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02주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심] 김성현감독(강석주집사님 정리)
에베소서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에베소서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계획대로, 예정하신대로 인도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순종하여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 삶의 내용을 바꾼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 임의대로 우리가 가고 싶은 길을 갈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른다면, 굉장히 큰 문제다.
우리가 이 땅에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짧은 시간안에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스스로 인식하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시간으로 측량되지 않는 큰 시간과 바꾸어도 부족하지 않을만큼 그렇게 값진 시간이다.
이 세상에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더러 어떤 교회는 성경이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을 열정적으로 따르지 않는 곳도 있다.
그런 곳은 거기를 인도하는 자가 어쩌면, 개인이 원하는 생각이 바탕이 되어, 성경의 말씀을 자기 생각에 맞추어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소개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이 땅에 왔을 때,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가 반드시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가는 길은 잘 갈 수 없을 것이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 목숨을 건 사명감으로 임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웬만한 목회자 못지 않게, 이런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룰 때, 더 고생하고 있다.
성경 여러곳에서 내 임의로, 내가 원하는 것으로 선택적으로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노골적으로 제시하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자로서, 하나님이 잡아서, 회개시키고, 사도되게 하여, 이방인에게 보낸 사도 바울의 역할은 너무나 훌륭했다.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그를 명하셨다.
길에서 잡아서, 명하여 보내셨다.
그 이후로는 주의 성령이 그를 놀라운 영감으로 인도하셔서, 신구약을 관통하여, 구약이 무슨 의미인지, 신약이 무슨 의미인지, 신구약에서 하나님이 가시는 길을 꿰뚫어 해석했다.
이런 해석은 하나님의 뜻이 원래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중요한 하나님 말씀 그 자체다.
거기를 보면, 복음서를 보면서,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사역하는 생애를 담았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셔서, 오셨다. 그 부분도 요한복음에서만 펼치지, 다른 복음서에서는 그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셔서, 인간의 죄와 맞부딪히시고, 책망하시고, 경고하시고, 그들에게 고난받으사, 핍박받으시고, 죽음 당하시는 부분만 나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어떻게 하고 가셨는지만 그려진다.
나머지는 그렇게 열심히 그리고 있지 않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사도들에게 설명하라고 하셔서, 우리는 사도들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아무 배경없이 복음서만으로 다 해석할 수 없다.
성경은 계시가 백프로 다 들어있다.
성경 전체가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충분히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특성으로서 거룩함]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신다.
모든 사람의 거룩함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준비하신 자들이 있다.
주의 교회다.
주의 교회는 그가 준비하신 자로서, 그들만이 가진 특성을 나타내기 원하신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들은 세상이 보기에도 다르게 보인다.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선하고, 인내가 많고, 많이 희생하는가.
이방인들이 깜짝 놀랐다.
평화가 가득하고,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착하고, 미련스럽다.
그리스도 교회는 이천년동안 거룩하려고 몹시 노력해 온 자들이다.
거룩함에 대해서, 우리는 성막안의 연기처럼 성스럽고, 영광에 흽싸여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지도 모른다.
영적인 영향력으로 지배된 상태로 생각할 수 있다.
거룩은 그냥 도덕적 개념을 갖고 있다.
하나님앞에 깨끗한 자, 하나님이 구별하신 자다.
어떤 사람은 굳이 비물질, 이런 쪽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하루 몇번씩 세게 기도하면, 거룩하다고, 내실이 없는 형식을 생각한다.
그런 것이 아니라, 거룩함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속이 깨끗한 자들이다.
속이 깨끗하기 때문에, 죄를 고의로 범하지 않는다.
거룩은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지 않는 것은 받으실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든지 거룩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엄청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닮는 행위다.
하나님을 닮아가고,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요, 죄를 벗었음을 간증하는 것이다.
거룩함은 중요하다.
거룩함은 비정상적인 행동이 나와서, 마음속에 신당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진실한 것이다.
하나님께는 나의 진실함밖에 나타낼 것이 없다.
나는 이렇게 어둠이 가득합니다. 나는 이렇게 망가졌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셔야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자가 거룩한 자다.
그래서, 거룩함 개념도 바꾸어야 한다.
거룩한 자의 우선적인 대상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굉장한 의무를 갖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의 의무]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종도 사실 엄청 큰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도 엄청 큰 것이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 자체가 영광, 영광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굉장히 고생이 많지만, 엄청난 영광이다.
영원히 기념하고,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똑같이 되면,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 큰 영광일 것이다.
이 땅에서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썩어질 육신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지위만은 여타의 종이나 백성과는 엄청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다.
그러나, 이세상을 살 때는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 세상에 있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지위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냥 그리스도인, 주의 종이라는 말이 오히려 멋있어 보인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위가 크게 도움이 안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주는 직접적 특혜는 우리가 생각하는 삶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게을리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종이 갖고 있는 의무와 하나님의 자녀가 갖는 의무와 책임은 엄청 다르다.
어떤게 무겁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갖고 있는 의무가 더 클 것이다.
종들은 자기 일만 하면 된다.
종들은 자기 일을 하고,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면 된다.
아무말 없으면, 그냥 쉴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자기 목숨을 던질만큼 투신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품고 있는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내어, 자기를 죽여야 한다.
자기를 죽이지 않으면,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교회라도, 이 땅에 있는 동안,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교회를 살리려고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헌신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나라를 걱정한다.
이 세상 누가 하나님 나라를 걱정하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광범위하게 하나님 나라를 위한 마음의 씀씀이가 있다.
종들은 어떻게 보면, 자기만 챙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나님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으로부터 뚝 떨어져 나온 하나님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는 하나님이 가득하다.
하나님의 자녀의 교회를 위한 걱정과 사랑은 하나님이 갖고 있는 사랑에 버금가야 한다.
그런 것이 없이, 아무리 겉으로 훌륭하고, 말에 이유가 있어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나님의 자녀라고는 주장을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순교할 수 있는 자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교회를 위해, 자기를 다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으로써, 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하고, 방언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목적을 더 체계적으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우리 마음에 받아서, 진리를 세울 수 있다.
진리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반드시 성경에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거룩함은 기독교인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는 요소다.
이것은 우리 생활방식이요, 성격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본성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지금은 특별히 화려하게 나타나는 것이 없어도, 무시하지 않고, 오늘 하나님의 아들과 연합한 자로서, 하나님의 아들같이 행하고, 사랑하고, 나타내는 자가 되자.
그래서, 성락교회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내는 자가 되자.
[본문]
에베소서 말씀 전체가 교회에 관한 것이지만, 특별히 1장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그의 사역의 역사를 나태내고 있다.
매우 명료하고, 함축적인 단어로 방대한 내용을 짜임새있게 구성했다.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과 여정.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뜻.
세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부분은 과거,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교회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되는지, 그 다음은 예수께서 이끄시는 교회, 그 다음은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로 구분된다.
지난주에는 신령한 교회로 예정하셨다는 내용이다.
너무 방대해서, 다 마치지 못했고, 오늘 한주를 더 할 것이다.
에베소서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에베소서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심의 목적 :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
택하심의 목적은 다른 말로 할 수 없다.
우리를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셨다.
당시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는 굉장히 놀라운 사실이다.
인간은 본래 흠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셨다고 말한다.
이 사실에 대해, 엄청 놀란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을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아니고는 누구도 거룩할 수 없다.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택하셨다고?
하나님이 어떤 뜻으로 말씀하셨을까.
하나님은 진짜 그렇게 만드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배려를 반영한다.
말도 안되게 수준이 낮고, 고치기 어려운 인간을 그가 참으시면서, 기어코 올려 놓겠다는 것이다.
태초부터 하나님이 가진 계획이 그것이다.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거룩하고, 흠없는 자로 나타내려 하심이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 그런가.
이 말씀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 행실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된다.
이것은 우리 지위를 엄청 올려주신 것이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거룩할 능력이 전혀 없다.
거룩함의 흉내는 내어도, 한순간도 거룩함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흠없는 자, 거룩한 자라는 지위를 확보해 놓으셨다.
그리스도의 공로로 덮어 씌우셨다.
그래서, 법적으로 우리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서, 처음 주님 앞에 나타났다.
그래서, 예수께서 아버지께 거룩한 자라고, 피의 공로로 호소하셨다.
우리는 죄없는 자의 지위를 거저 힘입었다.
그러나, 당장 우리 죄성은 그대로 남아있다.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죄성을 버리기에는 너무 먼 길이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 죄는 다 없어질 것이다.
우리가 처음 예수 믿기전과 비교하면, 너무 달라졌다.
결국 나의 믿음을 통한 노력을 통해, 끝내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하지만, 막연히 거룩해지는 날, 완전한 구속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는 것은 일단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지위로 씌워서 죄를 다 예수께 옮겨놓고, 우리는 의로운 자로서 취급하시고, 의에 대해 투쟁은 끝까지 하게 하여서, 끝내 완전함을 이루라고 하신다.
다만 주님이 오실 날, 주님 앞에 나타내야 한다.
이것은 이유가 없는 말씀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특질이 나와야 한다.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것은 성경에 근거가 있다.
하나님께 제사할 때는 흠없는 것으로 드려야 한다.
민수기 6:14 그는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되 번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수양 하나와 속죄 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와 화목 제물로 흠 없는 수양 하나와
베드로전서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예수께서 자신을 드리신 것으로 이것은 완성되었다.
골로새서 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엡1:1-2에는 에베소의 성도들과 신실한 자에게 편지한다고 되어있다.
성도라는 단어와 거룩하다는 단어가 같다.
똑같은 단어가 성도로도 쓰이고, 거룩하다는 말로도 쓰인다.
성도는 결국 거룩한 지위가 주어진 것이다.
나는 진짜 거룩하지 않지만, 지위는 주어졌다.
일단 성도로 부르시고, 거룩하게 만드시려는 것이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하신다는 것은 성도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에베소서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일관성있게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
유다서 1: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요한계시록 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행실만 그런 척이 아니라, 진짜 신실하고, 진실한 자.
하나님이 받으실 자다.
히브리서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겉의 죄가 문제가 아니라, 양심부터 씻을 것이다.
주의 보혈의 능력은 우리 양심을 씻는다.
주께서 나타나실 때, 거룩함으로 흠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거룩함과 흠없음은 상태를 말하고, 이 원리는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의 행위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한다.
사랑함의 완전한 모습으로 갖추어야 한다.
사랑함으로 진실하고,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에 이르러야 한다.
빌립보서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립보서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사랑함으로써,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려고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3: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데살로니가전서 3: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거룩하고, 흠이 없고,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특징이다.
상황에 따라서, 거룩함이 맞기도 하고, 흠이 없기도 맞하고, 사랑하기도 맞기도 한다. 세 단어가 각기 대체하면서, 보완한다.
죄 많은 세상에서도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도록, 도덕적으로도 구별되어야 하고, 전폭적으로 사랑해야 그런 자가 될 수 있다.
그런 자가 되도록 하나님이 택하셨다.
택하심을 안다면, 자연적으로 반응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반응이 있고, 또 인식이 생긴다.
언젠가 주님 앞에 나타나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 앞에 합당히 여기심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나를 관찰하시는 것이다.
택함받은 자의 환경은 하나님의 관찰을 받고,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아들들이 되도록 예정 하심]
사람의 훌륭함과 아무 관계 없이 그의 뜻대로 택하셨다.
에베소서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주권자로서 그가 기쁘신대로 한 것이다.
그래야, 선한 결과가 이루어질 것이다.
아들이 된다는 말은 법적 용어로, 양자를 입양할 때, 쓰는 말이다.
당시 성경에 쓰여졌을 때, 그들에게 익숙했던, 로마법을 반영하여 표현했다.
양자는 원래 핏줄과 관계없던 자를 증인을 통해, 양자로 삼고, 한가족이 되어, 그 집안의 참 아들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과거에는 핏줄이 굳이 섞이지 않아도, 양자를 친아들과 똑같이 대했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예수를 증인으로 세우셔서, 우리를 양자삼으시고, 하나님의 가정으로 우리를 들이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들이 갖고 있는 특권을 주셨고, 의무도 부과하셨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종인데, 이를 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굉장한 진전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진전.
이 세상에서 누가 입양되면, 부모가 갖는 재정적 특혜를 받는다.
부모의 돈을 자녀가 갖는다.
입양된 자도 똑같이 부모의 혜택을 받고, 유산을 받는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
입양된 자녀는 유전자는 다르다. 얼굴 생김새, 취양은 달라도, 가정에 들어오면, 그 가정의 전통을 배워야 한다.
의무다.
내가 원래 살던 대로 살겠다고 할 수 없다.
로마서 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께 양자로 입양되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입양과 다른 면이 있다.
하나님의 피를 가진 자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상당히 뿌리깊다.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것은 상당히 견고한 근거가 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는 의무가 있다.
우리는 상상도 못하는 하나님의 참 아들만이 갖는 특권과 유산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의무가 요구된다.
하나님 참 아들이 가진 품위가 성품, 격과 맞추어야 한다.
지위만 되었다고, 나머지는 자유하다고 할 수 없다.
신분을 주셨지만, 너무 동떨어져 부족한 우리의 품위를 채워야 한다.
신분은 주어졌지만, 우리의 실제적인 모습을 로마서 8장이 잘 설명하고 있다.
성령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것을 보면, 추수할 때, 첫열매를 승인받고, 기어코 하나님이 끝까지 역사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러나, 언제 완성될지 우리 마음에 고통이 있다.
죄의 성질이 나를 끌어내리고 있다. 어떻하든 하나님이 나를 구속하실 것인데, 언제 구속될 것인지, 구속의 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이 표현을 양자될 것이라고 했다.
양자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다.
현재 증거는 매우 부족하다.
로마서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그러나, 내속에서 나를 하나님 아버지께 증거하시는 분이 있다.
어쨌든 우리는 엄청난 도약을 한 것이다.
원래 우리는 불순종의 아들이요, 진노의 자녀들이었다.
에베소서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에베소서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망할 수 밖에 없던 자였다.
그러나, 옛성질을 벗고, 살아나서, 흠없고, 거룩하라는 의무가 주어졌다.
겉으로 하는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 양심속에서 사랑이 솟아나고, 양심속에서 흠이 없도록, 끝없이 투쟁하고, 거룩함에 대한 소망이 가득해야 한다.
우리는 실패를 피할 수 없지만,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보혈의 능력이 역사하여, 하나님 앞에 나는 부족하지만, 용납하소서 간구하는 것이다.
수준이 못미치지만, 간절한 나의 진실함이 하나님을 감동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마지막날까지 놓지 않고, 힘을 주실 것이다.
[찬미해야 마땅할 은혜]
성도의 길 힘들다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엄청난 도약을 했다.
하나님의 자녀다.
우리가 마땅히 이 은혜에 대해서, 찬양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베소서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것이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것이다.
창세전부터 이미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택하시고, 구원하셔서,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대로 두었다면, 그냥 망했을 것이다.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셨어도, 우리를 돌보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은 그냥 놔두지 않으시고, 하늘에서 왕처럼 될 수 있도록, 독생자와 같은 영광을 주시려고, 후사로 삼으셨다.
왜 아들들이 되게 하셨을까.
하나님은 우리를 심각하게 생각하신 것이다.
택하신 자들로 하여금 은혜 받은 사실에 대해서, 찬미하지 않을 수 없게 하신 것이다.
버려진 죄인에게 은혜가 주어졌을 때, 합당하다고 찬미하여, 모든 하나님이 이루신 일들이 정상으로 조화롭고 아름답게 종결되기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아들되는 의미는 하나님이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혹시 어느 순간에 버려지지 않도록, 최후까지 책임지시겠다는 것이다.
너희는 내 아들들이다.
종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종이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종의 의무도 다 하셨다.
우리도 해야 한다.
타락한 인간은 감사에 인색하다.
감사하는 마음이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감사가 부족하고, 인식이 안된다. 잘못된 것이다.
하늘의 만물, 땅의 만물도 하나님께 영화를 돌린다.
감사하지 않는 존재는 사단과 그를 따르는 타락한 천사, 타락한 인간이다.
우주 안에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자도 있다.
그 천사는 하나님께 떨어져서, 영원히 합치지 못한다.
타락한 인간은 이들과 영원히 합쳐질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실 때, 교회로 택하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를 예정하시고, 만드셨다.
그리고, 교회의 운명을 선택하셨다.
교회는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의 몸이다.
교회 안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영광을 자랑함으로,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빼앗으면 안된다.
교회는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택함받은 자들이다.
교회의 성격이 그것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마땅히 가질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먹거나, 마시거나 항상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저 받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거저 주신 사랑에 끼어들어서, 받아들여져 받는 것이다.
교회는 양자들로 인해서, 하나님과 아들의 관계에 같이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의 몸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양자가 되는 것이다.
오직 그의 아들만 선한 것을 받을 수 있는데, 우리도 받게 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은 초점이 아니다.
이것은 마땅한 것이고, 사도 바울의 강조점은 은혜가 풍성하시다는 것이다.
택함받는 자들이 가진 은혜가 너무 크다.
감사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흠없고, 사랑할 자입니다.
영원한 사랑을 이어가서, 그를 기쁘시게 할 자입니다.
설교요지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셔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축복하시는 것은,
우리를 그의 아들 안에 속하게 하신 후에,
그가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심과 같이
우리도 사랑하실 것을 뜻하셨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를 택하심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갖도록
그에게 입양되는 결과가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목표와 요구 앞에
우리가 서 있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특질을 닮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다.
결국 이 땅에서 하나님의 큰 사랑과 놀라운 은혜에 대하여
그에게 참으로 감사와 영광을 드릴 자들은,
다른 이들이 아닌,
하나님이 택하시고 그의 자녀로 만들어 주신 자들,
즉 오직 그리스도 교회의 신실한 자들뿐이라는 사실이
온 우주에 명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