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혀진 풍경을 따라
이 상 기
푸른 5월 달이 "가정의 달"로 불리는 것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중에서도 어버이날에 의미를 더 두고 싶은 것이 나만의 심정일까?
「푸른솔 문학회」카페 방에 "푸른 5월은 가정의 달"이란 제하로 어린이날과 어버이 날 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는 글을 읽고 찡하는 자책감이 가슴을 저며 오는 것 같았다.
그동안 바쁘게 산다는 핑계로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은혜를 잊고 산지 오래 되었으니 말이다
국어사전을 보니, "효(孝)"란 "부모를 잘 섬기는 일"로 적혀 있는데, 그렇지 못하였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며칠 뒤, 부모님 산소에 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오근장역에 예약시간보다 여유롭게 도착하여 대합실에 앉아 잠시 쉬노라니, 벽에 걸린 액자에 "효(孝)"란 제목으로 이런 글귀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어버이 살아 신제 섬길 일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가끔 고향에 다녀올 때면 오근장역을 이용 하지만 이 글귀가 눈에 뜨이지 않더니, 오늘따라 크게 뜨이는 것은 웬일일까?
기차는 정시에 도착하고 지정된 좌석에 앉아 차창 밖을 보니, 산들은 엷은 연녹색 물감을 살짝 뿌려 놓은 것 같은 풍경들이며, 들녘은 온통 온기가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들이 언뜻 언뜻 스쳐가고 있었다.
기차는 증평역을 지나 고향을 향하여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반년 만에 부모님 산소를 찾게 되니 자연히 어머니에 대한 상념에 잠겨본다.
나는 5남매 중 막내로 어머님이 마흔에 낳았다고 한다. 막내 티를 내느라 일곱 살까지 젖을 먹었다고 하는데 후일 들은 이야기지만,
"재는 다 큰애가 창피하지도 않은지 만날 나오지도 않는 즈 엄마 젖을 늘 입에 달고 업혀 살아 ! 쯧 쯧쯧 !"하고 옆집 아주머니는 자주 놀려주곤 했다는 것이다.
또한 절기 마다 음식을 꼭 챙기는 어머니의 자상한 모습이며, 단옷날이 오면 며칠 전부터 바쁘게 동네 뒷산에서 취나물을 한 다래끼씩 뜯어다 살짝 삶아 멍석에 널어 말렸다가 주먹만 한 크기로 묶어 준비한 묵나물, 단옷날에는 취를 섞어 맛있게 만든 절편과 송편을 이웃집에 빼놓지 않고 돌렸는데 그 일은 내 몪이였고, 맛있는 떡을 입에도 대지 않아서 핀잔을 맞곤 했는데, 지금도 간혹 시장에 들러 떡을 사오지만 그때의 맛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일을 마치고는 창포(菖蒲)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단장을 하시면 곱던 그 머릿결 모습, 이러한 어머니의 생활은 자식에 대한 인애(仁愛)였으리라.
기차는 봉양역을 지나 종착역인 제천역이 다가옴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역시 고향에 오니 둥지 같이 마음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급한 마음에 일찍 서둘러 출구 창문 앞에 서 있노라니, 유리창에 내 얼굴이 보이다가 빙그레 웃으시는 부모님의 얼굴 모습이 번갈아 가면서 잠시 비춰지더니 사라지는 게 아닌가.
아! 어머니, 아버지하고 불러 보려는 목소리가 입가에 번지는 순간 내 뒤에 손님들이 줄지어 있음을 알았다. 기차는 멈추고 출입구에서 내려 홈에 서니 시원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는 느낌은 부모님의 마중은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역을 나오니 조카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산소에 도착하여 간단히 준비한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올리니,
"상기야! 어서 오너라! 그간 객지에서 아무 일 없이 잘 있었느냐." 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예, 저는 어머니, 아버지의 염려 덕분으로 잘 지냈지만, 그간 무고 하셨는지요. 자주 찾아뵙지 못하여 죄송합니다."라고 마음속 인사를 하고는 산소의 여기저기를 살펴 본 후,"효"란 글귀를 되 뇌이며 산뜻한 기분으로 하산하면서 뒤 돌아보니, 부모님이 손을 흔들고 계시는 것 같았다. 나는 목례를 하고는 발걸음을 뒤로 하였다.
* 지난 6월1일 발표.
많은 지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상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