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곡성당~춘양목솔향기길~백두대간수목원 21.7km
금강송, 미인송, 적송, 황장목, 춘양목이란 나무를 아시는지요?
모두 우리나라 금강산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와 경북 지방에 자라는 소나무 중 나뭇결이 곱고 바르며
속이 붉고 단단한 것들을 지칭하는 이름인데요,
여느 소나무들에 비해 생육속도가 더뎌 목질이 치밀하고 송진까지 많아 잘 썩지 않고 곧게 자라 거목으로 잘 성장해서
궁궐이나 사찰 같은 대형 한옥의 건축재로 많이 사용되어 왔지요.
각각의 이름이 뜻하는 바를 알아보면 금강송金剛松이란 이 소나무가 금강산 일대에서 많이 자란대서 이고요,
미인송美人松은 미인처럼 쭉쭉 뻗어 곧게 자란다고 해서랍니다.
적송赤松은 나무껍질이 붉어서고요, 황장목黃腸木은 속이 치밀하고 누런빛을 띤다고 해서랍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춘양목春陽木은 봉화군 춘양면春陽面과 소천면小川面 일대에서 자라는 것이 가장 재질이 좋고,
이를 실어내기 위해 만든 춘양역을 만들어 인근 타 지역에서 나는 소나무들까지 실어내면서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생겼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춘양목은 경북 봉화를 삼림휴양도시로 만들고,
외씨버선길 제9구간 춘양목솔향기길을 허락하고, 봉화목재체험장과 최근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란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을 들어서게까지 하는 등 혁혁한 공적을 쌓고 있습니다.
그런 춘양목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지난 5월 하순 봉화군이 춘양목 홍보를 위해 여행작가와 파
워 블로거 스무 남은 명을 초청 1박2일짜리 팸 투어를 실시하는데 그 일원으로 제가 참가하게 된 겁니다.
원래 춘양목 군락지 탐방은 둘째 날 스케줄로 가개장 중인 백두대간수목원을 관람한 다음 서벽리 승지산장에서 시작해
외씨버선길을 살짝 밟으며 임도를 따라 문수산(1,205m) 남동 자락을 둘러보고 도심3리로 내려오는 6km가량의 숲길 걷기였는데요,
일행 중 인솔자를 비롯해 걷기모임 대표 몇 명이 임도 전 구간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며 백두대간수목원 관람을 유보하고 임도만을 걸을 사람을 파악하니
9명이 지원해, 지도를 보고 추정한 거리 13km 전 구간을 탐방하게 된 겁니다.
들머리는 문수산의 남남동쪽 골짜기 봉성면 우곡리 우곡성당 입구. 새벽부터 서둔 덕분에 오전 7시40분경 도착해 임도로 들어섭니다.
이곳이 천주교 성지라서 그럴까요,
산등성이를 넘어온 아침 햇살을 받은 신록의 숲이 싱그럽다 못해 서기를 내뿜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회가 세워지기 전 28년간이나 ‘칠극七極’에 의한 천주교 수계 생활을 한,
한국 최초의 수덕자修德者 농은 홍유한洪儒漢, 1725~1785의 묘가 있는 곳이지요.
‘칠극’이란 교만, 질투와 시기, 음란, 분노, 인색, 탐욕, 게으름 등 죄악의 근원이 되는
일곱 가지 뿌리와 이를 극복하는 일곱 가지 덕행德行을 말합니다.
쪽 머리에 한복을 입고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하얀 석고 성모자상이 입구에 세워져 있어 분위기가 더 숙연해집니다.
누가 블로거 아니랄까봐 다들 일제히 카메라를 꺼내 촬영을 합니다.
“찰칵찰칵 타다닥…” 속삭이듯 골짝을 벗어나는 물소리와 함께 카메라 셔팅 소리가 계곡을 울립니다.
차가 교행할 수 있을 만큼 널찍한 임도지만 숲이 깊게 우거져 나무 터널을 이루거나 그림자가 드리워져
신선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 같습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신선한 공기를 심호흡하며 숲 속으로 들어서자 물이 많지 않은 계곡 쪽에서 이상하게도 “콸콸” 물이 넘쳐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들여다보니 어디선가 지하로 빼내온 호스가 마치 간헐천 지역 온천처럼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해발 400m가량 되는 깊은 산 속이라 그런지 5월 하순 끝자락인데도 아카시 꽃이 한창입니다.
근데 이 깊은 골짜기까지 사방공사를 했는지, ‘야계사방’이란 표지석도 세워져 있습니다.
신록의 봄에도 소나무 중 가장 돋보이는 춘양목
맨발로 다녀도 좋을 만큼 곱게 잘 다져진 길이 20분쯤 걷자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그 사이에 간이 화장실도 세워져 있습니다. 빨간 리본이 드문드문 매달려 있는데 저게 어떤 표시일까 궁금합니다.
오른쪽 길을 택하니 이제부터는 완만하게 지그재그로 펼쳐지며 아주 조금씩 고도를 높입니다.
이런 곳에 어떤 차량이 다닌다고 차량 통행 차단기까지 설치해 놓았습니다.
차단기를 우회해서 더 나아가니 처음으로 하늘이 열리며 산등성이 전망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드디어 한 그루, 두 그루씩 모습을 드러내는 늘씬한 춘양목들.
추사의 세한도엔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고 했지만
신록의 봄에도 소나무 중의 소나무 춘양목은 단연 돋보입니다.
껍질이 붉은 적송으로, 쭉쭉 뻗어 올라간 미인송으로요.
그 아래를 지날 땐 흠칫 솔향기까지 느껴집니다.
파란 하늘 동동 떠가는 흰 구름을 배경으로 솟구친 모습에선 어떤 신령함에 경외감까지 느껴집니다.
그럴 때마다 “홀딱벗어, 홀딱벗어”라며 우는 검은등뻐꾸기 새소리가 세속으로 돌려세웁니다.
근데 이 임도엔 참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건 시골 마을에서 자주 보던 커다란 오동나무들입니다.
길이 산굽이를 돌아들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연보라색 꽃들을 수북하게 땅에 떨어뜨려놓고 서 있습니다.
이 나무는 또 줄기에서 바로 새순을 내다는데 수직으로 쭉 뽑아 올리는 게 무척 신기합니다.
나무뿐만 아니라 들꽃들도 많이 피어 있습니다.
봄 꽃 다 지고 여름 꽃 아직 이른 때인 데도요.
무엇보다 민백미꽃이 자주 눈에 띄어 자꾸 발길을 붙듭니다. 또 장대나물, 나도냉이, 지칭개, 산딸기 류들도요.
일행들은 무엇보다 참취에 관심을 보입니다.
지리산 자락에서 자랐다는 일행 한 분은 “이렇게 편히 길을 가면서 자연 상태의 참취를 뜯는다는 건 행운”이라면서
슬쩍슬쩍 뜯은 게 반 배낭 정도나 돼 ‘부업을 한 기분’이랍니다.
9명 중 걷기 모임에 몸을 담지 않은 사람은 저 혼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일행을 따르기만 하는데 선두 그룹 걸음걸이가 하도 빨라 꼴찌만 면하자며 속도를 내곤 합니다만
경치가 나오면 경치, 꽃이 나오면 꽃을 찍느라 머뭇거리는 바람에 자꾸만 뒤처지게 됩니다.
그래도 선두 그룹이 한동안 피치를 올렸다가는 적당한 곳에서 후미 그룹이 오기까지 기다렸다 걸어온 거리 등을 서로 확인하고
출발하는 아량을 베풀어주어 고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모두 이 임도를 처음 걷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도상 잡은 거리 13km가 정확한 건지도 모르는 상태라서요.
험한 산길을 하루 20km 더 걸은 적도 있긴 합니다만 저는 오늘 상경하면 내일 새벽 또 설악산 울산바위를 타러 가야 하기 때문에 속으로 조바심이 납니다.
그러나 일단 걷기 시작하면 싹 달라집니다.
맑은 공기를 심호흡하거나 왼쪽으로 절벽을 이루는 문수산 자락, 오른쪽으로는 간간이 펼쳐지는 각호산, 청옥산 등의
산 그리메 조망에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면서 걷기를 즐깁니다.
끝간데를 모르고 오르던 도중 저 쪽에 먼지를 뒤집어 쓴 갤로퍼 차 한 대가 눈에 듭니다. ‘
누가 무슨 일로 버리고 간 걸까?
이 산 중에’ 하는데 몇 걸음 더 옮기자 저 편에서 노란 안전모를 쓴 두 사람이 길을 다듬고 있습니다.
아마 저들도 우리를 보고 놀랐는지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출발한 지 한 시간 40분쯤 됐나요.
선두 그룹이 아예 배낭을 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길이 U턴을 하듯 꺾어지는 곳입니다.
그리고 꺾이는 정점에 소로가 나 있는데 차단기가 내려져 있고요.
아마도 그쪽으로 또 다른 임도가 펼쳐지나 봅니다.
춘양목 거목에 ‘천살춘양목’ 이름 명명
다가가 보니 오늘 걸어야 할 길의 정점 같습니다.
꺾이는 길이 비스듬히 사면을 이루며 몸을 낮추고 있어서요.
고도계를 보니 783m가 나옵니다.
잠시 휴식하며 간식들 들고 가기로 합니다.
근데 여기까지 우리가 걸은 거리가 7.8km라고 합니다.
20분이 모자라는 2시간에 이 거리를 왔다니 놀랍습니다.
그렇게 가파르지 않고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 걷기 좋은 임도라서 그럴까요?
다들 힘들어하는 기색 하나 없는 것도 신기합니다.
등에 땀이 흥건한 건 저만인 것 같고요.
마침 이정표처럼 어른 두세 아름도 더 되는 밑동 세 개가 하나로 붙은 거대한 춘양목이 자라고 있어 너도나도 옆에 기대어 기념촬영을 합니다.
이 정도 자라려면 천 년은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명명합니다.
‘천살춘양목’이라고요.
그리고 등정(?) 기념으로 단체 사진도 찍습니다.
앉아서 간식을 먹는데 등 뒤에서 선선한 솔바람이 불어옵니다.
이 상쾌함 정말 뭐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7.8km가 정점이면 공평하게 셈을 헤서 내림 길도 그 정도, 그럼 15~16km로 예상과 대강 맞겠다 싶습니다.
발걸음도 가볍게 내려섭니다.
울창한 춘양목 숲을 에두르는 길가엔 아카시와 고광나무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어떤 굽이에서는 하얀 자작나무들이 도열해 있기도 하고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민백미꽃…
그리고 여긴 왜 했을까 싶은 사방댐 한켠에서는 황금색 감자난초 세 포기까지 눈길을 빼앗고요.
한동안 몸을 낮추던 임도가 새로 개설 중인 한 임도를 내주고 왼쪽으로 꺾입니다.
얼핏 숲 사이로 저 아래 동네가 보인다 싶었는데 계속 굽이굽이로 돌아들며 흘러내립니다.
10km 지점을 지나면서부터는 살짝 지루해지기 시작합니다.
여태까지 들꽃에 무심하던 일행들이 내리막길에서는 부쩍 관심을 보입니다.
쥐오줌풀, 미나리아재비, 함박꽃나무 등을 보는 대로 묻고 또 묻습니다.
나중엔 말발도리나무 꽃까지 끝이 없습니다.
근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내림 길이면 내려가야 할 텐데 점점 높아지고 있어서요.
한참을 그래서 아까 임도 정점에서처럼 한 굽이 길이 크게 휘어지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대열을 재정비합니다.
날씨도 흐려져 혹시 소나기라도 오지 않을까 꺼림칙한 가운데서요.
저는 팸 투어라 따로 간식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일행들은 어떻게 챙겨왔는지 여기저기서 내놓는 게 다 나눠먹고도 남습니다.
이곳도 솔숲이 멋들어지게 형성돼 있습니다.
바닥에 까맣게 깔린 솔방울들과 누런 솔잎들의 쿠션도 좋고요,
오늘 피톤치드 목욕 참 잘합니다.
길이 왜 높아지나 의아해하며 조심스레 진행하는데 새로운 한 굽이가 꺾어지는 데서 오른쪽으로 조망이 열리며 저 아래 날머리인 백두대간수목원이 내려다보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다들 안도하며 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구불구불한 임도 길이 저 편에 조망되어 ‘더 올라갈 수도 있겠다’ 마음 다짐까지 하게 되고요.
어느 지점부터 “뚝딱뚝딱” “우우웅” 나무를 캐는지 다른 무슨 공사를 하는지 산을 울리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 울창한 숲 속에 과연 무슨 공사가 필요한지 이해가 안 돼 궁금했지만 그 부근에 와서도 길 상단 쪽이라 끝내 확인을 못 하고 통과합니다.
제발 공사를 위한 자연 파괴만은 없길 바라면서요.
다행히 검은 구름이 지나가고 다시 파란 하늘에 구름 동동 흐렸다 개였다 하는 날씨. 서서히 올라서다 다시 한참을 내려오니 ‘서벽 종점 ← 12km’란 표지판이 나옵니다.
왼쪽으로는 ‘외씨버선길’, 오른쪽으로는 ‘도심’이란 이정표도 나오고요.
시간은 정오 가까이. 이맘때 이 지점 정도면 다른 일행들과 예정대로 이곳 부근에서 만나져야 하는데….
휴대폰으로 연락해 보니 위치 설명이 잘 안 통합니다.
‘도심’이란 단어가 나중에 알고 보니 ‘도심리’의 약자인 거 있지요.
우리는 왼쪽을 택해 일행을 부르면서 다시 행진을 합니다.
춘양목을 배경으로 펄쩍 뛰어오르는 연출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요.
‘문수산숲길’과 ‘문수산 삼림유전자원보호구역’ 안내판이 나오고 드디어 ‘숲길안내소’에서 점심을 들고 있는 팸투어 일행을 만납니다.
모두의 환영 속에 우리도 도시락을 받아 함께 점심을 듭니다.
여기는 솔향기가 더 진하군요.
점심 후 숲해설사가 진행하는 몸풀기 유희를 보며 한두 명씩 일어서서 백두대간수목원 울타리를 따라 한참을 돌아내려옵니다.
광촌교를 건너고 냇가 길을 따라 백두대간수목원 북문에 도착합니다.
쉼터 원두막에 둘러앉아 확인하니 오늘 무려 21.7km를 걸었습니다. 참 대단합니다.
9명 대원이 일어나 원을 만들고 오른손을 포갠 채 완주 축하 세리머니를 합니다.
“춘양목 트레킹 완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