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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초 수레
히에로니무스 보스
상상력이 풍부한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는
지상의 쾌락으로 타락하고 어리석음에 빠진 인간이 최후에는 지옥의 길로 향하는 주제를 선호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악마의 화가’ 또는 ‘지옥의 화가’라고 불렀다.
그는 악마를 상대로 강하면서도 풍자적인 경고를 보내고 있다.
1516년경에 제작된 <건초 수레>(The Haywain) 세 폭 제단화 중앙 패널에서도
인간의 타락한 도덕성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인류의 타락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준다.
왼쪽 패널은 과거의 영역으로 ‘천국’ 에덴동산이고, 오른쪽 패널은 미래의 영역으로 ‘지옥’인 만큼,
중앙 패널은 건초수레와 주변의 욕심으로 가득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죄 없는 순결의 땅’인 천국에서 ‘죄와 단죄의 땅’인 지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천국
왼쪽 패널에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에덴동산으로 아담과 하와는 세 번 나온다.
하와의 창조와 인간의 범죄와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이 그것이다.
한편 하늘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거역한 천사 루시퍼가 천국에서 쫓겨나고 있다.
루시퍼는 원래 천사였는데, 너무 높은 자리까지 오르려다가 하느님에게 반역한 죄로 천국에서 쫓겨났다.
하느님께서는 붉은 옷을 입고 옥좌에 앉아 계시고, 붉은 옷을 입은 천사들이 하느님을 둘러싸고 보좌하고 있으며,
하늘에서는 하느님의 천사들과 타락한 천사인 루시퍼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전투에서 패한 검푸른 루시퍼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그들의 형상은 날개달린 각종 곤충의 모습이며, 더러는 바다와 숲에 떨어지기도 한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기 위해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셨다.(창세 2,18-25)
사랑의 색인 금박을 두른 붉은 관을 쓰고 붉은 옷을 입고 있는 하느님께서는
깊이 잠들어 있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하와를 창조하시며 축복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사랑으로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간교한 뱀의 유혹으로 죄를 저질렀다.
뱀은 여자에게 선악과를 따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며
그것을 먹는 날,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고 유혹했고,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워,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창세 3,1-7)
사람의 모습을 한 뱀은 나무에서 선악과를 따서 여자에게 건네고,
여자는 왼손에 선악과를 들고 아담을 바라본다. 아담은 오른손을 내밀어 선악과를 받으려 한다.
선악과를 먹은 하와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오른손으로 알몸을 가리고 있다.
선악과를 먹은 후 그들은 알몸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른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느님께서는 아담을 불러 물으셨다.
“너는 왜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아담은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다고 변명을 했고,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하고 핑계를 대었다.
하느님께서는 죄에 대한 벌로 여자에게는 임신의 고통을 주고, 아담에게는 노동의 고통을 주었으며,
먼지에서 나왔으니 먼지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신 다음,
에덴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세 3,9-24)
천사는 동굴로 된 에덴동산 입구에서 불 칼을 들고 아담과 하와를 내쫓고 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알몸을 가린 하와는 천사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훔치고 있고,
아담은 자기 잘못을 변명하듯 천사를 바라보며 손을 들어 항의하고 있다.
아무튼 인류는 원죄로 말미암아 건초더미가 가득한 세상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건초 수례
중앙 패널에는 건초를 가득 실은 수레가 중앙에 있고, 수많은 군중이 무질서하게 얽히고설키어 있다.
수레에는 많은 남녀가 엉켜있는데, 모두들 한 결 같이 손과 도구로 건초를 조금이라도 더 양껏 차지하려 한다.
서로 격렬하게 싸우는 인간들과 그 와중에 바퀴에 깔려버린 사람들이 난무하는 모습은
인간의 욕망이 빚은 아비규환의 수랑장이다.
더욱이 칼을 휘둘러 사람을 죽이는 장면까지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부를 향한 인간의 온갖 탐욕과 범죄,
혼돈과 분열의 결과로 결국 무시무시한 사탄과 같은 괴물들에 의해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건초 수레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한없는 욕심을 상징한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세상은 건초더미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건초더미에서 각자 쥘 수 있는 만큼 얻는다.”라는 속담이 있었고,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건초더미와 같은 많은 것을 마련해주셨다.
그 더미를 혼자 모두 차지하려는 사람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바보다.” 하고 노래도 불렀다.
이 그림 속에서 많은 인물이 조금이라도 건초를 더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이런 행위는 인간의 무모한 탐욕과 덧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건초 위에는 싱싱한 나무가 자란다.
나무 앞에서는 세 사람이 루트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있으며,
그 뒤로 입 맞추는 남녀가 있고, 나무 뒤에 이들의 애정행각을 엿보는 이가 있다.
그들 양 옆으로는 천사와 푸른색 악마가 보인다.
오른쪽에는 공작새의 꼬리를 한 푸른 악마의 코와 입에서
트럼펫 모양의 것이 길쭉하게 나와 있는데, 이는 ‘허영’을 상징한다.
악마 위에는 ‘악의 유혹’을 상징하는 올빼미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고,
반대쪽에는 음탐함과 음욕을 상징하는 한 얼간이가 나무에 달린 항아리를 들고 애정행각을 관음하고 있다.
왼쪽에는 천사가 이런 인간을 보호하고 은총을 내려달라고 두 손 모아 기도하며
하늘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 천사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천사의 뒤편에 보이는 푸르고 풍요한 빛의 땅이 희망의 전조인데,
이곳은 예수님께서 계시는 평화의 낙원이며, 우리 마음의 희망이고 안식처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위 구름 속에서 두 팔을 벌리고 세상 사람들을 내려다보신다.
예수님의 양손에 있는 못 자국은 세상의 죄를 없애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들을 구원해주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밖에 계시고 사람들의 눈에는 미약하게만 보인다.
작게 묘사된 예수님의 몸짓은 타락한 인간 세상을 바라보며
어찌 이럴 수 있는지 속수무책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앙에 있는 건초 수레 아래에서는 광란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고,
수레를 호위하는 의식을 치르듯 황제와 교황과 왕의 행렬이 수레 뒤를 따르고,
사다리를 놓고 건초더미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땅에서 권력을 쥔 지도자들이 민중들을 죄악에서 구하지 못하고
오히려 순박한 민중들을 잘못된 곳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 똑같은 금색을 두른 붉은 관을 쓰고 붉은 옷을 입고 칼을 들고 있는 황제는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 재위 1493-1519)이다.
그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재건하기 위해 결혼과 전쟁으로 영향력을 강화하여
강한 군주로서의 위엄을 유지하여 유럽의 대제국을 구축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행렬에 가문의 문장인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독수리휘장이 보인다.
그 옆에 흰말을 타고 삼중관을 쓰고 붉은 망토를 걸치고 축복하고 있는 교황은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VI, 재위 1492-1503)이다.
그는 학문과 예술을 사랑했으나, 성질이 교활하고 잔인하여 최악의 교황으로 불렸다.
그는 끊임없이 이탈리아 반도에 위치한 제국들과 다투며 권력투쟁을 했고,
나폴리왕국의 왕위계승권 때문에 프랑스 왕 샤를 8세의 침입을 받아
천사의 성에 감금되어 정치적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신성로마제국을 설득하여 국제동맹을 맺어 위기를 극복하고 정치적으로 회복하였다.
백합 문양 모자를 쓰고 왕홀을 들고 말을 타고 교황을 따르는 왕이
프랑스의 샤를 8세(Charles VIII, 재위 1483-1498)이다.
그는 브르타뉴공의 딸 안과 결혼함으로써 그 영토를 확보하였고,
부친 루이 11세가 정한 부르고뉴와의 결혼정책 파기로 빚은 합스부르크 왕가와의 불화를 해결한 프랑스 왕이다.
그는 1494년 이탈리아 원정을 감행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불의의 사고로 1498년에 죽고 말았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행렬에 프랑스를 상징하는 백합 문양의 휘장이 보인다.
보스가 살던 시대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로서 부를 향한 인간들의 세속적인 욕망,
곧 온갖 탐욕과 정욕, 범죄와 무질서가 난무한 혼돈과 절망과 어둠의 시대였다.
교회는 당시 막시밀리안 1세와 같은 황금만능의 사고에 젖은 황제와 결탁하면서 거대한 토지를 소유하였으며,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할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자신의 안위와 이득을 더욱 탐하는 등 점차 타락의 길을 걸어갔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사람들은 미래가 밝고 희망찬 것이 아니라
암흑과 지옥과 같이 불길할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시대의 선각자들인 설교자와 예술가는 이런 시대를 경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의 아래에는 탐욕에 젖어 속임수를 일삼는 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왼쪽 끝에 키가 큰 검은 모자를 쓴 채 아이를 업고 망토를 두른 자는 떠돌이 마술사이자 도둑이다.
그는 한 아이를 앞세워 사기를 치려한다.
그 옆에 뒤에서 옷을 잡으며 우는 아이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한 집시가 손을 내밀어 한 여인의 손금을 보려한다.
그녀는 아기를 씻기는 다른 여인처럼 음식을 만드는 가사 일은 내팽개친 채
집시의 꼬임에 빠져 미신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른쪽에는 이동식 탁상용 의료용품을 차려놓은 돌팔이 의사가
여자 환자의 입을 벌리며 고통스럽게 치료하고 있다.
그의 허리춤에 있는 지갑에는 건초가 가득 담겨있어,
그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어떤 수녀는 남근을 상징하는 백파이프와 연결된 줄을 붙들어
정욕을 견디지 못해 악마에게 건초를 주며 다가가고 있고,
뚱뚱한 수도원장은 한 손에 포도주 잔을 들고 의자에 앉아 자신의 소유하게 될 건초를 보며 흐뭇해하고 있으며,
수도원장을 대신해 수녀들은 큰 자루에 건초를 채우고 있고,
한 수녀는 수도원장 곁에서 묵주를 들고 수도원장의 눈치를 보며 기도하고 있다.
이들은 수도자로서의 서약을 저버리고 교회 재산을 탐욕의 수단으로 빼돌리고 있는 것이다.
건초 수레 오른쪽에는 악귀들의 뒤로
지하 흙무더기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나무문을 열고 끝없이 흘러나온다.
이들은 죄악의 땅, 탐욕과 거짓과 살인이 난무한 세상에 발을 디디려고 욕망을 불사르는 자들의 무리이다.
하느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세상은 이렇게 험하고 악한 것이다.
정상적으로라면 수레와 건초더미가 있는 자리에는 십자가와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자리에 건초더미를 지나치게 비대하게 그린 것은
믿음 대신 들어선 인간의 돌이킬 수 없는 사악한 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레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건초수레는 많은 건초를 싣고 덜컹거리며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수레가 도착할 목적지는 지옥인데, 사람들은 부질없는 세상일에만 사로잡혀 있다.
수레를 끄는 자들을 보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흉측한 괴물들이다.
하나는 머리에 두건을 뒤집어쓰고 등에 나무가 솟아 자라는 인간의 모습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의 다리와 인간의 팔 그리고 쥐의 얼굴을 한 물고기 형상이다.
이들의 모습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명을 거역하여 순수한 인간성을 잃은 사탄의 모습이다.
사탄의 추종자들은 건초를 미끼삼아 헛되고 탐욕스럽게 싸움질하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유혹하고 있다.
사람은 어리석게도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건초를 많이 차지하려다가
결국 무시무시한 괴물들에 의해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다.
지옥
오른쪽 패널은 화염에 휩싸인 지옥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지옥은 화염에 싸인 건물들과 죄로 인하여 벌을 받게 될 인간들을 수용할 새 건물을 만들기 위해
바쁘게 일하고 있는 악마들이 있고, 연금술의 상징들이 보인다.
악마들이 쌓은 탑이 연금술에 쓰는 용광로처럼 보이는 반면, 불은 연금술의 불로 해석되며,
악마들이 짓고 있는 탑은 연금술에서 쓰는 용광로인 아타노르(Athanor)인 것 같다.
사탄에 의해 지옥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이는 황소에 태워져 투구를 쓰고 창에 찔린 채 용광로로 향하고 있고,
어떤 이는 곤충처럼 생긴 사탄에 의해 혼절한 채 그 뒤를 질질 끌려가고 있으며,
어떤 이는 사슴처럼 생긴 사탄을 돌아보며
물고기와 쥐의 머리를 한 사탄에 이끌려 두려움 속에 용광로로 향하고 있다.
다리 아래에서는 사냥개들과 도마뱀 등에 물려 수장되는 이들도 있고,
어떤 이는 물고기에게 먹히는 이도 있으며, 거꾸로 매달려 살갗이 벗겨진 채 죽어가는 이도 있다.
“어떤 이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는다면,
심판 날에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저마다 한 일도 명백해질 것입니다. 그날은 불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저마다 한 일이 어떤 것인지 그 불이 가려낼 것입니다.”(1코린 3,12-13).
순례자
양 날개 패널을 접으면 또 하나의 그림이 나타난다. 바로 순례자이다.
그림 속의 순례자는 전대사의 은총과 구원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나고 있다.
그는 뒤를 돌아보며 자신이 걸어온 길과 그 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있다.
배경에는 백파이프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는 목동들과 도적들에게 강탈당하는 사람이 보이고,
발밑에는 동물들의 뼈다귀들이 널브러져 있는데,
이는 순례자가 죽음을 생각하며 쾌락과 도적질 같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순례를 통해 구원의 강을 건너려는 것이다.
[출처] 건초 수레 - 히에로니무스 보스 |작성자 말씀과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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