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태복음 7장 13-29절
타이완의 한 방송사에서 만든 에니메이션 동영상이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천국에 간 스티브 잡스가 신을 마주하고 자신의 창조물,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빛으로 물든 추모 열기 속에 천국으로 향한다는 애니메이션 처럼 될까요?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이어지는 예수님의 저 유명한 '산상보훈'의 설교 말씀에도 바로 그와 같은 '결론 부분'인 바로 본문 13절과 1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아주 강력하게 호소하십니다.
1. '좁은 문'은 거짓 선지자들의 감언이설을 배격하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입니다.
거짓 선지자의 첫째 특징은 자신의 직분을 순전히 사리사욕의 추구만을 위하여 오용하는 것입니다. "양의 옷을 입고" 즉 외견상으로는 지극히 경건하고 선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들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둘째로, 그런 거짓 선지자들은 그 자신의 생활 속에 말씀을 순종하는 행위가 전혀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 것은 만고불변의 철칙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교만할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겸손할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겸손한 인격의 가장 좋은 본보기는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장 29, 30절). 벼 이삭이 익어지면 고개를 숙이게 되듯이 사람의 인격이 성숙하게 되면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5장에서 젊은이들에게 권면하는 겸손에 가르침이 있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장5-8)
'넓은 문'으로 인도하는 목사의 지도를 받는 교인들은 주일 낮예배 한 시간만 참석하면 충분한데, '좁은 문'으로 교인들을 이끄는 목사는 주일 낮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회, 저녁기도회까지 나오라고 독촉하니 그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큰 길'을 가는 교인들은 주일헌금만 내어도 괜찮고, '협착한 길'을 가는 목사를 뒤따라가는 교인들은 십일조 정도는 그저 기본에 불과하고 오히려 온 몸을 드려 헌신해야 한다니 정말 '찾는 이가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찍혀 불에 던짐'을 당할 '멸망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 '자기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신앙생활하기를 결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좁은 문'은 입과 귀로만 하는 외식을 버리고 신행일치의 삶을 보여드리겠다는 결단입니다.
예수님께서 외식적 신앙생활로 지적하신 그 첫째는 '입으로만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바로 21절부터 23절에 기록하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주여 주여"라는 이 호칭 자체에는 물론 조금도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던" 자들의 위선입니다.
"불법"이란 바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과 반대되는 의미입니다. 즉 겉으로 입만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지 그 인격의 중심에 진정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마음과 그 삶의 바탕에 그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참된 신행일치가 없으면, 그 모든 외식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어디까지나 불순종이요 불법에 불과할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처럼 '입으로만 신앙생활하다가' 정작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닥쳐오면 깜짝 놀라게 될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주여, 저를 모르신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주님 이름으로 한 평생 목사 노릇한 사람이 아닙니까?", "예수님, 제가 주님의 교회에 장로요 집사인 아무개인데 제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니요?"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그 날이 오면 "많은 사람"이 그처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살았는데도 저를 모르십니까?'라고 당황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심판주 예수님께로부터 듣게 될 뿐입니다.
'너희들이 사람들 앞에서는 내 이름으로 직분도 받고 내 이름을 부르면서 종교인 행세를 했지만, 너희들의 진실한 신앙양심으로는 나를 믿은 적도 없고 내 뜻대로 순종한 적도 전혀 없지 않느냐?'라는 예리한 판결과 함께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추상같은 선고가 내려질 뿐인 것입니다.
마태 7장 24절 이하 27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실로 '듣는 신앙생활'에만 풍성한 교인들도 또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온갖 귀한 복음의 진리를 매주일 설교 시간마다 귀가 닳도록 듣고, 오묘한 신학적 교리를 Cell성경공부를 통하여 주말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을 것입니다.
주일에 들었던 설교 말씀을 엿새 동안에 늘 되새기고 순종하면서 살아 온 신자는 지금 당장 그 인생을 휘청거리게 만들 것 같은 강풍이 예고도 없이 닥쳐와도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저 '귀로만' 신앙생활이라고 해 왔던 교인은 약간의 비바람만 몰아쳐 와도 어이없게도 순식간에 왕창 무너지고 맙니다. 아무리 교역자가 심방을 하고 기도해 주면서 회복시켜 보려고 애를 써도 아예 스스로 신앙생활에 파산 신고를 하고 교회를 떠나 큰교회같은 곳에 뒷자리 구경꾼 신자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누가 예수님을 어물쩍 속이고 적당히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입'과 '귀'로만 하는 외식적인 '넓은 길'의 신앙생활에 안주하다가 시험의 비바람 앞에 쓰러지고 심판주 앞에서는 영원히 쫓겨나지 않는 주님의 뜻을 깨닫고 그대로 순종하는 신행일치의 '좁은 길'만을 향하여 확실히 결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 28절과 29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29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기록했습니다. 평소에 서기관들로부터 그저 '듣기에 점잖은 말'과 '항상 하는 뻔한 소리'만을 들어왔던 "무리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이처럼 '오묘하고도 지고한 산상보훈'과 동시에 '분명한 결단을 요구하는 엄중한 결론의 말씀'을 듣게 되자 그 '권위 있는 가르치심'에 충격을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는 것이 일단 가장 쉬운 길이 될 것입니다. 그저 내 생각이 늘 옳다고만 여기고 내 몸이 욕구하는 것만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니 그 얼마나 편한 인생이겠습니까? 그러니 주님께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라고 한탄하시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외식과 허영 위선에 빠지지 말고 어디까지나 '신행일치의 좁은 길'을 끝까지 걸어감으로써 끝내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함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자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 : 14-17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복음에 빚진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은 해방 이후로 미국을 비롯하여 다른 우방으로부터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아서 현재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하겠습니까 ? 우리 민족은 이 빚을 복음으로 갚아야 하겠습니다.
3.복음은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생명을 귀히 여기셨기 때문에 이 우주 만물들을 인간의 생명을 위하여 창조하시고(창 1 : 29-30), 선인이건 악인이건 모두 이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마 5 : 45). 인간에게는 두가지 생명이 있습니다. 곧 육적인 생명과 영의 생명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육신의 생명을 위하여 땀흘려 수고하지만 영의 생명에 대하여는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 6 : 63)고 했습니다. 이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롬 8 : 5-6)이며, 영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엡 4 : 18). 이러한 영적인 생명을 소유하였을 때 핍박 속에서도 죽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고후 4 : 8-10).
한 목사님이 김수연 집사님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핸드폰에 김수연이라고 이름이 뜨는 것을 보고 전화를 받자마자 너무나도 슬프고 고통스럽게 통곡을 하는 소리가 들려서 정신이 번쩍 나고 긴장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불이 났나?’ ‘누가 죽었나?’ ‘이거 아무래도 큰 일이 났나 보다.’ 별의 별 생각이 다 지나갔습니다. 그는 바짝 긴장을 하고 물었습니다. “집사님,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어요? 무슨 일이예요?”
그러자 김수연집사님이 한동안 흐느껴 울다가 겨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목사님 지옥에 갔다 왔는데 너무 끔찍해요. 방금 써서 메일을 보냈는데 다시 쓰다보니까 지옥이 생생하게 생각이 나서 너무 마음의 아파요?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서 계속 주체할 수 없는듯 통곡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저는 바로 메일을 확인했습니다. 다음은 김수연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목사님께.. 목사님께서 저녁설교 후 기도하실 때 이상하게 제 마음이 공허하고 메말랐습니다. 너무나 귀한 영의 양식들을 먹었는데 그랬습니다. 그런데 앉아 있기가 점점 힘들고 숨이 찼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누웠습니다. 제 목은 타들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제 목이 졸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저는 사막 같은 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곳은 이 세상 같지 않았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은 실제 참기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무언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를 따라 가라.”
저는 그 분을 보았습니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천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사막을 통과해 어둠의 입구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 섰을 때 갑자기 여자의 손이 나를 잡는 것을 느꼈습니다. 희고 아름다운 손을 가진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이제 막 지옥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땅바닥에 엎드려 있으면서 있는 힘껏 내 손을 잡으려 했고 울부짖었습니다. 저는 그 여자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곧 괴물과 같은 것들이 그 여자를 질질 끌고 갔습니다. 저는 그 여자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습니다.
또 어떤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손톱이 30cm정도나 되는 짐승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할큄을 당했습니다. 그 여자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의 몸은 깊게 손톱자국이 세로로 그어졌습니다. 그 괴물은 즐기듯 깊게 살에 손톱을 파 넣고 아주 천천히 오선지를 그리듯 살을 팠습니다. 아주 서서히 그렇게 하니 그 고통을 심하게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손톱이 제 눈에 확대되어 보였는데 무쇠와 같았고 그 끝은 뾰족했습니다. 그 고통이 제게 느껴져 제 살이 파이는 듯 했습니다. 그 여자는 사람에게 많은 마음의 상처를 주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괴물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너무 무서워 온몸이 굳어 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 괴물은 온몸이 비늘에 덮여 있어 징그러웠고 시뻘건 눈을 가지고 더러운 기운을 마구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내게 점점 다가왔습니다. 저는 공포에 질렸습니다. 내 어깨에 손을 대는 것 같았을 때 거의 기절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를 잡는다고 느끼는 순간 제 뒤에 서있던 남자를 훽 하고 낚아채듯 끌고 갔습니다. 저쪽을 보았는데 괴물과 같이 생긴 것이 사람의 몸을 집어 삼키고 씹어 먹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입을 가지고 우적거리며 먹었습니다. 너무 끔찍했습니다.
커다란 원형경기장 같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벌거벗은 상태로 짐승처럼 기어 다니며 짐승들의 채찍을 피해 다녔습니다. 표현이 안될 만큼 불쌍하고 처참했습니다. 그곳엔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모두 섞여 있었는데 미친 듯 도망 다니는데 그들의 고통에 내 마음이 송곳으로 찔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곳은 미친 아수라장과 같았습니다. 누군가 제 손을 잡아서 보았습니다.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였는데 흑인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공허하고 의미 없는 눈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배가 고파요.” 내 심장은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린 그 아이는 가슴부터 배까지 커다란 구멍이 나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땅을 기어 다니며 구더기 같은 것을 집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그 아이 얼굴만 생각나면 진정이 되지 않고 통곡이 나옵니다.
“오 주님.. 오 주님..”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제 가슴이 쥐어뜯기는 것 같은 고통이 계속 되었습니다.
“주님 저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할게요. 무엇이라도 할게요!!”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모세와 같은 자가 필요하다. 영혼들을 위해 천국의 상급도 버리고 대신 죽겠다 하는 자가 필요하다.”
그 말씀이 너무나 간절했습니다. 저는 예수님 발 앞에서 울부짖었습니다.
“제가 할게요. 제가 할게요. 하라고 하시는 거 다 할게요.”
“네가 나의 아이들을 돌보길 원한다.”
예수님께서 구름과 같이 부드러운 곳에 저를 눕히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자라고 하셨습니다.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 곁에 앉아계셨습니다. 제 얼굴을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때 제게 왜 그 아이의 가슴과 배가 뻥 뚫려 있는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 아이는 한 번도 예수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이유도 모르고 지옥에 왔고 끊임없이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4.복음은 영생입니다
사람들은 한치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유한한 상황 속에서 살기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하며 쫓기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영생의 삶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의 순간에서도 스데반 집사와 같이 기쁨과 소망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행 7 : 55-60). 그러므로 우리가 이 영생의 복음을 소유하고 있을 때 슬퍼하며 절망하고 원망할 수 밖에 없는 형편에서도 감사의 찬송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를 통해서 성령에 대하여 많이 언급 하시면서도(요 7 : 37-38 ; 14 : 16-17 ; 16 : 5-8 ; 20 : 19-23).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요 3 : 3-8). 예수께서는 천국으로 사람을 이끌며, 천국을 소개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치료하셨으며 또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마 4 : 23-24 ; 11 : 2-12). 복음은 천국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5.복음은 천국입니다
남미 칠레에 사는 어떤 원주민이 본 환상을 체험한 기록으로 리카르도라는 사람의 천국방문기가 있습니다.
"들어오너라" 하는 목소리와 함께 저는 천국 문을 통과 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보좌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이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분 앞에서 땅에 힘 없이 엎드려 졌습니다. 지상에 많은 화가들과 작가들이 예수님을 그려왔지만, 실재 주님의 모습은 그것과는 비교 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분필이나 나무로 그릴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영원토록 살아있는 하나님이다!"
주님은 계속해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너라, 내가 너에게 놀라운 것을 보여주겠다". 주님과 그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고 지상과 둘째 하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 광경을 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의 교회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보고 있다!" "나의 교회들을 보아라!" 그 말과 동시에 그는 형제들이 형제들을 대적하고 교회들이 교회들을 대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리카르도, 휴거가 지금 일어난다면 이와 같을 것이다!" 그 말씀과 동시에 그는 지구 전체를 볼 수 있었고 우리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시는 성령님이 떠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증기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그를 둘러싸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이것이 무엇인가요?"
주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이것은 휴거이다!" 이 말씀이 끝나자 그는 공포에 질린 수 많은 사람들이 교회 문을 부수며 이렇게 소리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 아이들은 어디! 있나요? 그들이 모두 사라졌어요!"
그의 교회의 성가대장이 교회로 들어오면서 이렇게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도들은 어디 있나요? 저는 남겨졌습니다! 저는 남겨졌습니다!" 저는 다른 목사님들과 교인들이 울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남겨졌습니다!"
주님은 슬픈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교회는 믿음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더 이상 나를 믿기를 거부하는구나. 죄악은 땅에 넘치도록 흘러서 이제는 사람들이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의 교회는 타락했다. 이 교회들은 나의 교회가 아니다!"
뉴욕 시위대가 노숙 2주째에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하는 것을 계기로 미국 경제의 상위 1%는 도대체 국부의 어느 정도를 점유하고 있기에 공공의 적이 된 것일까 생각헤 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산출한 계산법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1%가 소유하고 있는 국가 전체의 부는 40%에 이릅니다. 사회학자 윌리엄 돔호프가 2007년 기준의 통계를 갖고 작성한 결과에서도 상위 1%는 전체의 42%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위 20%를 제외한 나머지 80%가 갖고 있는 미국의 부는 7%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상위 1%는 또 국가 전체가 벌어들이는 수입의 24%를 가져갑니다. 1976년 미국의 상위 1%가 가져가는 국가수입은 9%뿐이었습니다. 하지만 30년이 지나는 동안 거의 3배 가까이 늘어난 셈입니다. 또 주식, 본드, 뮤추얼펀드 등 금융자산의 경우 양극화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미국 내 전체 금융자산 중 50.9%는 상위 1%의 소유입니다. 국민 절반에 해당하는 상위 50% 이하가 갖고 있는 금융자산은 0.5%에 불과합니다. 돔호프는 “2007년 현재 미국민의 개인별 부채 중 70%는 하위 10%가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리카르도는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그렇게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당연히 우리들은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아니다, 나의 교회는 놀라운 권능과 기적과 함께 동행한단다. 나의 교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구나. 가서 나의 교회에게 전하거라. 내가 다시 그들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이어서 주님께서 노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와 헌금들을 도적질하고 있다! 가서 나의 사람들에게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한 사람들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 전하거라!" 우리들은 주님 앞에서 우리 삶을 재점검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준비됐습니다. 주님은 길이를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식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식탁에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 보여졌고 각종 신선한 요리들과 다과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식탁 위에는 셀수 없이 많은 면류관과 보석으로 만든 술잔이 준비 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리카르도, 이것은 나의 자녀들을 위해 준비한 잔치상이란다" 이것은 바로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위한 상이었습니다.
리카르도는 주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주님, 제가 아는 자매님은 천사들이 잔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저는 왜 그것을 못 보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것은 이미 혼인잔치 준비가 끝났기 때문이란다"
제가 눈을 들어 보니, 식탁 위에는 주의 일을 한 순종하는 자녀들을 위한 훌륭한 면류관들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다시 여쭈어 보았습니다. "주님, 혼인 잔치 준비가 끝났다면 언제 주님께서 재림하시나요? 몇년 후에 재림하시나요? 저에게 천국 시계를 보여주세요. 천국 시계에 시간이 얼마 정도 남았나요?"
주님께서는 이제껏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통해 시계가 정각이 되면 신부들을 데려오신다고 보여주셨습니다.
"주님, 시계가 언제 정각이 되나요? 1분 남았나요? 5분 남았나요?" 주님께서는 저를 잠시동안 유심히 바라보셨습니다. 그런 후에 대답하셨습니다.
"리카르도, 천국 시계에 남아 있는 시간은 없단다"
저는 더욱 궁금해져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주님, 만약 시간이 다 되었다면 왜 아직까지 재림을 안하셨나요? 주님, 만약 시간이 다 되었다면 왜 아직까지 재림을 안하셨나요?"
그의 질문에 예수님은 손을 올리셔서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아주 자그마한 공간을 표시하셨습니다.
"리카르도, 이제 남은 것은 아버지께서 죄인들이 회개하기 위해 주신 조그마한 은혜의 시간이란다"
주님께서 아직까지 재림하시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회개하기 위한 조그마한 시간을 남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곧 오십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시간에 살고 있단다"
6.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예수는 생명이십니다. 죄로 인해 멸망과 심판을 받아야 했고, 하나님의 저주 안에 있던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복음이었습니다. 그가 오셔서 말씀하시며, 그가 사역하신 모든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사역, 죽음, 부활, 승천, 재림의 약속이 곧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산다고 했습니다(고전 4 : 19). 그리스도인들이 보여 주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새 생명을 소유한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돌감람나무를 찍어 참감람나무에 접붙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쳐서라도 새 생명을 소유하게 하십니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자기의 삶의 터전에서 새생명의 기쁨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 생명과 영생 그리고 천국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삶을 이렇게 살라고 하였는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하였습니다(살전 16-25).
7. 기뻐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4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하였습니다. 이는 기뻐하라는 명령법으로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실제로 본 서신을 쓸 당시에 로마 감옥에 투옥(投獄)되어 어려운 형편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가운데서도 자신이 먼저 기뻐하는 생활을 나타냈습니다(빌 2:17).
1975년부터 약 4년 동안 캄보디아에서 폴 포트가 이끄는 무장단체인 크메르 루즈에 의해서 끔찍한 대학살이 저질러졌습니다. 적어도 700만 명의 국민들 가운데 약 200만 명 정도가 반동으로 몰려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영화가 킬링필드입니다. 그 영화는 1984년 작품이며 감독은 롤랑 조페였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미국 대사관의 담 하나를 경계선으로 해서 삶과 죽음이 분리되는 순간이 전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권이 있는 외국 사람들은 미국 대사관 안으로 들어가 헬기를 타고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할 수 있었지만 가짜 여권이나 여권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살려달라고 손을 내밀어도 담 위에 서있는 미국 헌병이 그 손을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그 손을 잡고 미국 대사관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살아날 수 있었지만, 밖에 남겨진 사람들은 공산당원들에게 붙잡혀 죽창에 찔려죽거나 총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거나, 혹은 비닐봉투에 씌워져 질식사를 당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공산당원들은 안경 쓴 사람들이나 공무원들 혹은 교사들이나 재력이 있는 사람들과 지식인들을 전부 찾아내서 남김없이 죽였습니다. 그곳에서 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온통 죽은 시신들이 밭을 이루고 있는 곳이 캄보디아였습니다. 그래서 그 영화의 제목이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였던 것입니다. 미국 대사관의 벽 하나로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그 영화를 보면서 눈물 흘렸던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믿음을 가로막는 불신앙의 벽을 넘어가면 구원을 받는다. 하지만 불신앙의 벽을 넘지 못하고 세상에 속한 삶을 살아가면 구원의 반열에 들어갈 수가 없다. 적잖은 시간과 애씀과 아픈 고통이 요구되어도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앙의 벽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이 고난과 감옥 생활 중에서 믿음에 굳게 서서 그처럼 기뻐한 것(행 16:19-25)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의이 말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더 큰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기쁨의 원천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성도들이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할 충만한 근거가 되십니다(찬송93).
8.기도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한국에 깨어있는 파숫꾼이 필요합니다. 다우징공법과 최첨단 탐사장비로 탐사한 바에 의하면은, 남침땅굴은 휴전선에서 24개가 남쪽으로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왔다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다 밑으로도 개성지역에서 시작하여 강화도 - 영종도(인천국제공항) - 대부도 - 당진- 서산 - 군산 앞바다 - 무안 앞바다 - 목포 앞바다까지 바다밑과 육지밑으로 침투해 왔으며, 이 바다 침투에서 육지를 향해 30개 이상의 남침땅굴이 내륙으로 깊숙이 침투해 온 것입니다.
이 남침땅굴 1개 라인은, 육지로 침투한 것과 해상으로 침투한 것을 불문하고 모두 4-5차선(갱차)으로 되어 있음이 탐지되었습니다. 일례를 들면 스텔스 전폭기가 배치된 군산 비행장은 바다로부터 3개 라인이 침투하였고 1개 라인은 4차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60년대 후반부터 스웨덴, 스위스 등으로부터 자동굴착기(TBM) 등 굴착장비 300여 대를 구입하여 이와 같이 어마어마한 남침땅굴을 파왔으며, 홍콩에서 남한 군복을 30만벌 구입해다가, 기습공격을 할 특수부대에 입혀놓고 대남적화통일을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하였습니다. 염려는 불 신앙의 소산이기 때문에 염려를 하지 말라는 하시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주님의 도우심을 믿고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맡기고 순종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시는가?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하였습니다(마 6:34). 염려한다고 작은 키를 한 자나 더 크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염려와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내일은 언제나 다시 다가오며 따라서 내일의 문제는 결코 오늘 다 처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늘의 은혜는 오늘에 족하고 새로운 날을 맞이하면 새로운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야 할 것임을 암시하셨습니다. 즉 내일의 염려는 내일의 새 은혜로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종을 위하여 집을 세우실 것을 이미 듣게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주 앞에서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하였습니다(대상 17:25). 예방차원에서(마 26:41) 치료차원에서(시 50:15)기도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막 9:29).
9. 감사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살전 5:18-22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하였습니다. 감사는 기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기록하기를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하였습니다(살전 1:2). 그리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하였습니다(빌 4:6).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잘 생긴 얼굴을 가진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 악단의 그저 평범한 첼로 연주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시력이 너무 안 좋았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자기 앞에 놓인 악보마저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의 근시였습니다. 그러나 불평하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그는 밤을 새워가며 악보를 아예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연주회가 있는 날은 적어도 그 전날까지 그 악보를 완벽하게 외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있었는데, 한 마디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준비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첼로 연주자 토스카니니였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지휘를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연주해야 할 곡들을 전부 암기하고 있었던 사람은 그 오케스트라 단원들 중에 딱 한 사람, 바로 토스카니니 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19세였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세계적인 지휘자로 거듭날 수 있는 첫 무대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악보를 완전히 외우고 소화하며 준비된 삶을 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그러한 행운의 기회가 그에게 주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자입니다. 우리의 복음의 선배들의 희생으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백성이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쉽고 넓은 길로만 가면 망합니다.
딛 1장16절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가증한 위선과 허영 교만을 버리고.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며 기도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사람이 매사에 감사할 줄 모르면 반대로 불평과 원망을 하면서 살다가 망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삶의 방향을 정해주셨는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선행을 보이며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라고 하신 말씀대로 살아서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