하나였다.
담사는 도박장에 들어서자 주위를 힐끗 둘러본 후
한쪽에 문이 있는 곳으로 태연히 열고 들어갔다.
도박장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가 도박에 정신이 팔려 그가 들어온 것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문안으로 들어서자 그 안은 변소였다.
담사는 네 개의 문 중 제일 안쪽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담사를 뒤따르던 장한은 도박장을 둘러보면서 연신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 동안 살펴보았지만 그가 찾는 인물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초조해진 그는 허둥지둥 도박장을 샅샅이 살폈다.
도박장은 거의 이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곳이었다.
거기다가 이층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층도 대충 살펴본 장한은 마른침을 삼키며 급히 다시 내려왔다.
그때 구석에 자리한 변소의 문이 열리고 백발에 등이 구부러진 칠순 가량의 추괴한 노인이 뒤뚱거리며 나왔다.
한 순간 장한의 시선이 그 노인에게도 향했지만
이내 그냥 무심히 스쳐지나갔다.
추괴한 노인은 연신 투덜거리며 도박장 밖으로 나갔다.
[제길..오늘도 돈만 잃다니...에이그...돌아가면 마누라에게 무어라고 변명 하지...]
아마도 제법 돈을 잃은 모양이다.
헌데 그 노인은 도박장 밖으로 나오자마자
마침 서둘러 안으로 들어오려던 한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남빛 문사의를 입은 이 사나이는
바로 귀견수 조중의 세 심복 중 한명인 사공표였다.
월화의 내실로 들어서던 월화루의 집사와
월화의 호위무사겸 살수이기도 한 전삼(田三)은 멍청해졌다.
어지럽게 널려진 방 안에는 목이 부러진 월화의 시신이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던 것이다.
자객으로서 숱한 죽음을 목격해온 전삼은 그래도 어느 정도 침착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인 집사의 놀라움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살인이다 살인...!}
집사는 황망히 뛰쳐나가며 비명을 질렀다.
{살인이다! 주인마님이 괴한에게 죽었다..}
집사의 비명은 이제 막 흥청거리기 시작하던 월화루를 벌컥 뒤집어 놓았다.
월화루에서 멀지 않은 찻집에서 월화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던 사공표는 깜짝 놀랐다.
월화가 죽다니...
사공표는 놀라움과 동시에 머리끝까지 노화가 치솟아 올랐다.
[차단하라!]
그의 손이 들림과 동시에,
사공표의 신형은 무섭게 월화로로 돌진했다.
그러자, 갑자기 사방 곳곳에서 흑색(黑色) 경장에
역시 검은 색의 두건(頭巾)을 맨 험상궂은 장한들이 튀어나오며 월화루 일대를 완전히 차단했다
. 이들의 행동은 자로 잰 듯이 절도 있고 재빨랐다.
길가던 행인들이나 월화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살벌한기세에 놀라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흑색 경장을 걸친 이 인물들의 가슴에
금빛 수실로 새겨진 살(殺)이라는 글자를 본 순간 모두 겁에 질려 슬그머니 물러서고 말았다.
흑건추혼대(黑巾追魂隊)!
무림맹 감찰전 소속인 악명 높은 대외척살단(對外刺殺團)!
중원의 하늘 아래에서 강호의 밥을 먹는 사람이라면
그 누가 이들을 모르랴?
하다못해 삼척동자라도 흑건추혼대의 용맹성과 무서움을 알고 있다.
그들은 마도인(魔道人)에게는 공포의 사신이요
백도(白道)에서는 경원의 대상이었다.
흑건추혼대는 모두 일백 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나하나가 고절한 무예와 무림맹의 노선에 절대 복종하는 골수분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체의 인간적인 감정은 배제되도록 지옥의 수련을 거친 그들
흑건추혼대의 솜씨는 능히 단독으로 일파의 지존을 척살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흑건추혼대의 진정한 무서움은 그들의 합격술(合擊術)에 있다.
똑같은 수련과정을 거친 탓에 그들은 심령상 서로 통하고 있으며
그 덕분에 둘이 모이면 넷의 힘을 발휘하고
넷이 모이면 여덟의 위력을 구사한다.
당금무림의 어떤 고수라고 해도 네 사람의 흑건추혼대를
단신으로 상대해서는 살아날 수가 없다고 알려질 정도였다.
좀처럼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 무서운 무림맹의 척살조가 한꺼번에 이십 인이나 나타났으니
항주성 전체가 들썩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차앙!
월화의 경호담당인 전삼은 미친 듯이 내실로 달려오는
사공표를발견하고 검을 뽑았다.
사공표의 무서운 기세에 자신도 모르게 보인 무의식의 반응이었다.
[비켜라!]
사공표는 전삼의 검이 쏘아오자
노호성을 지르며 바른손을 앞으로 뻗은 동시에 반월을 그렸다.
터어엉!
검과 손이 부딪치자 검은 무서운 기운에 퉁기고
한 가닥 암경(暗勁)이 전삼의 가슴을 때렸다.
전삼은 갑자기 심장이 턱 막히는 둔통을 느끼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래도 그 방면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은 전삼이건만 사공표의 단 일격에
불귀고혼이 되어버린 것이다.
철비단수(鐵臂丹手)-!
사공표의 독문절기(獨門絶技)인 철비단수의 무서운 위력이었다.
도문(道門)의 비전수법인 철비단수는 도검을 부수고 강기도 바스러뜨린다.
월화의 시신을 살피는 사공표의 입에서
땅이 꺼질 듯한 탄식이 새어나왔다.
{휴! 이럴 수가!}
누구보다도 월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월화와 마지막으로 만난 자를 쫓아간 자는 누군가?}
어느 새 다가들어 온 장한을 보고 사공표는 외쳤다.
{포진(浦陣)입니다.
그는 표적을 다라 도박장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장한은 빠른 어조로 대답했다.
{나도 그쪽으로 가겠다. 이곳을 지켜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공표는 비학충천(飛鶴沖天)의 신법으로
화살처럼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같은 일련의 상황이 있은 후
사공표는 이곳 도박장까지 찾아온 것이다.
얼굴에 가득 초조한 빛을 띠운 사공표는
비틀거리며 도박장에서 걸어 나오는 이 추괴한 노인은 쳐다보지도 않고
황황히 도박장 안으로 사라졌다.
노인은 연신 무어라 궁시렁거리며 거리의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사공표는 도박장 안에서 허둥거리고 있는 포진을 발견하자
버럭 외쳤다.
{포진_!}
담사의 뒤를 쫓아 도박장까지 들어온 포진이란 장한은
해연히놀라며 급히 대답했다.
{예! 사공당주(史公堂主)님!}
{그 자는 어디에 있나?}
이를 갈며 묻는 사공표의 살벌한 기세에
포진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주춤거렸다.
{죄.. 죄송합니다. 당주님.}
포진의 표정을 살핀 사공표는 이미 일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얼간이 같은 놈! 그 자를 놓치다니..}
분을 참기 어려운 듯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생각 같아서는 앞에 있는 장한을 일장에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그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포진, 어떻게 된 일인지 전후 사정을 말해 봐라!}
포진은 붉어진 얼굴로 자신이 당한 일을 설명했다.
곧이어 포진과 사공표는 도박장을 모조리 수색했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행적은 도박장에서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이다.
사공표는 참담한 표정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조중의 표정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이 일로 인해 그 동안 쌓아 올린 자신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할 것이다.
백주대낮에 그들이 주야로 감시하던 월화를 죽이고
범인은 유유히 사라졌으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사공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범인은 자신의 손으로 꼭 잡겠다는 맹세를 거듭 반복했다.
언제나처럼 사람좋아 보이는 인상의 귀견수(鬼見手) 조중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무림맹 절강지부의 지하밀실은 숨막히는 정적에 싸여 있었다.
조중의 맞은 편에 앉은 사공표와 자운유는 초췌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흡사 죄지은 사람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월화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조중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벌써 한 시진이 지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공표의 이마에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지만, 그는 미처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
그대로 꼼짝없이 앉아 있었다.
자운유가 더 이상 침묵을 견딜 수 없는지 고개를 들었다.
{부전주님!}
그는 나지막이 조중을 불렀다.
자신의 말에 조중의 눈까풀이 올라가자 자운유는 침을 삼켰다.
{월화의 죽음으로 일이 어렵게 되었지만
아직 만회할 기회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중은 아무런 말도 없이 듣고만 있었다.
{장차수가 지금 비마영(飛魔影)을 추적하고 있으며
월화의 수하들을 모조리 잡았으니
곧 조그만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운유, 자네가 그들에게서 무언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조중은 마치 어릿광대라도 보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 자들은 쓰레기지.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썩어빠진 월화의 몸뚱아리에 눈이 멀어
그년의 발바닥이나 핥던 쓰레기들이란 말이야.}
조중은 조롱하듯이 말했다.
{진짜는 모조리 빠져나가고
자네들은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만 주워 온 것이지.}
말을 하면 할수록 노기가 치밀어 오르는지
그의 목소리는 격앙되었다.
{그 동안 조사한 정보로는 이일에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 있어.
첫째 철혈무정(鐵血無情) 석무심이라는 자가
두 달 전부터 은밀히항주성 내에서 머물고 있었고,
둘째 월화에게 천갈(天蝎)이라 불리우는
의문의 사나이가 가끔 그녀를 찾아왔다는 사실이야.}
자운유와 사공표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꿈에도 생각지 못한 사실이었다.
{월화가 죽은 이상 나는 여기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
. 나는 총단으로 돌아간다.
자네들이 이 두 가지 정보에 관해서 철저히 밝혀내도록!}
고개를 떨구고 있는 두 심복을 훑어보는 조중의 눈매가
싸늘하게 빛났다.
{잊지 마라. 한 번 실수는 있을 수 있지만 두 번째는 없다는 것을...!}
사공표와 자운유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물러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조중은 두 눈을 가늘게 하고 입술을 다물었다.
그것은 그가 심사숙고할 때 나타나는 자세였다.
조중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밀실의 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여인처럼 가냘프게 생긴 미소년(美少年)이 들어왔다.
그 미소년을 본 조중은 절로 쓴 웃음을 지었다.
{어서 오시게 황보 소저!}
미소년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
{어때요. 그들보다 내가 훨씬 낫지 않아요?}
어리광을 부리는 듯이 말하는 미소년의 말에 조중은 빙그레 웃었다.
{허허! 그래, 황보소저는 어떻게 해서 철혈무정과 천갈이라는 이름을 들을 수 있었지.}
{별 것 아니예요. 그것은...}
미소년은 양 뺨에 귀여운 보조개를 지으며 웃었다.
{개방의 항주분타 황룡개를 닦달했어요. 처음에는 모른 척 하더니 내가 물고늘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말을 했어요.}
순간 조중은 자신도 모르게 대소를 터뜨렸다.
{핫핫핫...}
[흥! 왜 웃어요, 기분 나쁘게...?}
뾰족한 미소년의 교성에 조중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아... 그냥 우수운 일이 생각나서 그만....}
미소년이 매서운 눈초리로 쳐다보자
조중은 말을 멈추고 급히 일어섰다.
{어쨌든 급히 가 볼 때가 있으니까 우선 나가지!}
조중은 다른 말이 나오기가 무섭다는 듯이 총총히 밀실을 빠져나갔다.
미소년은 콧잔등을 찡그리며 급히 그 뒤를 따랐다.
조중은 통로를 따라 걸으며 내심 쓴 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뒤를 따로오는 미소년은 다름 아닌 전날 공동파의 장문인 진산도인을 쫓아 보낸 장본인이었다.
이름은 황보가혜(皇甫佳慧),
우내삼기의 둘째인 태허천존(太虛天尊) 황보승(皇甫承)의
무남독녀로 그녀는 일찌기 부모의 슬하를 떠나 봉심도(鳳心島)에서 무술을 배우다가 두 달 전에 무림맹으로 돌아왔다.
조중은 그녀에 관하여 자세히 아는 바는 없었으나
그가 전날 본맹에 들렀을 때 감찰전주의 부탁과 그녀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온 것이다.
협박이란 다름이 아니고 그가 감찰전주와 상의 도중
그녀에게항주성 사건을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가 만일 자신을 데려가지 않았다면
그 자신을 자신의 부친에게 알리겠다는 공갈에
어쩔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감찰전주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바람에
함께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그녀는 철혈무정과 천갈에 대한
귀중한정보를 가져왔던 것이다.
허나 월화가 죽고 어느 정도 사건이 밝혀진 이상
이 일을 더 이상 감출 수는 없었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삼태상에게 모든 것을 보고하고
자객들을 찾아 내야만 한다.
태산(泰山)-!
중원의 오악(五嶽) 중의 하나로써 동악(東嶽)으로 불리는 태산은
산세의 웅장함과 수려함이 가히 천하 일절이었다.
태산 비류봉(飛流峯) 기슭에 위치한 상가현(床家縣), 백여 호 가량의 조그만 마을은 반 이상이 주루나 객점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원래 상가현은 삼십 년 전만 해도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것이 멀지 않은 곳에
무림맹의 총단(總壇)이 세워짐으로 해서 단숨에 대처의 시진 못지않은 번화한 마을로 번성하게 된 것이다.
상가현의 서쪽,
태산을 등에 지고 거의 삼십 여리에 걸쳐 세워진 거대한 장원이하나 있었다.
곳곳에 즐비한 고루거각과 건물로 보아 장원이라기보다 일국의도성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무림맹(武林盟)!>
이 거대한 장원이 바로 당금 무림에서
최대최강의 세력으로 성세(盛勢)를 드날리고 있는
강호의 패자(覇者) 무림맹의 총본산(總本 山)이었다.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푸근한 날씨건만 무림맹의 총단은
태산의 산중에 자리한 탓에 아침저녁으로 아직은 쌀쌀한 찬바람이 불어왔다.
조중은 총단에 도착하자 곧장 감찰전으로 뛰어 들어갔다.
-감찰전주(監察殿主) 막대승(莫大昇),
강호에서는 진천쾌수(震天快手)라고도 불리우는
무림맹의 실력자중의 실력자다.
마침 차를 마시고 있던 막대승은 깜짝 놀랐다.
{어서 오게 부전주!}
{전주님!}
막대승은 조중의 목소리가 조용했으나
말투는 무섭게 굳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중의 표정을 살펴본 막대승은
그가 지금 필사적으로 치미는 화를 억제하느라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우선 앉게.}
[고맙습니다!]
조중은 무너지듯 맞은편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감찰전을 맡고 있는 이 두 사람 사이에 불화(不和)가
생긴지는 오래였다.
조중은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고 문보다 무를 추구하는 전형적인무인이었다.
그러나 막대승은 지모(智謀)로써 오늘 날의 지위까지 올라온
철저한 문사형의 인물이었다.
강호의 싸움에 있어서 경험이 풍부한 막대승은
일을 하는데 보다 냉정하고 억제할 수 있는 신중한 성격이었다.
그는 자신의 수하들에게 새삼 모든 일을 판단한 뒤에
행동을 하도록 요구했다.
반대로 조중은 경험과 직관을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말보다도 행동으로 어느 정도 사실에 입각하여 결정이 나면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성격은 물론 일에 접근해 가는 방법, 또 일을파악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대립하는 방법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그 일을 위기에 빠뜨리지 않도록
개인적인 대립을 늘 피하려고 오랫동안 함께 일해 왔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흥분하고 있나?}
막대승은 달래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조중은 지그시 막대승을 응시하며 말했다.
{보고서를 보셨을 테니 이미 사건의 전말은 모두 알고 계실 테지요?}
이제 육순을 바라보는 막대승은 밋밋한 미소를 띄웠다.
{잘 알고 있네.}
조중의 관자놀이가 떨렸다.
{말씀은 그것뿐입니까?}
{무슨 말을 듣기를 원하나, 조중!}
조중은 팔걸이를 지그시 움켜잡았다.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는 불덩어리 같은 울화를 참기는 어려웠다.
{제 말의 뜻을 모르시는 것 같군요?}
신음하듯이 그는 말했다.
{전주께서는 언제나 정확한 사실과 실증을 요구합니다.
좋습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로는 우려가 명확한 사실로 드러났단 말입니다.}
조중은 속이 타는지 입술을 축이며 계속 말했다.
{철혈무정이 나타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두 명이 피살됐습니다.
모충도, 월화도 이제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싶나 하는 말씀을 하시렵니까?}
그는 양쪽 손으로 탁자를 짚으며 분노의 눈을 번쩍였다.
{저는 분명히 전날 몇 가지 요구를 했습니다.
헌데 나의 요구는 하나도 이행치 않았습니다.
개방의 도움도, 오십 명을 보내달라고 한 흑건추혼대도
고작 이십 인밖에 보내주지 않았단 말입니다.}
[진정하고 내말도 들어보게!]
막대승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상황을다시 생각해 보았다.
조중은 지금까지 일의 심각성을 주장하며 몇 가지 요구를 했다.
그러나 막대승은 일의 중요함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무림맹의 창립되고 난 이후 수많은 도전을 받아왔고
그 중 수십번의 암살도 시도되었지만 아직 한 번도 극단상황에 도달했던 적은 없다.
무림맹의 힘과 방비는 동장철벽(銅藏鐵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 일은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다.
이제 조중이 무엇을 포착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좋네, 나의 실수를 인정하지.}
조중의 눈빛이 약간 풀어졌다.
{전주님, 이제 결론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자객은 최소한 삼명입니다. 더 있을지도 모르고..}
조중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는 행동으로 옮길 때입니다.
현재 자객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 개방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자네도 알다시피 개방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삼태상의 재가를 얻어야 하네. 그리고 현재 맹내는 소맹주의 혼사문제로
온통 신경이 그쪽에 쏠려 있단 말일세.}
막대승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내가 이 일을 삼태상에게 설명을 해도
얼마나 먹혀 들어갈지 의문이야.}
조중은 이 말에 고소를 지었다.
삼태상(三太相)-!
즉 무림맹을 세운 우내삼기(宇內三奇)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미 무인으로써 더 이상이 없을 경지에 이른 그들 세 기인에게있어서 자객이란 그저 하오문(下五門)의 삼류무사로 보일 뿐이다.
전에도 수차례 암습의 시도는 있었지만
누구도 그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시신으로 변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자객 따위의 말을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신들을 격하시키는 일이 될 뿐이다.
{어쨌든 간에 그 분들에게 이 일은 말을 해야 되겠지.}
막대승은 힘없이 말했다.
조중은 초조한 기색으로 재빨리 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개방의 도움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실정입니다.}
{알겠네. 허나 너무 기대는 갖지 말게.}
막대승은 갑자기 전신에 피로가 엄습해 왔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 나중에 다시 보세.}
{알겠습니다. 그럼...}
조중은 가볍게 머리를 숙인 다음 말없이 돌아서 나갔다.
장차수는 악양(岳陽)에 도착했다.
그는 오랫동안 무림맹 감찰전 소속으로 일해 오면서
무림맹에 반기를 드는 수많은 적들을 추적해왔다.
그 동안 몇 번의 공적도 있었지만 눈에 띠게 드러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 언젠가는 감찰전주의 지위에올라 자신의 힘을 떨쳐보고 싶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거기다가, 감찰전의 일은 자신의 성격에 꼭 맞는 것이었다.
혼자서 일을 하는 첩자를 둘러싼 특수한 분위기,
한 마리 이리같이 어둠 속을 헤치며 적을 쫓고 척살하는 일은
언제나 그의 피를 뜨겁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가까스로 이러한 일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전에도 이러한 일이 많았지만 자신이 생각할 때 이런 일은 전날의 일과는 질적으로 틀렸다.
그리고, 이번의 일에는 그가 애타게 바라는 요소가 모두 들어 있었다.
악양성에 도착해서 그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이 순간부터 만일 도움이 필요해서 누구에게 연락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취하는가 하는 것은 그가 결정해야 한다.
이번 임무에는 무서울 정도로 대담성이 필요했으며
또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 일을 위하여 그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자객을 뒤쫓는다는 것은 생명을 바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 자객이 비마영(飛魔影)일 때는 더욱 그랬다.
정면으로 승부를 한다면 승산이 그에게 있지만 상대는 암습을위주로 하는 전문적인 자객이다.
막대승은 담담한 표정으로 조중을 응시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조중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막대승이 삼태상을 만나러 간 후 조중은 벌써 두 시진 동안
꼼짝도 않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개방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게 되었네. 하지만 흑건추혼대는 이십 인 이상 쓸 수 없네.}
조중의 얼굴에 핏기가 없어졌다.
{전주님, 상대는 보통 자객이 아닙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란 말입니다.}
따지듯이 말하자 막대승의 표정이 음울해졌다.
{그것뿐만 아니네. 이 일은 감찰전 단독으로 처리하라는 말씀이계셨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조중은 한동안 막연히 막대승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 일은 감찰전의 인원만으로는 해결하기에 인력이 너무나 적었다.
자객이란 일정한 거처나 내력은 거의 장막에 싸여 있다.
한 마디로 바람 같은 인물이다.
그것은 한 명도 아니고 최소한 삼 인은 되는데
오백 명도 되지 않는 감찰전의 인력으로는 온 중원천지를 뒤지기에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허나 막대승의 표정을 살펴본 순간, 조중은 더 이상 말은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막대승에 관하여 잘 알고 있 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조중으로서는 그 말 한 마디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미 일이 결정된 이상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서로에게 피곤한 일이 될 것이다.
조중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자네는 황보소저를 잘 구슬리 볼 수 있을 것이네.}
순간 문 앞에 선 조중의 눈빛이 환해졌다.
태허천존의 무남독녀 황보가혜-!
그녀라면 무언가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항주성에서 보여준 그녀의 실력은 예사롭지 않은 데다,
그녀는 삼테상 중 한명인 태허천존 정대선생의 무남독녀가 아닌가?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녀에게 위험이 닥친다면 조중으로서는생명을 바쳐도 모자라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감찰전주가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 이런 말을 할 리는만무한 것, 조중은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