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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암선교후원회 (직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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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자료 및 활동 스크랩 대부님에 관한 이야기
진프란치스코 추천 0 조회 85 09.06.17 13:36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나는 1980년에 세례를 받았다.

그때까지 종교가 없던 나는 아내 소피아를 만나면서 그녀의 권유로 아내가 믿고 있는 가톨릭을 만나게 되어 세례를 받았다.

특별히 신앙심이 깊으셨던 아내의 아버지인 지금의 나의 장인께서 내가 이곳 아프리카 말라위에 선교사로 올 것을 미리 아셨는지 활동적인 내 성격으로 보아 선교의 성인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좋겠다고 본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해 주셨고 내 대부님으로 남종삼 성인의 후손인 그 당시 한양대학교에 계셨던 남평우 교수님으로 정해 주셨다.

  그러나 장인어른의 기대와는 달리 나의 신앙생활은 그렇게 충실하게 하지 못했다. 직장에서 하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주일미사에 빠지는 일이 가끔 있게 되고 그 다음 주일에는 미사에 참석해도 고해성사를 못해서 영성체를 못하게 되고 자주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영성체도 못하는 미사를 열심히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는 사탄의 유혹에, ‘그래 지금은 자주 미사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일을 해야 하는 시기이니 잠시 쉬었다가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이 되면 그때부터 열심히 성당에 다니자’ 하면서 냉담하기 시작하였다.

대부님 이셨던 남평우 교수님은 워낙 살고 있던 곳이 멀고 하는 일이 서로 달라 만나기가 어려워 나의 신앙생활을 보살펴 주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냉담은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나중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아내까지 남편이 가지 않는 성당에 혼자서 열심히 나가는 것이 힘이 들었는지 나와 같이 냉담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냉담은 아내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다시 성당에 나가기로 마음을 바꾸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한동안 계속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함께 거실에 나와 있던 아내가 보이지 않아 아내를 찾으려고 방문을 열었다가 그곳에서 촛불을 켜놓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가 문을 여는지도 모르고 너무나 경건하게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고 있는 모습에 갑자기 죄지은 사람처럼 조용히 문을 닫고 거실에 돌아와 나도 모르게 기도에 방해가 될까봐 그때까지 보고 있던 TV를 끄고 조용히 아내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저녁시간이면 계속되는 아내의 기도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는지 내가 먼저 아내에게 앞으로 나도 다시 성당에 나가겠다고 하였고 이로부터 오랜 나의 냉담 생활은 끝이 났다.

  그때부터 사실상 나의 가톨릭신앙 생활은 다시 시작되었고 그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수지에 있는 아직도 비닐하우스 천막성당인 수원교구 상현동성당은 나의 제2의 고향 같은 곳이 되었다.

견진성사를 받기위해 성령세미나에 참석하였는데 마지막 날 성령의 은총을 받고 정말 많이 울었다. 그때까지 살면서 지은 모든 죄를 용서 하시고 다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게 됨을 감사드리는 회개의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나중에 내가 앉아있던 의자 밑을 보니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이렇게 하여 다시 신앙생활을 하게 된 나는 견진을 받게 되었고 견진대부님으로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그동안 함께 구역활동을 하고 있던 배득채 돈보스코님에게 대부님이 되어 주시기를 부탁하였다.

돈보스코 대부님은 평소에 성당에서나 구역모임에서 자주 만나면서 부부가 함께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고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계시는 분이셨다.

  연세가 70세가 되셨지만 부부간의 사랑이 너무 좋으셔서 항상 사랑한다는 말을 하시고 애정표현도 많이 하시는 로맨티스트이시기도 하시며 젊은 사람들에게 부부간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시는 모범적인 분이시다

그때 성당의 직책은 맡고 계시지 않았지만  생활 속에서 주님의 뜻에 따라 사시려고 노력하셨고 우리들의 조그마한 희생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부활의 삶이라고 항상 강조하셨다. 또한 지역 공동체에서 행사가 있으면 후원도 많이 하셨다. 이렇듯 마음에 여유가 있으시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항상 베풀면서 사시는 분이시다.

내 세례 대부님은 너무 멀리 계셔서 견진 대부님은 가까이에서 나와 함께 신앙생활을 해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분이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배득채 돈보스코님께서 내 대부님이 되어 주셔서 너무나 기뻤다

  견진성사 이후부터 나의 신앙생활은 돈보스코 대부님으로 부터 모든 면에서 너무나 많은 보살핌을 받았다.

오랜 냉담으로 신앙생활이 서투른 나에게 기도하는 방법과 본당 사목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던 나에게 당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여 주며 실수 없이 일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셨고 또 나의 모든 개인적인 어려움을 헤아려 많은 배려를 해 주셨다.

우리부부의 신앙생활은 항상 돈보스코 대부님이 옆에 계셔서 다른 신자들의 부러움을 받을 정도로 온갖 일에 참으로 자상하게 많은 보살핌을 받으면서 할 수 있었다.

  내가 하느님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고 갑자기 모든 경제적인 활동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도 우리가족들의 생계를 많이 염려해 주셨고 평신도 해외선교사를 양성하고 지원하는 직암 선교회를 만들 때에도 가장 큰 힘이 되는 직암 선교회 후원회장님을 맡아 주셨다.

  아프리카 말라위에 선교사로 떠나오기 위해서 대부님과 아쉬운 이별을 하면서 나는 대부님과 이곳 아프리카 말라위에 대부님의 이름을 가진 ‘배득채 돈보스코’ 마을을 만들어 드리기로 약속을 하였다. 이름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많은 기도와 노력을 하고 있다.

  주님의 은총으로 대부님을 만나게 됨을 감사드리며 주님 안에서 늘 행복하시고 평화를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꼭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체력도 키우시고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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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6.23 00:28

    첫댓글 대부님의 덕을 톡톡히 보셔서 축하를 드립니다. 저의 영세 대부는 현재 매형이셔서 저도 덕을 톡톡히 보았지요. 근데..제가 대자들에게 대부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미안하네요. 정말로.......

  • 작성자 09.07.02 00:40

    저도 좋은 대부님은 만났는데 제 대자들에게는 좋은 대부가 되지 못하고 있어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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