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위즈의 시골학교 야구부 힐링 프로젝트
※ 이 기사는 6월 22일 게재된 ‘[박동희의 야구탐사] 시골학교 야구부의 기적과 비극’의 다음 이야기입니다.
10구단 ‘kt 위즈’ 조범현 감독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가족과 야구다. 그는 두 가치를 지키고자 지금까지 살았고, 자신과 같은 가치를 지키려는 이들을 응원해왔다.
7월 28일. 조 감독은 이날만은 야구 대신 가족을 택하기로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손자가 독일에서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월요일은 kt의 퓨처스 경기가 없는 휴식일이라, 조 감독은 손자를 데리고 경기도 용인의 모 놀이공원으로 갈 참이었다.
하지만, 아침 길을 나서는 조 감독의 복장은 놀이공원에 손자를 데리고 가는 할아버지의 옷차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깔끔한 유니폼 차림이었고, 머리엔 kt 마크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조 감독은 자신을 배웅하는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날 어둡기 전에 올테니까 쪼매 기다리고 있으라. 꼭 다녀와야 할 곳이 있데이.”
kt 코칭스태프 “오늘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맞이하는 날”
7월 28일 경기도 이천 모가중을 찾은 kt 조범현 감독(사진 가운데)과 코칭스태프 |
같은 날 오전. 모가중 체육교사 고한이는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방학이라, 학교에 나올 이유는 없었다. 굳이 핑계를 댄다면 전주(前週)에 다녀온 연수 결과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 정도.
그러나 정작 고 교사를 학교로 이끈 건 반가운 손님들의 방문이었다. 고 교사는 ‘프로야구 10구단 kt 위즈 코칭스태프가 학교로 찾아올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날만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2012년 모가중에 야구부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이 시골학교에 누가 오겠어?’ ‘가만 있어도 월급 따박따박 나올 텐데, 아이들 가르치는 데만 신경 쓰지 뭐하러 머리 아프게 야구부 창단에 나서느냐’ 식으로 말렸어요. 하지만, 어떻게든 전교생 숫자를 늘려 학교의 명맥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죠. 여기다 운동을 통해 아이들이 건강한 학교생활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했어요. 그래 야구부를 만들려고 동분서주했고, 우여곡절 끝에 야구부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성남시장기 대회에서 창단 7개월 만에 우승까지 했어요.
하지만, 아쉬운 게 있다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야구부가 큰 어려움에 직면했는데도 야구계 어느 분도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그러던 차에 kt 코칭스태프 분들이 우리 학교를 찾아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저도 저지만, 모가중 야구부원들이 야구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울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는 모가중 야구부 김완수 감독의 생각도 같았다.
“모가중 야구부 아이들은 야구의 꿈을 키우려고 여기까지 온 친구들이에요. 그런데 어른들의 욕심과 반목 때문에 아이들의 꿈이 사라질 뻔했습니다. 아이들이 고통받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제가 밉더군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더 큰 꿈을 제시해줄 수 없다는 게 늘 미안했어요. 그러다 kt 조범현 감독님과 코치분들이 학교로 찾아와 아이들을 지도해주시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고난을 참고 견디니까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어 눈물이 날 것 같더군요.”
고 교사와 김 감독은 kt 코칭스태프의 방문을 알고 있었지만, 모가중 학생선수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조 감독이 그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간다고 하면 또 아이들이 훈련도 못 하고 기다리고 있을 거 아닌가. 늘 아이들이 어른을 맞이하는데, 오늘만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야구를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경의의 표시다. 우리가 조용히 학교로 찾아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아이들이 훈련하러 운동장에 왔을 때까지 이야기하지 말아줬으면 좋갰다.”
조범현 kt 감독이 모가중을 찾게 된 배경
조 감독은 직접 포수 시범을 보이며 아이들을 열정적으로 지도했다. |
조 감독이 모가중 야구부 지도를 마음먹은 건 7월 중순이었다.
그즈음 기자와 만난 조 감독은 대뜸 “모가중 아이들 우찌 됐노?”하고 물었다. 기자의 “기사 읽어보셨어요?”하는 말에 조 감독은 “읽다 뿐이야. 내 모가중 잘 안다”하고 말했다. 사연은 이랬다.
2011시즌을 끝으로 조 감독은 KIA 유니폼을 벗었다. KIA를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2011년 포스트 시즌 진출로 이끌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감독님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이제 팀에서 나가주시지요’하는 해임 통보였다. 성적이 나쁜 것도, 계약기간이 다 된 것도 아니었던 터라, 야구계는 ‘납득할 수 없는 해임’이라 규정했다.
하지만, 조 감독은 KIA에서 나오며 말을 아꼈다. 자신을 버린 구단을 원망하지 않았다. 누굴 탓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자신이 몸담은 팀에 대한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퇴임 후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야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지독히도 추웠던 2011년 겨울. 조 감독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국의 초·중·고 야구부를 돌 계획이다. 내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도움을 주고 싶다. 돈도 필요 없고, 명예도 생각하지 않는다. 야구로부터 받은 은혜를 야구로 돌려줄 수 있는 무대라면 어디든 마다치 않고 갈 생각이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부족했던 점이 무엇인가도 되돌아볼 참이다.”
조 감독은 자신의 결심을 말로만 되풀이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는 행동으로 결심을 실천했다. 해가 바뀌고.
조 감독의 바람이 이뤄졌다. KBO 육성위원장에 선임된 것이다. 초·중·고 야구부 활성화를 위해 조직된 KBO 육성위는 ‘야구로부터 받은 은혜를 야구로 돌려주겠다’는 조 김독의 바람과 정확히 들어맞는 곳이었다.
물론 오해의 소지도 있었다. 육성위원장은 유급이었다. 몇천만 원을 받는 자리였다. 조 감독은 오해의 싹을 쳤다. 무급으로 일하겠다고 했다. 주변에선 “그 돈을 받아 야구계에 기부하면 되지 않느냐”고 만류했지만, 그는 “그 돈은 KBO가 알아서 요긴하게 쓰면 된다”며 "내일부터 전국을 돌며 아이들을 순회 지도하겠다"고 선언했다.
조 감독에게 아마추어 야구현장 순회는 큰 의미가 있었다. 화려한 프로생활만 하던 그에게 아마추어 야구는 ‘언제 고사할지 모르는 위기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열악’ 그 자체였다. 하지만, 위기와 열악 속에서 조 감독은 희망을 발견했다.
“대구지역 중학교에 찾아갔을 때다. 덩치는 좋은데 정말 실력이 형편없는 중학교 포수를 만났다. ‘니 포수 누구한테 배웠노?’ 물었더니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아무도 없슴더. 독학했심더’ 했다. 속으로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그 친구한테 매달려 포수가 무엇인지를 가르쳤다. 다음날 봤더니 전날 가르친 걸 금방 따라 하더라. ‘조금만 더 지도하면 되겠다’ 싶어서 또 하루종일 그라운드에서 그 친구와 뒹굴었다. 몇 달이 지난 다음 중학교 경기를 우연히 보게 됐다. 참 포수가 잘하더라. 아니 그런데 그 포수가 누구였는지 아나? 내가 이틀 동안 뒹굴면서 가르쳤던 바로 그 아이였다.”
KBO 육성위원장 시절 전국을 돌며 야구소년들을 지도했던 조 감독 |
조 감독은 당시가 떠오른 듯 “학교가 아담하고, 예뻤다”며 “이런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야구와 공부를 병행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든 도와주자고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조 감독은 그렇게 했다. 모가중에 찾아간 조 감독은 학교 구성원들의 야구 열정과 교육열을 직접 확인한 뒤 KBO로 돌아와 모가중 지원 당위성을 설명했다. 덕분에 모가중은 KBO로부터 창단 지원금 1억5천만 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게 인연이 돼선지 조 감독은 이후로도 모가중에 관심을 뒀고, 지난 6월 모가중 기사를 읽은 뒤엔 자기 아이들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조 감독이 이천 주민이라는 것도 모가중에 더 관심을 두게 된 배경이었다.
“우리 집이 모가중에서 20분 거리에 있다. 내 이웃의 아이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늘 마음 아팠다. 경기가 없는 날, 아이들을 찾아가 짧은 시간이나마 야구도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줬으면 좋겠다. 그게 같은 이천 주민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 생각한다.”
기자와 헤어지며 조 감독은 “휴식일에 맞춰 모가중에 찾아가고 싶다”며 “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니 조용히 일정을 잡아달라”고 당부했다.
시골중 야구부원들이 되찾은 웃음과 미소
고난과 시련을 뚫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모가중 야구부원들
조 감독이 모가중에 도착한 건 오전 9시였다. 조 감독은 차에서 내려 모가중을 둘러본 뒤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 알았으면 더 일찍 오는 건데…”하며 자책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조 감독의 한숨과 달리 모가중은 이전엔 느낄 수 없던 생기가 돌고 있었다.
기자가 처음 모가중을 찾은 6월 초만 해도 학교는 수액이 끊긴 나무처럼 생명감이 없었다. 기자를 반긴 건 학교 여러 곳에 설치된 CCTV가 유일했다.
아이들은 기자와 마주치면 종종걸음으로 피했고, 학교 선생님들은 한숨만 내쉴 뿐 학교의 구체적 상황을 설명하길 꺼렸다. 마을 주민들 역시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혹여 김00 교장 선생님께 고소당할지 모른다”며 말문을 닫았다.
한 달 전까지 모가중은 그랬다. ‘보이지 않는 절대 권력’에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진실과 마주치길 꺼리는 곳이었다. 정직하게 말해 ‘갑(甲)’의 목소리만 전달되는 ‘일방통행식 교육현장’이었고, 그 목소리에 이의를 제기하면 당장 고소장과 고발장이 날아오는 공포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기사가 나가고 많은 이가 모가중에 관심을 나타내며 학교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첫 변화는 교장의 직위해제였다. 경기도교육청은 몇 박자나 늦은 감사 끝에 모가중 김00 교장을 직위해제하며 교감을 교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교장과는 다른 입장에서 학교 정상화에 노력했던 교감이 교장 직무대행으로 선임되자 학교는 뱀이 허물을 벗듯 과거와 단절했다.
모가중 아이들이 훈련을 앞두고 장비를 정리하고 있다 |
특히나 교감 선생님은 “야구부 아이들이 어른들의 관심과 보호 속에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며 “학교 구성원들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 동의가 이뤄진다면 그간 학교의 반대로 폐쇄됐던 교내 기숙사를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변화는 학교 선생님들이었다. 조 감독이 학교를 방문한 날, 공교롭게도 모가중 선생님들은 방학인데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조 감독을 반갑게 맞이하며 “학교가 정상화되고 있는 만큼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겠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선생님들이 솔선수범하겠다”고 다짐했다.
그간 모가중 선생님들은 김 교장의 방침과 요구에 이의를 제기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아이들을 잘 지도해도 선생님들의 근무 평점을 매기는 핵심 주체가 학교장인지라, 학교장에 저항했다간 자칫 승진·급여·보직에서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었다.
실례로 ‘학생부장·진로진학부장·체육부장·3학년 부장·3학년 담임·야구부장’ 등 1인 6역을 맡았던 고한이 교사는 김 교장과 끝까지 각을 세우다 모든 보직을 박탈당한 바 있었다.
세 번째 변화는 모가중 야구부 학생 선수들이었다. 오전 10시에 학교 운동장에 도착한 아이들은 한 달 전의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아이들은 ‘야구부가 해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떨었고, ‘불법 전입자’란 딱지 때문에 언제 야구부에서 쫓겨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영원히 대회에 출전하지 못할까 속으로 눈물과 한을 삼키던 아이들이었다. 그래선지 아이들과 마주치면 아이들은 기자의 눈을 마치 암 선고를 내리려는 의사을 보듯 피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모가중 야구부원들의 표정은 달라도 한참이나 달라져 있었다. 아이들은 계속 야구를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떠 있었고, 정든 학교를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기뻐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뛰고 놀며 미소짓고 땀흘리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
마지막 변화는 마을 주민들이었다. 기자와 만난 마을 주민들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마음고생이 심하다는 건 알았지만, 기사와 방송(SBS '궁금한 이야기 Y')을 보고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며 “우리 지역의 자랑인 모가중과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 매우 미안하고, 한편으론 제대로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조범현 kt 감독 “야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전 10시 30분. 학교 장비를 정리한 모가중 야구부원들은 학교 본관 앞에 모여 자신들을 찾아온 손님들을 반길 채비를 했다. 이때까지 아이들은 누가 자신들을 찾아왔는지 몰랐다. 이윽고.
학교 본관 현관을 통해 조 감독과 이광근 kt 수석코치, 정명원 투수코치, 이숭용 타격코치가 등장하자 아이들의 눈이 단춧 구멍처럼 동그래졌다.
조 감독은 “어른들이 관심을 기울여 보지 않을 때 여러분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낙담했는지 잘 알고 있다”며 “오늘만은 우리 kt 코칭스태프가 관심을 갖고 여러분들을 지도할 테니, 그간 야구에 대해 궁금했거나 몰랐던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말했다. 덧붙여 “장래 국가대표 선수가 될 여러분을 만나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했다.
[영상] 모가중 야구부 소년들, kt 위즈를 만나다
곧바로 이어진 야구 강습에서 조 감독과 코치들은 파트별로 나눠 열심히 학생선수들을 지도했다. 이광근 수석코치는 열정적으로 주루를 가르쳤고, 정명원 투수코치와 이숭용 타격코치는 투구와 타격을 세심하게 지도했다.
조 감독도 예외는 아니었다. 포수들을 불러모아 직접 시범을 보여주며 아이들의 연습을 독려했다. 특히나 야구 감독 선배로서 김완수 감독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조 감독은 “지금 주어진 환경이 어렵다고 주변의 동정심에 기대거나 누군가의 도움에 의지해선 절대 안 된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독은 팀과 선수를 믿고, 선수단 모두를 책임져야 한다”며 “감독은 ‘팀의 선장’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kt 코칭스태프의 야구 지도는 34도의 뙤약볕에서 4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kt 코칭스태프가 방문했을 때 ‘사진만 찍고 가겠지’했던 학교 관계자는 “프로 지도자분들이 이렇듯 성의껏 아이들을 지도해줄지 몰랐다. 쉬면서 지도하셔야 할 텐데···”하며 미안한 마음 반, 감사한 마음 반의 속내를 내비쳤다.
kt가 준비한 건 코칭스태프의 야구 지도만은 아니었다. kt 홍보팀은 야구공을 잔뜩 들고왔고, 학교 측에 “부족한 야구 장비가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달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코칭스태프의 야구 지도에 앞서 조 감독은 “작은 성의를 준비했다”며 선수단에 격려금을 전달했다. 김 감독이 “찾아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조 감독은 “특별한 금일봉”이라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kt 선수들이 1만 원씩 모은 돈이다. ‘모가중 야구 후배들이 맛있는 거 먹고서 힘냈으면 좋겠다’는 선수들의 뜻이 담긴 격려금이다. 선수들이 시즌 중이라, 찾아오지 못해 내가 대신 전달하는 것이니 꼭 받아달라.”
아이들은 TV에서만 보던 유명 야구선수 출신의 지도자들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는다는 게 마냥 신기한 듯했다. 한 학생 선수는 “초교 때부터 이숭용 선배님처럼 훌륭한 선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실제로 이숭용 선배님을 보니 꿈을 꾸는 것 같다”며 “내 머릴 쓰다듬어주시며 ‘잘하는데’라고 칭찬하실 때 갑자기 가슴이 울컥했다”고 고백했다.
이숭용 kt 코치가 모가중 아이들의 타격을 지도해주는 장면 |
덧붙여 조 감독은 김 감독의 손을 잡고서 연방 “야구를 지켜줘 고맙다”며 “이 아이들 가운데 국가대표 선수와 바른 시민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도해달라”고 당부했다.
야구부 정상화에 힘쓴 이들
목동구장에서 모가중 학부모들이 야구부 사태와 관련해 피켓을 들고 있는 장면. 학부모들은 모가중 사태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도 폭력 대신 인내, 무리한 요구 대신 모두가 상생하는 타협안만을 제시했다. 특히나 다른 학부모들에게 폐가 될까 늘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모가중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한 이들은 kt 뿐만이 아니다. 모가중 사태가 터지고, 각계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KBO 육성위원회는 학교에 찾아가 진상 파악에 나섰고, 대한야구협회는 사무국장이 내방해 학교장과 대화를 나누며 사태 해결에 나서기도 했다. 허구연 KBO 야구실행위원장 역시 사태 해결에 나설 수 있는 여러 기관에 직접 연락해 ‘아이들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프로구단에선 넥센이 큰 도움을 줬다. 넥센은 경기도 교육단체에 모가중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부탁했고, 한창 학교장과의 갈등으로 아이들이 야구에 대한 꿈을 잃어갈 땐 모가중 학생선수 전원을 목동구장으로 초청해 프로 선수들의 경기를 보도록 배려했다.
케이블스포츠TV MBC SPORTS+에서도 목동구장에서 모가중 야구부 학부모들이 작은 피켓을 들고 ‘사태 해결을 위해 야구팬들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자 중계 시간을 할애해 학부모들과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오늘 걷는 그길이 내일의 그라운드다. |
모가중 야구부원의 부모 K씨는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찾아가 ‘우리 아이들의 꿈을 지켜달라’고 호소할 땐 들은 체 만 체하던 경기도교육청이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황급히 감사 결과를 내놓으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제야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고 밝혔다.
6월 26일. ‘조만간 감사 결과가 나올 것’이란 이야기를 들은 건 고한이 교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고 교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2년간 아이들이 마음고생 했던 일들이 투명하게 공개될 것 같다”며 “경기도교육청에서 시시비비를 잘 가려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은 모가중 야구부가 성남시장기 초·중·고 야구대회 준결승전에 오른 날이기도 했다. 만약 준결승에서 이기고, 결승에 오른다면 우승을 노려볼 만했다. 가뜩이나 성남시장기대회는 2012년 창단 첫해 루키팀이던 모가중에 ‘기적의 우승컵’을 안겨줬던 대회라, 모가중 야구부에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야구부의 대회 참가에 미온적이던 김 교장의 방침 때문에 하마터면 이 대회에 참가하지 못할 뻔 했던지라, 김완수 감독과 아이들은 ‘우승으로 한을 풀자’고 굳은 결심을 한 터였다.
갖은 고난과 역경에도 준결승에 진출한 모가중 야구부는 7회 초까지 3대 0으로 앞섰다. 7회 말만 잘 버티면 결승 진출이었다.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학부모로부터 ‘7회 초까지 앞서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고 교사는 저도 모르게 “야호!”하고 함성을 질렀다.
그때였다. 고 교사는 경기도교육청에서 감사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 교사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역시 좋은 일이 겹치는 구나'하며 다시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한 통의 전화를 받은 고 교사는 맥없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불끈 쥐었던 주먹도 말라버린 줄기처럼 금세 힘을 잃었다.
교육의 역습
경기도교육청의 징계 공문. 경기도교육청의 징계로 인해 전국 80%에 달하는 학교 운동부 담당 교사와 학교 관리자는 전부 징계감이 됐다.
“감사 결과를 듣고 처음엔 믿질 못했어요.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더군요. 하지만, 모두 현실이었어요. 감사 결과가 뭐였느냐고요? ‘현 교장 선생님을 제외한 저와 전(前) 교장 선생님, 전(前) 교무부장 선생님, 현 교감 선생님, 학교 행정실장님, 직원 분 등 총 5명을 징계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사실이었다. 경기도교육청은 2012년 모가중 야구부 창단에 관여했던 학교 관리자와 교사, 직원들을 징계한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마을 주민들과 학부모들이 징계를 요청했던 김 교장은 징계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경기도교육청이 김 교장이 제기한 문제를 모두 수용한 데 반해, 마을주민과 학부모들이 제기한 문제는 철저히 외면했다는 데 있었다.
기자가 입수한 경기도교육청 징계 자료를 보면 징계 사유는 ‘1. 운동부지도자(일반코치) 채용 규정 위반, 2. 야구부학생 일반 전·편입학 규정 위반, 3. 중학교 야구부 합숙훈련 금지 법규 위반’ 등이었다.
경기도교육청은 상기 사항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전임 교장에겐 ‘중징계 의결 요구’, 현 교감에겐 ‘경고’, 전 교무부장에겐 ‘주의’, 고 교사에겐 ‘경고’, 학교 행정직원에겐 ‘주의 요구’ 처분을 내렸다.
고 교사는 “도교육청이 징계 사유로 열거한 사항들은 김 교장이 이천시교육청에 제출한 <모가중학교 운동부 운영 특별감사 요청서>에서 문제 삼은 것들”이라며 “도교육청이 김 교장의 주장을 100% 수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 역시 사실이었다. 기자와 인터뷰한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은 “보통 학교에선 자기 학교 선생님들이 설령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학교 내부에서 해결하려 하지, 교장이 자기 선생님들을 조사해달라고 교육청에 감사 신청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며 “어쨌거나 김 교장이 이천시교육청에 ‘학교 야구부가 불법·부당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진정을 내서 그 내용을 바탕으로 감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전임 학교장이 임의적·독단적으로 야구부를 창단·운영한 정황이 발견돼 당시 야구부 창단과 운영에 관여한 학교 관계자들에게 징계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징계에서 김 교장이 빠진 이유에 대해선 “모가면 주민들과 학교 운영위원회, 학부모들이 도교육청에 <모가중 교장 퇴진을 위한 진정서>을 제출해 감사를 나가긴 했지만, 김 교장이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제점을 찾기 어려웠다”며 “‘김 교장을 조사해달라’고 진정서를 제출한 분들이 정작 우리가 감사를 나갔을 땐 ‘김 교장과 대화로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고 말해 더는 감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모가중 야구부를 지도한 kt 코칭스태프는 "모가중 감독, 코치님이 제대로 아이들을 지도한 것 같다"며 "생각보다 기본기가 뛰어나고, 몸도 좋아 체력만 키운다면 고교에 올라가면 눈에 띄는 학생 선수가 될 것 같다"고 평했다. |
기자의 취재 결과 도교육청에 감사팀에 그와 같은 말을 한 이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도교육청 관계자 역시 “그런 뉘앙스로 이야기를 들었지만, 주민들이 그게 아니었다고 강변하면 우리도 할 말은 없다”고 한발 물러났다.
도교육청의 ‘현 교장이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제점을 찾기 어려웠다“는 답변 역시 설득력이 떨어졌다. 지난해 3월 1일 모가중에 부임한 현 교장은 4월부터 학부모들과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6월부터 주민들과 심각한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모가면 주민과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 등 700명이 “김 교장이 부임한 뒤 학교장의 일방적인 독선과 독단적인 학교 운영으로 모가중 및 모가면 지역 발전이 현저한 지장을 받고 있다. 학교와 지역발전을 위해 공모교장을 선임해달라”고 요청하며 도교육청에 진정서를 낸 건 김 교장 부임 6개월 만의 일이었다.
도교육청 감사팀이 감사를 나온 시점 역시 한창 주민, 학부모들과 김 교장이 갈등을 빚던 지난해 10월이었다. 한 주민은 “그런데도 ‘문제점을 찾기 어려웠다’는 도교육청의 답변은 ‘제대로 감사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자 ‘처음부터 감사할 생각이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잘 해결하겠습니다’는 도교육청의 말만 믿고 1년을 기다린 우리가 바보였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도교육청이 밝힌 ‘김 교장이 제기한 감사 결과가 1년이 지난 올해 6월 하순에야 나온 이유’ 역시 납득하기 어려웠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이천시교육청이 우선 감사를 시작하고, 경기도교육청은 10월부터 감사에 들어가 다소 시간이 걸렸다”며 “말 못할 사정도 있었다”고 답변했다.
대체 말 못할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도교육청 관계자는 “감사할 게 많으면 이렇게 시간이 늦춰질 때도 있다”며 “부족한 감사 인원 속에서 최선을 다해 감사하다 보니 발표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가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아무리 감사할 게 많아도 단위 학교 감사가 1년씩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라고 하자 “전임 교장과 현 교장간 소송이 진행 중이란 이야기를 듣고 잠시 감사 진행을 멈췄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전임 교장과 현 교장간의 개인적 소송과 감사 결과 발표가 어떤 연관이 있는가’란 질문엔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2014년 2월까지 모가중 야구부가 사용하던 교내 기숙사. 하늘색 표시가 현 교장이 '전임 교장과 학부모들이 불법증축했다"며 교육청에 특별 감사 신청한 부분이다. 이곳은 아이들의 신발장과 보일러실을 설치한 부분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도교육청의 징계 사유도 모순 투성이다. 도교육청은 고한이 교사를 비롯한 전·현직 학교 관계자에게 ‘학교 내 미술실을 사전 용도·변경 절차 없이 증축하여 야구부 학생들이 숙박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는 이유로 징계 처분을 내렸다.
당시엔 기숙사 설치 시 지역교육청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 측이 교내 미술실을 교육청의 허가 없이 임의로 용도·변경 증축했다면 분명 문제가 될 일이었다. 하지만, 2013년부터 기숙사 설치는 교육청 허가에서 학교장 재량으로 바뀌었다.
고 교사는 “법이 바뀐 지 2년이 지났는데도 2년 전 법으로 징계를 내렸다는 건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라며 “지난해 미술실을 합법적인 기숙사로 용도·변경하려 했을 때 그걸 막은 분은 다름 아닌 김 교장이었다”고 주장했다.
기숙사 존폐를 놓고 김 교장과 야구부 학부모들이 갈등을 빚었을 때 '기숙사 내부를 내화성 구조로 변경하고, 소화기 설치 등 몇 가지 문제점을 보강한 뒤 용도·변경 신청 및 승인절차를 거치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답변한 건 지난해 도교육청이었다. 그걸 믿고 고 교사와 야구부 학부모들이 용도 변경을 신청하려고 했을 때 이를 막은 이는 고 교사의 말대로 현 교장이었다.
도교육청은 ‘비합법적 기숙사 설치·운영’의 책임을 물어 전·현직 학교 관계자에게 징계를 내렸지만, ‘합법적 기숙사 용도 변경’이 가능함에도 이를 행하지 않은 김 교장에겐 아무 책임도 묻지 않았다. 또 어째서 합법적 기숙사로의 전환이 가능한데도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지 향후 관리·감독 관리하지 않은 건 도교육청 자신이었다(학부모들은 수차례에 걸쳐 도교육청에 ‘교장 선생님이 합법적 기숙사로의 전환을 막고 계신다’고 하소연했었다.)
더 큰 모순은 기숙사 운영 자체에 있었다. 도교육청은 교육법을 근거로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 및 신체적·정서적 발달을 위하여 학기 중의 초·중학교 운동부의 상시 합숙훈련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도교육 지침서엔 ‘원거리에서 통학하는 학생 선수를 위하여 기숙사 운영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운동부 기숙사의 합숙을 원천 금지하면서 원거리에 통학하는 학생 선수를 위해 운동부 기숙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한 지방도시 교육청의 체육 담당 관계자는 “2년 전 상급 교육청에 ‘원거리 학생 선수를 위해 기숙사를 신축하려는 학교가 있다. 설치 운영이 가능하느냐’고 질의했더니 ‘기숙만 하고, 야간 훈련은 하지 않으면 된다’고 답변해와 ‘정확히 야간훈련이면 몇 시부터 훈련을 하지 말라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기숙사에서 사는 학생 선수들이 방과 후 훈련을 하게 되면 그것도 합숙훈련이라고 봐야 하느냐’고 묻자 ‘우리도 잘 모르겠다. 머리 아프시면 기숙사 설치를 허락하지 마세요’라고 답변하더라”며 혀를 찼다.
교육계와 체육계의 판도라 상자 ‘위장전입’
올 초 김 교장은 전체 학부모가 받아보는 가정통신문에 야구부원들의 성적 현황을 공개했다. 야구부 학부모들은 "왜 다른 아이들 성적은 빠져 있고, 야구부 아이들 성적만 공개하셨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천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전체 학부모들 대상으로 보내는 가정통신문에 야구부원들의 성적만 공개한 건 학생인권에 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만약 주민등록법상의 주소에 실제 거주하지 않는다면 위장전입이 맞다. 현행 주민등록법상 위장전입으로 드러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 1천만 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범죄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범죄자가 되도록 강요한 건 부실한 교육법과 학교였다.
고 교사는 “아이들이 교내 기숙사로 주소를 옮겼다면 주민등록법상 거주지와 실제 거주지가 일치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교내 기숙사가 김 교장의 반대로 사라지며 아이들이 모가면 여기저기에 주소만 올리고, 실제 거주는 외부 기숙사(이곳은 학생선수들의 주소 이전이 불가하다)에서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분개했다.
전체 가족 이주, 즉 전체 세대 전입만을 강요하는 교육법도 문제다. 현 교육법상 학생이 지방 학교에 다니려면 해당 학생을 포함한 전체 가족이 지방 학교 인근으로 주소를 옮겨야 한다. 하지만, 자가주택을 소유하거나, 부모의 근무지가 서울일 때 전가족이 지방으로 주소를 옮겨야한다는 건 재산권과 생계, 다른 자녀의 학습권을 포기하란 소리나 마찬가지다.
모가중 아이들은 실제적으로 '원거리 학생들'이다. 다른 시골학교 운동부원들 역시 비슷하다. 대부분 대도시에 사는 부모·형제와 떨어져 혼자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이 아이들에게 '실제 주소와 주민등록상 주소가 다르다'는 이유로 '위장전입자'라는 주홍글씨만 새길 줄 알았지, 정작 '원거리 학생들'인 이 아이들이 기숙사 입소를 요청하면 '주소가 학교 인근인 근거리 학생'이라는 이유로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이런 모순은 대한민국 체육 행정의 냉정한 현실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김 교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학생 선수가 학교로 전학 올 때마다 “전체 가족이 모가면으로 이주한 전세대 전입이 맞느냐”고 깨물었고, 학생 선수의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적접 방문해 위장전입 여부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하지만, 김 교장은 학생 선수의 부모에게 ‘부분 세대 전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고, 실제 부분 세대 전입을 통해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전학 온 구 모 군에게 "전체 세대 전입를 하지 않았다"며 전출 압박을 가했다.
일선 학교 운동부 담당 교사들은 “부분 세대 전입이라도 부모 중 한 명은 아이와 함께 주소를 옮겨야 하기에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며 “강남 8학군 위장전입과 시골학교 운동부 위장전입을 똑같이 취급하는 현 교육법상에선 전국의 학생 선수 대부분이 위장전입자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지역 중학교 야구부 담당 교사는 작심한 듯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교육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교수나 학자들은 대개 미국, 유럽 유학파들이다. 미국과 유럽은 지역 체육과 클럽 체육이 활성화된 나라들이다. 어느 마을이나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체육 인프라가 갖춰져 있고, 예산도 풍부하다. 거기다 소득 수준이 높아 체육에 자비 투자를 많이 한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학교가 청소년과 엘리트 체육의 근간이다. 학교 운동장과 체육관이 아니면 사실상 체육을 할만한 장소가 없다. 지역 및 클럽 체육 활성화를 위한 정부 예산지원도 적다. 무엇보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체육 교육에 큰돈을 쓰기 어려운 구조다. 그런데도 위정자들과 일부 용역 교수 및 학자들은 별 고민 없이 우리와 사정이 다른 미국과 유럽식 청소년 체육만을 강요한다.
어느 미국 유학파 교수님을 만났더니 ‘왜 아이들이 위장전입까지 하면서 야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 교수님께 학교에 고교 야구부가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고 물으니 대답을 못했다. 인구 4천900만 명의 대한민국에 당시 고교 야구부라곤 달랑 53개교였다. 전국 각지에 고교야구부가 있다면 위장전입자가 나올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전국에 고교야구팀이 53개교밖에 없는 현실에서 야구를 계속 하고 싶은 아이들은 자신이 뛸 야구부를 찾아 지방까지 내려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초교 야구부보단 중학교 야구부가 적고, 중학교 야구부보단 고교 야구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기형적인 피라미드 구조에선 더하다.
진정 교육을 바로 세우고 싶다면 더는 아이들을 위장전입자로 몰아선 안 된다. 그 아이들이 합법적으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다.“
이 교사는 “대한민국 학교 운동부의 80% 이상이 위장전입 학생 선수들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이제 교육계 전체가 직시할 필요가 있다“며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위해서라도 운동부 위장전입 문제를 과감하게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사는 인터뷰 말미에 “모가중 전·현직 선생님들이 학생 선수들의 위장전입 문제로 징계를 받은 이상 새로 운동부를 창단하려는 학교들은 원래 계획을 포기하거나 창단을 구체화한 학교에서도 징계가 두려운 선생님들의 반대로 무산될 게 자명하다”며 “학교 운동부를 마뜩잖게 생각하는 이들이 교육청에 투서를 보내 학생 선수의 위장전입을 신고한다면, 결국 많은 아이와 선생님들이 강제 전출과 징계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마추어 야구부는 한국 야구계의 아마존이다.
모가중 아이들 가운데 장래 제2의 이승엽, 추신수, 류현진이 나올지 모른다. 어른들이 할 일은 아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꽃피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기회와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야구인들은 패를 나눠 '게임 초상권 싸움'에 주력하고 있고, 결국 자기의 공명과 안위를 위한 진정성 없는 쓴소리만 남발하고 있다.
기자는 취재를 끝내고 돌아오며 조 감독이 모가중 아이들과 김 감독에게 고갤 숙이며 했던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건 바로 “야구를 지켜줘서 감사합니다”란 말이었다.
많은 야구인이 틈만 나면 ‘야구 발전’과 ‘아마추어 야구 활성화’를 외치지만, 실제 야구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는 거의 없다. 모가중이 외로운 싸움을 펼칠 때도 KBO, 대한야구협회 그리고 극소수의 야구인이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섰지, 정작 ‘야구 발전’과 ‘아마추어 야구 활성화’를 외치던 야구인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모가중 같은 중학 야구부는 한국 야구계에겐 아마존과 같은 곳이다. 울창한 산림의 아마존에서 생산하는 산소의 양이 지구 전체의 산소량 20%를 담당하듯 한국 야구는 초·리틀·중·고·대학 등 아마추어 야구계가 배출하는 유망주들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 그렇다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아마추어 야구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 kt 조범현 감독처럼 낮은 자세로 아마추어 야구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뻗고,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해야 한다. 그래야 ‘제2의 모가중’ 사태가 재발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의 꿈이 프로 그라운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교육계도 마찬가지다. 일부 교수들의 뜬구름 잡는 체험담과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강단의 연구 결과에 의지하지 말고,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 교육법을 재정비해야 한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학교 운동부 기숙사 운영을 허락하되 엄격한 학사 지도·감시로 ‘운동 기계 양산'을 막는 한편 안전한 학교생활을 유도하고 있다.
한국이라고 법이 없는 건 아니다. 이미 ‘최저 학력제’를 둬 학력 수준이 미달일 경우 대회 출전을 막고 있다.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구현한다면 우리도 '운동 기계 양산 방지'와 '안전한 학교생활' 두 마리 토끼를 좇을 수 있을 것이다.
모가중 야구부가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간명하다. 어른들의 욕심과 아집보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소중하다는 것과 어른들이 관심을 보일 때 비로소 우리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 취재 후 +
모가중 야구부 창단 주역인 고한이 교사는 경기도교육청의 징계에 이의를 제기할 참이다. 그리고 내년에도 모가중에 남는다면 야구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할 계획이다.
김완수 야구부 감독은 중3 졸업반 학생 선수 전원의 진학 지도를 끝마쳤다. 김 감독은 “학교에 우환이 많았는데도 아이들이 열심히 노력해줘 10명 전원을 야구부가 있는 고교로 보내게 됐다”며 “교감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겠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요즘 부쩍 힘이 난다”고 환하게 웃었다.
다만, 김 감독은 “중3 야구부원들이 고교 진학을 위해 2학기에 전학을 가게 되면 리틀야구에서 뛰던 중1 전학생들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처럼 위장전입 논란이 지속되면 또 다른 선생님이 야구부를 도와주다가 징계를 받을지 모른다”며 “제도적으로 전·입학 규정이 바뀌지 않는 한 아이들은 계속 ‘위장전입자’라는 압박 속에서 불안한 학교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김 교장의 반대로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던 전학생 구기준은 성남시장기 중학야구대회에서 대타로 나와 첫 안타를 기록했다. 기준이를 지도한 이숭용 kt 타격코치는 “기본기가 탄탄한 친구”라고 칭찬한 뒤 “나중에 프로에서 보자”며 기준이의 등을 두들겼다.
경기도교육청은 김 교장에 대한 징계 처분을 준비 중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7월 17일자로 김 교장을 직위해제했고, 만약 김 교장이 도교육청의 직위해제와 관련해 이의를 제기한다면 8월 17일 안에 입장(소청)을 밝혀야 한다”며 “김 교장의 소청 내용이 합당하지 않을 시 중징계 의결 절차를 거쳐 최종 징계 처분안을 확정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모가중 학부모들과 주민들은 입을 모아 “다시 한 번 경기도교육청이 ‘문제 학교 관리자’를 낙하산 투입하듯 모가중 같은 시골학교로 보낸다면 그땐 절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며 “김 교장이 다른 학교에 가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이참에 도교육청이 확실하게 처리해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직위해제된 김 교장은 두문불출하고 있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경기도 이천경찰서 관계자는 “김 교장이 야구부 학부모 고소에 이어 깜짝 놀랄 만큼의 추가 고소를 했다”며 “모가면이 생긴 이래 이렇게 많은 고소건이 제출된 건 처음”이라고 밝혔다.
한편 kt 조범현 감독은 모가중 아이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린 뒤 그날 저녁 손자와 함께 놀이공원을 찾았다. 조 감독은 이날 모가중 아이들과 손자를 통해 다음 세대의 희망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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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다행이면서도 씁쓸하네요.. 저런감사결과와 진행과정이라니...
좋은결말이지만 다시는 반복되지않았으면
하는 일인것 같습니다 어른들의 무능과
무관심이 아이들의 꿈을 꺽진 말아야죠
가재는 게 편이요, 초록은 동색이라고... 감사 결과과 참... ㅉㅉㅉ
저 결과로 인해 아이들의 꿈이 꺽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여전히 우리나라 교육계에는 좋은 스승보다 나쁜 그저그런 어른들이 많다는 사실이 가슴 아픕니다..좋은 스승들뒤에서 기생하며 주인행세하는
버꾸기같은 어른들..
훌륭하십니다 ㅜ
경기도교육청이면 이번에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데 아닌가요?
이 분들은 말로만 진보라고 하며 표만 얻어가고 막상 그 자리가면 보수나 하는 짓이 똑같으니 참 문제입니다..
아 서울시교육청에서 오늘 인수위가 구성되었다니 경기도도 마찬가지겠네요..
먼저번 교육감이겠네요 그럼... 암튼 진보교육감님에게 기대한번 걸어봐야 겠네요..
멋지네요.. 조뱀 감독님 멋지다고 생각햇지만.. 오늘은 더 대단하심..
나 욕 잘 안하는데.. 야이 교장 씨발려나!! 내 눈에 띄면 뒤진다 개 잡년아!! 라고.. 욕 하고 싶네요..
눈뜨고 지켜보겠습니다~
왜 이렇게 말이 안되는게 비일비재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