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혈성
ㅡ : 밤새워 술 마실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우리는 적이었다.
결전이 끝나고 벌써 두 시진 이상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연회장 사람들이 모인 지 대략 이각의 시간이 흐르면
서 어느덧 태양이 조금씩 기울어 가고 있었다.
비록 아운의 도착이 조금 늦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가지고 투
덜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아운의 부상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아운이 어디서 운기요상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
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오늘의 사실상 주인공인 아운을 기다리
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덜컥.
연회장의 거대한 문이 열리면서 아운과 북궁연이 나란히 안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두 사람의 복장은 모두 산뜻한 경장 차림이었다.
그렇지만 그 경장 차림이 북궁연의 미모를 폄하시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아름다움이 북궁연에게는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있는 아운은 현기가 넘치는 눈매 하나
만으로 충분히 그녀의 짝으로서 품위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을 정
도였다. 그의 눈은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비록 조금 왜소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학사 같은 모습에서 현
기가 우려나와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넘쳐나고 있었
던 것이다. 비록 결전의 상처로 인해 안색이 창백하고 걷는데 조금
지장이 있어 보이지만 조금씩 움직이는 데엔 무리가 없어 보였다.
비록 부상 중이지만 아운의 눈은 맑고 깊었다.
그리고 그들 두 연인의 뒤에는 역시 한 쌍의 남녀가 호위 차림으
로 쫓아 들어왔는데, 그들은 우칠과 호난화였다.
두 사람은 호위이면서도 무척 다정해 보였다.
우칠과 네 개의 나무 바퀴가 달려 있었고, 위는 비단으로 몇 겹
이나 덮여 있었다.
연회장을 지키던 무사가 그 수레의 천을 들추려 하자, 아운이 조
진양을 보고 말했다.
"맹주님, 이 안에 든 것은 저와 제 처가 될 총사가 마련한 매화산
주입니다. 오늘을 기해서 여러 기인들도 있고 하여 정식으로 우리
두 사람의 결혼 소식도 알릴 겸 마련한 술이니 가지고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매화산주는 북궁세가의 전통술 중에 하나로 강호에서도 유명한
미주 중 하나였다. 매화산주란 말만 듣고도 벌써 침을 삼키는 애주
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애틋한 시선을 하고 조진양을 바라본다.
만약 수레를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그 시선에 맞아 죽을 판이었
다. 조진양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한 지붕 아래 있으면서도 우린 처음으로 보게 되는군. 걱정 말
고 어서 가지고 들어오시게"
북궁연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먼저 여기 초번을 서는 두 분의 무사에게 인사로
한 병을 줄까 합니다"
북궁연은 수레 안에서 매화산주 한 병을 꺼내 무사들에게 선물
로 주었다.무사들은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그 술을 받는다. 초번
순서가 끝나고 나면 당장 그 술을 마시러 달려갈 기세였다.
이윽고 아운과 북궁연이 수레를 자신들이 있는 뒤쪽에 세우고
자신들의 위치로 돌어오자, 연회장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인사를 한다.
맹주부로 들어가는 입구가 갑자기 폐쇄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낌새를 눈치 채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없었다.
무림맹에서도 완전히 독립된 또 하나의 성과 같은 맹주부는 담
높이만 오 장에 달할 만큼 견고하고 높았다. 그리고 맹주부로 들어
가는 정문의 높이는 물경 칠 장에 달했다.
그 맹주부의 문이 닫혔다.
명분은 간단했다.
권왕을 비롯하여 무림의 명숙들이 모여 연회를 하고 형궁에 대
한 대책을 논의하는 데 방해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충분히 이유가 되는 말이기에 의심을 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없었다.
맹주부 내에서는 두 군데로 나누어 연회가 베풀어지고 있었는
데, 최소 구파일방의 장로 급 이상의 고수들이 모여서 연회를 베푸
는 곳과 그 외 무림의 젊은 고수들과 나름 명성을 가진 고수들이 초
청을 받아 모여서 연회를 하는 곳이었다.
특히 두 번째 연회장의 경우 거의 천여 명에 이르는 고수들이 운
집해 있었다. 이들은 비록 제일 연회장의 노강호들보다는 지위가
낮지만 무림에서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젊은 고수들이 많았으며, 무
시할 수 없는 무공을 지닌 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들 틈에는 금룡단원들이 끼어 있었고, 그들의 인기는그
곳 천여 명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수 많은 무인들이 그들에게 몰려와 인사를 하고 여러 가지 질문
을 하곤 하였다.
금룡단원들 중 상당수는 난생 처음 수많은 무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보니 그들은 무척 쑥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다.
어느새 그들은 젊은 무사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흑칠랑과 야한 그리고 한상아와 두 명의 라마승이 빠르게 움직
이고 있었다. 흑칠랑과 야한 그리고 두 명의 라마승은 한상아가 인
도하는 대로 쫓아가는 중이었다.
두 명의 라마승은 소달극과 아라한 라마였다.
한상아가 하나의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이에요. 저곳으로 금룡단원들의 식솔들이 안내되어 들어가
는 것을 제가 확인하였습니다"
소달극이 한상아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젠 우리들에게 맡기십시오"
소달극의 말에 한상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이왕 시작한 것.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이레 보여도 제가 중
원 무림의 삼대살수 중 한 명입니다"
한상아의 말에 소달극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야한은 사방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햐! 우리 권왕님은 정말 머리도 좋으셔. 어떻게 맹주부의 인물
들이 금룡단의 식솔들을 이런 으슥한 곳으로 끌어들일 거라고 미리
예측을 했을까?"
흑칠랑이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그쯤이야 뭐, 별거 아니지. 어차피 금룡단과 싸울 거면 그들의
식속들을 납치해서 협박할 거란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야한이 흑칠랑을 뻔히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왜 너는 몰랐을까? 그러고 보니 선배님도 모르고.......컥!"
야한이 코를 잡고 입을 다문다.
흑칠랑의 주먹이 그의 코를 때린 것이다.
"난 다 알았었다"
"알긴 뭐를....."
야한이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흑치랑의 도끼눈이 무서웠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끝내 한마디
를 하고 말았다.
"내가 호연란 그 계집애인가? 하필이면 코를........"
"한 대 더 맞을래?"
"아뇨"
야한이 기겁을 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나서 야한은 흑칠랑에게 툭하면 두들겨
맞고 있었다.
호연세가의 비밀지단.
천마혈성들이 여기저기서 폭발하고 있을 때였다.
"쏴라!"
설비향의 고함 소리와 함께 일제히 화살이 날아와 천마혈성들을
가격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곽사는 웃었다.
천마혈성이 화살에 쓰러질 정도라면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만
들었을 리가 없었다.
지금 데리고 온 천마혈성이 비록 생생하게 살아 있는 최종완성
형의 천마혈성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고수가 도검으로 공격해도 끄
떡없는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 무사들이 쏘는 화살이야.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화살에 맞은 천마혈성들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천천히 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곽사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천마혈성을 녹일 수 있는 독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
가? 곽사는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엄연히 현실이었다.
화살이 통하자, 설비향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장음지독을 잘만 사용하면 적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였다.
"적들에게 장음지독의 힘을 보여 주어라!"
설비향의 고함에 밀각의 고수들은 용기백배하여 적들을 상대하
였고, 곽사는 장음지독의 독성이 천마혈성의 피와 비슷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상대의 독은 천마혈성의 두세 배는 더 강할 것 같
았다. 아수라장이 된 호연세가의 비밀 지단은 사방에서 피가 튀고
있었다.
밀각의 각주인 명검과 겨루면서 조금 힘겨워 하던 곽사는 숲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엄 사형!"
그의 고함과 함께 삼백 명의 기마대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손은 죽창을 하나씩 들고 있었으며 일부는 말안장에 활과
화살통이 달려 있는 이들도 있었다.
설비향은 나타난 자들을 보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등천잠룡대라니........대체!"
설비향은 눈을 부비고 다시 보았다.
분명히 등천잠룡대였다.
설비향은 얼른 엄호에게 다가가 사실을 말하고 화해하려다가 멈
추었다. 말을 해 보았자, 상황이 어떤 상황이든 자신들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천마 혈성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쳐라!"
설비향은 목이 터져라고 고함을 질렀다.
밀각의 십대무사 중 한명이 엄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엄호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노강호를 보고 말했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제법이군"
그의 도가 허공을 갈랐다.
단일도.
달려들던 십대무사 중 한 명인 영사신검 서우가 단 일도에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만약에 이 사실이 강호에 알려지게 되면 엄호는
당장 십사대고수의 반열에 들어가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신검이란 별호가 아무에게나 붙지는 못한다.
혈궁대전 이전에 강호에서 가장 큰 명성을 날리던 일대 검호가
검조차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엄호는 냉랭한 시선을 설비향과 호연세가의 고수들을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
"한 놈도 살려 놓지 마라!"
그의 고함과 함께 기마대가 밀각의 고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설비향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장음지독을 사용해라!"
설비향의 고함 소리는 등천잠룡대의 함성 소리에 묻히고 있었
다. 그러나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좌상과 그의 수하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비밀 통로로 나와 숲에 숨어 있다가 등천잠룡대가 호연
세가의 비밀지단 안으로 들어가자, 아운의 지시에 따라 그들이 들
어간 자리에 돌과 나무를 잘라 세우고 있었다.
지금 호연세가의 비밀지단을 둘러싸고 있는 진법은 아운의 안가
에 펼쳐진 진법과 비슷했지만, 위력 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못할 만
큼 아래였다.
그것은 당시 호연상이 그 진법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호연상은 자신이 기억한 것만 가지고 겨우 흉내를 낸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안전하지 못한 이 진법은 한 가지 단점도 지니게 되었는데 그것
은 밖에서 들리는 기척과 기운까지도 진법이 차단을 한다는 점이었
다. 그래서 밀영일호가 진법을 파해할 때 호연세가의 비밀지단 안
에서는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었다.
물론 곳곳에 세워 놓은 초번이야 등천잠룡대가 처리했지만,
아운은 한눈에 이 진법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운은 미리 진법에 손을 봐 두었다.
그리고 좌상에게 이진법을 설명하고 호연세가를 공격하는 자들
이 안으로 들어가면 손봐 놓은 진법을 완성시키게 만들었다. 어려
운 것은 아운이 미리 손을 봐 놨기에 좌상은 아운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었다.
시간이 지나 진법이 완성되었다.
이제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쉬어졌다.
하지만 안에서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된 역행 환문진이 만들어졌
다. 일단 진이 완성되자, 좌상은 가지고 나온 장음지독의 일부를 진
법 안에 뿌려 놓았다.
그러자 진법 안에서 흐르는 기묘한 기의 흐름을 쫓아 장음지독
이 함께 흐르게 되었다. 이제 누구든지 진법을 파해하려고 하면 장
음지독을 견디고 나와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등천잠룡대나 호연세가나 진 안에 갇혔다는 말이었다.
좌상은 진법을 보면서 아운을 생각하였다.
알면 알수록 그에 대한 존경심이 싹튼다.
처음 그와 겨룬 후 아운에게 반해 항상 그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다가 호연세가의 많은 부분을 알게 되면서 떠날 결시미을
하게 되었다.
얼마 전 아운에게 일곱 개의 작은 검과 쥐 한 마리 그리고 용의
꼬리를 그려 보냄으로써 아운을 만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아운은 작은 점 일곱 개를 보고 자신이 보낸 서신임을
한눈에 알아보았었다. 그때 좌상은 아운에게 이곳을 가르쳐 주었
고, 아운은 이곳을 조사하면서 진법까지 은밀하게 개조를 하였던
것이다.
다행이라면 이곳이 무림맹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란 점이었
다. 만약 무림의 고수가 절정의 신법을 펼쳐 산으로 직접 달린다면
불과 이각이면 올 수 있는 거리가 호연세가의 비밀지단이었다.
물론 말이나 마차를 이용한다면 시간이 많이 달라지겠지만.
아운은 북궁손우를 비록하여 우문각,그리고 장문산에게 인사를
한 다음 천천히 조진양을 향해 다가갔다.
조진양의 주변에는 칠위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운이
다가오자, 조금 긴장한 듯한 표정이 하였다.
조진양은 가벽게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아운에게 마주 다가왔다.
"드디어 자네를 보게 되었군. 정식으로 인사를 하지 내가 조진양
일세"
맹주인 조진양의 인사에 아운은 미소를 지으며 포권지례를 하고
말했다.
"제가 권왕이라 불리는 아운입니다"
"만나서 반갑네"
"저도 반갑습니다"
"오늘 대결은 정말 대단하였네. 특히 십팔나한들과의 대결은 그
중 백미였었네"
아운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덕분에 거동하기 불편할 정도로 적지 않
은 부상을 당했습니다"
"나한진을 상대로 그 정도의 부상이라면 충분히 값진 것이라 생
각하네"
"이래저래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 앞으로 자네의 세상이 오겠군"
아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제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대전사보다야 강하겠습니까?"
아운의 돌발적인 말에 제아무리 조진양이라도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나 곧 태연한 표정으로 묻는다.
"대전사라니, 누구를 말함인가?"
"맹주님이 모르면 누가 알겠습니까?"
아운은 그저 한 차례 웃어 주고 천천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마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권왕과 멀어
질 수밖에 없는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적이 아니라면 밤새워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기
로 사귀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나이와 그 외 모든 것을 떠나서.
그는 전사의 혼을 가진 대평원의 무사였다.
일단 아운과 북궁연이 자리에 앉고 나자, 조진양의 명령을 받은
칠위 중 한 명이 박수를 쳤다. 그러자 연회장의 문이 열리면서 약
백여 명이 고운 소녀들이 술과 찬을 들고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그런데 그들이 안으로 들어선 순간이었다.
"멈춰라!"
아운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녀들이 놀라서 자리에 멈추었고 모든 시선은 아운을 향해 있
었다. 아운은 소녀들이 전진을 막은 다음 놀라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좌중을 향해 말했다.
"이 후배가 여러 선배님들의 은혜를 입어 구권무적, 권왕진천하
란 거창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한진을 상대할
때 사용하였던 무공에 대해서 모두들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아 지금
간단하게 시범을 보여 볼까 합니다"
순식간에 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무공이라면 밥보다 좋아하는 무인들이었다.
나한진을 격파할 때의 감동이 아직도 남아 있는 좌중의 무인들
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아운은 소녀들 중 맨 앞에 있는 소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리 오너라!"
소녀가 주춤거리며 아운에게 다가왔다.
아운은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맹주인 조진양에게 포권지례
를 하면서 말했다.
"맹주님께서 조금만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조진양은 궁금한 표정으로 아운을 보면서 물었다.
"내가 무엇을 도와주며 되겠는가?"
아운은 웃으면서 맹주인 조진양에게 천천히 다가가면서 말했다.
소녀는 아운이 가는 쪽으로 역시 쫓아간다.
이윽고 아운은 조진양의 근처 일 장 거리로 다가갔다.
조진야의 주변으로 가량을 비롯한 칠위들이 은근히 호위를 하면
서 아운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운은 조진양을 보고 말했다.
"아직 부상이 심해서 그다지 볼거리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법 흥미는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대하고 있네"
"그럼.....넌 이리 오너라"
소녀가 아운에게 다가왔다.
아운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싶더니 갑자기 잡아당기면서 손으로
그녀의 목을 슬쩍 그어 갔다.
믿을 수 없게도 그녀는 목이 잘렸고, 그녀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
다. 아운은 피가 솟구치는 그녀의 머리가 있던 쪽을 맹주와 칠위가
있는 곳으로 향하게 하였다.
갑자기 피가 뿜어져 나오자, 맹주와 칠위는 기겁을 해서 피하려
하였다. 그들은 정말 필사적으로그 피를 피하려 했지만 칠위 중
세 명에게 튀고 말았다.
아운이 소녀를 서슴없이 죽이자, 모두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
어서다가 더욱 놀라운 것을 보고 말았다.
소녀의 피가닿은 칠위 중 세 명이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저게"
일부 무인들은 놀라서 말을 더듬거렸다.
아운은 피식 웃으면서 조진양을 보고 말했다.
"맹주! 이제 더 이상 속여서 무엇하겠소? 좀 솔직할 때가 되지
않았소?"
아운의 말에 조진양은 잠시 아운을 보다가 갑자기 양천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과연 권왕이로다! 그렇게 자네는 어떻게 저 소녀가
천마혈성임을 알았는가? 이전에 비슷한 종류의 실혼인이나 강시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완벽한 천마혈성은 없었는데, 특히 저 소녀들
은 이번에 새로 독혈을 지닌 천마혈성들인데"
"훗! 나는 기감을 잘 기억하는데, 저 소녀의 기운은 이전에 내가
본 천마혈성의 기운과 아주 똑같더군요. 단지 모습이 다르고 완전
히 살아 있는 느낌이 다르지만."
"허허, 그랬었군. 정말 최종적으로 완성한 천마혈성들은 인간과
비슷해서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네"
사실 조진양은 속으로 아운의 판단력과 결단력에 다시 한 번 감
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아운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저 귀엽
고 아름다운 소녀들을 단 한 번에 죽일 수 있을까? 누구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렇게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험로를 뚫고 살아남은 인간인지 알
수 있었다.
조진양이 아운에 대해서 감탄할 때 아운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
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속이지 말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내가 무엇을 속였단 말인가?"
"당신이 원나라의 잔당으로 몽고의 전사이며 왕자란 사실 말입
니다"
아운의 말에 동심맹을 비롯하여 강호의 노고수들 중 상당수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조진양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들 중 상당수
는 아운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이때 북궁손우가 나서며 말했다.
"권왕의 말이 진실이란 것을 내가 보증하지"
"나 우문각 역시, 내 이름을 걸고 보증하지"
"나 장문산도 마찬가지"
"아미타불, 본 목영도 권왕 시주의 말이 사실임을 중인합니다"
"나 무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나선 선은들이 십여 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이미 사전에 아운과 여러 가지를 확인하고 아운을 돕기
로 했던 선은들이었다. 이렇게 되자, 동심맹의 장로들과 그 외 무인
들은 안 믿을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조진양을 바라본다.
해명을 바라면서.
조진양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운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쉽게 일을 터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어차피 더 이상 숨길 수도 없었고, 숨길 생각도 없었던
조진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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