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절구
신석초
꽃잎이여 그대
다토아 피어
비 바람에 뒤설레며
가는 가냘픈 살갗이여.
그대 눈길의
머언 여로(旅路)에
하늘과 구름
혼자 그리워
붉어져 가노니
저문 산 길가에 져
뒤둥글지라도
마냥 붉게 타다 가는
환한 목숨이여.
-<시문학>(1972)-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서정적, 비유적, 찬양적
◆ 표현 : 꽃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우의적 수법을 사용함.
감탄조의 어조(영탄법)로 시적 화자의 정서를 표출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절구 → 본래 4구로 이루어진 한시를 일컫는 말이며, 한 구의 자수가 5자인 오언
절구와 7자인 칠언 절구 두 종류가 있다. 절구는 최소의 시체(詩體)이니만큼 착상과
감각의 표현에 고도의 날카로움이 있어야 한다. 이 시의 제목에 사용된 절구는
이러한 전통적 의미 이외에 낙화, 즉 절멸(絶滅)을 노래한다는 중의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 꽃잎 → 아름다운 삶의 상징
* 다토아 피어 → 생에 대한 의지와 열정의 모습
* 비 바람에 뒤설레며 → 시련과 고통 속에서
* 머언 여로 → 길고 긴 인생길
* 그대 눈길의 ~ 하늘과 구름 → 동경의 대상
* 붉어져 가노니 → 무한한 세계에 대한 그리움으로 꽃이 붉게 물들어가는 것이라고
형상화함.
* 저문 산 길가에 져 → 누구나 가야할 죽음의 길
* 뒤둥글지라도 → '땅바닥에 떨어져 아무렇게나 짓밟히고 흩어지게 되다' 정도로
죽음을 연상케 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말이지만, 이 말은 결국 꽃잎의 뜨거운
열정을 드러내는 데 기여하며, 그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 마냥 붉게 타다 가는 → 뜨거운 삶의 욕구와 열정
* 환한 목숨 → 생의 절정을 아낌없이 살다가는 꽃에 대한 찬미와 경탄
고고하고 깨끗하게 일생을 살다간 시인의 모습을 연상케 함.
◆ 제재 : 꽃잎
◆ 주제 : 꽃의 생명에 대한 감탄, 꽃의 생명력과 삶의 의미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시련 속에 피는 꽃잎 - 비바람 속에서도 다투어 피는 가냘픈 생명
◆ 2연 : 그리움에 무르익는 꽃잎 - 영원함을 동경하며 붉어져 가는 그대
◆ 3연 : 꽃잎의 절정과 최후 - 강렬한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환한 목숨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에서 화자는 꽃을 바라보고 있다. 그 꽃은 가냘픈 몸에 짧은 기간 동안 피었다가 지는 유한한 존재이다. 그렇지만 시적 화자는 이러한 꽃에서 뜨거운 삶의 욕구를 발견한다. 시적 화자는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다투어' 피어난다고 말한다. 이는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말이다. 시적 화자는 비와 바람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고난과 시련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삶을 유지해 나가는 꽃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다.
이렇게 살아가는 꽃은 하늘과 구름을 혼자 그리워하며 붉어져 간다. 하늘과 구름은 천상의 존재로서 지상에 발이 묶인 꽃이 다가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한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꽃은 열정적인 모습으로 살아간다. 꽃의 붉은 빛은 바로 천상의 존재, 영원불멸의 존재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붉어져 가던 꽃은 저문 산 길가에 지는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더라도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불사르는 꽃의 모습을 시적 화자는 삶의 태도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끝까지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 인간의 삶과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다.
● 더 읽을거리
이 시는 신석초가 죽기 삼 년 전에 발표한 시이다. 때문에 인생에 대한 그의 동양적 허무사상이 완숙되어 나타난 시로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느껴지는 허무는 절망이 아니라 황홀함까지 느끼게 해 주는 허무이다. 인생의 종착역에서 뒤돌아보면 언제나 짧고 허무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죽음은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일 뿐이라는 노장사상에 힘입어 허무를 극복하고 죽음까지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꽃이 피어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혼자 꿈꾸고 그리워하기도 하면서 살다가 황홀한 모습으로 떨어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리고 있다.
1연에서는 꽃이 다누어 피어 비바람에 흔들리는 가냘픈 모습을 그려낸다. 뜨거운 생명에의 욕구로 태어났지만 거대하고 거친 자연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2연에서는 삶의 여행길에서 이상을 꿈꾸며 붉게 익어가는 모습을 그려 내었다. 하늘과 구름을 배경으로 고요히 머리를 들고 붉게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를 눈에 보는 듯하다.
3연에서는 꽃의 일생 중 마지막 장면이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산길에 떨어져 뒹굴면서도 끝까지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막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어떤 것이나 마지막은 늘 숭고하고 아름답다. 때문에 시인의 눈에는 떨어진 꽃잎이 붉게 타고 있는 환한 목숨으로 보여질 수 있는 것이다.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슬픈 일이나, 단명(短命)하며, 없어지기 쉽다는 말이 있다. 이 표현처럼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사라지기 쉬운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영원하지 못하기에 도리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꽃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짤막한 동안 환히 피어나는 꽃의 생명을 감탄스러운 어조로 노래한다. 첫 연에서 꽃잎은 매우 가냘프면서도 뜨거운 삶의 욕구를 지닌 것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비와 바람에 흔들리면서 일정한 시간을 살아가는 가냘픈 사물이지만, 그 속에도 제 나름의 생명이 있다. '다토아 피어'라는 구절이 이러한 의미를 간결하게 전해 준다.
꽃은 또한 생명과 함께 저대로의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꽃은 하늘과 구름을 혼자 그리워하며 그것들과 자기 사이에 있는 먼 길을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의인화하는 수법은 어쩌면 조금 낯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늘과 구름을 배경으로 하여 고요히 머리 들고 있는 꽃송이를 한 번 상상해 보자. 그 때 꽃송이에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비록 짧은 순간의 생명일지언정 저 먼 하늘과 구름을 그리워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때 '하늘과 구름'은 꽃의 더없는 목숨에 비하여 유구한 삶을 암시한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움은 그리움에 그치고 만다. 꽃은 결국 꽃일 수밖에 없으며, 하늘이나 구름에게로 다가가지는 못한다. 이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간절한 그리움 때문에 꽃은 더욱 붉어져 간다. 그의 붉은 빛은 곧 마음 속에 있는 그리움의 드러난 모습이다.
이와 같은 시상의 흐름은 마지막 연에서 매우 강렬한 빛깔과 의미로 높여진다. 꽃의 생애가 가냘프고 짧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의 그리움이 다만 그리움만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꽃은 스스로의 삶을 버릴 수 없다. 그리하여 그는 비록 '저문 산 길가에 져 / 뒤둥글지라도' 있는 힘을 다하여 자신의 생명과 그리움을 마냥 붉게 불태운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끝까지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비극적 아름다움의 모습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어떤 독자는 이미 짐작하였겠지만, 이 작품에서 꽃은 꽃 자체이면서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 해당할 수 있으며, 더 구체적으로는 사람을 뜻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꽃의 짧은 삶, 그리움 그리고 붉게 타다 가는 환한 목숨 -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의 삶에도 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떤 심각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작가소개]
신석초 : 신응식 시인
출생 : 1909. 6. 4. 충청남도 서천
사망 : 1975. 3. 8.
학력 : 호세이대학교 철학
수상 : 1967년 예술원상
경력 : 1965~1966 한국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1965 한국시인협회 회장
1961 서라벌예술대학교
1960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작품 : 도서 9건
본명은 신응식(申應植), 일명 유인(唯仁). 호는 석초(石艸) 혹은 석초(石初). 충청남도 서천 출신. 아버지는 신긍우(申肯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향리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한학을 공부하다가 상경하여 192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신병으로 중퇴하였다. 이 무렵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다. 1931년 일본으로 건너가, 호세이대학[法政大學] 철학과에 입학,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사상의 영향을 받아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맹원으로 활약하였다.
이 무렵 프랑스문학 특히 발레리에 크게 심취하였으며, 1935년에는 『신조선(新朝鮮)』 편집일을 맡아보았고, 1948년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1954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1957년에는 논설위원 겸 문화부장에 취임하였다. 그 뒤 예술원회원(1960), 한국시인협회 회장(1965), 한국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1965∼1966) 등을 역임하였다.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그의 문단 활동은 1931년신유인(申唯仁)이라는 이름으로 『중앙일보』에 「문학창작의 고정화(固定化)에 항(抗)하여」를 발표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이 논문은 볼셰비키화한 카프의 창작방법론의 강요에 항의하는 내용으로서, 카프의 창작방법론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자신의 가정환경이나 발레리의 작품 「텍스트씨」를 읽은 감동 등으로 사상적 고민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박영희(朴英熙)의 전향선언과 함께 1933년 탈퇴원을 제출하고, 이듬해 카프의 해산과 함께 관계를 끓었다. 1935년 무렵부터 이육사(李陸史)와 알게 되어 막역한 지기(知己)가 되었고, 서정주(徐廷柱)·김광균(金光均)·윤곤강(尹崑崗) 등과 함께 1937년 ‘자오선(子午線)’ 동인으로 참가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다.
「호접(胡蝶)」·「무녀의 춤」을 『자오선』 1호에 발표하였고, 이어 1939년『시학(詩學)』지에 「파초(芭蕉)」(1호)·「가야금(伽倻琴)」(2호)·「묘(墓)」(4호) 등을 발표하였다. 『문장(文章)』과 『인문평론(人文評論)』이 폐간되자 침묵을 지킴으로써 친일 문학에 동조하기를 거부하였으며, 광복과 더불어 1946년 제1시집 『석초시집(石艸詩集)』을 간행하였다.
이어 1959년에는 제2시집 『바라춤』, 1970년 제3시집 『폭풍의 노래』, 1974년 제4집 『처용(處容)은 말한다』와 제5시집 『수유동운(水踰洞韻)』을 간행하였다. 그는 대체로 엄격한 구성과 고전적 심미성을 추구하는 작품 세계를 전개하여왔는데, 이러한 작품 세계는 발레리와 노장사상 사이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구축되고 있다.
즉, 사고의 조직성을 추구한 발레리(Valery,P.A.)의 엄밀성과 명석성을 형태적인 바탕으로 삼고, 여기에 노장사상의 출세간적 달관(出世間的達觀)의 경지를 담아 보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대체로, 과작에 속하는 그의 작품 가운데 45연 427행으로 된 장시 「바라춤」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시는 이승의 내적 갈등을 다룬 작품으로서 동양정신과 서구시적 요소의 이중적인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훈과 추모]
1969년 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석초 [申石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첫댓글 꽃잎이 지는 애절함에 봄날은 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