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생멸이론 - 빅뱅 블랙홀 빅립
1. 빅뱅(Big Bang)
빅뱅(Big Bang)은 대폭발 이론으로도 불리며, 블랙홀과 함께 천문학과 물리학계에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태초의 우주는 엄청나게 밀도가 크고 상상을 초월하게 뜨거웠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대폭발을 일으켜 우주가 팽창하게 되었다는 것이 현대 우주론의 정설이다. 빅뱅에서 ‘뱅’은 우리말로 ‘쾅’하고 터지는 소리다. 빅뱅을 직역하면 ‘큰 쾅’ 이다.
가.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정적인 우주
1915년, 독일 물리학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일반상대성이론은 정적인 이론에 기반을 두고 우주론을 만들었다. 아인슈타인이 이론을 세울 당시에는 우주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동적(dynamic)인 존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때까지 관측된 우주의 모습은 정적(static)이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정적인 우주의 모습을 기술하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중력으로 엮어진 은하들로는 정적인 우주를 만들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은하들은 서로 당기기만 할 뿐 밀어내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한정된 개수의 은하를 가지고 정적인 우주가 만들어졌다면, 그 우주는 중력에 의해 바로 붕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다소 억지주장인 은하들 사이에는 인력인 중력 이외에도 서로 밀어내는 척력이 작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이것은 서로 잡아당기는 은하들 사이에 ‘버팀목’을 집어넣어 붕괴를 막아 보겠다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에 의해 우주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사실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장 방정식 속에는 동적인 우주를 기술하는 답도 이미 포함돼 있다. 혹시 책이나 잡지에서 ‘아인슈타인의 실수’, ‘아인슈타인의 고집’ 등 아인슈타인의 학문적 업적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한 것을 발견하면, 바로 ‘척력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그러나 이 주장도 오늘날 일리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만든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장방정식 속에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도 숨어있었다.
프리드만(Friedmann), 르메트르(Lemaitre), 로버트슨(Robertson), 워커(Walker) 같은 당대의 우주론 연구자들은 팽창우주에 관련된 중력방정식의 답을 구하기 위해 연구에 몰두했다. 이 연구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팽창우주에서 팽창속도는 점점 감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를 붕괴시키던 은하 사이의 중력이 이번에는 우주 팽창을 방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의 크기는 시간에 따라 늘어나기는 늘어나되, 점점 감속되는 것이다.
나. 허블, 우주 팽창을 발견하다.
미국의 천문학자인 허블은 1929년 윌슨산 천문대의 망원경을 이용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최초로 발견했다. 허블의 결론은, 은하들은 방향에 관계없이 우리 은하로부터 2배, 3배, …, 후퇴하고 더 먼 거리에 있는 은하는 거리에 정비례해 더 빨리 후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 은하를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팽창우주는 풍선에 비유할 수 있다. 바람을 넣지 않은 풍선들에 점을 찍어, 그 점들을 은하라고 생각해 보자. 이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점들 사이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풍선의 공기가 좀 빠지면, 표면의 어떤 점에서 보더라도 주위의 점들은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만일 이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어떤 은하에서 본다고 하더라도 주위의 다른 은하들은 그 은하를 향해 접근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다. 빅뱅 우주론과 연속창생 우주론의 대결
빅뱅 우주론과 달리 태초의 우주가 모든 면에서 지금과 마찬가지였다는 우주론이 제시되기도 했었다. 즉, 과거로 거슬러 올라감에 따라 우주에서 은하가 하나씩 없어지면 빅뱅 우주론에서 주장하는 태초의 우주는 높은 밀도와 온도를 피할 수 있다는 우주론이다. 따라서 시간이 제 방향으로 흐른다면 이 우주론에서는 은하가 하나씩 생겨야 한다. 그래서 이 우주론을 연속창생(Continuous Creation) 우주론이라고 부른다. 이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론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우주의 모습이 똑같아야 한다. 즉,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물질도 끊임없이 생겨나서 총 밀도에는 변화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이 우주론을 항상 정상 상태를 유지하는 우주론이라는 의미로 ‘정상우주론’이라고도 부른다.
‘빅뱅 우주론(Big Bang)이 맞느냐 연속창생 우주론(Continuous Creation)이 맞느냐’ 하는 역사적인 논쟁은 사실 미국과 영국의 대결이기도 했다. 빅뱅 우주론은 가모프(George Gamow)를 중심으로 한 미국 과학자들이 주장하고, 연속창생 우주론은 영국 과학자인 헤르만 본디(Hermann Bondi), 프레드 호일(Fred Hoyle), 토머스 골드(Thomas Gold) 등이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빅뱅 우주론이 이김으로써 영국이 가지고 있던 우주론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갔다고 할 것이다.
라. 우주배경복사 발견으로 빅뱅 우주론 승리
빅뱅 우주론이 연속창생 우주론을 이기는 데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우주에 존재하는 헬륨의 양이었다. 우주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산, 바다, 행성, 별, 은하 등)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총 물질과 에너지의 약 4%에 불과하다. 이 4% 중에서도 약 3/4은 수소로, 나머지 약 1/4은 헬륨으로 구성돼 있다. 수소가 핵융합을 통해 헬륨이 되려면 우주 시초에, 적어도 1천만 도(℃) 이상이었어야 한다. 따라서 우주에 헬륨이 수소의 1/3 가량이나 존재한다는 사실은, 태초가 엄청나게 고온에서 시작됐다는 증거가 된다.
빅뱅 우주론에서 보면, 우주가 탄생한 후 약 30만 년이 지났을 때 우주의 온도는 3000도(℃)까지 떨어진다. 그러면 우주공간을 채우고 있던 자유전자들이 모두 수소나 헬륨 원자핵에 붙잡히게 된다. 따라서 그 때까지 전자 때문에 운동을 제한받던 광자(빛)들은 자유로이 운동할 수 있게 된다. 즉 빛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주는 흐렸다가 갑자기 맑아진 셈이다. 이 때 퍼져 나가기 시작한 빛이 바로 지금 관측하는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tion)이다.
미국의 아노 펜지어스(Arno Penzias)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은 1964년 우연히 이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해 빅뱅 우주론이 연속창생 우주론을 제압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우주배경복사란 빛은 태초의 뜨거운 우주 속에 고르게 퍼져 있다가 식은 것으로, 지금은 -270도(℃)까지 식은 상태로 발견됐다. 즉, 우주배경복사는 뜨거운 물로 막 목욕을 마친 목욕탕에 남아 있는 수증기와 같은 것이다. 그 수증기로 목욕을 막 마친 후 뜨거운 물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추리하는 것처럼, 우주배경복사로 태초의 우주는 뜨거웠다고 결론짓는 것이다. 펜지어스와 윌슨은 이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빅뱅 우주론 내에서도 우주의 나이를 놓고 논쟁이 붙기도 했다. 현대 우주론의 첨단을 걷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텍사스의 드 보클레르(Gérard de Vaucouleurs)를 중심으로 한 천문학자들은 100억 년, 캘리포니아의 샌디지(Allan Sandage)를 중심으로 한 천문학자들은 200억 년을 주장했다. 즉, 우주의 나이는 100억 살과 200억 살 사이 어떤 값을 갖는다.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가장 최근 관측치는 137억 년이다. 이는 2010년 3월 천체물리학 저널에서 미국과 독일 과학자들이 허블망원경으로 수집한 자료와 우주배경복사탐사 위성(WMAP) 자료를 종합해 우주 나이를 137억 5천만년으로 확인하여 발표했다.
마. 빅뱅우주론의 남겨진 숙제
최근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보이지 않는 물질이 우주에 상당히 존재한다고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그 물질을 우리는 ‘암흑 물질(dark matter)’이라고 부른다. 암흑 물질의 정체 규명 문제는 현대 우주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이다. 암흑 물질 이외에도 우주는 ‘암흑 에너지(dark energy)’를 가지고 있다. 이 에너지는 우주팽창을 가속시켜, 마치 아인슈타인의 우주 척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우주를 만든다. 아인슈타인의 주장이 결코 억지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늘로 던져진 돌은 두 가지 운명 중 하나가 된다. 다시 땅으로 떨어지든가, 아니면 지구를 탈출하든가 하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그 돌이 어떤 속도로 던져졌느냐에 달렸다. 우주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태초에 어떤 크기로 대폭발을 했느냐에 따라 무한히 팽창을 계속하느냐, 팽창을 하다가 멈추고 다시 수축하느냐가 결정된다. 즉, 어떤 세기보다 더 큰 힘으로 대폭발을 했으면 은하들의 중력이 팽창 속도를 감속시킬 수는 있지만 팽창 자체를 막지 못해 영원히 팽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세기보다 더 작은 힘으로 대폭발을 했다면 은하들의 중력은 팽창을 계속 감속시킨 후 마침내 팽창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천문학자들은 어떤 것이 우주의 운명인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더 커다란 천체 망원경, 더 정밀한 관측 기술이 개발되어야 해결될 수 있는 분야로 남아 있다.
2. 블랙홀(black hole) - 모습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빛도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고 예측한다. 실제로 영국의 물리학자 에딩턴은 개기일식 때 태양 뒤에서 오는 별빛을 관측하여 빛의 경로가 휘어지는 것을 확인하였다. 천체의 밀도가 커질수록 별빛이 휘어지는 정도는 더 커진다. 만약 천체의 밀도가 극단적으로 높으면 빛이 천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천체를 블랙홀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태양(반경 69만㎞)을 반경 3㎞까지 압축한다면 블랙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천체를 고밀도로 압축시키는 일이 가능할까? 우주의 탄생기, 즉, 빅뱅의 초기에는 우주의 밀도가 지극히 높았으므로 이런 밀도가 가능했지만 현재의 우주에서는 거의 가능하지 않다. 유일한 가능성은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는 별의 경우이다. 별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킬 때 남는 별의 중심핵은 엄청난 압력으로 수축된다. 초신성 폭발 때 고밀도의 중성자별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확인되었다. 중성자별은 태양 정도의 질량이 반경 10km 정도로 압축된 것이다. 천체물리학자들은 초신성 폭발 후 남는 별의 질량이 태양 질량의 3.5배를 넘으면 중성자별 대신 블랙홀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우주에 블랙홀은 존재할까? 만약 블랙홀이 존재한다고 해도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블랙홀이 우주 공간에 홀로 존재한다면 찾을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블랙홀이 다른 별과 쌍성을 이루고 있다면 블랙홀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 그 과정은 질량이 큰 별이 먼저 초신성 폭발을 일으켜 블랙홀이 되고 난 후 동반별이 종말이 가까워져서 크게 부풀어 거성이 되면 거성표면의 물질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블랙홀 주변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질은 블랙홀 주위를 맴돌면서 수백만 도로 가열되므로 에너지가 강한 X선이 튀어 나오게 된다. 따라서 이 X선을 관측하면 블랙홀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 이 X선은 지구 대기층에서 모두 흡수되어 지상까지 도달하지 않으므로 대기권 밖으로 나가서 관측해야 한다.
가. 블랙홀로 인정되는 백조자리 X-1
우리 은하계 안에 블랙홀이 있을까? 가장 유력한 후보는 백조자리 X-1이다. 이 천체는 백조자리 방향으로 6000광년 거리에 있으며 강한 X선을 방출하고 있다. 질량은 태양의 약 8.7배이고 어떤 천체보다 밀도가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천체는 청색초거성(HDE 226868)과 쌍성을 이루며 5.6일 주기로 서로 돌고 있는데 두 천체간의 거리는 무척 가까워서 지구와 태양간 거리의 1/5 밖에 되지 않는다. 아래 사진은 청색초거성에서 백조자리 X-1으로 물질이 빨려들어 가고 있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이다.
나. 블랙홀 주변 강착원반
블랙홀을 직접 볼 수는 없다. 블랙홀을 관측하기에 가장 좋은 천체는 블랙홀에게 점차 먹혀들어가며 가스 원반에 물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보통의 별과 짝을 이루고 있는 쌍성계 별이다. 블랙홀 주변에 있던 가스가 블랙홀의 ‘소용돌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면서 방출하는 빛은 관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은 블랙홀 주위를 도는 물질의 원반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나타낸 것인데 이러한 원반을 ‘강착원반’이라고 한다. 원반의 물질들은 마찰로 인해 수백만 K로 가열되어 X선을 방출한다.
다. 바람부는 모습의 블랙홀
전갈자리 방향으로 11,000광년 거리에 있는 GRO J1655-40는 태양 질량의 7배인 블랙홀이 태양질량의 2배인 별과 쌍성계 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그림은 블랙홀의 쌍성인 별에서 물질이 끌려 나와 블랙홀 주위를 돌며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이다. 블랙홀 주위의 강착원반으로부터 탈출하는 물질이 요동을 치고 있고 강착원반은 초당 67회의 세차운동을 한다. 세차운동이란 회전하는 팽이의 회전축이 기울어진 채 연직축 주위로 비틀거리며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가까운 거리에서 이 블랙홀을 볼 수 있다면 강착원반이 쓰러지기 직전의 팽이처럼 비틀거리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라. 타원은하 중심의 거대 블랙홀
수천억 개의 별을 거느린 은하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블랙홀 주변에서 물질이 빨려 들어갈 때 물질은 블랙홀로 직접 떨어지지 않고 나선운동을 하면서 떨어지며 강착원반을 만든다. 블랙홀 주변에 이와 같은 강착원반이 존재한다는 것이 타원은하 NGC 4261의 중심부 관측으로 확인되었다. 아래 사진 가운데 가락지 모양으로 보이는 원반은 이 은하의 핵이다. 원반 가운데 보이는 밝은 점 내부에 또 다른 작은 원반이 있음이 밝혀졌다. 그 작은 원반이 강착원반이며, 그 중심에 블랙홀이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가스의 회전속도로 미루어 블랙홀 질량은 태양의 12억 배 정도로 추정된다.
마. 탐조등 모양의 블랙홀
블랙홀이 물질을 빨아들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블랙홀 주위에서 높은 에너지 입자들이 방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에너지 분출을 제트라고 하는데 여러 은하의 중심에서 수직방향으로 아주 멀리 제트가 방출되는 것이 관찰되었다. 사진은 허블우주망원경이 M87 은하의 중심에서 고에너지 물질이 은하 크기 보다 더 먼 40~50만 광년 거리까지 분출되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제트는 블랙홀의 질량이 클수록 더 멀리 분출된다. M87 은하는 거대한 타원은하이며 블랙홀 질량은 태양질량의 20억 배나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은하는 처녀자리 방향으로 5000만 광년 거리에 있다.
바. 블랙홀에서 나오는 에너지
은하 중심 주변에서 나오는 X선을 관측하면 중심 블랙홀로 빨려 드는 가스량과 은하를 둘러싼 고온 거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에너지량을 추산할 수 있다. 사진은 NGC 4696 은하의 중심과 주위의 고온거품이다. 이 고온거품은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초고속 제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래 사진은 여러 망원경으로 관측한 것을 합성한 것으로 붉은색은 X선(찬드라), 푸른색은 전파(VLA), 초록색은 적외선 망원경으로 관측한 것이다. X선 관측에 의하면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가스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대부분 제트로 전환되어 빠져 나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은하는 켄타우루스자리 방향으로 1.5억 광년 거리에 있다.
사. 나선은하 중심의 블랙홀
블랙홀은 거대한 타원은하의 중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천문학자들은 나선은하의 중심에도 블랙홀이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아래 사진은 큰곰자리 방향에 있는 나선은하 M81을 여러 망원경으로 촬영하여 합성한 것이다. 푸른색(X선)은 찬드라 망원경, 분홍색(적외선)은 스피처 망원경, 보라색(자외선)은 갈렉스 위성, 그리고 초록색(가시광선)은 허블 망원경으로 촬영한 것이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블랙홀이 있을 것으로 믿어지는 이 은하의 중심부를 찬드라 X선 망원경으로 촬영한 것이다. 이 은하는 보통 나선은하에 비해 특히 크고 밝은 핵을 가지고 있는데 중심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질량의 7000만 배나 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아. 어두운 블랙홀
블랙홀은 어둡지만 강착원반을 가진 초대질량 블랙홀 주위는 사실 어둡지 않다. 활동적인 핵을 가진 은하(활동은하)의 중심에는 최소한 태양질량의 수천 배가 넘는 초대질량 블랙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런 은하 중에는 어두운 것과 밝은 것이 있다. 예를 들어 가시광 영역에서 어떤 은하(세이퍼트 I형)는 매우 밝지만 어떤 은하(세이퍼트 II형)는 어둡다. 이것은 블랙홀 주위에 물질이 강착되어 있는 정도의 차이 때문이다. 아래 사진의 어두운 활동은하인 NGC 4388의 모식도이다. 중심에 있는 블랙홀이 도넛 모양으로 생긴 두꺼운 분자가스와 먼지에 가려져있다.
자. 춤추는 모습의 블랙홀
활동적인 은하 3C75의 중심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x-선(푸른색)과 전파(분홍색)로 관측한 이 은하의 중심에는 밝은 두 개의 점이 보이는데 이들은 초대질량 블랙홀들이다. 이들은 25000 광년 떨어진 상태에서 서로를 향해 공전하고 있다. 이 은하는 3억 광년 거리에 있으며 두 개의 은하가 합쳐지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결국 두 블랙홀도 서로 합쳐져 더욱 거대한 블랙홀이 될 것이다.
차. 우리 은하계 중심의 거대 블랙홀
지구가 속한 우리 은하계의 중심에도 거대블랙홀이 있을까? 전파관측으로 궁수자리 방향으로 28000광년 거리에 강한 전파를 방출하는 궁수자리 A가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여러 가지 증거로 미루어 이곳에 블랙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진은 과학자들이 16년 동안 은하계 중심 근처에 있는 28개 별들의 운동을 관측한 것이다. 중심 주위의 별들의 운동속도를 알면 은하계의 중심블랙홀의 질량을 추정할 수 있다. 현재 은하계 중심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질량의 400만 배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3. 블랙홀(black hole) - 입증과정
블랙홀(black hole)의 존재는 현대천문학과 물리학의 이론이 정확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현대천문학의 별 진화이론과 현대물리학의 일반상대성이론은 블랙홀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데 그 연구과정을 살펴보자.
가.‘블랙홀’존재의 출발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이 작용한다. 특히 지구가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을 중력이라고 하는데, 이 중력 때문에 인간은 공중에 떠다니지 않고 지표면에서 생활할 수 있다.
만일 지구에서 중력보다 더 큰 속도로 물체를 던지면 어떻게 될까? 초속 11.2km의 속도보다 빠르게 물체를 던지면 지구를 탈출할 수 있다. 따라서 초속 11.2km를 지구 탈출속도라고 부른다. 물론 지구보다 더 강한 표면중력을 갖는 목성의 탈출속도는 초속 59.5km이다. 여기서 중력이 이들보다 엄청나게 강한 천체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천체의 탈출속도는 어떻게 될까? 마침내 광속, 즉 초속 30만km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광속보다 큰 탈출속도를 갖는 천체가 존재한다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공상과 같은 이런 아이디어 하나에서 블랙홀이 탄생했다.
나.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
1915년, 독일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중력에 의해 공간이 휜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상대성이론의 핵심인 중력장 방정식은 빛이 휘어야 성립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중력장 방정식은 물리학의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방정식 중 하나로 꼽히며, 이를 완전히 풀어낼 수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빠른 1916년에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칼 슈바르츠실트(Karl Schwarzschild)가 회전하지 않는 천체의 경우 해당되는 중력장방정식의 답을 구했다. 그 답에 따르면 태양 바로 주위에서는 중력 때문에 빛이 약 2″(1°= 60′= 3600″)의 각도만큼 휘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 결과에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1919년,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이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개기일식을 이용해 빛이 휜다는 사실을 관측해내자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변신한 블랙홀
천체망원경 제작 기술의 발달로 중성자별이 발견되면서, 마침내 블랙홀에 대한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의 태도는 돌변하게 된다. 태양 정도의 질량을 갖는 중성자별은 크기가 대략 수도인 서울특별시 정도다. 이런 중성자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발견된 이상, 그 보다 조금 더 수축한 블랙홀의 존재를 의심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블랙홀에 대한 연구가 1950년대~1960년대에 걸쳐 다시 불붙기 시작했고, 이로써 블랙홀의 존재는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화려한 변신을 하게 된다.
특히 뉴질랜드의 수학자 로이 커(Roy Kerr)가 1963년, 회전하는 구대칭의 천체에 적용되는 중력장 방정식의 답을 구해 블랙홀 연구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회전하지 않는 슈바르츠실트 풀이를 구한 지 약 50년이 지나서야 ‘커 풀이’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천문학에서 슈바르츠실트 블랙홀, 커 블랙홀이라는 용어가 생겼는데, 이 말은 각각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 회전하는 블랙홀을 의미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결과는, 같은 질량을 갖는다면 슈바르츠실트 블랙홀보다 커 블랙홀의 크기가 최고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이었다. 즉, 태양의 경우 블랙홀이 돼 최대한 빨리 자전하면 반지름이 1.5km가 된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영국의 벨(Bell)이 1968년 전파 관측 도중 매우 규칙적이고 주기가 약 1초에 불과한 전파의 박동을 발견했다. 그 당시까지 알려진 어떠한 천체도 이렇게 짧은 주기의 관측 자료를 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 발견은 곧 천문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게 됐다. 심지어 처음에는 외계의 문명에서 날아오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었는데,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전파원을 펄서(펄사, pulsar)라고 명명했다. 곧 펄서의 정체는 빨리 회전하는 중성자별로 밝혀졌다. 이를 통해 중성자별의 입지도 더욱 확고해졌다.
라. 비로소 ‘블랙홀’이라는 이름을 얻다
마침내 1969년, 미국의 조 휠러(John Archibald Wheeler)는 블랙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사실 이전에는 ‘블랙홀’이란 이름조차 없었다. 그 대신 ‘얼어붙은 별’, ‘붕괴한 별’ 등의 이상한 이름으로 불려온 것이다. 그리고 블랙홀은 ‘빛까지 빨아들이는 지옥’ 또는 ‘시공간의 무서운 구멍’ 등으로 불리며 모든 것을 빼앗아 들이는 이미지를 굳히게 됐다.
그런데 영국의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박사가 블랙홀에 대한 개념을 모조리 바꿔놓았다. 호킹은 블랙홀이 무궁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성질도 있음을 증명했다. 호킹은 이를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Black holes ain't so black)’고 표현했고, 1973년, ‘블랙홀은 검은 것이 아니라 빛보다 빠른 속도의 입자를 방출하며 뜨거운 물체처럼 빛을 발한다‘는 학설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다. 호킹이 주장한 이론에 따르면, 빅뱅 직후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블랙홀이 무수히 태어나야만 한다. 이런 블랙홀을 ‘원시 블랙홀’이라고 부르는데, 원시 블랙홀의 질량은 10만 분의 1g보다 크면 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원시 블랙홀의 최대 질량은 태양 질량 정도이므로, 크기는 대체로 아주 작다. 이러한 원시 블랙홀이 일반 천체와 같이 초속 수백km의 속도로 우주공간을 날아다니게 되면, 웬만해서는 다른 천체들에게 중력으로 붙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천체와 충돌하면 어떻게 될가. 양성자만한 블랙홀이 지구에 충돌하더라도 혜성이나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다.
마. 인류의 꿈을 실현시킬 블랙홀
현대의 거대한 천체망원경들이 개발되면서 여러 은하 중심 부분에서 태양보다 수억 배 더 무거운 블랙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실제로 이들은 크기가 태양계만하고, 태양과 같은 별 1천억 개 정도가 낼 수 있는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 이렇듯 이제는 ‘과연 블랙홀은 존재 하는가’라고 물을 때가 아니라 ‘블랙홀은 몇 종류나 있는가’ 물을 때인 것이다.
또, 블랙홀은 SF(과학소설, Science Fiction) 작가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줬다. 오늘날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소설이나 영화들 중에, 블랙홀을 통한 시공간 여행을 빌리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한 블랙홀이 다른 우주에 있는 블랙홀과 이어질 수만 있다면 우주여행을 하는데 지름길 노릇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사과 속의 벌레구멍과 같아서 사과의 한 쪽 표면에서 다른 쪽 표면으로 벌레가 가는데 시간을 절약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어진 두 블랙홀을 실제로 ‘웜홀(worm hole, 벌레구멍)’이라고 부른다.
웜홀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한쪽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다른 쪽 블랙홀에 도달하더라도 그 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쪽 출구도 무엇이든지 다 집어삼키는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엇이든지 내놓기만 하는 ‘화이트홀(white hole)’이 출구에 있어야만 한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이 양쪽의 입구와 출구를 각각 맡는 웜홀은 이상적인 우주여행의 지름길이 되어 시공을 초월하게 된다. 화이트홀은 한동안 인류의 희망 사항이다. 그러나 호킹이 제기한 작은 블랙홀은 화이트홀과 다름이 없다는 주장이 과학적인 입지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블랙홀은 21세기 천문학과 물리학에서도 더 많은 것이 규명될 것이다.
4. 블랙홀(black hole) - 감마선 폭발
2008년 3월 19일 우연히 밤하늘을 바라본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평생 한 번 뿐일지 모르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무려 74억 년을 여행해 마침내 지구에 도달한 빛을 맨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74억 년 전이면 태양계가 존재하기도 전이다. 빛 공해가 없는 외진 곳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라도 맨눈에 보이는 별은 3000개 정도다. 단 하나를 빼고는 모두 우리 은하의 별들이고 그 대부분은 1500광년 안에 있다. 단 하나의 예외는 사실 별이 아니고 우리 은하의 이웃인 안드로메다은하로 지구에서 200만 광년 떨어져 있다. 따라서 74억 광년 떨어진 천체가 맨눈에 보였다는 건 이 천체가 어마어마하게 밝았다는 뜻이다. 오늘 당장이라도 외진 곳으로 떠나 74억 년 전의 빛을 보고 싶어도 이 빛은 더 이상 밤하늘에 빛나지 않는다. 2008년 밤에도 불과 40초 동안 희미한 별처럼 보였다 사라졌다.
가. 격렬한 초대형 현상인 감마선 폭발
사실 이 빛의 실체는 감마선 폭발(gamma-ray burst, 줄여서 GRB) 때 발생하는 후광이다. 감마선 폭발이란 우주에서 가장 격렬한 초대형 폭발현상으로 수초~수분 동안 지속된다.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태양이 평생 내놓는 에너지보다 크다. 태양보다 100배 이상 무거운 별이 자체 중력을 못 이겨 블랙홀로 붕괴할 때나 서로 쌍을 이룬 중성자별이 합쳐지면서 블랙홀이 될 때 감마선 폭발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폭발하는 순간 나오는 빛의 대부분이 매우 짧은 파장인 감마선 영역(일부는 짧은 파장 X선)이기 때문에 감마선 폭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감마선이 나온 뒤에는 X선,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같이 파장이 긴 빛이 뒤따르는데 이를 후광(afterglow)이라고 부른다.
후광은 감마선 폭발 직후 나타나 수 주에서 수 개월에 걸쳐 지속되는데,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된 분출물이 주변의 성간물질과 부딪쳤을 때 나온다.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건 후광 가운데 가시광선 영역이다.
감마선 폭발 현상은 1960년대 처음 관측됐는데 199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연구됐다. 2004년 11월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감마선 관측 위성인 스위프트(Swift)를 쏘아 올렸다. 예상 수명 5년을 훌쩍 넘어 지금까지도 작동하는 스위프트는 매주 두 개꼴로 감마선 폭발을 발견하며 이 분야의 관측데이터를 ‘폭발’적으로 축적시켰다. 또 스위프트와 연계된 지상의 망원경(자외선과 가시광선, 적외선 영역 관측)은 감마선 폭발의 후광을 관측했다.
우주에서 가장 격렬한 초대형 폭발 현상은 감마선 폭발이다. 블랙홀은 빨아들이는 기능이라면 감마선 폭발은 분출하는 반대기능이라 할 수 있다.우주에서 가장 격렬한 초대형 폭발 현상은 감마선 폭발이다. 블랙홀은 빨아들이는 기능이라면 감마선 폭발은 분출하는 반대기능이라 할 수 있다.
사진편에서 감마선 폭발은 GRB 080319B로 불린다. 이름에서 숫자는 관측된 날짜(2008년 3월 19일)이고 B는 이날 관측된 두 번째 감마선 폭발이라는 뜻이다. GRB 080319B는 후광 스펙트럼의 적색편이를 분석한 결과 무려 74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관측데이터를 토대로 밝기를 계산한 결과 GRB 080319B는 지금까지 관측된 모든 천체 가운데 가장 밝은 천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GRB 080319B가 우주의 극한 현상 가운데 밝기 부분에서 최고기록 보유자인 셈이다.
GRB 080319B. 74억 년 전에 일어난 감마선 폭발. 지금까지 관측된 천체 가운데 가장 밝아 40초 동안 맨눈으로도 보였을 정도다. 사진은 GRB 080319B의 후광으로 왼쪽은 스위프트의 X선 망원경, 오른쪽은 스위프트의 가시광선/자외선 망원경으로 촬영했다.
GRB 090423. 130억 년 전에 일어난 감마선 폭발로 지금까지 관측한 천체 가운데 두 번째로 오래됐다.
사진은 적외선 망원경이 포착한 천체로 확대된 부분에서 붉은 점이 GRB 090423이 내는 후광이다. 적색편이가 크다는 뜻에서 붉은 색을 입혔다.
나. 130억 년 전 사건도 포착
감마선 폭발은 밝기 뿐 아니라 시간의 기록도 갖고 있다. 현재 우주의 나이는 137억 살로 추정된다. 빅뱅 이후 137억 년이 흘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관측하는 빛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얼마나 됐고 어떤 천체에서 나왔을까. 2009년 4월 23일 역시 스위프트가 관측한 감마선 폭발(GRB 090423)은 무려 약 130억 년 전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빅뱅이 일어난 뒤 6억 3000만 년이 지난 시점이다. GRB 090423은 관측 당시만 해도 우주에서 가장 오래 전 사건으로 우주 극한 현상의 시간 종목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허블우주망원경이 131억 광년 전 은하(UDFy-38135539로 명명)의 빛을 관측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자리를 내줬다. 그 뒤 감마선 폭발과 은하에서 각각 나이가 좀 더 많은 천체가 관측됐으나 아직은 확증이 안 된 상태다.
GRB 090423의 폭발이 일어났던 빅뱅 이후 6억 3000만 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주의 크기는 오늘날의 9분의 1에 불과했고 은하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언젠가는 빅뱅 후 3억 년 쯤 뒤에 일어난 감마선 폭발을 관측할 수 있을 것도 전망된다.
한편 감마선 폭발은 우주 초기부터 전 영역에 걸쳐 관측되고 있는데 80억 년 전 부근에 발생한 것이 피크다. 즉 우주의 진화에서 별이 활발하게 만들어지던 시기(50억 살 전후)에 감마선 폭발도 가장 많이 일어난 것이다.
120억 년 전 일어난 감마선 폭발 GRB 071025의 후광을 레몬산 망원경으로 찍은 영상. 왼쪽의 가시광선 영역에서는 보이지 않지만(1) 오른쪽 근적외선에서는 희미하게 보인다(2).
다. 속속 관측되고 있는 새로운 현상들
2011년 3월 28일 관측한 감마선 폭발의 시간 별 X선 밝기 변화. 감마선 지속 시간이 길 뿐 아니라 수일에 걸쳐 강력한 X선을 내뿜었다. 이 관측을 토대로 연구자들은 거대질량 블랙홀 주변을 별이 지나가다 빨려 들어갈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제안을 했다.
최근에는 새로운 감마선 분출 현상도 관측되고 있다. 예를 들어 스위프트 위성의 감마선 망원경이 2011년 3월 28일 관측한 감마선은 수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고 강력한 X선이 수일간 관측됐다. 이 특이한 현상을 분석한 결과 은하 중심에 있는 거대질량 블랙홀 주변을 별이 지나가다 빨려 들어가며 감마선을 분출한 것임이 밝혀졌다.
2011년 12월 1일자 ‘네이처’에 실린 감마선 분출 현상도 특이하다. 역시 스위프트 위성이 2010년 12월 25일, 즉 크리스마스 때 관측해 ‘크리스마스 감마선 폭발’로 불린 GRB 101225A(A는 이날 관측된 첫 번째 GRB라는 뜻)가 그 주인공이다.
이 현상이 특이했던 건 감마선 분출이 무려 30분이나 지속됐기 때문이다. 반면 이어지는 X선 후광은 빨리 사라졌다. 이런 현상은 기존의 긴 감마선 폭발 메커니즘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쉽게도 후광 데이터가 불충분해 이 폭발이 언제 일어난 일인가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라. 감마선 폭발의 두 가지 작용원리
스페인 안달루시아 천체물리학 연구소 크리스티나 퇴네 박사가 주축이 된 국제 공동연구팀(서울대 임명신 교수팀도 포함됨)은 덜 파격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즉 중성자별이 거성 옆을 지나다 나선 궤도로 접근해 결국은 합쳐지면서 블랙홀로 바뀌고 이때 감마선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열흘 뒤 초신성폭발이 이어졌다. 이 가설이 맞다면 세 번째 감마선 폭발 유형이 밝혀진 셈이다. 퇴네 박사는 “크리스마스 폭발은 감마선 폭발의 유형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다양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이 현상이 지구에서 55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고 추측했다.
이탈리아 브레라천문대 세르지오 캄파나 박사팀은 이와는 전혀 다른, 상당히 파격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즉 크리스마스 폭발은 지구에서 ‘불과’ 1만 광년 떨어진 우리은하 내부에서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 이 시나리오에서도 중성자별이 등장하는데, 소행성 같은 작은 천체가 중성자별의 중력에 잡혀 끌려오다 중력의 차이(조석력)로 천체가 일그러지며 파괴된다. 그 뒤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잔해가 폭발할 때 감마선이 분출된다는 것으로서 블랙홀이 별을 집어삼키는 사건의 축소판인 셈이다. 사실 이 모델은 1960년대 감마선 폭발 현상이 처음 관측됐을 때 1973년 제안된 모델이었는데, 감마선 폭발이 먼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게 밝혀진 뒤 묻힌 것이다.
마. 천문학의 난제를 풀기 위한 도구
수명을 넘겨가며 활약한 스위프트 위성과 지상의 여러 망원경 덕분에 지난 수년 동안 감마선 폭발 연구는 어느 때보다도 활발했다.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와 가장 먼 천체라는 기록을 세웠고 초기 우주의 먼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 또 관측된 감마선의 거리 분포는 우주의 진화 이론을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새로 알게 된 사실보다 규명해야 하는 현상들이 더 많아졌고, 감마선 폭발이 생각보다 복잡한 현상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감마선 폭발 현상은 우주의 별이 탄생한 역사나, 초기우주의 물질 상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방법으로 죽는 별들의 모습, 우주 최초의 별들의 성질 등 여러 가지 천문학 난제를 풀기 위한 도구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감마선 폭발이 일어나면 감마선이 몇 초에서 몇 시간 동안 섬광처럼 방출되며, 그 후에 X선 잔광이 며칠간 지속된다. 이러한 현상은 천구상에서 무작위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하루에 몇 차례는 일어난다.
감마선 폭발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가상적인 천체를 감마선 폭발원(Gamma ray burster)이라고 부른다. 감마선 폭발은 극초신성과 관련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극대거성이 일생을 마칠 때 극초신성이 되어 폭발하며, 이로 인해 블랙홀이 형성되고 감마선 폭발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5. 빅립(Big Rip) 이론
빅립(big rip) 이론은 간단하게 우주의 시간축에 의한 가설중 하나로 가장 잘 알려진 수축팽창설에 맥을 같이 한다.
최초 빅뱅으로 우주가 팽창 -> 빅크런치로 우주가 수축 -> 다시 빅뱅으로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이 수축팽창설이다.
우주의 수축팽창론 이외에 브레이크 없이 계속적으로 팽창하다가 나중에는 팽창이 한계점을 넘어버리게 되면 우주공간 찢어짐이론도 있다. 이 빅립이 일어나는 시점은 연구결과 220억년 뒤라고 하며, 빅립이 일어나기 바로직전 모든 물질이 원자의 쪼개짐이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종말로 끝을 맺게 된다는 것이다.
우주는 어떻게 탄생했나? 우주의 나이는 얼마인가?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 미래에 우주는 어떻게 될까? 밤하늘의 별을 보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그동안 천문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하면 우물쭈물하거나 잘 모른다고 했지만 2003년부터 천문학자들이 자신 있는 대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우주배경복사 관측위성 WMAP가 맹활약하면서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항공우주국이 2001년 6월에 발사한 800㎏짜리 작은 위성은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오는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고 있다. 우주배경복사는 빅뱅(big bang)이 일어나고 38만 년 뒤 물질과 빛이 처음 분리될 때 나온 ‘태초의 빛’이다. 이 빛은 빅뱅의 잔해로 여태까지 남아 우주 어느 방향을 보든 -273도(C)로 우주를 거의 균등하게 가득 채우고 있다. 말하자면 은하와 별은 우주배경복사 위에 떠 있는 작은 배라고도 할 수 있다.
미항공우주국의 코비위성은 1992년에 우주의 모든 곳을 관측해 우주배경복사 지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결과 우주배경복사는 전체적으로는 균일하지만 마치 물결처럼 곳곳에 미세한 온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기 우주의 미세한 에너지 차이는 에너지가 물질로 변환되면서 물질의 밀도 차이를 만들어냈고 밀도가 높은 곳에서 별이 만들어지기 시작해 오늘날의 은하와 별이 된 것이다.
2001년 6월에 발사돼 지상 150만km 상공에 떠 있는 WMAP 위성은 우주배경복사가 얼마나 적색편이(어떤 물체가 멀어질 때 물체가 내는 빛이 원래의 빛보다 붉어지는 현상으로서, 멀어져 가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원래 음보다 낮아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를 관측하여 자료를 종합해 시간이 흐를수록 우주의 팽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현재의 우주는 우주거리의 기본단위인 1Mpc(메가파섹·1Mpc은 약 326만 광년)당 초속 71km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326만 광년의 거리가 1년 뒤에는 빛이 2시간 동안 간 거리만큼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WMAP위성이 밝혀낸 가장 중요한 점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과 에너지가 어떤 것인지 추론하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우주의 미래도 2개의 유력한 시나리오가 있었다. 우주가 지금처럼 팽창하다가 결국은 다시 수축해 한 점으로 돌아간다는 빅크런치(big crunch) 시나리오와 영원히 지금의 속도로 팽창한다는 시나리오였다.
만일 우주의 밀도가 일정 수준보다 높다면 자체의 중력에 의해 수축하면서 붕괴해 빅크런치가 일어나게 되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팽창 속도가 빨라진다는 결론에는 이르게 된 것이다.
우주의 팽창이 빨라지는 것은 중력과는 반대 방향의 힘인 ‘암흑 에너지’가 우주를 바깥쪽으로 잡아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물질이나 빛은 우주가 팽창하면서 단위 부피당 에너지가 줄어들지만 이상하게도 암흑에너지는 우주가 팽창을 해도 단위 부피당 에너지가 늘 그대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팽창 속도만 빨라지는 것이다.
암흑 에너지는 정체를 몰라 가장 큰 우주의 수수께끼로 등장했으나 WMAP 위성은 우주의 73%가 암흑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고 23%가 암흑물질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밤하늘의 별이나 행성처럼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은 우주 전체의 4%에 불과하다.
우주가 가속하여 팽창하면 우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미국 다트머스 대학 로버트 칼드웰 교수와 캘리포니아 공대 연구팀은 이렇게 팽창이 빨라지면 220억 년 뒤에는 우주가 산산조각이 나 결국 ‘빅립(big rip)’으로 최후를 맞을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립(rip)이란 찢어진다는 뜻이다.
칼드웰 교수는 빅립 6천만 년 전에는 은하가 해체되고, 3개월 전에는 태양계에서 행성이 떨어져 나가며, 30분 전에는 지구가 폭발하고, 마지막 순간에는 원자마저 조각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이 시나리오가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주는 티끌에서 태어나 다시 티끌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에필로그
불과 몇 세기 전에 인류는 하늘을 날거나 바다 속을 탐험하는 것은 꿈에 불과 했지만, 지금은 보편화 되었다. 말이나 마차를 타고 육로로 움직이던 인류가 자동차나 초고속 열차로 움직이는 것도 1세기 전에는 드문 일이었다. 한정된 석유자원이 고갈되면 더 진보된 이동수단이 등장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견될 수 있다.
인류는 가장 거시적인 현상인 우주의 생멸에 관하여 관찰하게 되었고 이는 아주 미시적인 현상과도 밀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앞에서 살펴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빅뱅 : 태초의 우주는 엄청나게 밀도가 크고 상상을 초월하게 뜨거웠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대폭발을 일으켜 우주가 팽창하게 되었다는 것이 현대 우주론의 정설이다. 빅뱅에서 ‘뱅’은 우리말로 ‘쾅’하고 터지는 소리다. 빅뱅을 직역하면 ‘큰 쾅’ 이다.
2. 블랙홀 : 별이 극단적인 수축을 일으켜 밀도가 매우 증가하고 중력이 굉장히 커진 천체를 말한다. 일반상대성이론에 근거를 둔 것으로, 물질이 극단적으로 수축하면 그 안의 중력은 빛, 에너지, 물질, 입자의 어느 것도 탈출하지 못할 만큼 강해진다.
3. 일반상대성이론 :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1915년에 발표한, 중력을 상대론적으로 다루는 물리 이론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이 ‘시간+공간’의 이론이라면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공간+중력’에 관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질량이 시공간을 휘게 해 중력장이 형성된다고 기술하는 중력장 방정식의 하나로 집약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중력을 다루는 이론 가운데 가장 정확하게 실험적으로 검증됐다.
4. 중성자별 : 중성자만으로 구성된 별. 원자가 굉장한 압력을 받게 되면 전자가 양성자로 들어가 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가 된다. 중성자별이 그 고압의 중력에서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중성자 간의 반발력인 ‘축퇴압’ 때문이다. 중성자별은 축퇴압이 중력과 균형 잡혀있는 초고밀도의 별이다. 중력이 축퇴압을 넘어 버리면 한없이 찌그러져 블랙홀이 된다.
5. 감마선 폭발 : 감마선 폭발이란 우주에서 가장 격렬한 초대형 폭발현상으로 수초~수분 동안 지속된다.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태양이 평생 내놓는 에너지보다 크다. 태양보다 100배 이상 무거운 별이 자체 중력을 못 이겨 블랙홀로 붕괴할 때나 서로 쌍을 이룬 중성자별이 합쳐지면서 블랙홀이 될 때 감마선 폭발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6. 스티븐 호킹의 학설 : 물체가 블랙홀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빛보다 빠른 속도가 필요한데, 이런 일은 보통 물체에는 불가능하다. 스티븐 호킹은 이러한 종래의 학설을 뒤집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이론에 따르면 블랙홀이 입자를 방출한다는 내용의 학설을 발표했다.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 바로 바깥쪽 진공에서는 양자요동을 통해 입자와 반입자가 생성되는데, 이중 반입자는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으로 떨어지고, 입자는 외부로 방출된다는 것이다. 이때 블랙홀로부터 방출되는 열복사를 호킹 복사라고 한다.
7. 빅립(big rip) 이론 : 암흑 에너지는 2001년 이전 존재가 확인됐으나 전혀 정체를 몰랐다가 WMAP 위성으로 우주의 73%가 암흑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고 23%가 암흑물질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밤하늘의 별이나 행성처럼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은 우주 전체의 4%에 불과하고 암흑에너지에 떠 있다.
우주가 가속하여 팽창하면 우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미국 다트머스 대학 로버트 칼드웰 교수와 캘리포니아 공대 연구팀은 이렇게 팽창이 빨라지면 220억 년 뒤에는 우주가 산산조각이 나 결국 ‘빅립(big rip)’으로 최후를 맞을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립(rip)이란 찢어진다는 뜻이다.
8. 우주배경복사 : 우주가 처음 시작할 때 퍼져 나가기 시작한 빛을 말하며 태초의 뜨거운 우주 속에 고르게 퍼져 있다가 식은 것으로, 지금은 -270도(℃)까지 식은 상태로 발견된다. 즉, 우주배경복사는 뜨거운 물로 막 목욕을 마친 목욕탕에 남아 있는 수증기와 같은 것이다. 그 수증기로 목욕을 막 마친 후 뜨거운 물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추리하는 것처럼, 우주배경복사로 태초의 우주는 뜨거웠다고 결론짓는 것이다.
지구상에는 대기를 이루는 기체와 주로 바다를 이루는 액체, 지표면과 지하의 고체 등으로 구성된 많은 물질이 존재하고 있다. 물질의 성질을 유지하는 최소단위를 분자라고 하고, 분자를 구성하는 단위는 원자라고 하고 있다.
지구가 블랙홀에 빨려들면 대기권을 포함한 지구전체는 원자의 질서가 해체되어 한없이 쪼그라들게 되어 동전만한 크기의 잔해만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여러모로 희박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